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으뜸재주와 고을빛 (2025.3.15.)

― 부산 〈카프카의 밤〉



  서울이 ‘으뜸고을’일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많고, 일도 많고, 펴냄터와 책집도 많습니다. 그러나 으뜸고을 한 곳만으로는 나라가 굴러가지 않아요. 숱한 작은고을과 시골이 밑바탕을 이룰 노릇이요, 여러 큰고을이 기둥으로 설 노릇입니다.


  비오는 저녁에 부산 〈카프카의 밤〉에서 ‘이응모임(이오덕 읽기모임) 11걸음’을 뗍니다. 오늘은 ‘이오덕·윤이상’ 두 분이 부산에서 맺고 얽힌 이음고리를 짚으면서 “걷고 다시 걷고 또 걷는 멧숲길에서 지은 노래”를 이야기합니다. 여러모로 보면, 부산은 이 땅에서 “품고 북돋우며 살리는 고을빛”이 아름다워요. 텃사람이든 아니든 살림꽃을 빛내는 즐거운 고을인데, 고을지기는 잘 모르는 듯해요.


  온누리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재주있는(유능)’ 매무새라고 느낍니다. 다 다르게 재주가 있을 뿐, 높은재주와 낮은재주로 가르지 못 한다고 느껴요. 나라(사회·정부)는 자꾸 높은재주를 섬기거나 내세우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다 다른 사람한테서 다 다른 빛”을 헤아릴 적에 “재주가 아닌 마음으로 빚고 짓고 가꾸는 살림길”을 읽고 이을 만하다고도 봅니다.


  지난날에는 아이가 “아직 재주는 조금 밭다고 하더라도, 마음씀을 헤아려서 철들어 가는 빛이 대견하구나 싶을” 적에 “훌륭한 아이(어린이·푸름이)”라는 말씨로 추키려는 뜻을 나누려고 했어요. 임금님이 조금 어리숙하더라도 온나라를 너그럽고 넉넉히 헤아리면서 곧은길과 살림길을 펼 적에도 “훌륭한 임금님”이라 일컬었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엉뚱하게 “재주있는 사람”한테 “훌륭한 재주”처럼 쓰곤 하는데, ‘재주’라면 “남다른 재주”나 “유난한 재주”나 “튀는 재주”나 “빼어난 재주”처럼 써야 알맞은 말씨일 텐데 싶습니다.


  ‘사랑매’라든지 “사랑해서 그랬어”라는 말씨는 아주 틀렸다고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랑이라면 때리거나 칠 수 없거든요. ‘살섞기(성관계)’는 “살을 섞는 몸짓”일 뿐, 사랑이 아닌데, 요즈음에는 ‘연애·애정행각’까지 자꾸 ‘사랑’이라고 뒤집어씌우기도 합니다. 말을 말답게 쓰지 않을 적에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길이 막히고, 말을 말답게 쓰려 할 적에는 마음을 스스럼없이 펴고 나누면서 살림짓기로 잇는다고 느껴요.


  재주를 너무 앞세운 탓에 마음이 뒤틀리거나 뒷짓·몰래짓으로 돈·이름·힘을 크게 벌면 그냥그냥 봐주기까지 하는데, 앞으로 이 땅을 아이들이 물려받아서 새롭게 가꿀 노릇이니, 이제부터는 마음씨를 살피고 말씨를 가다듬는 하루로 바꿀 일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교수대의 비망록》(율리우스 푸치크/김태경 옮김, 여름언덕, 2012.6.16.)

#Reportaz psana na opratce (1947년)

《타락한 저항》(이라영, 교유서가, 2019.3.22.첫/2019.5.17.2벌)

《볼륨디카시선 1 독창》(강미옥과 아홉 사람, 커뮤니케이션볼륨, 2024.9.9.)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5.3.28.)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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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3.12.


《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

 이라영과 여섯 사람, 철수와영희, 2024.11.13.



