荒木經惟ト-キョ-·アルキ (とんぼの本) (單行本)
荒木 經惟 / 新潮社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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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나게 살아가며 재미나게 사진찍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9]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


 1940년에 태어나 젊은 날부터 사진을 찍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2009년에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라는 자그마한 사진책 하나를 내놓습니다. 1964년에 사진상을 한 번 받고, 1971년에는 혼인나들이를 한 이야기를 당신 돈으로 1000권 내놓기도 했다니까, 2009년에 내놓은 《ト-キョ-·アルキ》는 어쩌면 ‘아라키 사진삶 쉰 해’를 기리는 자그마한 선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보여준 사진삶을 다른 사진책으로 만난 이한테 《ト-キョ-·アルキ》는 좀 남다르다 싶은 사진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ト-キョ-·アルキ》는 책이름 그대로 ‘아라키’가 여태껏 내 나름대로 재미나게 살아온 나날을 재미난 발걸음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책이라 느낄 수 있어요.

 사진기 하나 목에 걸고는 도심지를 천천히 거닐면서 사진을 찍은 이야기를 그러모아 책 하나로 묶었다고 볼 수 있는 한편, ‘아라키는 이렇게 걷고 이렇게 만나며 이렇게 느껴 이렇게 나눈다’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이야기입니다만,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2007년에 내놓은 《ARAKI》(Taschen)를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없고, 1971년에 당신 돈을 들여 내놓은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어찌저찌 찾아내어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요즈음 어떠한 삶을 일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ARAKI》나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읽지 않고서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과 삶과 사랑과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를 읽을 때에는 오직 하나만 느끼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은 길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었기에 뜻있거나 뜻깊지 않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을 만나기 앞서 언제나 뜻있고 뜻깊던 길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든, 다른 누군가가 사진으로 담든 한결같이 뜻있고 뜻깊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어떠한 얼거리와 넋으로 사진으로 담든,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마다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게 아끼면서 보살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이제껏 살아오며 일군 이야기 가운데 한 자락을 고맙게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고맙게 얻은 사진을 그러모아 내놓은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사진책 하나에 그러모인 숱한 사람들 숱한 삶과 사랑 이야기를 고맙게 들여다보면서 생각날개를 펼칩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숱한 사람들 삶자락 이야기 가운데 귀퉁이를 예쁘게 바라보면서 담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읽는 사람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 눈썰미 가운데 한 조각을 아리땁게 읽으면서 가슴이 벅찹니다.

 어느 누구 삶이라 하더라도 똑같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삶이 없고, 사랑스레 담지 못할 삶이 없습니다.

 도쿄 한복판에도 있다는 가난한 사람들 뒷골목이라 해서 후줄근할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적어 살림살이가 후줄근하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인걸요. 도쿄 변두리에도 있다는 돈있는 사람들 복닥거리는 눈부신 길거리라 해서 돋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많아 한밤에도 불빛이 번쩍거리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지 않으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사랑스레 살아가는 기운을 느끼면서 사랑스레 살아가는 손길로 담은 사랑스레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재미나게 살아가는 얼을 받아들이면서 재미나게 살아가는 손놀림으로 담은 재미나게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주문을 받아 멋들어지게 찍어야 하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멋들어지게 보이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랑하는 짝꿍이랑 살아가며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담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사랑스레 보이는 아이 모습이 빛나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람이 선 삶자리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마주하는 삶자락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삶터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일본 도쿄라 해서 더 대단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한국 괴산이라 해서 더 시골스럽거나 투박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내 넋과 얼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는 사진이기에 꼭 도시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서 반드시 멧골스럽거나 바닷가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품는 꿈과 돌보는 넋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좋아하는 길과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사진이에요.

