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 보수와 진보 공동의 정치 철학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2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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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14.

인문책시렁 346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1.1.



  나라에서는 미리맞기(백신)가 사람을 살린다고 외칩니다만, 미리맞기로 죽은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몸앓이로 죽거나, 치여죽거나, 싸움터에서 죽은 여러 사람은 몇인지 밝히면서도, 정작 미리맞기 탓에 죽는 사람이 얼마인지 밝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나라에서는 배움터(학교)로 가르친다고 합니다만, 막상 배우고 가르치는 터전이기보다는 끈(학벌)을 거머쥐는 길목으로 여긴 지 오래입니다. 살림길과 사랑을 나누고 어깨동무하는 발판인 배움터하고는 한참 멀지만, 이 얼거리를 바꾸거나 바로잡으려고 힘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이른바 들넋(민주주의)은 ‘이야기 + 손잡기(대화·타협)’라고 일컫지만, 정작 이야기를 차분히 하고서 손을 잡으려고 하는 무리는 드뭅니다. 다들 저희 말만 늘어놓거나 목소리를 높일 뿐입니다. 겨우 이야기를 마쳤어도 손을 잡고서 일하지 않아요. 싸우기만 합니다. 그런데 얼뜬 무리만 이야기 없고 손잡기 없는 결이 아니에요. ‘민주’라는 이름을 건 무리도 이야기가 없을 뿐 아니라 손을 안 잡는데다가, 헐뜯는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을 읽었습니다. 2024년 첫머리에 읽고서 2025년 첫머리를 앞둡니다. ‘민주(民 + 主)’라는 한자는 ‘종(노예) + 기둥’이라는 얼개입니다. ‘백성(民)’이란 “이름없는 사람”을 가리키고 ‘종’을 나타냅니다. “종이 기둥으로 서는 틀”이란, 이름없는 종이 임금이 시키는 대로 바닥에서 받치는 얼거리일 수 있습니다. 아직 이 얼거리에서 못 벗어나는 우리나라요 푸른별입니다. ‘종·백성·국민’이 ‘기둥’이라고 떠들기는 하되, 사람들(종·백성·국민)은 기둥으로만 세워 놓고서 모든 나랏일을 임금(권력자)·벼슬아치가 거머쥐고서 뒤흔드는 얼거리이거든요.


  2024년 12월 첫머리에 고삐(계엄)를 틀어쥐려던 우두머리가 있고, 이 우두머리는 곧 끌려내려올 텐데, 나라에 나라지기가 없더라도 나라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랏일은 나라지기가 안 하거든요. ‘기둥’으로 떠받치는 몫인 “우리 스스로인 종(백성)”이 일합니다. 더 돌아본다면 우두머리뿐 아니라 벼슬아치(국회의원·도지사)이 몽땅 없어도 나라는 안 흔들리고 안 멈추고 안 무너집니다. 기둥 자리에 있는 우리 스스로 일하고 움직이기에 멀쩡하지요.


  들불(민주)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종’인 “우리 스스로”입니다. 몇몇 길잡이가 너울(민주)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란 따로 없습니다. 모든 종(사람)이 꽃보람입니다.


  숲은 온갖 나무하고 풀과 어우러지기에 온갖 짐승과 새와 벌레에 사람까지 어우릅니다. 우리가 나아갈 곳은 바로 ‘숲’입니다. 위아래로 가르는 틀이 아닌, 몇몇 벼슬아치에 우두머리가 일삯을 엄청나게 받는 틀이 아닌, 고르게 일하고 고르게 나누는 터전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조금 더 땀흘린 이한테도, 몸이 고단해서 쉬는 이한테도, 두루 제몫을 누릴 빛줄기를 열어야 참다이 풀꽃나라(민주주의)입니다.


  이 나라에 돈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돈을 빼돌리는 막삽질이 판칠 뿐이고, 총칼(전쟁무기)에 너무 쏟아부을 뿐이고, 검은돈을 자꾸 꿍꿍이로 일으키는 임금·벼슬아치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이 모든 굴레를 털고서 아름나라로 바로세우는 길에 뜻을 모아서 한지붕을 이루어야지 싶습니다. 함께살기(민주)를 헤아리고, 꽃누리(민주)를 돌아보고, 참길(민주)을 바라볼 적에, 상냥하고 올바르게 고루눈을 뜨면서 두루넋을 펼치는 숲하나(민주)로 설 만하다고 봅니다.


