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놀이 어린이


 누워서 지내는 동생한테 거울을 들고 옆에 앉아 들여다보라고 한다. 우리 집은 거울을 따로 걸지 않아서, 어머니나 아버지나 아이나 거울을 볼 일이 없다. 작은방 한쪽 구석 옷장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딱히 거들떠보지 않는다. 첫째 아이가 이 거울을 용케 꺼내어 제 동생한테 보여준다. 갓 백날을 지난 둘째는 누나가 보여주는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어떻게 느낄까. 그저 곁에서 종알종알 말을 걸며 함께 노는 누나가 좋을 뿐일까. (4344.9.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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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사이로 달


 저녁부터 새벽까지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구름이 잔뜩 끼었기 때문에 보름달 환한 빛살이 멧골자락 구석구석으로 포근히 내려앉지는 못하지만, 잔뜩 낀 구름인데도 마당이 퍽 밝다 싶도록 환하게 비춘다. 며칠 내내 비가 뿌리거나 찌푸렸지만, 이렇게 동그랗고 마알간 모습을 살며시 보여주고는 한가위를 마무리짓는다. 돌이켜보면, 꼭 한가위가 아니더라도 보름달은 다달이 한 차례 찾아든다. 설이나 한가위 무렵 보름달이 아니더라도 다달이 보름달을 마주할 수 있다. 가장 빛나는 보름달이라서 가장 아름다운 보름달은 아니요, 가장 덜 밝다는 보름달이라서 심심하게 지나칠 만한 보름달이 아니다. 나는 한 해 내내 보름달과 초승달과 반달을 모두 즐기면서 한가위 보름달도 한가위 보름달대로 고맙게 올려다보면서 좋았다. (4344.9.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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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홀릭's 노트 - 게으른 포토홀릭의 엉뚱하고 기발한 포토 메뉴얼
박상희 지음 / 예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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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똑같은 사진입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44] munge, 《포토홀릭's 노트》(예담,2009)


 어떤 사진기를 쓰든 사진은 똑같은 사진입니다. 기계마다 손맛이 다르다 하겠지요. 그런데 손맛이 달라진대서 사진맛이 달라지는 일은 없어요. 내 삶이 어떻게 흐르도록 가누느냐에 따라 내 삶맛·사진맛·손맛·사랑맛이 거듭날 뿐입니다.

 박상희(munge) 님이 일군 사진책 《포토홀릭's 노트》(예담,2009)를 읽다 보면 “멋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틈에 있자니 내 손에 들려 있는 초라한 카메라가 창피했다. 손이 부끄러웠다(17∼18쪽).”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온누리에는 멋진 사진기나 초라한 사진기가 따로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오직 사진기 하나만 있습니다. 내 사진기를 멋지다고 여기면 내 사진기는 언제나 멋집니다. 내 사진기를 초라하다고 여기면 내 사진기는 늘 초라해요.

 곰곰이 살피면, 《포토홀릭's 노트》를 일군 박상희 님은 스스로 당신 삶을 초라하다고 느끼는 나머지 당신이 손에 쥔 사진기를 초라하다고 여기고 맙니다. 이리하여 이 초라하다고 여긴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오래도록 잊었고, ‘초라하다’고 여기며 오래도록 묵힌 사진을 오랜만에 찾아서 들여다보니 ‘뜻밖에 꽤 괜찮은 모습’이 나왔다고 느낍니다.

 이러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스스로 멋지다고 여긴 사진기’에서 ‘스스로 초라하다고 여긴 사진기’로 찍은 사진하고 똑같은 사진이 나왔다면 어찌 생각했을까요. ‘뭐야, 멋진 사진기인데 사진이 왜 이 모양이지?’ 하고 생각했을까요. ‘이 멋진 사진기로는 이런 사진이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을까요.

 사진기마다 느낌이 달라, 어느 사진기를 쓰느냐에 따라 사진빛이 달라집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느낌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사진에 싣는 내 이야기와 내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멋진 사진기를 쓰든 초라한 사진기를 쓰든, 사진기를 쥔 나는 내 이야기와 내 삶을 내 사진기를 거쳐 내 사진으로 빚습니다. 박상희 님은 틀림없이 ‘박상희 사진’을 찍을 뿐인데, 《포토홀릭's 노트》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박상희 사진’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해요.

