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15. 난 돼 넌 안 돼



  이른아침에 길을 나선다. 비가 뿌린다. 옆마을에 닿아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새봄 찬비가 내리니 손가락이 언다. 언손을 녹이면서 노래를 한 자락 쓴다. 한참 기다려서 탄다. 버스에서 노래를 옮겨적는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늙은아재가 손을 흔든다. 버스일꾼은 기꺼이 멈추어서 기다려 준다. 그런데 늙은아재가 타니 냄새가 훅 끼친다. 불술(소주)에 절디전 이곳 시골 아재들 냄새이다.


  고흥읍내에 닿는다. 부산 가는 버스를 한참 기다리며 노래 한 자락 쓰고서, 지난달 부산마실길부터 쓰던 꽃글(동화)을 마저 쓴다.


  그런데 읍내 늙은아재가 아주 걸쭉하게 막말바가지를 푼다. 척 보아도 늙아재 어매뻘 되는 할매더러, 예가 어딘데 좌판을 펴느냐고, 니들 방구석이냐고 새로 걸쭉하게 막말바가지를 푼다. 할매는 잘못했다고 빌며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부산버스를 기다리며 한창 꽃글을 여미는데, 어디서 매캐하고 뿌연 김이 퍼진다. 담배내음이구나. 고흥읍 버스나루에 “금연” 딱종이가 서른쯤 붙었으나 늙아재는 아랑곳않고서 뻑뻑 피위댄다.


  막말바가지를 푸던 늙아재는 뭐 하는 분이려나 헤아려 본다. “난 돼 넌 안 돼”를 몸소 보이는 이 매무새를 어찌 읽어야 할까 곱씹는다. 시골 읍내 버스나루에서 담배를 태우는 분을 보면, 일곱은 늙아재에 둘은 할배에 하나는 앳된 젊은사내이다. 이들은 가끔 서울 아가씨가 이곳에 내려서 담배를 물면 오지게 막말바가지를 푸더라.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다. 시골 늙아재한테 책을 쥐어주고서 100점 맞을 때까지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런 시골은 모조리 사라져도 된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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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3.16.

오늘말. 쏘아보다


우리는 누구나 다르게 살아갑니다. 겉모습이 다르기도 하지만 마음부터 다르고 넋과 숨결이 다릅니다. 우리 하루를 가만히 마주하면서 삶길을 옮기면 그대로 삶글입니다. 저마다 다르기에 굳이 “난 너랑 달라.” 하고 금을 안 그어도 다 다른 노래빛으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든 사람이 다르기에, 높거나 낮은 자리란 없습니다. 다른 모습과 살림길처럼 다 다른 자리예요. “왜 넌 나랑 달라?” 하며 노려볼 까닭이 없습니다. “왜 나를 안 받아들여?” 하면서 쏘아볼 일이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짓는 살림빛을 펴고, 스스럼없이 가꾸는 살림꽃을 나누고, 곧은눈으로 속삭이고 바른눈으로 글을 쓸 만합니다. 나는 나로서 내가 걷는 이 삶에 임자입니다. 너는 너로서 너답게 걷는 이 삶에서 임자얼을 밝힙니다. 봄이면 멧숲을 말갛게 밝히는 참꽃처럼 우리는 너랑 나랑 다르면서 새롭게 참눈을 틔워서 참넋으로 지켜보고 바로보는 사이예요. 봄꽃을 보는 눈으로 얘기합니다. 봄나물을 즐기는 손길로 만납니다. 새봄에 들숲에 흐르는 삶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서울 한복판에서 깨어날 개구리는 없을 만하지만, 어떤 봄맞이새가 노래숲으로 찾아오는지 함께 바라봐요.


