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맞추어 태어나는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 

교정지 교정을 마쳤습니다. 

 

얼마 앞서 <사금일기>를 펴내기도 한 '호연' 님이 그림을 넣어 

사이사이에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하고 말하면 

부끄러운 말이 될까 모르겠네요 ^^;;;; 

 

아무튼, 책은 한글날에 맞추어 

한글날보다 며칠 앞서 나올 수 있으리라 믿어요. 

 

책이 태어나면 널리널리 사랑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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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0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저도 관심이 많이 갑니다. 10월이면 아직 한참 남은 줄 알았더니 바로 다음 달이네요 ^^

파란놀 2011-09-05 19:14   좋아요 0 | URL
네, 한가위가 끼어서, 출판사에서는 이번 주에 모든 편집을 마치고 인쇄소에 얼른 넘겨야 겨우 9월 마지막 주에 나와서 배본과 홍보를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책이 나오면 춘천에서 책잔치(출간기념잔치)를 해요. 춘천으로 살림집을 옮기거든요. 짬 나면 춘천에도 마실을 와 보소서~~~ ^_^
 
이치고다씨 이야기 4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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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에 있는 예쁜 사람과 어깨동무
 [만화책 즐겨읽기 47] 오자와 마리, 《이치고다 씨 이야기 (4)》



 둘째 아이는 어느덧 백날이 지났습니다. 둘째 아이가 우리한테 온 지 한 달 즈음이던 무렵, 새벽나절 이야기를 퍽 고달피 끄적이곤 했습니다. 그무렵 공책에 끄적인 고달픈 이야기를 옮겨적어 봅니다.

 ‘오늘도 새벽 두 시 이십오 분에 번쩍 눈을 떠서 첫째 밤오줌을 누입니다. 이레째 이어지는 장마이기에 방에 불을 넣고는, 지난밤 빨아서 넌 기저귀를 방바닥에 곱게 펼칩니다. 빨래를 새로 더 할까 생각하다가, 아직 방바닥이며 빨랫대이며 다 마르지 않았는데 더 하자면 말리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고 셈틀을 켜며 글조각을 붙잡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옆지기는 젖이 불어 짠다며 일어나고, 아이는 어머니 일어나서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깹니다. 새벽 세 시 삼십 분에 잠에서 깬 아이는 다시 눈을 붙일 줄 모릅니다. 잠자리에 드러누워 눈이 말똥말똥해서는 노래를 부르다가 어머니한테서 꾸지람을 듣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호젓하게 글조각을 붙잡는 두어 시간이지만, 오늘은 이 두어 시간을 즐길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둘째는 속이 꾸물꾸물한지 방귀를 북북 뀝니다. 똥을 한 바가지 쏟고서야 잠들는지 모릅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니 첫째는 이 소리 때문에라도 다시 잠들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끄적인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머나먼 옛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고작 두 달쯤 앞서 일이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안 떠오르는가 싶기도 하지만, 애써 떠올릴 만하지 않으니 안 떠오르는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아이들이 잠투정을 좀 한다고 아버지 된 사람이 이렇게 꽁꽁거리는 모습이 딱합니다. 잠투정을 하니까 더 달래고,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깨어 노래를 부르면 보드라이 달래서 다시 재우면 될 텐데요.

 가만히 돌이키면, 하루하루 살아낸 어제나 그제 모습은 참 부끄럽습니다. 그렇다고 오늘을 더 알뜰히 일구는지는 잘 모릅니다. 부끄럽던 모습이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달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에 더 마음을 기울이느라, 아니 오늘 하루도 다시금 지치거나 고단하다고 여기며 꽁꽁거리느라, 언제나 새로운 날을 언제나 고맙게 맞아들이지만, 정작 사랑스레 되새길 만큼 내 마음밭에 아로새기지 못한달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일을 나중에 얼마나 떠올릴까요. 아이들은 저희 어린 나날 어떠한 모습으로 지냈는가를 어느 만큼 또렷하게 되새길까요. 오늘 하루 보내는 삶이란 나중에 어느 만큼 되짚을 만한 값이나 뜻이나 빛이 있을까요.

 
- “하지만 이온에겐 하나뿐인 소중한 거니까요.” (42쪽)
-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응.” “왜?” “왜냐니? 그야 친구의 일이니까.” (47쪽)
- ‘예를 들어 할아버지에게 유미가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 손녀인가 하는 것도 말이야.’ (100쪽)



 졸리면서 낮잠을 안 자려고 버티는 첫째 아이를 뒤로 한 채 먼저 자리에 눕습니다. 아버지는 으레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고 첫째는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납니다. 둘째는 새벽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깹니다. 어린 아이들이 참 일찍 깨는구나 싶지만, 이 아이들은 자연이 부르는 소리를 맞아들이기에 일찌감치 잠에서 깨어 놀고 싶을 수 있습니다. 자연을 이루는 풀이든 나무이든 풀벌레이든 멧새이든 멧짐승이든 무엇이든 천천히 알맞게 따스해지는 기운을 받으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기지개를 켠 자연스러운 목숨은 한결같이 새로운 목숨을 빛내면서 새날을 즐거이 살아갑니다. 우리 아이들 또한 새 하루를 새로운 기쁨으로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길을 걷겠지요.

