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다


 사람들이 모두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서울시장이니 무어니 하고 골머리를 앓지 말고, 조용히 내 논밭을 사랑하고 내 멧자락과 바다와 냇물을 아끼면서, 내 살붙이하고 마음과 사랑을 나누는 호젓한 시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얼마나 기쁠까.

 서울이 텅 비면 좋겠다. 자가용과 아파트와 높은건물 모두 서울에 남기고, 튼튼한 몸과 마음만 단단히 여민 채 시골로 가서 호미를 잡고 괭이를 잡으며 낫을 붙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서울시장 후보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며 땀흘리는 분들 땀방울과 다리품이 너무나 아깝다.

 출판사는 서울에 몰렸고, 책은 서울에서 가장 많이 팔리지만, 막상 서울에서 살아가면 ‘책이라는 물건’은 잔뜩 거머쥘 수 있어도 ‘책이라는 마음밥’은 하나도 곰삭이지 못한다. 좋은 쇠붙이로는 골프채 아닌 호미를 만들고, 좋은 돈과 품과 땀으로는 좋은 흙을 일구면서 잠에서 깰 수 있기를. (4344.9.17.흙.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9-17 16:07   좋아요 0 | URL
그러면 좋겠죠, 그리고
이왕이면 한국이 그럴 때 타국에서 우리를 해치지 않도록 지구 전체가 그렇다면 좋겠어요.
결국 저와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도시인은 손을 놓지 못하나봐요, 참 어리석죠... ㅠㅠ

파란놀 2011-09-17 16:54   좋아요 0 | URL
어릴 적부터 '스스로 살기'를 배우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살기를 배우지 못한 몸과 마음을 깨닫지 못해서,
어떻게 마음과 몸을 고쳐서 거듭나도록 이끌어야 하는가로
나아가지 못해요.

그래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인문책을 읽으면 안 돼"요.
인문책은 거의 한결같이 '지식을 다루는 책'이지,
'행동으로 나아가는 책'이 아니거든요.

인문책을 읽어야 나라가 살거나 바뀌지 않아요.
생각을 고치면서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흙을
아끼는 길로 나아가야 나라가 살거나 바뀌어요...
 



 글을 쓰다


 새벽 한 시 사십이 분에 깨다. 둘째 기저귀를 살피고 나도 쉬를 한 다음, 한가위 지난 며칠 뒤까지 밝고 맑은 달빛을 느끼고 나서, 조용히 다시 잠들 만하다. 그러나 셈틀을 켠다. 무언가 한 줄이라도 끄적이고 싶다. 아이들이 새근새근 잘 때가 아니면 글을 쓸 수 없다. 삼십 분쯤 지나는 동안, 머리가 도무지 맑아지지 않아 글쓰기를 못하겠다고 느낀다. 아무래도 잠을 자야겠다고, 오늘은 글을 못 써도 어쩔 수 없겠다고 여긴다. 이러다가 갑작스레 마음에 불이 켜지고, 이윽고 두 시간 즈음 더 불꽃을 지피면서 글을 쓴다. 더없이 엉터리이고 그지없이 바보스러운 글과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일기를 적바림하는 공책에 몇 줄 끄적인다. 참 그렇다. 참말 엉터리이구나 싶은 사진을 볼 때면, 나도 이런 엉터리이구나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똑바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니까, 깊은 새벽녘, 더없이 엉터리인 글을 하나 읽고, 그지없이 바보스러운 사진 몇 장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타올랐다. 이 불길을 한동안 살리고 싶어 보리술 한 모금을 홀짝거린다. 누구는 담배 없이는 글을 못 쓴다 하는데, 나는 맨 마음으로 쓸 글은 다 쓰지만, 잠이 쏟아지는 힘겨운 새벽녘에는 보리술 한두 모금 홀짝이면서 몸에 불을 지핀다. 고마이 붙잡은 글발을 마무리지을 때까지 몸이 버티어 줍사 하고 비손을 드리듯, 사랑스레 나누고픈 글줄을 꽃피우기까지 마음이 따사롭게 이어가 줍사 하고 절을 하듯, 땅콩 몇 알과 보리술 한 모금. (4344.9.17.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사평론 알베르 카뮈 전집 20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서로 아끼면서 활짝 웃는 살붙이
 [책읽기 삶읽기 78] 알베르 카뮈, 《시사평론》(책세상,2009)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는 일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 또한 대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목숨은 이웃인 사람을 좋아하면서 살아갈 목숨이니까요. 아주 마땅하면서 보드라운 흐름인 ‘좋아하기’와 ‘사랑하기’라고 느껴요.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 팔짱을 낀 채 걷고 싶습니다. 좋아하니까 살을 부비고 싶기도 하고, 마냥 바라보고 싶기도 하겠지요.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수다를 늘어놓고 싶기도 합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이제껏 생각조차 하지 않던 이야기를 끝없이 털어놓아도 고마우면서 즐겁게 귀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삶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퍽 많은 사람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닥 좋아하지 않으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내거나 학교를 다닙니다.