ㅍㄹㄴ


삶길·삶꽃·삶소리·삶넋·삶얼·삶빛·살림길·살림꽃·살림넋·살림얼·살림빛·임자넋·임자얼·곧은넋·곧은눈·곧은얼·바른넋·바른눈·바른얼·참넋·참눈·참눈길·참눈빛·참얼 ← 역사의식


노래·노래꽃·노래빛·노래빛살·노래빛발·노래빛꽃·노래숲·노래구름·노래마을 ← 악상(樂想)


노래밭·노래판 ← 악단(樂壇)


보다·바라보다·바로보다·겨누다·겨냥·노리다·노려보다·눈·눈매·눈초리·눈길·눈꽃·쏘다·쏘아보다·쳐다보다·지켜보다·살펴보다 ← 응시(凝視)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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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5일

오늘 부산 마을책집 <카프카의 밤>에서 펴낸 '이응모임'은

20시보다 30분 앞서인

19시 30분부터 꾸립니다.


새로 태어난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우리말 어원사전)>을 곁에 놓고서

이 도톰한 낱말책을 기리는 수다잔치도 살며시 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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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이응모임” 11걸음

― 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



때 : 2025.3.15.토. 19시 30분

곳 : 부산 연산동 〈카프카의 밤〉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나무처럼 산처럼》을 미리읽기, 또는 〈카프카의 밤〉에서 사기



줄거리

가. 다리

 ㄱ 다가가다

 ㄴ 다다르다

 ㄷ 다니다

 ㄹ 사이를 놓다

 ㅁ 땅


나. 손

 ㄱ 솟다

 ㄴ 속

 ㄷ 소리

 ㄹ 소근소근

 ㅁ 솥


다. 노래

 ㄱ 손가락틀을 배우다

 ㄴ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ㄷ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ㄹ 말할 수 없던

 ㅁ 윤이상과 부산


라. 이원수 동요

 ㄱ 헌 모자

 ㄴ 고향의 봄

 ㄷ 부끄러워서

 ㄹ 전자건반

 ㅁ 국가보안법


+


열걸음 : 걷고 생각하고 호미를 쥐고 (윤이상)


  우리는 아직 마음을 고스란히 나누기에는 만만하지 않은 나날을 살아갑니다. 일본굴레(일제강점기)에 생긴 ‘국가보안법(치안유지법)’이 버젓하거든요.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내세워서 주리를 틀고 재갈을 물렸다면, 1948년부터 이승만은 이 땅에 새롭게 굴레(독재)를 씌우려고 ‘국가보안법’을 내세웠습니다. 나중에 박정희는 ‘반공법’을 더했으니, ‘국가보안법·치안유지법’이란, 이 나라 우두머리와 벼슬아치를 나무라는(비판) 모든 목소리를 쳐내는 칼 노릇입니다.


  ‘나라를 지킨다(애국)’는 허울을 내세우지만, ‘나라’는 언제나 ‘권력자(대통령·국회의원·기득권정당·공무원)’였을 뿐,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이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입틀막을 하는 칼 노릇인 국가보안법입니다. 자유·평등·평화·통일, 이런 길을 모두 막는 사나운 굴레인데, 1997년(김대중)과 2002년(노무현)과 2017년(문재인)을 거쳤어도 세 사람 모두 국가보안법을 없애지도 고치지도 않았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어느 쪽 정당한테만 이바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정당은 언제라도 “최고권력을 거머쥘 때”가 있다고 여겨서 ‘몹쓸굴레(악법)’를 조용히 내버려둘 뿐입니다.


