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5
미즈나기 토리 지음, 심이슬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3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5.23.
한달벌이란?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
미즈나기 토리
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3.30.
고흥 보금숲에서 밤에 잠들면, 첫여름을 앞둔 늦봄에 구성지게 노래하는 뭇밤새와 뭇개구리가 맑밝게 소리를 베풉니다. 밤소리를 듣노라면, 그저 ‘소리’일 수 없다고, 새와 개구리와 바람이 들려주는 마음이 묻어난다고, 오롯이 ‘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제 밤이 저물고 얼추 03시 30분부터 동이 희뿌윰히 트는데, 이즈음에는 뭇개구리 소리는 잦아들고 온갖 낮새가 하나둘 깨어나서 아침까지 신나게 소리를 베풉니다. 새벽소리와 아침소리를 듣노라면, ‘지저귄다’고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가 운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언제나 ‘새노래’에 ‘새벽노래’로구나 싶습니다.
어느 분이 “자연에 나쁜 디자인이 없다”고 말씀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아예 말이 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나쁜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다 다른 숨결이 다 다른 몸을 입고서 다 다르게 살기 때문입니다. 더 낫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결이 아니라, 그저 다른 숨빛으로 살기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숲에는 ‘숲’이 있을 뿐, ‘디자인’이 없습니다. 숲에는 ‘숲’이 있게 마련이라, ‘좋거나 나쁜 디자인’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습니다.
숲을 제대로 본다면, 나무 한 그루에 달린 잎이 모두 다르게 생겼고, 강아지풀조차 잎이 모두 다르고, 토끼풀도 다 다른 크기와 모습인 줄 알 테지요. 다 다르기에 어울리며 살아가는 숲(자연)일 뿐, 나쁘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란 처음부터 있을 까닭마저 없습니다. 이러한 결을 읽고서 마음에 새길 적에 비로소 사람 사이에서도 누구나 다르게 마련인 줄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잘못 여기는 대목 가운데 하나로, ‘흰사람(백인)’이기에 살갗이 희지는 않은데, 너무 모릅니다. 흰사람도 들숲에서 일하며 뛰놀 적에는 아이어른 모두 ‘구릿빛’이게 마련입니다. 흙사람도 들숲을 잊으면 허여멀건 살빛으로 바뀌고, 흙사람도 들숲메바다를 품으면서 뛰놀면 차츰 ‘까무잡잡’하게 바뀝니다.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읽었습니다. 우리집 두 아이랑 함께 읽는 그림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길이 무엇인지 들려주는 줄거리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스스로 짓는 하루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마주하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든든히 다리로 서서 즐겁게 손으로 빚고 엮고 가꾸고 짓는지 밝히는 알맹이입니다.
‘한달벌이’란 뭘까요? ‘한해벌이’란 무엇이지요?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돈을 벌거나 ‘돈벌자리’를 찾아야 하는가요? 이 나라는 총칼(전쟁무기·군수산업·자주국방)에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지요? 이 나라는 갖은 나루터(공항·항구·터미널)에 돈을 얼마나 들이붓는가요?