 나는 이 나라를 딱히 사랑하지 않습니다만, 딱히 밉게 여기거나 나쁘게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목숨을 사랑하고, 내 목숨처럼 내 이웃 목숨을 사랑할 뿐이라고 느낍니다. 나라는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아요. 정부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정부가 무너지거나 서는 일은 나라가 무너지거나 서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살림집 어머니나 아버지 한 사람이 죽는 일이 곧 나라가 죽는 일이요, 여느 살림집에 아기가 태어나는 일이 바로 나라가 사는 일이에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제대로 힘을 냅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대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신나게 기운을 냅니다. 다른 사람 누구나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참말 힘이 나고 기운이 샘솟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돈을 벌어야’ 하거나 ‘이름을 지켜야’ 하거나 ‘힘을 누려야’ 하기 때문에 한다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얼마나 슬플까요. 얼마나 안타까이 삶을 버리는 셈이 될까요.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벌어야 할 돈은 그닥 많지 않아요.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벌어야 할 돈은 따로 없어요. 우리는 돈을 벌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면서 살아갈 사람이거든요.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내 살림을 일굴 만한 돈을 벌면 돼요.


.. 우리의 욕심은-많은 경우 소리 없는 것이었기에 그만큼 더 내심 깊은- 그 신문들을 돈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대중을 그들이 내면에 지닌 최상의 것의 높이로 끌어올릴 만한 어떤 어조와 진실성을 그 신문들에 부여하자는 데 있었다 ..  (38쪽)


 알베르 카뮈 님이 쓴 《시사평론》(책세상,2009)을 읽었습니다. 이태 앞서 나온 책을 이태 앞서 읽었습니다. 이태 앞서 읽고 이태에 걸쳐 묵혔습니다. 이태 동안 묵히느라 내 책꽂이는 아주 어수선합니다. 왜냐하면, 《시사평론》 하나만 내 책꽂이에서 이태를 묵지 않으니까요. 《시사평론》을 비롯해 500권쯤 되는 책이 이래저래 꽂히거나 눕거나 쌓이면서 묵습니다. ‘한 번 다 읽었다’ 하더라도 ‘한 번 다 읽은 그때’에 이 책들에 서린 넋과 삶과 말이 내 넋과 삶과 말로 고스란히 스며들거나 녹아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기다려야 해요. 바라보아야 해요. 생각해야 해요. 이러면서, 살아내야 해요.

 밥을 먹은 곧바로 힘이 나지는 않습니다. 기다립니다. 어떤 밥을 먹었는가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밥을 먹으면서 살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앞길뿐 아니라, 옆지기와 아이들과 내 어버이와 옆지기 어버이와, 숱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돌아보며 살아내야 합니다.

 착한 길을 걸어야 하고, 참다운 길을 돌봐야 하며, 아름다운 길을 나누어야 합니다.


.. 우리의 은밀한 소원은 악이 승리하여 날뛰고 신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던 바로 그때 그 말을 해 주는 것이었다 ..  (73쪽)


 ‘알베르 카뮈 전집 20번’이 마무리되었다는 뜻으로 《시사평론》을 읽어치울 수 있습니다. 굳이 느낌글을 안 쓰고 소개글이나 추천글을 써도 되겠지요. 애써 내 삶과 넋과 말을 톺아보면서 이 책 하나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요. 내 지식과 지성과 철학을 북돋우거나 자랑하려는 허울로 삼아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 《시사평론》은 한국사람이 붙인 책이름이 ‘시사평론’이라지만, 정작 알베르 카뮈 님이 쓴 글에는 ‘사랑’이 감도는걸요. ‘사랑이야기’이지 ‘시사평론’이 아닌 《시사평론》입니다.