ㅅㄴㄹ


상공업 규모가 커지자 그들이 내는 세금도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발언권은 신분제에 토대를 둔 세력(왕족, 귀조그 성직자 계급)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상공인들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91쪽)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주체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들이 있었는데 386이란 말은 대학 학번 중심입니다. 1970년대는 물론 80년대 초까지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시점에 주목하면 더 적절하지 않습니다. (156쪽)


유진오의 증언처럼 공산주의자들이 쓴다고 해서 그 “좋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그 말을 빼앗기게 됩니다. 단순히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담긴 민주주의 철학마저 잃어버리고 말지요. (169쪽)


첫째, 자신의 언어에 대한 성찰입니다. 현대인이 사용하는 언어 대부분이 최소한의 의미만 남거나 그조차 상실한 언어로 소통되고 있다는 진단이 언어 철학, 언론학, 정치 철학에서 두루 제기되고 있습니다. (214쪽)


+


해괴한 사건이 종종 벌어집니다

→ 끔찍한 일이 가끔 벌어집니다

→ 무서운 일이 곧잘 벌어집니다

4쪽


누군가를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할 때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 누구를 모르면서도 안다고 여길 때 매운맛을 볼 수 있습니다

→ 누구를 모르면서도 안다고 여길 때 쓴맛을 볼 수 있습니다

13쪽


만약 누군가가 1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 누가 첫대목을 따르지 않는다면

→ 누가 첫자락에 고개를 안 끄덕인다면

→ 누가 첫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19쪽


각 조직에서 최고 의사 결정권은 아래로부터 올라오지 않습니다

→ 모둠마다 마지막에 다스리는 사람은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 모임마다 끝에서 쥐는 쪽은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 두레마다 갈피를 잡을 적에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 자리마다 판가름을 할 적에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22쪽


그런데 MZ세대에 대한 논의도 좌절 이야기가 지배적입니다

→ 그런데 젊은이를 놓고도 미끄덩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 그런데 젊은꽃을 두고도 넘어진 이야기가 넘칩니다

→ 그런데 젊은때를 다루며 쓴맛 이야기뿐입니다

29쪽


현대 한국에서도 ‘집성촌(集姓村)’을 찾아볼 수 있지요

→ 오늘날에도 한마을을 찾아볼 수 있지요

→ 요즈음에도 씨집마을을 찾아볼 수 있지요

38쪽


장송곡을 부르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 눈물노래를 부르는 때를 제대로 알려면

→ 가심노래를 부르는 자리를 잘 보려면

53쪽


상공업 규모가 커지자 그들이 내는 세금도 늘어났습니다

→ 크게 짓고팔기를 하자 낛도 늘어납니다

→ 널리 팔고짓기를 하자 나랏돈도 늘어납니다

91쪽


혁명의 유혈 사태가 있었지요

→ 너울치며 다치기도 했지요

→ 들물결에 죽기도 했지요

94쪽


다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하자는 말입니다

→ 다만 있는 그대로 보자는 말입니다

→ 다만 바로보자는 말입니다

144쪽


그 “좋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그 말을 빼앗기게 됩니다. 단순히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담긴 민주주의 철학마저 잃어버리고 말지요

→ 이 “고운 말”을 쓰지 않는다면 이 말을 빼앗깁니다. 그저 빼앗기지 않고 말에 담긴 들넋까지 잃어버리고 말지요

→ 이 “알뜰한 말”을 쓰지 않는다면 이 말을 빼앗겨요. 그냥 빼앗기지 않고 말에 담긴 사람빛까지 잃어버리고 말지요

169쪽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국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 크게 봐주어 그래도 들꽃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 오지랖으로 그래도 들풀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172쪽


1990년대 들어 뚜렷하게 퇴조했습니다

→ 1990해무렵 들어 뚜렷하게 무너집니다

→ 1990해무렵 들어 뚜렷하게 물러갑니다

17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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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주다 - 딸을 키우며 세상이 외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우에마 요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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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12.

인문책시렁 336


《바다를 주다》

 우에마 요코

 이정민 옮김

 리드비

 2022.12.26.



  우리나라는 작으면서도 안 작습니다. 꽤 작기 때문에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들숲메가 제법 깊고 넓은 터라, 여러 고장을 오가는 길이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작으면서 작지 않은 터전이라서, 이 고장에서 불거지는 잘잘못이 쉽게 저 고장으로 번져요. 이른바 더럼치(위해시설)을 어느 끝고장에 몰래 때려박는다고 하더라도, 온갖 저지레가 둘레로 번져서 온나라를 휩씁니다.


  사람이 무척 많이 몰린 고장으로 서울·부산이 있고, 대구·광주·대전이 있는데, 이렇게 큰고장에 사는 분치고 ‘군대 피해’가 무엇인지 뼛속으로는 거의 모릅니다. 모를 수밖에 없어요. 큰고장 한복판이나 기스락에 커다란 싸움터(군부대)가 있지 않거든요. 마실을 다니려고 타는 날개하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 쓰는 날개가 하늘을 누빌 적에 내는 소리는 아주 다릅니다.


