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책은 어디 있는가 (2022.6.18.)

― 순천 〈책마실〉



  나부터 품고 싶은 책이지만 알아볼 사람이 드물는지 모르겠다고 느낄 적에는, 누가 이 책을 알아보고서 손길을 내밀면 그지없이 반갑게 마련입니다. 책으로 태어났다고 할 적에는 이미 알아볼 사람이 있다는 뜻이요, 알아볼 이웃을 즐겁게 기다리면서 설렌다는 마음이지 싶습니다.


  요즈음은 마을가게에까지 포도술이 잔뜩 들어섭니다. 숱한 포도술은 값도 맛도 빛깔도 다릅니다. 나고자란 포도밭도 다를 테지요. 날마다 숱하게 태어나는 책도 다 다른 삶터에서 하루를 일구는 사람이 다 다른 눈빛과 손길로 여밉니다. 그런데 갈수록 “다 다른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보다는 “어쩐지 비슷비슷하게 맞추는 줄거리”에 갇히는 듯싶습니다.


  스스로 되읽을 글을 쓰는지 되새길 일입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아름빛을 담은 책을 곁에 두는지 곱씹을 노릇입니다. 멋과 맛에 휩쓸리는 책쓰기나 책읽기이지 않은가 하고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순천으로 가볍게 숨돌리러 마실하면서 〈책마실〉에 들릅니다. 작은 듯하지만 작지 않은 책터를 이어받아서 꾸리는구나 싶은데,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살며시 ‘책마실’을 누릴 만한 곳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순천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레마다 책마실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곁님은 커피콩을 여러모로 다룹니다. 절구에 빻아서 내리기도 하고, 뚝배기에 여린불로 오래 끓여내기도 합니다. 그냥 손으로 갈아서 뜨거운 물을 붓고서 누리기도 합니다. 이 길과 저 살림을 지켜보노라면 다 다르게 거치는 손끝을 따라서 다 다른 내음과 빛이 흐릅니다. 무엇보다도 손으로 커피콩을 다루면 온집안이 조용하고 아늑해요. 찻집에서는 큰틀로 큰소리를 내며 갈기에 시끄럽습니다.


  큰책집에 수북하게 쌓은 책은 ‘찻집 큰틀 큰소리 커피갈기’와 같다고 느껴요.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들은 찻집마실을 하겠지요. 집에서 호젓이 손수 갈거나 내리는 사람은 적겠지요.


  연향도서관 곁에 있는 은행나무길을 따라서 오가는 마을책집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두다리로 뚜벅뚜벅 책숲마실을 다닌다면,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빛나고 거듭납니다. 우리 마을이 새롭게 반짝입니다. 낯설거나 처음 마주하는 책을 새삼스레 들추면서 스스로 피어나는 책꽃이게 마련입니다.


  여름에 여름골목을 같이 거닐 이웃님을 그립니다. 겨울에 겨울골목을 함께 거닐며 찬바람을 웃으며 맞이할 이웃님을 그립니다. 다 다르며 새로운 손끝을 그립니다.


ㅍㄹㄴ


《수피의 가르침》(이드레스 샤흐/박상준 옮김, 고려원, 1988.9.23.)

《김홍신의 인간手帖》(김홍신, 수레, 1986.9.10.)

《길에 관한 명상》(최인훈, 청하, 1989.3.25.)

《尹心悳 현해탄에 핀 석죽화》(유민영, 안암문화사, 1984.1.5.)

《달개비의 몸짓》(흙빛문학 동인회, 현대기획, 1985.10.26.)

《헤세문고 2 크늘프》(헤르만 헤세/홍석연 옮김, 문지사, 1987.4.30.)

《金潤成 詩選》(김윤성, 탐구당, 1982.7.1.)

《소서노召西奴》(안명옥, 문학의전당, 2005.12.20.첫/2006.4.20.3벌)

《하늘님, 나라를 처음 세우시고》(최래옥, 고려원, 1989.11.25.첫/1989.12.20.2벌)

《붓다의 호흡과 명상》(정태혁 엮어 옮김, 정신세계사, 1991.1.24.)

《印度佛敎思想史》(에드워드 콘즈/안성두·주민황 옮김, 민족사, 1988.12.30.첫/1990.1.25.2벌)

《내가 사랑한 책들》(오쇼 라즈니쉬/류시화 옮김, 동광출판사, 1991.6.10.)

- 〈자성서점〉 광양농협 옆 2-0232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하라다 마사즈미/오애영 옮김, 우리교육, 1995.1.10.첫/2011.8.18.고침14벌)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10 금강산 이야기》(권정생·이현주 엮음, 사계절, 1991.12.25.)

《설문대 할마님, 어떵옵데가?》(이성준, 각, 2012.10.15.)

《순천만, 시민사회 물결치다》(박두규, 이매진, 2008.1.10.)