.. 아무리 봐도 스스로에게 편리한 것만을, 그것도 가장 유리한 때에만 공개하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정부는 책임이 크다. 그러나 그 책임이 아무리 크다 해도 기자들의 책임은 그보다 더 크다 ..  (145쪽)


 삶을 사랑하려는 카뮈 님 넋을 담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려는 카뮈 님 삶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무척 아쉽지만,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말’이 제대로 살아숨쉬는가는 모릅니다. 알베르 카뮈 님이 프랑스말로 썼을 글은 프랑스사람들한테 ‘어떤 말’이었는지 모르거든요. 한국말로 옮겨진 《시사평론》에 담긴 ‘말’은 이 나라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말’하고 얼마나 가깝거나 이어지거나 맞닿는가를 알 수 없거든요.


.. 진정한 예술가들은 훌륭한 정치적 승리자는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편의 죽음을, 아,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들은 죽음의 편이 아니라 삶의 편이다. 그들은 법 쪽의 증인이 아니라 육체 쪽의 증인이다 ..  (276쪽)


 알베르 카뮈 님 책을 이제 와서 다시 읽는다면, 또 프랑스 아닌 한국에서 애써 알베르 카뮈 님 책을 새로 읽는다면, 지식이나 지성이나 진보나 개혁이나 사상이나 철학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기나긴 나날과 머나먼 거리를 가로지르는 사랑을 담았으니, 이 사랑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움을 빛내려고 다시 읽거나 새로 읽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법이 아닌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렇지요. 예술을 모르는 여느 살림꾼 어머님들은 역사가 아닌 삶을 사랑합니다.

 나를 낳은 내 어머니는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습니다. 내 어머니는 이름값이나 돈이 아닌 ‘당신 아이 하나라는 어린 목숨’을 사랑했습니다. 알베르 카뮈 님을 낳은 어머님은 역사에 이름이 남을까요. 알베르 카뮈 님을 낳은 어머님을 낳은 어머님은, 또 이 어머님을 낳은 어머님은 역사이건 어디이건 이름을 남길 만할까요.

 사랑을 물려받아 사랑을 누렸기에 사랑을 글로 담습니다. 《시사평론》은 서로 아끼면서 활짝 웃는 살붙이들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4344.9.17.흙.ㅎㄲㅅㄱ)


― 시사평론 (알베르 카뮈 씀,김화영 옮김,책세상 펴냄,2009.12.10./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숭이 동생 난 책읽기가 좋아
이토우 히로시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마음밥과 마음그릇이 되는 책
 [어린이책 읽는 삶 8] 이토우 히로시, 《원숭이 동생》(비룡소,2003)



- 책이름 : 원숭이 동생
- 글·그림 : 이토우 히로시
- 옮긴이 : 김난주
- 펴낸곳 : 비룡소 (2003.9.4.)
- 책값 : 7500원


 이야기책 《원숭이 동생》(비룡소,2003) 간기를 보면, “캐릭터를 잘 살린 ‘원숭이’ 시리즈는 귀엽고 재치 있는 이야기로 재미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같은 말이 적힙니다. 나는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즐겁게 읽고 싶었으나, 이 글줄 때문에 그만 돌부리에 걸려 픽 넘어집니다. 어린이책에 적바림한 글줄도 글줄이지만, 이 글줄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 읽는 책에 적바림한 ‘캐릭터 잘 살린 시리즈’는 무슨 말이며 ‘철학적 메시지’는 무슨 말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읽는 책인데 그림을 ‘사랑스러우면서 잘’ 그려야 합니다. 아니, 어른들 읽는 책일 때에도 그림을 ‘사랑스러우면서 잘’ 그려야 해요. 그림을 사랑스레 잘 그렸다는 이야기를 붙이는 일은 아주 덧없으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다음으로, 어떠한 이야기가 되더라도 ‘깊은 삶에서 비롯하는 깊은 넋’이 담깁니다. 생각이 담기지 않는 책은 없습니다. 어른책만 생각이 담기고 어린이책에는 생각이 안 담길 턱이 없습니다. 모든 책에는 다 달리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삶에서 샘솟는 넋이 고이 깃들어요. 이 생각들이 아름답다 여길 만한지, 그저 그렇다 느낄 만한지, 따스하다 여길 만한지, 차갑다 느낄 만한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 내가 사는 섬은 아주 아주 조그맣지만 숲이 있어요 ..  (6∼7쪽)


