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꾸는 어린이문학 - 이오덕 문학정신 이오덕 교육문고 2
이오덕 지음 / 고인돌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문학으로 어린이와 어른을 함께 지키는 길
 [어린이책 읽는 삶 2] 이오덕, 《삶을 가꾸는 어린이 문학》(고인돌,2010)


 1925년에 태어나 2003년에 흙으로 돌아간 이오덕 님은 1984년에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백산서당)을 내놓습니다. 1977년에 《시정신과 유희정신》(창작과비평사)을 내놓은 다음 두 권째 내놓은 어린이문학 비평입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은 2005년에 ‘굴렁쇠’ 출판사에서 새옷을 입혀 다시 냈고,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은 2010년에 ‘고인돌’ 출판사에서 새옷을 입히며 책이름을 고쳐서 다시 냅니다.

 이오덕 님이 2003년이 아닌 2011년까지 사셨다면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나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에 뒤이은 새로운 어린이문학 비평을 내놓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2002년에 몸이 많이 아프던 나날에도 《어린이책 이야기》(소년한길)와 《문학의 길 교육의 길》(소년한길)을 내놓았습니다. 2001년에도 병하고 싸우면서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소년한길)를 내놓았어요. 《시정신과 유희정신》은 1970년대까지 이루어진 이 나라 어린이문학을 발판으로 어린이 삶과 넋을 사랑하고 믿으려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은 1980년대까지 이루어진 이 나라 어린이문학을 깊이 헤아리면서 빚은 어린이사랑과 어린이배움입니다. 2001년과 2002년에 내놓은 세 가지 어린이문학 비평은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로 접어드는 이 나라 어린이문학이 앞으로 어떠한 길을 씩씩하며 착하게 걸어가면 아름다울까를 돌아보는 생각밭입니다.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이루어진 어린이문학 비평책을 읽다 보면, 이 나라에 새로 태어나는 어린이문학을 샅샅이 톺아본 흐름을 짚을 수 있기도 하지만, 이동안 이오덕 님 스스로 당신 말과 넋을 더 단단하며 알차게 가다듬으려고 애쓴 발자국과 손길을 느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동안 이오덕 님이 내놓은 또다른 열매 가운데 하나는 《우리 글 바로쓰기》(한길사) 세 권이거든요. 1977년에는 우리 말글을 올바로 쓰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했고, 1984년에는 조금 마음을 기울였으나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2001년과 2002년에는 아주 깊이 파고들면서 당신 말씨와 말투를 많이 고치거나 바로잡았습니다. 2010년대까지 사셨더라면 2001년과 2002년에 이룬 ‘글쓴이 말매무새 거듭나기’를 한껏 알차게 꽃피웠으리라 생각합니다.


.. (동화란) 장사하는 아주머니나 농민이나 노동자나 사무원이나 누구든지 가까이 다가가고 즐길 수 있다. 그런 문학이라야 진짜 문학이다 … 어려운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깨끗한 우리 말로 바꿀 수 있으면 우리 말로 쉽게 풀어서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절실한 생각은 절실한 체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흐리멍텅한 생각은 체험의 바탕이 없는 데서 나오고, 머리로 억지로 만든 실제로 없는 얘기는 어설프고 재미없는 동화가 된다 … 아무리 시가 개성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건드리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20, 40, 59, 163쪽)


 2010년에 다시 태어난 《삶을 가꾸는 어린이 문학》(고인돌,2010)이라는 책이지만, 이 책은 2010년 책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1984년 책으로 읽습니다. 1984년에 이룬 열매이면서 2010년이든 2020년이든 2030년이든 얼마든지 새롭게 읽고 아로새기면서 내 삶길과 삶결을 보듬는 길동무나 밑거름으로 삼을 책으로 읽습니다.