《창조적 삶의 즐거움》(김재은, 까치, 1991.3.20.)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주영하, 도서출판 공간, 1994.6.20.)

- 김치라는 말이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나왔다는 국어학자 이기문 교수의 입장을 필자는 따른다. 다만 한자어 침채 대신에 우리말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침채라는 한자어로 옮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35쪽)

《학교는 왜 가난한가》(한국교육연구소 엮음, 우리교육, 1991.6.20.)

《仙人入門》(高藤聰一郞/김종오 옮김, 정신세계사, 1985.6.8.처음/1985.7.1.2벌)

《가이아, 생명체로서의 지구》(J.E.러브록/홍욱희 옮김, 범양사, 1990.1.20.)

《계몽사문고 100 미운 새끼오리의 꿈》(안데르센/이원수 옮김, 계몽사, 1980.8.18.)

- The Fairy Tale of My Life: An Autobiography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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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사주팔자



 사주팔자가 사납다 → 삶꽃이 사납다

 사주팔자를 잘 타고나다 → 길을 잘 타고나다

 아내 될 사람의 사주팔자보다 → 곁님 될 사람 삶길보다


사주팔자(四柱八字) : 1. [민속] 사주의 간지(干支)가 되는 여덟 글자. 예를 들어, ‘갑자년, 무진월, 임신일, 갑인시’에 태어난 경우, ‘갑자, 무진, 임신, 갑인’의 여덟 글자를 말한다 2. [민속] 타고난 운수



  나고지는 여러 길과 고리를 헤아리면서 삶을 읽는다고 합니다. 이때에는 ‘길·길눈·길꽃’이라 할 만하고, ‘네길·네곬·고리·네걸음·네고리’라 해도 어울립니다. 수수하게 ‘살다·살아가다·살아오다·살아내다’나 ‘살림·살림하다·-살이·삶’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삶길·사는길·삶꽃·삶맛·삶멋’이라고도 하지요. ‘살아갈 길·살아온 길·삶소리’나 ‘하루·하루꽃·하루빛·하루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사주팔자에 없는 쵸코바만 빨아대는 계집들같이

→ 네고리에 없는 달콤막대만 빨아대는 계집같이

→ 삶꽃에 없는 달달막대만 빨아대는 계집같이

→ 길눈에 없는 깜달막대만 빨아대는 계집같이

《겨울 공화국》(양성우, 실천문학사, 1977) 64쪽


사주팔자란 우리에게 새겨진 자연의 기운을 뜻합니다

→ 삶길이란 우리한테 새긴 푸른기운을 뜻합니다

→ 하루길이란 우리한테 새긴 숲기운을 뜻합니다

《사주 인사이트》(하나사주, 혜윰터, 20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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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불행 중 다행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 참으로 애먹었다

 결과적으로는 불행 중 다행이니 → 그래도 고마우니


불행중다행 : x

불행(不幸) : 1. 행복하지 아니함 2. 행복하지 아니한 일. 또는 그런 운수

중(中) : [의존명사] 1. 여럿의 가운데 2. 무엇을 하는 동안 3. 어떤 상태에 있는 동안 4. 어떤 시간의 한계를 넘지 않는 동안 5. 안이나 속

다행(多幸) :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음 ≒ 행(幸)



  낱말책에 없기도 하지만 굳이 실을 까닭이 없는 “불행 중 다행”입니다. 쓰임새나 뜻을 헤아린다면 ‘가까스로·겨우·하다못해’나 ‘그래도·그나마·이나마·망정·그럭저럭’으로 풀어낼 만합니다. ‘낫다·숨돌리다·한숨돌리다’로 풀어내고, ‘애먹다·애오라지·어렵다·힘겹다’로 풀어내요. ‘두손들다·두 손을 들다·쓸어내리다’나 ‘꽃보라·꽃비·단비’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봄꽃비·여름꽃비·가을꽃비·겨울꽃비’나 ‘봄단비·여름단비·가을단비·겨울단비’로 풀어도 어울려요. ‘반갑다·고맙다·기쁘다’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ㅍㄹㄴ



준공 날짜가 가까운 집으로 옮겨 살게 되었으니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 공사를 마칠 날이 가까운 집으로 옮겨 살았으니 그나마 나았다