 제주섬에서 살아가거나 제주섬을 자주 찾아가지만, 정작 제주섬 속내를 사진으로 못 담고 글로 못 쓰며 그림으로 못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거나 서울을 자주 들르지만, 막상 서울 속살을 사진으로 못 찍고 글로 못 옮기며 그림으로 못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늘 지내거나 오래 지내거나 자주 가까이한대서 더 잘 알지 않습니다. 늘 걷는 길이라서 더 꼼꼼히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처음 지나가거나 한 번 지나치는 길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밭에서 사랑씨가 자라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수없이 지나가는 길이라 하지만 내 마음밭에 아무런 씨앗 하나 자라지 않는 사람보다 살뜰히 느끼어 꽃피우는 이야기열매가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는 이야기합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재미난 눈썰미와 손짓과 발걸음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나저나, 큰아이를 짐받이에 붙인 걸상에 앉히고 작은아이를 등에 업은 채 바구니에는 먹을거리나 짐을 실은데다가 가방을 손잡이에 걸고 기어 없는 자전거를 달리는 아주머니는 언제 보아도 그지없이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가운데 이와 같은 자전거를 모는 분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4344.7.10.해.ㅎㄲ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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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ra 2011-07-1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같이 비오는 날, 따뜻한 녹차와 함께 보고싶은 책이네요. 리뷰보고 구매하고 싶어졌습니다.^^

파란놀 2011-07-11 17:11   좋아요 0 | URL
일본말을 할 줄 아신다면, 글을 읽으면서 한결 재미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머니 책읽기


 어린 날, 어머니가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글을 모르기에 책을 안 읽으셨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글을 읽을 줄 알고 쓸 줄도 압니다. 그러나,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집에서 마주보는 어머니 모습이란, 일하고 살림하는 모습입니다. 집일을 하고 부업을 하며, 집살림을 건사하는 모습입니다.

 두 아이하고 아픈 옆지기랑 살아가자니, 참으로 책을 손에 쥘 겨를을 낼 수 없습니다. 아는 분한테 아이 얘기를 알리자며 전화를 걸자고 생각하더라도 이 일 저 일에 치여 전화기 단추 누를 틈을 내지 못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어버이로 살아가는 자리에 서기 앞서 내 마음과 삶을 살찌우는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제금날 때까지 손에 책을 쥘 수 없는지 모른다고.

 집일에 바쁜 어버이가 신나게 함께 놀지 못하기에, 네 살 아이는 일찍부터 혼자 책읽기에 빠져들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린 날 집밖에서 동네 동무들이랑 신나게 뛰어놀거나 집안에서 만화책에 신나게 빠져들었습니다. 다만, 내 눈에는 일하는 어머니 모습이 늘 아로새겨졌고,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한테는 내 아이가 오늘날 저희 아버지한테서 일하는 모습이 아로새겨질까 궁금합니다. (4344.7.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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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 자전거, 아저씨 자전거


 일본 사진쟁이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를 읽다가 문득 생각한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기에도 ‘애 둘을 태우는 아줌마 자전거’ 모습이 들어왔고, 어김없이 찍혔다. 아이 하나는 자전거 앞이나 뒤에 걸상을 붙여 앉힌 다음 아이 하나는 등에 업고 마실을 다니는 아주머니가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이나 미국이나 꽤 있다.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분 또한 제법 많다.

 그런데 한 가지는 없다. 아이를 둘씩 자전거에 태우며 저잣거리에 장보러 다니는 아주머니는 있지만, 아이를 하나라든지 둘을 자전거에 태우며 저잣거리에 장보러 다니는 아저씨는 없다(또는 아주 드물다). 아이를 둘씩 자전거에 태우며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데려오는 아주머니는 흔하게 만나지만, 아이를 하나라든지 둘을 자전거에 태워 어린이집을 드나드는 아저씨는 없다(아니면 아주 드물다).

