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작가 35인, 그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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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27.

인문책시렁 405


《글쓰는 여자의 공간》

 타니아 슐리

 남기철 옮김

 이봄

 2016.1.28.



  생각과 마음과 말을 하나로 고이 어우르는 길을 차곡차곡 마주하는 하루이기에 문득 붓을 쥐면 글을 쓸 수 있다고 느낍니다. 생각도 마음도 말도 하나로 곱게 어우르지 않거나 못 할 적에는 글을 억지로 짜낸다고 느낍니다.


  “Wo Frauen ihre Bucher schreiben”을 옮긴 《글쓰는 여자의 공간》을 읽으며 “머스마가 글쓰는 곳”을 떠올려 봅니다. 지난날에 “글쓰는 사람”은 모두 ‘힘꾼’이었습니다. 여느사람은 글쓰기는커녕 붓종이를 넘보거나 구경하지 못 했습니다. 호미와 낫을 쥐는 사람은 호미와 낫을 쥘 뿐, 붓종이를 얼씬하지 못 했어요. 아기를 돌보는 사람은 아기를 돌볼 뿐, 붓종이는 엄두조차 못 냈고요.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책에서도 다루는데, 따로 글칸을 누린 글지기는 드뭅니다. “글쓰는 가시내”나 “글쓰는 머스마”도 비슷합니다. 가시내이든 머스마이든 ‘집안 어디서나’ 쓰고, 으레 ‘길’에서 씁니다. 따로 자리맡에 앉아서 오직 글만 바라보는 일은 드물어요.


  살아가는 곳에서 삶글이 나옵니다. 살림하는 곳에서 살림글이 싹틉니다. 사랑하는 곳에서 사랑글이 자라요. 숲을 품은 보금자리라면 저절로 숲글이 흐를 테지요. 글마루나 글칸이나 글집이 있어도 될 테지만, 그저 ‘집’에서 쓰면 됩니다.


  ‘집’이란 “짓는 삶터”를 뜻합니다. 집살림과 옷살림과 밥살림을 지을 뿐 아니라, 아이하고 어울리는 사랑살림을 짓기에 ‘집’입니다. 스스로 하루를 그리면서 짓기에, 이러한 집에서 글도 지을(쓸)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흐르는 살림살이에 따라서 이야기가 태어나니, 이 이야기를 가다듬어서 글로 여미어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무렵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멈추지 않는, 우리나라에 오래도록 슬픈굴레인 ‘아기장사’가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가난(먹고살기 어렵다)’을 핑계로 아기장사를 하던 나라였고, 오늘날에는 가난하지 않아도 아기장사를 합니다. 어떤 뒷힘과 뒷손이 저지른 끔찍한 짓입니다. ‘짓기’가 아닌 ‘막짓’이에요.


  1970년 언저리에 태어난 적잖은 아이들은 길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외톨이(고아)가 아닌데, 골목에서 놀다가 사라지고,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사라집니다. 아기장사를 하는 무리가 멀쩡한 아이를 몰래 사로잡아서 나라밖에 팔곤 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어머니나 이웃 아주머니는 으레 “너희 말야, 누가 뭘 사준다고 해서 함부로 따라가면 안 돼.” 하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이 나라 배움터에서 발자취(역사)를 가르칠 적에, 외톨이(고아)가 아닌데 무턱대고 길에서 아이들을 붙잡아서 미국·유럽·호주로 팔아치운 끔찍한 민낯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슬나라(독재정권)가 뒤를 봐주며 일어난 이런 굴레를 알아차리거나 눈여겨보는 붓끝은 얼마쯤 있을까요?


  여러모로 보면 ‘미혼모’란 이름은 조금도 안 어울리지 싶습니다. 어느 누구도 ‘미혼부’란 이름을 안 쓰거든요. 그저 ‘아기엄마’인 사람을 사랑하는 길을 배운 바도 없고 배우려고 하지 않던 ‘철없는 아기아빠이되 아기아빠 자리에서 달아낸 사내’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어요.


  ‘글순이’ 곁에 ‘글돌이’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살림순이 곁에 살림돌이가 어깨동무하면서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기를 바라요. 글쓰기에 앞서 살림짓기를 할 노릇입니다.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일구는 손길을 펴다가 살짝 틈을 내어 붓도 쥘 수 있기를 바라요. 멍든 어제를 사랑으로 달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순이와 돌이 모두, 아기를 참사랑으로 맞이하는 새길을 차근차근 배우고 가르치는 자리를 부드러이 열 수 있기를 빌 뿐입니다.


