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1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삶이란 아름다이 주어진 꿈빛
 [만화책 즐겨읽기 56] 데즈카 오사무, 《불새 1》



 나이든 분들은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 아이들하고 함께 다닐 수 있는 이때가 가장 즐겁다’고들 으레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말고는 함께 다니거나 함께 얘기하거나 함께 살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돌이키고 되새길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나부터 내 어버이하고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지 않을 뿐더러, 일찌감치 어버이 집을 나왔습니다. 어버이하고 함께 마실을 다닌 지는 참으로 오래되었고, 어버이와 얘기꽃을 피운 적마저 참 드물다 할 만합니다.

 예전에는 어느 집이나 다 이러하지 않았느냐 할는지 모릅니다만, 오늘날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워낙 가부장 사회라는 틀이 딱딱하고 메말랐다지만, 더 예전에는 양반과 평민과 상놈을 가르는 틀이 훨씬 차디차고 무시무시했다지만, 오늘날에는 학력 사회이니 돈이니 아파트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면서, 오늘날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제 어버이하고 떨어져 지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아이들이 다 커서 제 어버이하고 어울려 다니기 싫다’고 하기 앞서,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보육원에 넣거나 어린이집에 넣습니다. 고작 한두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을 아주 마땅히 보육원에 넣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갓난쟁이한테 가루젖을 먹이고 종이기저귀를 대면서 보육원에 맡기고서,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 모두 집 바깥으로 돈만 벌러 다녀야 옳다고 여깁니다.


- 그런 불지옥 속에서 늠름하게 날개를 퍼덕이는 한 생명이 있었다. 그것이 불사조, 또는 불새라 불리었다. (10∼11쪽)
- “매형은 누나를 구하기 위해 불새를 잡으러 갔어. 불새의 생피를 마시면 누나는 살 수 있어. 우라지 형이 돌아올 때까지 기운내.” (17쪽)
- “난, 보통 사람과는 달라! 난 이 야마타이 국의 여왕 히미코야. 영원히 젊고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고.” (66쪽)



 나는 옆지기하고 네 식구를 꾸리며 살아가는 동안 생각합니다. 우리한테는 살림돈이 몹시 적어 아이들을 보육원에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긴 지난해부터는 아이들을 보육원에 넣으면 돈 한 푼 들지 않는 줄 압니다. 시골에서는 자동차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면서 보육원 삯을 받지 않습니다. 나라와 지자체에서 돈을 대니까요. 그렇지만, 도시를 떠나 시골에 보금자리를 틀어 살아가면서 두 어버이가 집 바깥으로 나돌며 돈벌이를 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두 어버이가 집 안쪽에서 깃들지 않고 바깥으로만 나돌려 한다면 애써 시골로 살림을 옮길 까닭이 없습니다. 그냥 도시에서 살아야지요. 도시에서 돈을 더 벌면서 더 번 돈을 더 많이 쓰면서 살아야지요.

 돈을 적게 벌면서 살아갈 만하니까, 돈을 적게 벌되 집에서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복닥일 수 있으니까, 마땅히 돈보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돈으로는 아름다울 수 없는 삶이니까, 우리 네 식구는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옹송그리듯 지내면서도 즐거운 나날을 누릴 만합니다. 온몸을 감싸는 보드라운 소리를 듣습니다. 온몸을 휘감는 보드라운 바람을 맞습니다. 온몸을 돌보는 보드라운 흙을 만집니다. 온몸을 아끼는 보드라운 햇살과 인사하면서 빨래를 넙니다.

 삶이란 아름다이 주어진 꿈빛입니다. 누구한테나 아름다이 주어진 꿈빛이기에 삶입니다. 이 삶을 한낱 돈만 벌자며 보낼 수 없습니다. 이 삶을 마음껏 누리고 신나게 즐겨야 합니다.

 아이들은 돈벌이를 하도록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대학졸업장을 따도록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도록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얼굴이 예뻐지거나 몸매가 미끈해지도록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어린 나날을 누리면서 푸른 나날을 즐기다가 천천히 어른이라는 자리로 들어섭니다. 젊은 기운을 쏟으면서 어른한테서 슬기를 받아들이고, 몸소 삶을 치르거나 겪으면서 몸과 마음을 단단히 다스리는 결에 새롭게 아이를 낳아 어버이가 됩니다.


