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SERI 연구에세이 3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12.18.

다듬읽기 248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2003.2.20.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를 가만히 읽었습니다. “영어를 함께 쓰자”고 굳이 안 외쳐도, 이 나라 벼슬아치나 글바치는 일찌감치 중국말도 일본말도 함께 써왔고, 영어도 진작부터 함께 썼습니다. 그러나 ‘바치’ 아닌 ‘살림지기’는 늘 ‘말’을 썼어요. 수수한 살림지기가 주고받는 말 사이에 곧잘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영어가 섞이기는 하지만, 그저 ‘말’을 하다가 몇 마디 섞일 뿐입니다. 그런데 온나라 모든 아이어른이 영어를 굳이 첫쨋말로 삼아서 주고받아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하고 터전과 삶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굴레에 갇히고 괴로울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며 쓸 말과 ‘이웃을 만나며 쓸 말’과 ‘책과 글을 곁에 두며 쓰는 말’은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시골지기가 논밭에 씨앗을 심을 적에 ‘씨’가 아닌 ‘종자’라는 일본 한자말을 농협부터 쓰라고 억누르는데, 이제부터 ‘seed’라고 바꿔쓴들, 삶이 바뀔 일이 없이 갇힐 뿐입니다. 모든 낱말과 말씨에는 그곳 사람들이 오래오래 일군 숨결과 마음과 살림과 사랑과 꿈과 뜻이 서려요. 복거일 씨는 ‘말’이 왜 ‘말’인지 하나도 모르거나 일부러 뒷짐을 지거나 눈돌린 채 ‘영어나라’를 이루어 ‘돈 잘 버는 나라’로 바뀌기를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이 책이 밝히는 바는 오로지 돈입니다. 영어를 빨리 써야 돈이 되고, 모든 아이가 영어부터 잘 써야 ‘돈 잘 버는 세계인’이 된다고 외칩니다. 돈이 안 대수롭지 않습니다만, 그저 돈만 쳐다보는 삶이라면 보람이 있을까요? 돈을 안 벌어도 들숲바다를 품고서 논밭을 가꾸는 일꾼은 언제나 느긋하고 넉넉합니다. 돈벌이가 아닌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은 ‘경제성장에 이바지 안 하는’ 셈인지요? ‘가정부’를 쓰자면 한 달에 500만 원도 매우 적은데요, 집살림과 집안일을 돈값으로 헤아리자면 어마어마하게 ‘나라살림에 이바지’합니다. 아이어른이 먼저 서로 마음과 생각과 뜻을 즐겁고 상냥하면서 넉넉히 주고받는 ‘쉬운말’부터 알맞게 쓸 수 있는 나라에 마을에 집이어야 비로소 ‘눈에는 안 띄는 경제성장 지표가 껑충껑충 오릅’니다. 복거일 씨 목소리대로라만, 굳이 우리나라에서 논을 일구어 쌀을 거둘 까닭이 없어요. 이웃나라에서 사오는 쌀이 훨씬 값싸니까요. 이것도 저것도 다 사다가 쓰면 돈이 얼핏 가장 적게 들어서 ‘경제발전 이바지’일는지 모르나, 남한테 모두 기대는 적잖은 나라가 어떤 꼴로 무너졌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과 살림과 뜻을 우리말로 주고받는 오랜 터전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 손으로 옮기는 우리글까지 있는, 이 푸른별에서 아주 아름답고 놀라운 나라입니다. 오히려 영국이나 미국에 ‘한말·한글(우리말·우리글)’을 쓰라고 북돋우면서 ‘한말·한글’을 이웃나라가 알맞고 즐겁게 쓰는 길을 열자고 외친다면,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야말로 끝없고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이루리라 봅니다. 그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글이 너무 엉망진창입니다. 무늬만 한글일 뿐, 온통 일본말씨에 옮김말씨입니다.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는지요? 영어를 함께 쓰자고 외치기 앞서, 우리말과 우리글부터 차근차근 익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들 우리말을 못하면 ‘통번역’을 못 합니다.