  인천은 서울 곁에 있는 큰고장인데, 서울에 안 놓는 갖은 더럼치(위해시설)를 인천에 몰아부었어요. 서울을 버티고 먹여살리는 밑바닥인 인천입니다. 이런 대목도 서울사람은 하나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큰고장 사람들은 온나라 시골과 들숲바다가 큰고장을 떠받치는 밑바닥인 줄 아예 못 느끼기 일쑤입니다.


  《바다를 주다》는 류우큐우(오키나와)하고 도쿄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어울리고 만나서 마을을 이루는가 하는 대목을 짚는 줄거리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무너지고, 마음을 잃은 사람은 어떻게 앓는지 가만히 짚기도 합니다.


  작지만 작지 않은 이 나라에서 서로서로 자주 오갈 수 있기를 바라요. 다만, 재빠르게 달리는 쇳덩이를 몰기보다는 걷거나 두바퀴를 느슨히 달리거나 버스를 타고서 빙그르르 돌면서 오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만나야 합니다. 자주 만나서 얼굴을 보면서 저마다 사투리를 그대로 들려주고 듣는 자리를 열어야 합니다. 전라사람하고 경상사람도 자주 만날 일일 뿐 아니라, 서울사람하고 시골사람도 자주 만날 노릇이에요. 서로 찾아갈 일입니다. 새하늬마높이 오순도순 도란도란 마주할 일입니다.


  이를테면 서울시에서 일한 사람이 전남 고흥군으로 옮겨서 일해 보아야 합니다. 부산시에서 일한 사람이 충북 보은군으로 옮겨서 일해 보아야 합니다. 전북 고창군에서 일한 사람이 대구시로 옮겨서 일해 보아야 합니다. 껑충껑충 뛰어서 휙휙 넘나들며 여러 해씩 일하며 깃들 때에 이 나라가 비로소 바뀔 만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국회의원 같은 자리는 이다음에 반드시 다른 시·도·군에서 나와야 하도록, 같은 고장에서는 다시 나올 수 없도록 돌려야 합니다. 한 곳에 뿌리를 오래 내리는 벼슬아치 가운데 안 썩은 놈이 있는지 볼 노릇이에요.


  바다는 늘 흐릅니다. 바다는 고이면 썩어문드러집니다. 바다는 언제나 새롭게 흐르면서 온누리를 고루 감쌉니다. 우리도 저마다 사람으로서 이웃을 만나고 동무로 사귀는 나날을 누릴 일이라고 봅니다. 자주 만나서 자주 얘기해 봐요. 이제는 ‘서울나라(서울에 쏠린 바보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우리가 서로 다른 줄 알아보면서 어울리는 나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ㅅㄴㄹ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할아버지와 떨어지는 것은 쓸쓸했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기뻤다. 야호, 나는 이제 벽장에 숨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할머니가 버럭 화내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40쪽)


지형이 바뀔 만큼 폭탄이 쏟아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 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아이와 자신은 늘 함께 있을 거라고 말한 뒤 죽은 엄마가 있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굶주림과 공포로 인해 생리가 멎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할머니는 그 모든 것을 경험한 뒤 다시 한번 그곳에서 땅을 일구어 살아왔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66쪽)


“아무리 아이와의 시간을 쌓아 올려도, 잘 알지도 못하는 윗사람이 저와 아이의 시간에 끼어들어요.” (150쪽)


남편이 딸을 성폭행해 왔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딸이 왜 정신과에 가는지 알지 못한다. (193쪽)


도쿄에서 살았을 때 놀란 것 중 하나는 군 비행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37쪽)



#上間陽子 #海をあげる


+


《바다를 주다》(우에마 요코/이정민 옮김, 리드비, 2022)


오키나와의 향토 음식 중

→ 오키나와 고을밥에서

→ 오키나와 오래밥에서

9쪽


일주일에 한 번은 밀폐 용기에 음식을 담아 오는

→ 이레마다 빗장그릇에 밥을 담아 오는

→ 이레마다 잠금그릇에 밥을 담아 오는

9쪽


세 사람의 관계라는 게 있잖아

→ 세 사람 사이가 있잖아

→ 세 사람 고리가 있잖아

14쪽


사람의 선의를 우려내는 건 무슨 억하심정에서 그러는 건지

→ 고마운 사람을 우려내는데 뭐가 미워서 그러는지

→ 따스한 사람을 우려내는데 뭐가 달갑잖아 그러는지

15쪽


그녀는 내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그이한테 묻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 그이는 내가 물어도 말이 없다

