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바보가 일으키는 전쟁에 바보가 휩쓸린다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1] 히로세 다카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 책이름 :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 글쓴이 : 히로세 다카시
- 옮긴이 : 위정훈
- 펴낸곳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1.3.28.)
- 책값 : 18000원



 (1) 흙을 일구던 사람한테는


 조선이나 고려나 백제나 부여나 발해 같은 나라가 이 땅에 섰을 때에 태어났다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어디에서 살았을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일본이 이 나라로 쳐들어온 조선 무렵이라면, 그무렵에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에서 어떻게 살아남거나 죽었을까 궁금합니다. 자그마한 땅에서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가 나뉘어 치고박으며 다투던 무렵에는 싸움터 병졸로 끌려가서 ‘수만 병사’라는 이름에 묻혀 주검이 되었을는지, 깊은 두메에 숨어 흙을 일구며 목숨을 이었을는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를 들여다보면 온통 싸우고 피가 튀기던 나날입니다. 나라땅이 얼마만한 넓이였나를 살피는 역사책이라고만 느낍니다. 임금님 이름이 어떠하고, 임금님을 모시는 이름난 신하가 누구이며, 이들이 어떤 정책을 내세웠는가 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역사책이며 역사학자입니다.

 한 나라를 버티거나 받치는 수많은 사람들 목소리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역사책인데, 이는 오늘날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2010년대 여느 한국사람 살림살이를 보여주거나 담는 인문책이 있을는지요. 아니, 수많은 사람 가운데 누구를 ‘여느 수수한 삶’이라 일컬을 만한지요.

 조용히 흙을 일구던 사람들한테 싸움이란 무슨 뜻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말없이 바다와 마주하며 고기를 낚던 사람들한테 다툼이란 무슨 소리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는 왜 백제를 넘보고, 신라는 왜 고구려를 넘보았을까요. 저마다 제 터전에서 예쁘게 살아가면 될 노릇이 아닐까요. 고대국가라느니 근대국가라느니 하지만, 이러한 나라이든 저러한 나라이든 ‘갖춘 무기’만 다를 뿐, ‘여느 수수한 흙일꾼’을 불러들여 총이나 칼이나 창을 쥐도록 한 다음, 뜻없고 값없이 죽도록 내몰았다고 느낍니다. 천리장성을 쌓느니 만리장성을 쌓느니 하지만, 무기를 갖추거나 무기를 앞세우기 앞서, 서로서로 제 보금자리를 알뜰히 사랑할 노릇이 아닌가 싶어요.


.. (베트남전정 때) 마을이 완전히 불타 버리자, 미군은 언덕 주변에 구덩이를 파고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녀를 구덩이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두 아이를 구덩이 앞에 세웠다. 그러고는 아이의 얼굴이 거의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총탄을 쏘아 벌집을 만든 뒤, 손발이 너덜너덜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곧바로 구덩이 속에서 여자의 격렬한 비명이 들려왔다. 미군은 얼른 총을 삽으로 바꿔 쥐고서 그대로 흙을 덮어 구덩이를 완전히 메우고 발로 밟다 다진 다음, 살아남은 3명의 남자를 포로로 잡아 행군을 계속하였다. 저 멀리 수풀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기는 오늘 밤 정글 속 맹수의 먹이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날 석양이 질 무렵, 행군하던 부대는 도중에 미군 헬리콥터를 만나자 포로를 끌고 가라면서 마을 남자들을 넘겼다. 헬리콥터는 포로들을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지만, 잠시 후 상공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소리를 따라 올려다보자 헬리콥터에서 사람의 몸뚱이가 아래로 우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세 구의 몸뚱이는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고, 그 중에 하나는 머리가 잘려서 멀찌감치 튕겨 날아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 1975년의 인도네시아 침공 이래 격렬한 무차별 공격을 받아 온 동티모르에서는 고문과 강간이 일상다반사가 되었고, 모든 생활이 파괴된 채로 전쟁 상태가 계속됐는데, 사망자 수가 25만 명에 이른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전쟁이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25만 명의 사람이 살해되었지만, 동티모르가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지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  (22∼23, 139쪽)


 인문책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출판사,2011)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현대전쟁이든 근대전쟁이든 고대전쟁이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서로서로 죽이는 짓입니다. 그러나, ‘여느 수수한 남자 어른’이 스스로 나서서 싸움터에 나간다거나 싸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언제나 ‘임금님’이나 ‘가장 꼭대기에 앉은 권력자’가 싸움을 일으킵니다.

