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9일 일요일 10시에 〈책과 아이들〉에서 펴는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 ㅁ 말과 마음’ 자리에서 나눌 밑글입니다. ‘말·마음’이라는 낱말이 태어난 뿌리를 짚으면서 ‘다읽음’ 이야기를 곁들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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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9. ‘다 읽었다(완독)’는 덫
적잖은 분들이 “다 읽었다”고 말한다. 한자말로 하자면 ‘완독’일 텐데, 책읽기에 ‘다읽음(완독)’이란 없다. 아예 있을 수 없다. 책읽기를 놓고 본다면, 때와 철과 해에 따라서 “다 다르게 읽기”만 있다. 다섯 살에 읽은 그림책은 “다섯 살 다읽음”인가? 아니다. 여섯 살에 새롭게 읽고, 일곱 살에 새삼스레 읽고, 여덟 살에 새록새록 읽는다. 열 살에 눈을 반짝이며 읽고, 열다섯 살에 다시 깨우치면서 읽으며, 스무 살에 남다르게 밝히는 눈망울로 읽는다. 또한 서른 살과 마흔 살에 읽는 그림책이 다르다. 쉰 살과 예순 살을 지나면서 손에 쥘 적에는 또 다르며, 일흔 살과 여든 살에 읽을 적에도 다르게 마련이다.
“첫줄부터 끝줄까지 훑기”를 놓고서 ‘다읽음(완독)’으로 여겨 버릇하는데, 이런 책버릇은 매우 고약하다. 고작 슥 애벌로 훑고서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겨우 맛보기를 했을 뿐이다. 첫여름이 저물면서 한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에 대추꽃이 핀다. 대추꽃은 ‘늦잠꽃’인데, 2025년에 대추꽃을 보았다면 2025년에 보았을 뿐이다. 2020년에 본 대추꽃하고 2025년에 마주하는 대추꽃은 다르며, 몸과 마음과 눈과 숨결에 다르게 흐르며 스민다. 2030년과 2050년에 새삼스레 만날 대추꽃은 그때에 맞게 우리한테 새록새록 울릴 테지.
우리는 ‘다읽음(완독)’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읽기’를 할 수 있다. 나는 보임꽃(영화)을 놓고서 “이제 다섯벌쯤 보았습니다.”라든지 “이제 쉰벌쯤 보았습니다.”처럼 말한다. 그리고 “드디어 온벌(100번) 넘게 보았으니 보임꽃글(영화평)을 쓸 수 있겠어요.” 하고 말한다. 나는 책글(서평)을 쓸 적에도 ‘애벌읽기’만 마친 뒤에 쓰는 일이 없다. 아무리 적어도 석벌이나 닷벌쯤은 되읽고 나서야 쓸 수 있는 책글이다.
노래책(시집)을 사읽다 보면 책끝에 책글(서평·문학비평)이 붙는데, 여태 읽은 ‘노래책 책글’ 가운데 노래를 닷벌이나 열벌쯤 되읽고서 쓴 책글은 아예 없다고 느낀다. 다들 애벌이나 두벌쯤 훑고서 얼른 마쳤다고 느낀다. 글빗(평론)을 하는 분부터 스스로 열벌이나 스무벌쯤 곱씹을 만한 노래가 아니라면 섣불리 책글을 안 써야 마땅하다고 본다. 닷벌을 겨우 읽을 만한 노래라면 따갑고 까칠하게 나무라는 글빗을 펼 노릇이다.
아이곁에 서서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를 헤아려 보자. 아기한테 하루만 젖을 잘 물리면 끝나지 않는다. 아기가 젖을 떼는 날까지 날마다 새롭게 젖을 물려야 하고, 젖을 떼면 이제부터 젖떼기밥으로 넘어가고, 젖떼기밥을 거쳐서 ‘그냥밥’으로 나아가고, 바야흐로 ‘소꿉’을 지나고 ‘살림’으로 넘어온다.
날마다 숱한 책이 쏟아지되, 적잖은 책은 ‘애벌훑기’ 비슷하게 ‘애벌쓰기’로 끝난 채 태어난다고 느낀다. 몇 해쯤 해본 일을 글로 풀어내어도 나쁘지는 않지만, 더 차분히 더 느긋이 더 즐겁게 더 두고두고 삭이고 풀고 품은 손길로 가다듬으면서 이야기를 여미어 내놓아야 아름답지 않을까? 작은책 한 자락부터 오롯이 사랑으로 추스르면서 이웃하고 기쁘게 나누려는 이야기씨앗을 심을 노릇이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 스스로 ‘다읽음(완독)’이라는 덫에 갇히는 매무새로 자꾸자꾸 다른 새책을 덥석덥석 베어물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애벌훑기’를 못 내려놓을 뿐 아니라 ‘애벌쓰기’에 사로잡힌 책이 쏟아진다고 느낀다. 큰보람(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애벌쓰기에 갇힌 글과 책이 수두룩하다. ‘100’을 안 채우더라도 ‘온벌읽기·온벌쓰기’를 헤아릴 때라고 본다. 온눈으로, 온빛으로, 온사랑으로, 온마음으로, 온몸으로, 온별로, 온해로, 온철로, 온날로, 온누리로, 온꿈으로, 오롯하면서 옹글게 여미는 열매 하나를 나누기에 비로소 ‘책’이라는 이름에 걸맞다고 본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