16쪽


손쓸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 손쓸 길이 없단다

→ 손을 못 쓴단다

41쪽


시한부 선고가 떨어지면

→ 끝장이 떨어지면

→ 마감이 떨어지면

42쪽


캄캄한 가운데 할아버지가

→ 캄캄한데 할아버지가

42쪽


오션 뷰네 하고 생각했다

→ 바다트임이라고 생각했다

→ 바닷빛이라고 생각했다

44쪽


벌써 합류했을 거야

→ 벌써 붙었겠지

→ 벌써 왔겠지

→ 벌써 들어왔겠지

46쪽


등원한 아기는 무조건 그 선생님에게 마사지를 받는다

→ 아침길 아기는 바로 이분이 주물러 준다

→ 아침에 온 아기는 늘 이분이 다독여 준다 

52쪽


혈액검사에 협조한 사람들

→ 피살핌을 해준 사람들

→ 피보기를 도운 사람들

53쪽


100데시벨의 폭음을 내며 빈번하게 날아들고 있다

→ 100시끌을 내며 자주 날아든다

→ 100소리로 시끄럽게 또 날아든다

55쪽


근처에 사는 구십 대 할머니를 소개해 주었다

→ 가까이 사는 아흔줄 할머니를 알려주었다

→ 둘레에 사는 아흔 남짓 할머니를 말하였다

57쪽


장녀인 나한테

→ 맏딸인 나한테

→ 맏이인 나한테

60쪽


푸른 바다를 보고 친구는 환성을 질렀다

→ 파란바다를 보고 동무는 소리를 질렀다

→ 파란바다를 본 동무는 외쳤다

→ 파란바다를 본 동무는 기뻐했다

61쪽


지형이 바뀔 만큼 폭탄이 쏟아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 땅이 바뀔 만큼 벼락이 쏟아지는 싸움인 줄을

→ 땅이 바뀔 만큼 불지르는 싸움인 줄을

66쪽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 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 아이들이 하나둘 죽어 가는 싸움인 줄을

→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죽어 가는 불바다인 줄을

66쪽


어떤 호스트한테 투자했는데

→ 어떤 꽃한테 돈을 쏟았는데

→ 어떤 지기한테 돈을 썼는데

94쪽


세뱃돈도 제가 줬어요

→ 절값도 제가 줬어요

→ 절돈도 제가 줬어요

98쪽


구급차에 실려 가서 입원했어요. 의식불명이었죠

→ 살림이에 실려 가서 들어갔어요. 넋을 잃었죠

99쪽


가끔 구토를 한다

→ 가끔 게운다

→ 가끔 멀미를 한다

115쪽


공휴일이었는데 그날 출근을 하게 된 친구와

→ 쉬는날인데 그날 나간 동무와

→ 쉬어야 하는 날 나온 동무와

120쪽


두 개의 볼에

→ 오목이 둘에

→ 우묵이 둘에

120쪽


아무런 답신도 오지 않았다

→ 아무런 대꾸도 없다

→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 아무런 말도 없다

123쪽


모임을 발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모임을 하는 줄 알았다

→ 모임을 차린 줄 알았다

→ 모임을 연 줄 알았다

127쪽


한기가 오싹오싹 스며든다니까

→ 오싹오싹하다니까

→ 찬바람이 스며든다니까

→ 겨울바람이 스며든다니까

128쪽


동트기 전의 청사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 동트기 앞서 나라터는 쥐죽은 듯했다

→ 동트기 앞서 나라일터는 조용했다

131쪽


악의가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 덫이 들썩거리는데도

→ 뒷셈이 넘실거리는데도

→ 나쁜뜻이 나풀거리는데도

→ 꿍꿍이가 나부끼는데도

131쪽


봉투 위에 돈을 올려놓고

→ 자루에 돈을 올려놓고

→ 꾸러미레 돈을 올려놓고

134쪽


월요일은 내가 아이들을 하원시키는 날이다

→ 달날은 내가 아이를 데려온다

→ 달날에는 내가 아이를 데려온다

143족


여러 차례 대화를 하고 가두서명을 벌여

→ 여러 자리서 얘기하고 길이름을 받아

→ 꾸준히 이야기하고 너울이름을 받아

→ 잇달아 만나고 물결이름을 받아

146쪽


나도 중재에 나서곤 했다

→ 나도 거들곤 했다

→ 나도 다독이곤 했다

147쪽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 둥그렇게 그리며

→ 동그라미를 그리며

151쪽


이번에는 여러분이 상급반이 됩니다

→ 이제 여러분이 윗칸입니다

→ 이제 여러분이 올라갑니다

→ 이제 여러분이 언니입니다

152쪽


플라워 데모가 열리는 곳 근처에서

→ 꽃너울이 열리는 곳 둘레에서

→ 꽃물결을 여는 곳 가까이에서

171쪽


유흥업계에서 일하는

→ 노닥술집에서 일하는

→ 질펀가게에서 일하는

179쪽


그 업소에서 고정으로 일하게 되었다

→ 그 가게에서 늘 일한다

→ 그곳에서 붙박이로 일한다

180쪽


옛날로 돌아가서 그 트리거를 정리했다

→ 옛날로 돌아가서 불씨를 치운다

→ 옛날로 돌아가서 밑싹을 자른다

185쪽


한 번 통원했을 뿐인데

→ 하루 다녔을 뿐인데

→ 한 걸음 했을 뿐인데

187쪽


1인실에서 다인실로 이동했다

→ 혼칸에서 모둠칸으로 갔다

→ 홑칸에서 두레칸으로 옮겼다

→ 홀칸에서 여럿칸으로 갔다

189쪽


팔십 대에 전신마취를 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 여든 줄에 온재움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 여든에 온몸재움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203쪽


