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개구리


 작은방에 푸른개구리가 들어왔다. 조그마한 푸른개구리는 어떻게 이리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새벽 네 시 반에 퍼뜩 깬다. 작은방에 불을 켜고 뜨개질을 하던 옆지기가 불러서 벌떡 일어나 두리번두리번 살피어 조그마한 푸른개구리를 한손에 살며시 쥐어 문을 열고 마당으로 휙 던진다. 푸른개구리는 펼친 손에서 펄쩍 뛰어 저리로 날아가듯 뛴다. 푸른개구리 등짝과 다리는 촉촉하다. 이 촉촉한 살결로 제 목숨을 고이 잇겠지.

 옆지기가 개구리 치워 달라며 큰소리를 낸 탓에 첫째 아이도 그만 깬다. “개구리가? 나왔어?” 하며 묻던 첫째는 다시 재우려 해도 잠들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가 싶더니, “다 잤어.” 하는 말을 되풀이한다. 밤 열한 시 가까이 되어 잠든 네 녀석이 새벽 네 시 반 조금 넘은 때에 다 잤다고 일어나면 말이 되니.

 아버지는 새벽 세 시 반에 잠에서 깨어 방바닥에 기저귀를 잔뜩 펼쳤다. 간밤에 방 온도가 1℃ 떨어지면서 보일러가 돌아갔고, 뜨끈뜨끈한 방바닥이니 비로소 기저귀도 제대로 마르겠다 싶어, 부리나케 온 바닥을 기저귀 판으로 만든다. 이러고 나서 어젯밤 빨아 애벌로 헹군 기저귀를 마저 헹군다. 어젯밤에 다 빨기는 했어도 널 자리가 없어 그냥 두었기에, 이렇게 방바닥에 잔뜩 넌 김에 이 녀석들을 헹구어 벽에 잔뜩 걸어야지.

 애벌로 헹군 기저귀를 마저 헹구고 나서 첫째 옷가지랑 옆지기 옷가지를 빨래한다. 다 마친 빨래는 차근차근 빈 자리를 찾아 넌다. 이렇게 하고 나서 겨우 잠들었다 싶을 무렵 옆지기가 불러서 잠이 사라졌다. 푸른개구리야, 넌 하루라도 빨래를 그때그때 하지 않으면 살림을 꾸릴 수 없는 이 조그마한 집에 무슨 일로 찾아왔니. 방바닥에 펼친 기저귀가 다 말랐으니, 이 녀석은 얼른 개고 방바닥에 미처 펼치지 못한 다른 기저귀를 펼치라는 뜻을 일러 주려고 찾아왔니. (4344.7.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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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읽기


 둘째가 태어난 뒤로 시골버스를 타지 않았다. 언제나 첫째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다녔다. 어제 27일 읍내 장날에 맞추어 마실을 하려는데 비가 퍼붓기에, 자전거는 그만두고서 아이하고 비옷 입고 우산 받으며 나가려 했는데, 이 비에 아이를 데려가면 안 된다 해서 아이는 집에서 놀라 하고 아버지만 혼자 길을 나선다. 이제 책짐은 얼추 다 쌌기 때문에 읍내 가게에서 빈 상자를 그만 얻어도 되겠다고 느끼기도 해서 오늘까지 굳이 자전거수레를 끌지 말자고 생각한다. 모처럼 시골버스를 타자고 생각한다.

