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아파트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전라남도 고흥으로 가는 네 시간 길에 거치는 광양시와 순천시에 아파트가 참 많다. 이곳에 이 아파트들은 언제부터 섰을까. 이곳은 지난날 어떠한 삶자리 삶자락 보금자리 사랑터였을까. 아파트가 서기 앞서, 제철소나 공장이 올라서기 앞서, 온갖 관공서나 회사나 가게가 들어서기 앞서, 이 멧자락과 들판과 냇가와 바닷가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숲은 없고 아파트가 있다. 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사라지고 아파트로 이루어진 숲이 생긴다. 숲이 아닌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손에 쥐고 어떤 이야기를 가슴으로 아로새길까. (4344.9.2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눈물방울 책읽기


 몸이 도무지 버티지 못하며 여관 방바닥에 등허리가 들러붙는다. 새 보금자리를 알아보려고 멧골집을 나선 지 나흘째, 짐을 풀어놓고 둘째 기저귀와 첫째 옷가지 들을 모두 빨래한 다음 저녁 늦게 겨우 잠든 무렵, 글조각 하나 적바림하려고 하지만, 눈이 뜨이지 않아 자리에 드러눕는다. 곯아떨어진다. 내 나이가 몇 살 더 젊다면 곯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한테 살림돈이 넉넉하다면 이렇게 몸이 퍼지도록 돌아다니지 않고도 좋은 보금자리를 쉬 얻을 수 있을까. (4344.9.2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녹슨 못이 된 솔로몬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26
윌리엄 스타이그 / 시공주니어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따사로운 보금자리를 찾습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1] 윌리엄 스타이그, 《녹슨 못이 된 솔로몬》(시공주니어,2000)



 네 식구가 짐을 꾸려 시골집을 떠납니다. 네 식구는 새 보금자리를 찾아 길을 나섭니다. 아직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지만, 새 터에 깃들면서 새 보금자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먼저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꾸민 다음 식구들이 옮겨야 한결 낫다고 하지만, 아버지 혼자 돌아다니면서 새 보금자리를 찾기까지 어머니와 아이들만 옛집에 남아 기다리도록 하기보다는 퍽 고되더라도 네 식구가 함께 움직이고 살피며 얼크러지는 삶이 좋다고 느낍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첫째를 낳으며 둘째를 낳기까지, 네 식구가 떨어져 지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으레 온 식구가 함께 움직입니다. 한 집에서 살고 한 방에서 함께 자며 한 밥상에서 밥을 먹습니다. 다른 집안 다른 식구는 어떠한지 모릅니다. 아마 다른 집안 다른 식구는 으레 아버지 쪽이 바깥으로 나가 돈을 번다고 하겠지요. 다른 집안 다른 식구는 아이들이 아버지 얼굴 보기 힘들 뿐더러, 아버지가 집에서 온갖 일과 살림을 도맡아 하지 않겠지요.

 시골에서 살다가 다른 시골로 옮기는 만큼 귀농이나 귀촌은 아닙니다. 더 깊으면서 조용한 시골자락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도시에서 더 낫다고 여길 만한 보금자리를 찾아 옮긴다면,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더욱 낫다고 여길 뿐 아니라, 땅과 집을 조그맣게나마 마련해서 오래도록 뿌리내릴 만한 자리를 찾아 옮긴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식구는 한동안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산 적이 있는데, 도시에서 살 때에는 나무를 심기 힘듭니다. 나무를 심어 열 해나 스무 해를 고이 건사하며 사랑하기 벅찹니다. 고운 흙이 애틋한 빈터가 없으니까요. 빌라나 아파트 같은 데에 살면서 나무를 심을 수 없어요. 꽃그릇을 마련해 꽃송이를 본다든지, 헌 상자나 스티로폼 상자에 푸성귀를 기를 수는 있으나, 볕이 잘 드는 툇마루가 딸린 집을 얻기는 퍽 힘들어요.

 충청도 시골에서 살다가 전라도 시골로 옮기려고 보금자리를 찾는 길에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러 나무를 골고루 심고 싶습니다. 씨앗으로 나무를 키우고 싶고, 어린나무를 얻어 예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자그마한 숲과 들판과 텃밭을 아기자기하게 일구고 싶습니다. 햇볕과 바람과 물과 바람을 살뜰히 아끼는 터를 돌보면서 내 마음을 함께 보살피고 싶습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서로 아끼면서 얼싸안을 푸근한 둥지를 가꾸고 싶습니다.