장수 집안이라 그건 모르는 거야

→ 오래 집안이라 몰라

→ 오래사는 집안이라 몰라

204쪽


자는 동안 오줌을 지리는 야뇨가 반복되고 있어

→ 자다가 오줌을 자꾸 지려

→ 밤오줌이 자꾸 나와

223쪽


농로를 발견해 도중에 차를 세우고

→ 논두렁을 보자 부릉이를 세우고

→ 들길을 보자 수레를 세우고

226쪽


운을 떼자, 이렇게 주문했다

→ 말을 떼자 이렇게 시킨다

232쪽


기지 근처 폭음의 마을에 살고 있다

→ 싸움터 옆 시끄런 마을에 산다

→ 싸움마당 옆 꽝꽝 마을에 산다

24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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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만나는 일본 문화 이야기
최수진 지음 / 세나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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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1.24.

인문책시렁 380


《키워드로 만나는 일본 문화 이야기》

 최수진

 세나북스

 2022.2.16.



  일본이라는 이웃나라를 알아보노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새삼스레 되새길 만합니다. 서울이 어떤 고장인지 알아보고 싶다면, 서울을 벗어나서 부산이며 인천이며 여러 큰고장을 알아보는 길부터 걸을 만하고, 작은고장과 시골이 어떤 삶자리인지 알아보는 길을 걸을 만하지요.


  《키워드로 만나는 일본 문화 이야기》는 작은터(1인출판사)를 꾸리는 글님이 써냅니다. 일본에서 배움길을 걷던 나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본 살림살이를 차곡차곡 여밉니다. ‘좋고 나쁨’이 아닌 그저 ‘이웃살림’이라는 얼거리로 바라보려는 이야기입니다.


  이웃을 알려고 눈을 틔우고 귀를 열 적에는 오순도순 사귑니다. 서로 마음으로 마주할 적에 서로 북돋우면서 이바지합니다. 이웃을 안 알고 싶기에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며, 이때에는 쌈박질로 치닫습니다.


  한겨레이지만 두나라로 갈린 우리 오늘날을 돌아봐요. 남녘사람은 북녘사람을 만날 길이 없고, 북녘사람도 남녘사람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남녘이야기가 북녘으로 흘러들지 못하게 막는 북녘이고, 북녘이야기를 남녘에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죽죽 긋고 닫고 담벼락을 높다랗게 세운다면, 두나라가 예전에 한겨레였다고 하더라도 갈수록 남남으로 갈릴 뿐 아니라, 더 크게 쌈박질을 해댈밖에 없습니다.


  이 땅을 총칼로 쳐들어와서 짓밟은 지난날이 있는 일본인데, 총칼을 앞세운 우두머리가 아닌 ‘살림을 가꾸고 일구고 짓는 수수한 사람’이라는 이웃을 마주해 보면 사뭇 다릅니다. 이 나라 우두머리도 매한가지예요. 삽질을 일삼는 우두머리에 벼슬아치이지만, 여러 고장과 고을과 마을을 이루는 수수한 사람은 사이좋게 어울릴 만합니다.


  《키워드로 만나는 일본 문화 이야기》는 조촐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큰이야기조 작은이야기도 아닌 ‘살림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우리나라하고 얽힌 발자취(역사)를 헤아리는 자리도 바로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밥을 먹고, 어떤 논밭을 가꾸고, 어떤 풀꽃나무를 품고, 어떤 해바람비를 마주하고, 어떻게 아이를 돌보고, 어떤 책을 곁에 두고, 어떻게 이 삶을 글로 옮기고, 마음을 담는 말은 어떤 결이고, 꿈과 사랑을 저마다 어떻게 일구어 가는가 같은 살림길을 들여다보아야 스스로 빛난다고 봅니다.


