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우주가 산업이 되는 뉴 스페이스 시대 가이드
켈리 제라디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윰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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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26.

인문책시렁 423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켈리 제라디

 이지민 옮김

 혜윰터

 2022.8.15.



  무슨무슨 때(시대)라고 하는 말이 나그네처럼 떠돌곤 합니다. 우리 삶터를 돌아본다면, ‘옛조선’이던 때를 지나고 ‘세나라·네나라·닷나라’라 할 때를 지나고 ‘봉건왕조’나 ‘중국 사대주의’라는 때를 지나고 ‘식민지’라는 때를 지나고 ‘한겨레싸움’에 ‘군사독재’라는 때를 지났습니다. 이러다가 ‘세계화’에 ‘누리’라는 때에 이른다고도 합니다.


  이런저런 때를 더듬자면, 으레 나라지기나 벼슬아치 같은 몇몇 사람들 힘으로 이끄는 얼거리입니다. ‘나라’는 있되 ‘나’는 없어요. ‘나라’만 보이고 ‘사람’은 안 보입니다.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푸른별 바깥을 오가는 길하고 얽히는 일 가운데 하나를 맡은 분이 쓴 글입니다. 왜 푸른별 바깥을 오가는 길을 열 만한지 알리는 글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맡는지 들려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리때(우주시대)에 이르렀다는 오늘, 푸른별은 얼마나 푸르게 어울리는지 궁금합니다. 푸른별 바깥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푸른별 살림길을 열려는 뜻인지 궁금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부어야 오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면 푸른별 바깥을 못 오갈는지 궁금하고, 이 어마어마한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누리배(우주선)를 타고서 푸른별 바깥으로 나갈 적에는 무엇을 보고 살피면서 푸른별로 돌아올까요. 누리배에서 바라보아야 온누리를 넓거나 깊게 살피거나 알 만할까요. 누리마실을 하는 길은 누리배가 아니고 없을까요.


  예나 이제나 별이 흐릅니다. 예나 이제나 숲사람과 들사람과 멧사람과 바닷사람은 별바라기를 하면서 살림을 헤아렸습니다. 들숲메바다를 품은 누구나 별읽기를 누리면서 이 숨빛을 아이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이제까지 온사람은 돈이 아닌 마음으로 별빛을 읽어서 부스러기(지식·정보)가 아닌 사랑을 담은 이야기로 아이한테 이어주었습니다.


  사람을 이루는 몸도 누리요, 사람이 익히는 모든 이야기를 담는 마음도 누리이며, 사람이 마주보는 눈길도 누리입니다. 사람을 이끄는 넋도 누리이고, 사람이 짓는 사랑도 누리예요. 오늘날이 ‘누리때’라면, 돈으로 올려세우는 잿더미가 아닌, 마음으로 나누면서 함께하는 누리길을 열 때라는 뜻일 텐데 싶습니다.


ㅍㄹㄴ


이듬해 나치 독일이 전쟁에 패배하자 연합국은 앞다퉈 독일이 개발한 강력한 기술을 차지하려 했다. (28쪽)


미국 전역에는 약 40만 명의 남녀가 아폴로 계획에 참여하고 있었다. 2만 개에 달하는 기업과 대학도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36쪽)


흐릿한 먼지구름은 우리 은하 귀퉁이에 자리한 가스나 먼지 성단이 아니라 관측 결과 팽창하고 있는 우주 건너편에 자리한 자체 은하였다. (53쪽)


스푸투니크호 오직 탐사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졌을 거라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을 위래 본래 우주는 우주 개발 경쟁 초창기부터 군사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07쪽)


#NotNecessarilyRocketScience #ABeginnersGuidetoLifeintheSpaceAge

#KellieGerardi


+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켈리 제라디/이지민 옮김, 혜윰터, 2022)


태양으로부터 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았으며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기에 아주 적절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 해한테서 알맞게 멀어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았으며 얼지 않은 물이 있을 만한 터전이었다

→ 해하고 알맞게 떨어져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았으며 물이 얼지 않을 만한 곳이었다

17쪽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이들이 인류의 생존에 이바지하고 있다

→ 어느 누가 아니라 숱한 사람이 이 별을 살린다

→ 몇몇이 아니라 숱한 사람들이 서로 살리며 돕는다

60쪽


평생 자신의 가치와 적성을 입증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이 아닐까 하는 내 안의 우려를 잠재워야 한다

