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 집



  나래터(우체국)에서 글월을 부치고서 저잣마실을 한다. 이제 등을 쉬려고 볕바른 데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노래 한 자락 쓴다. 갑자기 담배내음이 난다. 덩치 큰 젊은이가 바로옆에서 담배를 태운다. 해를 더 쬐고 싶었으나 콜록거리며 얼른 자리를 뜬다.


  피울 몫(권리)처럼 안 피울 몫이 있다. 등짐을 지고서 글을 쓰며 걷자니 시골아재가 위아래를 홅으며 “안 추워?” 하고 구시렁댄다. 시골아재는 언제 나를 보았기에 깎음말(반말)을 갑자기 구시렁댈까? 그쪽을 쳐다볼 값어치도 없어서 조용히 걷는다. 아재 그대는 그늘진 데에서 해를 멀리하니 춥겠지.


  시골에 젊은이가 자리잡거나 돌아오려면 어떡해야 할까? 시골과 작은고을이 마냥 늙고 낡다가 죽어가는 길이란 무엇일까? 오늘도 고흥군청은 “산불금지 협박” 마을알림을 30분마다 쩌렁쩌렁 틀어댄다. 그러나 이런 마을알림을 아무리 날마다 끝없이 틀어대도 시골 할매할배는 아무 데에서나 ‘농약병·비료자루·멀칭비닐’을 그냥 활활 태운다. 이러는 김에 할매할배 집에 있는 쓰레기도 덩달아 태운다. 이미 시골에서는 어떤 마을알림도 보람이 없는데, 군청과 도청과 면사무소는 똑같은 마을알림을 틀어대면서 “공무원으로서 할 일을 다했소!” 하고 외친다.


  올들어 나무도 풀도 냄새가 옅다. 아무래도 시끌소리(소음공해) 탓이다.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은 거리불(가로등) 곁에서 살아야 하는 나무가 철을 잊을 뿐 아니라, 밤새 못 쉬느라 몹시 고달프다. 서울사람들은 “나무한테 무슨 마음이 있느냐?”는 둥,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둥, 그야말로 나무를 너무 모르는데, 나무도 밤에 자고 싶으며, 나무도 시끌소리를 안 듣고 싶다. 사람이 자는 곳에 밤새 불을 켜놓으면 사람도 잠을 못 이루듯, 나무도 밤에는 길거리 불을 다 꺼야 비로소 제대로 쉬면서 큰고장에 넘실거리는 매캐한 기운을 풀어낼 수 있다.


  해마다 제비가 줄어든다. 그래도 아직 돌아온다. 해마다 들숲이 줄고 부릉길이 늘면서 하늘이 매캐하다. 널뜀날씨(이상기후)는 ‘그들’이 아닌 바로 우리가, 두다리로 안 걷고 들숲과 철새텃새를 모조리 잊은 우리가 스스로 일으킨다. 우리가 눈을 떠야 날씨가 차분하다. 우리가 마음을 틔워서 푸르게 가꾸어야 푸른별이 아름답다.


  얼뜬 우두머리는 곧 목아지가 잘린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그곳만 쳐다보느라 정작 들숲바다가 얼마나 앓는지 등지고 만다. 걱정하거나 조바심을 낼 까닭이 없다. 얼뜨기는 한동안 힘을 거머쥐는 듯 보여도, 또 제법 오래 주먹을 휘두르는 듯 보여도,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진다. ‘종신독재자’를 하려던 이승만·박정희가 1948년부터 1979년까지 윽박질렀지만, 어느새 한 줌 모래알로 사라졌다. 더 사납게 ‘종신독재자’를 노린 전두환은 고작 일곱 해도 안 되어 우리 손에 끌려내려왔다.


  ‘그들이 힘을 쥔 한때’는 서른 해 일 수 있고, 일곱 해 일 수 있고, 두어 해일 수 있다. 다만 갈수록 그들은 힘을 쥐는 해가 줄어든다. 이 대목을 눈여겨보자. 우리는 우리 길을 그릴 노릇이다. 우리 스스로 들숲메를 잊기에 그들과 함께 들숲메를 망가뜨린다. 우리 스스로 아이곁에 서지 않으니까 아직도 배움불굿(입시지옥)이 안 사라진다.


