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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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15.

인문책시렁 432


《눈감지 마라》

 이기호

 마음산책

 2022.9.25.



  찰칵이를 늘 쓰되 으레 헌것으로 장만합니다. 마지막으로 새것을 장만해 본 적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장만해 준 무릎셈틀을 열 해째 쓰다가 지난해에 숨을 거두어 떠나보낸 뒤, 살림돈을 어찌저찌 헐어서 헌것으로 장만했는데, 셈틀집에서 들려주는 달콤말에 홀렸는지 자꾸 간당간당하면서 숨이 넘어가려고 합니다.


  시골집을 떠나서 바깥일을 할 적에 늘 곁에 둘 무릎셈틀입니다. 어떡해야 하느냐 한참 곱씹지만 뾰족한 길은 안 나옵니다. 지난이레에도 어제오늘도 간당간당 무릎셈틀을 붙잡고서 울지만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뻐근한 등허리를 쉬다가,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서 빨래를 하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지난 한 해 애쓴 무릎셈틀을 쓰다듬으면서 속삭입니다. “고마워, 애썼어. 네가 나한테 와서 우리집에서 함께 지내기에 반가워.”


  《눈감지 마라》를 2025년 첫여름에 읽었습니다. 서울과 인천으로 일하러 다녀오는 길에 읽었습니다. 엄청나게 붐비고 시끄러운 복판마을(센트럴시티)에서 첫 쪽을 폈고, 한참 읽다가 눈을 드니 곧 시외버스를 탈 때이더군요. 한 시간 즈음 책에 파묻혔습니다. 눈을 들고 나서야 둘레가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줄 다시 느꼈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마저 읽는 동안, 이 시외버스에서 떠드는 다른 손님 말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마지막 쪽을 덮고서 고개를 들고 보니, 둘레 적잖은 손님이 참으로 시끌시끌 손전화로 수다를 떨더군요.


  이기호 님이 쓴 《눈감지 마라》는 아주 잘 엮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두 젊은이는 그다지 ‘돈을 쓰는 일’이 없어 보이는데, 끝없이 곁일을 하면서도 왜 빚을 못 갚거나 목돈을 못 모으는지 꽤 알쏭달쏭했습니다. 모르는 분은 그냥 모르는데, 서울과 큰고장에서는 나절삯(시급)으로 곁일을 하지만, 시골에서는 ‘통크게’ 곁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는 밥집도 술집도 찻집도 적습니다만, 요사이는 ‘이웃일꾼’이 시골에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다가 나들꾼(관광객)이 두멧시골로 꽤 찾아다녀요. 그래서 밥집과 술집과 찻집이 드물지는 않고, 이제 웬만한 시골 면소재지까지 나들가게(편의점)가 있습니다. 시골은 한 해 내내 다 다른 일거리가 줄줄이 있어요. 논과 밭뿐 아니라 공장이 되게 많은 시골이에요. 바닷가라면 김공장까지 있습니다. 젊은이가 김공장에서 한 해만 일해도 빚을 다 갚고도 목돈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가 뜻을 펴거나 꿈을 이루는 길을 열기는 만만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나라와 고을에서 젊은이를 북돋우려는 길을 여러모로 내려고 힘쓰기는 하지만, 막상 모든 젊은이한테 안 와닿기도 하고, 가난한 젊은이한테는 아주 안 와닿기까지 합니다. 또한, 차츰 ‘젊은돌이’가 설 만한 자리가 얕고 버거워요. 지난날 ‘젊은순이’가 겪어야 하던 높다랗고 까마득한 담벼락을 이제는 젊은돌이가 꽤 버겁게 맞닥뜨리면서 헤매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알뜰살뜰 품어내는 손끝에 ‘시골살이’와 ‘일자리’와 ‘곁일’을 조금 더 깊넓게 짚으면서 얼거리를 살피려 했다면 한결 나았겠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글을 쓰실 적에는, 겉훑기로 그려내고서 그치기보다는 몸소 여러 ‘시골일’과 ‘시골일자리’를 해보고 나서, 살갗과 삶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여미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ㅍㄹㄴ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들은 대번에 채무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냥 조용히 대학만 다녔을 뿐인데도 정용은 800만 원, 진만은 1200만 원 빚이 생겼다. (19쪽)