 이제는 아주머니도 자가용을 많이 몬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저씨는 으레 자가용을 몬다.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며 장보기를 마치거나 어린이집에 들러 집으로 돌아오고도 집안일을 시원시원 해낼 뿐 아니라, 밥도 예쁘게 차린다. 아저씨 가운데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로 아이들을 태운 다음, 집에서 집안일을 거뜬히 치르면서 밥 또한 곱게 차리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저씨들은 자전거를 몰아도 혼자 씽씽 내달리는 비싸구려 자전거에만 눈길을 두곤 한다. (4344.7.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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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를 짜는 손목


 둘째 갓난쟁이 쉰 날째. 날마다 마흔 장쯤 똥오줌기저귀를 빨 뿐더러, 첫째와 옆지기 옷가지에다가 내 옷까지 빨고 걸레와 행주를 빤다. 저녁나절, 밥 차리느라 미룬 기저귀 열 장을 빨고 나서 물을 짜는데 손목을 못 돌리겠다. 찌르르 하고 아픈데 억지로 참으며 마무리짓는다. 이동안 새 오줌기저귀 두 장이 나오고, 빨래하다가 살짝 쉬며 첫째랑 둘째를 씻긴 다음, 둘째 배냇저고리를 더 빨자니 손목이 참 시큰거린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빈 그릇 들고 부시기도 버겁다. 땀을 또 몇 바가지 흘린 터라, 찬물로 몸 좀 씻으려고 하니, 물을 담은 작은 대야 쥔 손이 힘겹다. 집일에 파묻힌 아버지가 제대로 놀아 주지 못해 심심한 첫째는 홀로 방바닥에 앉아 한 시간 즈음 그림책을 본다. 첫째가 재미있게 본 책을 아버지도 보라며 건네는데, 책을 받아 책장을 넘길 힘이 없구나. (4344.7.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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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부인 뽐세라와 애벌레 친구들 - 일본도서관협회 선정도서
야나가와 시게루 글, 김은하 옮김, 카와이 노아 그림 / 예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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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 ‘아저씨’도 애벌레하고 함께 살았을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9] 카와이 노아·야나가와 시게루, 《배추부인 뽐세라와 애벌레 친구들》(예꿈,2008)


 배추를 얻으려고 배추밭을 돌본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온갖 벌레들이 배추잎 갉아먹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벌레가 갉아먹은 자국이 하나도 없는 배추란 없습니다. 조그마한 텃밭에 몇 포기만 돌본다면 벌레가 갉아먹기 앞서 모조리 젓가락으로 잡아낼는지 모르지만, 배추 속에 깊이 또아리를 튼 녀석은 놓치기 마련입니다. 또,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마다 새로운 벌레가 얼마나 자주 깃드는데요. 넓은 밭에 배추를 가득 심었다면, 이 배추에 깃드는 벌레를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잡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온통 벌레밥이 될 판입니다. 영화로 나온 〈로빙화〉를 보면 차밭 벌레를 잡는 그림이 자주 나오는데, 가난한 사람은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고, 돈있는 사람은 벌레 잡는 약을 신나게 뿌립니다.

 요즈음 사람들 눈길로 보자면 ‘차밭 벌레를 잡느라 약을 뿌릴 때에 흐뭇하게 웃는 일’은 소름이 돋거나 무섭다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즈음은 농약이 사람 몸에 얼마나 나쁜가 하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거든요. 그러나, 가난한 흙일꾼 집에서 아버지랑 누나랑 동생이랑 힘겨이 벌레잡이를 해야 한다면, 이렇게 벌레잡이를 해도 끝이 없다면, 벌레 잡는 약을 뿌리는 일이란 얼마나 고마우면서 대단한 일이 될까 싶기도 합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 흙일꾼으로서는 너른 밭에 푸성귀를 많이 길러서 ‘돈을 치러 푸성귀를 살 사람 눈에 소담스러우며 예쁘게 보이도록’ 거두어야 합니다. 약을 쓰느니 마느니가 아닙니다. 농약이 사람 몸에 얼마나 나쁘냐 아니냐가 아니에요. 흙을 일구며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리니, 농약을 쓰지 말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푸성귀를 사다 먹는 사람치고, 때깔 더 곱고 벌레 먹은 자국 없으며 큼지막하거나 굵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란, 이러면서 값은 퍽 싸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란 없으니까요.