 《포토홀릭's 노트》는 온갖 사진기를 두루 만지면서 사랑했던 사진 즐김이 발자국을 보여주는 책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루 만지며 사랑했다’기보다는 ‘내 사진이 어떠한 길로 예쁘게 걸어가는가’를 좀처럼 깨닫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줄타기를 하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박상희 님은 박상희 사진을 찍으면 될 뿐입니다. ‘박상희 아닌 브레송인 척’하거나 ‘박상희 아닌 김기찬인 척’하거나 ‘박상희 아닌 강운구인 척’하거나 ‘박상희 아닌 쿠델카인 척’할 까닭이 없어요. 잘 찍는 사진이 없고 못 찍는 사진이 없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사진에 내 이야기를 실을 수 있느냐 없느냐만 다릅니다. 사진에 내 삶을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만 달라요.

 “문제는 단순히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기분이, 시선이, 설렘이 달라진다는 것에 있다(175쪽).”는 말처럼, 어느 사진기를 손에 쥐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포토홀릭's 노트》라는 사진책이 수많은 사진기를 만지작거린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런 사진기를 만지작거린들 저런 사진기를 만지작거린들 ‘사진 느낌’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하나이거든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에 따라, 이 사진기를 쓸 때이건 저 사진기를 다룰 때이건, 사진마다 담기는 느낌하고 이야기는 엇비슷하거나 똑같습니다. 굳이 사진기 얼거리나 발자취를 꼼꼼히 알아보며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손수 사진을 만드는 이야기를 넣지 않아도 됩니다. 박상희 님은 박상희 님이 ‘즐긴 사진’을 그야말로 ‘즐겁게 풀어놓’을 때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없는 포커스 아웃은 잘못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실수였건 우연이었건 의도하지 않은 포커스 아웃은 그 나름의 멋과 의미가 있다(231쪽).”라든지 “한마디로 맛이 다르다. 컬러로 바라본 세상의 맛과, 흑백으로 바라본 세상의 맛이, 그 시선이, 그 매력이, 그 본능이 모두 다르다(349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이 사진책 《포토홀릭's 노트》가 빛납니다. 박상희 님 나름대로 좋아하는 사진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박상희 님 나름대로 즐긴 사진을 보여주면 됩니다.

 이런 사진기로는 이런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을 하거나 사진을 보여줄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누군가는 ‘이런 사진기를 손에 쥐고 저런 사진을 얼마든지 얻으’니까요. 필름도 그래요. 이 필름을 쓴대서 꼭 ‘이런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 필름을 쓰면서 ‘저런 사진을 일굽’니다.

 사진은 똑같은 사진입니다. 필름사진을 찍든 디지털사진을 찍든 사진은 늘 똑같은 사진입니다. 값나가는 장비를 쓰건 값싼 장비를 쓰건 사진은 언제나 똑같은 사진입니다. 이름난 전문 사진쟁이가 찍건 오늘 갓 사진기를 마련한 사람이 찍건 한결같이 똑같은 사진입니다.

 박상희 님은 ‘사진기’라는 굴레에 얽매이는 바람에 정작 박상희 님 스스로 좋아하면서 즐긴 ‘사진이란 무엇이었지?’ 하는 이야기는 거의 들려주지 못하고 맙니다. 부디, 맨 처음으로 사진기를 손에 쥐어 내 사진 한 장 찍던 날을 떠올리면서 사진삶이 왜 아름다운 삶으로 아로새겨지는가를 적바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4.9.14.물.ㅎㄲㅅㄱ)


― 포토홀릭's 노트 (박상희 글·그림·사진,예담 펴냄,2009.12.1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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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선언 - 장애아 셋을 둔 한 엄마의 좌충우돌 육아 에세이
사사키 시호미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책읽기 삶읽기 76] 사사키 시호미,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한울림스페셜,2008)



 살구나무는 모두 살구나무입니다. 아직 꽃이 안 피는 어린나무여도 살구나무입니다. 우람하게 자라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도 살구나무입니다. 어디가 아파서 꽃을 도무지 피우지 못하더라도 살구나무입니다. 벼락을 맞아 줄기가 두 동강이 나더라도 살구나무예요. 가지를 잘라 장작으로 쓰려 하더라도 살구나무입니다. 베개나 방망이로 쓰려고 베어서 다룰 때에도 한결같이 살구나무입니다.