 갓난쟁이는 틈틈이 잠을 잡니다. 어머니 젖을 물고 조금 놀다가는 이내 새근새근 잡니다. 첫째 또한 틈틈이 잠을 잘 만합니다. 신나게 놀고 맛나게 먹다가는 달게 잠들 만합니다. 먹고 놀며 잠들어야 튼튼하게 자라요. 다시 먹고 놀며 잠들어야 아름다이 커요. 거듭 먹고 놀며 잠드는 동안 시나브로 우뚝 섭니다.

 오늘은 첫째 아이가 모처럼 두 시 조금 넘어서 곯아떨어집니다. 첫째 아이가 곯아떨어지고 둘째도 어머니 품에서 고요히 잡니다. 이 틈에 부시시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나서 미룬 기저귀 빨래를 합니다. 똥기저귀 한 장에 오줌기저귀 여덟 장. 이동안 이렇게 많이 나왔다 싶어 놀라지만, 한 시간에 두 장쯤 가볍게 나오니까 세 시간에 아홉 장쯤 나올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슥슥 비누를 문지르고 북북 거품을 냅니다. 똥 기운과 오줌 기운이 깨끗이 빠져나가 다오 하고 빌면서 기저귀를 빱니다. 마지막 기저귀를 헹구고 턴 다음 통에 담으며 ‘다 끝났구나!’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마당으로 나가 하나씩 넙니다. 밝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잘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날마다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이 고운 햇살을 아이들 옷가지마다 받아들일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빨래를 널고 걷으면서 이 예쁜 햇살을 내 몸뚱이에 맞아들일 수 있으니 좋습니다.

 손으로 기저귀를 빨면서 갓난쟁이가 눈 오줌 기운을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톱으로 느낍니다. 아이가 눈 똥 또한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톱으로 헤아립니다. 코로는 냄새를 맡고 살갗으로는 똥물과 오줌물과 비눗물과 헹굼물을 느낍니다.


- “넌 진짜 착하구나.” “어? 뭐가?” “그 애한테 옷 만들어 줬잖아.” “그야 옷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요스케가 착한 거 같은데.” “어떤 점이?” “방금도 상관없는 일인데 같이 와 줬잖아.” (60쪽)
- “저 아저씨는 나가노라면서?” “미안, 농담이야. 적당히 말해 본 거였어.” “뭐?” “믿는지 어쩐지 확인해 본 거야.” “당연히 믿지. 넌 거짓말 안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짓 좀 하지 마. 실례야.” (64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1) 4권을 생각합니다. 딸기밭 아가씨는 ‘죽음을 앞두고 넋이 빠져나가는 몸뚱이’에 깃들며 제 목숨을 잇습니다. 굳이 몸뚱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이 없어도 되는 외계별 사람 ‘이치고다(딸기밭)’ 아가씨이지만, 아니 아가씨인지 아저씨인지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이치고다 씨는 작은 인형 몸에 깃들면서 입이 아닌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람들 이야기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습니다. 이치고다 씨가 품은 뜻을 마음이라는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착한 사람일 때에만 이 목소리를 착하게 받아들이고, 착한 사람일 때에만 이치고다 씨한테 착한 삶을 들려주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착하지 않은 사람하고는 왜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데?’ 하고 궁금해 할 테지만, 착하지 않은 마음으로는 굳이 궁금해 하지 않을 뿐더러, 이치고다 씨처럼 자연스러운 목숨붙이하고는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지 않겠지요. 곧, 착하지 않은 사람은 살구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도라지꽃하고 이야기를 섞을 수 없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깃든 눈물과 웃음을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 “인간 안에 들어가는 게 오래 사는 길이라면, 내 안에 들어와도 돼. 내 몸을 줄게. 난 이제 필요없는 애니까.” “안 돼! 나 그런 말 하나도 안 기뻐. 절대 안 돼! 유미는 계속 유미로 있어야 돼. 안 그러면 내 단 하나뿐인 여자 친구가 없어지잖아!” (전철 안은 놀다 지친 사람들로 가득해서 우리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우주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 전철 안에서도 우리들은 정말 보잘것없는 너무나 작고 가벼운 존재였다.) (92∼95쪽)
- “아, 그렇구나.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뭐 받았어?” “우리 아파트에는 산타 안 와. 굴뚝도 없고. 그리고 난 그런 거 안 믿어.” “어? 왜. 왜?” “나도 이제 곧 5학년인데, 얀이야말로 외계인이 그런 걸 믿어?” “어? 아니, 그냥. 재미있어 보이니까 동참해 볼까 뭐 그런 거지.” (140쪽)



 곁에 있는 예쁜 사람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란 어려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돈벌이보다 착한 꿈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곁에 있는 예쁜 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하자면 내 이름값을 높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높일 까닭이 없으나 나를 낮출 까닭이 없습니다. 나를 자랑할 까닭이 없으면서 나를 깎아내리거나 숨길 까닭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맑게 꿈을 꾸면 됩니다. 착하게 생각하면서 맑게 땀을 흘리면 됩니다. 돈버는 일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착하게 손길을 내밀면서 맑게 구슬땀을 흘릴 수 있습니다. 큰 회사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저잣거리 한켠 좌판이라든지, 어디에서건 우리들은 착하게 웃으며 맑게 일할 수 있어요.