  온나라 어느 곳이든 글터로 피어나기를 빕니다. 그러니까 ‘살림터이면서 글터’로 나아가기를 빌어요. 생각과 마음과 말을 차분히 여미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빕니다. 말을 가리고 살피는 손길이 자랄 수 있기를, 마음을 보살피고 가꾸는 눈길이 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ㅍㄹ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이는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게 여자들의 의무였던 시절에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17쪽)


상드는 본인과 아이들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6주에 한 번씩 120쪽 분량의 원고를 꾸준히 출판사에 보냈던 일차적 이유는 다름 아닌 돈이었다. 물론 어쩌면 또다른 이유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이런 글도 남겼다. “슬픔이 밀려오려 하면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쓸 때면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42쪽)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글을 쓴다”는 식의 거룩한 발상들을 일축하는 크리스티에게 글쓰기는 ‘직업’일 뿐이었으며, 작가라는 직업을 하늘이 내린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112쪽)


아렌트는 낡은 확실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현혹되지 않은 불온한 사상가였다. (158쪽)


다행스럽게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어릴 적의 다짐을 지키지 않았다. 이 세상 아이들한테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물론 어른들한테도 마찬가지다. (166쪽)


#Wo Frauen ihre Bucher schreiben

#TaniaSchlie


+


《글쓰는 여자의 공간》(타니아 슐리/남기철 옮김, 이봄, 2016)


유일하게 난방이 되는 곳은

→ 한 군데 따뜻하니

→ 불이 있는 한 곳은

10쪽


물론 글쓰기의 재료들이

→ 다만 글거리가

→ 그러나 글감이

13쪽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메모에서 비롯된다

→ 나는 언제나 쪽글부터 쓴다

→ 나는 언제나 쪽글에서 글감을 찾는다

13쪽


독자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반기지 않았다

17쪽


위의 두 문장은 영 친근하게 들리지 않는다

→ 이 글자락 둘은 영 살가이 들리지 않는다

→ 이 두 글은 영 즐거이 들리지 않는다

32쪽


상드의 글쓰기 탐닉에 대해 증언하길

→ 상드가 글을 얼마나 즐겼는지 말하길

→ 상드는 글쓰기를 무척 사랑했다는데

41쪽


나중에 신이 그로 하여금 책을 쓰도록 명했다고 술회했다

→ 나중에 하느님이 그더러 책을 쓰라 했다고 밝혔다

→ 나중에 하늘이 그한테 책을 쓰라 시켰다고 밝혔다

48쪽


글을 써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아니다

→ 글을 꼭 써야 한다는 마음도 아니다

→ 글을 써야 한다는 큰뜻도 아니다

49쪽


생애 마지막 무렵에 명성을 얻었다

→ 삶 마지막 무렵에 이름을 얻었다

→ 늘그막에 이름을 얻었다

54쪽


독서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을 피상적으로 습득한

→ 나라 돌아가는 일을 책을 읽어 겉으로 훑은

→ 삶터를 글만 읽어 겉모습만 본

56쪽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 세 살 때 절름발이를 앓았다고 여긴다

→ 세 살 때 절름거렸다고 본다

60쪽


문진도 가득 쌓여 있었다

→ 누름돌도 가득했다

→ 누름쇠도 쌓였다

72쪽


승복 같은 길고 풍성한 옷차림이 흡사

→ 중옷같이 길고 푸짐한 옷차림이 꼭

→ 스님옷처럼 길고 넉넉한 품이 마치

→ 절옷마냥 길고 너른 차림새가

82쪽


이따금씩은 부엌일을 했다

→ 이따금 부엌일을 했다

107쪽


작가라는 직업을 하늘이 내린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 글을 쓰는 일을 하늘이 내렸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 글쓰기가 하늘이 내린 일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112쪽


신랄한 독설로 명성을 떨쳤다

→ 날선 말로 이름을 떨쳤다

→ 매운 붓으로 드날렸다

→ 매서운 글로 이름을 떨쳤다

120쪽


전역을 떠도는 보헤미안 생활을 이어나갔다

→ 곳곳을 떠돌며 살아갔다

→ 떠돌이삶을 이어나갔다

→ 두루두루 돌며 살아갔다

146쪽


이러한 태도는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괴벽스러워졌다

→ 이러한 모습은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엉뚱했다

→ 이 매무새는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까탈스러웠다

233쪽


한쪽 눈은 점점 침침해졌고 결국 실명하기에 이르렀다

→ 한쪽 눈은 차츰 어둡고 끝내 눈을 잃는다

→ 한쪽 눈은 조금씩 흐리다가 마침내 먼다

298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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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 - 비루한 삶도 고귀한 삶도 부활한다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4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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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19.

인문책시렁 390


《니체 읽기의 혁명》

 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10.25.



  한자말 ‘혁명’을 좋아하는 분이 많더군요. 좋아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만, 이제는 우리말로 나타내는 길도 살펴야지 싶습니다. 갈아엎든, 뒤엎든, 갈아치우든, 엎든, 뒤집든, 바꾸든, 고치든, 새로짓든, 어린이 곁에서 함께 나아갈 새길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갈아엎을 줄 아는 사람은 갈고닦습니다. 바꿀 줄 아는 사람은 바라봅니다. 뒤엎을 줄 아는 사람은 앞뒤를 살핍니다. 고칠 줄 아는 사람은 곱게 여밉니다. 새길을 찾는 사람은 멧새하고 나란히 노래하는 숲살림을 사랑합니다.


  안 바꾸는 사람이란 고인물이고, 고이는 물이란 썩는 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갈아엎기를 바랄 적에는 여태까지 낡은 틀로 사람들을 옥죄던 수말(남성가부장권력용어) 가운데 하나인 ‘혁명’부터 끌어내릴 노릇입니다.