ㅅㄴㄹ


일본에서는 이미 17세기 초인 에도시대(1603∼1867)부터 ‘기술직을 존중하는 의식’이 정착되었습니다 … 그 때문에 칼을 들고 백성들을 수탈하고 서민들을 괴롭히던 지배층인 사무라이보다는 땀흘려 일하는 부지런한 장인과 장인의 물건을 서민들에게 제대로 공급시켜 주는 시니세(老鋪)의 상인들을 존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7쪽)


솔직히 일본어로 리듬감이 있다 해도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그 리듬감은 온전히 다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60쪽)


가끔 일본 여행을 왜 가고 싶을까 생각해 보는데 아무래도 일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88쪽)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허영심도 충족시켜 주고 서가를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눈에 들어오는 책, 물건, 그곳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조용히 볼 수 있습니다. (116쪽)


+


《키워드로 만나는 일본 문화 이야기》(최수진, 세나북스, 2022)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시입니다

→ 어마어마한 고장입니다

→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 어마어마하게 큰 고을입니다

14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식도락입니다

→ 마실하며 빼놓을 수 없으니 바로 맛밥입니다

→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난길입니다

14쪽


한 유명인은 해외여행을 하면 백화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 어느 이름님은 이웃마실을 하면 고루가게에서 한참 보낸다고 합니다

→ 어느 이름꽃은 바깥마실을 하면 두루가게에서 오래 보낸다고 합니다

16쪽


두 책은 번역서인데

→ 둘은 이웃책인데

→ 둘은 옮김판인데

23쪽


서민들에게 제대로 공급시켜 주는 시니세(老鋪)의 상인들을 존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사람들한테 제대로 대주는 오래가게 지기를 섬겼다고 합니다

→ 사람들한테 제대로 드리는 물림가게 일꾼을 높이 샀다고 합니다

47쪽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아가게 됨과 동시에

→ 밥가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 밥집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68쪽


자비를 들여 2박을 합니다

→ 제돈으로 이틀 묵습니다

→ 제벌이로 이틀 지냅니다

74쪽


이 그리움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 왜 이렇게 그리울까요

→ 왜 이다지 그리웁나요

→ 왜 이처럼 그리운가요

78쪽


40여 개에 달하는 중고서점들이 있는데

→ 마흔 곳 남짓 헌책집이 있는데

→ 마흔 즈음 오래책집이 있는데

→ 마흔 가까이 손길책집이 있는데

81쪽


단순히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아닐 것 같고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 그저 돈을 벌려고 곁일을 하지는 않을 테고 집살림에 이바지하려는 뜻 같습니다

→ 그냥 돈을 벌려고 틈일을 하지는 않을 테고 보금살림을 도우려는 뜻 같습니다

85쪽


또 반전이 일어납니다

→ 또 뒤집힙니다

→ 또 뒤엎습니다

106쪽


채식주의자라 외식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외식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 풀밥님이라 사먹기 어렵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사먹으면 비싸기 때문입니다

→ 풀사랑이라 바깥밥이 어렵기도 하지만 또한 바깥밥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 풀밥을 먹으니 나들밥이 어렵기도 하지만 나들밥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137쪽


이미 그 기구한 운명은 정해져 있습니다

→ 이미 고단한 삶은 자리잡았습니다

→ 이미 눈물겨운 길은 앞에 있습니다

142쪽


수족구는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 물집앓이 아닙니다. 걱정놓아요

→ 거품앓이 아닙니다. 근심풀어요

15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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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시설사회를 멈추다
홍은전 외 지음, 정택용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외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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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1.11.

인문책시렁 371


《집으로 가는 길》

 홍은전 외

 오월의봄

 2022.4.20.



  2011년에 전남 고흥에 깃들었습니다. 그무렵에는 시골버스를 탈 적에 자리를 앉기 어려웠습니다. 시골버스에는 할매할배가 늘 붐볐는데, 갓난쟁이를 안고서 작은아이 손을 잡은 채 덜컹덜컹 다녔어요. 길쭉한 손잡이를 한 팔로 감싸면서 아기를 안았지요. 걷기도 서기도 버거운 할매할배는 갓난아기를 안은 몸에 커다란 등짐을 멜 뿐 아니라 한 손으로는 네 살 아이를 잡고서 흔들흔들 시골버스를 타는 사람한테 자리를 못 내줍니다. 그분들부터 다릿심이 없는걸요.


  그런데 2014년을 지날 즈음부터 시골버스에 자리가 생기고, 2024년에는 그냥 누워서 다닐 만큼 빈자리가 넘칩니다. 그동안 흙으로 돌아간 어르신이 많기도 합니다만, 시골버스는 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반반한 길만 있는 서울이나 큰고장에는 낮은버스가 잔뜩 있으나, 지팡이를 쓸 수도 없어서 작은수레를 겨우 밀면서 거니는 할매가 탈 만한 낮은버스는 아예 없는 시골입니다.


