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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
김윤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22.
까칠읽기 60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
김윤식
솔
2005.4.21.
2018년에 눈을 감은 김윤식 씨가 2005년에 낸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은 여러모로 늘그막을 매듭짓는 꾸러미 가운데 하나일 텐데, 읽는 내내 아리송해서 갸우뚱했다. 이웃나라 일본을 드나들면서 살피고 느끼고 배운 바를 적는 글이 아닌, 내내 시샘과 부러움과 미움이라는 세 가지 마음을 불태운다고 느꼈다.
우리는 여러모로 일본을 미워할 수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이르는 우두머리를 “찢어죽일 놈”으로 나무랄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얼뜨기를 미워하면서 손가락질을 한들 무엇이 바뀔까. 얼뜨기가 얼뜬 짓을 해내면서 사람들을 홀릴 뿐 아니라, “얼뜬 우두머리가 홀린 허수아비”조차 짓밟을 수 있던 까닭과 바탕을 살펴서, 앞으로는 이런 얼뜬 굴레가 도사리지 않도록 이 터를 돌보는 길을 갈 노릇이지 않을까.
김윤식 씨는 일본사람 ‘야나기 무네요시’를 아주 시샘하고 부러워하다 못해 미워하기까지 한다. 아주 길게 이런 글을 적는다. 여러모로 보면, ‘미운놈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눈길과 글을 쓰는 글바치가 적잖은데, 여러모로 김윤식 씨가 한몫을 하는구나 싶다.
글빗(비평)을 펴는 사람도 사람이기 때문에 미워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지. 그러면 왜 미워하는가?
김윤식 씨는 이녁 스스로 버린 옛살림을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 한켠에 고이 모신 모습을 보고서 불같이 타오르면서 미워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 불길을 잠재우지 못한 나머지, 글에까지 불씨가 턱턱 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야나기 무네요시’ 한 사람만 ‘한겨레 시골살림’을 옮겨가지 않았다. 적잖은 일본사람이 한겨레 시골살림을 일본으로 옮겨갔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장사꾼이었고, 이들 가운데 숱한 사람은 이웃나라를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그야말로 ‘이웃’이자 ‘동무’였다.
우리나라에서 1970해무렵에 ‘한겨레 시골살림’을 건사해서 살림숲(박물관)을 연 진성기 님이 있는데, 이녁은 ‘한겨레 시골살림’을 건사하려고 제주 곳곳을 누빌 적에 언제나 ‘간첩신고’를 받고서 끌려갔다고 한다. 우리는 전형필이나 한창기나 예용해나 조자용을 곧잘 말하기는 하지만, 수수하게 논밭을 지으면서 살림을 일군 사람을 이웃과 동무로 마주하면서 손수 정갈하게 건사해서 살림숲을 이룬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보라, 전형필도 한창기도 조자용도 밑돈이 꽤 넉넉했다. 예용해는 한국일보 기자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네 시골살림을 넉넉한 밑돈으로 건사하면 아름답고, 일본사람이 우리네 시골살림을 넉넉한 밑돈으로 품으면 얄미울까?
