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원사전”을 써냈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말·마음·삶’을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으로




2025년 이른봄에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펴냄)을 선보입니다. ‘말밑’은 ‘어원’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밑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말을 이루는 밑(밑동)이기에 말밑입니다. 밑(밑동)을 이루는 말이라 여기면 ‘밑말’이라 하면 됩니다. 우리말은 어느 하나를 굳이 한 낱말로만 안 가리킵니다. 앞뒤를 바꾸어 가리키곤 하며, 크기와 셈여림과 부피와 빛살을 살펴서 끝없이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로 여밉니다. 우리말에는 ‘빨갛다’만 있지 않아요. ‘빨강’도 있고 ‘붉다’도 있으며, ‘울긋불긋’에 ‘발갛다’처럼 말씨를 슬몃슬몃 바꿉니다.


글을 씨앗(씨)으로 여기면서 돌보기에 ‘글씨’입니다. 글씨를 반듯하게 가다듬는 뜻을 돌아봅니다. 글이라는 씨앗을 종이에 얹을 적에 “밭에 씨앗을 심듯” 고르게 다스려야, ‘글로 담아낸 말’을 정갈하게 풀어낼 수 있다고 여기거든요. (44쪽)


‘꽃 + 샘 + 바람’에서 ‘샘’은 ‘새·새롭다’하고 맞물리는 ‘샘물·샘 2’이라고 느낍니다. 꽃망울하고 잎망울을 깨우는 바람 곁에는 ‘꽃샘비·잎샘비’가 내립니다. 꽃이 샘솟으라고 북돋우는 비입니다. (50쪽)


지난날 세종 임금님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씨를 내놓았지만, 그무렵에 훈민정음은 “우리 모두 누리는 글”이지 않았습니다. 그무렵에 누가 붓종이를 건사했을까요? 그무렵에 누가 책을 읽고 글을 썼을까요? 논밭을 일구는 사람은 글을 쓰거나 책을 펼 일이며 까닭마저 없던 지난날입니다. 조선이 저물 무렵까지도 장사꾼·논밭지기·종·하님·가시내는 글이건 책이건 붓종이 모두 어깨너머라도 구경조차 하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마음을 말에 담아서 누리고 나누던 첫목이라면,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지은 주시경 님이 살던 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주시경 님은 이녁 딸아이한테도 글을 가르쳤고, 주시경 집안에서는 딸아들이 똑같은 아이로 자랐다지요. 그러니까 ‘우리글’이라 여기는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던 사슬나라(일제강점기)에 이르도록 우리는 우리글이 없었다고 해야 맞습니다.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기에 ‘나다’이고, 새롭게 보도록 이곳에 있으면서 즐겁기에 ‘날다’라면, “오랫동안 많이 쓰거나 오래도록 비·바람·해에 바스러져서 더 쓸 만하지 않”을 적에는 ‘낡다’예요. (56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왜 썼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우리말을 우리글에 담는 우리길을 걷는 살림살이를 일굴 적에 곁에 두면서 이바지하는 꾸러미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말을 그려낸 무늬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아낸 소리입니다. 마음이란, 삶을 고스란히 담는 그릇입니다. 삶이란, 사람으로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누리는 하루입니다.


모가 없이 아우르고 모이기에 ‘도란도란’ 이야기합니다. ‘두런두런’ 말을 섞기도 합니다. ‘도란도란·두런두런’은 ‘두레’하고도 얽혀요. 두레는 ‘둘레’하고도 만나는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나고 사귀고 아우르면서 크게 펴는 자리인 ‘두레’요, 하나를 두른·둘러싼 곳을 살핀다고 하는 ‘둘레’이며, 두레처럼 둘레를 아우르는 사이인 ‘동무’입니다. (68쪽)


그래서 ‘글 → 말 → 마음 → 삶 → 살림·사랑·사람’이라는 얼거리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는 ‘살림쓰기·사랑쓰기·사람쓰기’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스스로 글이라는 그림으로 옮길 적에, 바로 “우리 스스로 살림을 지어서 삶을 누리는 마음”을 저마다 또렷하면서 즐겁고 넉넉하게 펴려면, ‘말’을 제대로 알거나 넉넉히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인 우리말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말밑·밑말’을 찬찬히 새기면 됩니다.


‘우리말’이란, “우리를 바라보는 말”입니다. ‘우리 = 나 + 너 + 뭇숨결’입니다. 나 혼자만 있다고 언뜻 여길 적에도 ‘우리’를 쓰는 우리나라인데, 사람은 나 혼자여도, 돌과 나무와 해와 바람과 새와 풀벌레처럼 뭇숨결이 둘레에 있다고 여기기에 ‘우리’를 씁니다. ‘우리말’이란 ‘순우리말(토박이말)’이라기보다는 “아우르고 어우르는 마음으로 쓰는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 ‘길·길이·길다’는 이곳·이때하고 저곳·저때가 어떤 사이인가를 나타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나아가기에 ‘길’이고, 어느 만큼 나아가는가를 따지거나 재기에 ‘길이’입니다. 이곳·이때에서 저곳·저때으로 꽤 나아갔기에 ‘길다’라 합니다. (78쪽)


우리말 ‘바’는 ‘밭·바탕’을 밑뜻으로 나타냅니다. 씨앗을 심어서 가꾸는 자리인 ‘밭’이요, 무엇이 태어나거나 깨어나거나 자라는 너른 터인 ‘바탕’입니다. 가장 낮다고 여길 만하도록 넓기에 ‘바탕’이니, ‘바다’는 푸른별에서 ‘바닥’을 드넓게 덮으면서 이곳이 짙푸른 삶터가 되도록 북돋운다고 하겠습니다. (105쪽)





지난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선보였습니다. 이 꾸러미를 선보이고 난 지 열 해 만에 《말밑 꾸러미》를 내놓습니다.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혼자서 온일을 맡는 터라 낱말책을 더 일찍 묶어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림을 가꾸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기에, 이런 여러 가지를 하는 틈에 바지런히 손을 놀릴 뿐입니다.


2003년 8월까지는 서울에서 살며 일을 했으나, 2003년 9월부터는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충북 충주 멧골자락과 서울을 오가며 일을 했습니다. 2007년 4월에 인천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다가, 2010년 가을부터 다시 시골로 옮겼으니,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살림을 지은 지 제법 됩니다.


많은 결을 나타내는 말밑인 ‘수’입니다. ‘머리숱’을 가리킬 적에 쓰는 ‘숱’으로도 잇습니다. 머리숱이 적건 많건,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세기란 어렵거나 까다롭습니다. 아니, 못 센다고 할 만해요. ‘숱 + 하다(많다)’ 꼴인 ‘숱하다’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셀 길이 없도록 많은” 결을 가리켜요. (125쪽)


서울과 서울곁에서 일할 적에는 ‘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여미었고, 시골과 멧슾에서 일하는 요즈음은 ‘들숲바다·해바람비·풀꽃나무·시골·사투리·글·책·말’을 바탕으로 낱말책을 엮습니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써낸 뜻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들숲바다에서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품는 살림살이를 일구는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었습니다.


