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감각
조수용 지음 / B Media Company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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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28.

까칠읽기 78


《일의 감각》

 조수용

 B Media Company

 2024.11.10.



  “일의 감각”이라고 하면 우리말이 아니다. 우리말로는 ‘일결’이나 ‘일느낌’이나 “일하는 결”이다. ‘일빛’이나 ‘일매무새’나 ‘일새’나 ‘일느낌’이나 ‘일늧’이라 할 수도 있다. 《일의 감각》을 읽는 내내 ‘지기’가 아닌 ‘오너(owner)’라는 자리와 벼슬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줄거리를 느낀다. 글쓴이가 ‘오너’로 오래 일하는 터라 스스로 선 자리에서 말할 수밖에 없기는 하겠는데, 이 책을 누가 읽으라고 썼는지 모르겠다. ‘지기(오너)’라는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읽으라고 썼을까? ‘지기를 따르는 밑자리 일꾼’이 읽으라고 썼을까? 또는 ‘지기’로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글쓴이가 여태 걸어온 길을 자랑하거나 내세우려고 썼을까? 글쓴이만큼 거머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면서 “너희도 이렇게 하면 나처럼 돈도 잘 벌고 이름도 날리고 힘도 쥘 수 있어!” 하고 가르치려고 썼을까?


  일터를 이끄는 사람을 보면 하나같이 매우 바빠 보인다. 일터지기 가운데 집안일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좀처럼 못 보거나 거의 못 본다고 할 만하고, 아예 없다고 해도 될 만하다고까지 느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일터지기뿐 아니라 ‘수수한 일꾼’마저 일터에서 힘을 다 쏟아내느라 지쳐서 집안일을 할 몸이 아니다. 지치고 고단해서 손전화를 톡톡 눌러서 시켜먹기 일쑤요, 설거지를 손으로 하는 일도 드물며, 솥밥을 날마다 손수 지어서 누리는 사람도 그야말로 드물다.


  이뿐 아니다. 이제 어린이와 푸름이는 밥차림을 아예 모르다시피 한다. 집에서는 으레 엄마가 다 차려주고, 배움터에서는 모둠밥(급식)을 받는다. 오늘날 어린이와 푸름이는 ‘설거지’라는 낱말조차 잊어버릴 판이다. ‘수세미’라는 낱말도 잊어버릴 수 있다. ‘비’와 ‘걸레’를 손에 쥘 일이나 틈조차 없다고 할 만하다.


  일터지기라면, 언제나 밑바닥부터 일하는 사람일 노릇이라고 본다. 일터지기라면, 맨 먼저 할 일이란 누구보다 일터에 일찍 나와서 빗자루를 쥐고서 마당부터 쓸 노릇이라고 본다. 골마루도 쓸고, 걸레를 빨아서 미닫이도 닦는다면 더욱 알뜰하다. 일터지기란 일터사람한테 ‘일빛’을 몸소 보이는 사람이게 마련이라, 비질과 걸레질부터 아침에 보여주면서 가볍게 수다로 하루를 열 노릇이라고 본다.


  일터는 온힘을 쏟아낼 곳이 아닌, 알맞게 힘을 기울여서 일을 함께 맡고서, 이제 저녁에 집으로 느긋이 돌아가서 “집살림을 사랑으로 가꾸는 힘을 기쁘게 쏟도록 북돋우”는 자리일 노릇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일터지기(오너)라는 자랑이 너무나 넘실대는 《일의 감각》은 누구한테 읽히려고 쓴 책인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다. 이렇게 꾸미고(디자인), 저렇게 덧입혔다(구상·재현)는 여러 열매를 보여주는 줄거리는 안 나쁘되, 이런 열매를 왜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마음인지 아리송하다.


  부디 빗자루와 수세미를 쥐기를 빈다. 마을 한켠 작은책집으로 마실을 뚜벅뚜벅 다니면서 날마다 새롭게 작은책 한 자락으로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누려 보기를 빈다. 어린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어진 마음을 찾아나서 보기를 빈다. 굳이 자꾸 영어로 씌우지 말고,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면서 어린이 마음밭을 일구는 길에 이바지할 쉬운 우리말결을 찾아보기를 빈다.