- “아카리라면 유미가 뭘 갖고 싶어 하는지 알까 싶어서 전화했어.” “왜 그렇게까지 유미를.” “아마 나도 유미처럼 외로운 아이였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149쪽)
-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설령 지금 엄마나 아빠가 옆에 없다 해도, 유미가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 누군가와 만나 결혼하면, 그때, 아이를 많이 낳아 대가족을 만들렴.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유미 옆에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어른이 되려무나.’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과 만나 결혼이라니. 그런 먼 미래의 일보다 난 지금, 엄마와 아빠가 그리워.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할아버지를 사랑하는데.



 곁에 있는 예쁜 사람한테 사랑씨를 내밉니다. 곁에 있는 예쁜 사람한테서 사랑씨를 받습니다. 나는 내 사랑씨를 건네고, 짝꿍은 짝꿍 사랑씨를 줍니다. 나한테 깃든 사랑씨는 내 마음밭에 있을 때에도 뿌리를 내려 무럭무럭 자랄 수 있으나, 내 마음밭에서 살살 날아서 내 짝꿍과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마음밭에 살포시 내려앉아 퍼질 수 있습니다.

 내 사랑씨만으로는 내 마음밭에는 한 가지 풀만 자랍니다. 내 짝꿍 사랑씨를 받아들이면서 내 마음밭에 두 가지 풀이 자랍니다. 내 사랑씨를 나누면서 내 짝꿍 마음밭에 두 가지 풀이 자라도록 돕습니다. 차근차근 사랑씨를 널리 퍼뜨리고, 나 또한 내 마음밭을 착한 넋이 감도는 수많은 사랑씨로 알뜰히 일굽니다. (4344.9.5.달.ㅎㄲㅅㄱ)


― 이치고다 씨 이야기 5 (오자와 마리 글·그림,황경태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3.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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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34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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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살아내는 하루가 시로 태어나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2] 바바라 쿠니·마이클 베다드, 《에밀리》(비룡소,1998)



 이제 내 얼굴은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 얼굴입니다. 내가 얼마나 어버이 노릇을 하는지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어버이라고 여길 겨를이 없이 지냅니다만, 나를 아버지로 바라보는 두 아이가 시골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며 함께 복닥거립니다.

 이제 나는 내가 홀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던 지난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헤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나를 낳아 함께 살아온 내 어버이하고 고향집에서 지내던 때가 언제쯤이었나 또한 돌아보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기 때문일 수 있고, 집일을 도맡으며 눈이든 코이든 뜰 겨를이 없어 이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삽니다. 어제나 모레나 글피를 사는 사람은 없어요. 오직 오늘을 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아니면 좀처럼 떠올리지 못한달 수 있어요.

 옆지기와 아이들이 깊이 잠든 새벽녘 일어나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엊그제는 내 아버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아이들 할아버지 태어난 날이었어요. 나는 우리 살붙이들 새로 깃들 보금자리를 찾느라 바깥마실을 하느라, 그만 할아버지한테 찾아뵙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퍽 서운히 여겼을 텐데,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바로 오늘 아이들과 함께 찾아뵈어 인사하지 못했으니 서운할밖에 없습니다.

 곰곰이 지난날을 되짚습니다. 내 어버이와 형이랑 고향집에서 지내던 때에 아버지한테 무엇을 선물했던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고향집을 떠난 뒤로는 아버지가 태어난 날이든 어머니가 태어난 날이든, 전화 한 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지냈다고 느낍니다. 마음으로는 ‘오늘이 아버지 태어난 날이구나.’, ‘그래, 오늘은 어머니 태어난 날이야.’ 하고 헤아립니다. 그닥 멀지 않은 데에서 일하며 살아가던 나는 살짝 말미를 얻어 찾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속으로 빌고 마음속으로 사랑인사를 보냅니다. 이 사랑인사를 받으셨는지, 이 사랑인사를 안 받으셨는지 잘 모릅니다. 전화나 편지로 소식을 띄우지 못하고 마음만 보낼 때에 즐거이 받으시는지 잘 모릅니다. 거꾸로, 내 아버지나 어머니도 당신 두 아들한테 마음으로 사랑인사를 보내는데, 나 또한 이 사랑인사를 못 느낄 수 있어요. 못 알아챌 만큼 무언가에 빠지거나 바쁘다든지, 못 깨달을 만큼 허둥지둥 휩쓸리는 삶일는지 모릅니다.


