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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ㅣ SERI 연구에세이 3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2월
평점 :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12.18.
다듬읽기 248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2003.2.20.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를 가만히 읽었습니다. “영어를 함께 쓰자”고 굳이 안 외쳐도, 이 나라 벼슬아치나 글바치는 일찌감치 중국말도 일본말도 함께 써왔고, 영어도 진작부터 함께 썼습니다. 그러나 ‘바치’ 아닌 ‘살림지기’는 늘 ‘말’을 썼어요. 수수한 살림지기가 주고받는 말 사이에 곧잘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영어가 섞이기는 하지만, 그저 ‘말’을 하다가 몇 마디 섞일 뿐입니다. 그런데 온나라 모든 아이어른이 영어를 굳이 첫쨋말로 삼아서 주고받아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하고 터전과 삶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굴레에 갇히고 괴로울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며 쓸 말과 ‘이웃을 만나며 쓸 말’과 ‘책과 글을 곁에 두며 쓰는 말’은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시골지기가 논밭에 씨앗을 심을 적에 ‘씨’가 아닌 ‘종자’라는 일본 한자말을 농협부터 쓰라고 억누르는데, 이제부터 ‘seed’라고 바꿔쓴들, 삶이 바뀔 일이 없이 갇힐 뿐입니다. 모든 낱말과 말씨에는 그곳 사람들이 오래오래 일군 숨결과 마음과 살림과 사랑과 꿈과 뜻이 서려요. 복거일 씨는 ‘말’이 왜 ‘말’인지 하나도 모르거나 일부러 뒷짐을 지거나 눈돌린 채 ‘영어나라’를 이루어 ‘돈 잘 버는 나라’로 바뀌기를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이 책이 밝히는 바는 오로지 돈입니다. 영어를 빨리 써야 돈이 되고, 모든 아이가 영어부터 잘 써야 ‘돈 잘 버는 세계인’이 된다고 외칩니다. 돈이 안 대수롭지 않습니다만, 그저 돈만 쳐다보는 삶이라면 보람이 있을까요? 돈을 안 벌어도 들숲바다를 품고서 논밭을 가꾸는 일꾼은 언제나 느긋하고 넉넉합니다. 돈벌이가 아닌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은 ‘경제성장에 이바지 안 하는’ 셈인지요? ‘가정부’를 쓰자면 한 달에 500만 원도 매우 적은데요, 집살림과 집안일을 돈값으로 헤아리자면 어마어마하게 ‘나라살림에 이바지’합니다. 아이어른이 먼저 서로 마음과 생각과 뜻을 즐겁고 상냥하면서 넉넉히 주고받는 ‘쉬운말’부터 알맞게 쓸 수 있는 나라에 마을에 집이어야 비로소 ‘눈에는 안 띄는 경제성장 지표가 껑충껑충 오릅’니다. 복거일 씨 목소리대로라만, 굳이 우리나라에서 논을 일구어 쌀을 거둘 까닭이 없어요. 이웃나라에서 사오는 쌀이 훨씬 값싸니까요. 이것도 저것도 다 사다가 쓰면 돈이 얼핏 가장 적게 들어서 ‘경제발전 이바지’일는지 모르나, 남한테 모두 기대는 적잖은 나라가 어떤 꼴로 무너졌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과 살림과 뜻을 우리말로 주고받는 오랜 터전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 손으로 옮기는 우리글까지 있는, 이 푸른별에서 아주 아름답고 놀라운 나라입니다. 오히려 영국이나 미국에 ‘한말·한글(우리말·우리글)’을 쓰라고 북돋우면서 ‘한말·한글’을 이웃나라가 알맞고 즐겁게 쓰는 길을 열자고 외친다면,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야말로 끝없고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이루리라 봅니다. 그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글이 너무 엉망진창입니다. 무늬만 한글일 뿐, 온통 일본말씨에 옮김말씨입니다.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는지요? 영어를 함께 쓰자고 외치기 앞서, 우리말과 우리글부터 차근차근 익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들 우리말을 못하면 ‘통번역’을 못 합니다.