  나는 집에서 나와서 걷는다. 논두렁도 걷고 골목도 걸으며 가볍게 바깥일을 보고서 집으로 간다. 우리집 새소리와 풀꽃내음을 그린다. 걷고 걷고 걷는다. 걷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시골버스에서 토닥이면서 하루쓰기를 하노라니 어느새 내릴 곳에 이른다. 마을앞에서 내려 고샅을 거닐며 집으로 가자니 큰아이가 통통통 가볍게 달려나온다. 열여덟 살에 이른 큰아이는 “우리집 동박꽃이 활짝 피었어요!” 하고 노래한다. 다른 곳은 동박꽃(동백꽃)이 벌써 다 졌다지만, 우리집 동박나무는 넷쨋달이 가장 빛나게 타오르는 꽃잔치이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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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교사의


 교사의 임무라면 → 길잡이 일이라면

 교사의 숙명이다 → 스승이라는 삶이다

 교사의 하루는 → 배움꽃 하루는 / 길잡이 하루는 / 가르치는 하루는


  ‘교사(敎師)’는 “1. 주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따위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2. [불교] 태고종에서, 교리를 연구하는 승려의 법계(法階) 가운데 하나”를 뜻한다고 합니다. ‘교사 + -의’ 얼거리라면 ‘-의’를 털고서 ‘가르치다’나 ‘길불·길불빛·길빛’이나 ‘길잡이·길라잡이·길앞잡이·길잡님’이나 ‘길님·길잡이불·길잡이빛·길눈’으로 손봅니다. ‘끌다·끌고 가다·끌어가다’나 ‘이끌다·이끎이·이끎님·이끎빛·이끎지기’로 손보고, ‘배움꽃·배움빛·배움어른·익힘꽃·익힘빛·익힘어른’으로 손볼 만해요. ‘샘·샘님·샘물님’이나 ‘스승·스승님’으로 손보고, ‘우등불·장작불·큰불·화톳불·횃불·횃불잡이’로 손보면 되어요. ‘키·키잡이·알려주다’나 ‘열린길잡이·열린길잡님·열린길불·열린길빛·열린길님’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또 어떤 친구는 특수교사의 꿈을 꾸고, 어떤 친구는 가게의 점원으로 일을 하며 성실히 자신의 장래를 설계한다

→ 또 어떤 아이는 별빛지기 꿈을 꾸고, 어떤 아이는 가게일꾼으로 일을 하며 꾸준히 제 앞길을 그린다

→ 또 어떤 아이는 별지기 꿈을 꾸고, 어떤 아이는 가게에서 일을 하며 바지런히 제 앞날을 그린다

《어떤 동네》(유동훈, 낮은산, 2010) 24쪽


아이들이 중요하다고들 하면서 사실은 교사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대변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아이들을 높인다고들 하면서 정작 길잡이 생각을 아이들한테 드러내지는 않는가

→ 아이들을 섬긴다고들 하면서 막상 길잡이 생각을 아이들더러 말하라고 시키지는 않는가

《돼지가 있는 교실》(쿠로다 야스후미/김경인 옮김, 달팽이, 2011) 173쪽


아침 햇살 속에서 들썩거리는 학생들과는 대조적으로 인솔 교사의 얼굴은

→ 아침햇살에 들썩거리는 아이들과는 달리 길잡이 얼굴은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히라이 미쓰코/윤수정 옮김, 생각비행, 2020)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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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혼란작전·혼란야기



 치밀한 혼란작전이었다 → 빈틈없이 흔들었다 / 꼼꼼한 가탈질이다

 혼란작전을 개시해 볼까 → 슬슬 어지럽혀 볼까 / 이제 딴지를 걸어 볼까

 혼란야기가 성공했다 → 어깃장이 먹혔다 / 헤살질이 들어맞았다

 돌발적인 혼란야기로 인하여 → 갑작스레 휘저어서 / 갑자기 쑤석대서


혼란작전 : x

혼란(混亂) : 뒤죽박죽이 되어 어지럽고 질서가 없음 ≒ 효란(淆亂)

작전(作戰) : 1.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나 방법을 강구함 2. [군사] 군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행하는 전투, 수색, 행군, 보급 따위의 조치나 방법. 또는 그것을 짜는 일



  뒤죽박죽이 되도록 하는 짓이라며 ‘어지럽히다·어지럽다’요, ‘흔들다·쥐고 흔들다·쥐락펴락’입니다. 이런 짓은 ‘갖고놀다·뒤섞다’나 ‘딴지·딴죽·딴지걸기·딴죽걸기·딴지질·딴죽질’나 ‘덫·올가미·올무·몽니’라 할 만합니다. ‘가로막기·가탈·까탈’이나 ‘어깃장·이아치다’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헤살·헤살질·행짜’나 ‘망가뜨리다·뒤뚱·기우뚱·휘청’이라 해도 되겠지요. ‘쑤석거리다·젓다·휘젓다·파먹다·좀먹다’나 ‘잔꾀·찬물 끼얹다·찬물보라’로 나타내어도 어울리고요. ㅍㄹㄴ



“응, 혼란작전이거든.” “친구인데 그럴 필요가.”