  《니체 읽기의 혁명》을 읽었습니다. 여러모로 보자면 “니체 새롭게 읽기”입니다. 낡은 굴레로 가두던 ‘읽기’가 아닌, 새나라와 새길과 새숲과 새사람을 바라보려는 ‘읽기’이니 “니체를 새롭게 잇는다”처럼 바라볼 수 있어요. 이으려면 먼저 읽습니다. 먼저 읽고서 익힐 적에 뜻을 이루게 마련이고, 이때에 가만가만 잇는 삶입니다.


  우리말은 ‘헌책’입니다. ‘고서’는 일본말입니다. 일본에서 쓰는 ‘고서’는 바탕이 ‘헌책’이고 ‘옛책’도 ‘고서’로 아우릅니다. ‘헌책집(고서점)’은 책만 팔거나 다루지 않아요. “책을 이미 읽은 사람 손길”이 만나고 이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헌책집을 드나드는 모든 헌책과 옛책은 “책을 쓴 사람, 책을 펴낸 사람, 책을 사고파는 사람, 책을 읽은 사람”이라는 네 가지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살림을 꾸린 손빛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런 얼거리를 느껴서, 저는 꽤 예전부터 ‘헌책(고서)’을 가리키는 다른 우리말로 ‘손길책·손빛책’이라는 낱말을 지어 보기도 했습니다. 헌책집에서 만나는 모든 책은 ‘헌책’이라는 ‘상품’이면서, ‘손길·손빛’이 닿은 ‘이야기’와 ‘삶’이 어우러지는, 그야말로 돈으로는 살 수 없지만, 돈으로도 고맙게 사서 누리는 우리 이웃 삶이야기까지 배우는 빛나는 이음꽃이라고도 느낍니다.


  ‘헌책’이라는 낱말에서 ‘허’는 ‘허허벌판’이라는 낱말에서 쓰는 ‘허’하고 맞닿고, ‘하늘’이라는 낱말에서 쓰는 ‘하’하고 나란합니다. 그래서 헌책이라는 읽을거리를 곰곰이 짚으면서 곱게 품을 줄 안다면, ‘헌책 = 한책(하늘책)’인 줄 깨닫습니다.


  독일사람이라기보다 ‘그냥 사람’인 니체라고 한다면, ‘그냥 사람’인 니체를 어떻게 느끼고 읽고 새겨서 이을 적에, 온누리를 새롭게 짓고 가꾸고 일구는 어진 눈빛일는지 처음부터 다시 살필 수 있어요. 그저 깨부수기만 해서는 깨닫지 않아요. 알을 깨고 나오듯, 하나씩 새롭게 알아가려고 할 적에 깨닫습니다. 오늘부터 한 걸음씩 의젓하게 내딛을 이웃님을 그립니다.


ㅍㄹㄴ


무릇 인식에 관점을 중시한 니체가 경고했듯이 누군가의 철학에 다가설 때 자신의 관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 (8쪽)


학계의 냉소와 비난에 초연해진 니체는 다시 책쓰기에 나섰다. (28쪽)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그때 적바림한 자료들이 그만큼 풍부했다는 뜻이다. 거의 날마다 걸은 산책길에서 움튼 생각을 곧바로 수첩에 기록했고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면 더 큰 공책에 옮겨 적었다. (43쪽)


은둔하며 고독을 즐긴 그에게 ‘고행 수도사’라거나 ‘염인주의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면서도 철학 교수들이 강단 철학으로 밥벌이를 하며 난삽한 용어로 대중을 현혹한다고 비판했다. ‘대학교에서 철학을 배우려는 것은 인생 낭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60쪽)


니체는 기독교 성직자들이 예수가 가르친 ‘사랑을 통한 구원’ 대신에 신앙을 통한 구원, 부활과 심판에 대한 종말론을 도입했다고 보았다. 더구나 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예수의 뜻을 변질시켰다고 비판했다. (95쪽)


니체는 물리적·물질적 힘의 추구만으로 극복인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창조적 힘’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164쪽)


니체는 거듭 “자기 자신을 참고 견뎌내기” 위해서 “건강한 사랑으로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새처럼 비상할 수 있다고 노래한다. (270쪽)