ㅅㄴㄹ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2003)
너른 논의의 마당에서 살피려는 시도다
→ 너른마당에서 살피려고 한다
→ 널리 얘기하려는 뜻이다
→ 널리 나누고 싶다
7
이 글은 위의 인용에서 ‘경제의 논리’라고 불린 것을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 이 글은 앞선 글에 적은 ‘돈’ 이야기를 밝히려고 한다
→ 따온글에 적은 ‘돈’이 얼마나 드는가 밝히려고 한다
10
이런 반응은 모국어에 관한 논의에선 훨씬 거세어진다
→ 우리말을 다룰 적에는 훨씬 거세게 대꾸한다
→ 겨레말을 다루려 하면 훨씬 거세게 맞선다
11쪽
반어적(反語的)으로, 이미 설득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보기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 거꾸로 이미 받아들인 사람을 다독이는 일은 훨씬 뜻있다
→ 그런데 이미 끄덕이는 사람을 달래는 일은 훨씬 뜻깊다
12
당연히,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배우는 데 큰 투자를 하고 있다
→ 마땅한데,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려고 돈을 크게 쓴다
→ 마땅히, 사람들은 영어를 배운다며 힘을 잔뜩쓴다
15
정보의 교류를 막는 언어 장벽을 낮추어서 그런 장벽으로 인해 우리가 보는 손해를
→ 주고받는 말을 막는 담을 낮추어서 담벼락 때문에 우리가 잃는
→ 흐르는 이야기를 닫어거는 담을 낮추어서 담 탓에 우리가 밑지는
→ 말이 달라서 만남길이 막히는데, 담을 낮추어서 우리가 날리는
16쪽
빠르게 국제어로 자리잡은 데서 나온 것이므로
→ 빠르게 누리말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니
→ 빠르게 모둠말로 자리잡았은 탓이니
17
기술이 점점 빠르게 발전하면서, 근년에는 그런 예들이 훨씬 자주 나왔다
→ 다룸새가 더 빠르게 크면서, 요새는 훨씬 자주 이런 일을 본다
→ 더 빠르게 나아가는 솜씨에 따라, 이제 이런 일을 훨씬 자주 본다
24
영어의 득세는 나머지 민족어들이 궁극적으로 쇠멸하리라는 것을 뜻한다
→ 영어가 판치며 나머지 겨레말은 그저 사라진다는 뜻이다
→ 영어가 춤추며 나머지 내림말은 바로 죽는다는 뜻이다
43
단기적으로는 민족어들이 영어에 점점 깊이 침윤될 것이다
→ 곧 겨레말은 영어 탓에 차츰 가라앉는다
→ 이윽고 내림말은 영어에 조금씩 잠긴다
43
조선어의 쇠퇴는 언어의 건강을 보장하는 조어 능력에서 특히 뚜렷하다
→ 조선말은 조선말로 새롭게 엮지 못하면 뚜렷이 기울고 만다
→ 조선말은 조선말로 새말을 엮지 못하면 뚜렷이 흔들린다
48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
→ 그러면 무엇이 참답게 새길일까
→ 그러면 다른길을 어떻게 열까
89쪽
조선어의 독점적 지위를 허물어서, 시민들이 영어를 쓰고 자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 조선말만 쓰기보다는, 사람들이 영어를 쓰고 아이한테 겨레말로 영어를 고를 수 있도록 하자는 길이다
→ 조선말만 쓰지 말고, 누구나 영어를 쓰고 아이한테 영어를 내림말로 고를 수 있도록 하자는 셈이다
91
거의 모두 근대에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 거의 모두 요즈막 일본에서 새로지었다
→ 거의 모두 일본사람이 새로지었다
98쪽
언어는 본질적으로 도구다
→ 말은 무릇 그릇이다
→ 말은 모름지기 밑감이다
111
비용과 혜택이 여러 세대들에 걸쳐 나오는 초장기적 투자라는 사실이다
→ 돈으로나 바라지로나 앞으로 길게 잇도록 힘을 쏟는 일이다
→ 앞으로 오래오래 돈이 되고 넉넉히 누리는 길이다
118
위에서 살핀 것처럼, 영어를 옳게 읽고 쓰는 능력은 현실에서도 기본적 중요성을 지닌 기술이며
→ 이제까지 살폈듯이, 우리가 살아가자면 영어를 옳게 읽고 써야 하며
→ 앞서 살폈는데, 우리가 살아가려면 영어를 옳게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며
13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