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의 동쪽 민음의 시 229
오정국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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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노래책시렁 462


《눈먼 자의 동쪽》

 오정국

 민음사

 2016.12.29.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쓸 노릇입니다. ‘문학’을 하려고 들면 망가집니다. 노래를 하고 싶다면 노래를 할 일입니다. ‘시창작’을 하려고 나서면 어긋납니다. 말을 해야 알아들을 테지만, ‘강의·수업’을 하니 삶하고 동떨어져요. 겉치레로는 못 살립니다. 허울로는 죽입니다. 알맹이가 차야 싹이 트고 자라요. 쭉정이로는 번지르르할 뿐입니다. 《눈먼 자의 동쪽》을 읽으면서 오늘날 숱한 ‘시문학’이 다 이렇게 꾸미고 엮는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삶을 쓸 줄 모르거나 삶하고 등지기에 ‘문학적 표현’에 얽매입니다. 살림을 안 하거나 살림짓기를 모르기에 ‘시적 수사·기교’에 갇힙니다. 스스로 살아낸 하루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으면 됩니다. 스스로 살림하는 손길로 고스란히 말을 하고 글로 옮기면 넉넉합니다. 있지 않은 삶을 붙이려니 꾸밉니다. 하지 않은 살림을 내세우려니 덧바릅니다. 붓을 쥐기 앞서 도마를 놓고서 밥을 지을 하루예요. 글을 쓰기 앞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볼 오늘입니다. 책을 읽기 앞서 하늘과 별과 바람을 읽을 사람입니다. 삶을 쓰지 않기에 겉치레라면, 살림을 안 하기에 허울입니다. 사랑을 안 하기에 꾸민다면, 사랑을 모르기에 헤맵니다.


ㅅㄴㄹ


아낙네의 사타구니를 훑듯, 코로 주둥이로 밭고랑을 뒤지던 / 산짐승을 내동댕이쳐 놓고, 서부영화의 총잡이처럼 / 총구를 훅 부는 사내의 / 떡 벌어진 어깨 너머, 진저리를 치듯 / 목덜미를 떠는 멧돼지의 / 눈알이여, 그 어디서 눈 맞췄던 굶주림이냐. 패악이라면 (패악이라면 패악이겠지만/15쪽)


일주일째 고기 비린내를 맡지 못했더니 / 장작개비의 나뭇결이 고등어 뼈로 보였다 / 누추한 먹이를 구하지 말라 했으니 / 백담계곡 눈길을 올라가는 것인데 / 간밤의 취기와 / 용서할 수 없는 고통의 소용돌이를 / 절벽 앞에 세워 둔 사내가 있었다 (눈 뭉치로 눈 벼락을 맞는/41쪽)


+


《눈먼 자의 동쪽》(오정국, 민음사, 2016)


입은 수천 겹의 굶주림으로 일그러져 있고

→ 입은 숱하게 굶주려 일그러지고

→ 입은 겹겹이 굶주려 일그러지고

18쪽


혈액투석을 하듯 당신은

→ 피거름을 하듯 그대는

→ 피씻이를 하듯 너는

23쪽


겨우겨우 눈을 틔우기 시작했다

→ 겨우겨우 눈을 틔운다

32쪽


내가 나의 궁기를 지키듯

→ 내가 내 가난을 지키듯

→ 내가 이 밑바닥 지키듯

33쪽


백담계곡 눈길을 올라가는 것인데

→ 온못골 눈길을 올라가는데

41쪽


한천(寒天)의 얼음 골이

→ 눈하늘 얼음골이

→ 겨울하늘 얼음골이

→ 찬하늘 얼음골이

49쪽


공중의 햇빛은 내 빈손을 빛나게 하고

→ 저 하늘 햇빛으로 내 빈손이 빛나고

→ 높다란 햇빛으로 이 빈손이 빛나고

49쪽


아릿한 문신(文身)들

→ 아릿한 몸글씨

→ 아릿한 몸무늬

59쪽


천군만마의 발굽 소리가 지나갔다

→ 든든하게 발굽 소리가 지나갔다

→ 도와주는 발굽 소리가 지나갔다

66쪽


뱀의 대가리는

→ 뱀대가리는

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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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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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6.