- “나,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 인간은 왜 죽는 거지?” “그야 생명이 다하기 때문이지.” “그럼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 “흙으로 돌아가지.” (29쪽)
- “어째서 너만이 죽지 않고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 거지? 이건 너무 불공평해.” “불공평하다고? 너희들의 소원은 뭐지? 죽지 않는 힘? 아니면 삶의 행복?” “난 그런 거 몰라! 하지만 너처럼 죽지 않는다면 행복할 거야.” “나기, 네 발밑을 봐. 벌레가 보이지? 그곳도 살아 있어. 고작 반년밖에 살지 못하지만. 잠자리는 그보다 더 짧아. 부모가 되고서는 고작 3일을 살 뿐이야.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한탄하지 않아.” “벌레 따위가 뭘 알아!” (150쪽)



 가장 좋다 할 만한 집을 마련할 만한 우리 살림이 아닙니다. 밑돈은 적고 다달이 버는 돈 또한 아주 적습니다. 돈으로 치자면 극빈층이라 할 만합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삶이란 남한테 보여주려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려는 내 삶입니다. 남 앞에서 자랑스러울 까닭이 없고, 남 뒤에서 부끄러울 까닭이 없습니다. 우쭐거리거나 내보이려는 삶이 아니요, 숨기거나 감추려는 삶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즐거이 맞는 새 하루입니다. 나 스스로 내 아이들과 새롭게 빛낼 하루입니다. 돈이 없는 살림으로는 좋다 하는 시골마을 시골집을 얻어 지내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다 할 만한 시골마을 시골집이 아니더라도, 우리 네 식구 살가이 깃들어 따사로이 뿌리내릴 만한 시골마을 시골집을 찾을 수 있어요. 고즈넉히 깃들어 포근히 어우러질 어여쁜 시골마을 시골집이면 넉넉합니다.

 봄과 여름에는 멧새가 우지는 소리를 내내 들으며 잠들고 일어나서 뛰놀 만하면 됩니다. 가을에는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실컷 들으며 잠들고 일어나서 뛰놀 만하면 됩니다.

 자동차 소리도 오토바이 소리도 텔레비전 소리도 아닌 멧새 소리입니다. 개구리 소리입니다. 풀벌레 소리입니다. 짐승들 소리입니다. 바람과 비와 구름 소리입니다. 나뭇잎과 풀잎과 꽃잎 소리입니다.


- “만일 히미코 님이 대장의 부모 형제를 죽이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히미코 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군인은 싸우는 게 임무야.” (49쪽)
- “나는 간호해 주면서 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전부 죽였지?” “…….” “왜지? 이유가 뭐야!” “그야, 히미코 님의 명령이니까.” (92쪽)



 만화책 《불새》 1권을 읽습니다. 모두 열일곱 권(외전까지)으로 이루어진 만화책 《불새》는 1954년부터 1989년까지 그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데즈카 오사무 님으로서는 《불새》를 마무리짓고 싶지 않았을 수 있고, 낱권으로 이루어진 책 하나하나가 ‘이어지는 고리’이면서 ‘마무리’라 할 수 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당신이 일군 모든 만화가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굳이 데즈카 오사무 님 입을 빌지 않더라도 《아톰》이건 《블랙잭》이건 《리본의 기사》이건 《아돌프에게 고한다》이건, ‘사랑’을 발판으로 ‘사랑’이 얽히거나 이루어지는 사람들 삶을 이야기한다고 느끼면서 읽었습니다.

 다만,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에서 드러나는 사랑은 ‘살을 부비거나 섞는 놀이’와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새벽에 트는 동처럼 천천히 따스해지고, 어머니가 아기한테 물리는 젖처럼 언제나 포근한 사랑입니다. 입으로 읊거나 외치는 사랑이 아니요, 풋사랑도 짝사랑도 외사랑도 아닌 그저 사랑입니다.


- “내가 믿는 건, 우리 아빠나 엄마는 절대 목이 베일 만큼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103쪽)
- “난 죽을 때까지 천 명이라도 낳을 거야.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 다시 아기를 낳고, 그래서 몇 천 명이 되면 다시 마을이 생기는 거야.” “그러는데 몇 년이나 걸리는데?” “글쎄, 5백 년이나 천 년은 걸리겠지.” … “천 년 뒤면 누나는 벌써 죽고 없을 거야.” “그야 그렇지. 하지만 이 아이들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는 살아 있을 거야.” (160∼161쪽)



 삶을 사랑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이 씨앗을 맺고 뿌리를 내리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삶을 사랑하는 아름다움을 들려줍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즐거움을 보여줍니다. 사랑이 씨앗을 맺고 뿌리를 내리는 거룩한 꿈을 밝힙니다.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슬픈 넋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픈 넋을 보여줍니다. 사랑이 씨앗을 맺고 뿌리를 내리는 이음고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들여다보지 않는 어리석은 넋을 보여줍니다.