ㅅㄴㄹ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2003)


너른 논의의 마당에서 살피려는 시도다

→ 너른마당에서 살피려고 한다

→ 널리 얘기하려는 뜻이다

→ 널리 나누고 싶다

7


이 글은 위의 인용에서 ‘경제의 논리’라고 불린 것을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 이 글은 앞선 글에 적은 ‘돈’ 이야기를 밝히려고 한다

→ 따온글에 적은 ‘돈’이 얼마나 드는가 밝히려고 한다

10


이런 반응은 모국어에 관한 논의에선 훨씬 거세어진다

→ 우리말을 다룰 적에는 훨씬 거세게 대꾸한다

→ 겨레말을 다루려 하면 훨씬 거세게 맞선다

11쪽


반어적(反語的)으로, 이미 설득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보기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 거꾸로 이미 받아들인 사람을 다독이는 일은 훨씬 뜻있다

→ 그런데 이미 끄덕이는 사람을 달래는 일은 훨씬 뜻깊다

12


당연히,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배우는 데 큰 투자를 하고 있다

→ 마땅한데,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려고 돈을 크게 쓴다

→ 마땅히, 사람들은 영어를 배운다며 힘을 잔뜩쓴다

15


정보의 교류를 막는 언어 장벽을 낮추어서 그런 장벽으로 인해 우리가 보는 손해를

→ 주고받는 말을 막는 담을 낮추어서 담벼락 때문에 우리가 잃는

→ 흐르는 이야기를 닫어거는 담을 낮추어서 담 탓에 우리가 밑지는

→ 말이 달라서 만남길이 막히는데, 담을 낮추어서 우리가 날리는

16쪽


빠르게 국제어로 자리잡은 데서 나온 것이므로

→ 빠르게 누리말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니

→ 빠르게 모둠말로 자리잡았은 탓이니

17


기술이 점점 빠르게 발전하면서, 근년에는 그런 예들이 훨씬 자주 나왔다

→ 다룸새가 더 빠르게 크면서, 요새는 훨씬 자주 이런 일을 본다

→ 더 빠르게 나아가는 솜씨에 따라, 이제 이런 일을 훨씬 자주 본다

24


영어의 득세는 나머지 민족어들이 궁극적으로 쇠멸하리라는 것을 뜻한다

→ 영어가 판치며 나머지 겨레말은 그저 사라진다는 뜻이다

→ 영어가 춤추며 나머지 내림말은 바로 죽는다는 뜻이다

43


단기적으로는 민족어들이 영어에 점점 깊이 침윤될 것이다

→ 곧 겨레말은 영어 탓에 차츰 가라앉는다

→ 이윽고 내림말은 영어에 조금씩 잠긴다

43


조선어의 쇠퇴는 언어의 건강을 보장하는 조어 능력에서 특히 뚜렷하다

→ 조선말은 조선말로 새롭게 엮지 못하면 뚜렷이 기울고 만다

→ 조선말은 조선말로 새말을 엮지 못하면 뚜렷이 흔들린다

48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

→ 그러면 무엇이 참답게 새길일까

→ 그러면 다른길을 어떻게 열까

89쪽


조선어의 독점적 지위를 허물어서, 시민들이 영어를 쓰고 자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 조선말만 쓰기보다는, 사람들이 영어를 쓰고 아이한테 겨레말로 영어를 고를 수 있도록 하자는 길이다

→ 조선말만 쓰지 말고, 누구나 영어를 쓰고 아이한테 영어를 내림말로 고를 수 있도록 하자는 셈이다

91


거의 모두 근대에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 거의 모두 요즈막 일본에서 새로지었다

→ 거의 모두 일본사람이 새로지었다

98쪽


언어는 본질적으로 도구다

→ 말은 무릇 그릇이다

→ 말은 모름지기 밑감이다

111


비용과 혜택이 여러 세대들에 걸쳐 나오는 초장기적 투자라는 사실이다

→ 돈으로나 바라지로나 앞으로 길게 잇도록 힘을 쏟는 일이다

→ 앞으로 오래오래 돈이 되고 넉넉히 누리는 길이다

118


위에서 살핀 것처럼, 영어를 옳게 읽고 쓰는 능력은 현실에서도 기본적 중요성을 지닌 기술이며

→ 이제까지 살폈듯이, 우리가 살아가자면 영어를 옳게 읽고 써야 하며

→ 앞서 살폈는데, 우리가 살아가려면 영어를 옳게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며