.. 우리가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우편 구멍으로 편지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편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달려가서 그걸 주워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에 난 좁다란 창으로 밖을 살짝 내다보았어요. 거기엔 아무도 없고 겨울만, 온통 새하얀 겨울만 있었습니다 ..  (9쪽)


 아이들 할아버지 태어난 날에 찾아가지 못하는 쓰디쓴 마음에, 시외버스에서 공책을 꺼내어 시를 하나 씁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먼저 한 번 찾아가고, 다시 한가위에 찾아가자고 생각하면서 공책에 시를 한 줄 두 줄 적습니다. 나한테는 돈이 없으니 맞돈을 봉투에 넣어서 건네지 못합니다. 나로서는 이것저것 무슨 물건을 사서 드릴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떡이나 빵이나 케익을 빚어서 선물할 만큼 이러한 먹을거리를 마련할 솜씨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공책에 적바림한 시 하나를 깨끗한 종이에 얌전한 글씨로 옮겨적어 슬며시 내미는 한 가지라고 느낍니다.

 ‘사름벼리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시골길 오르막, / 여기만 넘으면 집에 다 옵니다. / 벼리는 이무렵 늘 아버지한테 말을 겁니다. / “나 내리고 싶은데. / 나 달리고 싶은데.” / 가방에 따뜻한 만두가 있을 때처럼 / 벼리 어머니 함께 먹을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 오르막 한켠에 자전거를 세우고 / 수레 띠를 풀어 아이를 번쩍 안아 내립니다. / 오르막에서 벼리는 헉헉대면서도 / 아버지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 아버지는 자전거 끌랴 아이 손 잡으랴 / 아주 뻑적지근합니다. / 이내 오르막이 끝나고 판판한 길, / 벼리는 마음껏 뛰고 달리며 노래합니다. / 멧새와 함께 멧골아이가 됩니다.’

 이렇게 쓴 시 하나를 드리려 생각하는데, 문득 이 시 하나만으로는 모자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는 둘이니까, 첫째 아이 이야기만 시를 써서는 안 되지요. 둘째 아이 이야기도 시를 써야지요. 여기에 옆지기 이야기와 내 이야기까지 시를 따로따로 하나씩 써야겠다고 느낍니다. 모두 네 꼭지를 마무리지어 정갈히 적바림해서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아래에는, 눈 속에서 정원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집 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 노란 집의 울타리 안까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 어쩌면 노란 집에 사는 아주머니도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숨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 낯선 사람들이 찾아가면 달아나는 거예요 ..  (10, 18쪽)


 나를 좋게 바라보며 밥이나 술을 사 주는 분이 있습니다. 나한테는 돈이 얼마 없고, 바깥밥이나 바깥술을 즐길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아주 고맙게 밥이며 술을 얻습니다. 밥집이나 술집에서 뒤쪽을 쓸 수 있는 빈 종이 하나를 마련합니다. 숟가락을 싸던 얇은 종이가 되든, 술병에 붙은 딱지가 되든, 살살 펴거나 벗깁니다. 이런 다음 이 작은 종이에 짤막하게 시 한 꼭지 적바림합니다. 내가 오늘 하루 고맙게 살아내면서 받아들인 좋은 넋을 시 한 꼭지로 모두어 적바림합니다. 나는 누구한테 밥을 사 주거나 술을 사 주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작은 종이쪽에 시를 적어 건넬 수 있습니다.

 내가 쓴 시가 잘 쓴 시인지 못 쓴 시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담아서 시를 쓸 뿐입니다. 나는 내 모든 기운과 땀을 들여 살아내는 이 하루를 고마이 여기면서 이러한 삶을 시로 여밀 뿐입니다.

 내가 쓴 시를 알뜰히 엮어 책을 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쓴 시를 더 많은 사람이 즐겁게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풀벌레가 하루 내내 한결같이 노래하듯 내 삶을 한결같이 일구면서 시를 씁니다. 나는 바람이 하루 내내 이리로 흐르고 저리로 흐르듯 내 삶을 꾸준히 다스리면서 시를 씁니다.

 애틋한 옆지기하고 어울리는 시골집 삶자락이 시가 됩니다. 살가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과 쓰다듬는 손길이 고스란히 시 한 조각입니다. 기저귀 한 장을 빨며 시 한 줄을 읊습니다. 기저귀 열 장을 빨며 시 열 줄을 적어내립니다. 햇볕에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걷으며 시 한 줄을 적습니다. 잘 마른 빨래를 첫째 아이랑 함께 개면서 시 두어 줄을 끄적입니다.


.. “아빠, 자장가 불러 주세요.” 내가 말했습니다. 아빠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말이 꽃잎처럼 이불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그 꽃잎들이 내려앉는 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어요 ..  (14쪽)


 바바라 쿠니 님이 그림을 넣고 마이클 베다드 님이 글을 쓴 《에밀리》(비룡소,199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에밀리’라는 사람이 ‘에밀리 디킨슨’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이분이 맞으면 맞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면 되고, 이분이 아니라 하면 아닌 대로 가슴을 쓰다듬으면 됩니다. 조용히 살아가며 조용히 시를 길어올린 에밀리 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조용히 맞아들이면 넉넉합니다.

 노래나 춤이 아닌 시이기 때문에 이처럼 조용히 즐기지는 않습니다. 노래도 얼마든지 조용히 즐기고, 춤도 얼마든지 조용히 즐깁니다. 백만 사람한테 사랑받으며 백만 음반이 팔려야 아름다운 노래이지 않습니다. 무슨무슨 가수뽑기나 노래잔치에서 1등이 되어야 훌륭한 노래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사무치는 이야기를 내 마음을 건드리는 가락에 담아 내 마음을 쓰다듬듯 부르면 좋은 노래입니다.

