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문학동네 시인선 183
김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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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7.

노래책시렁 502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김상미

 문학동네

 2022.12.2.



  모든 순이는 숲을 품고서 태어났습니다. 모든 돌이는 들을 품고서 태어났고요. 숲에서 나무하고 나란히 피어나는 순이라면, 들에서 풀하고 어울리며 깨어나는 돌이라고 느낍니다. 먼먼 옛날부터 까마득히 오래도록 숲숲이에 들돌이였는데, 우두머리가 서고 나라를 일으키는 동안 싸울아비가 불거지더니, 어느새 숲을 잊는 순이에 들을 잃는 돌이로 뒹굽니다.


  숲에서 노래하며 놀이를 짓는 순이입니다. 들에서 일하며 들살림을 짓는 돌이입니다. 둘은 노래하고 일로 만나고, 놀이하고 살림으로 어울립니다. 노래 곁에 일이 있고, 놀이 곁에 살림이 있습니다. 왼발과 오른발로 나란히 걷듯, 왼손과 오른손으로 함께 짓고, 왼눈과 오른눈으로 함께 보듯, 왼귀와 오른귀로 같이 듣습니다.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는 얼핏설핏 굴레(남성가부장권력)에 시달린 티가 곳곳에 남지만, 요모조모 다시금 싹터서 숲을 이루려는 마음을 하나둘 일으키려는 얼거리로구나 싶습니다. 다만, 우리는 “숲이 되어가는 순이”나 “들이 되어가는 돌이”이지 않아요. “숲을 알아보는 순이”에 “들을 찾아보는 돌이”로 돌아가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이 되기에 ‘사랑’을 깨닫습니다.


  숲빛으로 흐르는 노래이기에 ‘순이말’입니다. 들빛으로 넘실대는 노래이기에 ‘돌이말’입니다. 이 별은 숲만 있을 수 없고, 들만 너를 수 없습니다. 들숲메바다가 나란할 노릇이요, 숲들메바다가 하나일 노릇이에요. 숲 곁에 들이 있기에 푸른별입니다. 들 곁에 숲이 있어서 파란별입니다. 우리별은 푸르면서 파랗고, 파라면서 푸릅니다. 오늘 새롭게 여밀 글결이라면, 숲말과 들말을 다시 알아차리면서 차근차근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가꿀 길이기를 바라요.


ㅍㄹㄴ


모든 꽃은 / 피어날 땐 신을 닮고 / 지려 할 땐 인간을 닮는다 // 그 때문에 / 꽃이 필 땐 황홀하고 /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미스터리/15쪽)


밖에는 비가 내리고 /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 유일한 명분 (밖에는 비가 내리고/16쪽)


깊이깊이 후회해 / 너를 사랑했던 것 /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 너에게 내 시를 보여주었던 것 / 너랑 영화관에 갔던 것 (반성/40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별이 빛나는 밤/57쪽)


오로지 말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다면 누구든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다. (너에게만 말할게/70쪽)


그동안은 어디든 꼭꼭 숨어 있자. / 큰 놈들은 큰 놈들끼리 어울려 언제나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갈 곳 없는 작은 놈들을 잡아먹고, 또 잡아먹고…… (페루/84쪽)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시를 쓰고 싶다 / 아니다. 모두가 다 읽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죽어가던 것들도 생생히 되살아나는 시를 쓰고 싶다 (시인 앨범 7/94쪽)


+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과거의 풀들을 베어내 무덤을 만드는 사람

→ 지나간 풀을 베어내 무덤을 쓰는 사람

→ 어제 자란 풀을 베어내 무덤을 파는 사람 

12쪽


하루종일 공동묘지 활주로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루내내 한무덤 나래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룻내 두레무덤 날개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12쪽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끝도 없이 만지는 손