.. 솔로몬은 평범한 토끼였습니다. 다른 토끼들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바라기만 하면 언제든지 녹슨 못으로 변신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는 거예요. 솔로몬은 자기한테 그런 재주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  (5쪽)


 낮에는 구름과 파란 빛깔 하늘을 누리고 싶습니다. 밤에는 별이랑 달이랑 까만 빛깔 하늘을 누리고 싶습니다. 바람이 흐르는 낮하늘을 좋아하고 싶습니다. 미리내가 노래하는 밤하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자동차 오가는 소리는 듣기 싫고, 풀벌레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이웃집에서 낫질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와 함께 호미질을 하고 싶습니다.

 들꽃을 예쁘게 바라보고, 들풀을 따사로이 쓰다듬고 싶습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내 목숨은 흙에서 태어난 다른 목숨을 받아들여 살아가는구나 하고 언제나 느끼는 작은 집에서 살림을 꾸리며 잠을 자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빨래널기를 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뜻을 나누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맛보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사랑을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좋다 하는 대학교를 가야 하기에 중·고등학생 나이에 좁은 교실 좁은 책걸상에 갇혀 형광등 불빛에 눈이 나빠지는 아이가 되도록 내몰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좋다 하는 대학교에 굳이 안 가도 될 뿐 아니라, 입시지옥일 뿐인 중·고등학교조차 가야 하지 않습니다. 예비 수험생이 되도록 갖은 지식조각을 외우도록 이끄는 초등학교마저 아이한테는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오늘 하루를 사랑하는 아이요 어버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제 하루를 고맙게 돌아보는 아이요 어버이로 함께 살고 싶습니다. 다가올 앞날을 기쁘게 꿈꾸는 아이요 어버이로 지내고 싶습니다.

 살림돈이 조금 남는다면 책 몇 권 장만합니다. 살림돈이 벅차다면 팍팍한 가계부를 내려놓고 아이랑 자전거마실을 하거나 옆지기랑 멧길마실을 하면 됩니다. 따사롭고 시원스러운 가을 햇살 누리는 마당에 돗자리를 펼치고는 네 식구가 드러누우면 됩니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고 아버지는 책을 읽으며 첫째 아이는 뛰노는 한편 둘째 아이는 뒤집기를 하려고 용을 쓰면 됩니다. 좋은 하루이고 좋은 나날이며 좋은 보금자리로구나 하고 느낄 시골집이면 넉넉합니다.


..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종잡을 수가 없어. 여기 있나 싶으면 저기 있고, 그러다간 없어지고 …….”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솔로몬은 자기가 사람들을 어리벙벙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러웠습니다 ..  (11쪽)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 빚은 그림책 《녹슨 못이 된 솔로몬》(시공주니어,2000)을 읽습니다. 《당나귀 실베스타와 요술 조약돌》이랑 조금 비슷한 얼거리로구나 하고 느끼다가는, 얼거리는 비슷하달지라도 서로 다른 이야기요, 사뭇 다른 삶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술 조약돌은 누군가한테서 사랑을 받아야 하지만, 솔로몬은 스스로를 사랑합니다. 요술 조약돌은 외로이 기다려야 하지만, 솔로몬은 씩씩하게 견디면서 스스로를 북돋웁니다.

 솔로몬은 낡고 슨 작은 못으로 몸을 바꿀 줄 압니다. 재미나게 놀고 싶거나 아슬아슬한 일이 닥쳤을 때에 낡고 슨 작은 못으로 몸을 바꿉니다. 둘레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앞에서 새로운 모습을 선보입니다. 모두들 솔로몬한테 어떠한 솜씨가 있고 어떠한 빛이 있으며 어떠한 꿈과 사랑이 있는가를 잘 모릅니다. 솔로몬은 제 솜씨와 꿈과 사랑을 말없이 숨기며 혼자 즐깁니다. 둘레 동무나 살붙이가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지 못한다지만, 솔로몬이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걸지는 않습니다.