 흐르는 달빛을 바라보고, 노래하는 별빛을 느끼며, 사랑하는 바람소리를 맞이하면 시가 됩니다. 구수하게 익는 밥내음을 느끼고, 아이하고 함께 먹을 일을 생각하며 도마질을 하면서, 차츰차츰 수저질을 야무지게 하는 아이 매무새를 받아들이면 시가 태어납니다.


.. 나는 그분 옆에 섰습니다. 우리 옷은 둘 다 눈처럼 하얀색이었어요. 나는 그분의 무릎에 놓인 종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게 시예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니, 시는 바로 너란다. 이건 시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 뿐이야.” 창턱 위에 놓아 둔 초롱꽃처럼 그분의 목소리는 가볍고도 예민했습니다. “아주머니께 봄을 좀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에게 백합 알뿌리 두 개를 꺼내 그분의 무릎에 내려놓았습니다 ..  (29쪽)


 에밀리라는 분을 바라보는 아이는 에밀리라는 분한테 시입니다. 에밀리라는 분을 바라보는 아이로서는 바로 이 아이가 바라보는 에밀라라는 분이 시일 테지요. 서로서로 고운 삶이기에 서로서로 고운 시를 온몸으로 씁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열어 만나기에 서로서로 사랑스레 시를 읊습니다. “시가 되려고 애쓰”고 “봄을 가져옵”니다.

 날마다 차리는 밥상이 지겹지 않고, 날마다 먹는 밥이 물리지 않는 까닭은 오직 하나, 이 밥상과 밥이 모두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가 사랑이고, 새로 태어나 또 나란히 살아가는 아이들이 사랑입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아도 사랑이지만, 먼 데에서 따로 살아도 사랑입니다. 착한 목숨을 얻어 태어난 어느 날 하루부터 사랑할 날이요, 다른 여느 날 모두 사랑할 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시를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시를 받아먹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온몸과 온마음이 시가 되어 오늘 하루를 살아냅니다. (4344.9.5.달.ㅎㄲㅅㄱ)


― 에밀리 (바바라 쿠니 그림,마이클 베다드 글,김명수 옮김,비룡소 펴냄,1998.3.1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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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책읽기


 한가위가 다가오면서 밤하늘 초승달조차 몹시 밝다. 그나다란 초승달 밝기가 여느 때 보름달만 하다. 초승달이 먼 멧등성이 너머로 사라지고 난 뒤에는 까만 바닥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한결 눈부시다. 한가위에 다다르면 달이 넘어간 까만 바닥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아주 눈부시겠지.

 가을은, 한가위는, 달은, 별은, 미리내는, 바람은, 풀벌레 노래와 무르익는 열매는, 달력에 없고 책에 없으며 인터넷이나 신문에도 없다. 모든 가을과 한가위와 열매는 푸른 들판과 아늑한 멧자락과 너른 바다에 있다. (4344.9.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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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존스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엘리엇 고온 지음, 이건일 옮김 / 도서출판 녹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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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이소선’은 사랑으로 맺은 눈물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2] 엘리엇 고온,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


- 책이름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
- 글 : 엘리엇 고온
- 옮긴이 : 이건일
- 펴낸곳 : 녹두 (2002.12.27.)
- 책값 : 13000원


 (1) 어머니


 이 나라 천만 노동자 모두한테 어머니와 같다던 이소선 님이 2011년 9월 3일 아침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숨을 거둔 이소선 님한테는 지난 1970년 11월 13일부터 언제나 ‘어머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돌이키면, 1970년 11월 13일 뒤로도 어머니였으나, 이에 앞서도 어머니였습니다. 천만 노동자한테 어머니였든 아들아이 하나한테 어머니였든, 여러 아이한테 어머니였든, 이소선 님은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어머니로 살아가기 앞서는 예쁜 딸이었겠지요. 당신을 낳은 어머니한테 더없이 예쁜 딸이었을 이소선 님이었겠지요. 이소선 님이 아들 전태일한테 어머니가 되기 앞서, 또 이 나라 노동자한테 어머니가 되기 앞서, 당신을 알뜰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으며, 당신을 알뜰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당신은 당신 아들아이를 비롯해 숱한 사람들한테 어머니 품을 따사로이 내밀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 그녀는 유럽과 미국에서 자본이라는 물결에 내던져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경험했다. 그녀는 아일랜드에서 불행과 죽음을 목격했고, 토론토에서 노동과 노동계급의 현실을 보고 배웠다. 그녀는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희망을 펼칠 수 있는 나라, 미국으로 들어갔다 … 그녀는 멤피스에서 탐욕이 어떻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또 전쟁으로 노예들이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을 목격했다. 여기서 그녀는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인종간 증오와 계급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 마더 존스는 노동자들의 빈곤과 동경,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가 부인들과 중산층 직장 여성들을 엘리트주의자들로 규정했다 … 마더 존스는 존경과 안정에 대한 그들의 탐욕을 철저히 불신했으며, 그런 욕심에 배신의 씨앗이 자리잡게 된다고 믿었다 ..  (62, 78, 356, 372쪽)



 흙으로 돌아간 이소선 어머님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땀흘려 일하는 여느 사람들 누구한테나 사랑스러운 어머님입니다. 아이들을 착하게 돌보면서 다 함께 착하게 살아가고픈 꿈을 나누는 사랑스러운 어머님입니다.