  시골자락 할매할배는 ‘장애인’이 아닙니다만, 걸음빛(보행권·이동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없어요. 시골에서 쇳덩이(자동차)를 안 모는 사람한테도 걸음빛이란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시골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어떠한 걸음빛조차 누리지 못 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읽었습니다. 태어난 몸은 있으나, 태어난 몸을 느긋이 누이거나 쉬면서 살림을 짓고 삶을 누릴 터전인 집이 없다시피 하거나 빼앗긴 채 오래도록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아픈 이웃하고 작은길을 거닐려고 하는 분들 나날을 갈무리한 줄거리입니다. 여러모로 뜻깊습니다. ‘장애인복지재단’이나 ‘장애인인권단체·시설’을 둘 일이 아닌 ‘장애인’한테 곧바로 살림돈(지원금)을 주어야 할 일입니다. 별빛사람이 스스로 이녁 뜻을 나타내기 어렵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누리고 다루는 길을 열고 북돋아야지요.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짚고 싶습니다. ‘복지·권리·인권’을 외치는 분들이 제발 서울이나 큰고장에만 머물지 말고, 시골로 좀 오시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사람값’을 못 누리기 일쑤인데 그야말로 안 쳐다보더군요. 이른바 오늘날 가장 따돌림받는 작은이(소수자)라면 ‘시골사람’이요, 이 가운데 ‘시골아이’가 어마어마하게 따돌림을 받는데, 이 대목을 들여다보거나 목소리를 내는 분이 몇이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ㅅㄴㄹ


(그 법인은) 1년에 받는 정부 보조금이 100억이 넘었어요. (33쪽)


시설 비리의 가장 흔한 수법은 시설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건설사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는 거예요. 난방유와 주·부식 재료를 대는 업체와 짜고 돈을 빼돌리고 자기네 집안에 필요한 물품을 여기에 얹어서 사요. (61쪽)


뉴질랜드 정부는 국립 시설에서 살았던 장애인의 삶을 조사한 뒤 〈시설은 학대의 공간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고요. 자신들이 한 일을 반성한 후 책임지고 장애인을 지역사회로 돌려보낸 거죠. (99쪽)


생활재활교사로 일하다가 2008년 말쯤 회계 업무를 하면서 법인의 비리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어요. 원장이 모든 장애인의 통장과 도장을 갖고 있더라고요. (108쪽)


좋은 시설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장애인의 삶을 가로막는 말이 될 수 있다. (177쪽)


자립한 후에 절대 안 먹는 반찬이 몇 개 있어요. 마늘종무침, 깻잎지, 단무지, 짠지는 안 먹어요. (245쪽)


시설은 창살 없는 감옥이거든요. 시설에서의 하루는 먹고, 목욕하고, 싸고 끝이에요. 하루 종일 누워서 천장 보고 벽 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248쪽)


+


《집으로 가는 길》(홍은전 외, 오월의봄, 2022)



절대악을 내쳤으면 됐지, 어차피 그 집안의 사업이고

→ 몹쓸놈을 내쳤으면 됐지, 뭐 그 집안 일감이고

→ 망나니를 내쳤으면 됐지, 뭐 그 집안 일이고

69쪽


후속 조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돌아가야 했어요

→ 저는 다음일 때문에라도 돌아가야 했어요

→ 저는 뒷일을 하려고 돌아가야 했어요

74쪽


처음에는 사생결단하는 마음으로 했어요

→ 처음에는 악착같이 했어요

→ 처음에는 목숨걸고 했어요

→ 처음에는 젖먹던 힘으로 했어요

22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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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으로의 휴가 - F/25
김현경 지음, 노보듀스 그림 / 자화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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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0.15.

인문책시렁 376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

 김현경 글

 노보듀스 그림

 자화상

 2019.2.20.



  나라는 늘 미쳐돌아갑니다. 설마 이를 몰랐다면, 모르는 사람이 바보라고 할 만합니다. 예부터 모든 ‘나라’는 하나도 안 아름다웠습니다. 나라를 세우려고 할 적에는 언제나 사람들을 짓밟고 주무르면서 싸울아비로 부려서 괴롭힙니다. 그래야 “나라가 서”거든요. 이른바 ‘나라지기’를 맡는 이는 ‘사랑’이 없이 ‘힘’으로 찍어서 누르고 죽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따릅니다. 오늘날은 ‘민주’라는 이름을 쓰지만, 민주를 내세우는 나라에서도 ‘나라지기’는 썩 다를 바 없습니다. 뒤에서 속이고 꿍꿍이를 일삼으면서 사람들이 눈멀고 귀멀어 고분고분 따르는 틀을 세웁니다. 그래서 공문서나 법이 어려운 말로 가득하고, 학교는 계급장 노릇을 하고, 돈으로 옭아매다가, 군대로 서슬퍼렇게 휘감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왼오른으로 갈려서 다투도록 부추겨서, 막상 “나라 민낯을 못 보도록 길들”이게 마련입니다.


