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종종거리는 (2025.4.30.)
― 인천 〈나비날다〉
올해는 첫봄 한봄 늦봄 모두 부드럽게 찾아와서 차분하게 흐릅니다. 올여름도 보드랍게 스미면서 찬찬히 흐르겠다고 느낍니다. 겨울끝도 봄끝도 넉넉히 누릴 즐거운 철빛입니다. 왁자지껄하게 함께 나들이하는 하루가 있고, 조용히 혼자 마실하는 길이 있습니다. 일이 바쁘면 서두를 테지만, 일이 바쁘기에 느긋할 만합니다.
마주하고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서 스스로 짓는 발걸음이라고 봅니다. 좋기에 좋거나 나쁘기에 나쁘지 않아요. 마음을 다스리는 길에 맞추어 늘 다른 삶입니다.
종종거려야 할 적에는 종종걸음을 칩니다. 뚜벅뚜벅 나아갈 적에는 뚜벅걸음입니다. 이따금 달리고, 곧잘 내달리고, 으레 멈추고, 자꾸 숨을 돌리면서, 날마다 새롭게 감도는 바람맛을 헤아립니다. 《말밑 꾸러미》를 한창 매듭짓던 이태에 걸쳐서 인천 배다리책거리에서 ‘말밑수다’를 폈습니다. 이미 끝냈다고 여기던 꾸러미였지만, 이웃님한테 새록새록 보태어 들려주는 동안 “아직 갈 길이 한참 있네” 하고 되새기며 가다듬고 손질했습니다. 이제 다 손질했으려나 하고 되짚다가 “이봐, 길이 끝나면 늘 새길로 있잖아?” 하고 돌아보며 고쳐쓰고 추슬렀습니다.
종종걸음이 될 적마다 총총별빛을 올려다봅니다. 총총한 시골밤을 고스란히 품으면서 초롱초롱 붓끝으로 거듭나자고 생각합니다. 너는 스스로 별입니다. 나도 스스로 별입니다. 너랑 나는 자그맣게 온누리요, 나하고 너는 나란히 온빛이면서, 함께 온꽃입니다. 스스로 반짝이기에 어깨동무로 반짝반짝하고, 밤과 낮을 밝혀요.
한봄볕을 듬뿍 쬐면서 〈나비날다〉에 찾아듭니다. 골목꽃과 마을나무를 눈여겨보며 걷다가 책집에서 다리를 쉽니다. 다릿심이 조금 돌아오면 골마루를 거닙니다. 등허리를 펴고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책을 살핍니다. 이 책을 집어서 죽 읽습니다. 저 책을 꺼내어 살살 읽습니다. 어느 고을 어느 이웃이 어느 철바람을 쐬면서 붓을 쥐었을까 하고 어림합니다. 철이 흘러도 철볕과 철꽃을 모르면서 붓을 놀리는 이웃이 있고,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철길과 철눈을 품으면서 붓꽃을 피우는 이웃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걸어온 길만큼 읽고 익혀서 일굽니다. 저는 오늘부터 새로 걸어갈 길에 따라서 읽어내고 무르익어서 이야기를 폅니다. 제가 마주하는 이웃님도 오늘까지 살핀 다음 오늘부터 살펴볼 말씨 한 톨을 주고받습니다.
작은몸으로 해맑게 노래하는 종달새입니다. 조곤조곤 나누는 말마디에 조그맣게 맺는 꽃망울이 깃듭니다. 해는 높아갑니다. 낮이 차츰 깁니다. 깊어가는 봄을 느끼면서 살살 돋는 풀포기가 늘어납니다. 봄날을 걸을 수 있어서 온하루가 기쁩니다.
ㅍㄹㄴ
《헌책 식당》(하라다 히카/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2024.10.29.)
#古本食堂 #原田ひ香
《웃음과 비탄의 거래》(마크 트웨인/정소영 옮김, 온다프레스, 2022.1.17.)
#MarkTwain
《태교 이야기》(람사정, BOOKK, 2025.1.3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