13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일사불란



 일사불란의 움직임이었다 → 가지런히 움직인다 / 한몸으로 움직인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 정갈하게 움직인다 / 찬찬히 움직인다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 착착 돌아간다 / 고르게 돌아간다


일사불란(一絲不亂) :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질서가 정연”한 모습이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두고 ‘일사불란’이라 한다고 해요. ‘정연하다(整然-)’를 찾아보면 “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다”로 풀이합니다. “질서가 정연하다”는 “질서가 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다”는 뜻이 되어 겹말풀이입니다. 곧 ‘가지런하다·나란하다’나 ‘흐트러짐없다·빈틈없다’처럼 한 마디만 하면 넉넉합니다. ‘고르다·바르다·반듯하다·반반하다’나 ‘살뜰하다·알뜰하다·입바르다’라 하면 되고, ‘정갈하다·짜임새 있다’나 ‘차곡차곡·차근차근·찬찬히’라 할 수 있어요. ‘죽죽·척척·착착’이나 ‘한달음·한뜻·한몸·한빛’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일사불란하게 일하는 것이다

→ 흐트러짐없이 일한다

→ 빈틈없이 일한다

→ 착착착 일한다

→ 한몸이 되어 일한다

《자동차 절망공장》(가마타 사토시/허명구·서혜영 옮김, 우리일터기획, 1995) 69쪽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 척척 움직이는 아이들

→ 살뜰히 움직이는 아이들

→ 반듯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우리들의 선거》(보리스 르 루아/김지현 옮김, 큰북작은북, 2012) 106쪽


잠자리들 전깃줄에 나란하다. 이제 저 일사불란도 불편하지 않다

→ 잠자리들 빛줄에 나란하다. 이제 저 나란함도 싫지 않다

→ 잠자리들 빛줄에 나란하다. 이제 저 가지런도 밉지 않다

→ 잠자리들 빛줄에 나란하다. 이제 저 줄맞춤도 거북하지 않다

《중독자》(박남준, 펄북스, 2015) 11쪽


빠르고 일사불란하게 흔드는 꼬리에서는 씩씩한 기백과 진지함이 엿보였다

→ 빠르고 가지런하게 흔드는 꼬리는 씩씩하고 차분하다

→ 빠르게 한몸처럼 흔드는 꼬리는 씩씩하고 참하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조너선 밸컴/양병찬 옮김, 에이도스, 2017) 188쪽


일사불란하게 짐을 부리고

→ 가지런하게 짐을 부리고

→ 차곡차곡 짐을 부리고

→ 착착 짐을 부리고

《섬마을 산책》(노인향, 자연과생태, 2017) 69쪽


사과 안에 든 하늘기운, 땅기운이 몸 안으로 일사불란하게 스민다

→ 능금에 든 하늘기운, 땅기운이 몸으로 차곡차곡 스민다

→ 능금에 든 하늘기운, 땅기운이 몸으로 알뜰살뜰 스민다

《탱자》(박미경 엮음, 봄날의책, 2021) 2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부탁


 누구의 부탁인지 감안하여 → 누구 말씀인지 헤아려

 자네의 부탁이라면 → 자네가 물어보면

 동생의 부탁인걸 → 동생이 바라는걸


  ‘부탁(付託)’은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김. 또는 그 일거리”를 가리킨다고 해요.

 이 뜻을 살핀다면 ‘맡다’나 “맡아 주셔요”로 손볼 만할 텐데, 웬만한 자리에서는 ‘여쭈다·여쭙다’나 ‘묻다·물어보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바람·바라다’로 손보고, ‘맡기다’나 ‘하다·말하다·말·말씀’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ㅅㄴㄹ



아디시노 선생님의 부탁이니

→ 아디시노 샘님이 말씀하니

→ 아디시노 님이 바라니

《충사 1》(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5) 209쪽


나는 륀느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싶다

→ 나는 륀느가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다

→ 나는 륀느가 바라면 다 들어주고 싶다

《우리들의 선거》(보리스 르 루아/김지현 옮김, 큰북작은북, 2012) 32쪽


그 후 그에게 촬영을 허락해 달라 재차 간곡하게 말했고, 그는 나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었다