  이오덕 님은 1997년에 김대중 씨를 밀었습니다. 김대중 씨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해서 ‘어린이와 여린이를 돌보는 새길’을 열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인데, 막상 김대중 씨는 대통령 자리에 들어서고 나서 어느 다짐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주민등록증 한자 표기 의무’를 밀어붙이고, 공공기관과 공공문서에 한글조차 안 쓰고서 한자와 영어를 즐겨쓰기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이 눈을 감은 2003년까지도 ‘학교 체벌(교사폭력) + 돈자루(촌지)’는 고스란했고, 이승만·박정희 기득권정당이 아닌 민주당이 최고권력을 잡았어도 이 굴레(학교 체벌)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2025년에 이르도록 배움불굿(입시지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배움불굿이 그대로여야 어린이와 푸름이가 나라(사회·정치)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이 ‘교과서(나라에서 외우라고 시키는 지식·정보)’에 갇힌 채, 스스로 생각하는 날개를 못 펴거든요. 이오덕 님은 ‘더 날뛰는 지옥으로 치닫는 대학입시’를 없애기를 바랐습니다. 대학입시(입시지옥)를 없애야 ‘체벌·촌지’를 비롯한 모든 교육 문제를 풀 만하리라 보았습니다.


  이오덕 님은 혼자 걸을 수 없어서 바퀴걸상에 몸을 맡겨야 하는 늘그막을 맞이했습니다. 거의 하루를 자리에 누워서 보내야 하면서 멧마실을 못 했습니다. 철이 바뀌는 해바람비를 맞이할 수 없는 삶이 갑갑하여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이때에 큰아들한테 ‘전자건반’을 사 달라고 얘기했고, 집이나 둘레에 아무도 없을 즈음에 혼자서 전자건반을 한참 칩니다.


  지난날에는 어린배움터(초등학교) 길잡이를 맡으려면 ‘풍금’을 반드시 치고 다룰 줄 알아야 했습니다만, 이오덕 님은 ‘풍금을 치면서 노래를 가르치는 눈금’을 훨씬 넘을 만큼 피아노를 다룰 줄 알았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일본굴레 막바지이던 무렵을 거치면서 풍금이건 노래를 배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뒷이야기를 따로 글로는 제대로 남기지 않고서 말로만 큰아들한테 얼핏 귀띔을 합니다. 부산에서 한동안 교사로 일할 즈음 윤이상 님한테서 다른 한 사람하고 둘이서 피아노를 배웠다고 합니다.


  2000∼2003년 사이는 아직 ‘윤이상’ 발자취를 우리나라(남녘)에서 글로든 말로든 섣불리 펼 수 없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서슬퍼렇기도 했고, 윤이상 님 발자취를 여러모로 보면 자칫 한두름으로 묶여서 사달이 날 만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 나라지기였어도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던 즈음이요, 이무렵에도 비전향장기수·강제전향장기수와 얽힌 실타래는 크나크게 굴레였습니다. 1950년대 첫무렵에 윤이상 님한테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노래짓기(작곡)도 배우셨을 텐데, 두 분 모두 이 일을 놓고서 글을 남기지 않았고 말도 거의 삼간 탓에 어느 만큼 얼마나 배웠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그저 이오덕 님은 1951년에 부산 동신국민학교에서 길잡이를 맡았고, 윤이상 님은 한국전쟁 언저리에 부산사범학교와 부산고등학교에서 길잡이를 맡았다는 대목만 어림할 뿐입니다.


  어린이 곁에서 글(동시·동화)을 나누는 어른이자 길잡이로 서려는 마음이었고, 이원수 님하고 일찍부터 글월을 주고받고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서울에 갈 적이면 으레 만나서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원수 님 글은 곧잘 동요라는 옷을 입었는데, 이오덕 님은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이원수 동요 가락’이 영 못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원수 동시에 깃든 숨결과 이야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 한다고 보았습니다. 〈헌 모자〉 같은 글에 가락을 입히지 않아서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이원수 동시 가운데 열 자락 남짓 손수 가락을 입혀서 경상북도 멧골아이를 가르칠 적에 으레 풍금을 치면서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고향바다〉나 〈부엉이〉 같은 글에 가락을 입혔습니다.