+


《일의 감각》(조수용, B Media Company, 2024)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 어떻게 그렇게 여러 길을 쌓을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 어떻게 그렇게 여러 발걸음을 쌓았는지 궁금해하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20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매 순간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겁니다

→ 늘 길이 잘 풀렸다고만 생각합니다

→ 언제나 술술 풀렸다고 생각합니다

20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집념을 가지고 노력한 적은 없습니다

→ 꼼꼼히 그려서 이루려고 마음을 다한 적은 없습니다

→ 차곡차곡 꿈을 세워서 이루려고 용쓴 적은 없습니다

20


모든 일에는 오너가 있기 마련입니다

→ 모든 일에는 기둥이 있게 마련입니다

→ 모든 일에는 들보가 있게 마련입니다

→ 모든 일에는 지킴이가 있습니다

24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고 해도 그게 드러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오랫동안 품을 들였다고 해도 이를 드러내면 안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 오랫동안 땀을 들였다고 해도 이를 드러내면 안 되는 줄 되새겨야 합니다

90


이 일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매일 고민해야 비즈니스의 본질이 드러나고, 그 결과 기획이 선명해져서 디자인 결정이 용이해집니다

→ 이 일을 왜 하는지 날마다 헤아려야 왜 돈을 버는지 드러나고, 어떻게 짜야 하는지 뚜렷해서 밑동을 그리기 쉽습니다

→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늘 돌아봐야 밑그림이 드러나고,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또렷하니 쉽게 앞그림을 그립니다

141


그저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한 직장인이었고

→ 그저 가장 나은 길을 이루려고 애쓴 일꾼이었고

→ 그저 땀흘린 달삯쟁이였고

18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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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주사 맞기 싫어!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6
허은순 지음, 김이조 그림 / 보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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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29.

읽었습니다 340



  ‘바른 우리 말 읽기책’으로 나온 《예방 주사 맞기 싫어!》를 읽었다. 앞으로 앓지 않도록 바늘을 미리 꽂아야 한다고 여기지만, ‘미리맞기(예방주사)’를 어떤 물(성분)로 만드는지 하나도 안 밝히고 안 알려주면서 그저 맞아야 한다고만 밀어붙여도 될는지 아리송하다. ‘바늘(주사)’을 안 맞으면 그냥 ‘무섬보(겁쟁이)’인가? 모기에 물리면 나쁜가? 모든 모기가 우리 목숨을 확 빼앗을 수 있는가? ‘모기향’은 냄새로 모기를 죽이는, 이른바 ‘벌레잡이(살충제)’인데, 목숨을 빼앗는 모기향을 태울 적에 사람은 멀쩡할 수 있을까? 우리 목숨을 바로 빼앗지 않는다는 모기향이라지만, 모기 목숨을 안 갉는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 모기향’은 ‘발암물질 말라카이트그린’을 넣어서 짙푸른 빛깔이었고, 2006년부터는 우리나라도 이런 물을 쓸 수 없도록 막았다. 그런데, 이 대목도 못 다루면서 “모기는 나쁘고, 모기향은 그냥 쓰면 되고, 예방주사를 맞아야 아플 일이 없이 몸이 튼튼하다”고만 줄거리를 다루어도 될는지, 이제는 좀 하나하나 짚을 노릇 아닐까?



《예방 주사 맞기 싫어!》(허은순 글·김미조 그림, 보리, 2013.4.3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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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발랄 하은맘의 닥치고 군대 육아 지랄발랄 하은맘의 육아 시리즈
김선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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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29.

읽었습니다 339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삶에는 끝이 없다. 모든 아이는 어버이랑 도란도란 살아가며 언제나 즐겁기를 바란다. 몇 살에 이르면 제금을 나려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어느 나이를 맞이하면 따로살기를 해야 하는 아이도 없다. 오늘날 이 나라는 모든 아이가 스무 살을 앞두고서 ‘돈벌잇자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듯이 몰아세운다만, 아이는 ‘돈을 벌려고 태어나는 숨결’이 아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돈벌잇자리를 가르치거나 알려주려고 낳지 않’는다. 이 대목을 잊어버릴 뿐 아니라, 나라에서 이 대목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탓에, 다들 힘겹고 고되고 벅찰 뿐 아니라, 배움수렁(입시지옥)이 무시무시하다. 《닥치고 군대육아》를 읽다가 한숨만 나왔다. 아이를 세 해만 돌보면 끝난다구? 터무니없다. 게다가 아이돌봄을 ‘자리(계급)’로 가를 수조차 없다. 몇 해쯤 아이를 보았으니 더는 안 보아도 된다면, 이미 어버이로서 끝장이다. 어버이가 아니지. 어른은 ‘아기 낳는 틀(기계)’도 아닐 뿐더러, 아이는 몇 살에 이르면 뭘 해내야 하는 틀(기계)일 수도 없다. ‘아이곁에서’ 살아가면 된다.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지으면 된다. ‘어른’으로서 사랑을 짓는 하루를 노래하면 된다. 제발 잔소리를 닥치고서 아이를 사랑하기를 빈다. 군대가 어떤 곳인가? 사람한테서 사랑을 빼앗고 지워서 오직 ‘싸움기계’로 길들이고 닦달하는 죽음터이지 않은가? 제발 아이하고 나란히 앉아서 아이랑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한테서 배우기를 바란다. 어버이란, 아이하고 오래오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사랑을 배우는 보람으로 이 삶을 노래하는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이다.