세종 임금님은 글씨를 지었되, 우리말을 짓지는 않았고, 이 나라 모든 사람이 살림살이를 말글로 옮겨서 널리 나누는 길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없던 무렵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말(우리말)’을 했고, 이 말(고을말·사투리)은 단군조선보다 아득히 긴 나날에 걸쳐서 흘러왔습니다.


단군 옛이야기에 나오는 ‘곰·범’이나 ‘쑥·마늘(또는 달래)’ 같은 낱말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김치를 담그는 ‘갓’ 같은 풀이름은 언제부터 썼고, 높게 솟은 땅을 가리키는 ‘메·갓’이란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요? ‘하늘’이나 ‘집’이나 ‘사람’이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일구다’라는 낱말은 ‘일’이 뼈대요, ‘일다·일으키다·일어나다’도 ‘일’이 바탕입니다. 새롭게 펴거나 하는 몸짓을 나타내는 이 말씨는 외따로 ‘일’로 쓸 적에 ‘할거리·지을거리’를 가리켜요. “일하다 = 스스로 새롭게 짓거나 이루거나 나타나도록 하다” 같은 결이라고 읽어낼 만합니다. ‘이름·일컫다·이르다’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177쪽)


삶·살림·사랑을 지으려면 ‘하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누리려면 ‘있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배우려면 ‘보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고, 삶·살림·사랑을 나답게 펴려면 ‘알다’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생각하려면 ‘가다’라는 낱말을 써야 하지요. (186쪽)


아직 우리는 이런 수수하고 오랜 삶말·살림말·사랑말이 어떤 뿌리인지 종잡지 못 하기 일쑤입니다. 글도 책도 없던 까마득히 오랜 나날에 걸쳐서, 모든 사람이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말씨와 말결과 말빛을 헤아리려면,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를 스스로 품으면서 살필 노릇입니다.


동박새를 곁에 두지 않는다면, 동박새가 왜 동박새란 이름이었을는지 어림조차 못 합니다. 동박새가 겨우내 즐기는 꽃이 피는 나무가 ‘동박나무’여야 올바르다고 느끼려면, 동박새에 ‘동백나무’를 언제나 품는 살림일 노릇입니다.


‘철새’란 철을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본 뒤에, 새로 바뀌는 철에 예전 보금자리로 함께 돌아가는 야무지고 씩씩한 새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숱한 낱말책은 ‘철새’ 뜻풀이가 매우 엉성합니다. 책상맡에 앉아서 옛글을 뒤적일 줄은 알되, 막상 여름새도 겨울새도 만날 일이 없고, 새노래와 새살림을 지켜볼 일마저 없거든요.


속으로는 빛나지 않고 겉으로만 번쩍거리려고 하기에 ‘거짓’이라고 합니다. 돈을 모두 잃은 사람을 ‘거지’라고도 하지만, 돈이 하나조차 없지만 마음이 넉넉한 사람한테는 ‘거지’라고 하지 않아요. 마음이 가난하면서 돈만 많은 사람한테 오히려 ‘거지’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236쪽)


‘텃새’란 터(터전)를 읽고 익히면서 새끼를 낳아서 어질게 돌보는 살림을 늘 한곳에서 잇는 듬직하고 어엿한 새입니다. 그러나 ‘텃새’가 어떤 결로 사람 곁에 머무는지 지켜본 적이 없거나 지켜볼 마음조차 없다면, 이러한 새를 다루는 뜻풀이와 보기글도 텃새살이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는 집살림을 맡지 않는 삶일 적에는 ‘아기’와 ‘어버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 하기도 하지만, 말밑을 어림조차 못 합니다. 서로 ‘동무’를 하는 사이로 돕고 돌보는 두레를 이루는 삶을 가꾸지 않을 적에도 ‘동무’라는 오랜 낱말에 숨은 수수께끼를 못 읽습니다.





모든 낱말은 서로 얽고 잇고 엮고 이르고 만납니다. 따로 뚝 하나만 덩그러니 떨어지는 낱말은 아예 없습니다. 이웃 여러 나라에서는 낱말책을 꾸리거나 여밀 적에 반드시 ‘모든 낱말’이 어떻게 만나고 맺고 어울리는지 차근차근 짚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밑길을 제대로 못 열거나 안 엽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서울에 몰아놓다 보니,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서울에서 맴돌거나 큰고장 대학교 담벼락에 또아리를 틀기만 합니다.


좋은말이나 나쁜말은 따로 없습니다. 어느 말을 어느 마음이 되어 쓰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드러나는 삶을 낱말 하나에 얹어서 나타내고 나눌 뿐입니다. (262쪽)


사람은 속으로 ‘씨·알’을 품는 숨이요, ‘살다·삶·살리다·살림’으로 펴는 길입니다. 길이 숨을 만나고, 숨이 길을 마주하지요. 그래서 살고 살리는 씨이자 알로 있기에, ‘앎(알다)’을 맞아들이는 하루(삶)이고,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스스로 밝은 빛으로 섭니다. 사람 하나하나는 ‘빛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270쪽)


말을 알려면 말이 태어난 숲에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또는 숲을 곁에 두면서 내내 숲을 헤아려야 할 테지요. ‘아이돌봄글(육아일기)’을 쓰려면 아이를 한결같이 삼백예순닷새 내내 지켜보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낱말책을 여미는 분들이 정작 “말이 태어난 곳”하고 너무 멀 뿐 아니라, “말이 태어난 살림”하고 담을 쌓는다고 느낍니다.


《말밑 꾸러미》를 ‘기존 사전 형식’으로도 엮을 수 있지만, 굳이 이렇게 안 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스스럼없이 읽으면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말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기에 새틀을 짰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표현”과 “문해력 증진”이 아닌, “살아가는 마음을 나누는 말을 서로서로 즐겁게 펴고 듣고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적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봅니다.


‘말’이란, 마음에 담는 생각이고, 마음에 담으려고 심을 씨앗이 될 생각입니다. 또는, 마음에 깃든 생각을 꺼내어서 귀로 알아듣도록 그린 소리가 말이에요. ‘마음·말’은 밑뿌리가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소리를 그려내는 말이 된다면, 마음이 안 맞거나 막히는 일이 없어요. 마음 없이 내는 소리는 그저 소리요, 마음 있이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말이랍니다. (350쪽)


스스로 어질게 살림하는 사람이기에 ‘어른’이요 ‘스승’입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한테 심부름을 안 시킵니다. 어른과 스승은 그저 몸소 합니다. 어른과 스승은 아이와 젊은이가 스스로 온누리를 맞이하고 겪어 보도록 마당을 펴고 자리를 내주는 몫입니다.


