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4. 돼지



  ‘고기돼지’가 아닌, 우리에 갇힌 돼지가 아닌, 들이며 숲을 가로지르면서 아름다이 노래하는 돼지를 만나거나 사귀면서 함께 하루를 짓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렇게 믿던 사람이 무시무시한 칼이나 도끼를 들고서 저한테 다가와 마구 휘두르니, 돼지는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요. 누가 사람 목을 무서운 칼이나 도끼로 내리치려고 하면, 사람도 “사람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숨을 거둘 테지요. 우리는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아닌 “돼지가 풀숲에서 고르릉고르릉 기쁘게 노래하는 소리”를 나눌 수 있는 살림길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더 많이 먹으려고 더 모질게 좁고 어둡고 답답한 우리에 가두어서 착하고 상냥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고기돼지라는 길은 끝내기로 해요. 느긋하며 아늑할 뿐 아니라 착하고 참하면서 곱게 숲을 같이 누리는 따사로운 길을 나아가야지 싶어요. 사람을 사람답게 보려면 나무를 나무답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개미를 개미답게 마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돼지를 돼지답게 끌어안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돼지는 노래하고 싶습니다. 돼지는 멱을 따이고 싶지 않습니다. 돼지는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돼지는 좁은 잿바닥(시멘트바닥)에 갇힌 채 흙도 풀도 나무도 꽃도 없는 곳에서 찌꺼기로 배를 채울 생각이 없습니다. 돼지는 풀잎을 사랑해요. 돼지는 풀벌레하고 동무하면서 놀고 싶어요.



돼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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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53. 더듬다



  둘레를 보면 ‘더듬는’ 몸짓을 썩 반기지 않습니다. 공놀이를 하는데 자꾸 더듬는다든지, 길을 가는데 헤매면서 이리 더듬 저리 더듬한다든지, 말을 하다가 이내 더듬더듬하면, 제대로가 아니라고 여겨요. ‘제대로가 아니다’란 ‘삐뚤빼뚤(비정상)’인 셈입니다. 우리는 공을 던지거나 받을 적에 잘 받을 수 있으나 놓칠 수 있어요. 우리는 할 말을 잃고서 멍하니 있기도 합니다. 틀림없이 길찾기가 알려주는 대로 갔는데 엉뚱한 데가 나올 수 있어요. 빈틈이 없이 해내니 대단하겠지요. 그러나 빈틈이 있으면서 좀 허술하거나 엉성하거나 모자란 탓에, 더 다스리고 애쓰고 힘내고 일어서고 배우고 가다듬고 익히고 기운을 내기도 합니다. ‘빈틈없이’ 태어난 나머지 무엇을 새롭게 하려는 생각을 못 하기도 한다면, ‘빈틈있이’ 태어난 뒤로 무엇이든 처음부터 스스로 지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껴서 씩씩하게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맞서는 길을 가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적에 엄청난 말더듬이였습니다. 말더듬이 어린이는 놀림이나 따돌림이나 지청구를 숱하게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 말더듬질을 고쳐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제대로가 아닌 몸을 제대로’ 바꾸려고 했는데, 이제는 굳이 이러지 않습니다. ‘제대로’라는 잣대는 따로 없어요. 몇몇 사람 눈길로 따질 수 없고요. 무엇보다도 맨몸이 되어 풀밭에 납작 엎드려 풀벌레를 지켜보면, 또 벌나비를 바라보면, 모두 ‘더듬이’를 살살 흔들며 더듬더듬 바람물결을 살피고 빛물결을 실컷 누리더군요.



더듬다


혀가 짧아 더듬을 수 있어

더 천천히 말해 봐

느릿느릿 말해도 돼

글로 적어 읽자꾸나


어두우니 더듬더듬할 만해

바닥에 손을 짚어 봐

차근차근 헤아리면 나와

촛불 켜면 잘 보일 태지


아직 낯설기에 더듬겠지

나도 예전부터 더듬었어

말도 더듬고 길도 더듬지

뭐, 아직도 으레 더듬어


그런데, 너는 알아?

나비랑 벌레한테 더듬이 있어

나비도 벌레도 더듬이 흔들며

마음으로 얘기하고 별빛 들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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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52. 로자 파크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는지 모르지만, “모두 알아볼 수 없다”기보다는 “모두 알아보려는 마음이 없기에 알아보지 못 한다”고 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먼저 마음부터 활짝 열면서 생각해 봐요. 마음을 닫으니 옆에 누가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닫아걸기에 둘레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풀꽃나무와 새와 벌나비를 하나도 모릅니다. “너무 많”아서 못 알아본다고 느끼지 않아요. 마음이 없거나 마음을 닫은 탓에 안 알아볼 뿐이지 싶습니다. ‘로자 파크스’라는 미국사람이 있습니다. ‘버스 보이콧’으로 ‘민권운동’을 지폈다고 알려진 분인데, 막상 이분은 ‘어깨동무(민권운동)’을 1930년대부터 했습니다. 또한 1955년에 온마을 이웃하고 함께 ‘걷기(버스 보이콧)’를 하면서 담벼락(흑백차별) 가운데 하나를 허물고 나서도, 2005년에 숨을 거두는 날까지 꾸준히 어깨동무(민권운동)라는 길을 걸었어요. 어릴적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배운 살림을 고스란히 품었고, ‘얼뜬 흰살갗’만 있지 않고 ‘눈뜬 흰살갗’도 많은 줄 알아본 로자 파크스 님이라지요. 살갗이 희거나 검기 때문에 얼뜨지 않다고,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면서 살림길을 익히려 하지 않기에 ‘어느 살갗이든’ 눈뜨거나 얼뜨다고 밝히는 걸음걸이였어요. 어깨동무로 나아가자는 검은살갗도 숱하게 목숨을 잃고 고되었고, 이 길을 나란히 걸은 숱한 흰살갗도 따돌림과 가난을 견디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잃어도 어깨동무를 이었다고 합니다. 함께 걸으면서 함께 눈뜨는 살림빛입니다.