 베트남이 일으킨 베트남전쟁이 아닙니다.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던 프랑스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고,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난 베트남을 프랑스한테서 이어받아 식민지로 삼으려 하던 미국이 새삼스레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면서 한 나라가 ‘두 갈래 믿음’을 품어 서로 쪼개지도록 내모는 힘세고 무기 많이 갖춘 큰 나라입니다. 남녘과 북녘도 매한가지예요. 한 나라 안쪽에서도 군국주의와 평화주의가 부딪히도록 내몰고, 두 나라 사이에서는 서로 무슨 주의인가에 따라 맞서도록 내몹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라 하건 공산주의라 하건, 자유주의라 하건 사회주의라 하건, 서로서로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이라면 서로서로 다른 삶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보듬을 노릇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똑같은 삶이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른 모습과 이야기와 꿈을 사랑하거나 아껴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르고, 여자와 남자는 다릅니다. 어른과 어린이는 다르며,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다릅니다. 바닷가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랑 들판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랑 멧자락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사뭇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삶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면서 서로를 보살필 노릇입니다.


.. 핵무기는 대체 여태껏 무엇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는 것인가? 놀랍게도 “핵무기는 핵전쟁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핵무기가 없으면 당연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83년까지 6개국이 총 약 1300개의 원수폭을 이 세상에서 실험적으로 폭발시켰고, 그 사이에 300회의 전투를 치렀지만 원수폭은 단 1개도 전장에서 폭발하지 않았다. 전장과 폭발 지점이 일치하지 않는 무기, 그것이 바로 핵무기이다. 세계의 수많은 정치가들과 군인들은 그런 효율이 0인 무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고 연구자를 투입했다 … 이만큼의 핵무기가 생산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돈줄은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세금이다 … 거액의 돈이 미사일 제조 관련 회사로 흘러들어갈 것은 불 보듯 뻔한데,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160∼162쪽)


 먼 옛날 중국 이야기를 빌지 않고 한국 이야기를 빌어도 알 만한데, ‘멧골에 들어서면 범한테 잡아먹힌다’지만 ‘세금이 더 무서웁기에 범한테 잡아먹히더라도 멧골에 들어간다’던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때에는, 고려 때에는, 신라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스스로 살림을 일구지 않으며 나라일을 돌본다는 임금과 신하와 심부름꾼을 거느린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날 정부와 공공기관도 우리한테서 거둔 세금으로 정책을 펼칩니다. 여기에다가 군대를 두어야 하니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고, 군대를 더 키워야 한다니까 세금뿐 아니라 사람까지 끌려가야 합니다.


.. 1952년 3월, 마침내 벨기에의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이 소문을 듣고 조사단을 한국에 급파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교의 교수 하인리히 브란츠바이너가 단장을 맡았고, 로마 대법원 변호사 이외에 영국·프랑스·벨기에·중국·폴란드 등 각국의 전문가들이 조사단에 동참했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급성 콜레라·페스트·티푸스·이질 등 다수의 전염병균이 공중 낙하물에서 검출되었고, 그 낙하물은 쥐·파리·빈대·거미·투구벌레·조개·식물류 등 다양했다. 게다가 독가스탄도 잇따라 발견되었다. 조사단은 이 모든 것들이 미군의 비행기에서 떨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1952년만이 아니라, 그 전년도에도 수 차례 사건이 발생했음을 확인한 증거를 갖고 돌아갔다 … 한국전쟁에 임한 미군은 옛 관동군 이시이 시로와 옛 나치군 발터 슈라이버의 자료를 이미 수중에 넣고 있었다 … 미국 군부가 범죄를 전범까지 통째로 사들여 세균무기 기술을 손에 넣고 있었다 …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경험한 학살사엔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미국의 세균과 독가스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고엽제 다이옥신과 독가스,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의 고엽제와 독가스, 아프리카 각지의 독립전쟁에서 포르투갈의 고엽제, 앙골라 분쟁에서 남아공의 독가스 사용이 악명 높다 ..  (167∼169, 174쪽)


 전쟁은 돈 때문에 터집니다. 일본이 한국으로 쳐들어오든,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가든, 고구려가 중국으로 땅을 넓히려 하든, 돈을 더 거머쥐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돈을 더 거머쥐려는 전쟁은 사람들을 죽이고 죽습니다. 사람들 핏값이 모이는 자리에서 돈을 그러모읍니다.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 돈(세금)을 긁어모읍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동안 무기를 만들거나 사고팔면서 돈이 흘러넘칩니다. 전쟁을 일으켜 숱한 사람이 죽고 쓰러지면서 돈이 쌓입니다.