 천천히 시골길을 걸어서 버스 타는 데로 간다. 천천히 걷기 때문에 여느 날은 ‘이야, 참 좋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자전거를 모느라 헉헉대며 오가기에 가슴으로만 느낄 뿐 사진으로 담지 않던 모습을 발걸음 멈추고 한 장 두 장 찍는다. 혼자 살아가던 날 자전거를 타며 한손으로 손잡이 잡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 찍는 일이 익숙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운 뒤로도 한손으로 우산 들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를 쥐어 사진 찍는 일이 아주 익숙하다. 돌이키면,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에 있는 한국외대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자전거 몰며 신문돌리기를 하던 때부터 한손으로 자전거를 몰며 다른 한손으로 바구니에 손을 뻗어 허벅지에 톡톡 치며 반과 반으로 접어 휙 던져 넣는 일에 익숙하다. 이때에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꺼내어 톡 쳐서 반으로 접고 다시 톡 쳐서 반으로 더 접은 다음 엄지로 살짝 누르고서 자전거 손잡이에 매단 비닐 아가리를 스윽 벌려 신문을 살짝 꽂으며 비닐을 착 잡아빼기도 했다. 비가 그친 날이라 하더라도 마당이나 집 둘레에 물이 고인 데가 있기 마련이니까 비닐에 신문을 넣어야 하는데, 미리 비닐에 신문을 넣은 녀석은 그냥 던지면 되지만, 이렇게 마련한 녀석이 다 떨어지면 자전거를 달리면서 한손으로 슥슥 넣어 한 부씩 마련한다.

 버스 타는 데에 닿은 지 십 분 뒤에 시골버스가 들어온다. 버스에 오른다. 발판을 딛고 올라서서 표를 끊고 자리를 찾는데 퍽 서늘하다. 에어컨을 돌리는구나. 시골버스는 창문을 열고 달리면 훨씬 좋을 텐데. 그러나, 시골버스를 모는 분들로서는 시골버스라 하더라도 에어컨을 돌리고 싶을는지 모른다. 문득, 다음주 일이 걱정스럽다. 새 살림집을 찾아 전라남도 고흥까지 가자며 시외버스를 타고 몇 시간 지내야 하는데, 에어컨 바람을 내 몸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비는 시원하게 내리지 않는다. 바람 없이 그예 끝없이 퍼붓더니 살짝 그치고 나서 또 퍼붓는다. 장마철하고 견주면 날씨가 훨씬 나쁘다. 빨래가 도무지 안 마른다. 둘째 갓난쟁이한테 쓸 마른 기저귀가 그만 한 장만 남고 만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기저귀만 벽을 따라 잔뜩 널렸다. 방 온도는 29℃. 이 온도에 방에 불을 넣어야 한다는 소리이지? 반바지만 걸치고도 땀이 흐르지만, 기저귀를 보송보송 말리자면 불을 넣어야 한다. 죽을맛이지만 견딘다. 1℃만 낮더라도 조금 살 만할 텐데, 29℃나 30℃에 빨래를 말리자며 방에 불을 넣어야 하는 이런 빗줄기 굵직하고 바람 없는 날이 몹시 괴롭다.

 밤이 깊어지지만 아이들은 잠들지 않는다. 밤이 되어도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옷을 다 벗고 드러누어도 땀이 흐른다. 옆지기한테는 이런 온도가 몸을 덥히는 따스함이 될 테고, 나한테는 이런 온도가 사람을 골로 보내는 더위가 된다. 27℃쯤이면 그럭저럭 살 만하고, 28℃는 어찌저찌 견디며, 29℃는 한숨을 쉬면서 나중에 빨래하며 씻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1℃에 따라 삶이 갈린다. 선풍기 없는 살림집이라 나뭇잎 사이로 부는 산들바람을 바라며 살아간다. (4344.7.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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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19:35   좋아요 0 | URL
아, 빨래 말리시느라 보일러를 트시는군요.
기저귀 빨래가 정말 장난 아니죠. 비가 정말 많이 퍼붓더니 좀 그쳤네요.
거기도 비가 그쳤나요?

파란놀 2011-07-29 05:25   좋아요 0 | URL
그럭저럭 오락가락 하네요 @.@
언제쯤 해를 보며 이불빨래를 마저 하나 기다릴 뿐입니다......
 