 솔로몬네 동무나 살붙이가 솔로몬을 조금 더 찬찬히 돌아보거나 살폈다면, 솔로몬이 무엇을 잘 할 줄 알거나 무엇을 좋아하거나 어떤 길을 걷고 싶은가를 옳게 깨달으며 따뜻하게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솔로몬네 동무나 살붙이는 솔로몬이 마음을 열며 다가오지 못한다면 깊고 넓게 얼싸안기 힘듭니다. 마음은 한쪽만 열 수 없으니까요. 서로 열 마음이고, 서로 하나될 마음입니다. 서로 포근하게 사랑할 사람이요, 서로 넉넉하게 아낄 목숨입니다.

 그림책 《녹슨 못이 된 솔로몬》을 찬찬히 넘기면서, 솔로몬이 살아가는 터전을 떠올립니다. 솔로몬이 낡고 슨 못으로 몸을 바꾸었을 때에 솔로몬을 사로잡아 ‘저녁거리로 삶아 먹으려 하는’ 녀석들 터전 또한 곰곰이 되새깁니다. 모두들 ‘도시’ 아닌 ‘숲속’에서 살아갑니다. 여린 목숨인 솔로몬도, 솔로몬 같은 여린 목숨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녀석들도 숲속에서 ‘고운 자연’을 한껏 받아들이면서 살아갑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아침햇살을 맞아들입니다. 나무와 풀과 꽃하고 이웃하면서 살아갑니다.

 범도 사자도 자연에서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토끼도 노루도 자연에서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개구리도 뱀도 자연에서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사마귀도 여치도 자연에서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잠자리도 모기도 자연에서 살아가는 목숨이에요.

 그러나, 우리들 사람만큼은 자연을 등지거나 자연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려 합니다. 자연이 사랑스러운 곳에는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곤 합니다. 자연이 따사로운 곳에서 태어나 자연을 마음껏 들이마시며 자라는 아이가 나날이 부쩍 줄어듭니다.


.. 하루 해가 저물고, 또 하루 해가 산을 넘어갔습니다. 솔로몬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백만, 천만, 억 ……. 가끔은 세상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어요. 비록 나무 벽에 박힌 몸이지만, 작으나마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게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죠 ..  (23쪽)


 숲속 작은 집에서 살더라도 보름달과 반달과 초승달을 못 느낄 만큼 무엇인가에 바쁠 수 있습니다. 복닥거리는 커다란 도시에서 지내더라도 길가 작은 풀과 꽃을 살가이 느낄 만큼 너그러울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뜨는 해하고 어제 하루 뜬 해는 같지 않습니다. 날마다 다른 해이면서 날마다 다르게 아름답습니다.

 날마다 자라는 아이는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어여쁩니다. 날마다 새 삶을 맞아들이면서 새 나날을 누리는 아이는 날마다 빛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따사로운 사랑이 태어납니다. 즐거운 보금자리에서 즐거운 사랑이 샘솟습니다. 슬픈 보금자리에서 슬픈 생채기가 덧납니다. 고단한 보금자리에서 고단한 눈물이 터져나옵니다. 좋은 꿈을 많은 돈보다 아낄 수 있기를 빌고, 좋은 넋을 높은 이름보다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4.9.26.달.ㅎㄲㅅㄱ)


― 녹슨 못이 된 솔로몬 (윌리엄 스타이그 글·그림,박향주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0.7.20./7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책읽기


 부산마실을 나온 네 식구가 보수동 헌책방골목 이곳저곳을 걸어서 다닌다. 책을 보고 가게를 보며 사람을 본다. 이른아침 아직 세 식구가 달콤하게 잠을 자는 동안 아버지 혼자 조용히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본다. 여관에서 가볍게 밥을 먹은 다음 기저귀가방만 들고는 밖으로 나온다. 보수동 골목집으로 이어지는 끝자락 빵집 못 미쳐 새로 문을 연 헌책방 앞에 선다. 이곳은 열쇠 만드는 일을 함께한다고 적힌 헌책방이다. 헌책방 이름은 ‘천지서적’.

 무척 낯익은 이름이요, 열쇠를 함께 만든다는 말마디를 보고는 얼른 들어가고 싶다. 설마 서울 성수동에 있던 헌책방이 이곳으로 옮겼을까.