 이오덕 님은 어린이문학을 바라보는 글을 쓰면서, 이 글을 바탕으로 어린이가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터전을 생각합니다. 어린이가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터전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터전은 어린이를 비롯해 모든 어른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터전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한테만 좋으며 훌륭한 밥을 ‘쌀밥과 책밥과 말밥과 배움밥’으로 먹여야 할 뿐 아니라, 어른부터 좋으며 훌륭한 밥을 ‘쌀밥과 책밥과 말밥과 배움밥’으로 함께 먹으면서 즐겨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이야기합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어른 스스로 학벌 사회와 비정규직 사회를 단단히 세우고서는 아이들한테 이 나라에서 예쁜 어른으로 자라도록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영어나 한자나 교과서를 잘 가르친다 한들, 어른이 빚은 학벌 사회와 비정규직 사회에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겠어요.

 모든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고 나면 도시에서 아파트를 얻어 회사원이 되는 길로만 등떠미는 제도권 학교교육인데, 이러한 얼거리를 그대로 둔 채 아이들이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답게 살도록 돌볼 수 없어요. 아이들은 그림책에서만 꽃을 보고, 그림책에서만 흙을 만지며, 그림책에서만 꿈나라를 밟습니다. 아이들은 동화책에서만 구름을 바라보며, 동화책에서만 고양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동화책에서만 이웃사랑을 나눕니다. 정작 아이들이 두 다리를 딛는 이 터전에서는 살가이 사귈 동무나 이웃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집을 나서면 곧바로 자가용에 올라타고, 자가용에서 내리면 높다랗거나 깊은 건물로 들어섭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햇볕을 쬐거나 낮하늘이나 밤하늘을 올려다볼 틈이 없어요.


.. 일본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문화 유산을 아끼고 가꾸려는 몸가짐은 대단하며, 아이들도 그렇게 넉넉하게 기록된 옛이야기를 즐겨 읽으면서 자라고 있다 … 글쓴이 자신이 어린이가 사는 현장에서 함께 숨을 쉬는 민중성을 몸소 겪어야 한다 … 오늘날 어린이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어린이같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외국 동화에 나오는 꿈같은 세계의 어린이들과 매우 다른 역사의 삶 속에 숨쉬고 있다는 것, 이것을 모르고서 동화고 소설이고 시를 쓴다면, 그런 글쓴이나 시인이 역사와 겨레에서 동떨어진 슬픈 사람이 될 것이란 사실은 불을 보는 일보다 더 환하다 … 교훈을 너무 밖으로 드러내어 보이는 훈화나 도덕 교과서의 글같이 되었다면 그것은 문학작품이라 할 수 없지만, 교훈성 그 자체를 죄다 빼려고 하는 것은 어린이문학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교훈을 꺼리고 무서워하는 사람일수록 재미없고 해로운 작품을 쓰는 것이다. 교훈이 없다는 것은 글쓴이의 의도가 없고 사상이 없다는 것이고, 역사와 사회·어린이에 대한 믿음과 정열·사랑이 없는 것을 말해 준다 ..  (84, 98∼99쪽)


 2010년에 책이름을 《삶을 가꾸는 어린이 문학》으로 바꾸었습니다만, 이오덕 님이 여느 때에 들려준 말씀 가운데 하나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입니다. 글쓰기와 배움(교육)과 글쓰기 가르치기 세 가지가 ‘삶을 가꾸는 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삶을 가꾸는 일이란, 삶을 돌보거나 일구거나 사랑하거나 믿거나 좋아하거나 보듬거나 일으키거나 껴안거나 어깨동무하거나 즐기거나 다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돌보거나 일구거나 사랑하기로는 삶만이 아닙니다. 동무도 사랑하고 이 겨레도 돌보며 푸나무도 껴안습니다. 시골도 사랑하고 멧등성이도 보듬으며 자전거도 즐깁니다. 이름을 바꾸어 본다면, ‘자전거를 사랑하는 글쓰기 교육’이 되기도 하고, ‘설거지를 즐기는 글쓰기 교육’이 되기도 해요.