→ 이제껏 제 값어치와 빛을 밝힌 몇몇만 누리지 않나 하는 걱정을 잠재워야 한다

→ 이제껏 제 몸값과 밑동을 밝힌 몇몇만 되지 않나 하는 근심을 잠재워야 한다

61쪽


우주 분야의 아웃사이더였던 내가 인사이더가 된 구체적인 순간을

→ 별누리 바깥이던 내가 따로 안쪽이 된 때를

→ 별밭 바깥에 있던 내가 이른바 안사람이 된 때를

100쪽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궁금했다

→ 처음 이야기를 듣던 날 몹시 궁금했다

146쪽


물론 나의 동료 가운데에도 이 같은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 다만 일벗 가운데에도 이 같은 말을 내치는 이가 있다

→ 그러나 일동무도 이 같은 말을 꺼리곤 한다

167쪽


내가 올린 첫 게시물이 입소문이 났을 때

→ 내가 올린 첫글이 알려졌을 때

→ 내가 처음 올린 글이 퍼졌을 때

206쪽


한 가지 덧붙인다면 모든 것을 건 뒤의 혼돈을 기꺼이 껴안으라고 말하고 싶다

→ 한 가지 덧붙인다면 모두 건 뒤에 어지러워도 기꺼이 껴안으라고 말하고 싶다

21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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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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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15.

인문책시렁 432


《눈감지 마라》

 이기호

 마음산책

 2022.9.25.



  찰칵이를 늘 쓰되 으레 헌것으로 장만합니다. 마지막으로 새것을 장만해 본 적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장만해 준 무릎셈틀을 열 해째 쓰다가 지난해에 숨을 거두어 떠나보낸 뒤, 살림돈을 어찌저찌 헐어서 헌것으로 장만했는데, 셈틀집에서 들려주는 달콤말에 홀렸는지 자꾸 간당간당하면서 숨이 넘어가려고 합니다.


  시골집을 떠나서 바깥일을 할 적에 늘 곁에 둘 무릎셈틀입니다. 어떡해야 하느냐 한참 곱씹지만 뾰족한 길은 안 나옵니다. 지난이레에도 어제오늘도 간당간당 무릎셈틀을 붙잡고서 울지만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뻐근한 등허리를 쉬다가,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서 빨래를 하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지난 한 해 애쓴 무릎셈틀을 쓰다듬으면서 속삭입니다. “고마워, 애썼어. 네가 나한테 와서 우리집에서 함께 지내기에 반가워.”


  《눈감지 마라》를 2025년 첫여름에 읽었습니다. 서울과 인천으로 일하러 다녀오는 길에 읽었습니다. 엄청나게 붐비고 시끄러운 복판마을(센트럴시티)에서 첫 쪽을 폈고, 한참 읽다가 눈을 드니 곧 시외버스를 탈 때이더군요. 한 시간 즈음 책에 파묻혔습니다. 눈을 들고 나서야 둘레가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줄 다시 느꼈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마저 읽는 동안, 이 시외버스에서 떠드는 다른 손님 말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마지막 쪽을 덮고서 고개를 들고 보니, 둘레 적잖은 손님이 참으로 시끌시끌 손전화로 수다를 떨더군요.


  이기호 님이 쓴 《눈감지 마라》는 아주 잘 엮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두 젊은이는 그다지 ‘돈을 쓰는 일’이 없어 보이는데, 끝없이 곁일을 하면서도 왜 빚을 못 갚거나 목돈을 못 모으는지 꽤 알쏭달쏭했습니다. 모르는 분은 그냥 모르는데, 서울과 큰고장에서는 나절삯(시급)으로 곁일을 하지만, 시골에서는 ‘통크게’ 곁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는 밥집도 술집도 찻집도 적습니다만, 요사이는 ‘이웃일꾼’이 시골에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다가 나들꾼(관광객)이 두멧시골로 꽤 찾아다녀요. 그래서 밥집과 술집과 찻집이 드물지는 않고, 이제 웬만한 시골 면소재지까지 나들가게(편의점)가 있습니다. 시골은 한 해 내내 다 다른 일거리가 줄줄이 있어요. 논과 밭뿐 아니라 공장이 되게 많은 시골이에요. 바닷가라면 김공장까지 있습니다. 젊은이가 김공장에서 한 해만 일해도 빚을 다 갚고도 목돈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가 뜻을 펴거나 꿈을 이루는 길을 열기는 만만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나라와 고을에서 젊은이를 북돋우려는 길을 여러모로 내려고 힘쓰기는 하지만, 막상 모든 젊은이한테 안 와닿기도 하고, 가난한 젊은이한테는 아주 안 와닿기까지 합니다. 또한, 차츰 ‘젊은돌이’가 설 만한 자리가 얕고 버거워요. 지난날 ‘젊은순이’가 겪어야 하던 높다랗고 까마득한 담벼락을 이제는 젊은돌이가 꽤 버겁게 맞닥뜨리면서 헤매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알뜰살뜰 품어내는 손끝에 ‘시골살이’와 ‘일자리’와 ‘곁일’을 조금 더 깊넓게 짚으면서 얼거리를 살피려 했다면 한결 나았겠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글을 쓰실 적에는, 겉훑기로 그려내고서 그치기보다는 몸소 여러 ‘시골일’과 ‘시골일자리’를 해보고 나서, 살갗과 삶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여미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ㅍㄹㄴ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들은 대번에 채무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냥 조용히 대학만 다녔을 뿐인데도 정용은 800만 원, 진만은 1200만 원 빚이 생겼다. (19쪽)


