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인지능력



 인지능력이 결여된 듯하다 → 아는힘이 없는 듯하다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 보는눈을 키우려고

 인지능력이 저하될 시에는 → 생각힘이 떨어질 때에는


인지능력(認知能力) : [심리] 사물을 분별하여 인지할 수 있는 능력 ≒ 인식능력



  무엇인가 알거나 생각하거나 살피는 힘을 가리킬 적에는 ‘생각힘’이나 ‘아는힘·머리힘’이라 할 만합니다. ‘귀힘·듣는힘·눈힘·보는힘’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아직 인지능력이 미성숙해서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미분화 상태입니다

→ 아직 생각힘이 덜 자라서 둘레와 나를 나누지 못합니다

→ 아직 머리힘이 덜 여물어 나라와 나를 나누지 못합니다

《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인권연대, 철수와영희, 2020)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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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중간중간



 중간중간 냄비 뚜껑을 열고 → 이따금 솥뚜껑을 열고

 말하는 중간중간에 → 말하는 사이사이에

 행렬 중간중간에는 → 무리 사이사이


중간중간(中間中間) : 어떤 장소나 사물, 행위, 사건 따위의 틈과 틈 사이



  한자말 ‘중간 + 중간’ 꼴로 ‘중간중간’처럼 엮곤 하는데, 우리말로는 ‘사이사이’라 하면 됩니다. ‘이따금·가끔’으로 손볼 만하고, ‘더러’나 ‘틈틈이·짬짬이’로 손볼 수 있습니다. ㅍㄹㄴ



중간중간 물을 갈아 주며

→ 틈틈이 물을 갈아 주며

→ 사이사이 물을 갈아 주며

《밥을 지어요》(김혜경, 김영사, 2018) 76쪽


중간중간 아이는 계속 훌쩍인다

→ 사이사이 아이는 내내 훌쩍인다

→ 아이는 이따금 훌쩍인다

→ 아이는 틈틈이 훌쩍인다

《살림문학》(김대성·강경주와 12사람, 곳간, 2024)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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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 8 : ~소설가가 되는 방법~ - S코믹스 S코믹스
야나모토 미츠하루 지음, 김아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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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3.30.

마음껏 읽고 쓴다


《히비키 8》

 야나모토 미츠하루

 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4.8.28.



  받아서 누리는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내며 기쁜 손길을 알아볼 때에, 머잖아 이웃한테 베풀며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즐거운 눈길로 선다고 느낍니다. 받기에 창피하지 않습니다. 또 받고 다시 받아야 하는 가난살림이기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받는 사람 못잖게, 주는 사람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잘 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받아서 누린 나날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베풀거나 주는 자리에 설 적에 더 깊고 넓게 짚을 만합니다. 받아서 누려 본 적이 없다면, 내내 베풀거나 주는 자리에만 섰다는 뜻일 테니, 이때에는 ‘받는 사람 마음’을 하나도 모르게 마련입니다.


  받는 마음을 알기에 주는 마음으로 피어납니다. 주는 마음인 사람은 받는 마음을 배울 날을 반드시 맞이하게 마련입니다. 그냥그냥 베풀기만 한다면, 베풀면서 티를 낸다면, 주고 나서 자꾸 쑤석거린다면, 이때에는 ‘주다’가 아닌 ‘조르다’입니다.


  ‘소설가가 되는 방법’이란 이름이 붙은 《히비키 8》을 읽었습니다. 앞선 일곱걸음을 읽으면서도 느끼는데, ‘글쓰는 히비키’라는 아이는 “받을 줄”도 잘 모르고, “줄 줄”도 잘 모릅니다. 또는 “받는 마음”과 “주는 마음”을 뼛속까지 아는 터라 아주 뼛속으로 느낄 만큼 주거니받거니 하는 나날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는 또렷합니다. ‘글쓰는 히비키’라는 아이한테는 붓끝으로 사로잡는 솜씨를 어떤 길에도 안 치우치면서 펼 수 있습니다. 이미 히비키 스스로 어느 길에도 휩쓸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을 뿐 아니라 휘두르지 않거든요. 그저 이 마음이면 글을 쓰건 집안일을 하건 똑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글을 써서 팔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을 써서 읽혀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나누는 하루요, 글을 쓰기에 마음에 담는 삶을 들려주고 듣습니다. 먼저 삶이라는 길을 제대로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치레를 잘 하면서 글을 꾸미더라도 바래게 마련입니다. 삶이라는 길을 스스로 곧게 세울 줄 아는 마음이라면 거침없으면서 흔들림없는데다가 빈틈없이 글결을 여밀 테지요.