+


《니체 읽기의 혁명》(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


그의 곡진한 권유가 장엄한 우주론에 터하고 있어서다

→ 그가 드넓은 온길에 터하며 애써 얘기하기 때문이다

→ 그가 놀라운 온숲에 터하며 힘써 밝히기 때문이다

5쪽


스스로 생각의 근육을 키워가야 옳다

→ 스스로 생각힘을 키워가야 옳다

→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내야 옳다

8쪽


학문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강단에서도 내려오라는 모욕적인 비난까지 받았다

→ 배움길을 가르친다고 외치는 곳에서도 내려오라고 까대는 말까지 들었다

→ 배움꽃을 가르친다고 외치는 곳에서도 내려오라고 깔아뭉개는 말까지 들었다

27쪽


몸의 고통이 길어지면서

→ 오래도록 아프면서

→ 오래도록 앓으면서

29쪽


그의 철학에 고갱이가 될 영원회귀의 우주론을 착상했다

→ 그이 넋에 고갱이가 될 한꽃길을 떠올렸다

→ 그이 생각에 고갱이가 될 늘빛길을 찾았다

→ 그이 눈꽃에 고갱이가 될 온길을 그렸다

33쪽


조용히 눈길을 돌리겠다는 결기엔

→ 조용히 눈길을 돌리겠다고 당차니

→ 조용히 눈길을 돌리겠다고 다부져

34쪽


거의 날마다 걸은 산책길에서

→ 거의 날마다 걸은 길에서

43쪽


정신착락으로 입원한 뒤

→ 넋이 나가 들어간 뒤

→ 미쳐서 드러누운 뒤

47쪽


니체의 깊이를 실감할 매혹적인 물음이다

→ 니체가 깊다고 느낄 아름다운 말이다

→ 니체라는 깊이를 볼 눈부신 말이다

49쪽


인간은 신이 창조했고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다

→ 사람은 하늘이 지었고 홀가분하다

→ 사람은 하늘빛이 낳은 온눈이다

→ 사람은 빛으로 지은 혼넋이다

53쪽


팔리지 않아 파지가 될 수 있다고 면박을 주었다

→ 팔리지 않아 넝마가 될 수 있다고 꾸짖는다

→ 안 팔려서 헌종이가 될 수 있다고 쏘아댄다

58쪽


대가를 치러야 했다. 폐강이 그것이다

→ 값을 치러야 했다. 닫아야 했다

→ 값을 치러야 했다. 내려야 했다

59쪽


문제는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는 고통이 가장 큰 존재가 사람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 사람은 뜻을 이루지 못할 적에 몹시 괴롭기만 하지 않다

→ 사람은 꿈을 펴지 못할 적에 더없이 힘들기만 하지 않다

67쪽


이 세계의 존속은 논리와 추론이 사라진 무리들의 방종한 행위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 온누리는 말과 생각이 사라진 무리가 멋대로 굴며 굴러간다는 뜻이다

→ 이 터전은 길눈과 생각이 사라진 무리가 마구잡이로 굴린다는 뜻이다

70쪽


잎의 죽음을 재촉하는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오고 있다

→ 잎을 떨구는 바람이 나한테 불어온다

→ 바람은 잎을 흔들며 나한테 불어온다

73쪽


그의 글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다

→ 그가 쓴 글에서 볼 수 있다

→ 그이 글에서 찾을 수 있다

75쪽


신비한 계시라는 이름 아래

→ 놀랍게 밝히는 말이라면서

→ 남달리 보인다고 이르며

→ 빛으로 깨우친다면서

97쪽


신의 죽음을 받아들여 더는 유일신을 믿지 않게 된 사람들은

→ 죽은 님을 받아들여 더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 죽은 빛을 받아들여 더는 하늘빛을 안 믿는 사람들은

103쪽


“존재의 가장 내적 본성이 힘에의 의지”이기에 “누가 힘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은 “불합리한 질문”이라고 주장한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 “살아가자면 힘에 기대”기에 “누가 힘을 바라는가?” 하고 물으면 “옳지 않다”고 대꾸한다. “삶이란 힘이 바탕”이기 때문이다

→ “살려면 힘이 있어야 하”기에 “누가 힘을 비는가?” 하고 물으면 “알맞지 않다”고 말한다. “살며 힘을 쓰”기 때문이다

115쪽


오전 오후의 두 산책길에서

→ 아침낮으로 거닐면서

→ 아침과 낮게 걸으면서

121쪽


예술 경험의 효과를 삶의 진정제가 아니라 촉매제로 본 니체는

→ 니체는 멋빛이 삶을 다독이기보다 북돋운다고 보며

→ 니체는 꽃살림이 삶을 달래기보다 북돋운다고 보고서

136쪽


몸의 영원한 부활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부활이다

→ 가없이 살아나는 몸보다 가없이 살아나는 삶이다

→ 몸이 아닌 마음이 언제나 날아오른다

155쪽


창조적 힘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 새힘을 반드시 내야 한다

→ 반드시 새롭게 힘내야 한다

164쪽


그래야 새처럼 비상할 수 있다

→ 그래야 새처럼 날 수 있다

→ 그래야 새처럼 날아오른다

270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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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인사이트 - 사주는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나사주 지음 / 혜윰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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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8.

인문책시렁 403


《사주 인사이트》

 하나사주

 혜윰터

 2025.1.25.



  책을 품고 가는 사람도, 남은 책을 쓰다듬는 사람도, 책집을 찾아가는 사람도, 책집을 지키는 사람도, 몸은 늘 같은 곳을 맴돌지만, 마음은 언제나 새롭게 춤춘다고 느낍니다. 하늘은 늘 그곳에 있고, 밤에 바라보는 별도 언제나 그곳에 있어요. 책집이 한결같이 그곳에 있기에 사람들은 책집을 길잡이와 별님과 해님으로 삼아서 돌고돌면서 만날 수 있구나 싶어요.


  머잖아 ‘엄마손 집밥’은 가뭇없이 사라지리라 봅니다. ‘엄마손 집밥’이 사라진 자리에 ‘아빠손 집밥’이 깃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집밥 시늉 시킴밥(배달요리)’이 차지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앞날을 알 수 없지만, 곰곰이 보면 앞날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까지 못 했기에 오늘부터 새로 해보려고 나설 만합니다. 오늘까지 뒤틀렸기에 오늘부터 하나씩 펼 만합니다. 오늘까지 무너졌기에 오늘부터 새로 세우려고 나섭니다.