→ 그 뒤 그한테 찍고 싶다고 거듭 엎드렸고, 그는 내 바람을 끝내 들어주었다

→ 그 뒤 그한테 담고 싶다고 거듭 빌었고, 그는 내 비손을 끝내 들어주었다

《우편집배원 최씨》(조성기, 눈빛, 2017) 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들의 선거 다독다독 청소년문고
보리스 르 루아 지음, 엘렌 조르주 그림, 김지현 옮김 / 큰북작은북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4.12.17.

푸른책시렁 177


《우리들의 선거》

 보리스 르 루아 글

 엘렌 조르주 그림

 김지현 옮김

 큰북작은북

 2012.3.21.



  이끌어 가는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고 여기는데, 누가 앞장서기에 함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누가 앞에 있어서 어느 길을 가지 않아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이곳에서 서서 다 다르게 다다르려는 길입니다.


  이끌어 가는 몫으로 누구를 뽑기에 끝나지 않아요. 이끎이는 그저 이끌 길을 먼저 살필 뿐입니다. 무턱대고 이리로 밀거나 저리로 당겨야 하는 이끎이가 아닙니다. 이 길은 왜 갈 만하고, 저 길은 왜 안 갈 만한지, 낱낱이 짚고 알려줄 몫인 이끎이입니다.


  2024년 12월에 우리나라 이끎이라 할 우두머리를 끌어내렸습니다. 끌려내린 이끎이요 우두머리는 사람들이 모조리 못마땅합니다. 그이가 보기에 나라 여러 곳이 곪거나 썩거나 비틀렸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잘 모르더라도 그이가 잘 알아볼 길이 틀림없이 있어요. 다만, 이끎이는 혼자 멋대로 달려가는 자리가 아니에요. 아무리 자그마한 일을 꾀하든, 모조리 사람들한테 먼저 차분히 들려주고 밝히고 알린 다음에 귀를 기울일 자리입니다.


  먼저 이모저모 해보라고 일삯을 넉넉히 챙기지요. 먼저 두루 고루 여러 가지를 알아보라면서 여러모로 힘도 챙깁니다. 그런데 끌려내린 그이는 돈과 이름과 힘을 마치 혼자 쥐고서 휘저어도 되는 듯 굴었어요. 우두머리(대통령)란, 일꾼이자 심부름꾼이고 머슴이어야 할 노릇인데, 이 대목을 잊어요. 우두머리 한 사람뿐 아니라 숱한 벼슬아치도 그들이 일꾼이요 심부름꾼이며 머슴인 줄 까맣게 잊습니다.


  《우리들의 선거》는 프랑스 어느 배움터에서 벌어진 일을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누구를 뽑느냐”는 하나도 안 대수롭다는 대목을 잘 풀어냅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뽑든 “뽑힌 사람”은 고루 살펴서 두루 일할 몫이에요. 일꾼을 뽑은 사람은 일꾼이 제대로 일하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도울 몫입니다. 일만 맡기고서 팔짱을 끼거나 딴청을 하면, 이때부터 일꾼이 막나가게 마련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이란, 함께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나서, 한 사람이 나서서 이야기를 추스른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 목소리만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프거나 괴롭거나 힘들 사람이 없도록, 모두 돌아보고서 일을 할 적에 비로소 일꾼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리 민낯과 속낯을 다 살펴야 합니다. “누구를 뽑느냐”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스스로 하고 함께 나누며 서로 도와가는 길”을 잊지는 않는가요? 설마 “바보는 투표할 권리가 없다”는, 그야말로 바보스런 마음에 사로잡히지는 않나요?