정용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연차나 반차, 월차 같은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코인 세탁소를 이용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70쪽)


그래, 사는 게 팍팍하지 않으면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이 궁금하기도 하겠지. 최저임금이나 고용 상황이니 하는 것들보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도 만만치 않게 중요한 거겠지. (98쪽)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112쪽)


진만이 어렸을 땐 무슨 돌림노래처럼 하루건너 한 번씩 이웃집에서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 또 그 사람들을 말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43쪽)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무언가가 묻어 있거나 작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이들 옆에서 계속 계속 그걸 치우다 보면 어쩐지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99쪽)


진만이 죽었다는 것,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 차가운 길에 오랫동안 홀로 누워 있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294쪽)


“나 여기 올라와서 아직까지 한 명도 만난 사람이 없어요. 형 말고 말해본 사람도 없고.” (314쪽)


+


《눈감지 마라》(이기호, 마음산책, 2022)


엄지손가락만 해져 있었다

→ 엄지손가락만 하다

→ 엄지손가락만큼 작다

11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 다른 무엇이 되어 가는 듯했다

→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했다

38


그게 다 자신의 기초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 이는 다 제 밑동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밑머리가 어리숙하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바탕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41


가끔씩 놀라기도 했으니까

→ 가끔 놀라기도 했으니까

124


바로 고향인 무안으로 내려갔다

→ 바로 둥우리 무안으로 갔다

→ 바로 보금자리 무안으로 갔다

158


오래된 구옥 20여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동네였다

→ 오래된 집 스무 채 즈음 모은 작은 마을이다

→ 옛집이 스무 채 즈음 모인 작은 마을이다

26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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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 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
엄마페미니즘탐구모임 부너미 지음 / 민들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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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10.

인문책시렁 418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부너미

 민들레

 2019.2.28.



  ‘마누라’가 높임말이라 하더라도, 이 낱말을 쓰는 사람이 ‘사람답지 않은 마음’이라면, ‘마누라·마님’ 모두 낮춤말인 듯 깎아내리려는 자리에 함부로 씁니다. ‘계집·가시내’는 낮춤말이 아닌 높임말이라고 할 만한 말밑이요 말뿌리이지만, 정작 숱한 사내는 ‘계집·가시내’를 “한짝(함께 살아갈 짝)을 깎아내리거나 얕보거나 놀리려는 마음을 듬뿍 얹어서 마구마구 내뱉”기 일쑤였습니다. 워낙 높임말이라 할 말밑이요 말뿌리였어도, 우리 스스로 어떤 마음으로 낱말 하나를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낱말 하나는 엉겁결에 낮춤말 자리로 곤두박을 칩니다.


  ‘사내’를 가리키는 ‘머스마’는 ‘머슴’하고 같습니다. ‘머슴’이라 하면 낮은자리인 사람을 나타낸다고 여기지만, 정작 ‘머슴·머스마’가 같은말인 줄 알아채지 못 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사내는 ‘머슴·머스마’라는 낱말을 능구렁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마누라·마님·마나님’과 ‘계집·가시내’라는 낱말은 아무렇게나 밟거나 깔본 나날을 꽤 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얄궂고 멍청한 나라입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아줌마’로 살아가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그저 마땅한 일인데, ‘들빛(페미니즘)’을 밝히는 사람이 짝을 안 맺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이기에 꼭 짝을 맺어야 하지도 않습니다. ‘무지개(페미니즘)’을 바라건 안 바라건, 짝을 맺고 싶으니 짝을 맺어요. ‘너나우리(페미니즘)’를 바라건 안 바라건, 짝을 안 맺고 싶으니 짝을 안 맺습니다.