배꼽 구멍 비룡소의 그림동화 176
하세가와 요시후미 글.그림, 고향옥 옮김 / 비룡소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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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서로 예쁘게 만나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0] 하세가와 요시후미, 《배꼽 구멍》(비룡소,2011)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거나 맛보거나 마주할 놀라운 일은 오직 두 가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아기로 태어나는 일입니다. 둘째는, 늙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어 죽는 일입니다. 온누리 다른 어떠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 두 가지보다 놀랍거나 거룩하거나 아름답거나 즐거울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늙어서 죽을 때면 으레 눈물을 흘리며 슬퍼합니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길이 없다 하니까 눈물을 흘릴 테지요.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아기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고맙게 숨을 거두는 사람이 있어, 고맙게 목숨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볍씨가 벼알이 되어 밥그릇에 놓이듯, 목숨씨는 스스로 몸을 바쳐 새로운 목숨빛을 이룹니다. 한 해를 고맙게 살다 떠나는 들풀은 들풀씨를 남기며 이듬해에 새로운 들풀이 자라도록 합니다.

 생각해 보면, 온누리에는 제법 놀랄 만한 일이 참으로 수두룩합니다. 끔찍한 전쟁부터 끔찍한 토목개발을 거쳐 끔찍한 범죄와 사기꾼 짓이 넘칩니다. 참으로 끔찍하다 싶은 일이 넘치니까, 사람들은 그만 놀라야 할 일에 놀라지 못하는 무딘 바보처럼 되기도 합니다. 괴롭거나 힘겹거나 아픈 일이 자꾸 잇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만 놀라며 반겨야 할 일을 놀라며 반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무뚝뚝한 멍청이처럼 굴고 말아요.


.. 작고 작은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엄마 배꼽 구멍을
 보고 있어 ..  (2쪽)


 그림책 《배꼽 구멍》(비룡소,2011)을 아이와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조그마한 집에서 오빠와 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곧 태어날 셋째 아이를 기다리면서 즐겁게 집을 꾸미고 돌보며 건사합니다. 누구보다 어머니한테 맞추어 밥을 차리는 자리에 오빠도 언니도 아버지도 밥차림을 함께 합니다. 에헴 하고 재채기를 하면서 밥상 앞에 앉기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벽에는 아이 어머니를 헤아리는 밥차림이 무언가를 붙여놓습니다. 어머니가 먹는 밥이란 뱃속 아기가 먹는 밥이요, 어머니가 먹는 밥을 다른 두 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먹습니다. 어머니와 뱃속 아기를 생각하며 밥을 차리는 일이란, 다른 집식구 모두를 생각하며 밥을 차리는 일입니다. 어머니와 뱃속 아기를 비롯해, 모든 집식구가 옳고 바르며 사랑스럽고 기쁜 밥상을 맞이해야 아름답습니다.

 아기를 기다리는 일 빼고는 다른 일을 하기 벅찬 어머니는 뜨개질을 합니다. 뜨개질을 해서 배냇저고리를 지을 수 있고, 아기한테 신길 양말을 뜰 수 있습니다. 아이한테 선물할 이름을 놓고 여러 사람이 머리를 굴립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아이한테 아무 밥이나 먹일 수 없고, 아무 이름이나 줄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아무 약이나 주사나 놓을 수 없으며, 아이한테 아무 집에서나 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머리가 벗겨지고 눈썹이 하얀 할아버지는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담배를 끊자!’고 다짐합니다.

 그래요, 우리 귀여운 손주를 생각한다면 담배를 끊어야겠지요. 우리 손주 앞에서 담배를 어찌 태울 수 있겠어요.

 우리 귀여운 손주처럼 다른 집 아이들은 다 다른 집에서 귀여운 손주입니다. 내가 피우는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는 내 아이와 손주뿐 아니라 이웃 아이와 손주한테도 나쁩니다. 온누리 온 목숨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마음씨를 이제라도 느끼거나 깨닫도록 이끌어, 늙은 나이에도 담배를 끊자고 하니까, 새롭게 태어나는 목숨이란 대단히 거룩하며 아름답습니다.


.. 우아!
 들린다, 들려.