말을 말답게 살펴서 익히는 길은 누구나 스스로 스승이자 어른으로 서는 길입니다. 낱말책 한 자락을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어냈기에 우리말을 다 알아내거나 알아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낱말책이건 모든 우리말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지는 않습니다. 모든 낱말과 이야기와 수수께끼를 담자면 5만 쪽은커녕 10만 쪽으로도 모자랍니다. 그저 낱말책이란, 그때그때 갈무리한 만큼 이웃하고 나누려는 작은 꾸러미일 뿐입니다.


다쳐서 구멍이 나거나 틈이 난 데에 넣어서 막는 ‘심’이기도 해요. 이런 쓰임새를 살려서, 초에서 불이 붙도록 안쪽 한가운데에 꼬아서 넣는 실도 ‘심’이란 이름으로 가리키지요. 글붓(연필) 안쪽 한가운데에 놓아 글씨를 쓸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것도 ‘심’으로 가리킵니다. 우리말 ‘심’은 ‘힘’처럼, 겉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듯 부드럽고 단단하게 한가운데(한복판)를 이루면서 곧고 길게 이어주는 길을 나타냅니다. 촛불심도 연필심도 ‘힘·실’이라는 결을 ‘심’이라는 말꼴로 담아요. (399쪽)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는 배움길은 1984년에 처음 걸었습니다.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쓰고 엮자는 마음은 1992년에 처음 했습니다. 1994년에 ‘우리말을 스스로 배우고 나누는 모임’을 조촐히 꾸리면서 한 땀씩 바느질을 해온 살림결 가운데 하나를 2025년에 살짝 풀어놓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말더듬이·혀짤배기’이던 몸이라 오지게 놀림받고 시달렸습니다. 여덟 살이던 1982년부터 열 살이던 1984년까지 날마다 얻어맞지 않은 날이 없고, 언제나 동무와 길잡이(교사)가 제 말소리를 놀려먹었습니다. 이러던 1984년에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어째 마을 어린이와 푸름이가 모두 버릇없어 보이기에 ‘효’를 익히도록 천자문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온마을 어린이와 푸름이를 어르신집(경로당)에 날마다 불러모아서 한 시간 남짓 가르친 적이 있어요. 이때에 저랑 또래 하나만 할아버지한테서 끝까지 즈믄글씨(천자문)를 익혔는데, 즈믄글씨를 익힌 뒤에 돌아보니, 말더듬이에 혀짤배기가 소리를 못 내거나 엉키는 낱말이 모조리 한자말인 줄 깨달았습니다.


꽃은 열매로 나아가는 끝길입니다. 꽃송이가 숨을 거두는 끝에 열매가 익어요. “꽃이 곱다”고 말하는 밑자락을 들여다본다면, 기나긴 길을 거치면서 끝자락에 닿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애를 쓰며 힘을 다했나 하는 빛을 느낄 만하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438쪽)


‘나비(나방)·알·애벌레’라고 하는 세 갈래 길입니다. 사람도 ‘어버이(어른)·알(씨알)·아이(아기)’라는 세 갈래 길을 나란히 걷습니다. 두 어버이는 서로 나무처럼 든든히 지키고 바라보면서 나란히 삶·살림·사랑을 그리는 사이입니다. 두 어버이가 즐거운 사이인 터라 ‘새(사이)’처럼 아이(아기) 사이에서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면서 노래를 하고 놀이를 노느는(나누는) 나날을 지을 수 있습니다. (476쪽)


저는 이해 1984년부터 옥편과 사전을 샅샅이 뒤져서 “말더듬이와 혀짤배기가 소리내기 쉬운 우리말”을 찾아나섰습니다. 얻어맞기 싫고, 놀림받으면 괴롭거든요. 이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부터는 첫 수능·본고사·면접을 치르는 배움불굿(입시지옥)에 맞추어 “언어영역 시험 대비”로 ‘국어사전 통째읽기’를 두 벌 했습니다. 1992년에 두 벌째 다 읽었는데, 우리나라 국어사전이 아주 후줄근하고 초라하더군요. 차라리 내가 쓰고 말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아침에 ‘다만·단둘·단짝·달갑다·달다·단골’이라는 낱말이 어떤 말밑인지 풀어냈습니다. 그야말로 날마다 동박새 날갯짓마냥 천천히 보드랍게 나아갑니다. 〈말밑 꾸러미〉를 곁에 두면서 말빛을 익히는 이웃님이 그저 느긋하시기를 바랍니다. “안 서두르려는 마음”일 적에도 똑같이 ‘서두르’고 맙니다. “안 서두르기”가 아니라 “느긋이 노래하기”라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말씨앗 한 톨이 우리 마음밭에 깃들어 자라다가 어느 날 생각나무로 자라고 사랑꽃을 피워서 살림열매를 맺습니다.


울타리가 없고 담이 없으면서 넘나드는 데라서 ‘누리’입니다. 누구나 눈을 뜨고서 누리는 삶이기에 ‘누리’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누리에서 조금조금 금을 긋고서 나누는 동안 ‘나라’가 됩니다. 나라에는 울타리가 있고 담이 있어요. 섣불리 넘나들지 못하도록 해요. ‘누리’나 ‘나라’나 똑같은 땅이되, 한쪽은 울타리 없이 흐드러지는 홀가분한 빛이요, 다른 한쪽은 울타리를 세우면서 너랑 나를 가르고 힘으로 누르는, 억누르고 짓누르는 틀입니다. (485쪽)


나무 한 그루가 열매를 맺기까지 으레 열 해 남짓 걸립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열매를 넉넉히 베풀기까지 으레 스무 해 남짓 기다립니다. 우리말을 마음자리에 푸른숲으로 심고 가꾸고 돌보면서 파란하늘처럼 드리우는 말살림이며 글살림을 차분히 하나씩 일구어 가려는 뜻을 조촐히 꾸러미로 엮습니다.


참새가 노래합니다. 짹짹짹 소리가 아니라, 찌빗찌빗 찟찟 쫏 쫑 쭈루루 짯짯 쫌 쪼비비 째비비 째리리리 쮯 쭈룹 같은 갖가지 가락과 높고낮은 물결로 하루를 엽니다. ‘말’에 ‘마음’을 담는 ‘삶’에 한손을 거들려는 뜻으로 꾸리는 낱말책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쓰는 한국말사전”입니다. “새롭게 쓰는 우리말꽃”이기도 하고, “새롭게 나누는 낱말숲”이기도 합니다.





늦겨울이 저물던 지난 2025년 2월 18일 아침을 떠올립니다. 그날 우리 집 앵두나무 곁에서 해바라기를 하는데, 시든풀이 우거진 곳에서 동박새 둘이 고개를 빼꼼하면서 저를 쳐다보더니 쪼리쪼리쪼리쪼리 쯔릉쯔릉쯔릉쯔릉 소리를 내며 서로 쳐다보다가 포르릉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제 발치에서 멀잖은 곳에서 조금 날다가 다시 시든풀더미에 내려앉습니다.