  가시내가 다 똑같을 수 없고, 사내가 다 마찬가지일 수 없습니다. 한 걸음씩 떼는 사람이랑, 한 걸음조차 안 떼는 사람은 달라요. 겉몸이 순이라서 다르거나 돌이라서 다르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가고 살림하는 매무새에 따라 다릅니다. 전라도에 살거나 경상도에 살기에 다를까요? 터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터는 핑계나 겉모습입니다. 어느 곳에 살든 ‘스스로 짓는 마음’에 따라서 삶과 살림이 다릅니다. 전라도에 살아도 꼰대이면서 닫힌 사람이 수두룩하고, 경상도에 살아도 밝고 열린 사람이 숱합니다.


  짝을 맺고 살아가려고 한다면, 짝을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이루려 할 적에 서로 아름답게 사랑이면서 서로 한꽃같이 사랑을 나눌는지 생각하고 얘기하고 나누면서 길을 새롭게 열 노릇입니다. 짝을 안 맺고 살아가려고 한다면, 나로서는 짝을 안 맺을 마음이되, 스스로 이 터전에서 어느 자리에 서서 어느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웃·동무하고 어떻게 어울리는 살림과 사랑을 지으려 하는지 생각하고 얘기하고 나누면서 길을 새롭게 틔울 노릇입니다.


  짝맺기를 하기에 아기를 낳아서 돌봅니다만, 모든 사람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이지 않습니다. 짝맺기를 해서 아기를 낳더라도, 누구는 하나를 가까스로 낳고, 누구는 서넛이나 대여섯이나 열쯤 낳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기를 똑같이 낳아야 할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짝을 맺고도 아기를 안 낳으면서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습니다.


  아름길(페미니즘)은 그저 아름빛을 심고 가꾸는 길입니다. 온길(페미니즘)은 내가 나부터 사랑하면서 너를 너로서 나와 마찬가지인 하늘빛으로 헤아리면서 오롯이 살리는 온숲하나요, 온숲노래입니다. 참길(페미니즘)은 나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하게 삶을 일구면서, 나너없이 너나하나라는 꽃길을 아름답게 하나로 이루는 나날입니다. 한사랑(페미니즘)은 바로서기이기도 하되, 들빛으로 하나를 이루는 한꽃사랑이라고도 여길 만합니다. 우리는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낱말에 얽매일 까닭이 없습니다. 나답고, 너답고, 서로 하나이자 다 다른 하늘빛인 숨결과 넋인 줄 알아볼 노릇입니다.


  아기를 낳아서 딸아들 모두 푸른넋(페미니즘)을 품을 줄 알 적에 어깨동무(페미니즘)를 이룹니다. 온삶빛(페미니즘)을 바라보고 배우는 하루이기에 한꽃같이(페미니즘) 숲하나를 이룰 뿐 아니라, 빛길(페미니즘)을 여는 수수꽃(페미니즘)에 이르게 마련입니다. 낱말을 굴레처럼 붙잡지 않을 적에 스스로 싹틔웁니다. 낱말 하나는 낟알 하나와 같아요. 낱말도 말씨(말씨앗)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스스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바다처럼 품으려는 눈길이기에 수수한꽃(페미니즘)을 피우고서 씨앗을 맺어서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꽃살림(페미니즘)을 바라보기에 너는 꽃순이요 나는 꽃돌이로서 함께 꽃사람으로 섭니다. 꽃이란, 스스로 곱게 피어날 줄 아는 빛이라는 뜻이면서, 스스럼없이 시들어서 씨앗을 맺고 열매로 무르익어서 뒷사람한테 자리를 내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시내도 꽃이고 사내도 꽃입니다. 그래서 암꽃과 수꽃인걸요. 암꽃과 수꽃이 나란하기에 온누리가 푸른별을 이루고, 암나무와 수나무가 어울리기에 이곳이 파란별로 반짝반짝 즐겁습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여러 사람 여러 목소리를 다룹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 다 다르게 손을 잡습니다. 똑같이 손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름을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결혼하나요?”라든지 “페미니스트가 결혼을 하면?”쯤으로 붙이면 훨씬 나았으리라 봅니다. ‘페미니스트’라는 길이 ‘끝장’을 바라지 않는다면, 짝을 맺을 적에 어떻게 아름살림을 바라보느냐 하고 풀어내면 될 노릇입니다.


  목소리만 내기보다는, 말소리를 서로 주고받을 적에 어느 집에서나 아름살이(페미니즘)를 이룹니다. 이제껏 멍청한 사내가 머저리 같은 웃사내질(가부장권력)을 해왔기에, 이제부터 가시내가 웃가시내질을 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위아래 없이 어깨를 겯는 길일 때에 비로소 온숲넋(페미니즘)입니다. 잘잘못을 가리고 따지면서도, 오늘부터 함께 살림을 짓는 참눈을 틔우려고 하기에 풀꽃하나(페미니즘)입니다.