 잣나무도 언제나 잣나무입니다. 굴참나무도 늘 굴참나무입니다. 벚나무나 느티나무도 노상 벚나무나 느티나무요, 뽕나무나 배나무도 고스란히 뽕나무나 배나무예요.

 새 목숨을 받아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언제나 우리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하고 견줄 까닭이 없습니다. 키를 견주거나 몸무게를 견주거나 얼굴을 견줄 까닭이 없습니다. 지능지수나 시험성적을 견줄 까닭 또한 없습니다. 책을 얼마나 읽었다든지, 나중에 돈을 얼마나 벌 만하다든지 하는 따위를 견줄 까닭이란 없어요. 오직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맑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나한테 목숨을 베푼 내 어버이는 늘 우리 어버이입니다. 우리 어버이가 잘난 분이건 못난 분이건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어버이가 이름난 분이건 이름없는 분이건 따질 까닭 또한 없어요. 우리 어버이한테 돈이 많건 적건 조금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을 맺어 나를 아이로 맞아들인 삶을 돌아보면서 즐길 우리 어버이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나하고 형이랑 차분히 말을 섞으면서 ‘집과 학교와 동네에서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조차 나누지 않은 일을 서운했다고 여깁니다. 내 아버지한테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든지, 내 아버지가 일찍부터 자가용을 몰지 못했다든지, 내 아버지가 뒤늦게 대학원을 마쳤다든지, 내 아버지가 가난한 집안 맏아들이었다든지 하는 대목에서 서운하거나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가 집에서 더 느긋하게 지내지 못했다든지, 내 아버지가 대학교 졸업장에 너무 얽매인다든지, 내 아버지가 넓거나 커다란 집에 너무 이끌린다든지 하는 대목이 서운하거나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괴롭습니다. 살림돈이야 어떠하든 예쁘게 살아가면 즐거워요. 이름값이야 어떠하든 착하게 살아가면 기뻐요. 남들 눈길이야 살피지 말고 우리 살림과 터전과 꿈을 고이 돌보면 웃음꽃이 피어요.


.. 1989년 12월 9일, 우연인지 필연이었는지 ‘장애인의 날’에 큰아들 요헤이가 태어났다. 고교 시절 어떤 강연회에서, “여러분들 가운데 분명 몇 명인가는 장애아의 어머니가 될 겁니다. 반에 한 명은 되겠지요.” 하는 말을 들었다. 학창시절의 기억이라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는 나였지만, 왠지 이 대목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나만 그런가 했더니 다른 친구들도 지금껏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충격이었기 때문일까. “아, 장애아 엄마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 거야. 난 절대 못 키워. 엄마한테 키워 달랠 거야!” 강연회가 있던 날 하교하는 버스 안에서, 친구 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때 친구들 중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던 걸 보면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혼자서 키울 거야.” 나는 약간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  (9∼10쪽)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더 똑똑해지거나 더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더 넉넉해지거나 더 즐거운 나날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더 많이 날려야 더 기뻐지거나 더 예뻐지지 않습니다.

 그림쟁이가 훌륭한 작품을 더 많이 남겨야 하지 않습니다. 글쟁이가 훌륭한 글을 더 많이 써야 하지 않습니다. 노래쟁이가 훌륭한 노래를 더 많이 불러야 하지 않습니다. 춤쟁이가 훌륭한 춤을 더 많이 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제 삶을 사랑하면서 아끼는 나날이면 넉넉합니다. 저마다 제 삶을 믿으면서 고마이 여기는 나날이면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일 뿐이고,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일 뿐입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일 뿐이며, 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일 뿐이에요.