 어느 어머니라 하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플 손가락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아픕니다. 어머니한테는 혼잣힘으로 살림을 잘 꾸리는 아이도 사랑스럽지만, 도무지 제 살림살이를 일구지 못하는 가녀린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아니, 도무지 제 살림살이를 일구지 못하는 가녀린 아이한테 더 마음을 쏟고 더 땀을 들여 더 기운을 내도록 북돋웁니다. 따돌림받으며 괴로운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온갖 궂은 일에 시달리면서 아파하는 아이를 따사로이 보듬는 어머니입니다.

 당신 아이를 함부로 해코지하거나 들볶는 누군가 있다면, 스스럼없이 곧바로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입니다. 몽둥이나 회초리나 전쟁무기 따위로 아이를 지키지는 않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오직 당신 자그마한 몸뚱이 자그마한 사랑으로 아이를 지킵니다.

 아이를 돈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아이를 이름값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키, 조그마한 손, 조그마한 몸뚱이라 하지만, 어머니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꿋꿋하게 당신 아이를 건사합니다.


.. 경찰은 자본가들이 요구한 대로 위협과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당이 1876년에 발족되었다 … 네 개 철도회사들은 경기 침체기에도 주주들의 배당금은 꼬박꼬박 나눠 주면서도, 직원들의 임금을 10퍼센트 삭감(그것도 1년에 두 번)했다 … 자본가들·학자들·언론인들은 자립을 촉구하였고, 자유방임주의 경제와 다윈의 적자생존론은 그런 위기가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야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호물품을 마구 퍼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  (86, 105쪽)


 곰곰이 생각합니다. 모든 노동자한테 어머니와 같은 이소선 님이 있다면, 이소선 님처럼 모든 노동자한테 아버지와 같은 누군가는 있을까 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 꿈과 믿음을 지키며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어머니 이소선 님처럼, 일하는 모든 사람들 꿈과 믿음을 지키며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아버지는 있을까 하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톺아봅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따사로운 어머니’ 같은 ‘따사로운 아버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돈도 힘도 이름도 없다지만, 작은 맨몸뚱이를 내맡기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이 작은 맨몸뚱이 하나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누가 있을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참말 여느 아버지는 없을까요. 참말 여느 아버지는 당신 여느 아이들을 여느 사랑으로 보듬지 못하는가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학원을 여럿 다닌다고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손꼽히는 대학교를 다닌 다음 손꼽히는 이웃나라에 배움길을 떠나야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회사에 들어가 손꼽힐 만큼 높은 연봉을 받아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스스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크기까지 받은 사랑씨를 저희 새로운 아이한테 곱게 물려주는 사랑길을 걸을 때에 슬기롭습니다.


.. 노동조합은 넓은 의미의 가족이었다. 노동조합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버는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 미국의 자본가들은 시민동맹과 같은 어용단체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시민동맹은 매우 공격적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했으며 8시간 근로제와 같은 노동입법의 반대에 앞장서고 있었다 … 광산주들 역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경비원들을 유지하는 데 수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썼다. 조업이 멈춰진 광산은 추가로 수십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손실은 미국 자본주의자들에 대한 인식이 자본가에서 깡패나 불량배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 것이었다 … 부를 축적하는 일과 자유를 짓밟는 일, 이 두 가지 일은 같은 일이었다 ..  (150, 176, 342쪽)


 이소선 님은 ‘노동자 어머니’요 ‘전태일 어머니’입니다. 이소선 님은 참말 고스란히 ‘어머니’입니다. 나이 여든한 살이 되어도 ‘어머니’입니다.

 우리와 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미국땅에서는 백 살 나이를 살아낸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님이 ‘어머니’입니다. 이른바 ‘마더 존스’ 님은 여든을 넘고 아흔을 넘긴 때에도 언제나 ‘어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아닌 어머니요, 따사로운 사랑과 따사로운 손길로 가난하고 힘겨우며 외롭거나 지친 모든 착한 사람들을 넉넉히 감싸안으면서 껴안는 좋은 어머니였어요.


 (2) 사랑


 엘리엇 고온 님이 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녹두,2002)라는 책이 있습니다. 2002년에 이 책이 나오기 앞서까지 1978년에 한글로 옮겨진 《마더 죤스》(평민사,1978) 하나만이 ‘노동자한테 어머니인 사람이 일군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비로소 자서전을 쓴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님은 《마더 죤스》라는 책에서 당신을 ‘영웅’이나 ‘성녀’처럼 그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부르는 이름 ‘어머니’ 그대로, 어머니로서 아파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따사롭게 돌보고픈 마음을 찬찬히 그려냅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일본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당신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도시락을 예쁘게 꾸려 보자기에 싸서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가고는 ‘밥 좀 먹으면서 일하’라고 북돋웁니다.