노래책시렁 454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

 2014.1.14. 



  얼핏 말을 꾸미는 분이 있을 텐데, 모든 꾸밈말은 이내 드러납니다. 꾸밈없이 말하는 분이 있고, 꾸밈없이 하는 모든 말은 늘 스스럼없습니다. 꾸밈말로는 겉보기에 반지르르합니다. 꾸밈없는 말로는 겉을 안 따지고 안 쳐다봅니다. 안 꾸미기에 늘 마음을 들여다보거든요. 《사진관집 이층》에 드러나는 꾸밈말을 한 올씩 걷어내 봅니다. 속으로 야무지다면 구태여 안 꾸밉니다. 손수 살림을 짓는 사람은 굳이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설거지를 하는데 뭘 꾸밀까요? 그저 설거지를 정갈하게 마칠 노릇입니다. 밥을 하는데 왜 꾸밀까요? 즐겁게 나눌 밥 한 그릇을 할 뿐입니다. 빨래를 하면서 왜 꾸미겠어요? 옷가지에 묻은 때랑 얼룩이랑 먼지를 말끔히 씻고 헹구는 길에 온마음을 쏟을 노릇입니다. 예나 이제나 이 나라에서 글밥을 먹는 분들치고 집안일을 스스로 하는 분이 매우 드뭅니다. 손수 집을 돌보고, 밥을 짓고, 쓸고닦고, 아기를 보면서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고, 아기한테 모든 말을 가르치면서 언제나 함께 놀고, 빨래를 해서 널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고, 밭을 짓고 저잣마실을 다녀오고 …… 이런저런 집안일을 글(시·소설·수필)로 고스란히 담은 글바치는 몇일까요? 집살림으로 ‘문학’을 안 하니, 다들 꾸미기만 합니다.


ㅅㄴㄹ


훌훌 벗어던지고 그 여자는 / 하얀 몸을 물속에 숨긴다. 날렵한 인어다. / 정신이 어지럽다. 주저한다. / 저 옷을 감추어 그 여자를 지상에 묶어둘거나. // 그러나 내 번민은 부질없다. 잠시 뒤 / 물속에서 나온 그 여자 / 옷 아무렇게나 버려둔 채 / 꽃같이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오니 / 세속의 어지러운 바람에 취했으리. (몽유도원夢遊桃源/38쪽)


그의 운전기사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다. / 주인 대신 그가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 다만 라면을 배급받는 긴 행렬 끝에 / 배가 부른 그의 젊은 아내가 / 다섯살짜리 딸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을 뿐이다. / 그녀의 눈은 말라 눈물도 없다. // 가상(假相)과 실상(實相)을 다 사랑한다는 것일까. (빙그레 웃고만 계신다/88쪽)


+


《사진관집 이층》(신경림, 창비, 2014)


세속의 어지러운 바람에 취했으리

→ 둘레 어지러운 바람에 홀렸으리

→ 어지러운 밖바람에 사로잡혔으리

38쪽


가상(假相)과 실상(實相)을 다 사랑한다는 것일까

→ 거짓과 참을 다 사랑한다는 말일까

→ 덧없든 민낯이든 다 사랑하는가

→ 겉과 속을 다 사랑한다는 말일까

→ 껍데기와 알맹이를 다 사랑할까

8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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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조선남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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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6.

노래책시렁 461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조선남

 삶창

 2024.3.29.