 내 옆지기가 국회의원이나 판·검사가 되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없고, 이렇게 바라는 일은 참 덧없습니다. 내 아이들이 이름난 대학교를 마쳐서 돈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되기를 꿈꿀 수 없으며, 이렇게 꾀한다면 참 바보스럽습니다. 나 또한 내 옆지기한테는 서로 어깨동무할 길동무여야지, 이 몫을 넘어선 무언가는 할 수 없습니다. 더 큰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나, 굳이 더 작게 무언가가 되지 않습니다. 작아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크다고 덜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작든 크든 많은 적든 언제나 같습니다.


.. 장애가 있든 없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이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거기 있기만 하면 된다 … 친구는 만드는 게 아니라 생기는 거였다. 그리고 돕고 도움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는 그냥 친구였다 ..  (16, 42쪽)


 아들을 셋 낳았는데, 세 아들이 모두 ‘장애아이’였다고 하는 일본 아줌마 사사키 시호미 님이 쓴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한울림스페셜,2008)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쥘 때에도 생각했습니다. ‘왜 한국땅 장애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이만 한 책을 스스로 쓰지 못할까?’ 하고. 우리 나라에서도 5천만에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1/10이 장애를 안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곧, 우리 나라에는 5백만에 이르는 장애 안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5백만 가운데에는 할머니도 있고 갓난쟁이도 있을 테며, 푸름이나 어린이도 있겠지요. 여느 아저씨나 아줌마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 삶을 스스럼없이 적바림하면서 기쁘게 나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어쩌면, 출판사에서 우리 나라 우리 이웃 이야기는 책으로 안 펴내는지 모릅니다. 너무 가까운 이웃이라 누군가는 마음이 다칠까 봐 이웃나라 이야기만 책으로 펴내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 아이한테 장애가 있다거나 내 어버이한테 말썽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서로한테 생채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감추거나 덮거나 숨길 때에 생채기가 남을 뿐 아니라 크게 도집니다.

 돈이 없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슬픔이나 괴로움이 아니듯, 장애 있는 아이가 어버이한테 슬픔이나 괴로움이 아닙니다. 번듯한 집이 없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아픔이나 고단함이 아니듯, 지능지수나 시험성적이 떨어지는 아이가 어버이한테 아픔이나 고단함이 아니에요.


.. 다이는 지능이 높아서 히로시마에서는 치료교육 수첩을 받을 수 없다.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장래 샐러리맨은 꿈도 못 꿀 다이인데 사회로부터 보호마저 받을 수 없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다이가 제일 불안하다 … 깁스를 한 상태였으므로 모처럼의 대형욕실은 포기해야만 했다. 먹는 즐거움도 없다. 그래도 나는 3년 전 수학여행에서 신칸센을 보고 기뻐했던 요헤이를 또 여행 보내고 싶었다. 요헤이는 여행을 즐겼다. 담임선생님과 간호사도 입을 모아 말했다. “표정이 달라졌어요. 안 보냈으면 서운할 뻔했죠.” ..  (81, 126쪽)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을 쓴 일본 아줌마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삶을 아주 보드랍게 풀어놓습니다.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덮거나 가릴 까닭이 없습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 아이를 맞아들이며 보낸 나날을 고마이 돌아보면서 포근히 이야기자락을 펼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립니다. 세 아들 어머님인 사사키 시호미 님이 당신 세 아들을 낳아 기른 이야기나, 당신 어버이나 당신 옆지기 이야기와 삶을 돌아볼 때에, 사사키 시호미 님네 세 아들은 ‘갓 태어나 아기로 지낼 때’에는 장애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두 어버이나 두 어버이네 어버이 가운데 아이들한테 장애 유전자를 물려줄 만한 사람이 안 보입니다. 그야말로 갑작스레 난데없이 세 아이가 똑같이 장애를 떠안는데, 다 다른 장애입니다.