  다만, 워낙 여러 일을 돌보느라 책상맡에 앉아서 노래짓기를 할 짬을 내지 못 했고, 이원수 님이 1981년에 눈을 감은 뒤로는 더 노래짓기를 하지 않은 듯합니다. 전두환이 서슬퍼렇던 1980년대에는 내내 국가보안법 사슬에 꼼짝을 못 했고, 노무현·김영삼으로 넘어선 1990년대에도 어린이 곁을 지키면서 우리말을 살리는 일에까지 마음을 쏟느라 노래짓기는 까맣게 잊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두바퀴(자전거)조차 타지 않고서 걸었기에 긴긴 거님길에서 문득문득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멧골마을 작은배움터에서 가르쳤으니 두바퀴를 탈 수 없었겠지요. 그저 멧숲을 따라서 오르고 내리는 기나긴 길에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하고, 바람이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건드리는 노래하고, 햇볕과 햇살이 따뜻하고 따갑게 비추는 숨결하고, 땀이 나도록 걷는 길에 나무그늘이 드리우는 빛하고, 이 멧골자락에서 뛰놀고 일하고 주눅들지만 다시 웃으면서 살림을 짓는 아이들 얼굴을 모두 어우르고 싶은 노래를 몇 남겼습니다.


  이원수 님이 살던 무렵에 “이 선생, 이 선생이 내 동시에 가락을 입혔다고 들었는데, 나도 다른 사람이 가락을 붙인 동요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 선생이 가락을 붙여 준 동요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오덕 님은 차마 부끄러워서 이원수 님 앞에서 ‘이오덕 작곡 이원수 동요’를 못 불렀다고 합니다. 1981년에 이원수 님이 눈을 감은 뒤에 “왜 예전에 부끄러워하며 못 불렀을까?” 하며 스스로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은 먼저 마음으로 마주하는 사이입니다. 마음이 있기에 다리를 써서 다가가고, 다가오고, 서로 다닙니다. 다다가고 다가오기에 다다릅니다. 닿지요. 서로 닿아서 마음을 나누는 동안, 너와 나는 참으로 다르지만 닮은 줄 깨닫습니다. 서로 배울 대목을 새삼스레 마음에 담습니다. 즐겁게 나누고 배운 마음이 가득하면서 어느새 너와 나는 함께 들판을 달립니다. 새봄에 돋는 들딸기를 훑습니다. 손과 입에는 달달한 들딸기물이 듭니다.


  우리 손은 속에서 솟는 숨결을 담아서 무엇이든 새롭게 짓고 빚고 가꾸고 일구는 몸입니다. 속에 있듯 포근하다고 여겨 ‘솜’이라는 이름입니다. ‘손·속·솜’에다가 ‘소’까지 모두 같은 뿌리인 낱말입니다. 샘은 땅밑(깊은 안쪽인 속)에서 솟는 물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샘물로 마주하는 ‘샘님(선생님)’일 적에는 마음도 몸도 싱그러이 씻고 적시고 달래면서 어깨동무할 테지요.


  어느 틀(법)이 있기에 잘잘못을 다스리거나 이 땅을 지키지 않습니다. 아름나라에는 아무런 틀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를 안 낳더라도 둘레 뭇아이를 돌아보는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서 살림하는 보금자리와 마을”에는 아무런 ‘틀’이 없이, 오직 ‘사랑’ 하나로 마주하면서 어울리는 줄 알게 마련입니다. 뛰어나거나 빈틈없는 틀(법)이란 없습니다. 모든 틀에는 틈이 있습니다. 틈이 있기에 틀이거든요. ‘틀’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도록 틔우기에 틈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 마음이 오갈 만하도록 세우기에 틀입니다. 마음을 틔우고 생각을 틔우기에, 싹트고 움트듯 새롭게 씨앗이 깨어납니다.


  어떤 노래를 듣는 하루인지 생각할 일입니다. 그냥그냥 ‘가요(대중가요·민중가요)’에 얽매이는지, 아니면 스스로 노랫말과 노랫가락을 지어서 부르는 ‘틔움(싹틔움·씨앗틔움)’인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말(노랫말)만 훌륭할 수 없는 노래이고, 가락(노랫가락)만 빼어날 수 없는 노래입니다. 둘이 하나로 어울릴 적에 비로소 노래입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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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소설집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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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3.15.

