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걸어다니는 (2024.12.30.)

― 광주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해끝에 서는 달을 ‘섣달’이라 하고, 섣달인 열둘쨋달이 지나면 곧바로 ‘설날’입니다. ‘섣달·설날’은 ‘서’가 밑동입니다. ‘서다(서 + -다)’인데, 막아서거나 멈춰서는 ‘서다’가 있고, 나서거나 일어서는 ‘서다’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그곳에서 늘 바뀝니다. 마주서고 다가서는 사이라서 ‘서로’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꽃과 벌레와 나무와 새하고도, 얼마든지 서로 만나고 잇습니다. 함께 어울리기에 서로 사이(새)가 있으니, 늘 새롭게 새록새록 이야기를 지핍니다.


  광주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로 찾아갑니다. 시외버스를 내린 뒤에 천천히 햇볕길을 따라서 걷습니다. 시외버스도 서는 큰길은 엄청나게 시끄럽지만, 사람들이 서성일 수 있는 마을길인 골목은 매우 조용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손을 뻗어야 합니다. 책을 찾으려면 책시렁을 서성여야 합니다. 책을 장만했으면 손에 책을 쥐고서 집으로 즐겁게 걸어갑니다. 집에 앉아서 나름길(택배)로 책을 받을 수도 있되, 스스럼없이 길을 나서서 새빛을 찾아나서려는 몸짓을 연다면, 이웃집과 하늘빛과 철바람과 겨울나무까지 고루 만납니다.


  이미 떠나고 없는 분을 그리면서 마음과 마음을 이으려고 책을 읽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더라도, 낯선 이웃이 어떤 꿈으로 하루를 지었는지 살펴보며 배우려고 책을 읽습니다. 손을 뻗어야 서로 맞잡고 마음을 잇듯, 손으로 한 쪽씩 천천히 넘기면서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야기로 이룬 책이 있습니다. 들빛으로 푸른 풀꽃나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과 푸나무와 뭇숨결이 살아가는 들숲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사랑이라는 책이 온누리에 있습니다. 새삼스레 밤빛이 밝은 설날이 오는 길목입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누리는 올해를 내려놓고서 이듬해를 그리는 오늘입니다.


  미국에서 트럼프는 ‘병의학 커넥션’을 없애려고 한다더군요. ‘아기떼기(낙태법)’를 놓고서 왜 말이 많은가 하고 들여다보니, ‘태아 장기 적출’을 하며 장사하는 무리가 무척 크군요. 여태 몰랐는데, 여러 담(커넥션·권력집단)은 ‘뱃속아기(태아)’를 떼내어(적출) ‘생체실험’을 몰래 해왔더군요. 미리맞기(백신)로도 뒷돈을 버는 담이 드높은데,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 하는 곳마다 꿍꿍이가 흘러넘쳐요. 우리는 어느 만큼 담벼락에 다가서서 하나하나 헐어낼 수 있을까요.


  걸으며 생각합니다. 걷다가 멈춰서서 생각합니다. 다시 걸으며 생각합니다. 머잖아 봄볕으로 건너갈 겨울볕이 스미는 나무 곁에 서서 생각합니다.


 ㅍㄹㄴ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질베르 아슈카르/팔라스타인 평화연대 옮김, 리시올, 2024.3.1.)

《나사와 검은 물》(쓰게 요시하루 외/한윤아 옮김, 타이그래스 온 페이퍼, 2022.8.)

《독서와 일본인》(쓰노 가이타로/임경택 옮김, 마음산책, 2021.10.30.첫/2021.12.20.2벌)

《불멸의 인절미》(한유리, 위즈덤하우스, 2024.8.14.)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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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박꽃 여러 송이 (2025.3.16.)

― 부산 〈책과 아이들〉



  누가 순천이라는 고장은 어떠하느냐 묻는다면 “순천에는 〈형설서점〉이 있어서 빛납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누가 진주라는 고장은 어떠하느냐 물으면 “진주에는 〈동훈서점〉과 〈즐겨찾기〉가 있어서 반짝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제가 책벌레이기도 하지만, 고을빛이나 고장빛을 헤아릴 적에는 ‘고을책집·마을책집’을 골목빛으로 삼아서 두런두런 속삭이면서 즐겁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부산을 드나들며 ‘부산내기한테 부산이웃’으로 지내는 나날입니다. 부산에 계신 분한테는 ‘전라이웃·고흥이웃’일 수 있고, 제가 나고자란 데는 인천이라서 ‘인천이웃’으로 삼을 수 있고, 그냥그냥 ‘글이웃·말이웃’으로 여길 만하며, ‘마음이웃·들숲메이웃’으로 바라보아도 반갑습니다.