 옆지기가 문득 말합니다. “여보, 이 아주머니네 아이들은 예방주사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거의 틀림없습니다. 세 아들 어머니인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세 아들을 모두 병원에서 낳은 듯하고, 병원 처방을 잘 따릅니다. 더구나 ‘아픈 세 아들’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사사키 시호미 님은 도시에서 지내는 삶에 익숙합니다. 세 아들을 비롯한 집식구하고 어떤 밥을 차려서 먹는가 하는 이야기는 책에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만, 이분 집이 생협에서 먹을거리를 댄다든지 가공식품을 멀리한다든지 하는 이야기 또한 한 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장애아이를 낳아도 혼자서 키우겠어’ 하고 되뇌는 마음가짐은 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아이를 돌보아야 좋은가 하는 대목까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수은을 넣지 않은 예방주사’를 스스로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놓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수은을 안 넣은 예방주사’를 만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며, 모든 예방주사에 수은을 안 넣지 않습니다. 더구나, 수은 한 가지를 안 넣었다뿐, 다른 무시무시한 화학성분은 그대로 있으며, 수은을 갈음한 화학성분은 수은 못지않게 무시무시합니다. 갓난쟁이한테 수은을 몸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는지는 사람들 스스로 옳게 깨달아야 합니다.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비롯한 무시무시하다는 수많은 화학약품을 갓난쟁이 몸에 주사바늘로 집어넣을 때에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이야기는 아이 어버이들이 스스로 참다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장애아이를 ‘혼자 키우겠다’고 다짐했다지만, 정작 장애가 큰 아이는 시설에 넣습니다. 아이들은 병원 처방을 많이 자주 받습니다. 책에도 나오는데, ‘장애를 낫게 해 주는 약이 있으면 먹이고 싶다’는 대목이 보입니다. 글쓴이는 ‘병·의학 화학약품’에 지나치게 기대며 살아갑니다. 장애아이라 하건 비장애아이라 하건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은 예쁘지만, 장애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아이와 어떻게 어디에서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은 거의 돌아보지 못해요.

 이는 일본 아닌 한국이라고 조금도 낫지 않습니다. 아니, 한국은 더 끔찍합니다.

 애써 대학교까지 마친 똑똑한 ‘애 엄마’한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사랑’ 한길을 걸어가라 하기 참 어렵습니다. 더욱이, 애써 대학교까지 마쳤을 뿐 아니라 가부장 사회에서 집안 기둥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애 아빠’한테 회사일을 접거나 회사를 시골로 옮겨서 아이들하고 더 자주 더 오래 어울리면서 집살림을 함께 건사하자고 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장애도 못 말리는 밝은 엄마가 즐겁다고 외치는” 이야기책을 덮습니다. 글쓴이요 어머니인 사사키 시호미 님이 얼마나 느끼시는가 궁금하지만, ‘장애아이’라 하는 세 아들은 스스로를 슬프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장애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나 이웃사람이 슬프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괜히 해맑거나 밝아야 하지 않습니다. 꼭 씩씩하거나 굳세어야 하지 않아요. 힘들 때에는 쉬면 돼요. 아플 때에는 눈물을 흘리면 돼요. 아이한테 장애가 왜 생겼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해요. 장애가 있고 없고가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장애가 생겼는가를 올바르게 깨달아, 이 아이를 참답고 착하게 사랑하면서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어머니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가 너무 늦게 깨달으면, 아버지는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못 느끼고 말아요. 부디,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장애아이 셋을 잘 사랑하면서 얼싸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듯, 비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4344.9.14.물.ㅎㄲㅅㄱ)


―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 (사사키 시호미 글,김은진 옮김,한울림스페셜 펴냄,2008.5.16./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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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맞추어 나올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마지막 교정 교열을 본다. 이제 다 끝냈고, 출판사 일꾼한테 편지를 띄웠다. 눈이 아프고, 몸이 무겁다. 이제 얼른 자야지. 명절에도 이 피디에프 파일을 읽느라 아주 죽어났다. 

예쁜 옷 입고 예쁘게 태어날 고운 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아... 표지 시안이 나오면 여기에서 골라뽑아야 하지... 에궁...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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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11-09-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

파란놀 2011-09-14 09:12   좋아요 0 | URL
저도 알맞게 나와서 내 둘레 고마운 분들한테
좋은 말삶을 나누어 주고 싶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