→ 곧 다 지을 집으로 옮겨 살았으니 이럭저럭 나았다

→ 머잖아 다 지을 집으로 옮겨 살았으니 아쉬우면서도 조금 나았다

→ 이제 다 지을 집으로 옮겨 살았으니 힘들면서도 살짝 나았다

《이바구 저바구》(예용해, 까치, 1979) 95쪽


그 가운데 불행 중 다행으로 싹을 틔운 잡초가 있다고 해도

→ 그 가운데 가까스로 싹을 틔운 잡풀이 있다고 해도

→ 그 가운데 어렵사리 싹을 틔운 풀이 있다고 해도

→ 그 가운데 힘겹게 싹을 틔운 풀이 있다고 해도

→ 그 가운데 꿋꿋하게 싹을 틔운 풀이 있다고 해도

《즐거운 불편》(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 달팽이, 2004) 81쪽


그렇게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인 거지

→ 그렇게 생각하면 그나마 낫지

→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낫지

→ 그렇게 생각하면 좀 낫지

《일상 1》(아라이 케이이치/금정 옮김, 대원씨아이, 2008) 7쪽


하지만 폭주했다곤 해도 그 레벨에 멈춘 건 불행 중 다행이었어

→ 그런데 오두방정이라 해도 그쯤에서 멈춰서 숨돌렸어

→ 그러나 망나니라곤 해도 그 눈금에서 멈춰서 나았어

《일상 2》(아라이 케이이치/금정 옮김, 대원씨아이, 2008)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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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일본말] 문답무용もんどうむよう



もんどうむよう(問答無用) : 문답무용; 논의를 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음; 또, 논의의 필요성이 없음. (= 問答無益)

문답무용 : x

문답(問答) : 물음과 대답. 또는 서로 묻고 대답함

무용(無用) : 1. 쓸모가 없음 2. 볼일이 없음 ≒ 무요


 이번에는 문답무용이다 → 이제는 빈소리이다 / 이제는 덧없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문답무용이다 → 이 일은 한갓되다 / 이 일은 묻지 마라



  ‘문답무용’은 한자로 ‘問答無用’일 테지만, 일본말로는 ‘もんどうむよう’입니다. 우리말로는 ‘묻거나 말거나·묻든지 말든지·한갓되다’로 고쳐씁니다. “말하지 않다·말을 안 하다·말을 않다”로 고쳐쓰고, ‘덧없다·부질없다·하릴없다·재미없다·하찮다’나 ‘쓸모없다·쓸데없다·삽질·쓰레기’로 고쳐쓸 만합니다. ‘보잘것없다·보람없다·크잖다·같잖다’나 ‘물거품·빈소리·뻘·시들하다·시들다·시시하다’로 고쳐써도 어울려요. ‘알량하다·자잘하다·좀스럽다·쭉정이’나 ‘부스러기·지스러기·지푸라기·짚풀·쪽·쪼가리’로 고쳐씁니다. ‘허방·허탕·허튼·헛것·혹’이나 ‘군것·군더더기·꼽·곱·검불·돌·자갈’로 고쳐써도 됩니다. ㅍㄹㄴ



정말 비정상적인 녀석이구나. 문답무용!

→ 참말 엉뚱한 녀석이구나. 말을 말자!

→ 참 생뚱맞은 녀석이구나. 묻지 말자!

《시끌별 녀석들 15》(타카하시 루미코/이승원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 13쪽


뭐랄까, 문답무용의 존재?

→ 뭐랄까, 묻든지 말든지?

→ 뭐랄까, 묻거나 말거나?

→ 뭐랄까, 덧없달까?

→ 뭐랄까, 부질없달까?

《솔로 이야기 10》(타니카와 후미코/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3)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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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밀어 蜜語


 한밤의 밀어를 → 한밤 사랑말을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 사랑말을 속삭인다 / 사랑을 속삭인다


  ‘밀어(蜜語)’는 “남녀 사이의 달콤하고 정다운 이야기”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의 밀어’ 얼거리라면 통째로 털어냅니다. 우리말씨로 ‘사랑말’이나 ‘달콤말’처럼 손질할 만합니다. “사랑의 밀어”는 “사랑 속삭임”으로 손질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그대 품안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미래를 약속하는 밤

→ 그대 품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앞날을 다짐하는 밤

→ 그대한테 안겨 사랑을 나누고 앞일을 말하는 밤

《소서노召西奴》(안명옥, 문학의전당, 2005) 20쪽


나와 사랑의 밀어를 나눌 날도 머지않은 것 같네

→ 나와 사랑을 속삭일 날도 머지않은 듯하네

→ 나와 달콤말을 나눌 날도 머지않은 듯하네

《비르투스 4》(기본·시나노가와 히데오/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1) 97쪽


밤바다를 거닐던 젊은 연인의 밀어들

→ 밤바다를 거닐던 젊은 사랑님 속삭임

→ 밤바다를 거닐던 젊은 짝꿍들 사랑말

《박남준 시선집》(박남준, 펄북스, 2017) 42쪽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에 딱 좋은 공간이야

→ 사랑을 속삭이기에 딱 좋은 자리야

→ 사랑을 말하기에 딱 좋은 곳이야

→ 사랑말을 나누기에 딱 좋은 데야

《블랙 벨벳》(온다 리쿠/박정임 옮김, 너머, 2018)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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