목숨이 있는 집이 ‘몸’입니다. 우리말에서 받침 ‘ㅁ’은 ‘아우름·집·묶음’을 나타냅니다. 목숨이 집처럼 깃들 수 있는 곳이고, 여러모로 목숨을 움직이는 것을 아우른 곳이 몸이에요. (528쪽)


빨강은 ‘붉다’로도 나타냅니다. ‘붉다’는 ‘불’에서 비롯했습니다. 타오르거나 달아오르는 불길인 빛이에요. 불길은 확 번지고 이내 태웁니다. ‘빠르게’ 타오르거나 태우는 불기운을 담는 ‘빨강’이에요. (558쪽)


동박새를 눈여겨보는 서울내기도 제법 있으나, 여든 살이나 아흔 살에 이르도록 동박새는커녕 박새나 쇠박새는 아예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혀끝에 ‘동박새·박새·쇠박새’라는 낱말을 얹을 일마저 없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동박새를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나무에 이 새가 앉았어도 새가 앉은 줄 못 알아채기도 하고, 동박새 노랫가락이 조금도 귀에 안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지난 2025년 2월 16일에는 부산 거제동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이오덕 읽기 모임’을 꾸리고 난 뒤에, 이곳 뜨락에서 겨울볕을 함께 쬐었습니다. 이때에 “똥! 방!” 하고 굵고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를 한참 들었습니다. “똥! 방!” 하는 소리가 나고서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똥! 방!” 소리를 듣는데, 이 소리를 서른 벌째 들을 무렵, 〈책과 아이들〉에서 자라는 동박나무(동백나무)하고 소나무 사이로 동박새가 빼꼼 얼굴을 내밉니다.


‘하얗다(희다·흰)’는 빛깔은 ‘해’가 드리우는 빛을 가리켰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없이 탁 트일 적에는 파랗다면, 이 파란하늘이 눈부시도록 온누리를 밝히는 햇빛은 ‘하얗다’고 여겼고, 해처럼 맑아 ‘해맑다’라 하고, 해처럼 밝아 ‘해밝다’라 합니다. (561쪽)


우리나라 모든 새이름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시골내기가 문득 어느 새를 눈여겨보다가 저마다 다른 빛결을 가르면서 붙였습니다. 어느 새는 노랫가락을 고스란히 옮겨요. 이를테면 뜸부기·제비·꾀꼬리·소쩍새·왜가리는 노랫소리를 그대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박새·딱따구리·뱁새·크낙새·한새(황새)·매는 매무새와 깃빛과 몸짓을 살펴서 담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여기에 까마귀·까치는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러서 담았다고 여길 만한데, 동박새도 노랫결과 깃빛을 아울렀구나 싶습니다.


모든 낱말은 모든 삶하고 잇습니다. 모든 말은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과 눈길을 생각 한 톨로 여미어서 나누려는 ‘빛씨’라고 여길 만합니다. 늘 쓰는 흔하고 수수한 말씨 한 마디부터 차분히 새기고 어린이하고 이야기할 적에 누구나 말빛을 틔우면서 말길을 새록새록 지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비롯한 조촐한 낱말책을 반가이 맞이하실 이웃님을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하나 = 하 + 나’인 얼개를 눈여겨봐요. 하늘처럼 크고 넓은 ‘나(한 사람·개인)’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입니다. (593쪽)


‘하나’부터 연 셈값은 ‘울’로 마무르는데, ‘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하나’요, ‘나너·너나’를 가리키기도 하는 ‘울’입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말 셈값은 ‘나’랑 ‘너’ 사이를 삶이라는 길로 그려낸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너’랑 ‘나’는 즐겁고 홀가분히 드나드는 ‘너나들이’라는 사이일 수 있으면서, 땅하고 하늘 사이처럼 까마득히 먼 사이일 수 있되, ‘하나’에서 ‘울’로 오니 ‘한울(하늘)’입니다. (606쪽)


‘자람’은 스스로 높거나 크거나 튼튼하거나 기운차게 오르는 빛이요, ‘장다리’는 꽃을 피우려고 곧고 길고 곱게 오르는 빛이요, ‘장대’는 곧고 길며 단단하게 서려는 빛이요, ‘자’는 곧고 길게 서며 고르게 살피는 빛이라면, ‘자랑’은 스스로 꽃이라고 여기면서 곱게 보여주고 싶은 빛입니다. (646쪽)


그저 앞자리이기만 한 처음은 아닙니다. ‘참·찬찬·천천’이란 결을 품은 말씨인 ‘처음·첫’이에요. (687쪽)


꾸밈없고 스스럼없이 빛나는 ‘착하다’라면, 꾸미면서 스스로 잊거나 잃는 ‘척하다(체하다)’예요. 스스로 있으면 넉넉하면서 빛나는 ‘착하다’일 텐데, 겉으로만 좋게 보이려고 하면서 그만 나(스스로)를 잊어서 껍데기만 남는 ‘척하다(체하다)’입니다. (689쪽)


‘책’이란, 참답고 참하게 찬찬히 채우면서 살림빛과 사랑길과 삶넋과 사람씨를 챙기면서 착한 손길로 차분히 여미어 차곡차곡 이야기를 재우는 꾸러미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 숨빛과 눈길로 우리 발걸음을 차근차근 짚은 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이제라도 마음을 챙기고 생각을 참되이 밝히는 첫걸음을 내딛을 때라고 봅니다. (693쪽)


우리글 한글을 으레 ‘소리글(소리를 담는 글)’로 여기는데, 우리글 한글은 ‘소리뜻글(소리하고 뜻을 담는 글)’이나 ‘뜻소리글(뜻하고 소리를 담는 글)’로 여길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글뿐 아니라 이웃글(외국 문자)도 뜻뿐 아니라 소리를 함께 담게 마련이요, 소리에다가 뜻을 나란히 담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소리에는 마음소리가 흐르고, 마음소리를 담는 말소리를 옮긴 글씨이기에, 글은 소리랑 뜻을 아우를 수밖에 없습니다. (727쪽)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 어원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2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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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들 읽기 (2021.4.15.)