 어떤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며, 어떤 틀에 매려는 교훈이 아니에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길을 어른부터 밝히면서 어른이 좋은 짝꿍을 사귀어 혼인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 어버이가 될 때에, 내 아이한테 어떠한 삶말과 삶책과 삶꿈과 삶사랑을 물려줄 수 있느냐를 찾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라 할 때에는 “어른을 지키는 문학”이기도 하고, “사람을 지키는 문학”이기도 합니다. 이오덕 님이 돌아보기에, 이 나라 어른들은 어린이도 못 지키고 어른도 못 지키기 때문에 이렇게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어린이문학 비평을 내놓았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요즈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어린이문학이란 어린이만 즐기는 문학이 아닌 줄 아직 어른들은 제대로 깨닫지 못해요. 어린이부터 즐기는 어린이문학이고, 글을 깨친 사람 누구나, 이를테면 여느 노동자나 시골 흙일꾼 누구라도 읽거나 즐기는 어린이문학입니다. 권정생 님이 이룬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즐기는 문학이 아니라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글’ 눈높이로 맞추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도 기쁘게 즐기는 문학이에요.

 곧,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일 때라야 어른을 지키고 사람을 지킵니다. 이 땅을 지키고 이 나라를 지킵니다. 핵무기나 군대가 이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이 이 나라를 지킵니다. 경제성장률이나 대기업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이 이 나라를 지켜요.

 이 나라를 지키는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참다운 길이 무엇인가를 밝히려고 1984년에 내놓은 책이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입니다.


.. 어린이문학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밑뿌리로 되어 있어야 하는 문학이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란 아이들의 귀여움에 빠져 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마음, 아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깊이 이해하여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 주고, 그들이 사람답게 자라나도록 하려는 정신이 곧 어린이 사랑이다 … 지금까지 학교에서 진행되어 온 사람됨을 짓밟는 시험경쟁 교육은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야 하겠다. 단편 지식을 집어넣고 외우는 경쟁 대신에 자발성과 자율성을 우러르고 창의성을 뻗쳐 주는 종합 사람교육으로, 물질 가치만을 가장 높게 생각하는 교육에서 정신 가치를 탐구하는 철학교육과 예술교육으로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어린이문학인이라면 마땅히 어린이가 참되게 자라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고, 이를 없애려고 애쓸 것이다 … 어린이교육에서 철학이고 과학이고 역사고 모두 문학으로 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어린이문학은 철학과 종교와 과학과 역사와 어학 들을 모두 아우르며 그것을 이론으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학으로 진리로 깨닫게 하는 데 귀한 값어치가 있습니다 ..  (209, 256∼257, 264쪽)


 2010년에 이르러 책이름이 바뀐 채 다시 나옵니다. 다시 나온 책을 새롭게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2010년에 이 책에 새 이름을 붙여야 마땅한지 찬찬히 돌아봅니다. 이제, 이 나라 어린이는 어느 만큼 지킨다 할 만하니까, “삶을 가꾸는”이라는 이름으로 고칠 만한지 가누어 봅니다.

 이 나라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어린이 삶을 꾸리면서 어린이다운 사랑을 마음껏 누리거나 나누면서 활짝 웃음꽃을 피우니, 이제는 “어린이를 지키는” 일은 안 하거나 살짝 손을 내려놓아도 될는지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낮은학년부터 거칠거나 막된 말을 쉬 내뱉는 아이들이 서울부터 제주까지 가득가득한데, 이 나라에서 “어린이를 지키는” 일은 그만두거나 그치거나 멈추어도 될 만한가 헤아립니다. 초등학교 영어 교육에 뒤이어 초등학교 한자 교육까지 다시 시키려 하는 정부요 언론이요 학습지회사요 교사요 지식인이요 어버이인데, 어느 누구도 “어린이를 지키는” 데에는 마음을 안 쏟아도 괜찮은지 알쏭달쏭합니다.

 어린이한테 착한 삶과 참다운 넋과 아름다운 꿈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거나 함께하는 어른이 거의 안 보이는데, 이제는 “어린이를 지키는” 일은 이름부터 그닥 알맞지 않다고 여기는 일이 옳거나 바르거나 괜찮은지 아리송합니다.