  다만, 빈틈없고 흔들림없고 거침없는 글은 ‘아름답’지는 않고 ‘사랑’이지 않습니다. 《히비키》는 사랑이라는 아름빛으로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여덟걸음까지 이었듯, 재주와 솜씨라고 하는 겉모습에 매인 줄거리를 그냥그냥 이을까요?


  오늘은 기쁘게 누리면 됩니다. 이 하루는 반갑게 맞이하면 됩니다. 서로서로 사랑이라는 눈으로 마주하면 됩니다. 글은 먼나라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글은 우리 삶자리에서 피어나고, 마음자라에서 자라고 눈망울을 거쳐서 손끝으로 피어나는 꽃송이입니다.


ㅍㄹㄴ


“그치만 히비키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거슬려서. 겁 좀 주려고 잘나가는 편집자라고 뽐내면서 쳐들어가 버렸지 뭐니. 부끄러워 죽겠어.” “아하하.” “아무리 그래도 방송국 사람도 아니고, 문예 편집자가 소설을 읽고도 눈치를 못 챘을 줄이야.” (17쪽)


‘어떻게든? 난 그게 무서운 건데.’ “그럼 가서 어떻게 좀 하고 올게.” “어?” (18쪽)


“본인한테 미리 촬영 허가는 받아놨어.” “정말인가요? 하지만 카메라를 박살냈다니까요?” “덕분에 쓸 만한 걸 건졌으니 잘된 일 아닌가.” (24쪽)


“내 인생인데 그쪽이 멋대로 정하지 마.”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넌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내가 판단했어. 히토츠바시 TV 프로듀서인 내가 내린 판단에 너 같은 풋내기가 어디서 함부로 끼어들지?” (72쪽)


“그 아이가 엎어질 거라고 말한 이상, 이 프로그램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106쪽)


“좀더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알았어. 다만 지금부터 당신은, 촬영을 막기 위한 인질로 삼을 거야.” (153쪽)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애를 위해서라면 24시간 내내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189쪽)


#柳本光晴 #響 #小?家になる方法


《히비키 8》(야나모토 미츠하루/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4)


나보다 세 살이나 아래라고?

→ 나보다 세 살이나 밑이라고?

→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고?

11쪽


상도덕에 어긋난다고나 할까

→ 장삿길에 어긋난다고나 할까

→ 장삿꽃에 어긋난다고나 할까

17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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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 프랑스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초상, 개정판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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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30.

까칠읽기 64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한겨레출판

 1999.5.31.첫/2008.5.31.고침판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읽던 1999년을 떠올린다. 그때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한겨레신문 나름이(배달부)’로 일했다. 새로 나온 책을 곧장 한국외대 구내서점에서 장만했고, 지국장님하고 나름이 여러 언니하고 돌려읽었다.


책을 다 읽은 우리 여섯 사람은 새벽일을 마친 아침자리에서 책수다를 폈다. 여섯 사람 모두 매우 아쉬웠다고 얘기했다. 왜 이렇게밖에 목소리를 못 내는지, 왜 아리송한 목소리가 있는지, 왜 삶으로 파고들지 않는지, 왜 프랑스에서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밑자락 이웃을 바라보는 곳에 서지 않는지 아쉽다고 투덜투덜했다. 새벽일을 마친 땀나는 후줄근한 몸으로,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조그마한 신문사지국에서 달그락달그락 아침을 먹는 동안 주고받은 말이 2025년에도 선하다.