숲노래가 시골살림을 지으면서(2011∼) 일군 책이 있습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랑 엮는이(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서울살림을 짓는 동안(1995∼2003)에는 책을 안 내놓았고,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며 충주살림을 하는 동안(2004∼2006) 두 가지 책을 내놓았으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려고 돌아간 옛마을에서 인천살림을 하는 사이(2007∼2010) 여러 가지 책을 비로소 내놓았습니다. 여러 책 가운데 판이 끊어지거나 찾기 어려운 책이 아닌, 쉽게 장만할 수 있는 책을 몇 갈래로 나누어 봅니다. 즐겁게 장만하셔서 즐겁게 삶꽃을 피우시고 즐겁게 사랑살림 가꾸는 길에 동무로 삼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말·넋·삶·숲을 읽는 첫걸음

《쉬운 말이 평화》(철수와영희,2021)

《이오덕 마음 읽기》(자연과생태,2019)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스토리닷,2017)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2019)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2. 우리말이 노래가 되는 길 : 동시쓰기 + 시쓰기

《우리말 동시 사전》(스토리닷,2019)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스토리닷,2020)


3. 곁에 두며 말빛·삶꽃·숲살림 익히는 길잡이 : 우리말꽃(국어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6)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7)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2019)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돌림풀이와 겹말풀이 다듬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자연과생태,2017)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3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자연과생태,2018)


4. 우리말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4)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7)


5. 우리말을 푸름이하고 어깨동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2011)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2015)


6. 책넋과 마을책집 : 책읽기를 누리는 하루와 이웃마실

《책숲마실》(스토리닷,2020)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스토리닷,2016)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스토리닷,2018)


7. 빛을 담는 꽃(빛꽃) : 사진과 책과 삶과 마을과 꽃

《내가 사랑한 사진책》(눈빛,2018)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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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hbooks/5784559

(이곳에 들어가면 책바구니(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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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잇는 깃새글꽃

― 부산 〈책과 아이들〉 상주작가 최종규



  부산 거제동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2025년 5월∼11월 사이에 일곱 달 동안 깃새글꽃(상주작가)으로 함께하는 파란놀(최종규)이라고 합니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첫째가는 살림고을(문화도시)이라고 느낍니다. 서울과 경기가 사람은 가장 많고, 책집이며 펴냄터에 글지기도 가장 많지만, 오히려 부산이 마을빛과 살림빛을 마을에서 일구면서 나누는 첫손꼽을 곳이라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제가 부산을 오가면서 두 곳(경상도·전라도)을 잇는 징검다리 노릇으로 글꽃을 지피는 일을 함께할 수 있구나 하고도 느낍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다 다르기에 ‘너·나·우리’ 또는 ‘나·너·우리’입니다. 다 다른 나와 너는 먼저 스스로 돌아보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만납니다. 사람인 나뿐 아니라 풀꽃나무와 돌흙모래 같은 숨빛이 어울리기에 ‘우리’라고 합니다. 사람으로 나 혼자 있어도, 들숲메바다와 해바람비가 나란히 있는 줄 알아보기에 ‘우리’라는 이름을 씁니다. 온누리에는 혼자인 숨빛이 없어요. 사람 사이에서도, 사람을 둘러싼 뭇숨결 사이에서도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있는 숨빛입니다.


  저는 1994년부터 낱말책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 일을 했습니다만, 1984년에 말더듬이에 혀짤배기인 몸으로 즈믄글씨(천자문)를 스스로 익히면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비로소 새로 돌아보았습니다. 말더듬이와 혀짤배기가 소리를 못 내는 숱한 낱말은 으레 한자말과 영어였거든요. 모든 아이가 수월하게 소리를 내어 마음을 그릴 말이란 무엇인지 돌아보는 10살을 살아내면서, 배움불굿(입시지옥)이라는 가시밭을 지나고, 또 싸움터(군대)라는 곳에 다녀와야 하면서, 우리나라는 어떤 터전일는지, 이런 터전에서 어떻게 어른으로 살면서 아이를 낳거나 돌볼 수 있는지 까마득했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내자고 여기면서 책을 곁에 놓았고, ‘사람스승’은 따로 만나지 못 했으나, 책이라는 길동무하고 나란히 걸으면서 살림길을 짓는 시골사람으로서 오늘을 보냅니다.


  스무 살이던 1995년부터 어버이집을 나왔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면서 모든 집일을 혼자 맡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미 어릴적에도 집일은 늘 돕고 함께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곁일(부업)도 으레 도우면서 지냈습니다. 새뜸나름이로 일하면서 밥짓고 빨래하고 치우는 하루는 안 힘들었습니다. 싸움터에서 갖은 주먹질에 시달리는 나날도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나라는 왜 이 꼴일까?” 하고만 여겼고, “이 ‘꼴’인 나라가 아닌, 이 ‘모습’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어야 할까?”만 생각했습니다.


  부산은 2000년부터 꼬박꼬박 오가면서 사귀는 길입니다. 이제 겨우 부산이웃을 스물다섯 해쯤 마주하는 셈입니다. 붐비고 북적이는 부산이되, 부산은 우리나라 어느 고장보다도 ‘어버이가 아이 손을 잡고서 함께 걷는 모습’을 쉽게 보는 곳입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함께 버스·전철을 으레 타고다니는 고장은 이제 부산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과 아이들〉 같은 마을책집이 맡은 몫은 예나 이제나 알뜰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모든 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가 읽으면 안 될’ 글이나 그림이나 책이라면 처음부터 내놓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15금·18금’ 같은 이름을 아예 안 따지면서, 한글을 아는 누구라도 스스로 읽어서 배울 만하도록 글을 쓰고 그림을 내놓으며 책을 엮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어린이가 못 읽을 글’이라면 ‘어른도 못 읽을 글’이게 마련입니다. ‘몇몇만 읽어도 될 글’이라면, 우리가 스스로 담벼락을 치면서 어깨동무하고 등진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무르익는 길을 살피면서 기쁘게 배우고 새롭게 사랑하는 씨앗을 품는 사람입니다. 어른은 스스로 무르익힌 길을 돌아보면서 반갑게 다시 배우고 새롭게 살림하는 사랑이라는 말씨앗과 글씨앗을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람입니다. 이른바 깃새글꽃(상주작가)으로 부산과 전남 고흥을 오가는 길에 먼저 여러 가지 글꽃을 여미려고 합니다. 부산 〈책과 아이들〉에서는 적어도 다섯 가지 이야기밭을 펴려고 합니다. 다섯 가지 이야기밭에 늘 함께하셔도 반갑고, 틈을 낼 수 있는 대로 함께하셔도 즐겁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밭을 일굽니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이야기가 피어나는 자리를 일구려고 합니다.


  살림하는 손으로 이 삶을 가꾸면서, 우리 고을과 이웃 고을이 손을 맞잡고 노래하는 씨앗 한 톨을 나누는 몸짓으로 걸어가려고 합니다. 걸어서 다가가고 다가오는 길을 속삭이는 이야기밭을 펴려고 합니다. 걸어서 마주하는 살림자리를 글꽃으로 여미는 길을 일구려고 합니다. 나긋나긋 사뿐사뿐 만나요. 고맙고 반갑습니다.



2025년 문학상주작가 활동계획서


1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 2025.5.18.∼2025.11.23.

(월 2회 총 14회 운영)

우리말 어원을 살피면서, 말과 마음이 얽힌 길을 배운다. 어원을 살핀 다음에는 시 쓰기를 함께한다. 작은 종이에 내 삶을 그려 본다.


2 이오덕과 권정생을 읽는 눈 2025.5.18.∼2025.11.23.

(월 1회 총 7회 운영)

이오덕 100주기인 2025년을 맞아서, 이오덕과 평생 마음 벗인 권정생을 함께 살피고 배우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느낀 점을 글로 써 본다.


3 살림짓기 숲짓기 마음짓기 2025.6.1.∼2025.11.9.