→ 끝도 없이 보듬는 손

→ 끝도 없이 비다듬고

→ 끝도 없이 쓰다듬고

16쪽


밤낮으로 태양 대신 낮은 스탠드 불빛 아래

→ 밤낮으로 햇빛 아닌 낮은 불빛에서

20쪽


함정 속의 함정, 연속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수 속의 실수

→ 덫에 덫, 잇달아 잘못에 잘못

→ 그물에 그물, 자꾸 말썽에 말썽

→ 올가미에 올가미, 또 걸리고 빠지고

31쪽


묘하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가장 대신 멋진 댄디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얄궂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기둥 아닌 멋쟁이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재밌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들보 아닌 겉멋이 들어 나를 모른 체했다

38쪽


나는 어제의 사람 어제의 여자 어제의 사랑 모든 내일의 그림들을 끌어모아 어제의 벽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젯사람 어젯가시내 어젯사랑 모든 이튿날 그림을 끌어모아 어젯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란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다음 그림을 끌어모아 어제란 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인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앞그림을 끌어모아 어제인 담에 붙이는 사람

46쪽


계속되는 사분의삼 박자의 그 리듬 속에서

→ 이어가는 셋얹은넷 쿵덕과 가락으로

→ 흘러가는 넷놓은셋 물결과 가락으로

47쪽


급기야는 통째로 그녀를 삼키려 들 때도

→ 더구나 통째로 그사람을 삼키려 들 때도

→ 게다가 통째로 그이를 삼키려 들 때도

52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 종로2길 알라딘 헌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주웠다

→ 종로2길 알라딘 손길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싸다

57쪽


그때의 그 촉감, 그 흡착력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느낌 그 붙힘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살결 그 찰싹힘을 잊을 수가 없다

72쪽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달아나고 달아나다 주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내빼고 내빼다 일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발빼고 발빼다 국자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84쪽


나의 적이 가진 책은 곧 나의 적이다

→ 미운놈이 쥔 책은 나한테도 밉다

→ 싫은놈이 보는 책은 나도 싫다

→ 저놈이 읽는 책은 꼴보기싫다

→ 저 녀석이 쥔 책은 보기싫다

10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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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창비시선 440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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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2.

노래책시렁 477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창비

 2020.2.20.



  이 하루를 밝히는 즐거운 삶과 이야기를 어린이 곁에서 새봄빛으로 누리다 보니 새여름빛으로 접어듭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짓고 이야기를 빚습니다. 남이 짓거나 빚은 삶과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도 있되, 스스로 서는 하루가 있지 않다면 쳇바퀴이거나 굴레이게 마련입니다. ‘남이 보아주는 눈길’을 받아먹고 살 적에는 그만 ‘보여주는 남’이 없으면 헤매거나 지치거나 막혀요. 남이 잘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차려입거나 꾸미면 ‘나대로·나답게·나로서’를 잊는데, 이때에는 나뿐 아니라 너(이웃)도 ‘나(너)’를 잊으면서 ‘남(사회·정부)’한테 매달리기를 바라더군요. 우리가 스스로 ‘나’를 찾고 품고 짓고 돌보기에 우리 곁에 있는 ‘너’도 나란히 스스로 삶을 짓고 이야기를 빚는 길을 열고 폅니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를 읽는 내내 ‘남한테 잘 보이려는’ 몸짓과 ‘남이 잘 보아주기 바라는’ 눈짓을 느낍니다. 남이 조금이라도 ‘내 글(문학)’을 안 나쁘게 보아주기 바라면서 꾸미고 보태는 얼거리입니다. 그러나 남한테 선보이려고 쓰는 글(문학)이라면 알맹이도 씨눈도 없더군요. 언제나 속(참다운 나)을 들여다보면서 드러내려는 글(문학)일 적에는 창피하거나 부끄러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펴면서 빛나고요. 껍데기를 들씌우는 글만 넘치는 나라에서, 이제는 껍데기를 벗어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13쪽)


먼산 쪽으로 고개를 빼고 있으면 / 내 안에서 더 분명해지는 소리 / 오고 있다 누군가 누군가가 되어 /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 / 강을 건너오고 있다 휑한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가만히 맥박처럼 짚어보는 누군가/43쪽)