  마음을 쓰는 사람이 마음을 일으킵니다. 마음을 안 쓰는 사람이 쳇바퀴를 돌다가 어느새 굴레에 갇힙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삶을 일굽니다. 마음을 안 기울이는 사람이 늘 똑같이 굴다가 어느새 늙어요.


  《사주 인사이트》를 읽었습니다. 한글로만 적은 ‘사주 인사이트’라면 어린이는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시골 할매할배도 못 알아들을 테지요. 그러나 서울사람은 어렴풋이 헤아리거나 그냥그냥 알아들으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四柱 insight”라 적으면 얼마나 알아들을 만할까요? 아마 ‘사주 인사이트’로 적을 때보다 훨씬 더 못 알아들으리라 봅니다.


  저는 늘 ‘밥하기·밥짓기’를 합니다. 저는 ‘요리’도 ‘조리’도 안 합니다. 저는 ‘식사’를 하지도 않습니다. ‘밥’이라는 낱말을 쓸 적에는 ‘밥’이라는 낱말을 바탕으로 얽힌 숱한 말밭이 마음으로 스미고, 이 낱말이 아이들하고 둘레에 퍼집니다. ‘하다·짓다’라는 낱말을 쓰면 ‘하다·짓다’에서 퍼지는 숱한 말살림과 말빛이 고루고루 퍼집니다.


  네 기둥이란, 네 고리이기도 하고, 네 길이기도 합니다. 이 삶을 네 갈래로 읽기도 하고, 넷을 다시 여덟 가지로 풀기도 하며, 열두 가지에 열여섯 갈래로 살필 만합니다. 다만 어느 기둥이나 길이나 골이나 고리로 읽든, 스스로 눈을 틔우면 모든 곳을 알아볼 수 있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손수 살림을 지으면서 바람을 읽고 해와 별을 알았어요. 예전에는 누구나 손수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해바람비흙과 풀꽃나무를 익히고 품었어요. 이제는 누구나 살림을 손수 안 짓고, 바람도 해도 별도 안 읽기 일쑤입니다. 아니, 서울에서는 논밭을 손수 가꾸기도 어렵고 해바람비도 풀꽃나무도 늘 마주하면서 품기 힘듭니다. 이럴 적에는 이따금 《사주 인사이트》 같은 길잡이책을 곁에 둘 수 있겠지요. 스스로 살림짓기를 잊었기에 한동안 곁에 책을 두되, 앞으로는 누구나 손수짓기로 하루를 그리면서 모든 길을 스스럼없이 읽어내고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누구나 스스로 읽어야 스스로 빛납니다.


ㅍㄹㄴ


명리학은 심리학, 철학, 인문학처럼 사람을 들여다보는 학문 중 하나입니다. (23쪽)


집에 따라 나의 활동 범위가 달라지고 어울리는 사람들도 달라지며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30쪽)


각각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고 활동이 필요할 때가 존재하듯 놀 때는 양이, 잘 때는 음이 필요합니다. (38쪽)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명리학을 공부하는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요? (77쪽)


어떤 역할이든 균형이 중요할 뿐 모두가 내 사주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93쪽)


+


《사주 인사이트》(하나사주, 혜윰터, 2025)


복슬복슬한 털을 가지고 있는

→ 복슬복슬한 털인

→ 털이 복슬복슬한

5쪽


365가지의 질문이 실려 있습니다

→ 365가지를 묻습니다

→ 365가지를 물어봅니다

8쪽


책 안에는 일상적인 것부터 심오한 것까지 궤를 달리하는 다양한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 책에는 수수한 곳부터 깊은 데까지 결이 다른 여러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 책에는 여느 일부터 깊은 자리까지 테두리가 다른 여러 얘기가 가득합니다

8쪽


사주팔자란 우리에게 새겨진 자연의 기운을 뜻합니다

→ 삶길이란 우리한테 새긴 푸른기운을 뜻합니다

→ 하루길이란 우리한테 새긴 숲기운을 뜻합니다

9쪽


따라갈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나침반이 있다는 것은 퍽이나 편한 일이지만

→ 생각과 몸짓이 따라갈 길바늘이 있으면 퍽이나 수월하지만

→ 생각하고 움직이는 길잡이가 있으면 퍽이나 거뜬하지만

10쪽


사주팔자에 관한 오해와 편견은 왜 생기게 되었는지

→ 길눈을 왜 잘못 보거나 여기는지

→ 삶꽃을 왜 엉뚱하게 바라보는지

→ 네길을 왜 넘겨짚고 뒤트는지

21쪽


우리는 왜 반대에 끌릴까

→ 우리는 왜 달라서 끌릴까

→ 우리는 왜 거꾸로 끌릴까

33쪽


색색의 꽃이 피는 봄이 오면 사람들은 설레기 시작합니다

→ 알록달록 꽃피는 봄이 오면 설렙니다

→ 온갖 꽃이 피는 봄이면 설렙니다

43쪽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 다시 어린날로 갑니다

→ 어릴적으로 돌아갑니다

→ 어린이로 돌아갑니다

43쪽


허용과 측은지심이 성장의 시간에 필요한 것처럼

→ 베풀고 눈물을 흘리며 자라듯

→ 빗장을 열고 가엾게 여기면서 자라듯

46쪽


계절과 계절 사이를 연결해 주는 간절기가

→ 철과 철 사이인 길목이

→ 철과 철을 잇는 고비가

→ 철과 철을 잇는 고개가

→ 철과 철을 잇는 틈이

59쪽


굉장히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어

→ 아주 빽빽해서

→ 무척 촘촘해서

66쪽


빽빽하고 조밀하게 빈틈없이 뭉쳐진 금속은

→ 빽빽하게 뭉친 쇠붙이는

66쪽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 물에 둥둥 떠다니기를 무척 즐깁니다

74쪽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명리학을 공부하는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요