  첫봄비가 내리다가 멎다가 또 내리다가 멎는 하루입니다. 전남 고흥에 있는 우리 보금자리는 동박꽃이 이제부터 피어나려 하는데, 부산은 이미 거의 지거나 막바지입니다. 거제동 〈책과 아이들〉에서 ‘바보눈(이오덕읽기모임)’ 11걸음을 펴다가 문득 동박꽃을 여러 송이 줍습니다. 동박새가 동박꽃을 즐기는 줄 아는 분이 이따금 있습니다만, 동박새를 만난 이웃은 적고, 동박꽃을 손수 거두어 꽃잎과 꽃가루를 아삭아삭 천천히 먹는 이웃은 드뭅니다.


  “꽃을 먹어요? 동박꽃도 먹어요?” 하고 묻는 이웃님한테 빙그레 웃으면서 “네, 저는 벌레먹은 꽃잎이 있든, 개미가 볼볼 기든, 반갑게 먹어요. 토끼나 염소나 소도 그렇거든요. 벌레먹거나 개미나 애벌레가 있어도 토끼랑 염소랑 소는 그냥 통째로 꽃과 잎을 먹습니다. 사람도 꽃잎과 풀잎과 나뭇잎을 옛날 옛적부터 빗물에 씻어서 기쁘게 밥살림으로 맞이했어요.” 하고 들려줍니다.


  요즈음 온나라는 ‘우두머리’를 둘러싼 실랑이로 시름시름 힘겹다고 여깁니다. 아무래도 ‘나라일꾼’이 아닌 ‘나라힘꾼’을 뽑은 탓인데, 모름지기 모든 벼슬자리(공직자)는 처음부터 ‘일자리’ 아닌 ‘힘자리’예요. 사람들을 헤아리는 길하고 동떨어진 벼슬길이라서, 참말로 이제부터 다시 살펴서 세울 노릇입니다.


  윤석열 씨를 사슬터(감옥)로 보낼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두멧시골에 ‘500평 밭과 땅과 오두막’을 베풀어서, ‘두멧시골 오두막살이 서른 해’를 살도록 이끌면 되리라 봅니다. 지난날 박근혜 씨한테는 ‘들숲 12000평과 오두막과 호미·낫·쟁기’를 베풀어서, ‘꽤 넓은 논밭을 오직 손연장만으로 풀을 베고 거두고 가꾸는 시골일’을 시킬 노릇이라고 봅니다. 손수짓기(자급자족)를 해본 적이 없느라 말썽을 일으킨 분은 사람 발길 안 닿는 멧숲으로 보내야 스스로 뉘우칩니다.


ㅍㄹㄴ


《살아있다는 것》(유모토 가즈미 글·사카이 고마코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25.1.20.)

#湯本香樹實 #酒井駒子 #橋の上で

《열두 살의 전설》(고토 류지/박종진 옮김, 우리교육, 2003.11.30.)

#後藤?二 #鈴木びんこ #後藤龍二 #12歲たちの傳說

《암은 병이 아니다》(안드레아스 모리츠 글/정진근 옮김, 에디터, 2014.1.3.첫/2021.5.15.고침)

#내몸의마지막치유전략 #AndreasMoritz #CancerIsNotADisease #ItsaHealingMechanism

《우리말 글쓰기 사전》(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19.7.22.)

《쉬운 말이 평화》(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1.4.23.)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5.3.28.)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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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랑 놀기 (2024.10.10.)

― 부천 〈빛나는 친구들〉



  해마다 한글날을 맞이하면 나라에서도 여러 한글모임에서도 으레 세종임금을 기리는 일을 꾀합니다만, 막상 ‘한글’이라는 이름을 짓고서 우리말·우리글을 널리 펴고 가르치는 첫길을 연 주시경을 기리는 일은 없다시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잊는데, 세종임금은 ‘훈민정음’을 폈되, “훈민정음을 가르치는 터전이나 틀”은 아예 하나도 안 마련했고 안 세웠습니다. 이 대목을 궁금하게 여기는 분도 여태 못 보았습니다.


  우리글씨인 새글을 가르치고 펴는 일을 주시경에 이르러서야 홀로서기(독립운동)와 맞물려 일으켰다는 대목을 찬찬히 짚을 때라야, 왜 오늘날 우리나라도 숱한 글꾼도 ‘우리말·우리글’을 한말답고 한글다이 쓰는 길하고 먼지 알 수 있어요.