해가 환하다. 구름이 살살 낀다. 어느덧 구름이 걷힌다. 읍내 나래터를 다녀오는 길에 저잣마실을 한다. 걸으면서 책을 읽다가 전봇대라든지 알림판 기둥에 부딪힐 뻔하다. 그냥 거닐 때에도 전봇대나 여러 기둥이 거님길 한복판에 있기에 거추장스러운데, 책을 읽으며 걷자니 더더욱 걸림돌이다. 거님길 한복판에 왜 전봇대나 기둥이 있어야 할까? 부릉부릉 달리는 길 복판에 있으면 어떻겠는가? 거님길이라면, 어버이가 아이 손을 잡고 느긋이 다닐 만한 너비로 마련해야 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지배당하는가?》를 읽었다. 틀림없이 옳고 바른 목소리를 차근차근 풀어내어 담았다고 본다. 다만, 일곱 글쓴이가 놓치는 대목이 눈에 뜨인다. 그들이 우리를 따돌리거나 미워하기에 따돌림판이거나 미움불씨가 퍼지지 않는다. 우리를 따돌리거나 미워하는 그들을 “우리가 먼저 스스럼없이 보아주지(용서) 않는 탓에 자꾸 싸우고 함께 다치거나 죽는다”고 할 만하다. 우리 옛말에 “미운아이 떡 하나 더 준다”가 있고, 거룩말씀에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민다”고 나온다. 사랑받지 않았다고 여기기에 이웃을 따돌리고 동무를 미워하는 ‘그들’은 우리한테서 떡(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들이 밉말을 쏟건 말건 우리는 늘 사랑말을 펴고 살림을 짓고 삶말을 속삭이면 된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거나 따돌린다고 여기면서, “우리도 똑같이 그들을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따돌리니까 자꾸자꾸 온나라에 밉질과 손가락질과 따돌림질이 더 불춤으로 번질 뿐”이다. 길풀이는 아주 쉽다. 나부터 그들을 보아주고 놓아주면 된다. 나부터 그들한테 떡 하나 더 주면서 빙그레 웃으면 된다. 나부터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조용히 살림을 지으면 된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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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16. 놓치는 일은 없다



  놓치는 일은 없다. 바로 다음에 온다.


  부산나루 건너에 있는 〈창비부산〉에서 연제동 〈카프카의 밤〉으로 건너가려고 전철을 탄다. 연산나루에서 내려 81번 버스로 갈아타려고 한다. 비오는 흙날 낮은 붐빈다. 물결치는 사람들은 왁자지껄 수다잔치이다. 버스나루에 서서 알림판을 보니 81번 버스는 7분 뒤에 온다고 뜬다. 그런데 7분 뒤에 온다던 버스는 7분 뒤가 아닌 15분 뒤에 온다. 사람들은 우글우글 달리고 밀리는데, 같은 81번 버스가 둘이 나란히 들어오네. 나까지 세 사람을 뺀 모두 앞에 먼저 들어온 버스에 타려고 북적이고 밀친다. 나까지 세 사람은 뒤에 슬슬 들어오는 버스에 탄다. 뒷버스는 텅 비었다. 세 사람은 빈 버스에 눕듯 느긋이 앉는다. 아마 앞버스는 그야말로 미어터지리라 본다. 앞버스랑 뒷버스는 자꾸자꾸 나란히 달린다. 뒷버스는 천천히 가려고 하지만, 막상 사람들은 뒷버스를 타려 하지 않고서 앞버스에만 타려고 하는 듯싶고, 두 버스는 벌어졌다가 만나고 또 벌어졌다가 만난다. 앞버스를 모는 일꾼은 뒷버스에 타시라고 말씀하는 듯싶으나 손님들은 버스일꾼 말을 듣기보다는 그저 꾸역꾸역 앞버스만 타시는구나 싶다.


  이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에 부산이웃님한테 81번 버스를 타면서 “나란히 들어온 두 버스”를 이야기했더니 “81번 버스 자주 들어오는데예.” 하신다. 자주 들어오니까 앞버스를 보내더라도 느긋이 뒷버스를 타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부산뿐 아니라 광주도 인천도 대구도 대전도 서울도 이와 같다. 1분이건 2∼3분이건 다들 못 기다리신다. 그냥 꾸역꾸역 몸을 밀어넣어서 빨리 가고 싶어 한다.


  시골에서는 시골버스를 으레 2∼3시간씩 기다린다. 나는 시골사람으로서 5분이나 7분마다 들어오는 버스를 잡으려고 달리지 않는다. 2시간이나 3시간도 아니고 5분이나 10분 만에 들어와 주시는 버스가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가! 앞에서 붐비거나 지나가려고 하면 가볍게 보낸다. 얼핏 코앞에서 놓치는 듯 보이더라도 “놓치는 일은 없다”고 할 만하다. “다음길은 늘 곧바로 온다”고 할 만하다.