로자 파크스 Rosa Parks 1913∼2005


땅 한 뙈기에 심으면

나무도 풀도 남새도 자라

땅 한 자락서 거두면

너도 나도 우리도 먹어


아버지 곁에는 어머니

할머니 곁으로 할아버지

작은새 둘레로 큰새 큰숲

작은꽃 포근히 큰들 큰벌


아이가 힘들면 어른이 안아

이웃이 지치면 서로 거들어

어른도 고단하니 앉고 싶지

동무랑 나란히 걸으며 수다


손으로 가꾸고 빚고 지어

다리로 다니고 잇고 선다

눈으로 살피고 보고 알아

꿈으로 만나고 살고 그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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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51. 까맣다



  “까맣게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얗게 안다”고도 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얗게 모른다”를 비슷하게 씁니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처럼 쓰니, 이때에는 하나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까맣게 모른다고 할 적에는 온통 까만 빛깔이라 이 빛이나 저 빛을 가릴 수 없는 나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까맣게 모르다 = 이도 저도 가릴 수 없이 밤빛이 되면서 헤아리기 어렵다”는 소리요, “하얗게 모르다 = 몽땅 사라져서 아무것도 없는 나머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기에 “까맣게 모여든다”고 합니다. 참으로 많은 ‘까망’입니다. 밤하늘을 채우는 별인데, 별을 누리는 밤이란, 어둠이란, 고요하게 모두 그득그득 채우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빛깔을 나타내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어두운 어머니 품’에서 고요하면서 아늑하게 열 달을 살아낼 테고, 어머니 품을 떠날 적에 눈부신 빛(하양)을 찾아서, 아직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데이지만, 이 텅 빈 데를 저 나름대로 새로운 이야기(빛)를 하나씩 채워서, ‘가득 채운 하얀 누리’로 거듭나게 하려는 길을 나서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까만 눈알이란 버찌나 먹머루 같은 눈알입니다. 까만 글씨란 이제까지 새하얗던, 텅 빈 종이에 새롭게 이야기를 그려서 넣는, 우리 생각을 이루고 싶은 꿈을 밝히는, 흰곳을 밝히는 까만글이란, 둘이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놀이판이지 싶습니다. 흰종이에 까만글이듯, 까만밤에 흰별입니다.



까맣다


그만 까맣게 탄 빵

뒤꼍 구덩이에 놓으니

새까맣게 모여드는 파리

배불리 잔치한다


저토록 까맣게 높다란 봉우리

언제 다 오르나 하면서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

이제 내려놓아 봐


걱정이라면 까맣게 잊자

해보면 모두 해내니까

여태까지 새까맣게 몰랐어도

오늘부터 하얗게 배우지


까만 눈이 되어 기다리기도

새까맣게 질려서 고단하기도

그렇지만

까만 버찌 먹고서 기운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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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50. 나락서점



  인천에서 나고자라고서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지내던 2003년 여름 무렵까지는, ‘나락’이라고 하면 으레 한자말 ‘나락(那落)’부터 떠올렸습니다. 2003년 가을부터 시골에 깃들면서 일터와 삶터를 바꾼 뒤로는, 누가 ‘나락’이라고 하면 ‘씨나락’이며 ‘나락베기’부터 떠올립니다. 살아가는 터가 다르면, 살아가는 말이 바뀝니다. 살림하는 자리가 어디에 따라서, 살림을 그리는 말이 다릅니다. ‘나락’은 ‘낟알’을 가리킵니다. ‘낱’으로 있는 ‘씨알’이라서 ‘낟알’이요 ‘나락’입니다. ‘씨나락’은 올해에 거두어서 이듬해에 심을 ‘볍씨’로 삼는 알입니다. 또는 지난해에 거두어서 올해에 심을 볍씨인 낟알입니다. 부산에 마을책집 〈나락서점〉이 있습니다. 왜 ‘나락’이라는 이름일는지 아직 여쭈지 않았습니다만, 벼랑끝에서 아슬아슬하거나 힘겹거나 두려운 누구나 이곳에서 나긋나긋 마음을 달래면서 품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하고 곱씹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시골내기로 살아가는 터라 ‘나락’을 ‘낟알·씨나락’으로 느껴요. 올 한 해 푸짐하게 누리는 들빛인 낟알처럼, 이듬해에 새롭게 심어서 돌볼 낟알마냥, 우리는 누구나 씨앗 한 톨이니, 스스로 마음에 책이라는 낟알 한 톨을 심으면서 새롭게 피어나고 깨어나는 길을 찬찬히 나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헤아려 봅니다. 책집지기님은 다른 뜻과 숨결로 책집에 이름을 붙였을 테지요. 나중에 책집마실을 새롭게 하면 그때 여쭈기로 하고, 부산 문현동 마을책집을 그리고 기리는 글을 끄적끄적 적습니다.



나락서점 (부산)


벼랑끝에 서면 무서워

그러나

네가 날 벼랑끝으로 몰면

나는 늘 별밭을 바라본다


낭떠러지 옆은 두려워

그런데

내가 널 낭떠러지로 밀면

넌 으레 나긋이 웃더라


벼락치는 밤에 눈 번쩍 떠

쭈뼛쭈뼛 머리카락 설 때면

비바람에 그저 춤을 추는

가늘며 곧은 벼포기 떠올려


볍씨 한 톨은 한몸 내놓고는

숱한 낟알 푸지게 이루더라

씨나락이란 살리는 씨알같아

나무처럼 나로 서는 낱인걸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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