(월 1회 총 7회 운영)

우리 동네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새와 풀벌레와 풀꽃 나무들을 살펴본다. 도시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달래는 길을 찾아보며 이야기 나눈다.


4 내가 쓰는 내 사전 2025.5.16.∼2025.11.21.

(월 1회 총 7회 운영)

우리 곁에 있는 낱말을 나만의 해석으로 담아 새롭게 사전을 만들어본다. 서로 어떤 시선으로 낱말을 바라보았는지 뜻풀이를 나누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본다.


5 동심읽기 (만화책 사진책 그림책) 2025.5.30.∼2025.11.7.

(월 1회 총 7회 운영)

그림책, 사진책, 만화책을 새롭게 돌아본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책을 읽어보고 동심이란 무엇일까 이야기 나눈다.


+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

1 : 5.18 ㄱ ‘가다’로 길을 간다

2 : 6.1. ㄴ ‘나다’로 잇는 너와 나라는 날개

3 : 6.15. ㄷ ‘닿다’가 다다르며 닮는 데

4 : 6.29. ㅁ ‘말’과 마음이 만나는 물빛

5 : 7.13. ㅂ ‘바다’와 바람은 어떤 바탕으로 밝을까

6 : 7.27. ㅅ ‘사람’은 숲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림하는 사이로

7 : 8.10. ㅇ ‘알다’로 이으며 읽고 있는 이야기

8 : 8.24. ㅈ ‘잠’으로 잠기고 재우는 잣나무

9 : 9.7. ㅊ ‘참’을 착하고 차분하게 차근차근

10 : 9.21. ㅋ ‘크다’하고 ‘키’와 ‘자라다’

11 : 10.12. ㅌ ‘타다’는 얼마나 뜻이 넓은가

12 : 10.26. ㅍ ‘팔’과 ‘다리’는 어떤 몸일까

13 : 11.9. ㅎ ‘하다’가 없으면 말을 하지 못 한다

14 : 11.23. 우리말 어원 이야기 갈무리


이오덕과 권정생을 읽는 눈

1 : 5.18 언제나 어린이 곁에 나란히 서서 함께 걸어간 길 돌아보기

2 : 6.15. 사람빛을 죽이는 도시를 버리고서, 사람길을 살리는 시골을 품던 길 배우기

3 : 7.13. 책마을을 달래고 북돋아 어린이책 씨앗 뿌린 뜻 되짚기

4 : 8.17. 젊은이한테 남기려는 꿈을 담은 우리말꽃 읽기

5 : 9.21. ‘이름종이(자격증)’가 아닌 ‘살림종이(생활글)’를 바란 마음 나누기

6 : 10.12. “나는 제자가 없습니다”라는 말씀을 곱씹으며 어린이문학 바라보기

7 : 11.23. ‘반걸음’이 아닌 ‘온걸음’으로 학급문집을 함께 여민 매무새 살피기


살림짓기 숲짓기 마음짓기

1 : 6.1. 마음을 다스리는 길

2 : 6.29. 시골과 서울과 들숲바다

3 : 7.27. 초 한 자루와 별 한 톨

4 : 8.24. 씨앗 이야기

5 : 9.28. 그리는 눈빛

6 : 10.26. 풀꽃나무 읽기

7 : 11.9. 살림하는 사람이 사랑한다


내가 쓰는 내 사전

1 : 5.16 ‘우리’라는 낱말을 짚고서 ‘하늘’이라는 낱말을 함께 짚기

2 : 6.13. ‘쓰다’라는 낱말을 짚고서 ‘읽다’라는 낱말을 함께 짚기

3 : 7.13. ‘보다’라는 낱말을 짚고서 ‘듣다’라는 낱말을 함께 짚기

4 : 8.15. ‘밥’이라는 낱말을 짚고서 ‘집’이라는 낱말을 함께 짚기

5 : 9.19. ‘사람’이라는 낱말을 짚고서 ‘사랑’이라는 낱말을 함께 짚기

6 : 10.17. ‘새’라는 낱말을 짚고서 ‘꽃’이라는 낱말을 함께 짚기

7 : 11.21. ‘빛’이라는 낱말을 짚고서 ‘별’이라는 낱말을 함께 짚기


동심읽기 (만화책 사진책 그림책)

1 : 5.30. 《이거 그리고 죽어》 + 《마음속에 찰칵》 + 이와사키 치히로

2 : 6.27. 《80세 마리코》 + 호시노 미치오 + 나카가와 치히로

3 : 7.25. 《불새》 + 《골목안 풍경》 + 이와고 미츠아키 + 엘사 베스코브

4 : 8.22. 《이누야샤》 + 이일라 + 윌리엄 스타이그

5 : 9.26. 《도자기》 + 뱅뱅클럽 + 바바라 쿠니

6 : 10.24.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 인간가족 + 완다 가그

7 : 11.7. 《부엌의 드래곤》 + 김영갑 + 닥터 수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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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는 '글'에 적은 대로 보아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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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와 만도 씨 창비아동문고 290
안미란 지음, 정인하 그림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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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5.16.



《뭉치와 만도 씨》

 안미란 글

 정인하 그림

 창비

 2017.12.8.



  서울비둘기하고 멧비둘기는 몸도 깃도 무늬도 다릅니다. 둘은 다른 터전에서 다르게 살기에 울음소리도 다릅니다. 날갯짓마저 달라요. 서울에서는 부딪힐 만한 곳이 많고 시끄럽고 어지럽고 빽빽하기에 비둘기도 크고작은 새도 제대로 날지 못 합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너른하늘을 마음껏 누비기에 날갯짓부터 확 다르면서 울음소리가 사뭇 다르지요.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들어앉아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시골이라면, 나무 열 그루를 줄지어 심어도 제대로 못 자라고 가지치기에 시달리는 서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시골도 나무를 괴롭혀요. 멀쩡한 줄기에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내는 ‘서울스런 사람’이 모질게 늘었습니다.


  《뭉치와 만도 씨》는 ‘집개’하고 얽힌 줄거리를 부산을 터전으로 들려주는 듯하지만, 여러 글감이 뒤엉켰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곁짐승(반려동물)과 함께살기’라는 글감이라기보다 ‘오직 서울사람 눈금으로 재는 틀’이라는 글감에서 맴도는구나 싶어요.


  서울비둘기가 “그야말로 뻔뻔(24쪽)”할 수 있을까요? 벌레가 살아갈 틈이며 나무 한 그루가 설 짬마저 모두 잡아먹는 서울사람이야말로 뻔뻔하지 않나요? ‘새대가리’란 말은 누가 했고, 누가 그냥그냥 받아쓰기를 할까요? 스스로 사람다움을 잊고 잃은 사람이기에 ‘새대가리·소대가리·돼지대가리’ 같은 말을 함부로 씁니다.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94쪽)”하다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아리송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35쪽)”이란, 집에 가두어 똥을 치우고 먹이만 바치는 굴레하고 멉니다. ‘가두리’는 돌봄길이 아니에요. 잡아먹으려는 죽임길일 뿐입니다.