 쏴쏴, 바람 소리
 철썩철썩 파도 소리.
 지지배배, 새 소리.
 살랑살랑 꽃잎이 흩날리는 소리 ..  (27쪽)



 두 아이를 맞아들여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옆지기 몸이 좋았다면 집에서 즐거이 맞아들였을 테지만, 옆지기 몸이 몹시 나쁜 나머지, 두 아이 모두 병원에서 받아야 했습니다. 병원에서 아기를 받을 때에, 병원은 늘 ‘아기 어머니’가 아닌 ‘환자’로 다루었습니다. 두 목숨을 거룩히 여기기보다는 ‘약물 처방 대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아기가 어머니 숨소리를 듣고 어머니 살결을 부벼야 하는 줄 헤아리지 않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병원 건물과 시설과 병실 어느 곳에서도 아기와 어머니한테 마음쓴 모습을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저 ‘입원 환자 처리’하는 곳일 뿐입니다.

 늘 느낍니다만, 병원 입원실에는 텔레비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병원이란 시내 한복판 시끄러운 차소리 가득한 데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러운 햇볕이 자연스레 들어오고, 자연스러운 바람이 자연스레 스며드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서고 새가 우짖으며 풀과 꽃이 흙 기운을 듬뿍 머금는 데에 병원이 서야 합니다.

 사람이 살 만한 터에 일터이든 병원이든 다른 무슨 시설이든 학교이든 있을 노릇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목숨을 아끼며 사랑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살림집이요 일터요 병원이어야 합니다.


.. 그날 밤, 아기가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어.

 우리 내일 만나요! ..  (31∼32쪽)



 아기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게 속삭인다지만, 어머니는 말소리 아닌 마음소리로 알아듣습니다. 어머니와 매한가지로 말소리 아닌 마음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아버지라면, 아기가 조용히 속삭이는 이야기를 알아챕니다.

 우리 서로 예쁘게 만나요. (4344.7.27.물.ㅎㄲㅅㄱ)


― 배꼽 구멍 (하세가와 요시후미 글·그림,고향옥 옮김,비룡소 펴냄,2011.3.20./8500원)
 

 

(최종규 . 산들보라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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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7 15:59   좋아요 0 | URL
아파서요, 멍하니 있는데,
된장님 서재에 들러봐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쁜 두째를 계속 볼 수 있네요. 이쁜 달님과 함께요.

어쩐지 숨이 쉬어집니다. ^^

파란놀 2011-07-27 18:01   좋아요 0 | URL
숨을 쉴 만한 좋은 그림책이에요.
다만... 마지막처럼 앞쪽 이야기는
그다지 울리지는 못하더라구요 ^^;;;;

아이를 낳는 기쁨과 괴로움과 즐거움과 아픔을
고루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대로 좋은 그림책이에요.

아플 때에는 멍하니 지내셔야지요~~ ^^;
 

 



 돌을 밟다


 아이가 돌을 밟는다. 빨래대를 마당에 내놓을 때에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받치는 돌을 밟는다. 다른 때에 아이가 돌을 밟은 적이 있는지 모르나, 아이가 이 작은 돌을 밟고 선 일을 아버지로서 처음 본다. 이제 아이는 돌을 밟고 기우뚱기우뚱 하는 맛을 깨닫는가.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지만 아직 아이라 할 첫째이다. 아이는 돌을 밟기도 하고, 흙을 두 손으로 쓸어담아 뭔가를 하기도 하며, 웅덩이를 철벅철벅 밟기도 한다.

 옷이 지저분해지면 빨면 되지. 손이 더러워지면 씻기면 되지. 참말 어버이답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길을 옳게 걸어가자. (4344.7.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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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터와 글쓰기


 네 식구가 살아갈 새 삶터를 찾는다. 네 식구가 오붓하게 지내면서 느긋하게 숨을 쉴 만한 터전을 찾는다. 옆지기한테뿐 아니라 두 아이와 나한테 포근할 시골자락을 찾는다. 오늘 살아가는 이곳 또한 시골자락이면서 다른 시골자락을 찾는다. 시골사람이래서 자가용을 타지 말아야 한다거나 기계를 안 써야 하지는 않다만, 자가용을 지나치게 자주 타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마을에서 차소리보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고, 기계를 돌리는 소리보다 손으로 연장을 놀리는 소리가 울리는 시골자락을 찾는다.