  누가 ‘시’를 쓰겠다고 하면 덥석 말립니다. “제발, ‘시’를 쓰려고 하지 맙시다. ‘하루’를 씁시다.” 하고 달랩니다. 누가 ‘소설’이나 ‘수필’을 쓰겠다고 해도 와락 말립니다. “부디, ‘노래’를 쓰고 ‘오늘’을 쓰셔요.” 하고 다독입니다. 우리는 ‘문학’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오늘 하루를 노래하면 넉넉합니다. ‘시·소설·수필(에세이)’이라는 허울을 걷어치울 때라야 비로소 ‘말’을 ‘글’로 옮겨서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를 읽으며 한숨을 지었습니다. 왜 자꾸 ‘시 만들기’를 하려고 들까요? ‘시 만들기’를 하려고 들기에, 거룩하거나 좋거나 멋스러운 말로 자꾸 꾸미고야 맙니다. 글쓴이는 나무를 만져서 집을 짓는 일을 한다는데, 집짓기를 할 적에는 “살아갈 보금자리를 아늑하게 세우는 길”입니다. 남이 보기에 번듯하거나 반지르르한 껍데기를 세우는 굴레가 아닌, 스스로 오붓하고 포근하게 지낼 터전을 세워서, 이곳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지필 살림을 하려는 길입니다. 모든 문학은 틀을 만드는 굴레라고 할 만합니다. 그저 오늘을 쓸 일입니다. 언제나 하루를 말할 일입니다. 이러면서 꿈을 그리는 이 마음을 노래할 일입니다. 억지로 세운 집은 곧 무너집니다.


ㅅㄴㄹ


세상에서 버림받았지만 / 나에게서 마저 버림받을 수 없지 않은가? / 진이 빠져버린 늙은 몸이나 / 성치 않은 몸으로 일당 벌이 나서는 새벽 / 번번이 거절하는 용역회사는 / 나를 폐기한 노동력으로 취급하지만 / 그래도 할 일이야 남아 있지 않겠는가? (붉은 사랑/40쪽)


꽃잎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 생명에 대한 경외 / 울림이었다 (64쪽/겨울 그 아픈 사랑)


+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조선남, 삶창, 2024)


그런 것들을 시라고 쓰고 있으니

→ 그런 일을 노래라고 쓰니

→ 그런 나날을 쓰니

4쪽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 만들어 보자고

→ 조금이라도 나은 터전 일궈 보자고

11


우리의 삶과 소소한 일상 속에서

→ 우리 삶과 작은 이야기에서

→ 우리 삶과 수수한 하루에

15쪽


하늘의 뜻이 사람의 노동을 통해 땅에서 이뤄지는 순간

→ 하늘뜻을 사람이 일하며 땅에서 이루는 때

19쪽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걸음 위에 있다

→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길에 있다

→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곳에 있다

22쪽


먼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어

→ 멀리 떠나기를 바라

→ 멀리 떠나고 싶어

26쪽


동해안 바닷가를

→ 새녘바닷가를

27쪽


모든 것이 마치 손안에 쥔 것처럼 훤하다면

→ 마치 모두 손에 쥐듯이 훤하다면

28쪽


높은 연단에서 목청을 높여 연설했고

→ 높은자리에서 목청을 높여 보았고

→ 높은곳에서 목청을 높여 보았고

38쪽


살아온 세월의 풍파여

→ 살아온 가싯길이여

→ 살아온 된바람이여

→ 살아온 너울길이여

41쪽


다섯 배 넘는 사정거리

→ 다섯 곱 넘게 겨냥하는

→ 다섯 갑절 넘게 겨누는

44쪽


남은 생애는 몇 년일까 시한부 인생처럼 물어본다

→ 남은 삶은 몇 해일까 마감줄처럼 물어본다

→ 몇 해 남은 삶일까 마지막길처럼 물어본다

56쪽


꽃잎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외 울림이었다

→ 아름다운 꽃잎이 아니라 거룩한 숨결이 울린다

→ 아름다운 꽃잎보다 고요한 숨빛이 울린다

64쪽


단절과 결별의 시간이 아니라 이어짐과 흐름의 시간이었다

→ 끊기고 헤어지는 날이 아니라 이어가고 흐르는 날이다

→ 긋고 갈라서는 길이 아니라 잇고 흐르는 길이다

65쪽


혹한의 밤은 잠들지 못하고 나무는 깊은 울음을 운다

→ 겨울밤은 잠들지 못하고 나무는 깊이 운다

→ 추운밤은 잠들지 못하고 나무는 깊이 운다

70쪽


쇠락과 쇠퇴를 거듭하는 골목길에

→ 기울고 빛바래는 골목길에

→ 바래고 저무는 골목길에

9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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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이 사는 나라 - 초등 개정교과서 국어 4-2(나) 수록 초록연필의 시 1
신형건 지음, 김유대 외 그림 / 푸른책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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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5.