  새를 우리에 가두는 몸짓은 곁짐승을 돌보는 길하고 맞닿을 수 없지 않을까요? 하늘빛을 머금고 바람빛을 노래로 베푸는 새가 우리 곁에 깃들 수 있는 마당과 뜰과 밭과 숲정이를 건사하는 길이 비로소 ‘곁’에 두는 이웃일 테지요.


  《뭉치와 만도 씨》를 써낸 뜻은 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딸바보라는 얼거리를 일부러 억지스레 맞춰야 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뱉는 아버지로 구태여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쪽까지 종잡기 어렵게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어영부영 맺는다면, 이런 줄거리에서 어떤 마음을 읽거나 느낄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동물권’을 외치기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굴레에 갇히면서 뭇숨결도 나란히 굴레에 가두려 하는지 짚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아이들이 마냥 “해 줘! 사 줘!” 하고 외치는 모습을 그냥그냥 담는다고 해서 ‘어린이 마음’에 다가설 수 있지 않기도 합니다.


ㅍㄹㄴ


비둘기는 도망가는가 싶더니 다시 내려앉아 기어이 콩 한 알을 더 쪼아먹고 갑니다. 그야말로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24쪽)


“오호, 이런 좋은 방법이 있군. 역시 새들은 머리가 나빠. 괜히 새대가리 같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거든.” (25쪽)


“꼬마 숙녀님들, 여기 새 모이 대령이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이 아버지가 다 구해 줄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영이가 말했습니다. “나도 앵무새 사 줘요!” (28쪽)


아영이랑 함께 똥도 치우고 모이도 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을 키울 수 있겠군.’ (35쪽)


“우리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꼭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한데요.” (94쪽)


“아니, 무슨 멧돼지가 산에 있지 않고 이제는 바다까지 넘나들어?” “쟤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멧돼지 맞기는 맞아요?” (108쪽)


아내는 모릅니다. 아침에 만들어 놓은 나물 반찬을 만도 씨가 점심에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를. 고춧가루와 설탕, 햄을 듬뿍 섞어서 만도 씨표 볶음밥이나 만도 씨표 섞어찌개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요. (134쪽)


응원석에 있던 만도 씨는 화가 나서 콧김을 쉭쉭 내뿜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놈이 대체! 왜 남의 귀한 딸 주위를 알짱거려? 당장 운동장 밖으로 끌어내야지.” (149쪽)


+


《뭉치와 만도 씨》(안미란, 창비, 2017)


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 개라는 자리에서 보면

→ 개로서 보면

→ 개가 보면

7쪽


만도 씨의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 만도 씨 외동딸입니다

8쪽


만도 씨의 약을 살살 올려놓습니다

→ 만도 씨를 살살 약올립니다

14쪽


물기가 남김없이 흩뿌려집니다

→ 물을 남김없이 흩뿌립니다

18쪽


새가 집에서 키워지면 스트레스에 약한 건 당연해

→ 새를 집에 가두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힘들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골을 부릴 테지

36쪽


덥석 사 주는 건 결사반대

→ 덥석 사주지 마

→ 덥석 사주기 안 돼

38쪽


이 거친 삶의 전선에 나서는 거니까

→ 이 거친 삶에 나서니까

→ 이 거친 싸움터에 나서니까

51쪽


내 집에 들어와도 괜찮은 짐승이 있고

→ 이 집에 들어와도 되는 짐승이 있고

→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짐승이 있고

52쪽


시장 골목을 시찰하듯이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59쪽


마당이 널찍한 촌집을

→ 마당 널찍한 시골집을

102쪽


희망퇴직 한 거 맞죠?

→ 그만두셨죠?

→ 옷벗으셨죠?

→ 물러나셨죠?

105쪽


사실은 만도 씨의 절대미각에 질투가 났습니다

→ 그런데 만도 씨 입맛이 부러웠습니다

→ 막상 만도 씨 혀끝을 시샘했습니다

123쪽


내가 마신 게 몇 포더라

→ 내가 몇 자루 마셨더라

→ 내가 몇이나 마셨더라

133쪽


나의 아이들이

→ 우리 아이들이

→ 우리집 아이가

16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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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용기 - 클로뎃 콜빈, 정의 없는 세상에 맞서다 생각하는 돌 1
필립 후즈 지음, 김민석 옮김, 엄기호 해제 / 돌베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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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5.16.

푸른책시렁 185


《열다섯 살의 용기》

 필립 후즈

 김민석 옮김

 돌베개

 2011.11.21.



  ‘클로뎃 콜빈’이 어떤 어린날을 보내다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서 할머니로 살았는가 하고 짚는 《열다섯 살의 용기》입니다. ‘클로뎃 콜빈’은 모든 사람을 섭섭하다고 여기면서 ‘왜 내 이름은 안 끼우느냐?’ 하는 마음으로 내내 살아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책만 읽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이라면, 자칫 ‘담허물기’가 왜 일어나고 어떻게 벌였으며 오늘날 어떻게 자리잡는지 지켜보고 살펴보는 길보다는, 한숨 섞인 푸념에 그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오늘날에는 검은살빛이든 흰살빛이든 흙살빛이든 어느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만, ‘어린 클로뎃 콜빈’이 배움터를 다닐 즈음에는 검은살빛인 사람이 흰살빛인 사람이 맡는 일을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검은살빛인 어린이 클로뎃 콜빈은 배움터를 다녔어요. 어떻게 이 아이는 배움터를 다녔을까요?


  바로 ‘로자 파크스’ 같은 앞선 어른이 목숨을 걸고 굶주리면서 싸우고 힘쓴 뿌리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로자 파크스는 어떻게 일찌감치 눈을 뜨거나 깨어났을까요? 로자 파크스를 낳고 돌본 어버이와 여러 이웃이 있었어요. 그리고 ‘모든 흰살빛’이 ‘모든 검은살빛’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모든 흰살빛이 모든 검은살빛을 괴롭혔다면 굴레를 내내 이었을 테지요.


  숱한 흰살빛은 ‘둘레 흰살빛’한테 따돌림을 받고 목숨까지 빼앗기면서 검은살빛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열다섯 살의 용기》에도 여러모로 나옵니다만, 오히려 검은살빛끼리 스스로 깎아내리고 서로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돈과 일자리와 집을 거머쥐려는 마음이 앞서면 어느 살빛이든 매한가지입니다.