오늘날 시골은 서울을 흉내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서울에 있는 대로’ 흉내를 내요. 그런데 처음 몇 가지만 따라가거나 흉내를 낼 뿐, 서울에서 바꾸거나 고치거나 가꾸는 길은 좀처럼 안 따라가고 안 배우더군요. 이를테면, 이제 서울 곳곳에서는 ‘빛먼지(빛공해)’라 여겨서 밤에 길불을 줄이는데, 오히려 시골에서는 길불을 늘립니다. 서울에서는 아이들이 먹는 모둠밥(급식)을 ‘농약 없는 낟알과 푸성귀’로 바꾸어 가는데, 정작 시골에서는 ‘드론으로 농약 듬뿍 뿌리기’에 나랏돈을 어마어마하게 퍼붓습니다.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는 닷걸음을 지나서 엿걸음 이야기를 앞둡니다. 유난히 몸이 여리고 쉽게 앓는 아가씨가 맞닥뜨릴 고단한 삶길이지만, 고삭부리 아가씨를 둘러싼 마을사람과 일터사람이 한마음으로 조금씩 짐을 나눕니다. 저마다 짊을 수 있을 만큼 기쁘게 나눠받아요. 그리고 고삭부리 아가씨가 몸소 하려는 일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우리 터전은 무엇을 바라보는지 짚을 노릇입니다. 돈(경제성장)을 바라볼 적에는 고삭부리 아가씨나 ‘고삭부리 아가씨 둘레에서 일손을 거드는 사람’은 이바지를 못 하겠지요. 이와 달리, 돈이 아닌 ‘살림’을 헤아릴 적에는 나란히 서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모든 하루를 즐거운 어울림마당으로 누리고 나눌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2025년 6월에 나라지기를 새로 뽑습니다만, 이날은 잔칫날이 아닌 싸움날 같습니다. 누가 나라지기로 뽑히든 반기고 기뻐하고 손뼉을 치면서 ‘높낮이 없는’ 틀을 세우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뽑히거나 안 뽑히면 ‘일거리가 사라지거나 늘어난다’고 여기면서, 꼭 누가 뽑혀야 한다고 여기거나 누가 뽑히면 안 된다고 몰아세우면, 누구를 나라지기로 뽑더라도 끝없이 싸움판에 미움판에 불바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누구를 세우느냐’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무엇을 하느냐’여야지 싶습니다. 먼저 어린이를 앞자리에 세울 일입니다. 이다음으로 푸름이를 곁에 세울 일입니다. 이러고서 스무살과 서른살은 조금 뒷자리에 서고, 마흔살과 쉰살은 더 뒷자리에 서고, 예순살과 일흔살은 더더 뒷자리에 서면서, 온나라가 새길을 여는 슬기로운 숨빛을 이야기하고 나누고 펴면서 어울려야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보금자리를 보셔요. 엄마 뜻대로만 이끌든 아빠 뜻대로만 이끌든, 어느 한 사람 목소리대로 이끌면 다 괴롭습니다. 엄마아빠가 한마음을 이루도록 끝없이 얘기할 노릇이고, 아이어른이 한몸으로 움직이도록 끝없이 얘기해야지요. 이제는 ‘멋대로(승자독식)’를 걷어치우고서, “내가 나라지기로 뽑히더라도, 벼슬자리(장관·기관장)는 서로 고르게 나누어서 일을 잘할 만한 사람으로 함께 뽑겠습니다” 하고 밝힐 뿐 아니라 지킬 수 있는 틀로 갈 일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드디어 손에 넣은 24시간을 날 위해 쓸 수 있는 기쁨.’ (27쪽)
“뭐, 처음엔 다들 가볍게 여겨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똑같이 그런 말을 해도 앞으로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난 지금 인간관계를 정비하는 시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44쪽)
“저는 애들을 위해 일하고, 조만간 부모님 간병도 해야 할 텐데, 평생 일만 하면 내 인생은 언제 살지? 그런 생각이 들지 뭐예요.” (72쪽)
“게다가! 돈을 위해 무리하게 일했다가 몸이 망가져서 치료비에 돈을 쓰는 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요!” (73쪽)
“우리 집은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재료가 모여 완성된 우리 집만의 수제비 같잖아.” (114쪽)
“이렇게 타인의 컨디션을 배려하면서 요리하는 거 좋네요. 저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상상조차 안 돼서, 금방 몸에 탈이 나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거든요.” (141쪽)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소에 먹는 평범한 음식일 거예요.” (144쪽)
#しあわせは食べて?て待て
#水?トリ
+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잘 어울리네. 맛있어
→ 어울리네. 맛있어
→ 잘 했네. 맛있어
106쪽
지병을 앓으면서 혼자 사는 여직원이 있는데
→ 오래앓이로 혼자 사는 일순이가 있는데
110쪽
맛있게 잘 만들었네―
→ 맛있게 잘 했네!
124쪽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 깊이 걱정해 주신다고 느꼈어요
→ 무척 걱정해 주신다고 느꼈어요
137쪽
금방 몸에 탈이 나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거든요
→ 곧 몸이 말썽이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틈이 없거든요
→ 이내 몸이 아프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틈이 없거든요
141쪽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소에 먹는 평범한 음식일 거예요
→ 아마 가장 맛있다면, 늘 먹는 수수한 밥이에요
→ 아마 늘 먹는 수수한 밥이 가장 맛있어요
14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