연금을 계산하고 노후를 설계하고 새로 나온 보험을 좇아다니다가 / 봄날이 다 지나갔다 / 아파트 한채를 장만하고 차 한대를 갖고 / 여행상품을 검색하는 동안 (행복에 대한 저항시/66쪽)


+


《붉은빛이 여전합니까》(손택수, 창비, 2020)


찬을 줄이니 평소의 음식 가짓수에 한둘만 더해도 그날 하루는 내가 나의 칙사다

→ 곁밥을 줄이니 여느 곁밥에 한둘만 더해도 그날 하루는 내가 나를 모신다

9쪽


석류나무와 한 삼년 동거를 한 적이 있습니다

→ 붉구슬나무와 한 세 해 함께산 적이 있습니다

10쪽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누구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 이웃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12쪽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 무슨 끈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보고 싶지만

→ 무슨 사이로 날 찾아왔나 살펴보고 싶지만

13쪽


먼 데를 잃고 더 쓸쓸해져버린 사람

→ 먼 데를 잃고서 더 쓸쓸한 사람

17쪽


걸음걸이 조신스럽게 물받이통을 비운다

→ 걸음걸이 살피며 물받이통을 비운다

→ 걸음걸이 삼가며 물받이통을 비운다

→ 걸음걸이 곱게 물받이통을 비운다

20쪽


한옥에서는 풍경도 빌려 쓰는 거라네요. 차경(借景)

→ 흙집에서는 빛도 빌려쓴다네요. 빈빛

→ 옛집에서는 터도 빌린다네요. 빌림터

24쪽


젓가락을 태연하게 받는 어안(漁眼)처럼

→ 젓가락을 그냥 받는 물고기눈처럼

→ 젓가락을 가만히 받는 헤엄눈처럼

→ 젓가락을 사뿐히 받는 둥근눈처럼

28쪽


싸락눈 받아먹는 계곡 속처럼 헛헛한 속도 얼마쯤은 환해진 것 같은데

→ 싸락눈 받아먹는 골짜기처럼 헛헛한 속도 얼마쯤은 환한 듯한데

34쪽


열등생인 내가 학급 대표가 된 날이었다

→ 덜떨어진 내가 모둠지기가 된 날이다

→ 못난 내가 모둠지기가 된 날이다

36쪽


오고 있다 누군가 누군가가 되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 강을 건너오고 있다

→ 온다 누가 누구가 되어 누구를 기다리는 누가 냇물을 건너온다

→ 온다 누가 아무개가 되어 누구를 기다리는 아무개가 내를 건너온다

→ 온다 누가 네가 되어 너를 기다리는 누가 물줄기를 건너온다

43쪽


수목한계선 부근까지 내려오다 멈칫

→ 나무금 언저리까지 오다 멈칫

→ 나무끝줄 옆까지 오다 멈칫

46쪽


그대가 찾는 백경이 나의 백지이기도 함을 수심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를 나의 종이도 품고 있음을

→ 그대가 찾는 흰고래가 흰종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허허바다를 종이도 품는 줄

→ 그대가 찾는 하얀고래가 하얀종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난바다를 종이도 품는데

48쪽


오늘도 신세한탄을 하는 여자

→ 오늘도 넋두리를 하는 순이

→ 오늘도 우는 그사람

56쪽


연금을 계산하고 노후를 설계하고 새로 나온 보험을 좇아다니다가

→ 꽃돈을 세고 뒷삶을 그리고 새로 나온 밑길을 좇아다니다가

66쪽


섬은 묵음이다 침묵이 있어야 섬이 된다

→ 섬은 고요하다 말이 없어야 섬이 된다

→ 섬은 조용하다 가만 있어야 섬이 된다

78쪽


풀이 사관이다 사초(史草)이니까 역사의 주인은 풀이라는 뜻이다

→ 풀이 붓님이다 해적이는 우리가 쓰니 임자는 풀이라는 뜻이다

→ 풀이 글님이다 발자국은 우리가 적으니 지기는 풀이라는 뜻이다

104쪽


나의 수더분한 선임이었던 정문의 수위 아저씨들은 야경주독하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 수더분한 언니이던 나들목 지기 아저씨들은 밤낮없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 수더분한 맏님이던 들머리 지킴이 아저씨들은 낮밤없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12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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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 상추쌈 시집 2
서와(김예슬) 지음 / 상추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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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18.