  말콤 엑스를 비롯한 검은살빛인 사람들은 한동안 부커 워싱턴이나 조지 워싱턴 카바를 손가락질하거나 비아냥댔습니다. ‘고작 학교와 직업 따위’로는 검은살빛이 일어설 수 없다고, 주먹(폭력)으로 흰살빛을 때려눕혀야 한다고 여긴 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어느 쪽이 옳거나 맞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할 뿐입니다. 게다가 검은살빛이건 흰살빛이건 ‘웃사내질(남성가부장권력)’이 버젓했는데, ‘검은흰’을 넘어서서 어깨동무를 바란 적잖은 사람들은 ‘어깨동무하는 검은흰’뿐 아니라 ‘어깨동무하는 순이돌이’를 바라보았어요. 로자라는 아주머니가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을 쓰는 뜻도, 아주머니 곁님인 아저씨가 ‘어깨동무하는 순이돌이’라는 길에 눈을 뜨고서 함께 걸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모저모 짚어 본다면, ‘클로뎃 콜빈’ 씨하고 《열다섯 살의 용기》를 쓴 ‘필립 후즈’ 씨는 ‘검은뿌리’를 그다지 안 짚고 안 살핀 듯합니다. 1955년 그날 그 버스에서만 물결이 일지 않았습니다. 모든 곳에 걸쳐서 물결이 일었습니다. ‘검은빛’ 아이들이 배움터를 다니는 몫을 누릴 수 있도록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고, 배움터에서 ‘검은흰’이 나란히 배우도록 하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어요. 이에 앞서 검은빛 아이들도 배움터를 다닐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하면서 굶주리면서 배움터를 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굴레끝(노예해방)’이 있은 뒤로 살아남아야 하는 갈림길에서 헤매고 힘겹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검은빛은 일찌감치 쇠(자동차)를 얻어서 몰고 다녔으며, 적잖은 검은빛은 쇠를 몰면서 다른 검은빛하고 등졌습니다. 그리고 쇠를 얻을 수 없는 가난한 살림에 집안을 돌보아야 하는 숱한 사람들은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탔습니다. 이른바 ‘흑인 변호사’라든지 ‘흑인 민권운동가’라든지 ‘흑인 목사’는 으레 쇠를 몰고 다녔기에 버스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로자 파크스 아줌마를 눈여겨본 바탕은 클로뎃 콜빈 푸름이하고 사뭇 다릅니다. 로자 파크스는 ‘웃사내질’이 판치는 한복판부터 ‘검은빛’뿐 아니라 ‘검은흰’을 넘어서는 새길과 새살림을 바라보는 작은걸음을 내딛었고, ‘버스 권리’를 얻어내는 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도 꾸준하게 땀흘린 삶이었습니다.


  말콤 엑스도 목숨을 잃었고, 마틴 루터 킹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1950∼60년대에는 웬만하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검은빛을 헤아리는 물결에 나서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일자리를 쉽게 잃으며 굶었습니다. 클로뎃 콜빈만 일자리를 못 찾으면서 고단하지 않았습니다.


  로자 파크스는 ‘말보다 몸’으로 일했고,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도 늘그막에 이르러 겨우 남겼습니다. 《열다섯 살의 용기》라는 이름으로 옮긴 “Twice Towards Justice”는 뜻깊은 책일 테지만, 필립 후즈는 지나치게 ‘클로뎃 콜빈 영웅 만들기’를 하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말콤도 킹도 로자도 클로뎃도 다 다르게 꽃입니다. 글이나 책에 이름이 안 남은 숱한 검은흰 사람들도 꽃입니다. 무엇이 서로 가로막는지, 무엇 탓에 자꾸 스스로 눈을 감고서 갉아먹거나 할퀴는지 돌아볼 때라고 느낍니다.


  1955년에 버스에서 목소리를 낸 일은 뜻깊고 아름답습니다. 이 하나만 다룰 수 있어도 뜻깊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1955년에 앞서 1935년에도 1945년에도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고, 1925년에도 1915년에도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으며, 1965년에도 1975년에도 지치지 않으면서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1985년에도 1995년에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고요.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가로지르는 길에서 고루 들여다보고 살피려는 눈과 손과 마음일 때라야, 비로소 검은·흰·흙빛이라는 겉살이 아닌, 모두 나란히 넋이라는 숨빛이라는 대목을 읽고서, 이제부터 새롭게 일굴 살림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바라볼 수 있을 테지요.


ㅍㄹㄴ


특히 괴로웠던 건 친구들이 스스로를 깎아내린다는 사실이었어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멍청한 검둥이’라고 불렀어요. 멍청한 검둥이! 흑인 애들끼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을 쓰는 거죠 … 어떤 이유에선가 우리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은 늘 자기 머릿결과 피부색을 깎아내렸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머리카락은 정말 역겨워”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요? 아니면 “나는 흑인이어서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건요? (53쪽)


백인 남자가 흑은 여자애를 성폭행하는 사건은 늘 일어났어요. 하지만 남자가 잡아떼면 아무도 여자애 말을 믿지 않았어요. 백인 남자들은 늘 처벌을 받지 않았죠. (57쪽)


경찰관이 소리를 버럭 질렀어요. “일어나!” 왈칵 울음이 터졌지만, 반항심은 점점 커졌어요. 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저 백인 아줌마처럼 나도 이 자리에 앉을 헌법상의 권리가 있어요. 나도 차비를 냈다고요. 이건 헌법상의 권리라고요!” (72쪽)


“네스빗 선생님과 몇몇 선생님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줬어요. ‘너는 정말 용감한 아이야’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죠.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달갑잖은 것 같았어요. 몇몇 부모들도 그렇게 보였고요. 나보다 훨씬 이전에 자신들이 나섰어야 했다는 걸 아는 거죠. 어른들은 십대인 내가 그 일을 했다는 사실에 당황했어요.” (84쪽)


학교로 돌아왔을 때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나한테 등을 돌렸어요. 어디를 가도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댔어요. 복도를 걸어가는 나를 보고 킬킬거리며 흉내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죠. “이건 헌법상의 권리예요! 이건 헌법으로 보장된 내 권리라고요!” 나는 흑인들을 위해 맞서 싸웠어요. 우리 권리를 위해 일어섰어요. 영웅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런 반응은 생각도 못했어요. (95쪽)


몽고메리 흑인 지도자들은 클로뎃 사건을 상급 법원으로 가져가서 인종을 분리하는 버스 좌석 제도의 위헌성을 따지려고 했다. 하지만 카터 판사가 약삭빠르게 해당 죄목을 무혐의 처리하는 바람에, 인종 분리법과 관련해서는 명확하게 상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01쪽)


#ClaudetteColvin #TwiceTowardsJustice #클로뎃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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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용기》(필립 후즈/김민석 옮김, 돌베개, 2011)


내가 정말 영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많았던 건 분명해요. 나는 뭐든지 궁금해서 별걸 다 물어봤어요

→ 내가 참말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궁금했어요. 나는 뭐든지 다 물어봤어요

→ 내가 참말 똑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궁금했어요. 나는 뭐든지 물어봤어요

36쪽


보이콧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격려했다

→ 널리 거스르도록 북돋았다

→ 거침없이 등지도록 일으켰다

132쪽


마지막으로 동네에서도 내침을 당했어요

→ 마지막으로 마을에서도 내쳤어요

→ 마지막으로 마을도 나를 내쳤어요

179쪽


우리는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어요

→ 우리는 이야기도 했어요

→ 우리는 묻고 알려줬어요

19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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