- “사루다히코, 난 당신이 좋아. 그래서 당신이 도망쳤으면 좋겠어.” “내, 내가 좋다고? 지금 그렇게 말했냐? 한 번만 더 말해 봐.” “좋아해! 엄청 좋아.” “한 번 더.” “이건,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 한 번만 더 말해 줘.” “좋아해! 엄청 좋아해!” (175쪽)


 2002년에 열일곱 권이 옮겨진 뒤 금세 판이 끊어진 《불새》인데 2011년 2월에 아주 뜻밖에 아주 조용히 2쇄를 찍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불새》 2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지 않았기에 1쇄 때에도 놓치고 2쇄 때마저 놓칠 뻔했습니다. 1쇄 때에 놓치고 오래도록 기다린 끝에 드디어 2쇄를 알고는 열일곱 권을 한꺼번에 장만합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크면 이 아이들한테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 기쁩니다. 《아톰》만 보거나 《블랙잭》만 봐서는, 또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든지 《메트로폴리스》나 《리본의 기사》만 봐서는, 데즈카 오사무라고 하는 만화쟁이 한 사람이 일본에 끼치고 한국에 미친 발자국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붓다》에서 찬찬히 짚으려다가 그만 짚지 못한 아쉬운 고갱이를 받아먹으려면 《불새》를 읽어야 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아톰》이 아니라 《불새》 때문에 널리 사랑받을 만화쟁이입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님은 《아톰》을 발판으로 삼아 《플루토》라는 만화를 그렸는데, 우라사와 나오키 님이 더 깊은 그릇이면서 더 널리 사랑을 꽃피우는 만화를 그리려 했다면, 《아톰》이 아닌 《불새》를 다시 그리려 했겠지요. (4344.8.28.해.ㅎㄲㅅㄱ)


― 불새 1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1.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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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을 찍는 아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옮긴 살림집을 한 해만에 다른 시골로 옮깁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보고 오래오래 깃들 시골로 살림집을 마련해야 했을 테지만, 이렇게 한 해를 살고 다시금 버겁게 짐을 꾸려 새로운 시골집으로 가는 일은 우리한테 또다른 이야기를 베푼다고 느낍니다. 옮길 때에는 옮기더라도 시골에 깃들며 새 시골을 꿈꾸는 동안 마음이 따사로우면서 넉넉하거든요.

 새 보금자리를 꿈꾸면서 사진기를 하나 새로 장만합니다. 처음 꿈꾸던 새 보금자리는 전라남도 끝자락 바다와 갯벌을 품에 안은 작은 시골마을입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가자니 돈이 퍽 많이 있어야 하고, 밑돈이 거의 없는 우리로서는 살림을 짐차에 실어 이곳으로 가는 동안 길에서 모든 돈을 다 써야 하고 말기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알아본 시골자락은 얼마 안 되는 우리 밑돈으로도 짐차를 불러 옮기는 돈하고 살림집을 조금 손질하는 데 들 돈을 댈 만합니다. 그래서 밑돈 가운데 얼마를 덜어 조그마한 디지털사진기 하나를 장만합니다.

 새 디지털사진기는 옆지기하고 아이가 갖고 놀듯 쓸 만한 녀석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쓸 수 있습니다. 물속 십 미터쯤 들어가도 찍을 수 있답니다.

 돌이 되기 앞서부터 아버지 무거운 사진기를 기운차게 들어서 사진을 찍던 첫째 아이는 자그맣고 가벼운 사진기를 처음 쥐면서 제대로 못 찍습니다. 자꾸 흔들리고 이리저리 엉성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새 사진기에 손과 몸을 맞춥니다. 다만, 조그마한 사진기는 조그마한 만큼 기능이 적거나 달라, 아버지가 쓰는 사진기처럼 불을 안 터뜨리고 찍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쓰는 디지털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맞추어 어두울 때에는 어두운 감도에 맞추지만, 새 디지털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쓸 수 없을 뿐더러, 불을 터뜨리지 않고 찍으려 해도 사진기 앞쪽에서 작은 알전구에서 불을 앞으로 쏩니다.