  요즈음은 ‘무늬한글’이 넘칩니다. 겉으로는 한글이되, 속으로는 일본말씨나 옮김말씨나 중국말씨가 사납습니다. 얼굴이나 몸매만 곱상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곱상하지 않은 줄 안다면, ‘한글쓰기’만으로는 ‘우리말로 글쓰기’가 아닌 줄 깨달을 테지요. ‘우리말로 글쓰기’가 여태 자리잡지 못 한 터라, 어른도 어린이도 정작 우리말과 우리글이 더 어렵다고 여기곤 합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부천 송내초등학교 어린이를 만납니다. ㅇ샘님이 다리를 놓아서 한글날 이튿날에 어린배움터 아이들하고 ‘말·마음·나·너·우리·비·빛·바람·바다’를 하나로 아우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글날이라는 때에 “우리 낱말책을 쓰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대목을 묻는 자리를 누릴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또 이런 자리를 여는 길잡이가 있으면, 우리 앞길은 환해요.


  신나게 이야기꽃을 펴고서 〈빛나는 친구들〉로 걸어갑니다. 큰고장 한복판이지만, 배움터 길잡이와 마을어른이 뜻을 모아서 이 둘레는 “크고작은 새가 날아앉아서 쉴 수 있는 작은숲”이 있습니다. 작은숲을 일구려는 마음이 모이는 곳은 새한테도 어린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이바지합니다. 작은숲이 마을 복판에 있다면, 이 곁에 있는 마을책집을 드나드는 누구나 책빛을 한결 푸르게 누리겠지요.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면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안 만나기에 다투거나 엇갈립니다. 어떻게 마주하면서 어울리는지 생각할 하루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어른으로서 아이곁에 같이 놀면 됩니다. 아이들은 어른곁에서 실컷 놀면서 사랑이라는 눈빛과 몸짓을 베풉니다. 모든 말은 마음에서 싹트고, 모든 마음은 삶에서 자라고, 모든 삶은 말씨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모든 책은 바로 이곳에서 웃고 노래하는 살림빛으로 만나면서 남다르게 짙푸른 숲으로 깨어납니다.


ㅍㄹㄴ


《엄마는 의젓하기도 하셨네》(박희정, 꿈꾸는늘보, 2024.4.)

《1인 출판사의 슬픔과 기쁨》(조은혜와 10사람, 느린서재, 2024.9.30.)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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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재주와 고을빛 (2025.3.15.)

― 부산 〈카프카의 밤〉



  서울이 ‘으뜸고을’일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많고, 일도 많고, 펴냄터와 책집도 많습니다. 그러나 으뜸고을 한 곳만으로는 나라가 굴러가지 않아요. 숱한 작은고을과 시골이 밑바탕을 이룰 노릇이요, 여러 큰고을이 기둥으로 설 노릇입니다.


  비오는 저녁에 부산 〈카프카의 밤〉에서 ‘이응모임(이오덕 읽기모임) 11걸음’을 뗍니다. 오늘은 ‘이오덕·윤이상’ 두 분이 부산에서 맺고 얽힌 이음고리를 짚으면서 “걷고 다시 걷고 또 걷는 멧숲길에서 지은 노래”를 이야기합니다. 여러모로 보면, 부산은 이 땅에서 “품고 북돋우며 살리는 고을빛”이 아름다워요. 텃사람이든 아니든 살림꽃을 빛내는 즐거운 고을인데, 고을지기는 잘 모르는 듯해요.


  온누리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재주있는(유능)’ 매무새라고 느낍니다. 다 다르게 재주가 있을 뿐, 높은재주와 낮은재주로 가르지 못 한다고 느껴요. 나라(사회·정부)는 자꾸 높은재주를 섬기거나 내세우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다 다른 사람한테서 다 다른 빛”을 헤아릴 적에 “재주가 아닌 마음으로 빚고 짓고 가꾸는 살림길”을 읽고 이을 만하다고도 봅니다.


  지난날에는 아이가 “아직 재주는 조금 밭다고 하더라도, 마음씀을 헤아려서 철들어 가는 빛이 대견하구나 싶을” 적에 “훌륭한 아이(어린이·푸름이)”라는 말씨로 추키려는 뜻을 나누려고 했어요. 임금님이 조금 어리숙하더라도 온나라를 너그럽고 넉넉히 헤아리면서 곧은길과 살림길을 펼 적에도 “훌륭한 임금님”이라 일컬었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엉뚱하게 “재주있는 사람”한테 “훌륭한 재주”처럼 쓰곤 하는데, ‘재주’라면 “남다른 재주”나 “유난한 재주”나 “튀는 재주”나 “빼어난 재주”처럼 써야 알맞은 말씨일 텐데 싶습니다.


  ‘사랑매’라든지 “사랑해서 그랬어”라는 말씨는 아주 틀렸다고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랑이라면 때리거나 칠 수 없거든요. ‘살섞기(성관계)’는 “살을 섞는 몸짓”일 뿐, 사랑이 아닌데, 요즈음에는 ‘연애·애정행각’까지 자꾸 ‘사랑’이라고 뒤집어씌우기도 합니다. 말을 말답게 쓰지 않을 적에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길이 막히고, 말을 말답게 쓰려 할 적에는 마음을 스스럼없이 펴고 나누면서 살림짓기로 잇는다고 느껴요.