정용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연차나 반차, 월차 같은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코인 세탁소를 이용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70쪽)


그래, 사는 게 팍팍하지 않으면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이 궁금하기도 하겠지. 최저임금이나 고용 상황이니 하는 것들보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도 만만치 않게 중요한 거겠지. (98쪽)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112쪽)


진만이 어렸을 땐 무슨 돌림노래처럼 하루건너 한 번씩 이웃집에서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 또 그 사람들을 말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43쪽)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무언가가 묻어 있거나 작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이들 옆에서 계속 계속 그걸 치우다 보면 어쩐지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99쪽)


진만이 죽었다는 것,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 차가운 길에 오랫동안 홀로 누워 있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294쪽)


“나 여기 올라와서 아직까지 한 명도 만난 사람이 없어요. 형 말고 말해본 사람도 없고.” (314쪽)


+


《눈감지 마라》(이기호, 마음산책, 2022)


엄지손가락만 해져 있었다

→ 엄지손가락만 하다

→ 엄지손가락만큼 작다

11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 다른 무엇이 되어 가는 듯했다

→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했다

38


그게 다 자신의 기초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 이는 다 제 밑동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밑머리가 어리숙하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바탕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41


가끔씩 놀라기도 했으니까

→ 가끔 놀라기도 했으니까

124


바로 고향인 무안으로 내려갔다

→ 바로 둥우리 무안으로 갔다

→ 바로 보금자리 무안으로 갔다

158


오래된 구옥 20여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동네였다

→ 오래된 집 스무 채 즈음 모은 작은 마을이다

→ 옛집이 스무 채 즈음 모인 작은 마을이다

26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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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31.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숲노래 밑틀·최종규 글·나유진 그림, 철수와영희, 2025.5.31.



새와 개구리와 바람과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가 아닌, 부릉부릉 왁자지껄 우글우글 같은 소리가 넘실거리는 부산 한복판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글살림을 여민다. 곁에 어떤 소리가 흐르는지에 따라서 글길이 바뀔 수 있겠지. 늘 푸른노래를 듣는 삶터라면 우리가 바라보는 이야기도 푸른숨결이게 마련이고, 늘 시끌소리에 갇힌 큰고장이라면 빛씨앗이 아니라 ‘옳고그름’이라는 줄거리에 기울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서울·큰고장에서 그냥그냥 하루를 온통 보내는 한해살이를 잇는다면, 애써 붓을 쥐어 글을 쓰더라도 ‘사랑으로 살림짓는 숲빛이 흐르는 마음’이 아닌 ‘이렇게 해야 옳고, 저렇게 하면 그르다는 굴레’에 마냥 휩쓸리겠다고 느낀다.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을 일곱 해에 걸쳐서 새로쓰고 고쳐쓰고 다시쓰는 길을 거쳐서 내놓는다. 얼핏 조그마해 보이는 꾸러미인데, 이레나 달포가 아닌 일곱이라는 해가 흐르는 나날을 두고서 가다듬었다. 일곱 해를 더 다듬고서 2032년에 선보일 수 있지만, 일곱 해 뒤에는 이동안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살림말과 숲말 이야기를 쓰면 될 일이지 싶다. 지난 2018년에는 《우리말 동시 사전》을 막바지로 고쳐쓰는 동안 ‘문해력’이라는 일본말을 어떻게 풀고 품어서 우리말씨로 보듬을 적에 어울릴까 하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동안 이 낱말 저 말씨를 헤매고 짚은 끝에 ‘글힘’과 ‘글귀’를 거치고 ‘글눈·글눈길·글눈빛’을 짚으면서 글읽기·글읽는·글읽꽃’ 같은 낱말을 혀에 얹어 보았다. 꼭 한 낱말로만 풀어야 하지 않다. 여러 낱말로 풀 수 있고, 앞으로도 더 생각을 기울여서 새말을 차근차근 지을 만하다. 어린이 곁에서는 ‘어린글눈’과 ‘어린글꽃’을 피우고, 푸름이랑 어깨동무하며 ‘푸른글눈’과 ‘푸른글꽃’을 피울 수 있다. 나부터 어른으로서 ‘어른글눈’과 ‘어른글꽃’이 피어나는 길에 밑흙이 될 수 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하루에 한나절은 책도 손전화도 없이 풀꽃나무와 해바람비와 들숲메바다를 품으면서 새빛을 헤아리는 씨앗 한 톨을 일구는 틈을 누리기를 빈다. 우리는 누구나 어른으로서 하루에 한나절은 마음빛을 들여다보고 마음밭을 갈고닦고 마음씨를 심으면서 마음노래를 들려주는 어진 마음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빈다. 다 다른 우리가 다 다른 삶말과 살림말과 숲말로 생각씨앗을 나눌 적에 이곳은 아름나라로 거듭난다고 본다.