 고추장을 담가서 아이들한테 찾아갑니다. 간장을 담고 된장을 담아 아이들한테 찾아갑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거둔 곡식을 손수 갈무리해서 고추장이며 간장이며 된장을 담습니다. 김치를 담고 나물을 무치며 닭을 잡아 곱니다.

 때때로 이러한 일을 맡는 아버지가 있습니다만, 아버지들은 당신 아이들이 밥을 굶을까 걱정하는 일이 퍽 드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려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아버지란 참으로 드뭅니다.


.. 4반세기 이상을 그녀는 아동노동, 노동대중의 빈곤, 미국의 자유파괴 등, 사람들이 듣기 거북해 하는 진실을 폭로하는 사람이었다 … 그녀는 남녀 노동자들에게 세상은 그들의 손으로 이룬 것, 그래서 세상은 바로 그들의 것이라는 믿음을 분명히 심어 주었다 … 가혹한 착취의 시기에, 그녀가 벌인 싸움은 인간다운 노동시간 확보와 적정한 임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조직화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돋보였다. 그녀는 연설을 하고, 미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조에 가입시키고, 잠은 노동자들의 오두막·하숙집, 아니면 친구들의 집에서 해결하는, 미국 행동주의자들의 자니 애플시드라 할 수 있었다 ..  (25, 26∼27쪽)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라는 책이름이지만, ‘어머니 존스’, 곧 ‘존스 어머니’는 조금도 “위험한 여성”이 아닙니다. 존스 어머니는 참말 존스 어머님입니다. 이소선 어머님은 참말 어머님이듯, 존스라는 분도 어머님이에요.

 힘든 아이들을 코앞에서 버젓이 보는데, 이 힘든 아이들을 따사롭게 얼싸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외로운데, 이 아픈 아이들을 포근하게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싸우는 사람 존스 어머니가 아닙니다. 싸우는 사람 이소선 어머니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 존스 어머니요, 사랑하는 사람 이소선 어머니입니다.

 《미혼의 당신에게》(백산서당,1983)라는 책을 읽을 때에도 이 책을 일구어 내놓은 다나까 미찌꼬라는 일본 ‘어머님’은 참말 어머니로서 가녀린 사람들을 사랑하는 눈물과 웃음을 나누려 했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식을 뽐낸다든지 학식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지식을 우러르거나 학식을 섬길 까닭이 없습니다.

 오직 아이들을 사랑할 뿐입니다. 오로지 아이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터전을 아끼며 보살필 뿐입니다. 서로 미워한다든지, 나 홀로 1등을 차지하면서 우쭐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할 뿐이요,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밥술을 나누는 기쁨을 맛볼 뿐입니다.


.. 마더 존스로서 그녀의 생애는 정말 놀라운 용기의 이야기, 정말 훌륭한 싸움의 이야기다. 그녀 세대의 다른 사람들이 그 시대의 문제들을 회피하는 동안, 마더 존스는 그것들로 불타올랐다 … 마더 존스는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들에 의지해야 하는 것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 마더 존스는 무소유의 이상을 잊지 않았고, 그것의 찬미자가 되었다. 그녀의 자기부정의 삶은 경박함과 물질주의를 꾸짖는 것이었다 … 그날(100번째 생일) 마더 존스는 뉴스·영화 기자들에게 예전에 서운했음을 털어놓으면서, “미국은 돈으로 세워진 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피로 세워졌어요. 미국의 자유를 지킬 권능이 노동자들의 수중에 있는데, 노동자들은 그 권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직 배우지 못한 거요. 또 여성들의 손에도 아주 놀라운 능력이 주어졌건만, 그들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른다오. 자본가들은 그 여인네들을 사교클럽에 끌어들이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숙녀로 만들려고 하지. 우리 나라엔 그런 숙녀는 필요없고, 여성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  (99, 146, 204, 444쪽)


 어머니 존스는 아픈 사람들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외로운 사람들하고 같이 지냈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슬픈 사람들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배고픈 사람들한테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사랑은 혁명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제도개혁이나 선거민주주의에서 싹트지 않습니다. 사랑은 높은 연봉이나 걱정없는 공무원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자가용이나 아파트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펄떡펄떡 뛰는 가슴에서 나타납니다. 사랑은 솔솔 김이 나는 따뜻한 밥그릇에서 싹틉니다. 사랑은 시원한 물 모금과 기름진 논밭에서 태어납니다. 사랑은 굳은살 박힌 손으로 빨래하고 바느질하며 이부자리를 까는 삶에서 비롯합니다.


.. 그녀는 인종·종교·국적을 초월해서 노동계급 연대의 대오를 갖추자는 호소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자본가들은 남부와 북부를, 미국 본토인과 외국인들로 갈라서 여러분의 대오를 이간시켜 정복하려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공동의 명분을 위해 사용자와 싸우는 광산 노동자들입니다. 자본가들의 칼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가난·고통, 그리고 여러분 자녀들의 미래가 여러분에게 더 강력하게 연대하라고 합니다 … 나는 정의를 위한 계급투쟁에 나설 때면, 동부와 서부·남부와 북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미국에 있는 모든 노동자 자녀들의 발에서 쇠고랑이 벗겨진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런데 아프리카 흑인 아이 한 명의 발에서 쇠고랑이 아직 벗겨지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곳으로 가서 또 싸울 것입니다.” ..  (183쪽)


 ‘어머니 이소선’은 사랑으로 맺은 눈물입니다. ‘어머니 존스’는 사랑으로 이룬 웃음입니다.