→ 삶꽃을 배우면서 서로 다른 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 네걸음을 배우기에 서로 다른 줄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77쪽


인의예지신 중 지는

→ 길뜻빛알꿈에서

→ 다섯길에서 앎은

→ 닷고리에서 앎꽃은

78쪽


나의 연월일시에 해당하는

→ 내 해달날때에 맞는

→ 난해달날때에 드는

88쪽


그중 첫 번째는 식신의 재능입니다

→ 여기서 첫째는 도움꾼 재주입니다

→ 첫째는 도움깨비 힘입니다

→ 첫째는 심부름꾼 솜씨입니다

118쪽


봄 초입의 시간입니다

→ 봄 어귀입니다

→ 첫봄입니다

163쪽


여름의 시작점인 입하를 기준으로 펼쳐지는 시간입니다

→ 여름맞이입니다

→ 여름 첫머리입니다

164쪽


도화가 예쁘다, 아름답다의 동의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복사꽃이 예쁘다, 아름답다와 같은말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 복숭아꽃이 예쁘다, 아름답다와 뜻이 같다고 넘겨짚곤 합니다

168쪽


한낮의 해가 가장 뜨거운 정오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 한낮에 해가 가장 뜨거운 때를 가리킵니다

→ 해가 가장 뜨거운 한낮을 나타냅니다

172쪽


복습 삼아 잠깐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다시 살짝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89쪽


와인 오프너 보신 적 있나요

→ 포도술따개 보신 적 있나요

194쪽


팀워크가 맞지 않으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듯이

→ 손발이 맞지 않으면 힘을 제대로 낼 수 없듯이

→ 한마음이 아니면 기운을 제대로 펼 수 없듯이

→ 한덩이가 아니면 재주를 제대로 보일 수 없듯이

203쪽


상담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 얘기를 하다 보면 사람사이에서 다치는 분이 꽤 많습니다

→ 이야기를 해보면 사람일 탓에 들볶이는 분이 꽤 많습니다

225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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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한길그레이트북스 94
앤서니 기든스 지음, 임영일 외 옮김 / 한길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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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8.

인문책시렁 406


《資本主義와 現代社會理論》

 안토니 기딘스

 임영일·박노영 옮김

 한길사

 1981.2.10.



  1981년에 한글판이 나온 《資本主義와 現代社會理論》은 꾸준히 읽힙니다. 우리 삶터를 바라보는 눈길을 다스리는 줄거리가 흐르기 때문이라 할 텐데, 영국에서는 1971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요샛판은 책이름을 한글로 바꿉니다만, 옮김말씨는 좀 읽기 부드럽게 가다듬거나 손질했을까요? 아니면 1981년 옮김결 그대로일까요?


  2025년 우리나라를 보면, 한쪽에서는 이놈을 가리켜 ‘극좌’라 하고, 한쪽에서는 저놈을 가리켜 ‘극우’라 하더군요. 왜 서로 ‘극좌·극우’라는 틀(프레임)을 씌우려고 할까요? 서로 미워하면서 싸우는 틀이 서야, 사람들 눈길이 이쪽으로나 저쪽으로 몰리고 끝없이 쌈박질을 벌이면서, 막상 새길(대안·미래)은 감쪽같이 잊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저쪽에서 말하는 ‘극좌’란 정작 없는 그림자입니다. 이쪽에서 말하는 ‘극우’도 그야말로 없는 허깨비라고 느낍니다. 이쪽도 저쪽도 서로 ‘극좌·극우’ 타령을 하면서 온통 온나라가 싸움박질로 서로 미워하는(혐오) 벼랑길로 몰아세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쪽”이 아니면 그저 미워해야 한다고 여기고, 어떤 자리도 차지하면 안 된다고 몰아세우는 쌈박질이로구나 싶습니다.


  잘못한 무리를 나무랄 적에는 ‘잘못’만 말할 노릇입니다. 왼켠이든 오른켠이든 똑같습니다. 왼켠이라서 훌륭하거나 오른켠이라서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오른켠이라서 늘 틀리거나 왼켠이라서 늘 맞지 않습니다. 곰곰이 보면, ‘참답게’ 왼켠이 아니기에 저쪽을 ‘극우’라 손가락질하면서 놀리고 비아냥거립니다. 가만히 보면, ‘참다이’ 오른켠이 아니기에 이쪽을 ‘극좌’라 꾸짖으면서 괴롭히고 비웃습니다.