‘마누라’가 배우자를 향한 존칭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70쪽)


나는 “한국 남자는 다 똑같아. 비혼, 비출산이 답이야”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자라고 다 똑같지 않다. 차려주는 밥만 먹는 남자와 요리하는 남자는 다르고, 돈 버는 유세를 떠는 남자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남자는 많이 다르다. (87쪽)


드라마 속 여자는 책을 읽지 않는다 … 과연 책은 누가 더 많이 읽을까? (97쪽)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빠가 혼자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생가해 보면, 나 또한 서툴다는 이유로 남편의 육아 기회를 빼앗은 적이 있다. 나도 처음부터 육아를 잘했던 것은 아니라고 분노하면서도, 남편이 육아에 숙련될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독박이 더욱 견고해질 뿐이다. 놀랍게도 우리 아이를 가장 잘 돌보는 사람은 친정 아빠다. 어찌나 잘 놀아주는지 아이가 할아버지만 오면 온종일 생글생글 웃는다. (123쪽)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선택권을 넓히고 남성의 선택권을 줄여야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에게 젠더 경계를 넘나드는 더 넓은 선택지를 보여준다면, 여자아이들의 선택지도 자연스레 넓어질 것이다. (134쪽)


여자에게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남자아이에게만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면 충분할까? 남자아이도 자신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5쪽)


남편이 밤늦도록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애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고, 그건 내가 집에서 그의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정신승리를 해왔지만 ‘돈 버는 유세’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155쪽)


나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으로 동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때 나는 고마워했던가. 도시락을 싸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노력이라도 해봤던가. 그때의 나는, 우리 엄마의 수고와 고마움도 모르고 밥을 받아먹는 지금 내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223쪽)


+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부너미, 민들레, 2019)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 종이쪽도 맞들면 낫다?

→ 종이도 맞들면 낫다?

22쪽


노선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각오나 실천이 수반되는 건 아니었다

→ 길이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다짐으로 뭘 해야 하지는 않는다

→ 갈피라고 해서 무슨 놀라운 뜻으로 뭘 펼쳐야 하지는 않는다

33


알림이 울린다. 조조할인을 받고

→ 울린다. 새벽에누리를 받고

→ 알려온다. 새벽마련을 하고

36


당연히 돕기 마련이다

→ 마땅히 돕는다

→ 으레 돕게 마련이다

63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고

→ 말은 생각을 다스린다고

→ 말에 따라 생각한다고

→ 말로 생각을 한다고

70


무언가가 변하면 그것을 따라 변화하는 것들이 있다

→ 무엇이 바뀌면 이에 따라 바뀌곤 한다

→ 하나가 바뀌면 덩달아 바뀌기도 한다

101


누군가 엄마기라는 말을 꺼냈다

→ 누가 엄마날이라는 말을 한다

→ 누가 엄마철이라고 말한다

121


내가 경력단절여성이었어?

→ 내가 일멎이였어?

→ 내가 쉬는순이였어?

→ 내가 일끊긴 사람이었어?

146


그건 내가 집에서 그의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정신승리를 해왔지만

→ 내가 집에서 그이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내세워 왔지만

→ 내가 집에서 그이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둘러대 왔지만

155


이틀 머물고 난 후에 시가로 향했다

→ 이틀 머물고서 버시집으로 갔다

→ 이틀 머문 뒤에 벗집으로 갔다

19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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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위하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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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7.

인문책시렁 431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0.4.14.



  나라지기를 뽑는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나라지기로 뽑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를 잊은 채 ‘나라’만 바라볼 적에는, 지난날 일본이 그들 나라 사람들을 ‘황국신민’과 ‘국민’이라는 허울을 들씌우면서 싸움터에 내몰았듯, 오늘날 이 터전도 매한가지이게 마련입니다.


  나라가 나를 살리지 않습니다. 나라는 너도 살리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살리고, 너는 네가 살립니다. 아주 쉬운 얼개예요. 누구나 스스로 숨을 쉬고, 스스로 똥오줌을 누고, 스스로 밥을 먹고서 삼켜서 삭입니다. 나라도 남도 못 해줄 뿐 아니라, 안 해줍니다.


