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코앞에 두고서
아직 못 추스른
2018년 11월 이야기를
이제서야 끄적인다.
..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씨앗살림 (2018.11.10.)
― 진주 〈형설서점(즐겨찾기)〉
아이는 처음부터 잘 하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깨지고 자빠지면서 배웁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 잘 하지 않습니다. 어른도 곧잘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치면서 배웁니다. 그림책 《생쥐와 고래》(윌리엄 스타이그)는 삶과 살림과 사랑이 무엇인지 아주 쉽고 부드럽게, 더구나 상냥하게 들려줍니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순이 마음을 달래는 어른그림책’이 부쩍 나오는데, ‘어른 마음을 달래는 그냥그림책’은 오히려 드물어요. 그저 그림책으로 여미면, 아이어른이 나란히 마음을 달랠 뿐 아니라 북돋우게 마련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그림책’을 지을 때입니다.
힘이나 몸집이 비슷하기에 어깨동무를 할 수 있지만, 힘도 몸집도 다르기에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힘도 몸집도 다른 사이가 서로 아끼고 헤아리는 길이 어깨동무일 수 있어요. 순이돌이는 서로 다르기에 서로 나란히 짝을 맺어서 새롭게 살림을 지으면서 사랑을 깨닫고, 이 사랑을 아이들한테 씨앗으로 물려주는구나 싶습니다. 다 똑같기만 하다면, 몸도 마음도 그저 똑같기만 하다면, 아마 우리는 서로 만날 일도 부딪힐 일도 없을 테고, 아무 이야기가 없어요.
얼어붙는다는 늦가을에 진주마실을 합니다. 이튿날 〈진주문고〉에서 우리말과 우리말꽃을 놓고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하면서, 하루 일찍 건너옵니다. 먼저 〈형설서점〉을 들릅니다. 새책집만 있는 고장은 책이 고이다가 사라질 뿐 아니라 죽습니다. 손길을 탄 책이 부드러이 되읽히면서 두고두고 돌아볼 길목을 여는 헌책집입니다. 이 작은 헌책집은 그야말로 작지만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책”을 건사하는 쉼터입니다. 헌책집에서 버리면 그 책은 끝내 목숨을 잃습니다.
모든 책은 지음님 손길을 받고서 태어나고, 펴냄터 손길을 누리며 살아나고, 새책집지기 손길을 얻으며 피어나고, 읽님 손길을 거치며 깨어나고, 헌책집지기 손길을 만나서 거듭납니다. 씨앗은 안 서둘러요. 씨앗은 태어나기까지 고요히 잠듭니다. 태어난 씨앗은 천천히 살아가고서, 새삼스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는, 가만히 해바람비를 머금는 삶으로 깨어납니다. 이러고서 다시 씨앗으로 가지요.
마음을 조금 기울인다면 씨앗살림을 헤아리면서 집살림과 마을살림을 비롯해서 숲살림과 책살림을 알아봅니다. 마음을 아주 못 기울이니 모든 살림을 등져요.
오래된 새글을 읽습니다. 오래갈 새길을 걷습니다. 오래오래 반짝이는 넋으로 서로 만납니다. 오늘부터 손을 잡아요.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구름을 보고 바람을 마시면서 볕바라기랑 별바라기를 해요. 같이 짓고 함께 읽어요. 나긋나긋 가꾸고 느긋느긋 나눠요. 작은책을 눈여겨보기에 작은씨를 심으며 홀가분합니다.
ㅅㄴㄹ
《全羅南道方言硏究》(최학근, 한국연구원, 1962.11.12.)
《富民農業》(부민문화사) 44호(1967.8.)
《농작물 따로풀이》(문교부,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54.3.31.)
《朝鮮》(朝鮮總督府 文書課長, 朝鮮總督府) 351호(1944.8.1.)
《히로시마》(존 허시/최덕일 옮김, 정음사, 1949.10.29.)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랑힐 닐스툰(글)·하타 고시로(그림)/김상호 옮김, 비룡소, 1998)
《그녀, 영어 동시통역사 되다》(신자키 류코/김윤수 옮김, 길벗이지톡, 2006.7.15.)
《몽골의 초원》(시바 료타로/양억관 옮김, 고려원, 1993.10.1.)
《해탈의 길》(앨런 와츠/종서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4.11.1.)
《마호멧》(막심 로댕송/김종철 옮김, 두레, 1983)
《아루나찰라의 노래》(아서 오스본/서민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한국아동문학독본 10 한국전래동요독본》(박두진 엮음, 을유문화사, 1962.8.15.)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이정록, 문학동네, 1994.8.18.)
《산청군 시천면 땅이름 연구》(손순지, 2007)
《한국 지명 총람 2 강원편》(한글학회, 1967.12.20.)
《鬪牛》(이영달, 명진인쇄, 1984.12.)
《눈물을 위하여》(고은, 풀빛, 1990.11.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