 내가 읽을 내 책을 골라서 즐겁게 펼칠 때이든, 우리 집 아이가 읽을 책을 살펴서 내가 먼저 읽고 아이한테 나중에 읽힐 때이든, 언제나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 스스로 좋은 마음그릇이 되어서 펼치면, 누구보다 나한테 좋은 마음밥이 되는 책입니다.

 거룩한 말씀을 그러모은 책을 읽어야만 내 말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책을 읽어야만 내 삶이 훌륭해지지 않습니다.

 나부터 내 삶을 거룩하게 돌보아야 비로소 거룩한 넋을 깨달아 거룩한 빛을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사랑을 훌륭히 돌볼 때에 바야흐로 훌륭한 얼을 느끼면서 훌륭한 꿈을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나는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다문 한 줄을 읽고서 장만합니다. “내가 사는 섬은 아주 아주 조그맣지만 숲이 있어요.”라 적바림한 한 줄을 읽고서, 이 한 줄이 따사롭다고 여겨 장만합니다.

 흔한 말이고, 가벼운 말입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아이한테 으레 하는 말이고,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노상 느끼는 말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멧자락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숲이 있습니다. 넓지 않으나 밭뙈기가 있고, 갖은 풀벌레가 우리 집 둘레에 깃들며, 수많은 멧새가 끊임없이 우짖어요.


.. 나는 엄마의 배를 가만히 쳐다보았어요. 엄마가 나를 보고 말했어요. “너도 이 안에 있었단다.” ..  (52∼53쪽)


 마음을 담는 그릇을 떠올립니다. 내 마음을 나부터 어떤 그릇에 담는가 되새깁니다. 내 마음그릇에는 무엇이 담겼는지 곱씹습니다. 내 마음그릇은 내 고운 목숨을 살찌울 마음밥을 알뜰히 담을 만한지 가눕니다.

 나는 이런저런 손재주나 잔솜씨가 빼어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썩 손재주가 없고 잔솜씨도 부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손재주뿐 아니라 발재주도 없는데다가, 잔솜씨는커녕 큰솜씨도 없습니다. 참 용하게 목숨을 이었으며, 먹고사는데다가, 이럭저럭 짝꿍을 만나 이렁저렁 아이 둘을 낳아 함께 지냅니다.

 나한테 손재주가 있었으면 오늘처럼 이렇게 살아갔을까 궁금합니다. 내게 잔솜씨가 있다면 풀벌레와 멧새랑 살아가는 시골자락에서 이처럼 지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손재주로 이것저것 꾸미거나 붙이면서 이름값 드날리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잔솜씨로 요것조것 만들거나 뽐내면서 돈벌이 꾀하려고 어거지를 피우지 않았을까요.

 나는 내 어머니가 열 달을 곱게 품어 주셔서 태어난 목숨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열아홉 해를 예쁘게 입히고 먹여 주었기에 살아난 목숨입니다. 나는 내 형이 틈틈이 도와주면서 살림을 꾸립니다. 나는 내 옆지기가 늘 바로잡아 주기에 삶을 사랑합니다. 나는 내 두 아이가 날마다 안아 달라 놀아 달라 먹여 달라 외치기에 웃음과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 내가 잊어버린 어렸을 때의 일을 엄마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어요. 엄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린 내가 아장아장 돌아다니며 노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  (70∼71쪽)


 어린이부터 읽는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쉬 알아듣거나 헤아릴 만한 삶·넋·말로 이루어집니다. 곧, 어린이책은 어린이책이면서 어린이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이기에 어린이책이 될 수 있지만,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으니 어린이책이 되지 않습니다.

 어린이부터 먹을 수 있는 밥은 어린이부터 먹지만, 어른도 함께 먹습니다. 맵거나 짜게 지은 밥거리는 어른만 먹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먹도록 지으려는 밥거리라면 매워서는 안 되고 짜서도 안 됩니다. 간을 알맞게 해야 합니다. 곧, 간을 알맞게 하는 밥거리는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만한 법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삶·넋·말을 알맞게 다스리는 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만한 책입니다.