 담배값을 올리느니 마느니 합니다만, 정작 올려야 할 값이란 쌀값과 푸성귀값과 열매값입니다. 쌀값이며 푸성귀값이며 열매값은 제값을 치르도록 올려야 합니다.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과 푸성귀는 이렇게 지은 품값대로 올리고, 농약을 쳐서 지은 곡식과 푸성귀는 이렇게 지은 약값과 품값대로 올려야 해요. 배추는 한 포기에 만 원을 해야 하고, 애호박은 하나에 오천 원을 해야 맞습니다. 당근은 한 뿌리에 삼천 원을 해야 하고, 파는 한 묶음에 이만 원을 해야 맞아요.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가 흙에 어떻게 뿌리를 내려 흙일꾼은 얼마나 땀을 흘리는가를 잊은 채 오로지 돈으로만 따지니까, 흙일꾼으로 일하면서 삶을 보람차게 보내겠다는 사람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도시 학교이든 시골 학교이든 아이들을 흙일꾼으로 키우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느 학교에서든 ‘흙 일구기 체험 학습’조차 안 합니다. 어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건, 고작 서너 살밖에 안 되든 예닐곱 살을 살짝 넘었든, 영어하고 한자를 일찌감치 머리속에 집어넣느라 바쁘지, 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날마다 먹는 밥과 푸성귀와 열매’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어 고맙게 받아먹을 수 있는가를 느끼도록 이끌지 않아요. 초등학교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라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대학생은 농촌봉사활동을 가끔 한다지만, ‘농촌봉사활동’이 아니라 ‘시골일 배우기’를 해야 올발라요.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지식에 앞서, 사람다이 살아갈 참길을 몸으로 느끼면서 맞아들여야 아름답습니다.


.. 이렇게 뽐세라 부인은 애벌레들을 몇 번이나 도와주었어요. 애벌레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뽐세라 부인이 아끼고 아끼는 드레스의 윗도리까지 먹어버린 거예요 ..  (23쪽)


 그림책 《배추부인 뽐세라와 애벌레 친구들》(예꿈,2008)을 읽습니다. 텃밭에서 배추를 한 번 심어서 기르기도 했지만, 우리 집 네 살 아이도 배추쯤은 금세 알아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배추는 틀림없이 배추 모습이지만 눈이 있고 손과 발이 달렸으며 옷까지 입습니다. 배추를 빗댄 사람입니다. 아이는 배추라고 알아보면서도 아줌마라고도 알아봅니다. “배추 아줌마야.” “배추 아줌마야? 응.” 그림책 뒤쪽에는 애벌레들이 나옵니다. “거기에도 배추가 있니?” “아니, 여기는 벌레야.” 시골집에서 지내며 집안이건 집밖이건 온통 수많은 벌레가 볼볼볼 살아가니까, 아이는 벌레가 익숙합니다. 배추와 함께 벌레를 곧장 알아봅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면서 줄거리가 이렇다는 둥 저렇다는 둥 덧붙이지 않습니다. 책에 적힌 글을 그대로 읽지 않습니다. 배추 아주머니 모습이랑 애벌레 모습을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에 나비가 되어 배추 아주머니를 다시 찾아오는 애벌레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우리 텃밭이나 시골자락 어디에나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를 이야기합니다.