  내가 맡거나 일할 자리나 몫인데, 남이 내 자리나 몫을 가로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내 자리나 몫을 가로채거나 빼앗으려 하면, 그이가 그냥 가지라고 내어줄 만하다. 나는 느긋이 바람을 쐬고 빗소리를 듣고 풀꽃을 들여다보면서 즐겁게 다음길을 기다리면 된다. 먼저 가려는 분이 있으면 먼저 가라고 하자.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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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3.13.


《최민식 Choi Min-Shik》

 최민식 사진, 조세희 엮음, 열화당, 1987.12.10.첫/2023.7.25.고침



해날을 잇는다. 아이들은 날마다 여러 멧새와 텟새를 마주한다. 집 둘레로 꿩도 깃들고, 아직 이름을 알아채지 못 한 여러 새가 드나드는구나 싶다. 굴뚝새와 솔새와 뱁새를 어렵사리 본다. 셋쨋달도 천천히 흐르면서 한복판에 이른다. 오늘은 ‘몽땅’과 ‘뭉툭’과 ‘무디다’와 ‘뭇’이 얽힌 수수께끼를 가만히 짚는다. 하나하나 짚으면서 모두 새로 추스르고, 다시 살피면서 첫자리로 나아간다. 《최민식 Choi Min-Shik》은 1994년에 처음 읽었다. 1998년에 다시 읽었고, 2007년에 새로 읽고서, 2025년에 거듭 읽는다. 틈틈이 돌아보았으나 앞으로 더 들출 일은 없을 듯하다. 최민식 님이 남긴 그림이나, 조세희 님이 붙인 글은 여러모로 뜻깊되, ‘뜻’에서 멈추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골목집이나 시골집에서 살림을 하며 마을과 보금자리와 들숲바다와 아이들을 차분히 담은 이웃”이 제법 있는 줄 아는데, 막상 ‘수수한 찰칵이웃’이 여민 그림이 사진책으로 나온 적은 아직 없다시피 하다. ‘사진계 출신·스승제자’ 사이가 아닌, 그저 빛을 그림으로 맞아들이는 삶이야기를 엮거나 펴내지 못 한다면, 또 이러한 빛꽃을 눈여겨보지 않는 빛밭(사진계)이라면, ‘뜻’과 ‘목소리’만 있을 뿐, 누구를 누가 어느 자리에서 왜 찍는지 잊고 만다.


《열화당 사진문고 22 최민식 1957-1987》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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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6일 

바로 오늘 곧 펼 이야기꽃이 있다.

밑글을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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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기 모임 (11걸음)

― 바보눈 + 나살림 : 바라보고 보살피는 눈 + 나를 살리는 씨앗



곳 : 부산 거제동 〈책과 아이들〉과 함께

때 : 2025년 3월 16일 (일요일) 10∼12시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아나스타시아 1∼10》



얼개

ㄱ. 이오덕을 바라보면서 나를 보살피는 눈을 틔운다.

ㄴ. 드높은 봉우리가 아닌,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을, 아이한테 쉬운말로, 상냥하게 이야기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고서, 우리 손으로 적으면서, ‘나살림’으로 나아간다.

ㄷ. 이오덕을 읽어가면서 ‘나’라는 마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생각한다.

ㄹ. 여태 이오덕 책은 두루 읽었으니, “‘이오덕’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사랑으로 읽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줄거리 : 어린이가 푸름이를 지나고 젊은이에서 어른으로 (+ 2002 붉은물결)



  지난 2004년에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라는 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2002년에 네덜란드사람 히딩크 님이 우리나라 축구선수를 가르치고 이끌어서 ‘축구잔치’에서 선보인 놀라운 일을 풀어낸 꾸러미입니다. 이오덕 님은 ‘스포츠’를 아예 안 쳐다보는 분인데, 2002년 그해에는 온나라 젊은이가 한물결을 이루어 새롭게 목소리를 내어 모이는데,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도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커다란 밑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한겨레 밑넋이 이렇게 춤노래와 어울림과 어깨동무로 사랑을 그려서 심는 아름다운 몸짓인 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지요.