노래책시렁 501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

 서와

 상추쌈

 2020.11.25.



  멀리 바깥일을 보러 다녀올 적에는 밤을 새거나 이른새벽부터 움직입니다. 안개가 폭 덮은 첫여름 새벽에 씻고서 빨래를 합니다. 마당에 옷가지를 널려는데 발밑에 개구리가 있습니다. 간밤에 실컷 노래하고서 느긋이 쉬려는 때 같습니다. 바닥에 쪼그려앉아 한참 마주봅니다. 눈밝은 멧새라면 흙빛으로 몸빛을 바꾼 개구리를 알아챌 테고, 여름이라 다른 먹이가 많으니 굳이 개구리를 안 노릴 수 있습니다.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는 단출히 꾸린 하루노래입니다. 시골에서 밭흙냄새를 맡는 하루가 어떻게 스스로 북돋우면서 가꾸는가 하고 속삭입니다. 손끝에 닿는 흙과 풀과 비와 바람과 해를 고스란히 그립니다. 발끝에 닿는 나무와 돌과 물과 마당을 그대로 담습니다. 노래라고 한다면 온빛입니다. 더하거나 덜지 않으면서 속빛을 그릴 적에 노래입니다. 입히거나 씌우거나 꾸미려고 한다면, 노래가 아닌 노래시늉이게 마련입니다. 생강도 감자도 수박도 호박도 ‘가꾸는 시늉’이 아닌 ‘가꾸는 손’으로 자랍니다. 아이도 어른도 ‘아끼는 시늉’이 아닌 ‘아끼는 손길’이 닿으면서 즐겁습니다. 이제는 밤빛을 누리고서 느끼는 작은사람 작은노래가 작은누리에 작은씨앗으로 퍼지기를 바라요. 큰고장 큰노래는 참 덧없습니다.


ㅍㄹㄴ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 오늘 본 밤하늘을 //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오늘부터/13쪽)


예슬아, 개구리다! / 온몸이 흙투성이인 것 보니까 / 막 겨울잠 자고 일어났는갑다 (개구리는 다 안다/42쪽)


이른 아침부터 / 생강밭 좁은 고랑 사이 / 바짝 쪼그려 앉아 풀 매다 보면 / 어느새 생강 잎 사이로 / 저녁놀이 고개를 내민다 (풍경/74쪽)


+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서와, 상추쌈, 2020)


그때마다 “저한테는 농사가 공부예요.” 하고 말했어요

→ 그때마다 “저는 흙으로 배워요.” 하고 말했어요

→ 그때마다 “저는 흙한테서 배워요.” 하고 말했어요

→ 그때마다 “저는 흙을 배워요.” 하고 말했어요

→ 그때마다 “저는 흙짓기를 배워요.” 하고 말했어요

4쪽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 저에게는 농사였어요

→ 저는 흙을 지을 적에 살아갈 수 있어요

→ 저는 흙을 가꿀 적에 살아숨쉴 만해요

4쪽


농부가 되고 작은 생명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어요

→ 흙꾼이 되고서 작은숨결을 바라보는 눈이 생겨요

→ 흙지기가 되니 작은이웃을 바라보는 눈이 생겨요

5쪽


금요일만 기다리게 되더라

→ 쇠날만 기다리더라

15쪽


농부는 월요병 같은 거 없지?

→ 논밭꾼은 달날앓이 없지?

→ 논밭지기는 첫날앓이 없지?

15쪽


아쉬운 인사 나눈다

→ 아쉽게 손을 흔든다

→ 아쉽게 헤어진다

26쪽


부추전 부쳐 먹고

→ 부추부침 먹고

→ 부추지짐 먹고

6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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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문학동네 동시집 35
곽해룡 지음, 강태연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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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9.

노래책시렁 499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곽해룡 글

 강태연 그림

 문학동네

 2015.4.21.