.. 어린이문학을 신앙처럼 믿고 평생을 가난한 겨레의 어린이를 생각하며 살아가신 (이원수) 선생은 겨우내 차가운 몸으로 언 땅에 나 있는 밀과 보리를 덮어 주고 나뭇가지를 안아 주다가 드디어 봄이 오자 녹아 버리는 때묻은 눈 바로 그것이었다 …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에 나오는) 이쉬가 온갖 문명의 이기를 보았을 때, 어떤 것은 재미있게 여기고 어떤 것은 놀라워 하지만, 다른 어떤 것은 대수롭지 않게, 또는 시시하게 여기는 것이 참말 재미있다. 그런 이쉬의 취향을 샅샅이 살펴보면 문명 세계의 빈 구멍이 남김없이 드러날 것 같다 … 내가 보기로 이쉬의 이런 취향은 오늘날 눈먼 기계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한 말없는 철학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1911년 황금문 공원에서 해리 파울러가 대륙횡단 비행을 위해 이륙했을 때 모든 사람이 흥분했지만 이쉬만은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만일 이쉬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온갖 원자무기와 우주항공 물체에 대해서 한층 더 차가웠을 것이 틀림없다 ..  (307, 508∼509쪽)


 어린이를 안 지키면 사랑할 줄 모릅니다. 어린이를 안 지키는 어른은 어린이도 어른도 사랑할 줄 모릅니다. 지키는 일은 감싸고 도는 일이 아닙니다. 지키는 일은 울타리를 치는 일이 아닙니다. 지킨다 해서 예방주사를 놓는다거나 방부제를 먹이는 일이 아닙니다.

 지키는 일이란 사랑하는 일입니다. 지키는 일이란 아이 스스로 메마르거나 거친 이 땅에서 씩씩한 몸가짐과 맑은 마음가짐으로 착한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도록 보살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문학을 참답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중학교 1학년이 되더라도 어린이문학을 실컷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니 갑작스레 청소년문학만 즐겨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즐기는 문학입니다. 회사원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즐길 어린이문학이고, 할머니와 아저씨와 아줌마와 할아버지가 함께 즐기는 어린이문학이에요.

 청소년문학이란 청소년부터 즐기는 문학입니다. 어른문학은 말 그대로 어른부터 즐기는 문학이 되겠지요. 어른문학을 쓰거나 즐기려면, 어느 어른이더라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거치니까, 어린이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예쁘게 바탕이 될 때라야 비로소 예쁘게 어른문학을 꽃피웁니다. 어린이문학을 지키지 않는 터전에서 어른문학도 어른사회도 지킬 수 없하고, 지킬 힘을 스스로 북돋우지 못합니다. (4344.7.11.달.ㅎㄲㅅㄱ)


― 삶을 가꾸는 어린이 문학 (이오덕 글,고인돌 펴냄,2010.7.20./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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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뒷거울


 버스와 전철과 기차를 멀리하면서 자전거를 즐겨타던 2004년부터 내 자전거 손잡이에 붙였으나 이리 부딪히고 저리 넘어지며 깨진 ‘자전거 뒷거울’에 들인 값을 어림하면 (백만 원이 넘는) 꽤 괜찮은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하고 돈이 남아 20인치 자전거를 한 대 더 장만할 수 있다. 뒷거울 없이 잘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뒷거울을 꼭 붙이려고 한다. 여느 자전거꾼은 나처럼 자전거를 탈 일이 없을 테니까, 뒷거울이 굳이 없어도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는지 모른다. 나는 더 빨리 달린다든지 아주 한갓지게 다니는 자전거가 아니다. 살아가며 늘 타야 하는 자전거요, 집일을 도맡는 일꾼이라서, 내 몸이 다치면 우리 집에는 큰일이다. 시골길과 국도를 자주 달려야 하고, 도시나 읍내로 나아가면 자동차 물결하고 뒤섞여야 하는 터라, 여기에 수레를 달아 아이와 함께 다니기 때문에, 뒷거울로 틈틈이 뒤를 살펴야 한다.