  말끝 하나가 다를 뿐인데, 우리는 ‘나라’ 아닌 ‘나’를 보아야 합니다. 한자말로 치지만 ‘국가(國家)’가 아닌 ‘집(家·가)’를 보아야 하지요. 저마다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찾고 생각할 적에 눈을 뜨고 마음을 틔워서 사랑으로 깨어납니다. 저마다 스스로 보금자리(집)를 가꾸고 돌보면서 하루를 지을 적에 “나랑 네가 어울려서 우리가 집을 짓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나랑 너’는 두 어버이를 이루는 어른 두 사람(엄마·아빠)이기도 하고, 아이어른이기도 합니다. 나랑 너를 사랑으로 아우를 적에 하늘빛으로 하나로 모이는 ‘우리’를 함께 이룹니다. 그래서 ‘나·너’라는 말이 얽히고, ‘하나’라는 낱말에 ‘나’와 ‘하늘’이라는 밑뜻이 깃들고, ‘나 + 너 = 우리 = 하늘’인 수수께끼를 들여다볼 만합니다.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를 읽었습니다. 돌봄담(폐쇄병동)에 갇힌 나날을 그렸나 하고 읽어 보는데, 갇혔다기보다 ‘열흘쯤 쉬려’고 들어가서 보낸 줄거리를 엮었습니다. ‘열흘쯤 바깥을 닫아걸고서 쉬려고 들어가는 정신병원’이 나쁠 일이란 없어요. 워낙 이 나라는 미쳐돌아가니까, 열흘뿐 아니라 보름이나 달포를 틈틈이 쉬지 않고서는 ‘나라’뿐 아니라 ‘나’까지 미쳐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서울(도시)에 머물 적에는 자꾸 나라꼴을 쳐다볼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서 열흘을 쉬려고 돌봄담에 들어가서 목돈을 쓰기보다는, 아예 서울을 떠나서 시골이며 들숲바다에 깃을 들이는 길이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시골에 작은집을 마련해서 다달이 이레쯤 푹 쉬면서 손전화도 끄고 셈틀도 안 켜면서 숲과 들과 바다를 품으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헤아리고, 풀벌레와 새와 바람과 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면, 아무리 미쳐돌아가는 나라꼴이 춤추더라도, 누구나 아늑하면서 고요하고 즐겁게 마음을 다독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이라는 담벼락에 갇히기 때문에 미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에서 돈벌이를 찾으려고 하니까 늘 미칠 수밖에 없어요. 돈이 아닌 살림을 가꾸는 시골집을 헤아리는 길로 마음을 살며시 틔워 본다면, 어떠한 병원도 학교도 정부도 없이,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이웃하고 도란도란 하루를 노래하겠지요. 병원에 가지 말고, 시골로 갑시다.


ㅅㄴㄹ


술은 물론이고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죽거나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물건도 금지되어 수건마저도 반으로 잘라 씁니다. (12쪽)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 전화를 했는데, “8월 말에 예약을 잡아 드릴까요?” 하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38쪽)


이제는 잘 모르겠다. 도와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46쪽)


실은 엄마 탓은 없다. (71쪽)


요 얼마간 술값만 몇백만 원을 썼는데 그 누구라도 대충 아무거나라도 사다 주지 않았다. 나는 통장 잔액이 있어도 매일 5000원만 쓸 수 있는데! (183쪽)


+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김현경, 자화상, 2019)


지금의 저도 조증 상태로 이렇게

→ 오늘 저도 들뜬 채 이렇게

11쪽


나보다 어린 누군가가

→ 나보다 어린 누가

21쪽


도와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도와주라고 말해야겠다

→ 돕길 바란다고 해야겠다

46쪽


서울에 다시 올라왔다

→ 서울에 다시 왔다

50쪽


곧바로 들어가는 게 제일 빠르고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 곧바로 들어가야 가장 빠르고 마음에도 나을 듯하다

→ 곧바로 들어가야 가장 빠르고 낫다

60쪽


실은 엄마 탓은 없다

→ 막상 엄마 탓은 없다

→ 정작 엄마 탓은 없다

→ 근데 엄마 탓은 없다

71쪽


혼자 자꾸 자격지심이 든다

→ 혼자 자꾸 부끄럽다

→ 혼자 자꾸 서럽다

→ 혼자 자꾸 슬프다

84쪽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을 때

→ 동무하고 낮밥을 먹을 때

→ 동무하고 곁밥을 먹을 때

→ 동무랑 덧밥을 먹을 때

103쪽


대변부터 잠을 개운하게 잤는지까지 확인하고 나도 생각하게 된다

→ 똥부터 잠을 개운하게 잤는지까지 살피고 나도 생각한다

113쪽


가운이 아니라서

→ 흰옷이 아니라서

→ 일옷이 아니라서

241쪽


제가 폐쇄병동에 가게 된 이유는

→ 제가 돌봄울에 간 까닭은

→ 저는 돌봄담에 갔는데

2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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