 아버지가 사진기를 들고, 아이가 사진기를 듭니다. 이러하건 저러하건, 아버지는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즐기고, 아이는 아이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즐깁니다. 진작부터 아이한테 아이 사진기 하나를 선물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네 살이 되기까지 새 사진기를 도무지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바야흐로 살림집 옮길 때를 닥치어 목돈을 주섬주섬 모으다가 비로소 사진기를 곁으로 장만합니다.

 아이는 아이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하다가 금세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아이는 다른 놀이로 접어듭니다. 아이는 아버지 손을 하나씩 잡습니다. 아버지는 사진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 모두 사진기를 내려놓고 손을 잡으며 춤을 춥니다. 늦은 저녁 아이가 이끄는 대로 춤을 추면서 놉니다. 공을 튀기며 놀고, 책을 펼치며 놀며, 땀에 젖은 몸을 씻으며 놉니다. (4344.8.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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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자니


 새벽같이 일어난 아이. 저녁 늦도록 안 자려는 아이. 졸린 채 낮잠을 건너뛰며 벌건 눈으로 놀자며 달라붙는 땀으로 촉촉한 아이. 씻기면 금세 또 뛰놀며 다시 땀범벅이 되는 아이.

 옆지기가 말랑공을 가져와서 발에 끼고 들었다 내리는 놀이를 아이한테 물려준다.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 잠은 안 자면서 공놀이를 한다.

 하기는. 잠을 안 자겠다면 놀려야 하고 함께 놀아야겠지. 나는 아이하고 더 놀거나 참으로 신나게 놀려고 마음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며 생각한다. 사진을 찍고 나서 셈틀 바탕화면에 깔며 생각한다. 마음껏 뛰놀며 스르르 곯아떨어지게끔,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면서 스르르 꿈나라로 가도록, 어버이가 아이하고 살을 부대끼면서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려야 한다. (4344.8.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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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웅진 세계그림책 16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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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가장 좋은 아이와 어버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9] 앤서니 브라운, 《우리 엄마》(웅진주니어,2005)



 첫째를 낳은 뒤 출생신고를 할 때에, 또 둘째를 낳고 나서 출생신고를 할 때에, 동사무소와 면사무소에서 참 껄적지근했습니다. 출생신고를 하라는 서류에는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 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며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는가’를 밝히도록 하거든요.

 아이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궁금한 이야기가 이것밖에 없나 싶어 슬픕니다만, 주민등록증에 손그림을 찍도록 하는 나라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대통령이면 대단하고, 어머니가 하는 일이 의사라면 거룩할까요. 아버지가 집에서 살림을 도맡고, 어머니는 아파서 몸져누운 사람이라면 어처구니없는 셈인가요.

 우리 두 아이한테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우리 두 아이한테 옆지기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뿐입니다. 아버지가 되려고 아이를 낳아 함께 살고, 어머니가 되고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갑니다.


.. 우리 엄마는 굉장한 요리사이고, 놀라운 재주꾼이에요 ..  (4∼5쪽)


 아이 아버지가 몇 살인가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다달이 돈을 얼마 버는가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어느 학교를 어떠한 성적으로 마쳤는가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 어머니 몸매가 어떠하고 얼굴이 어떠한가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밥을 얼마나 잘 차리고 얼마나 잘 치울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빨래를 얼마나 잘 하고 아이들하고 얼마나 신나게 어울려 놀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얼마나 따사로운 품으로 아이를 어루만질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들한테 얼마나 즐거이 젖을 물리며 자장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 아기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코뿔소처럼 튼튼해요. 정말 정말 정말 멋진 우리 엄마 ..  (14∼15쪽)


 차린 밥을 맛나게 잘 먹는 아이를 바라보며 날마다 즐거이 새 밥을 차립니다. 빨아서 갠 옷을 기쁘게 잘 입는 아이를 바라보며 날마다 신나게 새 빨래를 북북 비비며 꾹꾹 짜고 탕탕 털어 마당에 넙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지치지 않고 노래하거나 뛰거나 달려들어 안기는 아이를 바라보며 날마다 새로 기운을 내어 아이하고 손을 맞잡으며 춤을 춥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간다면, 아마 아이 어버이는 책을 더 깊이 파고들거나 자전거를 더 오래 탈 테지요. 글을 더 많이 쓰고 책을 더 많이 쓸는지 모릅니다. 이곳저곳 좋다는 시골마을을 두 다리로 걸어서 찾아다닐는지 몰라요. 그러나, 아이를 낳고 살아가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거나 살림하는 품을 많이 들입니다. 하루 열 시간 남짓 집에서 일하거나 살림하며 살아갑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가방에 아이 옷가지를 잔뜩 챙깁니다. 아이하고 읍내 장마당 마실을 다닐 때에도 아이 옷가지뿐 아니라 아이 먹을거리를 챙기느라 바쁩니다. 가방부터 퍽 무겁습니다.