  남다르거나 다르거나 놀랍거나 믿기지 않거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글감을 찾아야 하는 노래(동시·시)가 아닙니다. 남과 다르다 싶은 줄거리를 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다. 놀랍다고 여길 줄거리를 애써 뽑아내거나 캐내야 하지 않습니다. 아기나 아이를 구경하는 자리에서 먼발치로 쓸 적에는 뜬금없거나 삶하고 등지게 마련입니다. 모든 노래는 스스로 ‘살림하는 하루’를 그릴 노릇입니다. 모든 글은 손수 ‘살림짓는 오늘’을 담을 노릇입니다.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는 지난날 ‘동심천사주의’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말만들기’와 ‘주제주의’라는 글버릇을 보여줍니다. 그저 어린이 곁에서 함께 살림하는 길을 그리면 될 텐데요? 왜 자꾸 말만들기를 하면서 ‘좋은 소제·주제’에 얽매여야 하는가요? 언뜻 보면 ‘어린이 삶’을 짚는 듯하지만, ‘어린이 삶’이 아닌 ‘어린이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좋은 소제·주제’를 맴도는구나 싶습니다. 신 한 짝을 놓고서 귀염구경을 하는 글은, 이제 좀 끝낼 노릇입니다. 얼린고기이든 달걀이든, 손수 밥차림을 하면서 아이가 몸소 밥살림을 익혀 가는 얼거리를 들여다볼 노릇입니다. 쥐어짜려고 하지 말아요. 창피했던 일이건 슬펐던 일이건 기뻤던 일이건 웃던 일이건, 그저 그대로 차근차근 적으면 저절로 삶노래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 쪼끄만 신발 한 짝 / 유모차 타고 가던 / 아기 발에서 벗겨졌겠지 // 아기는 / 으앙, 울음 터뜨렸겠지 // ― 우리 아가 쉬했니? (신발 한 짝/16쪽)


입을 아, 벌린 채 꽁꽁 얼어 있다 / 바다에서 건져져 파닥이다가 / 산 채로 꽁꽁 얼어 버렸을 동태 / 바다 냄새도 얼어 버리고 /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엉엉 울었을 울음마저도 / 꽁꽁 얼어 버렸다 // 지금이라도 물에 놓아주면 동태는 / 비릿한 바다 냄새 물씬 풍기며 / 몸을 뒤척이고 / 배 위로 건져졌던 기억으로 돌아가 / 울다 만 울음 / 엉엉 울어 버릴 것만 같다 (동태/48쪽)


지금은 / 특특란, 특왕란, 왕왕란을 판다 // 할머니 어렸을 적엔 / 계란이 /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계란 가게/58쪽)


죽음을 앞둔 부자가 / 평생 모은 돈을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 기부했다고 합니다 // 개학이 다가오자 / 하느님께 낼 / 밀린 방학 숙제를 / 한꺼번에 했나 봅니다 (방학 숙제/62쪽)


매미채를 들고 살금살금 / 집을 나서려다 들켜서 // “공부 안 하고 어디 나가!” / 엄마가 내 오른쪽 귀를 잡아당겨서 (줄다리기/74쪽)


+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곽해룡, 문학동네, 2015)


달아나는 것이 귀찮아 코끼리는 몸뚱이를 키웠다

→ 달아나기가 귀찮은 코끼리는 몸뚱이를 키웠다

38쪽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코끼리는 종일 풀을 뜯어야 한다

→ 코끼리는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살리려면 내내 풀을 뜯어야 한다

→ 코끼리는 내도록 풀을 뜯어야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살린다

38쪽


낙타는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자식은 한 번도 업어 주지 않았다

→ 곱등말은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아이는 안 업어 주었다

→ 모래말은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아이는 못 업어 주었다

39쪽


배 위로 건져졌던 기억으로 돌아가 울다 만 울음 엉엉 울어 버릴 것만 같다

→ 배로 건져올린 옛일로 돌아가 울다 만 나를 엉엉 울어버릴 듯하다

→ 배에 낚인 지난일로 돌아가 울다 만 삶을 다시 울어버릴 듯싶다 

48쪽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 동무하고 마지막말을 나누니

→ 동무랑 헤어짐말을 나누니

55쪽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 저마다 바라는 바로 가는

→ 다들 바라는 길로 가는

55쪽


할머니 어렸을 적엔 계란이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 할머니 어릴적엔 달걀이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58쪽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했다고 합니다