더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묵은책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진다만, 이 묵은책을 건사하는 책숲(도서관)이 제대로 없다시피 하다. 이른바 ‘생활사박물관’이 얼마나 있는가? 미워할 짬이 있다면, 서울대학교에부터 살림숲을 열도록, 또 서울과 온나라에 살림숲을 열라고 두루 목소리를 펼 노릇이라고 느낀다. 다 다른 고을과 고장에 다 다른 고을살림숲과 고장살림숲이 설 노릇이고, 이런 살림숲은 으리으리한 집이 아닌 수수한 골목집과 시골집으로 가꿀 일이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결로 풀어낼는지 생각하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글빗(비평)을 편다. 그저 미워하기만 한다면, 숱한 글담(문화권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ㅍㄹㄴ
내가 처음 이곳에 발을 디딘 것은 조선 민예품 특별전(1971년)이 열렸을 적이다. 마당부터 집안 복도에 이르기까지 온통 조선 민예품으로 빼곡했던 것으로 회고된다. ‘빼곡했다’고 했거니와 그것은 충만이라 할 성질의 것이었다. 무엇의 충만이었던가. 그것이 생명 감각이었음을 알아차리기엔 세월의 무게가 요망되었다. 맨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이었던가. 지금도 생생하다. 커다란 함지박이 전시장 입구에 놓여 있었다. 함지박이라니! 어머니가 점심이나 중참을 이고 논두렁길을 걸어올 때 머리에 이던 바로 그 함지박이 아니겠는가. 누나가 외할머니 집에 갈 때 이것저것 담아가던 그 함지박이 아니었던가. (92쪽)
일본 민예관이다. 그렇다. 함지박, 물동이라 했거니와 우리 집 부엌 한켠에 있던 커다란 물독도 일본 민예관 거기 있었다. 갖가지 밥상이며 제기, 놋그릇, 질그릇도 거기 모두 와 있었고, 삼돌이가 늘 지던 지게도 거기 있었다 … 고리짝도 있었다. 칠보로 된 가락지도 가죽 신발도 있었다. 김치독과 느티나무로 된 멋진 구유도 있었다. 우리 집 장롱도 거기 있었다. 심지어 우리 집 덕석과 삼태기도 거기 있지 않겠는가. 아, 나는 집을 떠나 공부랍시고 동서로 표랑(漂浪)하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구나. (96쪽)
대체 우리 집을 몽땅 이곳 도쿄 한복판에 옮겨다놓은 자는 누구인가. 대체 내 유년기를 송두리째 빼앗아 여기에다 가두어놓은 자는 누구인가. 그가 대체 누구기에 이런 특권이 주어졌던 것일까. 그는 무슨 힘이 있어 이런 엄청난 일도 능히 해낼 수 있었을까. 초인이거나 신이 아닌 인간에게 어찌 이런 힘이 주어졌을까. 또 그래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묻는 것은 리얼리즘인가. 이렇게 묻는 것은 모더니즘인가. (102쪽)
어째서 그러한가. 일목요연한 해답이 주어진다. 그가 내 유년기를 송두리째 훔쳐갔기 때문이다.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아니, 소중히 모셔다놓았기 때문이다. 정성껏 모아서 비할 바 없는 정결함으로써 모셔다놓았던 것이다. (103쪽)
+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김윤식, 솔, 2005)
군도 알겠지만, 이 사직(社稷)과 겨레가 함께 어려웠던 시절
→ 자네도 알겠지만, 이 나라와 겨레가 함께 어렵던 무렵
→ 그대도 알겠지만, 한나라와 한겨레가 함께 어렵던 때
7쪽
동백꽃은 여전히 붉고 청청했다
→ 동박꽃은 아직 붉고 싱그럽다
→ 동박꽃은 그대로 붉고 맑다
22쪽
앞에서 인용한 구절을 이 글 속에 담았다
→ 앞에서 딴 대목을 이 글에 담았다
→ 앞에서 따온 도막을 이 글에 담았다
27쪽
간다 진보초의 서점 걷기를 순례라 굳이 부르고 싶은 이유는 새삼 무엇일까
→ 간다 진보초 책집 걷기를 굳이 마실이라 여기고 싶은 까닭은 무엇일까
→ 간다 진보초 책집 걷기를 새삼 나들이라 여기고 싶은 뜻은 무엇일까
54쪽
무엇의 충만이었던가. 그것이 생명 감각이었음을 알아차리기엔 세월의 무게가 요망되었다
→ 무엇이 찼던가. 이는 숨빛인 줄 알아차리자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 무엇이 가득했나. 이는 숨결인 줄 알아차리려면 더 살아내야 했다
92쪽
나는 집을 떠나 공부랍시고 동서로 표랑(漂浪)하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구나
→ 나는 집을 떠나 배운답시고 곳곳을 떠돌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구나
→ 나는 집을 떠나 배운답시고 두루 맴돌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구나
96쪽
어째서 그러한가. 일목요연한 해답이 주어진다
→ 어째서 그러한가. 똑똑히 풀이한다
→ 어째서 그러한가. 환하게 풀어낸다
103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