  숨쉬기와 나라살림은 안 다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름답게 보금자리를 일구는 터전에서 ‘집’부터 사랑으로 돌볼 적에는, 나라가 어떤 짓을 하든 우리 삶을 못 건드려요. 이와 달리 우리가 ‘나와 너가 어울리는 보금자리’를 잊은 채 ‘나라’에 얽매일 적에는 스스로 갇힙니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를 읽었습니다. 뜻깊은 줄거리를 다루되, 군말이 좀 많아서 아쉽습니다. 강준만 씨가 쓰는 글에 왜 군말이 이토록 많을까 하고 갸우뚱했는데, 강준만 씨는 ‘꾸중(비판)’은 하되, ‘달래기(대안제시)’는 못 하더군요. 누가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얄궂거나 뒤틀리거나 엉터리이거나 거꾸로이거나 감춘다고 잘 꾸중하지만, 막상 이 모든 잘못과 말썽이 제자리로 잡아가는 길을 차근차근 달래듯 풀어내지는 않거나 못 합니다.


  누가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잘못 짚으면서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는 꾸중은 잘 하지요.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바꾸고 고치고 갈고닦으면서 새길과 새일과 새틀로 일어서면서 나아갈 노릇인가 하고 달랠 줄은 모른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곰곰이 짚을 노릇입니다. 달래지 않는 꾸중은 참말로 꾸중이라 할 만한가요? 이제부터 어떻게 바꾸고 다독여야 하는지 밝히지 않는다면, 꾸중(비판)마저 아닌, 혼잣말이지 않나요? 둘레(사회)에서 굵직굵직하게 터지는 갖은 잘못과 말썽을 ‘구경’하면서 ‘구경글(관전평)’은 쓰되,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꾸고 가다듬어서 이 터전을 일으킬 만한가 하는 대목은 생각하지 않는 쳇바퀴라고 느낍니다.


  얄궂은 놈을 꾸중하는 일은 안 나쁩니다. 그러나 꾸중만 하다보면 ‘꾸중거리’만 찾아나서고 맙니다. ‘꾸중거리’에 스스로 갇혀서 ‘앞으로 꾸중거리가 사라지면 아무 말을 못 하는 판’일 테지요. 오늘날 거의 모두라고 할 만한 글(문학·언론보도)을 보면 ‘꾸중거리’를 ‘특종’으로 찾아내려고 눈이 벌겋습니다. 왜 꾸중만 해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 이 삶을 짓고 가꾸는 ‘아름이웃’을 알아보려는 길에 서야 하지 않을까요? 왼손으로는 꾸중을 한다면, 오른손으로는 아름이웃을 알아보면서 북돋우고 손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두 손으로 그저 꾸중과 꾸지람과 타박만 해댄다면, ‘꾸중꾼(비평가)’은 꾸중꾼대로 ‘일거리’가 늘 있어서 ‘굶을’ 일이 없겠구나 싶습니다만, 이래서야 아름나라로는 한 발짝도 못 내딛습니다.


ㅍㄹㄴ


구세대는 입으로는 페미니즘의 옹호자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들의 몸과 마음은 가부장제에 찌들어 있는 중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990년대생 남성의 반페미니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과거 세대의 과오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도 페미니즘은 ‘남자 대 여자’라고 하는 전통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싹트기 시작한 반감이 갈등의 증폭 과정을 거치면서 ‘페미니즘 사상 검증’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건 아닐까? (61, 62쪽)


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에서는 ‘51대 49’로 이긴 승자는 아슬아슬하게 이겼음에도 독식을 하고 49퍼센트의 목소리는 대변되지 못한다. 우리 편이 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편을 공격해 승리하는 것을 정치의 본질로 삼는 이 모델에선 누가 승리하건 나라는 골병든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승자독식의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가? (92쪽)


그런데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민주화가 이루어질 대로 이루어진 오늘날에도 유시민이 그 시절의 선명한 선악 이분법의 사고 틀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93쪽)


1980년대의 운동권을 지배하던 사고 가운데 ‘조직 보위론’이란 게 있다. 조직 보위론은 ‘진보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해야 하며, 따라서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이를 조직 밖으로 알려선 안 된다는 논리다. 바로 이 논리에 따라 운동권 내부의 많은 성폭력 사건이 철저히 은폐되었고, 피해자에겐 이중·삼중의 고통이 가해졌다. 유시민은 ‘조직 보위론’의 신봉자로서 이미 여러 차례 이와 관련된 논란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는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직 보위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왜 유시민은 세상을 그렇게 일관성 있게만 살려고 하는 걸까? 왜 다른 생각은 전혀 못해 보는 걸까?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묻는 거다. (94쪽)


물론 우문愚問이긴 하다. 유시민은 “보수 정당에서 세종대왕님이 나오셔도 안 찍는다”고 말할 정도로 선악 이분법을 체화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문재인 정당에서 누가 나와도 찍는다”는 말일 텐데, 이건 민주주의라기보다는 ‘군주주의’다. (95쪽)