 나라를 지킨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애국이요 충성이요 크게 외치지만, ‘사랑한다는 나라’에서 ‘수수한 여느 사람’이 다 죽거나 다치거나 쓰러진다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돌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총을 든 사람 앞에서 총을 들어야 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습니다. 총을 든 앞사람이든 총을 든 나라 하든 밥을 먹어야 나를 지키고 내 살림을 꾸립니다. 밥을 먹으려면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흙을 안 일구고 총을 만들거나 총을 쥔다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아요. 총을 들며 ‘적한테서 나를 지킨다’고 하자면, 누군가 ‘총을 든 나와 적군 몫’으로 흙을 일구면서 밥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키거나 사랑할 뿐입니다. 군대가 생기거나 10만 병력을 일으킨다 해서 나라사랑이나 나라지킴이 되지 않습니다. 세금 짐을 덜거나 없애야 나라사랑이나 나라지킴이 됩니다. 이웃나라가 배를 곯다가 쳐들어오기 앞서, 내 터전에서 내 땅을 사랑하며 일군 곡식을 기꺼이 나누면 됩니다. 밥 열 술 뜰 그릇에서 한 술이나 두 술을 덜어 나누면 돼요. 함께 살아가고 나란히 사랑할 길을 찾아야 즐거워요.


 (2) 한국땅에서 살아갈 아이한테는


 우리 집에 찾아온 둘째 아이는 사내입니다. 병원에 가서 옆지기 몸을 살핀 적이 없기 때문에 사내가 태어날는지 계집이 태어날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사내보다 계집이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사내로 태어날 때에는 한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군대에 끌려가는 일’ 때문에 걱정스럽거든요.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되지 않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야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군대를 다녀오는 일은 ‘나라사랑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 집안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스무 살 푸르디푸른 젊은이한테 ‘세 해 동안 꼼짝 말고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살아라’ 하는 일은 아주 좋으면서 반가운 ‘나라사랑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나라사랑일 때에는 우리 둘째를 얼마든지 스무 살 젊은 나이에 푸른 논밭과 파란 바다로 보내겠어요. 세 해를 지낸대서 흙일이나 바다일을 알 수 없으니 다섯 해쯤은 지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살아간다’ 할 때에, 아이만 시골로 보내 흙일이나 바다일을 시키기보다 함께 시골로 갈 때에 훨씬 좋을 테니, 아쉬움 없이 시골살이를 하러 집을 옮기리라 생각합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흔히들 말하는 ‘전후 상태’가 결코 아니다. 지구는 몇 십 일에 한 번씩 전쟁을 한 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로 ‘하루도 쉬지 않고’전쟁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 한 달 전의 전쟁조차도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흥분 때문에 빛이 바래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 우리가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오늘 낮에 일어난 잔학한 사건뿐이고, 이러한 사건이 쉼 없이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그 연속성을 알아차릴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  (136, 140쪽)


 군대라는 곳은 군인을 키워 거느립니다. 군인이란 총이나 칼이나 대포를 다루는 재주에 길들어진 사람입니다. 총이나 칼이나 대포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듭니다. 곧, 군대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곳입니다.

 오직 사람을 죽입니다. 첫째도 둘째도 막째도 사람을 죽입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사람을 잘 죽여야 칭찬을 받습니다. 아니, 군대에서 군인이란 사람을 잘 죽이지 못하면 바보요 멍청이요 얼간이 소리를 듣습니다. 군대에서 총칼을 잘 휘두르지 못하거나 주먹질을 잘 해내지 못하면 ‘고문관’ 딱지가 붙이면서 푸대접과 따돌림에 시달려야 합니다.

 군대라는 곳은 언제나 적군을 만듭니다. 군대에 평화란 없습니다. ‘유사시’라는 이름을 내걸어 삼백예순닷새 전쟁만 생각합니다. 전쟁만 생각하며 전쟁하듯 살아갑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따분해 할 뿐 아니라 ‘애써 익히거나 길들’인 ‘사람 죽이는 재주’를 써먹을 데가 없다고 여겨, 끝없이 훈련을 거듭합니다.