 고개를 홱 뒤로 젖히며 뒤를 살피면 한결 잘 보인다 할 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가는 앞에서 뭐가 튀어나올는지, 또 길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놓치기 일쑤이다. 며칠 앞서부터는 뒷거울로 아이를 살피는 일이 퍽 재미나다고 느낀다. 아이는 제 아버지가 고개도 안 돌리면서 어떻게 제가 수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아챌까 놀랍게 여길는지 모를 터이나, 뒷거울로 늘 지켜보니까 코를 후비든 꾸벅꾸벅 졸든 수레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든 얼음과자막대기를 입에 물고 장난을 하든 금세 알아챈다.

 자전거 뒷거울은 이 나라 자동차들이 너무 무섭고 무시무시하게 내달리기 때문에 꼭 붙이려 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만든 뒷거울은 찾기가 아주 어렵고, 값이 좀 세다. 자전거를 얌전히 세웠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툭 치고 지나가며 깨진 적이 꽤 되고, 바람에 자전거가 휘청거려 넘어지며 깨진 적 또한 잦다. 그나저나, 자전거를 한창 달리다가 뒷거울로 아이가 어떻게 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나날이 새롭게 즐겁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전거 손잡이에 달린 뒷거울로 제 아버지가 오르막을 어떤 얼굴이 되어 헉헉거리며 오르는지, 또 내리막에서는 어떤 얼굴로 바뀌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겠지. (4344.7.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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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7-12 11:06   좋아요 0 | URL
ㅎㅎ 자전거 뒤의 따님 얼굴이 넘 귀여워 보이네요^^

파란놀 2011-07-12 16:43   좋아요 0 | URL
작은 사진이지만,
얼음과자 막대기를 입에 문 모습입니다.. -_-;;;
 



 30만 원


 집에서 쓰는 셈틀이 갑자기 맛이 간다. 풀그림이 담겨 셈틀을 움직이는 저장장치가 더는 돌아가지 않는다. 어떻게 되살릴 길이 없고 손쓸 길이 없다. 자전거 수레 뒷자리에 셈틀을 싣는다. 아이는 수레 앞자리에 태운다. 읍내 셈틀집에 들고 가서 맡긴다. 읍내에 나가는 길에 수레가 꽉 찬 느낌이다. 수레 뒤쪽에 수박 한 통보다 더 무거운 셈틀이 버티니, 오르막을 오를 때에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하다. 그래도 빗길 오르막을 다 올랐고, 구름이 포근하게 감싸는 야트막한 음성 멧봉우리를 아이랑 함께 바라볼 수 있다. 숯고개 꼭대기에서 살짝 다리를 쉬면서 아이한테 저 멧자락이랑 구름을 보자며 이야기한다.

 이윽고 가게 일꾼한테는 낮밥 먹을 때가 되기에 다시금 발판을 밟는다. 이제는 뒤에서 수레를 밀어 주는 자전거가 된다. 오르막과 달리 내리막은 금세 휭 하고 내려온다. 곧 읍내에 닿고, 셈틀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셈틀을 꺼낸다. 셈틀을 맡기면서 다 고친 다음에는 짐차에 실어 가지고 와 달라고 이야기한다. 도무지 다시 들고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한창 저장장치를 만지작거리던 셈틀집 일꾼은 이 녀석을 되살리기 어렵겠다고 말한다. 되살리는 데에 보내도 다 되살리기는 힘들 텐데 30만 원이 든단다. 한숨을 내쉬며 망설인 끝에, 30만 원은 다음에 어찌저찌 살림돈을 조금 모으고 나서 들이기로 하고, 아이 어머니가 쓸 셈틀을 하나 새로 장만하는 길을 찾기로 한다. 새로 셈틀 하나 장만하는 데에 저장장치 1테라를 더 붙여 46만 원이 든단다.