 둘째를 품에 안고 걸어가는데, 헌책방 일꾼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다. 아, 맞구나. 서울에서 헌책방을 하시던 분이 맞다.

 이제 부산 보수동 헌책방 일꾼이 된 〈천지서적〉 사장님은 이야기한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내 가게도 아니고, 치우라 할 때에 비켜 줘야 하는데, 여기로 와서 내 집을 사고 가게를 열었으니까요, 앞으로 오래오래 이곳을 지키면서 할 겁니다.”

 2011년 5월에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쪽 끝자락에 살림집을 마련하고 골목길 쪽으로는 가게를 내셨단다. 좋다. 참 좋다. 작은 헌책방골목 작은 헌책방이 좋다. 작은 헌책방에서 일하는 작은 일꾼이 좋다. ‘내 가게’로 장만해서 헌책방골목을 지킬 수 있는 삶이 좋다. 헌책방골목 한켠을 이곳으로까지 이어 책손 발걸음을 맞이하는 삶이 좋다.

 서울에서는 달삯 내느라 빠듯할 수밖에 없다면, 부산에서는 집을 살 수 있을까. 부산에서 문화를 하거나 예술을 한다는 적잖은 사람들이 부산을 버리고 서울로 간다는 이야기가 ‘부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기관지 2011년 9월호 머릿글’로 적힌다. 보수동 헌책방골목 문화관 7층에 있는 책쉼터에서 이런 글 하나를 읽는다. 이러면서 헌책방 〈천지서적〉 일꾼을 나란히 생각한다. 부사문화재단 사람들은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을 ‘문화인’이나 ‘예술인’으로 여길까.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이 ‘부산 문화를 일구’거나 ‘부산 예술을 지킨’다고 느낄까.

 부산일보사에서 1980년대 첫머리에 실었던 글을 그러모아 1983년에 내놓은 《고향》이라는 두툼한 책을 두 권 본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깃든 작은 헌책방 〈글벗 2〉와 〈천지서적〉에서 이 두툼한 책을 본다. 부산과 경상남도에서 태어나 자랐던 사람 가운데 ‘어른이 되어 이름이나 돈이나 힘을 날린 여러 사람’들이 어린 나날을 돌이키면서 ‘오늘(1980년대 첫무렵)’하고 견주는 이야기가 촘촘히 실린 책이다. 1983년에 부산일보사에서 펴낸 이 책(나는 사진책이라고 느낀다)에 실린 사진은 1983년 언저리 ‘눈부시게 달라지고 새롭게 꽃피우는 경제성장’으로 해맑게 보인다는 부산 모습을 비춘다.

 스물여덟 해 지난 2011년 눈길로 1983년 모습을 어림한다. 2011년에서 1983년을 되새길 때에 이 같은 부산 모습은 어떤 삶자취로 아로새길 만할까. 부산일보나 부산시나 부산문화재단이나 부산땅 예술인 문화인 교육인 정치인 경제인 체육인 …… 들은 1983년에 나온 《고향》이라는 두툼한 책을 알까. 떠올릴까. 값어치나 빛줄기를 헤아릴까.

 부산에 닿아 만화쟁이 호연 님한테 전화를 건다. 호연 님은 요즈막에 내놓은 만화책 《사금일기》(애니북스)를 놓고 ‘팬 사인회’나 ‘독자만남’이나 여러 일로 몹시 바쁘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이야기꽃을 살짝 피운다. 만화쟁이 호연 님은 이야기 끝자락을 “제가 지킨 부산을 즐겁게 구경해 주세요.” 하고 맺는다.

 참말 그렇다. 부산은 호연 님이 지켰다. 호연 님 같은 사람들이 지켰다. 이름이 하나도 알려지지 않던 나날에도 부산에서 살았고, 이름이 조금 알려진 나날에도 부산에서 살아가는, 호연 님을 비롯한 숱한 사람들이 부산에서 살면서 부산문화와 부산예술을 알알이 일군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들은 부산에 깃들며 부산사람을 마주하면서 부산다운 헌책방을 지키는 동안 부산 책삶을 알뜰살뜰 보살핀다.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책읽기 향긋한 내음을 나누는 헌책방 〈천지서적〉이 사랑스럽다. (4344.9.24.흙.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1-09-25 16:50   좋아요 0 | URL
음,성수동에 있던 천지 서적이 부산 보수동으로 내려갔군요.아마 비싼 임대료때문에 그런가 봅니다.사실 서울은 비싼 임대료때문에 헌책방 하기가 힘들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아마 이젠 서울보다 부산이 헌책방 수가 더 많지 않을까 싶네요ㅜ.ㅜ
 