 비무장지대라는 ‘무장 아주 잘된 군사분계선’ 둘레에서는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이곳 비무장지대에서는 삼백예순닷새 내내 실탄과 총칼을 들며 북녘 군인하고 맞서니까 굳이 훈련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무장지대 뒤쪽 부대는 삼백예순닷새 내내 훈련을 합니다. 비상훈련을 하고 ‘훈련을 앞둔 훈련’을 하며, 대대·연대·사단·군단에 따라 훈련을 잇습니다. ‘훈련을 앞둔 훈련’이란 무엇이냐 하면, 혹한기훈력이나 혹서기훈련을 앞두고 ‘미리 겪는 훈련’이에요. 한 주에 걸쳐 벌이는 끔찍한 훈련을 앞두고 ‘체력단련’을 시킨다면서 한 달에 걸쳐 ‘훈련을 앞둔 훈련’을 합니다.


.. 인간으로서 오감을 자극하는 무기야말로 그들의 성에 차는 것이다. 고전적인 훈련, 고전적인 전투, 고전적인 무기, 그것이야말로 군인의 전통성을 지키고 자신들의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라고 많은 장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아마도 600만 명이라는 절대적인 숫자보다, 한창 일할 인간의 지혜가 국방에 박탈되고 만다는 게 소련 문화에 미치는 훨씬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진리가 아니라, 거기에 쓰인 주장대로 정치가와 군인이 행동함으로써 지구가 온통 학살의 피로 뒤덮인 게 맞다. 지금껏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 학살·전쟁사였다는 뜻이다 ..  (164, 260, 278쪽)


 나는 우리 둘째가 ‘사람 죽이는 재주’에 길들어야 하는 군대에서 가장 젊으며 푸른 나이에 바보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둘째가 ‘사람 사랑하는 손길’로 둘레 숱한 이웃하고 착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흙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고, 흙을 일구는 아이로 살며, 흙으로 조용히 돌아가 곱게 숨을 다하는 아이로 스며들기를 꿈꿉니다.

 자가용을 몰기보다 자전거를 모는 아이로 살아가고, 돈을 더 벌기보다 사랑을 더 나누는 아이로 지내기를 비손합니다. 딸로 태어난 첫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아이가 이 땅에서 사랑꽃과 믿음나무를 일구는 아름다운 삶이어야 어버이로서 흐뭇하지, 이 아이들이 어설프거나 섣부른 나라사랑에 휘둘린다면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두 아이 어버이는 가장 젊으며 빛나던 때에 비무장 아닌 비무장지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인병기가 되어 살아야 했기 때문에, 두 아이 앞날에 이렇게 끔찍한 살인병기 군대 굴레가 들씌워지지 않도록 보살피면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 1년 간의 군사비 지출은 지구 전체로 이미 200조 엔을 훌쩍 넘어섰으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해마다 1인당 약 4만 엔을 내온 셈이다. 이 돈에 매해 학살용 무기 사용에 지출되고 있다 … 모든 무기는 원래부터 사용될 운명에 있다. 무기를 갖고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군사력이 전쟁을 억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이 아슬아슬하게 군사력의 폭주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반드시 군국주의와 평화주의의 격렬한 갈등이 확인된다 … 세계는 사랑만으로 구할 수 없다. 우리가 국방예산에 쏟아붓고 있는 돈이 군인사업을 살찌우고 죽음의 상인을 배불리고 있는 한, 아무리 모금을 해 봤자 의미가 없다 … 군국주의는 하나의 사업이다. 사업이므로 유대인이 옛 나치와 손을 잡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또한 사업이라면 CIA가 다양한 공작을 하고, 그 모든 것이 자유주의를 지킨다는 목적에서 실행했다면 실패로 돌아간 역사마저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전쟁을 만들어 냄으로써 멋지게 사업을 성공해 왔던 것이다. 쉬지 않고 긴장 상태를 만들어 군인이 생계를 잃지 않도록 유지해 가는 게 사업의 목적이라면, 오늘날까지 계속된 전 세계 군인의 사업은 참으로 번창해 온 것이다 ..  (183, 189, 190, 228쪽)


 히로세 다카시 님이 쓴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덮습니다. 히로세 다카시 님은 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을 썼는지 가만히 돌아봅니다. 전쟁이 터지는 까닭을 캐내거나 밝히려고 이 책을 썼을까요. 권력자와 부자가 전쟁산업으로 떼돈을 벌어들이는 못난 짓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보여주려고 이 책을 썼을까요.