요즘은 사라진 듯한데, 예전에는 ‘한겨레신문 기자’로 뽑히면, ‘신문사지국’으로 한두 달, 또는 두어 달쯤 새벽 출근을 하면서 ‘신문배달 체험’을 시켰다. 아무리 〈한겨레신문〉이라 하더라도, 기자로 뽑히는 사람은 으레 여태껏 “손에 물 한 방울 묻힌 적 없이 곱게 자란 얌전둥이”이게 마련이다. 대학교를 다닐 적에 학생운동을 했더라도 ‘집안일과 아기돌봄’을 해본 적이 있는 젊은이는 드물다. 그래서 하다못해 ‘새벽 신문배달’이라도 석 달 즈음 하라고 시키는데, 고작 석 달을 새벽에 돌리면서도 다들 지치고 힘들다고 혀를 내민다고 하더라.


그러나 새내기 신문기자가 힘들다고 하는 새벽 신문배달을 스무 해나 마흔 해를 거뜬히 해온 지국장과 총무가 있다.


1999년 늦봄에, 서울 이문동 한겨레신문 지국에서 우리 여섯 사람은 책수다 마무리를 이렇게 지었다. 지국장님이 한 마디로 갈무리를 해주었다. “홍세화 선생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겨레〉에 글을 쓴다면 신문배달 석 달쯤 해봐야지, 안 그래? 프랑스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했으면, 우리나라 서울에서는 신문배달을 해야지. 서울에 와서 신문배달도 안 하고서 어떻게 서민을 안다고 할 수 있어? 새벽에 골목골목 돌면서 이웃집과 마을집이 어떻게 있는지 봐야 하지 않아?”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려면, 01시 무렵에 하루를 연다. 돌리는 새뜸이 적다면 03시 무렵에 하루를 열어도 되고, 부릉부릉 몬다면 04시에 하루를 열 수 있되, 꽤 늦다. 그러니까 새뜸나름이는 날마다 02시 무렵에는 하루를 열어야 한다. 또한 스스로 맡은 곳에 늦어도 05:30까지 새뜸을 다 넣을 수 있어야 한다. 한 해 내내 이런 얼거리로 새벽을 연다면, 어느 곳에서 어느 일을 하든 엉큼하거나 못되거나 바보스런 짓을 아예 할 수 없다. 더구나 새벽일을 하는 사람은 막술은커녕 모금술도 섣불리 못 한다.


신문기자뿐 아니라, 소설과 시를 쓰는 사람도, 대통령과 장관도, 시장과 군수도, 두바퀴(자전거)나 두다리로 새벽을 열면서 새뜸나름이로 여러 달 일하는 나라라고 한다면, 얼뜬 짓은 없을 테고, 얼뜬 글을 쓸 일도 없으리라 본다. 스스로 땅바닥에 발바닥을 대면서 달리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 땅에 땀방울을 쏟으면서 어질게 일하는 사람으로 서면서 어깨동무를 찾아나설 테지.


ㅍㄹㄴ


이제 한국 땅에서 ‘보통사람’에 관한 신화는 사라져야 한다. 보통사람이 ‘위대한 한국’을 아무리 외쳐 봐야 한국이 위대해지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이 나와야 나라가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은 아주 쉬운 산수 문제와 같다. (26쪽)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1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했을 때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이 함께 배석한 모습은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모습이었다. (36쪽)


훈장을 단 사람에겐 훈장이 있을 뿐이다. 계급장을 단 사람이 계급장만 있는 것처럼, 속 빈 강정이 껍데기만 있는 것처럼, 사람이 발언하지 않고 상이 발언한다. 상에 경배하라. 권위를 숭배하라. 그리하여 소우주라 했던 인간은 간데 없고 상에 경배하고 권위를 숭배하는 강정이 되었다. (70쪽)


서울 평화상이 도대체 무엇인가?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자를 골라 서울시의 이름으로 상을 준다는 얘기겠다. 서울은 아직 평화의 이름으로 상을 줄 처지가 못된다. 제 앞가림부터 먼저 해야 하지 않겠는가. (238쪽)


의식의 한쪽 날개가 애당초 찢겨 있고 대화와 토론의 장이 닫혀 있는 한국 땅에서 대중심리, 대중조작, 대중선동 그리고 지배적인 환경과 분위기에 멋모르고 휩쓸리는 바보 멍청이들이 양산된 게 사실이다. (289쪽)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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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2 : 전쟁과 사랑 - 박정희朴正熙와 육영수陸英修의 연애 시절 박정희 시리즈 2
조갑제 지음 / 조갑제닷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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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30.