우리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대해 적대적이다. 온갖 비난과 욕설마저 불사하는 사람도 많다 …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고 신나는 건 없다는 속설은 패싸움의 경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데 패싸움은 그 속성상 논리와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무조건 자기편이 이기는 것만이 정의와 공정의 기준이 된다. (229, 230쪽)


+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0)


승자독식을 기반으로 하는 이 모델에서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반감을 느끼거나 더 증오하는 ‘최악最惡’의 정당을 응징하기 위해 ‘차악次惡’의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를 한다

→ 혼자쥐는 이 틀에서 사람들은 더 꺼리거나 미워하는 ‘가장 몹쓸’ 무리를 뭉개려고 ‘덜 몹쓸’ 무리를 고르려고 찍는다

→ 휘어잡는 이 얼개에서 사람들은 더 밉거나 싫어하는 ‘가장 나쁜’ 놈을 밟으려고 ‘덜 나쁜’ 놈을 뽑으려고 한다

92쪽


그런 상황에서 의심과 확신의 경계는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 그런 판에 못미덥거나 믿는 금은 쉽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 그러면 갸웃거나 미더운 갈피는 쉽게 무너진다

93쪽


물론 우문愚問이긴 하다

→ 뭐 바보같긴 하다

→ 다만 덜되긴 하다

95쪽


이 말을 뒤집으면 “문재인 정당에서 누가 나와도 찍는다”는 말일 텐데, 이건 민주주의라기보다는 ‘군주주의’다

→ 이 말을 뒤집으면 “문재인 무리에서 누가 나와도 찍는다”일 텐데, 이는 들꽃나라라기보다는 ‘마구나라’다

→ 이 말을 뒤집으면 “문재인 두레에서 누가 나와도 찍는다”일 텐데, 이는 바른길이라기보다는 ‘사슬나라’다

95쪽


온몸에 체화된 습관이요 신앙이다. 진영 논리라고도 부르는 이분법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해득실 차원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 온몸에 길든 믿음이다. 무리짓기라고도 하는 갈라치기는 저희 쪽 길미로만 온누리를 보고 따진다

→ 온몸에 들러붙은 믿음이다. 숨은담이라고도 하는 금긋기는 저희가 좋으냐 나쁘냐로만 보고 잰다

13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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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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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6.

인문책시렁 428


《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글

 야마구치 하루미 그림

 박제이 옮김

 청미

 2025.2.20.



  전남 고흥에는 즈믄나무(1000년수)가 있습니다만, 군청은 “관리하기 귀찮”아서 숲빛(천연기념물)으로 올리지 않더군요. 그냥 팽개칩니다. 이뿐 아니라, 즈믄나무 바로 옆에 있는 어느 밥집은 저희 가게로 나뭇가지가 그늘을 드리운다고 하면서 함부로 가지를 동강내었고, 군청은 나무한테 바짝 붙여서 정자까지 짓느라 굵은가지를 치기도 했습니다.


  할 말을 잃을 만한 짓이어서 이제 더는 군청에 대고 말을 안 합니다. 그저 고흥읍 한켠에 선 즈믄나무 옆을 지날 적마다 나뭇잎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너는 늘 푸르고 튼튼해. 즈믄해를 살아왔으니 요 몇 해쯤 너한테는 아무것이 아닌 줄 알 테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나가면 이 모든 부스러기는 다 사라질 테니까, 아무쪼록 새롭게 즈믄해를 살아가기를 바라.” 하고 속삭입니다.


  《산기슭에서, 나 홀로》를 읽었습니다. 지난 2020년 언저리에 돌림앓이로 푸른별이 들끓을 즈음 큰고장을 떠나서 멧자락에 깃들며 지낸 이야기를 풀어낸 꾸러미입니다. 글쓴이는 돈이 있기에 멧자락에 땅을 사고 집을 얻어서 지내었지만, 돈이 없거나 적은 분은 시골살이를 엄두를 못 내었겠지요. 그러나 시골살이는 돈만으로 하지 않아요. 서울살이(도시생활)를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우리 집과 땅’을 장만해서 고즈넉이 지낼 만합니다.


  ‘서울살이’에 길든 몸을 ‘멧골살이’로 바꾸기란 어려울 만한데, 애써 매무새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천천히 놀면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새길을 배우려면 여러 해를 느긋이 들일 노릇이에요. 하루아침에 못 배웁니다. 하루아침에 장작패기를 잘 해낼 사람은 없습니다. 한 달도 안 되어 호미질을 솜씨있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한 해만에 심고 거두는 흙살림을 훌륭히 하지 않습니다.