노래책시렁 456


《거인들이 사는 나라》

 신형건

 진선출판사

 1990.1.20.



  아이가 보기에 어른은 ‘큰사람’일 수 있지만 ‘덩치’뿐일 수 있습니다. 어른이 보기에 아이는 ‘작은사람’일 수 있는데 ‘빛씨앗’일 수 있습니다. 어느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데, 사랑이 아닌 채 보면 으레 겉모습만 좇습니다. 사랑으로 마주하기에 크고작은 몸집이 아니라, 철빛이나 빛씨앗으로 다가서게 마련입니다. 《거인들이 사는 나라》는 1990년에 처음 나온 뒤로 거듭 새옷을 입는데, 글쓴이는 서른 몇 해에 걸쳐서 예전 글결을 그대로 잇는 듯합니다. 어린이책에 글을 쓰거나 옮기는 일을 한다면 “-게 되다”나 “난로 위”나 “―”나 “만들다”나 “-들”을 비롯한 온갖 얄궂은 말씨는 하나하나 털고 가다듬어야 할 텐데, 막상 어느 하나도 안 가다듬는다고 느낍니다. 어느 누구도 “눈 위”를 못 걷습니다. 왜 그럴까요? “눈 위”는 날거든요. 걸으려면 “눈밭을 밟아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무늬한글’일 적에는 겉속 모두 어정쩡합니다. 손수 살림을 짓고 돌흙나무를 매만지면서 낱말을 차곡차곡 다듬고 추스를 줄 알아야 비로소 아이 곁에서 철든 사람으로 설 만합니다. ‘초중고등학교·대학교’를 다니면서 익숙한 말씨는 거의 다 옮김말씨나 일본말씨인데, 이 말씨를 털어야 제대로 말씨앗을 심습니다.


ㅅㄴㄹ


난로 위에 앉은 주전자가 /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 통 알 수가 없어. /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 뚜껑을 달싹거리고 /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 허연 김을 뿜어대더니, / 좋아서 그러는 건지 / 화가 난 건지 / 통 알 수가 없어. / ―왜 그러니? (안절부절/19쪽)


단 하루만이라도 어른들을 거인국으로 보내자. 그곳에 있는 것들은 모두 어마어마하게 크겠지. 거인들 틈에 끼이면 어른들은 우리보다 더 작아 보일 거야. 찻길을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는 얼마나 길까? (거인들이 사는 나라/22쪽)


+


《거인들이 사는 나라》(신형건, 진선출판사, 1990)


그 대신 문가에 있는 초인종을

→ 그러면 어귀에 있는 단추를

→ 그러면 앞에 있는 누름쇠를

13쪽


하늘에 둥둥 떠다니게 된 게 아닐까

→ 하늘에 둥둥 떠다니지 않았을까

14쪽


난로 위에 앉은 주전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 불덕에 앉은 물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 불에 앉은 노구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19쪽


―왜 그러니?

→ “왜 그러니?”

19쪽


단 하루만이라도 어른들을 거인국으로 보내자

→ 하루만이라도 어른을 큰사람나라로 보내자

22쪽


찻길을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는 얼마나 길까

→ 길을 가로지르면 얼마나 길까

→ 한길을 건너려면 얼마나 길까

22쪽


또 다른 메아리를 만들래

→ 또 메아리를 외칠래

→ 또 메아리를 칠래

44쪽


지루한 연설을 하니까 연거푸 하품을 해대지 뭐야

→ 지겹게 말을 하니까 거푸 하품을 하지 뭐야

→ 따분히 말씀하니까 하품을 해대지 뭐야

54쪽


바람의 집에 세들어 사는 풀꽃들을 만났다

→ 바람집에 깃든 풀꽃을 만난다

→ 바람네를 빌린 풀꽃을 만난다

66쪽


커다란 하늘의 품이 미처 안아주지 못한 별들을 위해

→ 커다란 하늘이 미처 품에 안지 못한 별한테

80쪽


낟알들을 재잘거림으로 뱉어내고 있다

→ 낟알을 재잘거리며 뱉어낸다

→ 낟알을 재잘재잘 뱉어낸다

→ 낟알을 재잘조잘 뱉어낸다

85쪽


벼들은 손을 올렸다 내리기도 하고

→ 벼는 손을 올리고 내리기도 하고

8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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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사탕
강정규 지음, 윤정미 그림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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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5.