 그림책에서는 ‘사랑’이나 ‘목숨’을 들추지만, 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면서 어설피 사랑이나 목숨을 들먹일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날마다 밥을 먹고, 또 시골에서 텃밭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사랑이나 목숨을 아무렇게나 들려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먹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닭고기나 오리고기도 목숨이지만, 쌀이나 보리나 밀이나 콩이나 옥수수나 팥이나 무나 감자나 당근이나 고구마도 목숨입니다. 꿀이 목숨 아닐 수 없고 된장이 목숨 아닐 수 없어요. 사람은 목숨을 먹어야 제 목숨을 잇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돼지와 쌀 또한 목숨을 빨아들여야 저희 목숨을 잇습니다. 동물은 동물대로 목숨이 될 먹이를 찾고, 식물은 식물대로 목숨이 될 먹이(양분)를 찾습니다. 《배추부인 뽐세라와 애벌레 친구들》에서 애벌레는 배추잎을 갉아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배추는 애벌레한테 잎을 덜 빼앗겨야 살아갈 수 있어요.


.. 다음날 아침, 뽐세라 부인이 눈을 떠 보니 그 많던 애벌레들이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예요. “우리 애벌레들, 어디로 갔는지 아시는 분?” “어머머, 뽐세라 부인 좀 봐. 아유, 흉측스러워. 드레스가 누더기가 돼 버렸네?” “뽐세라 부인, 드레스가 왜 그 모양이 됐대요?” ..  (27쪽)


 그림책 거의 마지막 자락에서 흙일꾼 아저씨가 ‘배추 아줌마 뽐세라’한테 “애벌레들이 먹은 건 네 드레스 자락뿐만이 아니야. 네 따뜻한 사랑도 함께 먹은 거지. 난 네가 사랑할 줄 아는 배추가 되어서 정말 기쁘단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말이야 틀리지 않습니다만,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이 이 그림책을 펼치며 당신 아이한테 배추와 애벌레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 때에 어떠한 느낌이 되거나 마음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날개가 ‘사람 눈에 곱게 보이’는 나비가 되는 애벌레는 배추잎을 갉아먹어도 나쁘지 않다면, ‘사람 눈에 썩 곱게 안 보이’는 나방이나 다른 벌레가 배추잎을 갉아먹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배추흰나비를 바라보자면 참 예쁘구나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거나 손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배추흰나비가 애벌레일 때에 배추잎을 신나게 갉아먹어도 될 만큼 어여쁜 목숨이라고 말해도 좋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배추와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서로 살가이 사귀려면, 배추흰나비가 ‘배추가 꽃을 피울 때에 꽃가루를 옮겨서 배추가 새로운 목숨이 태어날 씨가 맺도록 도와준다’는 얼거리를 보여줄 때에 비로소 ‘그래, 배추랑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서로 살가운 사이가 될 수 있어.’ 하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책 《배추부인 뽐세라와 애벌레 친구들》에서는 이 대목을 미처 그리지 못했습니다. 다른 ‘배추 아줌마’들은 벌레한테 덜 먹히면서 예쁘장한 배추잎을 건사하며 저잣거리에 내다 팔린다면, ‘뽐세라 배추 아줌마’는 애벌레한테 잎을 잔뜩 갉아먹히면서도 ‘배추꽃을 아름다이 피워’ 이 배추꽃에 나비가 된 애벌레가 새삼스레 찾아와서 꽃가루받이를 해 주어 뽐세라 배추 아줌마는 배추씨를 맺어 이듬해에 새로운 배추가 잔뜩 다시 태어날 밑목숨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시나브로 ‘사랑’이나 ‘목숨’을 보여주는 고운 그림책이라 할 만할 텐데 싶습니다.