 누구는 아이 낳고서 자가용도 장만하지 않느냐며 나무랍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기 앞서부터 자가용이 있을 까닭이 없다고 느꼈고, 아이하고 살아가면서 더더욱 자가용이 덧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랑 손을 맞잡고 시골길을 거닐 때에 즐겁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땀 뻘뻘 흘리며 걷는 나날이 고맙습니다. 폭신한 걸상에 눕듯 앉아 이곳에서 저곳까지 땀 한 번 안 흘리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오가는 일이란 아이한테나 어버이한테나 하나도 반갑지 않다고 느낍니다. 더운 날에는 더위를 느끼고 추운 날에는 추위를 느끼면서 콩콩 뛰는 마실이 싱그럽다고 느껴요.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함께 살듯, 사랑으로 부대끼며 누리는 나날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 어쩌면 영화배우나 사장이 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죠 ..  (18∼19쪽)


 나는 내 아이들한테 “우리 아버지가 되었어요” 하고 느낄 삶을 즐기고 싶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한테서 “우리 어머니로 살았어요” 하고 날마다 느끼는 삶을 즐깁니다.

 나는 내 아이들한테 내 옆지기가 “우리 어머니예요” 하고 느낄 삶을 고맙게 여깁니다. 나는 내 옆지기가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예요” 하고 노상 돌아보는 삶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바라볼 때이든 아버지가 아이를 바라볼 때이든, 아이가 사랑스러우면 가장 즐겁습니다. 아이가 어머니를 마주할 때이든 아이가 아버지를 부대낄 때이든, 어버이가 사랑스러우면 가장 기쁩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더도 덜도 없습니다.

 앤서니 브라운 님 그림책 《우리 엄마》를 읽습니다. 어머니 혼자서 읽고 아버지 혼자서 읽으며 아이 혼자서 읽다가는 다 함께 읽습니다. 《우리 엄마》는 가장 엄마다우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엄마 삶과 꿈과 넋과 말을 어여삐 들려줍니다. (4344.8.27.흙.ㅎㄲㅅㄱ)


― 우리 엄마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허은미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5.3.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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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8-27 23:30   좋아요 0 | URL
이 책 궁금했는데...리뷰 잘 봤어요.^^

파란놀 2011-08-28 04:46   좋아요 0 | URL
오래도록 간직할 만하고
둘레에 선물할 만한
아름다운 책이에요.
 



 개미를 바라보다


 아이를 안고 택시 앞자리에 앉으며 달리다가, 또 차를 얻어타고 아이를 안으며 앞자리에 앉아서 달리다가 길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바라본다. 개미를 바라보고 사마귀를 바라보며 자그마한 지렁이와 꼬물꼬물 벌레들을 바라본다. 내가 얻어타는 자동차 바퀴가 이 벌레들을 밟는다고 느끼며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아슬아슬 비켜 갈 수 없구나 싶으며 가슴이 저민다.

 걸어가는 사람이면서 발밑에 벌레가 깔려 죽는 줄 못 느끼는 사람이 무척 많다. 나는 땅밑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발 두 발 디딜 때에 발밑에 벌레가 깔릴 듯하면 어? 하고 느끼며 발을 옆으로 옮긴다. 자전거를 몰면서도 길바닥에서 날개를 말리는 나비나 잠자리가 있을 때에, 또 다른 자동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나비나 잠자리가 있을 때에, 사마귀가 섰을 때에, 방아깨비가 노래를 할 때에, 부디 이 벌레들이 내 자전거 바퀴에 으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자전거 손잡이를 살짝살짝 돌린다.

 사람들은 길에 선 벌레를 바라보거나 길을 걷는 개미를 살필 줄 모를까. 길에 선 벌레를 바라보거나 길을 걷는 개미를 살피는 사람이 어딘가 얄궂은가. 문득 내가 참으로 바보스럽거나 이 나라 이 땅에 하나도 안 어울릴 만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다. 자전거 수레에 아이를 태워 읍내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 몹시 외롭다. (4344.8.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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