 읍내 가게에서 가래떡을 산다. 저녁에는 굵은 가래떡을 잘게 썰어 감자떡볶이를 해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빗줄기가 그친다. 아까 지나온 숯고개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아이는 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4344.7.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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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11 17:32   좋아요 0 | URL
왠만하면 물건을 고쳐서 사용하고 싶어도 요새는 참 희안하게도 새걸로 사게끔 하는 요상한 상황이 많습니다-_-; 기왕에 정도 들었고, 사용법도 익숙한 물건인데다가 어쩔수없이 수리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칠수 있었으면 더 좋겠는데 말입니다.

파란놀 2011-07-11 21:08   좋아요 0 | URL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새로 쓰고 새로 버려야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맞추어지잖아요. 버리고 새로 사야 경제성장률도 올라가고요......

카스피 2011-07-12 11:05   좋아요 0 | URL
뭐 저도 오래된 컴이 있지만,이젠 거기 맞는 부품도 안나와서 오히려 사는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25만원짜리 노트북을 이마트에서 행사했는데(내요이 좀 복잡하죠.원래는 55만원인데 우리 카드를 사용하면 30만원 상품권을 준다고 하더군요),살까 말까 망설이다 못샀읍니다.역시 돈이 문제에요 ㅜ.ㅜ

파란놀 2011-07-12 16:44   좋아요 0 | URL
더 좋기로는 타자기,
가장 좋기로는 손이지 싶어요...
컴퓨터는 참...

카스피 2011-07-12 17:15   좋아요 0 | URL
타지기도 예전에 써봤는데 이거 글자 하나 틀리면 수정하는 것이 넘넘 힘이 드는게 단점입니다ㅜ.ㅜ
 
荒木經惟ト-キョ-·アルキ (とんぼの本) (單行本)
荒木 經惟 / 新潮社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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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나게 살아가며 재미나게 사진찍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9]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


 1940년에 태어나 젊은 날부터 사진을 찍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2009년에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라는 자그마한 사진책 하나를 내놓습니다. 1964년에 사진상을 한 번 받고, 1971년에는 혼인나들이를 한 이야기를 당신 돈으로 1000권 내놓기도 했다니까, 2009년에 내놓은 《ト-キョ-·アルキ》는 어쩌면 ‘아라키 사진삶 쉰 해’를 기리는 자그마한 선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보여준 사진삶을 다른 사진책으로 만난 이한테 《ト-キョ-·アルキ》는 좀 남다르다 싶은 사진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ト-キョ-·アルキ》는 책이름 그대로 ‘아라키’가 여태껏 내 나름대로 재미나게 살아온 나날을 재미난 발걸음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책이라 느낄 수 있어요.

 사진기 하나 목에 걸고는 도심지를 천천히 거닐면서 사진을 찍은 이야기를 그러모아 책 하나로 묶었다고 볼 수 있는 한편, ‘아라키는 이렇게 걷고 이렇게 만나며 이렇게 느껴 이렇게 나눈다’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이야기입니다만,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2007년에 내놓은 《ARAKI》(Taschen)를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없고, 1971년에 당신 돈을 들여 내놓은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어찌저찌 찾아내어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요즈음 어떠한 삶을 일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ARAKI》나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읽지 않고서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과 삶과 사랑과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를 읽을 때에는 오직 하나만 느끼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은 길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었기에 뜻있거나 뜻깊지 않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을 만나기 앞서 언제나 뜻있고 뜻깊던 길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든, 다른 누군가가 사진으로 담든 한결같이 뜻있고 뜻깊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어떠한 얼거리와 넋으로 사진으로 담든,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마다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게 아끼면서 보살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이제껏 살아오며 일군 이야기 가운데 한 자락을 고맙게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고맙게 얻은 사진을 그러모아 내놓은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사진책 하나에 그러모인 숱한 사람들 숱한 삶과 사랑 이야기를 고맙게 들여다보면서 생각날개를 펼칩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숱한 사람들 삶자락 이야기 가운데 귀퉁이를 예쁘게 바라보면서 담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읽는 사람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 눈썰미 가운데 한 조각을 아리땁게 읽으면서 가슴이 벅찹니다.

 어느 누구 삶이라 하더라도 똑같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삶이 없고, 사랑스레 담지 못할 삶이 없습니다.