  서울에 처음 깃들어 자리를 잡기까지도 꽤 길게 보내야 합니다. 어느 고장이든 적어도 열 해쯤은 눌러앉고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흔들려 보아야 비로소 고을빛을 느끼고 마을빛을 헤아리지 않나요? 시골에서도 열 해쯤 느긋이 놀듯 보낼 적에 비로소 시골빛을 헤아리면서 품을 만합니다. 이런 대목으로 본다면 《산기슭에서, 나 홀로》는 꽤 섣부른 줄거리입니다. 몇 해 살지 않고서 덥석 써낸 글이라서 이모저모 아쉽거나 아리송하더군요. 글을 꾸준히 썼더라도, 열 해쯤 시골살이를 한 발자취를 가다듬어서 책으로 꾸렸다면 빛났으리라 봅니다.


ㅍㄹㄴ


장마가 끝나면 반딧불이의 계절도 끝난다. 어느 날 문득,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해도 반딧불이의 계절을 놓치고 만 것이다. (35쪽)


우물물을 퍼 올리는 펌프도 고장 나서 교체했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니 기계가 못 버텨줄 뿐 아니라 고치려 해도 부품이 없다고 했다. (47쪽)


나에게 이렇게까지 ‘집순이’ 기질이 있었던가 싶어서 놀란다. 그랬다. 어릴 때부터 ‘읽기’와 ‘쓰기’가 좋았다. (75쪽)


옛날 사람들은 다리가 튼튼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시골사람일수록 걷는 거리가 적다. 아주 조금 떨어진 곳이나 장을 보러 갈 때도 자동차로 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114쪽)


#上野千鶴子 #八ヶ岳南麓から


+


《산기슭에서, 나 홀로》(우에노 지즈코/박제이 옮김, 청미, 2025)


친구란 참 고마운 존재여서 일단 신뢰 관계가 생기면

→ 동무란 참 고마워서 문득 믿으면

→ 동무란 참 고마우니 암튼 믿으면

7쪽


줄곧 이 산속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 줄곧 이 멧집에 머무른다

→ 줄곧 이 멧골집에 머문다

10쪽


활엽수가 나뭇잎을 죄 떨구고, 낙엽송마저 바늘 같은 잎을 떨구고 나면 숲은 순식간에 환해진다

→ 넓은잎나무가 잎을 죄 떨구고, 잎갈나무마저 바늘 같은 잎을 떨구고 나면 숲은 어느새 환하다

14쪽


산속 집을 불규칙하게 오가다 보니

→ 멧골집을 더러 오가다 보니

→ 멧집을 이따금 오가다 보니

→ 멧집을 드문드문 오가다 보니

20쪽


하계(下界)의 벚꽃이 다 지고

→ 땅에는 벚꽃이 다 지고

→ 이곳은 벚꽃이 다 지고

22쪽


주변에 종묘 농가가 여럿 있어서

→ 마을에 씨앗집이 여럿 있어서

→ 모를 파는 여러 집이 있어서

26쪽


산에 살아서 좋은 점은 화목 난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 멧골서 살면 나무를 땔 수 있어서 즐겁다

→ 멧집에서는 불을 땔 수 있어서 신난다

→ 멧골에서는 나무로 불을 때니 포근하다

39쪽


산 땅의 지목은 산림이다

→ 산 땅은 숲이다

→ 산 땅은 갈래가 숲이다

42쪽


두 번째 초간단요리는 역시나

→ 둘째 단출밥은 아무래도

→ 다음 쓱삭밥은 뭐

→ 이다음 뚝딱밥은

63쪽


1년에 한 번 산나물 튀김 파티를 주최하는데, 무척 큰 즐거움이다

→ 해마다 멧나물튀김잔치를 여는데 무척 즐겁다

→ 봄마다 멧나물튀김잔치를 무척 즐겁게 연다

86쪽


너무나도 훌륭한 싱글 라이프이기에 나는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 혼길이 더없이 훌륭하기에 나는 이름도 못 내밀겠구나

→ 혼살림이 무척 훌륭하기에 나는 얼굴도 못 내밀겠구나

→ 혼자서 참으로 훌륭히 살기에 나는 쪽도 못 내밀겠구나

89쪽


주변에 나 홀로족이 점점 늘고 있다

→ 둘레에 나홀로가 차츰 는다

→ 곳곳에 혼살림이 꾸준히 는다

101쪽


로그아웃만 하면 순식간에 나만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 나오기만 하면 바로 내 틈으로 돌아온다

→ 떠나기만 하면 곧장 내 삶으로 돌아온다

106쪽


주소를 하나로 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집을 하나로 둘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 사는곳이 하나일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113쪽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을 지으리라는

→ 마당이 딸린 한채를 지으리라는

→ 마당이 딸린 홑채를 지으리라는

15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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