 모든 애벌레는 나비가 되든 나방이 되든 ‘어른벌레’로 다시 태어납니다. 모든 푸성귀는 꽃을 피우고 씨를 맺으며 이듬해에 새롭게 다시 태어납니다. 모든 목숨은 다른 목숨을 고맙게 받아먹으면서 살아갑니다. 삶이란 죽음이고, 죽음이란 삶입니다. 삶이란 죽음이 되기에 사랑이고, 죽음이란 삶이 되기에 사랑이에요. 그림책 《배추부인 뽐세라와 애벌레 친구들》에서는 사랑과 목숨을 어설프거나 가벼운 ‘가르침(교훈)’으로 보여줄 노릇이 아니라, 차분하면서 수수한 삶과 죽음으로 제대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 누구 드레스가 제일 예쁘시더라?
- 감히 내 드레스를 갉아먹으려 들다니, 저리 못 가실까!
- 하아, 정말 피곤하시다.
- 이 뽐세라 부인이 좀 봐주시려고 하는데.
- 낮잠 한숨 자고 나서 내쫓으셔야겠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그림책은 옮김말이 꽤 엉터리입니다. 이야기 얼거리가 좀 아쉬워도 삶과 죽음과 목숨과 사랑을 다루려 한 대목에서는 돋보이는 그림책인데, 한국말로 옮기면서 “예쁘더라”라 할 대목에 ‘-시-’를 엉뚱하게 넣었습니다. ‘뽐세라 아줌마’이니까, 말투가 이러하다가 할는지 모르나, “예쁘더라?”나 “저리 못 갈까!”나 “하아, 참 힘들다.”처럼 적바림해도 됩니다. 이렇게 적바림해야 비로소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이 말을 옳게 받아들여요.


- 연둣빛 드레스를 뽐내고 있었지요
-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겠어요
- 흐뭇한 마음에 미소 지으며


 그런데, 이런 ‘-시-’도 얄궂지만, “연둣빛 드레스”라든지 “뽐내고 있었지요”라든지 “시작했어요”라든지 “잡아먹으려는 게”라든지 “미소 지으며” 같은 말마디는 더 얄궂습니다. 배추잎이 연두빛인가요? 배추잎은 풀빛입니다. 굳이 ‘드레스’라 하기보다는 ‘옷자락’이라 하면 됩니다. “푸른 옷자락”이라 하면 돼요. ‘있다’를 보조용언처럼 쓰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뽐냈지요”로 말끝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어요”로 고치고, “잡아먹으려 하지 않겠어요”와 “웃음지으며”로 고쳐야 합니다.

 그림책 끝자락을 보면 “다 아줌마 덕분이에요(33쪽).”라는 대목이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아줌마’로 적고, 책이름은 ‘배추부인’인데, 아이들한테 읽힐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개 부인’처럼 적는 어설픈 말투가 아니라, 알맞고 바르게 가다듬는 우리 말투로 적어야지 싶어요. “배추 아줌마 뽐세라와 애벌레 동무들”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야지요.

 그나저나, 그림책을 아이하고 읽으면서 늘 궁금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뽐세라 배추 아줌마’는 애벌레를 가엾게 여겨 돌보려 하는데, 배추 아줌마가 아닌 배추 ‘아저씨’가 될 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그림책이 배추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배추 아저씨는 ‘어린이 돌보기’를 어떻게 했으려나요.

 그림책마다 어린 목숨을 돌보거나 보살피는 몫은 으레 여자한테만 맡기거나 떠넘깁니다. 남자는 어린 목숨을 돌보지 않기 일쑤이고, 아예 모르기까지 해요. 그렇다고 오늘날 어른 여자들이 집일이나 집살림을 옳게 잘하는지 알쏭달쏭해요. 목숨을 아끼고 어린이를 사랑할 몫이란 여자가 더 잘 하거나 더 알뜰히 맡아야 하지 않습니다. 고운 사랑이 깃든 목숨을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아 자라난 사람이라면,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내 아이를 비롯해 이웃 아이를 따숩게 사랑하고 너르게 아낄 줄 알아야 한다고 느껴요.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한 일이지만, 뽐세라 아줌마 둘레에 ‘뽐내라 아저씨’가 함께 나오면 더욱 재미나면서 알차게 이야기를 엮고 풀 수 있겠지요. (4344.7.10.해.ㅎㄲㅅㄱ)


― 배추부인 뽐세라와 애벌레 친구들 (카와이 노아 그림,야나가와 시게루 글,김은하 옮김,예꿈 펴냄,2008.3.11./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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