  재주를 너무 앞세운 탓에 마음이 뒤틀리거나 뒷짓·몰래짓으로 돈·이름·힘을 크게 벌면 그냥그냥 봐주기까지 하는데, 앞으로 이 땅을 아이들이 물려받아서 새롭게 가꿀 노릇이니, 이제부터는 마음씨를 살피고 말씨를 가다듬는 하루로 바꿀 일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교수대의 비망록》(율리우스 푸치크/김태경 옮김, 여름언덕, 2012.6.16.)

#Reportaz psana na opratce (1947년)

《타락한 저항》(이라영, 교유서가, 2019.3.22.첫/2019.5.17.2벌)

《볼륨디카시선 1 독창》(강미옥과 아홉 사람, 커뮤니케이션볼륨, 2024.9.9.)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5.3.28.)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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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 찬바람 찬꽃 (2024.10.19.)

― 부산 〈스테레오북스〉



  몸을 입기에 몸으로 삶을 누립니다. 몸을 잊고서 꿈길로 가는 밤에는 오롯이 마음으로 잠기면서 새빛을 마주합니다. 몸으로는 느끼고 받아들이고 내보냅니다. 마음으로는 생각이라는 씨앗을 틔우고 숨빛이라는 자리를 돌아봅니다.


  왜 몸이 있어야 하는지, 왜 순이돌이라는 몸이 다른지, 왜 아이어른이라는 길을 걷는지, 어릴적부터 늘 궁금했어요. 그러나 둘레에서는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 마음은 손으로 못 잡는지, 왜 마음은 눈으로 못 본다고 여기는지, 왜 마음이 다쳐도 몸이 아픈지, 왜 마음은 모두 풀고 품을 수 있는지, 어릴때부터 내내 궁금했어요. 그렇지만 마음길을 들려주는 어른을 못 만났습니다.


  어느 날 문득 ‘몸 없는 소리’를 듣습니다. “네가 궁금하면 네가 풀어. 남이 풀지 않아. 남은 궁금하지 않거든.” 적잖은 이웃은 절집에 다닙니다. 절집에 다니는 이웃은 이님한테도 저님한테도 비나리를 하면서 이모저모 묻는 듯하지만, 막상 이웃 스스로 넋에 대고 묻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서 줄거리를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요? 책에 깃든 이야기는 누구한테 묻지요? 책으로 무엇을 배울 만한지 누가 알려주어야 하나요? 책쓴이한테 물어보면 뽀족하게 길을 찾나요? 책쓴이가 이미 죽고 없으면 책을 읽어낼 수 없는가요?


  부산에 닿은 한가을 한낮이 우중충합니다. 구름이 짙게 덮습니다. 〈스테레오북스〉로 찾아갑니다. 골목은 시끌시끌하고 책집은 고즈넉합니다. 골목가게에는 손님이 붐비고 책집은 조용합니다. 찻집과 멋집과 밥집을 찾는 여러 이웃은 이곳에 책집이 있는지 모를 만합니다. 책집을 바라보는 책벌레는 이 골목에 다른 무슨 가게가 있는지 아예 안 쳐다봅니다. 서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셈입니다.


  몸을 내려놓은 살붙이를 그리며 눈물에 젖는 이웃이 많습니다. 비록 몸은 내려놓더라도 마음은 늘 우리 곁에 있어요. 너나들이로 어울릴 적에는,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서 살아도 한마음입니다. 몸을 내려놓고서 하늘로 떠난 분이라면,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신나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빙그레 노래하면서 지켜보리라 느낍니다.


  모든 하루는 나를 나로서 나답게 바라보고 찾아보고 알아보는 길이지 싶습니다. 맑고 밝게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여는 생각씨앗을 마음밭에 심는 오늘이지 싶어요. 늦가을이 코앞인 오늘은 찬비에 찬바람이 곧 밀려들 듯합니다. 가을꽃은 찬꽃마냥 오들오들 떨 테고요. 차가우니 찬날씨일 테고, 차분하면서 찬찬하고 참하니 찬빛이라고 느낍니다. 책 몇 자락을 주섬주섬 읽고 살피고서 일어납니다.


ㅍㄹㄴ


《고을 goeul vol.6 : 부산》(편집부, 로우프레스, 2024.8.16.)

《즐거운 육아를 추구합니다》(배소현, 오늘의기록, 2024.5.8.)

《북성로 맵시》(이준식 사진, 더폴락, 2018.10.20.)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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