 도쿄 한복판에도 있다는 가난한 사람들 뒷골목이라 해서 후줄근할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적어 살림살이가 후줄근하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인걸요. 도쿄 변두리에도 있다는 돈있는 사람들 복닥거리는 눈부신 길거리라 해서 돋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많아 한밤에도 불빛이 번쩍거리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지 않으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사랑스레 살아가는 기운을 느끼면서 사랑스레 살아가는 손길로 담은 사랑스레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재미나게 살아가는 얼을 받아들이면서 재미나게 살아가는 손놀림으로 담은 재미나게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주문을 받아 멋들어지게 찍어야 하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멋들어지게 보이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랑하는 짝꿍이랑 살아가며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담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사랑스레 보이는 아이 모습이 빛나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람이 선 삶자리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마주하는 삶자락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삶터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일본 도쿄라 해서 더 대단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한국 괴산이라 해서 더 시골스럽거나 투박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내 넋과 얼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는 사진이기에 꼭 도시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서 반드시 멧골스럽거나 바닷가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품는 꿈과 돌보는 넋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좋아하는 길과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사진이에요.

 제주섬에서 살아가거나 제주섬을 자주 찾아가지만, 정작 제주섬 속내를 사진으로 못 담고 글로 못 쓰며 그림으로 못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거나 서울을 자주 들르지만, 막상 서울 속살을 사진으로 못 찍고 글로 못 옮기며 그림으로 못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늘 지내거나 오래 지내거나 자주 가까이한대서 더 잘 알지 않습니다. 늘 걷는 길이라서 더 꼼꼼히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처음 지나가거나 한 번 지나치는 길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밭에서 사랑씨가 자라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수없이 지나가는 길이라 하지만 내 마음밭에 아무런 씨앗 하나 자라지 않는 사람보다 살뜰히 느끼어 꽃피우는 이야기열매가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는 이야기합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재미난 눈썰미와 손짓과 발걸음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나저나, 큰아이를 짐받이에 붙인 걸상에 앉히고 작은아이를 등에 업은 채 바구니에는 먹을거리나 짐을 실은데다가 가방을 손잡이에 걸고 기어 없는 자전거를 달리는 아주머니는 언제 보아도 그지없이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가운데 이와 같은 자전거를 모는 분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4344.7.10.해.ㅎㄲ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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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ra 2011-07-1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같이 비오는 날, 따뜻한 녹차와 함께 보고싶은 책이네요. 리뷰보고 구매하고 싶어졌습니다.^^

파란놀 2011-07-11 17:11   좋아요 0 | URL
일본말을 할 줄 아신다면, 글을 읽으면서 한결 재미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머니 책읽기


 어린 날, 어머니가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글을 모르기에 책을 안 읽으셨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글을 읽을 줄 알고 쓸 줄도 압니다. 그러나,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집에서 마주보는 어머니 모습이란, 일하고 살림하는 모습입니다. 집일을 하고 부업을 하며, 집살림을 건사하는 모습입니다.

 두 아이하고 아픈 옆지기랑 살아가자니, 참으로 책을 손에 쥘 겨를을 낼 수 없습니다. 아는 분한테 아이 얘기를 알리자며 전화를 걸자고 생각하더라도 이 일 저 일에 치여 전화기 단추 누를 틈을 내지 못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어버이로 살아가는 자리에 서기 앞서 내 마음과 삶을 살찌우는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제금날 때까지 손에 책을 쥘 수 없는지 모른다고.

 집일에 바쁜 어버이가 신나게 함께 놀지 못하기에, 네 살 아이는 일찍부터 혼자 책읽기에 빠져들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린 날 집밖에서 동네 동무들이랑 신나게 뛰어놀거나 집안에서 만화책에 신나게 빠져들었습니다. 다만, 내 눈에는 일하는 어머니 모습이 늘 아로새겨졌고,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한테는 내 아이가 오늘날 저희 아버지한테서 일하는 모습이 아로새겨질까 궁금합니다. (4344.7.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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