 글쎄, 모르는 노릇입니다. 바보스러운 전쟁 권력자를 나무라는 뜻이 아예 없다 할 수 없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입니다만, 두 아이 어버이로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읽으면서 꼭 한 가지만을 생각했습니다. 참말 우리 두 아이부터 전쟁놀이·전쟁놀음·전쟁무기·전쟁준비·전쟁군대·전쟁세금 따위를 사르르 녹이면서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쁜 삶길을 걸어갈 씩씩한 아이로 꿈꾸도록 손을 맞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싸움을 일으킬까? 돈을 더 거머쥐려고 하지요. 사람들은 왜 돈을 더 거머쥐려고 할까? 바보라서 그렇지요. 사랑을 모르고 꿈이 없으며 삶을 잊은 바보라서 그렇지요. (4344.6.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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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0607 2011-06-0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의미심장하군요... "바보가 일으키는 전쟁에 바보가 휩쓸린다..."

파란놀 2011-06-07 16:18   좋아요 0 | URL
더도 덜도 아니거든요.

전쟁은 바보가 일으키고
전쟁에 바보가 휩쓸려요.

입시지옥은 바보가 만들고
입시지옥에 바보가 휩쓸려요......
댓글저장
 
갈매기의 꿈 에버그린북스 1
리처드 바크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조나단은 갈매기 아닌 사람 이야기
[헌책방에서 찾아 읽기 1] 리처드 바크, 《갈매기 조나단》



- 책이름 : 갈매기 조나단
- 글 : 리처드 바크
- 옮긴이 : 김진
- 펴낸곳 : 삼중당 (1975.7.1.)



[130쪽] “한 마리의 새에게, 그가 자유롭고, 조금만 시간을 들여 연습하면 제 힘으로 그걸 실시할 수 있다는 걸 납득시키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니. 이런 일이 왜 그처럼 어려운 것일까?”

[131∼132쪽] “플레처, 너는 그런 게 싫겠지! 그건 당연해, 증오나 악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너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그리고 갈매기의 본래의 모습, 즉 그들 모두 속에 있는 좋은 것을 발견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돼. 그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해.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런 거야. 그 점을 터득하기만 하면,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일이야. 나는 거칠고 젊은 갈매기를 기억하고 있어. 이름은 그렇지, 가령 플레처 린드래도 좋아. 추방당해서, 죽도록 싸울 각오로, ‘먼 벼랑’에 자신의 괴로운 지옥을 세우려 했었지. 그게 지금 여기서는 어떤가, 지옥 대신 자신의 천국을 만들어 가고 있고, 그 방향으로 갈매기떼를 인도하고 있지 않아.”

[132∼133쪽] “이미 네게는 내가 필요치 않아. 네게 필요한 것은, 매일 조금씩 자기가 진정하고 무한한 플레처임을 발견해 가는 일이야. 그 플레처가 네 교사야. 네게 필요한 것은, 그 스승의 말을 이해하고, 그가 명하는 바를 행하는 일이야 … 그들에게 나에 관해 어리석은 소문을 퍼뜨리거나, 나를 신처럼 받들게 하지 말아 주게. 알겠나, 플레처? 나는 갈매기야. 나는 그저 날으는 것을 좋아해, 아마 … 알겠지, 플레처. 너의 눈이 가르쳐 주는 것을 믿어선 안 돼.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허위야. 너의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야.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찾아야 해. 그러면 어떻게 날으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 ★

 내가 태어난 해에 태어난 책을 처음 알아본 때는 아마 국민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도서라느니 명작이라느니 고전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습니다. 마침 우리 집에 삼중당문고로 조그마한 책이 하나 있었고, 이 책을 찬찬히 새겨 읽었습니다. 아버지가 읽은 책이었기에 집에 있었겠지요. 자유를 말한다느니, 자유로이 살아가는 넋을 말한다느니 하는 《갈매기 조나단》이라 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갈매기 한 마리처럼 훌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 갈매기라 하면 갈매기이지 왜 이런저런 ‘사람이름 같은 이름’을 붙이나 하고 궁금했습니다. 더욱이 갈매기 이름은 온통 서양사람 이름입니다.