  이 밉질(혐오정치)을 이제 끝낼 때이지 싶습니다. “잘못한 아무개”를 말해야 할 뿐입니다. “잘한 아무개”라면 잘한 일을 손뼉쳐야겠지요. 우리 몸에 왼눈과 오른눈이 있어요. 우리 몸에 왼손·왼팔·왼다리·왼발하고 오른손·오른팔·오른다리·오른발이 있습니다. 그저 ‘왼오른’입니다. ‘왼기움(극좌)’도 ‘오른기움(극우)’도 아닙니다. 그저 ‘두몸’입니다.


  왼켠이건 오른켠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일값을 제대로 누리면서 살림을 지을 새길을 바라는 목소리를 담으려고 한다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밉질을 한 마디도 안 쓰면서 어깨동무하는 길로 목소리를 내야 옳다고 느낍니다.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는 어떤 참길도 못 열게 마련입니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은 왼길도 오른길도 아닌 ‘사람길’과 ‘삶길’과 ‘살림길’을 살펴야 할 ‘나라길’을 짚는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늘 새롭게 배우면서 보금자리를 일구고 마을을 돌아보면서 나라를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왼오른을 놓고서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왼이건 오른이건, 네가 오른이건 왼이건, 서로 다른 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더 만나고 더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오늘날 서울이나 나라 곳곳에서 ‘왼물결’이라 여기는 무리하고 ‘오른물결’이라 여기는 무리가 함께 목소리를 높인다지요? 이렇게 한곳에 모였으면, 팔뚝질은 멈출 일이에요. 왼물결과 오른물결에서 한 사람씩 나와서 2분쯤 저희 뜻을 밝히면서 말을 주고받을 일입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낮추면서 부드럽게 “나는 왜 왼물결인가” 하고 밝히고, “나는 왜 오른물결인가” 하고 들려줄 노릇입니다. 이렇게 2분씩 15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딱 한 시간만 들여도 서로 제법 마음을 살피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 만합니다.


  우리는 “넌 왼쪽이 아니잖아?” 하고 쳐내니까 싸웁니다. 우리는 “넌 오른쪽이 아니네?” 하고 몰아세우니까 싸워요. 이른바 공놀이(축구·야구·농구·배구)에 왼오른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공놀이입니다. 함께 배우는 터전인 배움터(학교)에서 아이들을 왼오른으로 가르지 않습니다. 배움터 길잡이도 왼오른으로 갈라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어른 모두 ‘왼오른’이 아닌 ‘삶길·살림길·사람길’을 귀담아들으면서 차분히 들려주며 어울리는 새길을 열 노릇입니다. 앤서니 기든스라는 사람은 우리가 ‘싸움’이 아닌 ‘사이’를 보아야 한다고 조곤조곤 글을 남겼다고 봅니다.


ㅍㄹㄴ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적 삶을 동물적 삶과 구분짓는 것은 인간의 능력과 취향들은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43쪽)


마르크스에 의하면 의식은 인간의 실천(Praxis) 속에 뿌리박고 있으며, 그 실천이란 다시 사회적인 것이다. 이것이 “의식이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의 의미이다. (79쪽)


자본주의 경제에서 완전에 가까운 고용의 조건이 널리 퍼져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만성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집단, 즉 산업 예비군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이다. (99쪽)


억압적 법률은 그것의 위반이 ‘범죄’라는 점을 그 특징으로 한다. 범죄는 사회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지지하는’ 감정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126쪽)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대부분의 관점에서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셈이다. 그러나 양자는 한 가지의 중요한 점에 수렴하고 있다. 즉, 양자는 모두 개인의 이익이 집합체의 이익을 압도해 가고 있는 상황을 치유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157쪽)


도덕적 권위와 자유가 서로 배타적인 상극이라고 믿는 것은 기본적으로 오류이다. 인간이 향유하는 모든 자유는 그가 사회의 성원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그는 사회의 존재가 전제하는 도덕적 권위에 복종하여야만 한다. (183쪽)


교수의 직(職)은 ‘개인적 예언을 해도 좋다는 전문 자격’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 지위를 이용하려는 교수는 성숙한 자신감을 결여한 민감한 청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이기적으로 이용할 수조차 있는 것이다. (220쪽)


#앤서니기든스 #자본주의와현대사회이론 #AnthonyGiddens


+


《資本主義와 現代社會理論》(안토니 기딘스/임영일·박노영 옮김, 한길사, 1981)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발전은 인간과 자연 간의 간단 없는 생산적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 마르크스는, 사람과 숲이 끝없이 어울리면서 삶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 마르크스가 말하길, 사람은 숲과 늘 어우러지기에 삶이 깨어난다

7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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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저작집 12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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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2.20.

인문책시렁 401


《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99.1.25.



  그동안 강만길 님이 쓴 여러 책을 두루 읽었으나, 어쩐지 요 열∼스무 해 사이에 나오는 책은 심드렁했습니다. 예전에 쓴 글에서 벗어나는 결이 없기도 했지만, ‘발걸음’을 언제나 ‘자리다툼’으로 보는 틀에서 안 빠져나오는 대목에 질리기도 합니다.


