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책읽기


 고속도로 둘레로 온통 풀빛 수풀과 논밭이 펼쳐집니다. 고속도로를 옆에 끼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동차 소리를 얼마나 어떻게 느껴야 할까 궁금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고속도로 둘레 사람들이 자동차 소리를 어떻게 얼마나 느끼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멈추고 땅에 발을 디뎌야 비로소 이 소리를 깨닫습니다.

 한여름 무더위이든 끔찍하도록 안 그치는 막비이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에어컨 찬바람으로 가득한 시외버스에서는 하나같이 잠들거나 손전화질이거나 주전부리질이거나 수다질입니다. 나는 잠든 아이를 허벅지에 눕힌 채 커다란 배낭에서 책 한 권 꺼내어 읽습니다. 마실을 떠나면서 책 한 권 옳게 읽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잠든 틈에 몇 줄이라도 읽고픈 마음에 무거운 배낭에 무거운 짐이 될 책 한 권을 챙겼습니다.

 시외버스를 탄 고등학생과 대학생치고 책을 읽는 이를 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시외버스를 탄 어버이랑 아이치고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기 대단히 힘듭니다. 시외버스를 탄 할머니랑 할아버지, 아주머니랑 아저씨들 가운데 책을 읽는 사람이란 거의 없다뿐 아니라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여느 때부터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 드뭅니다. 가게를 지키면서 쉬는 결에 책을 읽는다든지, 손님이 없는 동안 조용히 책을 펼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전철이나 기차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썩 드물지만,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더욱더 드뭅니다. (4344.8.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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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실


 시외버스 냄새. 많은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 바람도 햇볕도 흙도 물도 모두 설거나 메마르다. 길을 나서며 어디를 다닌다는 뜻이란 무얼까. 돈을 들여 돈을 쓰는 마실이 아니라, 삶을 들여 사랑을 나누는 마실이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까. 읍내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고, 시내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돌볼까. 어떤 돈을 왜 벌어야 하고, 어떤 돈은 왜 써야 할까.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나무도 숲도 하늘도 냇물도 바라볼 수 없다. 오가는 자동차를 살피느라 진땀이 나니, 이 길이 어떤 길인가 생각할 틈이 없고, 아이랑 살가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오가는 자동차는 하나같이 너무 바빠 조그마한 골목에서도 마구 내달린다. 자동차에 탄 사람뿐 아니라 걷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모는 사람조차 모두들 바쁜 빛이다. 길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이든, 길가 밥집에서든, 똥오줌 거름으로 일군 곡식이나 푸성귀로 먹을거리를 마련해서 팔지 못한다. 너무 바쁠 뿐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더욱 빨리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율을 왜 올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주식을 왜 만들고 주식으로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살림집이 아닌 아파트를 왜 지어야 하고, 아파트값에 왜 이리들 목을 매거나 떠들어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자동차를 왜 만들어야 하고,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왜 자꾸 넓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손에 쥐어 들고 다니는 조그마한 전화기로 인터넷을 쓰고 무어를 하며 또 무어를 하도록 자꾸자꾸 더 크고 더 비싸며 더 대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자동차를 몰며 서둘러야 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얼마나 바빠야 사람 삶일까. 얼마나 가멸차야 사람 삶인가. 얼마나 높고 반듯하며 대단해야 사람 삶이려나.

 교과서를 가르치는 제도권학교도 내키지 않지만, 자연이나 평화나 무엇무엇을 가르친다는 대안학교도 마땅하지 않다. 그저 책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자연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삶이요. 언제나 평화로운 살림살이인 한편,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일구거나 돌보거나 건사하면서 조용히 논밭을 일구는 조그마한 삶이면 넉넉하면서 따사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실을 다니면서 마실이 부질없다고 느낀다. 마실을 다니면서 마실 다닐 일을 되도록 줄여야 한다고 느낀다. 내 보금자리에서 조그맣게 옹크리면서 내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늘 얼굴 마주하고 살 부비는 나날이 고마우며 거룩한 줄을 느낀다. (4344.8.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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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보금자리를 알아보려고, 오늘(8/1)부터 마실을 갑니다. 먼저, 음성에서 길을 떠나 청주를 거쳐 전주에 들러서 밥을 먹고, 살짝 전주를 돌아본 다음 남원으로 가서 잠자리에 듭니다. 이듬날 아침에 순천으로 가서 고흥으로 들어갑니다. 화요일부터 고흥을 돌아보며 마땅한 자리를 알아보며 첫째 아이하고 쉰 다음, 광주로 나와서 기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춘천으로 갑니다. 이리하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바깥마실을 하며 첫째 아이하고 하루 내내 함께 붙어서 제대로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가끔 누리집에 들어와 보기는 할 텐데, 올 한 주 동안 글을 얼마나 써서 올릴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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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8-01 09:22   좋아요 0 | URL
우와~ 마실의 범위가 엄청나네요~ 좋은 새 보금자리와 새 이웃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파란놀 2011-08-03 06:44   좋아요 0 | URL
돈 없이 새 보금자리 찾기란 아득하네요...