 어머니 이소선이나 어머니 존스를 괴롭힐 뿐 아니라, 어머니 이소선과 어머니 존스가 도우면서 지키려 하던 착한 사람들을 들볶은 이들은,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을 잊거나 사랑을 등지면서 그예 돈바라기로 삶을 깎아먹은 안쓰러운 넋입니다.


 (3) 아름다운 삶을 찾기


 우는 아이를 잘 달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들은 여느 어머니들보다 우는 아이를 잘 달래지 못합니다. 우는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울음을 그치면서 마음을 쉬곤 합니다.

 밥을 잘 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가 차리는 밥을 떠올리면서 그리는 여느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예부터 집일을 여자가 도맡도록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아버지들 스스로 아이한테 ‘아버지 손맛’을 물려주려고 힘쓰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여느 아버지는 여느 아이한테 따순 사랑을 좀처럼 물려주지 못하나, 여느 어머니는 여느 아이한테 당신 여느 손길로 따순 사랑을 언제나 물려줍니다.

 보드라운 목소리로 싱그러운 노래를 불러 주면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노는 아버지가 어김없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는 아이하고 노래하며 놀 겨를을 그닥 내지 못합니다. 여느 아버지는 여느 일터로 가서 여느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거나 얽매이기 일쑤입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와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나누려고, 과장 자리이든 부장 자리이든 사장 자리이든 스스럼없이 내려놓으면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어울리겠다고 나서는 여느 아버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느 어머니는 당신 여느 아이하고 곱게 노래를 부르면서 오순도순 여느 놀이를 즐깁니다. 여느 아이를 여느 손길로 사랑하고자 여느 어머니는 이런저런 일자리 이런저런 이름값을 얼마든지 곱게 내려놓습니다.


.. 그녀가 뉴스에 처음 등장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아동들의 5분의 1이 빈곤 속에 있다. 그들은 마더 존스의 자식들이다. 어엿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 또한 그녀의 자손들이다.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며, 현 시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마더 존스의 자식인 것이다 ..  (30쪽)


 지난 2008년부터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삐 살아갑니다. 갓난쟁이들은 쉬가 마려우면 그냥 쉬를 하니까 빨랫감이 하루에 마흔 장이나 쉰 장이 나오기도 하고, 두 살쯤은 지나야 낮오줌을 가릴 만하며, 세 살쯤 되어야 비로소 밤오줌을 가립니다. 둘째가 두 살을 지나고 세 살을 지날 두어 해 뒤까지 이 기저귀 빨래는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바지런히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며 빨래를 걷다가는 빨래를 갭니다. 옆지기가 조금씩 몸을 추스르면 빨래를 나누어 맡고 빨래 걷기와 개기도 하나둘 나누어 맡습니다. 네 살배기 아이는 아직 서툴지만 빨래를 널거나 걷거나 갤 때에 어설픈 손짓으로 빨래를 만지작거립니다. 곧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을 지나면서 빨래 널기와 걷기와 개기를 시나브로 야무지게 해낼 수 있겠지요.


.. 부는 가난의 충격적인 장면 가까이에서 뻔뻔스럽게 스스로를 뽐내고 있었다 ..  (81쪽)


 빨래기계를 쓴다면 빨래하는 집일에서 조금은 홀가분할는지 모릅니다. 자가용을 굴린다면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아이를 태우고 읍내로 장마당 마실을 다니느라 헉헉거리며 땀으로 흠뻑 젖지 않아도 좋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오늘 하루를 보내는 이 삶을 좋아합니다. 손으로 하는 빨래가 좋기도 하지만, 돈이 없으니 빨래기계를 들이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나 자전거를 몰 때에 시원하며 즐겁기도 하지만, 돈이 없으니 자가용을 굴리지 못합니다.

 네 식구는 가만히 꿈을 꿉니다. 우리한테 돈이 없으나 우리한테 돈이 생긴다면, 우리한테 돈이 모자라지만 우리한테 돈이 넉넉하다면, 우리한테 새로 생기거나 넉넉한 돈으로 빨래기계나 자가용이 아닌 고운 흙으로 살가운 논밭이나 멧자락을 장만할 꿈을 꿉니다. 몸을 살찌울 너른 들판과 멧자락을 꿈꿉니다. 마음을 살찌울 아름다운 책을 ‘언제 생길는지 알 길이 없는 돈’이 들어올 날 신나게 장만하자고 꿈을 꿉니다.

 한 번 살다가 죽은 다음 또 사람으로 다시 살 수 있을는지, 아니면 목숨은 이제 끝일는지, 아니면 넋만 살아남아 어딘가를 떠돌는지는 모릅니다. 어찌 되든, 이렇게 사는 동안에는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중에 흙으로 돌아갈 때에는 또 이때대로 아름다운 내 넋이 되도록 보살필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지요. (4344.9.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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