ㅅㄴㄹ


“저런 바보도 투표할 권리가 있나요?” “당연히 있지. 아나르, 친구한테 그런 말 하면 못써. 자, 계속 설명할 테니 잘 들어라.” (61쪽)


“고마워!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반을 대표할 사람으로서 친구들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좋겠어.” (72쪽)


“그게 뭐가 중요하니?” “그러지 마. 진짜 중요한 문제야! 아무 생각 없이 반장이 되는 건 어쩌면 일종의 사기일지도 몰라. 진짜가 아니라고.” (98쪽)


탁자 위에 놓인 단단한 음식 상자를 보자 입맛이 싹 가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열랑과 영양소를 고려하여 만들었을 테지만, 오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107쪽)


내 입속에서 계속 이런 말이 맴돌았다. ‘어른들은 이제 상상의 독재를 끝내야 해요! 어른들의 상상은 병들었어요. 너무 틀에 박혔다고요. 이제 우리들의 상상에 맡길 때예요.’ (134쪽)


#Quand J'etais Petit Je Voterai (2007년)


+

《우리들의 선거》(보리스 르 루아/김지현 옮김, 큰북작은북, 2012)


몇 가지 특별 대우를 해주겠다고

→ 몇 가지 더 봐주겠다고

→ 몇 가지 더 누릴 수 있따고

18쪽


다른 나라에서 이민을 왔기 때문이다

→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다

→ 다른 나라에서 건너왔기 때문이다

22쪽


다음주 이 시간에 투표로 결정한다

→ 이레 뒤 이맘때 뽑기로 한다

→ 이레 뒤에 가리기로 한다

24쪽


나는 륀느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싶다

→ 나는 륀느가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다

→ 나는 륀느가 바라면 다 들어주고 싶다

32쪽


아이들을 향해 거침없이 하얀 분무를 뿜어냈다

→ 아이들한테 거침없이 하얗게 물을 뿜어냈다

→ 아이들한테 거침없이 하얗게 뿜어냈다

41쪽


싸워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바로 페어플레이 정신인데 말이야

→ 싸워서 이기기가 아니라 바로 착한 마음인데 말이야

→ 싸워서 이기기가 아니라 바른길인데 말이야

42쪽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왔다

→ 마침내 맞서는 날이다

→ 마침내 붙는 때이다

→ 마침내 겨룬다

56쪽


더 좋은 학교로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 더 나은 배움터로 일구고 싶습니다

→ 즐거운 배움터로 가꾸고 싶습니다

81쪽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 척척 움직이는 아이들

→ 살뜰히 움직이는 아이들

→ 반듯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106쪽


셀프서비스 줄에 끼어 서게 되었고, 순식간에 배식이 끝났다

→ 혼줄에 끼었고, 어느새 밥을 다 나눴다

→ 스스로줄에 서고, 어느새 나눔밥이 끝난다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개의 여름
사노 요코.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4.12.17.

푸른책시렁 178


《두 개의 여름》

 사노 요코·다니카와 슌타로

 정수윤 옮김

 창비

 2020.8.20.



  두 사람이 쓴 《두 개의 여름》을 읽었습니다. 책이름이 좀 얄궂습니다.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자면 “두 여름”이나 “두 가지 여름”입니다. 줄거리를 살핀다면, 두 사람이 다르게 바라보고 품은 여름을 들려주니, “두 사람 여름”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이러한 이름 그대로 두 사람이 두 눈썰미로 어느 여름을 돌아보면서 차분히 풀어낸 얼거리입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가 있고, 짐짓 뽐내는 아이가 있어요. 들숲바다에 해바람비를 고스란히 안는 아이가 있다면, 먹물만 잔뜩 드느라 들숲바다에 해바람비를 멀리하는 아이가 있어요.


  오늘 우리 삶자락을 돌아보면, 오늘날 아이어른은 나란히 먹물만 잔뜩 들어요. 손전화나 누리집을 다루는 솜씨는 빼어나되, 막상 하늘을 보며 날씨를 못 읽습니다. 부릉부릉 몰거나 버스·전철을 잘 갈아타되, 정작 숲길과 들길을 호젓이 거닐 줄 모릅니다. 가게에 가서 더 낫거나 싸거나 좋다는 살림살이를 살 줄 알지만, 거꾸로 손수 품을 들여서 짓거나 가꾸거나 일구는 하루는 까맣게 잃습니다.