《닥치고 군대육아》(김선미, 알에이치코리아, 2023.1.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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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 김훈 문장 엽서(부록)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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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28.

읽었습니다 338



  삶이 덧없이 지나간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삶도 덧없거나 부질없을 까닭이 없다. 그냥 흐르는 삶이 아닌, 저마다 다르게 배우는 삶이다. 쓸쓸하게 사라지는 삶이 아닌, 하루하루 새롭게 마주하면서 차분히 익히는 삶이다. 우두커니 지나가지 않는다. 멍하니 잊히지 않는다. 이 삶에는 꽃길과 가시밭길이 나란하다. 이 삶에는 눈물과 웃음이 함께 있다. 《허송세월》을 돌아본다. 2004년이나 1984년에는 ‘아무 글’이나 써도 덧없다고 못 느꼈을까? 예전처럼 술담배를 못 하기에 부질없다고 느끼는가? 어느 말이건 글이건 모름지기 ‘나’를 나로서 바라볼 적에, ‘나’란 누구인지 고스란히 느껴서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 내가 먼저 ‘나’를 안 바라보면서 돈과 이름과 힘이라는 허울에 얽매이기에 헛되구나 싶은 허튼말글로 허수아비 노릇을 오래오래 하게 마련이다. 삶이 덧없다면 붓은 꺾기를 빈다. 아니, 이제는 제발 호미와 낫 좀 쥐기를 빈다. 이 땅에 왜 태어나서 살아가는가 하고 느끼고 싶다면, 날마다 머금는 밥과 바람과 물이 어떻게 온누리를 돌고돌아서 이녁 몸으로 스미는지 배우기를 빈다. 그 나이에 이르도록 흙살림과 풀살림에 다가서려고 아무것도 안 하니 부질없다는 푸념만 늘어놓고 만다. 왜 이 나라 흙사람은 봄을 놓고서 첫봄과 한봄과 늦봄이라 했을까? 왜 여름을 굳이 첫여름과 한여름과 늦여름이라는 이름으로 살폈을까? 글도 책도 집어치워도 된다. 바람을 읽고 흙을 읽고 비를 읽을 줄 안다면, 바람을 쓰고 흙을 쓰고 비를 쓰겠지. 먹물로는 멍을 때리는 글에 갇힐 테지만, 멧숲에 깃들어 머루를 바라볼 수 있다면 ‘머물’다가 내려놓을 몸을 어떻게 건사할 적에 나답고 사람답고 사랑다운 길인 줄 알아차리리라.



《허송세월》(김훈, 나남출판, 2024.6.20.)


ㅍㄹㄴ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 권이 나의 마음과 함께 무無로 돌아가고

→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이 내 마음과 함께 덧없이 돌아가고

→ 살아서 읽은 책 몇 자락이 마음과 함께 고요로 돌아가고

7쪽


나무들은 꽃 피고 잎 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의 빛과 냄새는 수시로 바뀐다

