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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ㅣ 문학동네 시인선 183
김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7.
노래책시렁 502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김상미
문학동네
2022.12.2.
모든 순이는 숲을 품고서 태어났습니다. 모든 돌이는 들을 품고서 태어났고요. 숲에서 나무하고 나란히 피어나는 순이라면, 들에서 풀하고 어울리며 깨어나는 돌이라고 느낍니다. 먼먼 옛날부터 까마득히 오래도록 숲숲이에 들돌이였는데, 우두머리가 서고 나라를 일으키는 동안 싸울아비가 불거지더니, 어느새 숲을 잊는 순이에 들을 잃는 돌이로 뒹굽니다.
숲에서 노래하며 놀이를 짓는 순이입니다. 들에서 일하며 들살림을 짓는 돌이입니다. 둘은 노래하고 일로 만나고, 놀이하고 살림으로 어울립니다. 노래 곁에 일이 있고, 놀이 곁에 살림이 있습니다. 왼발과 오른발로 나란히 걷듯, 왼손과 오른손으로 함께 짓고, 왼눈과 오른눈으로 함께 보듯, 왼귀와 오른귀로 같이 듣습니다.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는 얼핏설핏 굴레(남성가부장권력)에 시달린 티가 곳곳에 남지만, 요모조모 다시금 싹터서 숲을 이루려는 마음을 하나둘 일으키려는 얼거리로구나 싶습니다. 다만, 우리는 “숲이 되어가는 순이”나 “들이 되어가는 돌이”이지 않아요. “숲을 알아보는 순이”에 “들을 찾아보는 돌이”로 돌아가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이 되기에 ‘사랑’을 깨닫습니다.
숲빛으로 흐르는 노래이기에 ‘순이말’입니다. 들빛으로 넘실대는 노래이기에 ‘돌이말’입니다. 이 별은 숲만 있을 수 없고, 들만 너를 수 없습니다. 들숲메바다가 나란할 노릇이요, 숲들메바다가 하나일 노릇이에요. 숲 곁에 들이 있기에 푸른별입니다. 들 곁에 숲이 있어서 파란별입니다. 우리별은 푸르면서 파랗고, 파라면서 푸릅니다. 오늘 새롭게 여밀 글결이라면, 숲말과 들말을 다시 알아차리면서 차근차근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가꿀 길이기를 바라요.
ㅍㄹㄴ
모든 꽃은 / 피어날 땐 신을 닮고 / 지려 할 땐 인간을 닮는다 // 그 때문에 / 꽃이 필 땐 황홀하고 /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미스터리/15쪽)
밖에는 비가 내리고 /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 유일한 명분 (밖에는 비가 내리고/16쪽)
깊이깊이 후회해 / 너를 사랑했던 것 /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 너에게 내 시를 보여주었던 것 / 너랑 영화관에 갔던 것 (반성/40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별이 빛나는 밤/57쪽)
오로지 말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다면 누구든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다. (너에게만 말할게/70쪽)
그동안은 어디든 꼭꼭 숨어 있자. / 큰 놈들은 큰 놈들끼리 어울려 언제나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갈 곳 없는 작은 놈들을 잡아먹고, 또 잡아먹고…… (페루/84쪽)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시를 쓰고 싶다 / 아니다. 모두가 다 읽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죽어가던 것들도 생생히 되살아나는 시를 쓰고 싶다 (시인 앨범 7/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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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과거의 풀들을 베어내 무덤을 만드는 사람
→ 지나간 풀을 베어내 무덤을 쓰는 사람
→ 어제 자란 풀을 베어내 무덤을 파는 사람
12쪽
하루종일 공동묘지 활주로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루내내 한무덤 나래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룻내 두레무덤 날개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12쪽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끝도 없이 만지는 손
→ 끝도 없이 보듬는 손
→ 끝도 없이 비다듬고
→ 끝도 없이 쓰다듬고
16쪽
밤낮으로 태양 대신 낮은 스탠드 불빛 아래
→ 밤낮으로 햇빛 아닌 낮은 불빛에서
20쪽
함정 속의 함정, 연속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수 속의 실수
→ 덫에 덫, 잇달아 잘못에 잘못
→ 그물에 그물, 자꾸 말썽에 말썽
→ 올가미에 올가미, 또 걸리고 빠지고
31쪽
묘하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가장 대신 멋진 댄디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얄궂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기둥 아닌 멋쟁이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재밌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들보 아닌 겉멋이 들어 나를 모른 체했다
38쪽
나는 어제의 사람 어제의 여자 어제의 사랑 모든 내일의 그림들을 끌어모아 어제의 벽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젯사람 어젯가시내 어젯사랑 모든 이튿날 그림을 끌어모아 어젯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란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다음 그림을 끌어모아 어제란 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인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앞그림을 끌어모아 어제인 담에 붙이는 사람
46쪽
계속되는 사분의삼 박자의 그 리듬 속에서
→ 이어가는 셋얹은넷 쿵덕과 가락으로
→ 흘러가는 넷놓은셋 물결과 가락으로
47쪽
급기야는 통째로 그녀를 삼키려 들 때도
→ 더구나 통째로 그사람을 삼키려 들 때도
→ 게다가 통째로 그이를 삼키려 들 때도
52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 종로2길 알라딘 헌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주웠다
→ 종로2길 알라딘 손길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싸다
57쪽
그때의 그 촉감, 그 흡착력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느낌 그 붙힘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살결 그 찰싹힘을 잊을 수가 없다
72쪽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달아나고 달아나다 주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내빼고 내빼다 일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발빼고 발빼다 국자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84쪽
나의 적이 가진 책은 곧 나의 적이다
→ 미운놈이 쥔 책은 나한테도 밉다
→ 싫은놈이 보는 책은 나도 싫다
→ 저놈이 읽는 책은 꼴보기싫다
→ 저 녀석이 쥔 책은 보기싫다
10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