마녀고양이 2011-08-01 22:31   좋아요 0 | URL
좋은 보금자리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자! 기 보내 응원드립니다.

파란놀 2011-08-03 06:44   좋아요 0 | URL
참 어려운 일이에요...
에궁....

카스피 2011-08-02 22: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총각일적에는 자주 전국을 일주하신것 같은데 결혼후에는 이런 장기 마실이 아마 처음이실듯 하네요.아무튼 좋은 보금자릴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파란놀 2011-08-03 06:45   좋아요 0 | URL
네 살 아이가 많이 힘들어 하는데 오늘은 어떨까 모르겠습니다 @.@

분꽃 2011-08-03 19:41   좋아요 0 | URL
오~~ 춘천에도 오시네요. 밥 사드릴게요~~

파란놀 2011-08-04 04:07   좋아요 0 | URL
금요일에 갈 텐데,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김유정마을을 일구시는 분하고 뵙는데,
아마 금요일 낮 조금 지나서 닿을 듯해요~

잿빛하루 2011-08-16 00:43   좋아요 0 | URL
휴가나온 군인입니다~ 지금 휴가 이전에 나왔던 휴가에 사진책과 함께살기를
사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번휴가때
배다리에 있는 사진책 도서관에 가보았는데 텅빈공간에
된장님의 이름이 적힌 우편물과 택배 그리고 빈소주병에 종이컵만 반겨주고있네요
그렇게 궁굼해서 와보았건만 ㅠㅠ... 지금와서 보니 이사를 하셨더군요!
그래도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처음 경험해보고 2권정도를 구입해왔습니다~
오래묶은 냄새도 좋았고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곳이 있는데
책을 골라오니 맘에드는책이냐면서 물어봐주시는것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더운여름에 땀 뻘뻘흘려가며 책구경 하는것도 좋았지만
요즘 도시에선 보기힘든 사람들의 모습도 보면서 참으로 좋았던 시간이 된것 같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이게 다 사진책과 함께살기 책을 써주신
된장님 덕분이란 말을 하고싶었어요~크크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1-08-16 05:24   좋아요 0 | URL
마음속으로 깃드는 좋은 사진책을 만날 수 있으면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블로그나 서재나 누리모임에는 일찍부터 글을 띄웠지만
책에서만큼은 한 번 찍힌 그대로 나오기만 하니까 ^^;;;;;;;

먼걸음 좋은 헌책방에서 좋은 삶과 사람과 책을 마주하셨으리라 믿어요.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기술'을 가르친다며 애를 쓸 텐데,
되도록 '사람 죽이는 기술'을 한귀로 흘리면서,
전국 곳곳에서 끌려온 수많은 젊은 이웃 넋을 보듬는
착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땅에서 군인한테 주어진 특권이란,
개발 손길이 닿지 않는 맑은 흙을 밟을 수 있는 한 가지 아닌가 싶어요.
 



 글을 쓴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러 첫째 아이랑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이레쯤 돌아다니고 집으로 돌아올 텐데, 이동안 옆지기가 둘째 아이랑 잘 견디어 주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집일을 도맡는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동안 제발 비가 그쳐서 갓난쟁이 기저귀 빨래가 잘 말라야 그나마 수월할 텐데, 이 비는 7월을 지나고 8월이 접어들지만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 살아남나. 이 짓궂은 빗줄기는 언젠가 그치기는 그칠 텐데, 참으로 사람을 잡는구나 싶도록 모질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다.

 새벽부터 밤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다시 새벽부터 밤까지, 날마다 빨래를 예닐곱 차례 하면서 밥을 차리고 아이를 씻기며 집안을 쓸고 닦는다. 그나마 이렇게 하려고 용을 쓸 뿐, 아이하고 가붓하게 그림책을 읽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지 못한다. 등허리가 몹시 아프다. 손목 저림이 가시는가 했더니, 이제 등허리가 몹시 아파 자리에 앉거나 설 때면 아주 괴롭다.