→ 가난한 사람한테 써 달라고 내놓았다고 합니다

→ 가난한 사람한테 쓰라면서 바쳤다고 합니다

62쪽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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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 - 제7회 권태응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87
임수현 지음, 윤정미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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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

노래책시렁 498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

 임수현 글

 윤정미 그림

 문학동네

 2023.1.31.



  말과 글은 다를 수 없습니다. 말과 글이 다르면 거짓말이거나 눈속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생각할 노릇입니다. 왜 말과 글은 다를 수 없을까요? 글이란, 말을 담아낸 그림이니, 말을 그대로 담아요.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이니, 마음을 그대로 얹어요. 마음이 말을 거쳐서 글로 나타나니, 말과 글이 다르다면 “마음과 다르게 글만 꾸미거나 부풀리거나 감추거나 덧씌운다”는 뜻입니다. 이때에 더 살필 노릇인데, 우리는 말과 글을 다르게 하는 사람을 알아볼 눈빛인가요? 우리는 말과 글이 다른 사람을 못 알아차리는 눈길인가요?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를 읽었습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주거나, 어린이하고 나누거나, 어린이부터 읽을 글이라고 한다면, 예쁘게 꾸밀 글이 아니라, 어린이 누구나 저마다 마음에 심을 씨앗(글씨앗)일 노릇이라고 봅니다. 어떤 틀(동시작법)에 따라야 할 일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틀에 맞추어 자라지 않아요. 어린이는 틀에 따라서 커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곁에서 여러 어른이 ‘길동무’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거나 저렇게 해야 한다고 이끄는 ‘길잡이’가 아니라, 어린이가 이렇게 놀거나 저렇게 노래하거나 즐겁게 사랑일 수 있는 길을 나란히 짚으면서 천천히 함께 걸어갈 사람이어야 비로소 어른이라고 봅니다. 말이란 늘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든 어떤 말에든 담을 수 있습니다만, 손수짓기라는 살림꽃을 말과 글에 담아내기를 바라요.


ㅍㄹㄴ


넌 참 좋겠다 / 문제집 같은 건 안 풀어도 되니까 / 고양이는 아홉 번 다시 태어난다던데 / 오구야 / 지금 넌 몇 번째니? (지금 넌 몇 번째니?/18쪽)


할머니 눈이 동그래졌어 / 신이 난 나는 더 더 더 / 몸을 배배 꼬며 / 머리를 앞뒤로 왔다 갔다 / 춤을 추고 또 췄어 // 그러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칭칭 감았어 (단풍놀이/48쪽)


아이는 / 모래톱 위에 벗어 둔 / 신발 한 짝 누가 가져가 / 울고 있어요 // 이거 네 거니? / 파도는 조가비 슬리퍼를 내밀어요 (파도 신발 찾기/52쪽)


어디선가 들려오는 / 희고 작은 목소리 // 저기 눈먼 할머니가 / 장독 위 소복 쌓인 눈을 / 두 손 가득 담아 / 고봉밥으로 내놓았어요 (하얀 목소리/59쪽)


+


《오늘은 노란 웃음을 짜 주세요》(임수현, 문학동네, 2023)


툭― 전나무 가지 위에서 눈덩이 떨어지는 소리

→ 툭! 전나무 가지에 눈덩이 떨어지는 소리

58쪽


고봉밥으로 내놓았어요

→ 듬뿍밥으로 내놓아요

→ 담뿍밥으로 내놓아요

→ 수북밥으로 내놓아요

→ 푸짐밥으로 내놓아요

59쪽


순한 양을 만든 거야?

→ 몽실염소로 바꿨어?

→ 털염소로 거듭났어?

7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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