→ “응, 어지럽히기거든.” “동무인데 그럴 까닭이.”

→ “응, 흔들기거든.” “동무인데 그렇게.”

→ “응, 딴지걸기거든.” “동무인데 그럴 수가.”

→ “응, 헤살질이거든.” “동무인데 그렇게까지.”

→ “응, 어깃장이거든.” “동무인데.”

→ “응, 갖고놀기거든.” “동무한테.”

《은빛 숟가락 16》(오자와 마리/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9) 32쪽


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교사에게 자기규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 어지럽히면 안 된다면서 길잡이한테 스스로 손질하라고 바라는 셈이다

→ 흔들면 안 된다면서 길잡이더러 스스로 억누르라고 닦달하는 셈이다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히라이 미쓰코/윤수정 옮김, 생각비행, 2020)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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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주의주장



 주의주장이 강한 사람 → 제 생각이 센 사람 / 생각과 길이 단단한 사람

 상대방의 주의주장부터 경청하자 → 저쪽 목소리부터 귀담아듣자

 서로의 주의주장을 확인한 후에 → 서로 어떤 뜻인지 살피고서


주의주장 : x

주의(主義) : 1.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 2.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 ≒ 이즘(ism)

주장(主張) : 1. 자기의 의견이나 주의를 굳게 내세움. 또는 그런 의견이나 주의 2. = 주재(主宰)



  낱말책에 따로 없으나 ‘주의주장’이라는 한자말을 둘레에서 곧잘 씁니다. 곰곰이 보면 겹말인데, 우리말로는 ‘말·말꼴·말붙이·말씀·말하다’나 ‘생각·목소리·목청’으로 다듬을 만합니다. ‘걸다·내걸다·고래고래’로 다듬을 수 있어요. ‘앞세우다·외치다·읊다·읊조리다’나 ‘뜻·소리·소리치다·하다’로 다듬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동시에 결코 내 주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 그리고 내 목소리를 마구 밀어붙이지 않고

→ 고래고래 밀어붙이지 않으면서

→ 내 뜻만 밀어붙이지 않으면서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히라이 미쓰코/윤수정 옮김, 생각비행, 2020)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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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미래지향



 미래지향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 멀리보는 일자리를 고르려는

 미래지향 이미지를 선택하여 → 새로운 그림을 골라내어

 미래지향의 방침을 확고히 한다 → 앞으로 나아갈 뜻을 새긴다


미래지향(未來志向) : [철학] 독일의 후설(Husserl, E.)의 현상학에서, 미래의 체험이나 의식을 현재의 의식 안에 설정하는 일. 미래는 현존재일 수는 없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서 미래가 지향되는 한 미래 역시 하나의 존재이고 현재의 의식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앞을 바라본다고 할 적에는 꿈을 그린다는 뜻입니다. 이런 줄거리라면 ‘꿈그림·꿈생각·꿈날개·꿈길’이나 ‘길그림·길짜임·애벌그림’으로 풀어냅니다. ‘꽃그림·꽃빛그림·들꽃그림·들빛그림’이나 ‘앞·앞꽃·앞꿈·앞날’로 풀어낼 만하고, ‘앞그림·앞길·앞걸음·앞빛·앞살림’이나 ‘내다보다·멀리보다·뒷날·뒷길’로 풀어내지요. ‘먼눈·먼꽃·먼보기·밑그림’이나 ‘이다음·디딤꿈·별·별빛·별빛살’로 풀어낼 만하고, ‘새·새롭다·새롬빛·새롬별·새롬꽃’이나 ‘새그림·새길·새빛·새넋·새얼’로 풀어내어도 어울립니다. ‘생각날개·생각나래’나 ‘일그림·숲그림·푸른그림·풀꽃그림·풀빛그림’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ㅍㄹㄴ



미래 지향 자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 앞그림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 새그림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 꿈그림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 멀리보기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히라이 미쓰코/윤수정 옮김, 생각비행, 202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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