노래책시렁 460


《돌아온 사탕》

 강정규

 창비

 2022.6.10.



  아는 분은 이미 알 텐데 ‘혁명’이라는 이름을 내걸 적에는 이미 ‘너울’이 아니게 마련입니다. 으레 ‘혁명권력’으로 기웁니다. 어떤 글을 써놓고서 ‘문학’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벌써 ‘글꽃’이 아닌 ‘문학권력(문단권력)’으로 달립니다. “나라를 지킨다”나 “나라를 살린다”고 외치는 숱한 벼슬아치는 으레 벼슬과 감투만 쥘 뿐, 허울과 눈속임으로 치닫기 일쑤입니다. 《돌아온 사탕》을 읽고서 이내 덮었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동시 만들기’를 아이들한테 버젓이 보여주거나 읽혀도 될는지 아리송합니다. ‘언니 1’은 언젯적 우스개일까요? ‘말할까 말까’도 언젯적 응큼질인가요? 요즈음 어린배움터는 ‘출석부’를 얼마나 쓸까요? 얼핏 요즈음 흐름과 삶터를 보여주는 듯하면서 ‘아재 개그’를 하듯 예전에 써먹던 우스개를 오늘날까지 슬그머니 끼워넣는 굴레는 ‘동시권력’이거나 ‘동시흉내’입니다. 이제 이런 장난질과 흉내질은 멈출 때입니다. 부디 아이 곁에 서기 바랍니다. 하루 내내 아이를 지켜보면서 함께 배우고 돌아보는 살림을 짓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물려받아서 함께 새롭게 지을 즐겁고 아름다울 오늘 하루를 차근차근 일구고 나서야 붓을 쥐기 바랍니다.


ㅅㄴㄹ


손잡이도 잡지 않은 채 / 스마트폰에 빠져 있던 언니 /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서는 바람에 / 기사 아저씨 등 뒤까지 쏜살같이 / 달려갔다 돌아와서는 / 뒷좌석에 앉아 묻지도 않는 내게 // 안 불렀대! (언니 1/12쪽)


맨날 내 앞에서 1등하는 짝 / 치마가 엉덩이에 끼었는데? (말할까 말까/18쪽)


최고가 매입! / 최저가 판매! / 중고차 매매! (광고 시대 2/39쪽)


온 사람 앉혀 놓고 / 출석부 더럽다며 / 안 온 사람 나무라면 / 아침부터 김새죠! (우리 선생님/55쪽)


+


《돌아온 사탕》(강정규, 창비, 2022)


스마트폰에 빠져 있던 언니

→ 똑소리에 빠진 언니

12쪽


뒷좌석에 앉아

→ 뒷자리에 앉아

12쪽


열림 버튼 얼른 눌렀죠

→ 열림 단추 얼른 누르죠

20쪽


횡단보도 신호등이 계속 빨간불

→ 건널목 불이 내내 빨간불

→ 길나루는 내도록 빨간불

23쪽


사는 게 심란해진 아빠는

→ 삶이 꼬인 아빠는

→ 삶이 뒤숭숭한 아빠는

→ 뒤죽박죽인 아빠는

30쪽


몇 송이 샛노랗게 웃고 있었다

→ 몇 송이 샛노랗게 웃는다

31쪽


언제나 싱글벙글 선산 지키시네

→ 언제나 싱글벙글 어른뫼 지키네

34쪽


나무 그늘이나 등잔불 아래 모여 정겨운 이야기도 끝없이 나누었대

→ 나무 그늘이나 불받이 곁에 모여 이야기도 오붓이 끝없이 했대

43쪽


헐키두 허다

→ 싸기두 싸다

→ 눅기두 눅다

46쪽


이쁘게 모양내라고 만드셨을까

→ 이쁘라고 지으셨을까

→ 꾸미라고 지으셨을까

4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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