다듬읽기 259


《달걀과 닭》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9.6.24.



  새를 비롯한 숨붙이를 돌아보면, 으레 수컷이 끝없이 맑고 밝게 노래하면서 암컷을 바랍니다. 암컷도 나란히 노래하지만,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새노래는 거의 다 수컷가락입니다. 저(수컷)을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님(암컷)을 부르려고 목청을 가다듬어서 노래를 펴는 그(수컷)입니다. 노랫가락에 담긴 뜻과 마음이 애틋하구나 싶을 무렵, 님(암컷)은 그(수컷)한테 다가와서 묻지요. “그래, 네 노래는 잘 들었어. 그런데 집은?” 이 말(새소리)을 들은 그(수컷)는 “우리집! 그럼, 네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둥지를 틀었지!” 하고 외칩니다. 님(암컷)은 그(수컷)가 틀어놓은 둥지를 요모조모 보면서 “쯧쯧, 안 되겠는걸? 이대로는 모자라!” 하면서 그(수컷)가 어설피 엮은 둥지를 고치고 다듬으며 가꿉니다.


  긴긴 나날을 거친 사람살이는 어떠한가 하고 돌아봅니다. 사람도 숫사람이 먼저 말을 트고서 암사람을 불렀을 만하지 싶습니다. 암사람은 언제나 마음과 마음을 잇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펼 줄 알았다면, 숫사람은 마음과 마음으로는 좀처럼 이야기를 알아차리지 못 하면서 따로 목청을 돋워서 ‘말소리’를 지었지 싶어요. 이때에 암사람이 숫사람한테 다가와서 첫말을 터뜨리지요. “그래, 그래, 네 말 잘 들었어. 그런데 좀 엉성하지 않니?” 이윽고 암사람은 숫사람한테서 어떤 마음이 어설픈지 차근차근 짚고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소리로 옮기는 살림을 짓습니다.


  그런데 암수가 서로 맺던 사랑이라는 길을 잊어버린 웃사내(가부장권력자)는 그들끼리 주고받는 벼슬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벼슬자리는 ‘말’이 아닌 ‘글’을 마치 굴레처럼 씌워요. 꽤 오래도록 ‘글’은 ‘수글(숫놈끼리 차지하는 힘글)’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글 = 한문’이었고, 일본이 쳐들어온 뒤에는 ‘수글 = 한문 + 일본말’이었습니다.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이제 이 굴레를 털어낼 만했으나, 웃사내는 ‘수글’을 놓기 싫었어요.


  지난날 암사람은 글을 구경하거나 얼씬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드문드문 착한 숫사람은 곁님이 글을 읽고 새기기를 바랐어요. 아무래도 숫사람은 스스로 말을 지을 줄 모르고, 말씨(말씨앗)·글씨(글씨앗)를 못 낳았거든요. 그리고 딸을 낳으면서 딸한테 글을 가르치고 물려주는 사내(아버지)가 하나둘 나타납니다. 이윽고 누구나(암수 모두) 말빛과 글빛을 살려야 하는 줄 알아보는 글순이가 나타나고, 어느새 온누리 글밭(문학계)은 차츰차츰 깨어납니다.


  다만, 이러한 발자취가 있더라도, 오늘날 숱한 글순이(여성작가)는 ‘수글’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웃사내가 웃사내질을 하면서 뭇사람을 억누르던 ‘수글(한문 + 일본말)’인데, 이 수글은 ‘한문 + 일본말 + 옮김말씨(번역체)’로 더욱 볼썽사납게 뒤틀립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말씨를 알아보고 눈여겨보고 귀담아듣는 마음을 열까요?