 헌책방 책읽기


 책은 물건이 아닙니다. 책은 책입니다. 쌀은 물건이 아닙니다. 쌀은 쌀입니다. 쌀은 쌀이지만 ‘물건을 사고팔듯’ 쌀도 사고팔 수 있습니다. 볍씨를 심어 모를 낸 다음 모를 옮겨심고는 석 달이나 다섯 달을 기다려 나락을 베어 얻은 쌀은, 논일꾼만 먹을 밥이 되지 않습니다. 논을 일구지 않는 사람도 돈을 치러 장만해서 먹을 밥이 됩니다. 책 또한 책방에서 사고팔지만, ‘사고판대서 모두 물건이라 여길’ 수 없습니다. 책은 새 것이건 헌 것이건 종이에 아로새진 이야기를 마음으로 아로새기면서 내 삶을 새롭게 북돋우거나 일구는 길동무 구실을 합니다.

 책은 내 주머니를 털어 기쁘게 장만한 다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은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찾아가서 가만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읽고 내려놓아도 책읽기입니다. 반드시 장만해서 내 집 내 책꽂이에 꽂아야 책읽기가 아닙니다.

 읽기와 훑기는 같지 않습니다.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훑는 일은 책읽기가 아닙니다. 훑기이자 살피기입니다. 내 집 내 책꽂이에 건사할 만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입니다.

 주머니를 털어 장만하든 말든, 손에 쥐는 동안 내 마음에서 무언가 뭉클하게 샘솟는 이야기가 있어야 책읽기가 됩니다. 서서 한 쪽을 읽든 선 채로 백 쪽을 읽든, 이렇게 읽으면서 내 넋을 곱게 돌보는 길을 헤아린다면 책읽기가 됩니다. 도서관에서는 제아무리 많다 싶은 책을 읽어도 ‘값을 치르지 않’아 고맙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서거나 앉아 책을 읽다가 내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몸둘 바를 모르면서 ‘이 책 얼마예요?’ 하고 묻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책 뒤에 찍힌 값대로 돈을 치릅니다. 헌책방에서는 헌책방마다 다 다른 값을 치릅니다. 같은 헌책이라 하더라도 헌책방 한 곳에 스며들기까지 거친 길은 다 다릅니다. 어느 책은 무척 거친 길을 거칩니다. 어느 책은 무척 고운 길을 거칩니다. 어느 책은 얄궂은 책임자한테서 버려지는 바람에 잔뜩 구겨지거나 먼지와 때와 파리똥을 뒤집어씁니다. 어느 책은 사랑스러운 책임자가 예쁘게 들고 와서 헌책방에 내다 팔았기에 무척 정갈합니다. 여느 책이든 드문 책이든 헌책방마다 똑같이 값을 매길 수 있지만, 다 다른 사람이 일구는 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다 다른 책을 다 다른 눈길로 바라보면서 다 다른 값을 매깁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마당에서는 물건이란 다 같은 값일 테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누리집을 뒤지면서 ‘책값’이 아닌 ‘인터넷 최저가’를 따질 테니, 책을 책으로 여기지 못하고 물건으로 다루면서 ‘인터넷 최저가’에 길들고 만다면,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헌책방마다 같은 책을 놓고도 책값을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 그만 어리둥절할는지 모릅니다. 뭐 이런 주먹구구가 다 있나 여길는지 모르고, 바가지가 아니냐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책은 이야기입니다. 책이라는 종이에 아로새긴 이야기가 먼저 하나 있습니다. 처음 새책으로 찍을 때에는 모든 책은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새책이 다 다른 사람한테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팔려서 다 다른 책임자가 다 다른 넋으로 다 다른 매무새로 읽을 때에는 ‘다 같은 새책’이 ‘다 다른 책’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다 다른 책’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책임자가 더는 이 책을 돌볼 겨를이 되지 않아 헌책방에 내놓는다면, 이때부터는 ‘다 다른 헌책’이 됩니다.