 모두 잠든 깊은 새벽녘 조용히 일어나서 생각한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웃는 낯으로 예쁘게 노래 부를 수 있어야 어버이 노릇을 하는 셈 아닌가 생각한다. 참으로 아프고 더없이 힘든 나날이라지만 밝게 웃고 맑게 노래하는 삶일 때라야 사람 구실을 하는 셈 아니겠느냐 생각한다.

 아직 어버이 노릇은 멀었고 사람 구실마저 까마득하다. 옆지기가 아버지한테 내어준 이레쯤 될 말미를 전라남도 고흥과 강원도 춘천시를 돌며 보내는 동안, 아무쪼록 몸과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면서, 이 힘겨운 여름날, 곰팡이가 끝없이 피는 살림집과 도서관을 잘 마무리짓고 우리를 기다릴 좋은 보금자리를 기쁘게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저, 내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티며 글 한 조각 쓴다는 생각으로 겨우 일어나고 두 주먹 불끈 쥔다. 이제 기저귀 빨래부터 하면서 하루를 열어야겠다. (4344.8.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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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5 : 책을 읽는 도시

 경상남도 김해는 퍽 예전부터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내세웁니다.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마을이 들어서면서 책도시로 거듭나려 애쓴다고 합니다. 이 나라 크고작은 도시에서 저마다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퍽 힘씁니다.

 ‘책읽는 도시’는 시장이나 군수가 “자, 이제부터 우리 시(군)는 책을 읽는 시(군)입니다!” 하고 외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책을 읽고 두루 책을 사랑한다면, 시장이나 군수가 나서기 앞서 따사롭고 너그러운 책도시나 책마을로 이름을 날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여러 지자체에서 ‘책읽는 도시’를 내세우는 까닭은, 그만큼 책을 안 읽기 때문이요, 책을 읽을 도서관이 없기 때문이며, 책을 살 책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자체마다 ‘책읽는 도시’가 되고 싶으면 두 가지를 먼저 해야 합니다. 첫째, 건물이 우람한 도서관이 아니라, 작은 동이나 면이나 리에 조그맣게 책쉼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아직 살아숨쉬는 새책방과 헌책방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책방 살림 잇도록 돕는 한편, 새로운 새책방과 헌책방이 문을 열도록 여러모로 도와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 책을 읽자고 외친다 한들, 책읽기 모임을 열어 독서토론을 한들,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이 재미없거나 책을 들출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재미있게 느낄 만한 삶터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할 만큼 삶이 너그러워야 합니다. 메마른 정치와 서글픈 경제와 비틀린 제도권교육을 그대로 두면서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 모두 대학입시에 목매달도록 하면서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아슬아슬하게 목숨줄을 잇거나 정리해고로 몸살을 앓는다면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긴 채 돈을 벌러 다니는 어버이가 저녁나절 고단함에 절디전 몸으로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못 읽히는 어버이는 당신 삶을 살찌울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찬찬히 살피거나 읽지 못합니다.

 책만 읽자 해서, 도서관을 큰돈 들여 짓는다 해서, 무슨무슨 걸개천을 길거리에 내걸거나, 이름난 몇몇 글쟁이를 불러서 강연모임을 마련한다 해서, 어느 도시인들 ‘책읽는 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무엇보다 살아가기 좋은 터전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사람들이 자가용을 버리고 자전거로 시원시원 조용히 오가는 삶터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아시안게임이니 올림픽이니 하면서 수천 억을 들여 새 경기장 짓는 데에 돈을 바치는 데가 아니라, 새 경기장 지을 자리에 숲을 지키고 돈을 아끼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넋으로 책 하나 가슴에 고이 품자고 하는 데입니다.

 경제성장을 바라면 ‘책읽는 도시’가 안 됩니다. 일류대학을 꿈꾸면 책을 읽지 못합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만 책을 읽고, 책을 읽는 사람이 모여 책마을이 태어납니다. (4344.7.31.해.ㅎㄲㅅㄱ)
 

(내 고향 인천을 생각하면서 쓴 글. 인천은 책도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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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31 20:51   좋아요 0 | URL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는데
일년 책 읽는 평균 권수가 한권이 안 되더군요. 그나마 거의 학습지이고
그리고 서울 경기 쪽이 평균 수치가 훨씬 높구요. 여하간 생각이 많은 통계였답니다. ㅡㅡ;;

파란놀 2011-08-01 06:04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문학책은 읽어도 환경책은 읽지 않아요.
환경책이 무언지 제대로 모르니까,
사회운동도 환경운동도 평화운동도... 아무런 진보운동도 하지 못해요.

인문책은 지식을 쌓는 책이 아니라,
나부터 삶을 바꾸려는 책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