  《달걀과 닭》을 읽는 내내 ‘수글잔치’를 느낍니다. 설마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님이 이녁 ‘엄마말’을 이런 수글잔치로 썼을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글로 옮길 적에는 ‘무늬한글’인 ‘수글’이 아닌, ‘살림글·삶글·숲글’로 가다듬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수글’은 예나 이제나 굴레입니다. 살림글이요 삶글이요 숲글일 적에는 그저 수수하게 ‘글’입니다.


#O Ovo e a Galinha 1960년


ㅍㄹㄴ


《달걀과 닭》(클라리시 리스펙토르/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9)


나는 단 한 번의 시선으로 부엌 탁자의 달걀을 응시한다

→ 나는 바로 부엌 자리맡 달걀을 본다

→ 나는 곧장 부엌에서 달걀을 본다

8쪽


달걀은 외재화外在化하는 사물이다

→ 달걀은 밖에 있다

→ 달걀은 바깥에 있다

9쪽


닭의 몸에 관해서 말하자면, 닭의 몸은 달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대의 증거가 된다

→ 닭몸을 말하자면, 닭몸은 달걀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 닭이라는 몸은, 달걀이 있지 않은 줄 보여준다

12쪽


정확히 바로 이 순간부터, 하나의 달걀은 존재하지 않는다

→ 바로 이때부터, 달걀 하나는 있지 않다

→ 바로 여기부터, 달걀이란 없다

16쪽


그리고 나를 비밀 안에서 웃게 만든다

→ 그리고 나는 슬그머니 웃는다

→ 그리고 나는 넌지시 웃는다

→ 그리고 나는 몰래 웃는다

19쪽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그녀는 여자의 운명으로 떨어졌고

→ 그이는 구불구불한 길을 가시내라는 삶으로 걷고

→ 구불구불한 길을 순이로서 살아가고

25쪽


그러나 삶은 그녀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 그러나 사는 내내 벌벌 떤다

→ 그러나 삶이란 늘 두렵다

36쪽


가정부가 들어오자, 도전적으로 성급하게 지시했다

→ 집일꾼이 들어오자, 서둘러 들이치듯 말한다 

→ 부엌지기가 들어오자, 싸울듯이 얼른 시킨다

55쪽


기분이 상하고, 승리감에 들떠서, 나는 반항적으로 대꾸했다

→ 못마땅하고, 우쭐거리면서, 까불며 대꾸했다

→ 싫고, 으쓱거리면서, 덤비듯 대꾸했다

96쪽


그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걸음은 차츰 느려졌고

→ 그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차츰 느리게 걷고

→ 그는 나를 본다. 나는 어느새 느릿느릿 걷고

107쪽


수태고지의 성녀처럼, 바로 그렇다. 그는 내가 최소한 자신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을 허용했고, 그것을 통해 나에게 고지한 것이다

→ 아기를 알린 꽃님처럼, 그렇다. 그는 나를 보며 웃는다. 웃으며 말한다

→ 아기를 속삭인 님처럼, 그렇다. 그는 나랑 웃음짓는다. 웃음으로 얘기한다

120쪽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보호를 해줘야 해요. 쓰다듬는 것도 정말 위험하구요

→ 그래서 내내 돌봐줘야 해요. 쓰다듬어도 안 되구요

→ 그러니까 늘 보살펴야 해요. 쓰다듬다가 다치구요

186쪽


때때로 그는 아내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 아내가 창피하다는데도, 그사람은 곁님이 옷을 갈아입는 곳에 곧잘 들어갔다

→ 아내가 부끄러워하는데도, 그이는 곁님이 옷을 갈아입을 적에 불쑥 들어갔다

239쪽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한 명의 인간이다

→ 그렇지만 나는 그대로 한 사람이다

→ 그렇지만 나는 늘 사람이다

266쪽


나는 동정녀의 영혼을 가졌으며, 그래서 보호가 필요하다

→ 나는 숫색시 넋이며, 누가 돌봐야 한다

→ 나는 숫몸인 넋이며, 누가 지켜야 한다

34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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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응시 凝視