→ 나무는 꽃피고 잎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빛과 숲냄새는 곧잘 바뀐다

→ 나무는 꽃피고 잎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은 빛과 냄새가 늘 바뀐다

8쪽


나는 와인 두 잔 이상을 마시면 힘들어진다

→ 나는 포도술 두 모금이 넘으면 힘들다

→ 나는 포도술 두 모금부터 힘들다

→ 나는 포도술을 두 입도 못 마신다

12쪽


병이 들어서 의사에게 몸을 맡기게 된 신세의 설움이 복받쳤다

→ 몸이 아파 돌봄이한테 몸을 맡기는 꼴이 서럽다

→ 몸이 아파 돌봄이한테 몸을 맡겨야 하니 복받친다

18쪽


가끔씩 술 마시던 날들의 어수선한 열정과 들뜸이 그립다

→ 술마시며 어수선히 뜨겁고 들뜨던 날이 가끔 그립다

→ 어수선히 들끓고 들뜨며 술마시던 날이 가끔 그립다

20쪽


늙은이들이 너무 많아져서

→ 늙은이가 너무 늘어서

34쪽


여덞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 여덟 아이를 생각함

2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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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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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27.

읽었습니다 337



  우리는 누구나 아이요 어른이다. 처음 어버이 곁으로 태어나서 엄마아빠 품에서 자랄 적에는 아이라는 몸이라면, 차츰 철들고 눈이 밝으면서 둘레를 하나하나 알아보는 동안에 새롭게 어른으로 선다. 어느 나이에 이르러야 어른이지 않다. 철들면 어른이고, 철이 안 들면 일흔 나이여도 ‘철바보’이다. 《즐거운 어른》은 배를 곯지 않으면서 그냥그냥 조금 넉넉하게 살림을 꾸리며 살다가 할머니 나이에 이르러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책수다에 나들이도 다니는 하루를 들려준다. 글을 쓰는 할머니는 요사이도 부릉부릉 몰면서 홀가분히 돌아다닐 뿐 아니라, 나라밖마실도 심심찮게 다녀올 만하구나 싶다. 요새 나라밖마실을 못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나라밖은커녕 옆고을이나 옆고장으로조차 나들이를 못 하는 할매할배도 수두룩하다. 내가 사는 두멧시골 할매할배는 걷기도 버거우나 지팡이나 아기수레로 어쩌저찌 집과 마을쉼터 사이를 한참 걸려서 겨우겨우 오간다. 읍내 저잣마실조차 드문 마을할매를 지켜보노라면, 큰고장이나 서울에서 일거리를 잡는다든지, 짝꿍이 살림돈을 넉넉히 벌어오는 집안에서 지내면서 예순이나 일흔이나 여든을 맞이한 할매는 참 다르구나 싶다. 이옥선 할머니가 쓴 글을 읽노라면 “즐거워 보인다”고도 할 수 있되, 이보다는 “힘있는 어른”이나 “돈있는 어른”이 좀더 어울리지 싶다. 힘과 돈이 있어서 나쁠 까닭이란 없다. 그저 힘도 돈도 이름도 없이 두멧시골에서 지팡이나 아기수레로 100미터를 1시간에 걸려서 엉금엉금 기듯 나아가는 마을 할매할배를 날마다 지켜보면서, 마을 할매할배가 문득 들려주는 토막말에 깃든 숨결을 헤아리면서, “즐거운 어른”이란 더 천천히 걷는 사람이며, 더 나긋이 멧새소리와 철바람을 읽는 사람이지 않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즐거운 어른》(이옥선, 이야기장수, 2024.8.26.)


ㅍㄹㄴ


50대 초반에 집안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때쯤 동네 문화센터에서

→ 쉰 언저리에 집안일이 조금씩 줄어들 때쯤 마을 너른마당에서

→ 쉰을 지나 집안일이 조금씩 사라질 때쯤 마을 배움마당에서

5쪽


결과부좌를 하고 앉아서 단전호흡을 했다

→ 반듯하게 앉아서 배꼽숨을 했다

→ 틀어앉아서 배꼽밑숨을 했다

5쪽


누군가 말했듯이 가족이라 다 좋아 사는 건 아니고, 타인은 어차피 견디어주는 거라고 했다

→ 누가 말하듯이 한집이라 다 즐거워 살지 않고, 남은 뭐 견딘다고 했다

→ 누가 그러듯이 집사람이라 다 반갑지 않고, 놈은 그냥 견딘다고 했다

8쪽


젖가슴이 큰 게 그리 좋은가

→ 젖가슴이 크면 그리 기쁜가

→ 젖가슴이 그리 커야 하나

→ 젖가슴이 왜 커야 하나

50쪽


나의 해외여행 분투기

→ 이웃마실로 애쓰다

→ 바깥마실로 구슬땀

→ 나라밖마실로 발품

21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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