까칠읽기 62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

 조갑제

 조선일보사

 1998.10.28.1벌/2000.2.22.9벌



“다회용 젓가락”이라는 이름이 여러모로 안 어울린다고 느낀다. 젓가락은 예나 이제나 “오래오래 쓰는 살림” 가운데 하나이니까. “쓰고 버리는” 젓가락과 물그릇에 길든 눈인 분은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따지게 마련인데, 왜 저희랑 똑같이 안 구느냐고, 유난하게 구느냐고 따질 테지.


그래서 이때에는 거꾸로 “왜 애먼 젓가락을 오래오래 안 쓰고서 늘 버리고 또 버리셔요?” 하고 물을 만하다. 이렇게 되묻는 사람이 늘어야, “쓰고 버리기에 길든 분”이 조금이나마 틈을 낼 수 있다고 느낀다. 쓰고 버리기에 길든 사람이 오히려 ‘유난’한 굴레라고 바라보아야지 싶다.


“쓰고 버리기”에 길든 터전이라면, 사람도 똑같이 “쓰고 버리기”를 하게 마련이요, “두고두고 살림으로 건사하기”라는 터전이라면, 사람도 마을도 집도 숲도 곱게 돌보는 길로 나아간다고 느낀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1998년에 처음 나왔고, 2007년에 새판으로 나온 뒤에, 2015년에 《박정희》라고만 굵짧게 이름을 바꾸어서 “박정희 시리즈”라고도 덧이름을 붙인다. 문득 생각해 본다. 조갑제 씨는 왜 자꾸 ‘박정희’를 되살리려고 하는가? “다회용 젓가락”이라고 하는 뜬금없는 이름처럼, 왜 무덤에 침을 뱉지 말라 하면서 이렇게 높이높이 섬기려고 하는가?


여러모로 보면, 조갑제 씨는 ‘이씨 사내’만 임금 자리에 앉던 조선 무렵에 임금 곁에서 조아리던 벼슬아치 같다. ‘이씨 사내 임금’하고 ‘박정희’를 똑같이 바라보기 때문에, ‘임금님한테 티끌이나 얼룩이나 말썽이나 저지레나 잘못이 수두룩하다’고 하더라도, 모두 감추거나 숨기면서 ‘그쯤이야 있을 만하다’고 덮어씌운다고 느낀다. ‘임금님 잘못’을 마치 ‘임금님 보람(업적)’이라도 되는 듯 말바꾸기와 말치레를 하기까지 한다.


조갑제 씨는 “박정희는 소박(素朴)과 자주(自主)”라고 말하지만, 막상 “박정희는 소름과 자랑(자뻑)”이라고 말해야 알맞지 않을까? 박정희는 사람들이 소름이 돋도록 짓밟고 죽이면서, 이를 자랑으로 삼았다. 박정희는 그이 스스로와 둘레 뭇사람이 뒷돈을 허벌나게 챙기도록 자리를 보아주면서 이 또한 자랑으로 삼았다.


이승만·박정희 무렵에도, 전두환·노태우 무렵에도, 그리고 박근혜·문재인·윤석열 동안에도, 똑같이 ‘나라도둑’이 철철 넘친다. 누가 우두머리에 앉든, 이 나라에 도둑이 수두룩하다. 도둑이 많기에 나라가 거덜나거나 흔들린다. 숱한 도둑이 뒷돈을 챙기느라 사람들이 홀쭉하다. 싸움붙이(전쟁무기)를 그토록 엄청나게 만들어내는데, ‘국방예산’이 얼마나 제대로 쓰이는지 누가 살필까? 아마 아무도 안 살필 뿐 아니라, 돌라먹기에 바쁘지 않을까?


조갑제 씨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쓰면서 ‘박정희 우상’을 세우고 싶었구나 싶은데, 오히려 이런 책을 썼기 때문에 ‘숨길 수 없는 빈구멍과 저지레’를 더 널리 드러내 주었다고 할 만하다. 박정희는 왜 ‘백선엽·백인엽’ 뒤를 그토록 봐주면서 ‘인천 선인재단’이 인천을 통째로 집어삼키도록 밑밥을 깔아 주었는지 궁금했는데, 조갑제 씨가 쓴 글을 보고서 아주 잘 알아낼 수 있더라.