 한 곳을 응시만 하고 있었다 → 한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 한 곳을 보기만 했다

 선생님의 응시를 피했다 → 샘님 눈길을 거슬렀다 / 길잡이가 보자 눈길을 돌렸다

 응시를 계속할 따름이었다 → 자꾸 바라볼 뿐이었다 / 그대로 볼 뿐이었다

 허공을 응시하다 → 하늘을 바라보다 / 위를 보다

 멍하니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 멍하니 바깥을 보았다 /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응시(凝視)’는 “눈길을 모아 한 곳을 똑바로 바라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똑바로 바라보다”로 쓰면 되는 셈인데, ‘바라보다’는 “바로 보다”를 뜻해요. 그러니, 어느 모로 보면 “똑바로 바라보다”는 겹말인 셈입니다. ‘보다·바라보다·바로보다’나 ‘겨누다·겨냥’으로 고쳐씁니다. ‘노리다·노려보다’나 ‘눈·눈매·눈초리·눈길·눈꽃’으로 고쳐써요. ‘쏘다·쏘아보다’나 ‘쳐다보다·지켜보다·살펴보다’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그냥 보라! 응시하라

→ 그냥 보라! 바라보라

→ 그냥 보라! 보라

→ 그냥 보라! 쳐다보라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앤소니 드 멜로/이현주 옮김, 샨티, 2012) 26쪽


너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했다

→ 너를 앞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 너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 너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 너를 맞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남한강 편지》(임덕연, 작은숲, 2014) 42쪽


서로 응시하고 있었다

→ 서로 보았다

→ 서로 쳐다보았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아베 히로시/엄혜숙 옮김, 돌베개, 2014) 23쪽


모든 것을 네 응시하는 눈으로

→ 모든 것을 네 바라보는 눈으로

→ 모든 것을 네가 보는 눈으로

→ 모든 것을 네 눈으로

《에드거 앨런 포 시전집》(에드거 앨런 포/김정환 옮김, 삼인, 2016) 33쪽


특히 눈을 응시할 때마다

→ 더욱이 눈을 겨눌 때마다

→ 무엇보다 눈을 볼 때마다

《아미쿠스 모르티스》(리 호이나키/부희령 옮김, 삶창, 2016) 90쪽


꿈꾸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언니

→ 꿈꾸는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언니

→ 꿈꾸는 눈빛으로 먼 곳을 쳐다보는 언니

→ 꿈꾸는 눈빛으로 텅 빈 곳을 보는 언니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조조 모예스/송은주 옮김, 살림, 2016) 339쪽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형형하다

→ 찰칵이 눈을 똑바로 보는 그이 눈빛은 밝다

→ 빛틀을 곧게 바라보는 눈이 빛난다

→ 빛꽃틀을 바로 쳐다보는 눈이 반짝거린다

《시인의 마을》(박수미, 자연과생태, 2017) 256쪽


너를 헛되이 바라보고 있나니 마주한 시선과 응시는 서로의 과녁에 닿지 못하네

→ 너를 헛되이 바라보나니 마주한 눈과 눈매는 서로 과녁에 닿지 못하네

《나의 하염없는 바깥》(송주성, 걷는사람, 2018) 63쪽


나는 단 한 번의 시선으로 부엌 탁자의 달걀을 응시한다

→ 나는 바로 부엌 자리맡 달걀을 본다

→ 나는 곧장 부엌에서 달걀을 본다

《달걀과 닭》(클라리시 리스펙토르/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9) 8쪽


골목 너머의 불길한 암흑 속을 응시했다

→ 골목 너머 꺼림히 어두운 곳을 본다

→ 골목 너머 꺼림칙히 까만 데를 겨눈다

《늦여름》(호리 다쓰오/안민희 옮김, 북노마드, 2024)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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