  두 여름 가운데 어느 쪽이 낫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두 아이어른 가운데 어느 자리가 맞다고 할 마음도 없습니다. 나란히 놓으니 두 길이 사뭇 또렷하게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울이나 시골이나 똑같은 얼개이면서 똑같이 가르쳐요. 시골아이라고 해서 들놀이나 숲놀이나 바다놀이를 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골은 아이들을 모두 부릉부릉 태워서 집이랑 배움터 사이를 슥 가로지릅니다.


  서울에서도 걸어다니는 아이는 드물어요. 엄마아빠가 부릉부릉 태웁니다. 이제 아이들은 거의 ‘짐’이에요. 실어서 날라 주는 짐입니다. 배움책(교과서)을 달달 외워야 하는 짐이고, 배움수렁을 거쳐서 종이(졸업장·자격증)를 거머쥐지 않고서는 아무런 꿈을 못 그리는 짐입니다.


  이런 판에 다들 무엇을 하는 하루일까요? 아이들이 죄다 일찌감치 늙어가는데, 애늙은이로 뒹구는 아이를 그저 신나게 뛰놀면서 눈망울이 반짝이는 아이로 품으려는 길은 누가 살피고 생각하는가요?


ㅅㄴㄹ


아버지는 침에 젖은 못을 가져가 울타리에 쾅쾅 박습니다. “겐타로 아버지는 학자라서 아무하고도 말 안 하는 거야?” 아버지는 말없이 못을 쾅쾅 박습니다. “겐타로는 있잖아, 장수풍뎅이도 냄새난다고 못 만져. 무서운 거겠지.” (14쪽)


나는 잘난 척하는 교코를 흉내 내며 두 사람 뒤를 따라갑니다. 둘이서 돌아보더니 번갈아가며 “워이, 워이.” 하고 나를 내쫓습니다. 나는 그 애들을 제치고 달려가 뱀 허물을 넣어둔 나무 동굴에 숨었습니다. (25쪽)


“어릴 때부터 무덤을 좋아했습니다.” “애치곤 섬뜩하네요. 어릴 때 불행한 일이라도 있었나?” “왜요? 평범했어요.” 남자는 운전을 하며 잠든 도시코를 몇 번이나 돌아봤다. “귀엽네.” (102쪽)


#ふたつの夏 #佐野洋子 #たにかわしゅんたろう


+


《두 개의 여름》(사노 요코·다니카와 슌타로/정수윤 옮김, 창비, 2020)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잊었다

→ 배웠지만 더 많이 잊었다

→ 배웠는데 더 많이 잊었다

→ 배웠어도 더 많이 잊었다

9쪽


생글거리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 생글거리게 됩니다

→ 생글거리고 싶지 않지만 얄궂게 생글거립니다

→ 생글거리고 싶지 않지만 어쩐지 생글거립니다

21쪽


오후에 산보도 할 겸

→ 낮에 마실도 하려고

→ 낮에 나들이 삼아

→ 낮에 좀 걸으면서

22쪽


너무 지루에서 벼랑 위 나무에 올랐습니다

→ 너무 심심해서 벼랑나무에 오릅니다

→ 너무 따분해서 벼랑나무에 오릅니다

30쪽


모자가 훨씬 멋있어졌습니다

→ 쓰개가 훨씬 멋있습니다

→ 갓이 훨씬 멋스럽습니다

37쪽


논문은 예정대로 썼지만 건성으로 작업한 기분이 든다

→ 글은 마감에 맞췄지만 건성으로 쓴 듯하다

46쪽


근 한 달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 거의 한 달을 하루글을 안 썼다

→ 한 달 즈음 하루쓰기를 안 했다

46쪽


참관일에 늘 엄마가 온다

→ 구경날에 늘 엄마가 온다

→ 보는날에 늘 엄마가 온다

51쪽


모자 차양을 살짝 고쳤다

→ 해가리개를 살짝 고친다

54쪽


나는 한 번도 작문을 쓰지 않았다

→ 나는 글을 아예 안 썼다

→ 나는 글쓰기를 그냥 안 했다

67쪽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75쪽


게이는 결혼을 못 하니까

→ 한꽃은 짝을 못 맺으니까

→ 나란이는 같이 못 사니까

8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