  히딩크 님이 쓴 《마이 웨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뜻밖이라면 뜻밖으로 ‘조선일보사’에서 펴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조선일보사에서 나온 《마이 웨이》라서 2002년부터 2024년에 이르도록 거들떠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다가, 2025년에 이르러 헌책집에서 300원을 치르고 사읽었습니다. 스물 몇 해가 지났으니 300원쯤으로 파는 곳이 있으면 사읽을 만하겠거니 여겼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이오덕, 길, 2004)를 읽으면서 삶·마음·물결·어깨동무가 우리 살림길하고 얽힌 대목을 엿보았습니다. 《마이 웨이》(거스 히딩크, 조선일보사, 2002)를 읽으면서 사람·마을·눈빛·생각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맺고 푸는가 하는 실타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두 가지 책을 나란히 읽어 본다면, 우리가 어떤 틀을 단단하게 세우면서 스스로 갇히는지 느낄 만합니다. 우리가 어떤 틈을 살그머니 내어 새롭게 싹틀 수 있는지 배울 만하고요.


  모든 사람은 몸에 씨앗을 품습니다. 사람이 몸으로 품은 씨앗은 혼자 싹틔우지 못 합니다. 나무도 사람과 같고, 헤엄이와 짐승도 나란합니다. 이따금 홑몸으로 암수씨를 함께 건사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기도 하지만, 굳이 이 별에서 살아가는 뭇숨결은 암몸과 수몸으로 갈라서 암씨와 수씨를 따로 건사합니다. 팔을 하나 잃으면 외팔을 다루어 빚거나 짓는 매무새를 익힐 수 있되, 사람몸은 처음부터 왼오른손에 왼오른팔에 왼오른발에 왼오른다리를 나란히 쓰는 결로 나옵니다. 나무로서는 뿌리와 가지가 땅밑과 땅바닥에서 나란하지요. 헤엄이와 짐승과 벌나비와 풀벌레 모두 왼오른을 나란히 다루어야 합니다.


  둘을 하나로 마주할 적에 비로소 ‘온’이요, ‘함께(하나)’라고 합니다. 따로 있는 둘을 하나로 맞이하기에 ‘알(알다)’이면서, ‘하늘(바람)’이라고 합니다. 지난 2002년 한물결은 2025년 외침길하고 다릅니다. 2002년 한물결에는 왼오른이 없이 한빛이었습니다. 한물결을 이룬 한빛을 북돋운 네덜란드 아저씨는 ‘졸업장·학맥·인기’를 따지지 않으면서 사람을 뽑았습니다. 네덜란드 아저씨는 ‘감독과 선수 모두 알맞게 쉬어야 한다’고도 밝혔습니다.


  대학교에서 도서관학과를 마쳐야 ‘도서관을 열어서 돌보’거나 ‘책집을 차려서 꾸릴’ 수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마쳐야 ‘글을 쓰’거나 ‘책이야기를 쓰’지 않습니다. 책을 사랑하며 마음으로 품기에 책숲(도서관)을 열거나 책집을 차립니다. 글을 사랑으로 헤아리기에 손수 쓰거나 읽으면서 마음을 나눕니다. 똑같이 달리거나 빨리 달려야 하지 않고, 첫째로 들어오거나 둘째나 셋째쯤 차지해야 하지 않습니다. 몇 째로 달리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달리는 마음을 누리면서 스스로 기뻐할 노릇입니다. 어느 책을 읽건 스스로 보금자리를 일구는 살림빛을 익힐 노릇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을 다진 뒤에는 ‘어느 길’과 ‘어느 일’과 ‘어느 말’을 다독이려는지 돌아보아야지요. 뜻이 훌륭하기에 아무 길이나 가도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착하기에 무슨 일이나 해도 되지 않습니다. 생각을 밝히기에 아무 낱말에나 얹어도 되지 않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살림말을 늘 되새길 줄 알아야 “어느 말을 혀와 손에 얹듯 스스로 사랑”입니다. ‘말씨’에 깃드는 마음이 아닌, ‘말씨’에 ‘뜻(주의·주장)’만 담으려고 하면, 그만 자그마한 말씨는 펑 터집니다.


  어린이는 많이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그저 신나게 뛰놀며 조잘조잘 수다꽃을 피울 노릇입니다. 푸름이는 어린이보다 더 배워야 하거나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푸름이는 차츰 철드는 빛을 몸마음으로 함께 느끼고 누리면서 새빛을 바라보고 심는 길을 익힐 노릇입니다. 젊은이는 아무 데나 부딪혀 봐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마음에 심은 꿈씨를 늘 바라보면서 어느 곳에서든 꿈빛을 그리는 매무새를 돌볼 노릇입니다. 어른은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라는 길을 지나온 슬기를 차근차근 풀어서 둘레에 나눌 노릇입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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