 이 나라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천천히’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읽고, 다시 넘기며, 가만히 아로새길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여, 어린이책이면 어린이책에 걸맞게 번역에 더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남쪽 나라의 섬에 살고 있지요(5쪽).” 같은 글은 “남쪽 나라 섬에서 살아요.”로 바로잡고, “뱀 동생이 태어나면 정말 굉장할 것 같아요(20쪽).” 같은 글은 “뱀 동생이 태어나면 참 대단하겠지요.”로 손질해 봅니다. (4344.9.17.흙.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1-09-1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표지그림이 넘 귀엽네요^^
 

[헌책방 사진 이야기] 12. 대구 대륙서점. 2010.3.17.


 헌책방에는 헌책이 있습니다. 새책방에는 새책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헌책방이니 마땅히 헌책을 갖춥니다. 헌책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새로 나온 책’을 ‘새로 장만하여 읽은’ 다음 내놓을 때에 붙습니다. 누군가 ‘새책’을 정갈하게 건사하며 읽고서 내놓았다면, 이 헌책은 ‘정갈한 헌책’이 됩니다. 누군가 새책을 아무렇게나 읽어 함부로 내놓았다면, 이 헌책은 ‘지저분한 헌책’이 됩니다. 헌책방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값싸게 사는 데가 아닙니다. 때때로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갖추면서 이 책들을 값싸게 팔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헌책방은 ‘가슴으로 아로새길 만하다고 여기는 묻힌 책’을 갈무리하는 몫을 맡습니다. 가슴으로 아로새겨서 오래오래 되새길 만하다고 여기는 책을 갈무리하고, 이 책을 고맙게 만나는 데가 헌책방입니다. 세월이라는 더께가 앉은 책이니 먼지가 제법 먹고 종이가 퍽 바스라지기도 할 테지요. 늙은 사람 주름살은 나이값이요 나이그릇이듯, 헌책 누런 종이나 먼지는 삶값이요 마음그릇입니다. 늙은 사람을 마주할 때에 주름살을 읽지 않고, 이녁이 살아낸 기나긴 나날에 걸친 슬기를 읽습니다. 헌책을 마주할 때에 겉껍데기나 먼지를 읽지 않고, 누렇게 바랜 종이에 깃든 아름다운 넋과 꿈을 읽습니다. (4344.9.17.흙.ㅎㄲㅅㄱ)


- 2010.3.17. 대구 대륙서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9-17 16:11   좋아요 0 | URL
계속 벼르다가 일산 끄트머리에 있는 헌책방을
추석 때 드디어 들렀답니다. 먼지내 풀풀 나는 곳에서 두시간을 버티며
이책저책 다 디비고 보고 향내 맡는 그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요, 결국
두 손 가득 책을 들고 나왔다지요........ ㅎㅎ

홍대 살 때, 거기도 굉장히 오랜 헌책방이 있었는데 없어진 소식에 맘 아팠어요.

파란놀 2011-09-17 16:53   좋아요 0 | URL
매장으로 가는 발길이 줄고,
매장으로 가더라도 '다 다른(다양한) 책'보다는
그때그때 실용으로 삼을 책에 더 눈길이 가는 세상 흐름이니까,
새책방도 동네책방은 힘들고 대형서점만 살아남을 수 있듯,
헌책방은 아주 힘들어요.

내 동네 어디 한켠에 헌책방이 있을 때에
고마이 아끼면서 즐겨 찾아가야 해요.

그래도 홍대 신촌 둘레에는 좋은 헌책방이 많아요.
새로 생기는 곳도 있고요~ ^^

카스피 2011-09-18 22:50   좋아요 0 | URL
대륙서점이라 예전에 대구에 갔을때 헌책방 몇군데를 돌은 기억이 나는군요.이거 혹 대구 시청 뒷골목에 있던 헌책방인가요??

파란놀 2011-09-19 03:13   좋아요 0 | URL
대구시청 뒷골목이라 할는지 알 수 없으나,
대구역과 동대구역 사이
큰길가에 있습니다.

카스피 2011-09-19 08:3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럼 맞는것 같기도 하네요^^ 또 언제 가볼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