“쉬운 말이 평화”이고, “쉬운 말이 사랑”이고, “쉬운 말이 숲”이고, “쉬운 말이 노래”이고, “쉬운 말이 집”이고, “쉬운 말이 삶”이고, “쉬운 말이 생각”이다. “쉬운 말이 씨앗”이니, 낱말외우기가 아닌 말익히기라는 살림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온누리를 그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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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30.


《나무의 시간》

 이혜란 글·그림, 곰곰, 2021.6.10.



새벽에 집안일을 추스르고서 아침에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두 아이랑 곁님이 보금숲에서 즐겁게 놀이살림과 배움하루를 누리기를 바라면서 고흥읍을 거쳐 부산으로 달린다. 석 달째 조금씩 여미는 글꽃(동화) 한 자락은 막바지이다. 북적이는 사람물결을 헤치고서 문현동 안골목을 거니니 햇볕이 넉넉하고 조용하다. 〈나락서점〉에 깃든다. 서서 고명재 씨 책을 읽는데, 이분은 2020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을 했다. 우리는 ㅈㅈㄷ뿐 아니라, ‘허울’에 안 기대면서 글빛을 일구는 살림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저녁에 〈책과 아이들〉에서 ‘동심읽기 첫걸음’을 편다. 《이거 그리고 죽어》하고 《마음 속에 찰칵》이라는 두 책을 어떤 눈빛으로 읽어내어 우리 스스로 어떤 살림씨앗을 저마다 마음에 심으면서 피어날 만한지 이야기한다. 한밤에 《나무의 시간》을 돌아본다. 나무는 즈믄해나 두즈믄해를 가볍게 몸살림을 잇는 이웃이다. 석즈믄이나 넉즈믄이라는 긴날을 우람나무로 서기도 한다. 오늘날 글바치와 그림바치는 “가지치기에 안 시달린 나무”를 거의 모른다. 예부터 사람들은 ‘마른가지’를 찾아서 나무를 했다. ‘산나무’를 벨 적에는 절부터 하고서 여름내 해바람에 말려서 썼다. ‘나무한살림’은 누구 말할 수 있는가.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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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29.


《낭비와 베끼기》

 아일린 마일스 글/송섬별 옮김, 디플롯, 2025.2.17.