  《20세기 우리 역사》는 두즈믄(2000)이라는 해로 넘나드는 길목을 돌아보자는 뜻으로 편 이야기를 꾸렸다고 합니다. 강만길 님이 여태 편 이야기를 단출히 여민 얼거리라고 느낍니다. 여러모로 헤아릴 대목이 있되, ‘발걸음’을 어느 곳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책으로 담아낼 이야기는 사뭇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산미증식계획’이라는 지난일을 다룰 적에, 그무렵에 시골에서 논밭을 짓는 여러 사람은 어떤 살림이었는지 짚는 글을 이제야말로 쓸 때이지 않을까요?


  조선총독부가 벌이는 짓에 맞서며 나라밖에서 ‘임시정부’를 차린 어른이 많고, 만주에서 총을 쥐고 싸운 어른이 많습니다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나라를 떠날 길이 없습니다. 논뙈기도 밭뙈기도 없이 빌려서 짓는 수수한 시골지기가 가장 많았던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빌리는 땅을 지은 수수한 시골지기’가 걸어온 길을 글이나 책으로 차곡차곡 여미는 글바치는 거의 못 찾아봅니다.


  우리가 돌아볼 ‘발걸음’이라면, 바로 논밭지기 발걸음과 손길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논밭지기는 어떤 살림집을 이루었는지, 논밭지기는 어떤 밥옷집을 꾸렸는지, 논밭지기는 아이를 어떻게 낳아 돌보았는지, 논밭지기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떤 소꿉놀이를 했는지, 논밭지기 집안에서 나고자라는 아이들은 말을 어떻게 물려받았는지 같은, 수수한 논밭지기는 설거지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어떻게 일구며 이어 왔는지 같은, ‘작은발걸음’을 그릴 적에 비로소 ‘역사’라고 봅니다.


  어떤 ‘그들’도 으레 윗자리에서 오가는 발걸음만 다루면서 ‘역사’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강만길 님을 비롯한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논밭자리’나 ‘시골자리’나 ‘마을자리’ 이야기를 ‘역사’로 못 느끼는 발걸음이었다고 봅니다. 2000년과 2020년 우리 발자취를 그릴 적에 무엇을 다룰 만할요요? 2024∼25년에는 ‘계엄령·탄핵’을 둘러싼 윗자리 쌈박질을 다루려나요? 아니면, 서울에서는 서울대로 시골에서는 시골대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작은이 발걸음’을 다룰 수 있을까요?


  예전에 정몽준이라는 이도 버스삯을 몰랐지만, 김대중·노무현·문재인도 버스삯을 모릅니다. 박근혜·이명박·윤석열도 버스삯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발’ 노릇을 하는 버스삯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짚는 붓(역사학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푼돈이라 여길 버스삯일는지 모르나, 이 버스삯조차 없어서 한나절이나 두나절을 멧숲을 넘고 걸어다닌 숱한 사람들 발걸음이 어떤 ‘역사’인지 적을 줄 아는 붓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발걸음을 굳이 ‘올바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올바로’ 바라보기 앞서, 먼저 ‘사람살이·사람살림’을 손수 일구면서 바라볼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파 한 단에 값이 얼마인지, 달걀 하나에 값이 얼마인지, 라면 한 자루에 값이 얼마인지, 번데기 한 줌에 값이 얼마인지, 이러한 밑살림길을 읽지 않고 말할 줄 모른다면, 이제는 ‘역사 아닌 허울’일 뿐일 텐데 싶어요. 이제부터 우리가 바라볼 발걸음(역사)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짓는 오늘과 하루일 노릇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산미증식계획’은 당초의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았음에도, 일본 쪽으로서는 식민지배라는 면에서나 자국의 경제발달이라는 면에서나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습니다. (92쪽)


1920년대까지도 각급 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라 하여 주로 가르쳤지만, 우리말도 조선어라 하여 약간은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중일전쟁 도발 후 그것마저 완전히 없애버리고(1938.4.) 일본어만을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121쪽)


38도선을 없애고 5년간 신탁통치도 안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38도선을 없애기 위해 5년간 신탁통치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인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안 받으려 하다가 38도선이 그대로 민족분단선이 되게 할 것인가 등 몇 가지의 엄중한 선택이 이 시기의 민족사회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190쪽)


농지를 제외한 과수원·임야 등은 개혁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지주 소유지는 물론이고, 이완용·송병준 등과 같은 반민족행위자의 토지도 소유권이 그대로 인정되어 그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유산으로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239쪽)


이승만 정권은 좌익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김구·김규식 등 민족해방운동 우익전선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국내 지주세력과 손잡고 미군정에서 물려받은 친일 관료들을 기반으로 하여 수립되었습니다. (250쪽)


이 전쟁은 안으로는 민족분단을 더욱 고착시키고, 이승만 정권과 김일성 정권이 이후 독재체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밖으로는 동서 양 진영의 냉전을 격화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257쪽)


+


《20세기 우리 역사》(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99)


한반도가 처한 이 지정학적 위치를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여, 한반도의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외세의 작용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식의

→ 이 땅이 놓인 여러 자리를 그저 받아들여, 우리 발자국은 어쩔 수 없이 바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 우리나라를 둘러싼 길을 그냥 받아들여, 우리 삶길은 어쩔 수 없이 남한테 휘둘릴 수밖에 없다면서

14


그러나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성격은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나 그러한 삶결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그러한 삶자취는 썩 반갑지 않았습니다

88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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