‘백선엽·백인엽’이 ‘전쟁영웅’인가? 뒤에 앉아서 작대기로 길그림을 척척 짚으면서, 여기에 몇 천 저기에 몇 천, 젊은사내를 총알받이로 내몬 우두머리가 어떻게 전쟁영웅일 수 있는가? 또한 두 백씨가 박정희를 등에 업고서 하던 막짓과 뒷짓을 보면, 군사독재정권 민낯을 더욱 훤히 읽어낼 수 있다. 서로 한통속이기에 이처럼 ‘우상숭배 경전’을 내놓아서 사람들을 홀려야 한다고 여기고야 만다.


ㅍㄹㄴ


박정희를 쓰면서 나는 두 단어를 생각했다. 소박(素朴)과 자주(自主). (10쪽)


IMF 관리 체제는 1988년부터 시작된 민주화 10년의 비싼 대가(代價)였다는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13쪽)


황민화 교육의 첨병을 양성하는 것이 설치 목적익도 했던 사범학교는 또한 군국주의 시대에 걸맞은 장교적 소양을 갖춘 교사를 양성한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25쪽)


아리카와는 박정희를 “보쿠세이키, 보쿠세이키”라고 부르면서 귀여워했다. 총검술을 가르칠 때는 박정희를 시범조교로 불러내었다. (52쪽)


박정희가 외래 사상이나 문화에 대해서 보여준 자주적인 자세의 출발점은 사물을 동양적 가치관으로 판단하려는 시각이었다. 그런 시각의 바탕에 깔린 것은 그가 대구사범 때 배웠던 한자 문화의 교양이었다. 그런 그가 한글 전용을 강행함으로써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뿌리로부터 단절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62쪽)


우리가 연구한 것은 “어떻게 하면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취할 것인가”였다. 내가 문득 생각이 나서 “박 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했다. 그는 즉각 찬동했다.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학생 시험 용지를 펴더니 면도칼로 새끼손가락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설마 했는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이었다. 박 선생은 핏방울로 시험지에다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라고 썼다. 그는 이것을 접어서 만주로 보냈다. (96쪽)


박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소년용 전기를 준비하고 있던 김종신 공보비서관이 “각하는 왜 만주에 가셨습니까”라고 묻자 단순명쾌하게 이야기했다. “긴 칼 차고 싶어서 갔지.” (101쪽)


박상희는 ‘다카키 소기’,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의 조카 박재석은 ‘다카키 이사무’가 되었다. (117쪽)


하나 흥미로운 것은 만군(滿軍) 출신 장교들이 혼란스런 창군(創軍) 과정에 잘 적응했다는 점이다. 대체로 원칙주의자들인 일군 장교 출신 장교들은 상황이 정상일 때는 능력을 발휘하지만 비정상일 때는 어리둥절해지는 반면 만주라는 혼란 상황에 익숙했던 만군 출신들은 오히려 요령과 임기응변을 잘 부리고 미군들과도 잘 사귀었다. (181쪽)


이때 박정희는 이현란 몰래 본처 김호남과 헤어지기 위해 이혼 수속을 하려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208쪽)


박정희를 살려 준 백선엽 육본 정부국장은 자상하게 그의 뒤를 봐주었다. 석방시킨 뒤에는 일 주일 동안 정양한 뒤 출근하도록 처리했다. 그 사이 백선엽 국장은 박정희 소령을 정보국 전투정보과 과장으로 발령 냈다. (236쪽)


김종필 중위 일행은 시흥의 임시육본으로 갔다가 다시 수원으로 갔다. 일제 시대에 만든 수원청년훈련소에 정보국이 들어갔다고 해서 거기로 갔더니 박정희가 정문에 서서 자신들을 맞아 주는 것이 아닌가. 김 중위는 마음이 놓였다. “저분은 역시 북(北)으로 가지 않으셨구나” 하는 안도감. 박정희에게 있어서 6·25 남침은 자신에 대한 사상적 의구심을 해소하는 계기를 선물했다. (283쪽)