 새 삶터를 찾기로 하면서 두 달 즈음 책짐을 꾸렸다. 이제 며칠 더 책짐을 꾸리면 도서관 살림은 다 꾸리는 셈이고, 집살림을 꾸리면 된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집일이 부쩍 늘었는데, 부쩍 늘어난 집일을 옳게 건사하기 벅차 하면서 책짐을 꾸리자니 아주 죽을맛이다. 도무지 몸을 쉴 겨를이 없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책짐을 두 달 즈음에 걸쳐 죽을맛을 실컷 치르면서 꾸리는 나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삶터를 얼마나 옳게 못 찾았으면 이렇게 애먹어야 하겠나. 나부터 애먹고, 내 살붙이들 모두 애먹는다. 쉽게 얻어 쉽게 옮기는 삶터일 수 없다. 한두 해를 살거나 열 해나 스무 해를 살면 될 터전일 수 없다. 나로서는 뼈를 묻을 만한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고, 내가 뼈를 묻고 나서 내 아이들이 ‘이제 어머니 아버지 다 없으니 우리가 구태여 여기에 있어서 뭐 하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둥지를 찾아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여기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깃들던 곳일 뿐 아니라, 내가 예쁘게 깃들며 즐거울 곳이야.’ 하고 생각할 만한 삶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집 살림으로 치자면 몇 만 권에 이르는 책과 일흔 개가 넘는 책꽂이에다가, 새터에서 더 들일 책과 책꽂이를 품을 만큼 넉넉한 터를 찾아야 한다. 도시를 떠나 시골자락을 찾을 때에 이만 한 데를 좀처럼 찾지 못해 너무 쉽게 너무 쉬운 삶터를 얻었으니까, 이렇게 꼭 한 해를 살다가 다른 삶터를 찾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쉽게 얻기에 쉽게 잃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리 식구가 넷이기 앞서 셋일 때부터 셋이 앞으로 쉰 해이고 백 해이고 이백 해이고, 두고두고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갈 만한가까지는 살피지 못한 채 이곳으로 왔다. 도시에서는 코앞에 닥치는 달삯이 눈덩이와 같아 너무 무섭고 힘들었기 때문에,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다.

 곰곰이 생각한다.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으니까, 이제는 좀 숨을 쉴 만하고, 숨을 쉴 만한 이때에, 더욱이 아직 어깨와 등허리에 힘이 남아 두 달에 걸쳐 책짐을 꾸릴 수 있는 이때에, 바야흐로 우리 살붙이가 서로를 제대로 아끼면서 옳게 사랑할 아름다운 삶터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터가 내 삶터다울 때라야 비로소 나부터 책을 따사롭게 사랑한다. 내 삶터를 내 삶터답게 따사로이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내 따순 사랑을 담아 글 한 꼭지 길어올린다. 책짐 싸느라 바쁘고 힘겨워 책을 펼치지 못하는 삶은 너무 슬프다. (4344.7.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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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7 15:58   좋아요 0 | URL
몇만권의 책... 여기에만 딱 눈이 꽂히는군요.
부러워라, 저 책들과 저 책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가장 부러운 것은
저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 하는 자유에 대하여........ 그 책들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자연과 함께 가족이 살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살고 계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유에 대하여.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마 저는 부러워만 할거 같습니다.
꼬옥 좋은 집 찾으셔야 할텐데, 비가 이리 오니 걱정입니다.

파란놀 2011-07-27 18:01   좋아요 0 | URL
다음주에 청주와 전주와 남원을 거쳐 고흥으로 찾아가요.
아마 즐겁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