 새책 소식을 듣고 기쁘게 장만해서 읽은 사람이 내놓은 책, 신문사 보도자료로 들어갔다가 한 주 만에 버려진 책, 출판사 일꾼이나 글쓴이가 당신한테 고맙다고 여긴 이한테 선물했다가 슬그머니 버려진 책, 기쁘게 읽은 책이지만 집을 옮기거나 나라밖으로 떠나며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해서 헌책방으로 들어온 책, 책임자가 숨을 거두면서 집식구가 헌책방으로 몽땅 내놓은 책, 책임자가 숨을 거두어 대학도서관에 모든 책을 바쳤으나 대학도서관은 책 놓을 자리가 모자라다며 몰래 내다 버리는 통에 헌책방 일꾼이 폐휴지 모으는 곳에서 건져내어 어렵사리 되살린 책, 폐휴지와 함께 재활용쓰레기로 버려졌다가 헌책방 일꾼이 가까스로 되살린 책, 쌈짓돈 그러모아 장만해서 읽고 예쁘게 건사하다가 살림돈이 바닥나는 통에 조금이나마 돈을 얻으려고 책임자가 내다 팔아 헌책방으로 들어온 책, 내 가난한 지난날을 곱씹으면서 오늘 가난하게 살아가며 좋은 책 하나 만나고 싶어 할 젊은 가난한 넋이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값싸게 장만하기를 빌며 기꺼이 내놓았기에 헌책방 책시렁에 꽂힌 책, …… 모든 책은 똑같은 책이지만, 모든 책은 모두 다른 책입니다. 모든 책은 처음 새책방에 꽂힐 때에는 다 같은 이야기를 거느리지만, 모든 책은 새책방을 떠나 헌책방으로 들어올 때에는 모두 다른 이야기를 다스립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똑같은 책을 여럿 장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부산에 있던 인문사회과학책방에서 팔던 자국이 남습니다. 이 책은 이름난 소설쟁이 아무개 이름이 적힙니다. 이 책은 신문사 아무개 기자한테 선물한 자국과 드림 도장이 찍힙니다. 이 책은 이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끄적인 일기가 깃듭니다. 다 같은 줄거리를 종이에 찍은 책이지만, 다 같은 줄거리를 읽는 사람은 다 다릅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이야기를 살아내면서 책 하나에 수많은 삶과 눈물과 웃음과 죽음을 아로새깁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읽거나 장만할 때에는 물건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는 물건을 사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웃 헌책방하고 ‘값 견주기’라든지 ‘흥정’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흥정이란, 물건, 곧 공산품을 살 때에 하는 일입니다. 쌀을 사거나 푸성귀를 살 때에는 흥정을 할 수 없습니다. 고운 목숨을 장만해서 내 목숨을 사랑하는 먹을거리를 장만하는데 흥정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심어 내가 기르지 못한 푸성귀를 돌보고 길러서 이렇게 내놓아 준 분한테 고마울 뿐입니다. 내 마음밭을 일구고 내 생각밭을 가꾸며 내 삶밭을 꾸릴 새 기운을 북돋우는 고마운 책을 장만할 때에는 ‘책을 살’ 뿐 ‘돈값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낯과 이름을 모르는 누군가 아끼며 사랑했을 책 하나를 나는 얼마나 아끼며 사랑할 만한 마음그릇인가를 돌아보면서 헌책방 앞에 서서 책 하나 곰곰이 읽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면서 주머니를 뒤적입니다. 나는 헌책방으로 책을 장만하러 가는 길에 내 지갑에 빳빳한 종이돈을 마련합니다. 헌 돈을 내건 새 돈을 내건 다를 구석 없다 할 테지만, 고마운 마음밥을 베푸는 이음고리이자 쉼터인 헌책방 일꾼한테는 ‘되도록 빳빳한 새 돈’을 건네고 싶습니다. 책 몇 권 장만하고는 간이영수증을 받습니다. 헌책방 일꾼이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는 숫자를 읽으며, 이 영수증을 고이고이 건사해서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크면 하나하나 보여주자고 생각합니다. (4344.9.23.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