위대한 민족 지도자 이승만의 생애에 있어서 서울과 시민 그리고 군인들을 버리고 몰래 한강을 건넌 뒤 다리를 끊은 이 행위는 일대 오점(汚點)으로 남게 되었다. (284쪽)


(1950년 대구·부산에서) 8월 어느 날 송 소위는 박정희에게 말을 건넨다. “과장님 왜 혼자 사십니까. 가족이 있어야 마음도 든든하고 위로도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글쎄, 좋은 색시가 있어야지.” 송 소위는 외가 쪽으로 동생뻘 되는 육영수란 색시를 소개했다.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제가 보기에는 만점인데 과장님이 보시면 만점이 될지, 영점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박정희는 그저 “그런 색시가 있느냐” 하는 정도였다. (309쪽)


박정희는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있던 날 중령으로 진급했다. 만주군관학교 동기인 이한림은 당시 준장으로서 부군단장이었고 육사 2기 동기생들은 대령으로 진급해 있었다. 동료들에 비해서 많은 나이와 낮은 계급은 현실에 대한 박정희의 불안을 구조화했다. (316쪽)


육종관은 집안을 왕국처럼 그리고 회사처럼 운영했다. 그는 소실을 데려다 놓고 놀고먹도록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다. 4백 석을 생산하는 논밭일을 하는 데 소실들은 노동력을 제공하여야 했다. 그 자신도 농사일에 참여했다. 장부 정리는 육영수의 몫이었다 … 어머니가 각기 다른 10여 명의 아이들과 섞여 살면서 육영수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자신의 분수와 품위와 영역을 지키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324, 325쪽)


평양은 12월 5일에 포기되었다. 평양이 고향이고 북진 때는 평양 돌입의 선봉장이었던 백선엽 1사단장은 대동강 철교를 비롯한 평양의 중요 시설들이 모조리 폭파되고 대동강역에서는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 탱크 18대가 포 한 발 못 쏘아 보고 화염에 휩싸여 버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것이 생전에 내가 보는 평양의 마지막 모습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390쪽)


5·16 거사 직후 김시진은 반(反) 혁명 분자로 몰리고 있었다. 혁명 주체 김재춘이 박정희 소장을 찾아가 말했다고 한다. “9사단에 있을 때 그 사람은 ‘생선’이란 말이 ‘여자’를 가리킨다는 것도 모를 만큼 순진한 사람이란 사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데려다가 씁시다.” (413쪽)


박정희 대령은 대구로 가는 길에 후방에 있던 김재춘 병참부장의 부대를 찾아갔다. 김재춘은 송아지를 한 마리 잡아 보신(補身)을 시켜 주고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415쪽)


+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조갑제, 조선일보사, 1998)


박정희를 쓰면서 나는 두 단어를 생각했다. 소박(素朴)과 자주(自主)

→ 나는 박정희를 쓰면서 두 낱말을 생각했다. 수수와 스스로

→ 나는 박정희를 쓰면서 두 낱말을 생각했다. 단출와 몸소

10쪽


단순명쾌하게 이야기했다

→ 굵짧게 이야기했다

→ 한마디로 이야기했다

→ 그냥 이야기했다

101쪽


4백 석을 생산하는 논밭일을 하는 데 소실들은 노동력을 제공하여야 했다

→ 400섬을 낳는 논밭을 짓는데 꽃아씨도 일하여야 했다

→ 400섬을 얻는 논밭을 짓는데 버금각시도 일하여야 했다

324쪽


모여 앉은 사람들은 가가대소(呵呵大笑)했다

→ 모여 앉은 사람들은 깔깔거렸다

→ 모여 앉은 사람들은 너털웃음이다

→ 모여 앉은 사람들은 활짝웃음이다

→ 모여 앉은 사람들은 함박웃음이다

412쪽


김시진은 반(反) 혁명 분자로 몰리고 있었다

→ 김시진은 거꿀이로 몰렸다

→ 김시진은 거스른다고 몰렸다

413쪽


송아지를 한 마리 잡아 보신(補身)을 시켜 주고

→ 송아지를 한 마리 잡아 북돋아 주고

→ 송아지를 한 마리 잡아 살찌워 주고

→ 송아지를 한 마리 잡아 보살펴 주고

415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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