비가 갠다. 큰아이가 힘껏 도와서 〈책숲 1019〉 55자락을 부친다. 한나절을 쏟았다. 고흥읍을 걷다가 ‘즈믄살 느티나무’ 굵은가지 하나가 부러진(또는 잘린) 모습을 본다. 이레쯤 된 듯싶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를 푸른꽃(천연기념물)으로 돌볼 줄 모르는 창피한 고흥군 민낯이다. 시골할배들은 아픈 느티나무 둘레에서 지겹게 술담배질을 한다. 시골할배도 창피하다. 나무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하나도 못 느끼고 안 듣는다. 《낭비와 베끼기》는 “For Now”를 옮겼다. “오늘로는”이나 “이제는” 즈음일 텐데, 왜 굳이 책이름을 바꿨을까. 언뜻 보면 글쓰기란 ‘닳다·버리다(낭비)’ 같으나, 하루를 고스란히 들일 줄 알기에 ‘배울’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베끼’는 듯싶지만, 자꾸자꾸 옮기고 배우고 살피는 동안 스스로 새롭게 서는 눈썰미를 세우게 마련이다. ‘빈틈’이 많아서 모자라고 바보스러운 나를 받아들이기에, ‘틈’을 내어 배우고 익히면서 피어난다. 숱하게 헛발질을 하는 동안 천천히 피어난다. 긴긴 나날에 걸쳐서 꾸준히 틈을 내고 짬을 내는 사이에, “이제는” 어제하고 다른 나로 있고, “오늘로는” 모레로 나아가는 붓끝을 펼 만하다. 여기 있는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글결을 밝히자면 ‘오늘·이제’가 맞다.


#ForNow #EileenMyles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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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6.14. 봄이 가면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나는 잘 잊어버리면서 잘 떠올립니다. 나는 잘 잃어버리면서 잘 둡니다. 아주 엇갈리는 두 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하기 일쑤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두동진 모습일까 하고 돌아보노라면, 늘 고삭부리로 쓰러지고 앓아눕고 코피를 쏟고 숨막혀서 달포 남짓 끝없는 재채기로 죽을 노릇이던 어린날을 보낸 뒤에, “차라리 군대에서 의문사로 숨을 거두는 일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고 여기면서 “어느 아이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하면서 스무 살을 못 살았는데, 나는 벌써 스무 살을 넘고 스물한 살이잖아? 잘 살았어.” 하는 혼잣말을 하면서 뒹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원 양구 멧골짝 ‘완전무장지대(이름은 비무장지대이나 무시무시한 완전무장지대)’에서 용케 안 죽고 살아남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스물세 살 일입니다. 스물네 살에 대학교 자퇴를 하고서 고졸이란 끈으로 일자리를 찾기란 죽음바다 같으면서도 파란바다 같았습니다. ‘대학교 자퇴’이니까 어렵다고 여길 뿐, 처음부터 ‘고졸 중졸 국졸 무학’이라고 여기면 어느 일자리이건 고마울 뿐입니다. 그래서 스물다섯 살부터는 “학교를 안 다녔습니다” 하고만 말했습니다.


  봄이 지나간 첫여름 밤에 부산에서 《카모메 식당》을 읽으면서 뱃속을 달랩니다. 나는 집밖에서는 그냥 굶으면서 바람과 빗물과 이슬을 마시면서 일하고 싶지만, 이렁저렁 만나는 아름다운 이웃님은 “으째 밥을 안 먹고 일을 한다요? 밥먹자고 하는 일 아닌교?” 하고 묻습니다.


  지난 2024년에 어느 부산 이웃님한테 건넨 책에 적은 넉줄글을 새삼스레 되읽습니다. 속으로 혼잣말을 합니다. ‘어, 내가 이렇게 글을 적어 놓았네? 내가 남긴 글이 맞아? 나는 봄을 사랑하는 마음을 언제 품었을까?’ 소쩍새 울음소리와 풀벌레 노랫가락과 개구리 떼노래가 없는 부산 한복판이되, 고흥 시골집 밤노래가 예까지 울리리가 여기면서 이제 등허리를 펴려고 합니다.


봄이 오면

봄바람이 잎을 깨우고

봄볕이 땅을 녹이고

봄하늘에 제비가 납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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