 예나 이제나 ‘조나단’이라는 이름에 꽤 걸립니다. 내가 갈매기라 할 때에 어떤 이름을 얻을는지를 헤아리고, 갈매기는 서로서로 무엇이라 부를까를 생각하면, 갈매기 이름은 좀 달리 붙여야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씽씽이라든지, 날쌘이라든지, 미끈이라든지, 큰날개라든지, 작은부리라든지, 매서운눈이라든지, 하얀구름이라든지, …….

 자연에서 자연 가운데 하나로 살아가는 목숨이라면 자연에서 얻은 이름을 붙이며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지난날 북중미 토박이가 쓰던 이름처럼 말예요.

 《갈매기 조나단》을 돌이켜보면, 이 책을 쓴 분은 갈매기에 빗대어 사람살이를 이야기했다고 느낍니다. 책에는 갈매기들만 나오지만, 갈매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사람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해야 걸맞지 싶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다툼이나 미움이나 사랑이나 꿈이나 아름다움을 조곤조곤 나누고 싶었기에 이러한 책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스물 몇 해만에 다시 들추어 읽다가 덮습니다. 나는 내 아이한테 이 책을 물려줄 만할까? 내 아이한테 이 책을 읽혀야 할까? 썩 정갈하거나 깔끔하지 못한 옮김말이 내키지 않고, 굳이 책으로 읽히지 않더라도 시골자락 숲과 들에서 홀가분한 꿈을 하루하루 곱새기도록 이끌면 넉넉하지 않을까? (4344.6.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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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보며 열매를 못 맺고 멀미가 난다면
 [책읽기 삶읽기 61] 차은량, 《꽃멀미》(눈빛,2009)



 사진을 찍는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사진찍기를 놀이처럼 즐깁니다. 아무 손전화나 아이 손에 집히면 사진기 노릇을 합니다.

 사진찍기 놀이를 즐기는 아이는 사진찍기를 문화나 예술로 여기지 않습니다. 심심할 때에 갖고 노는 사진기로 여기고, 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진기로 생각합니다. 때때로, 망가져서 못 쓰는 필름사진기를 들고 사진찍기 놀이를 합니다. 아이로서는 사진을 찍어 어떤 그림을 맺어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쥐어 함께 놀 수 있으면 좋을 뿐입니다.

 아이한테 자그마한 디지털사진기를 사 줄까 어림해 보지만, 선뜻 장만하지 못합니다. 곧장 살림돈부터 팍팍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오래도록 갖고 놀 만한 작은 사진기 한 대를 선뜻 장만할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사진찍기를 하는 아버지 또한 필름사진을 찍을 때에 쓸 필름값을 대기 벅차 쉬엄쉬엄 찍습니다. 필름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돈이 얼마나 드는가를 느낍니다.

 디지털사진을 찍으면서 메모리카드 걱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디지털사진을 찍은 뒤에는 셈틀을 차지하는 파일을 헤아립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찍을 수 있는가를 곱씹고, 셈틀 저장장치가 다 차면 새로 마련할 일을 근심합니다.


.. 아끼던 카메라를 바꿨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업그레이드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몇 단계 다운을 시켰다. 작은 카메라 두 대를 거쳐 급기야는 내 처지에 과분한 카메라를 장만한 날부터 일 년 하고도 수 개월이 지나는 동안 카메라의 노예가 되어 간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 내지 못했다. 한 개의 렌즈만으로 버티겠다던 애초의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여유돈만 생기면 렌즈를 사들였다. 카메라 가방은 점점 덩치가 커지고 가방을 멘 어깨는 장비의 무게로 한쪽이 기울어졌다 ..  (28쪽)


 사진찍기를 하거나 사진찍기를 하려는 이들은 사진기와 렌즈를 장만합니다. 누군가는 여러 해에 걸쳐 돈을 조금씩 그러모아 장만하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카드를 긁어 장만합니다. 장만한 장비를 이내 팔고 다른 장비를 갖추기도 합니다. 사진기 회사에서 새로 내놓은 장비로 갈아타기도 합니다. 사진기 몸통과 렌즈를 여럿 갖추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몸통하고 렌즈를 하나만 갖추고, 누군가는 몸통하고 렌즈를 회사에 따라 숱하게 갖춥니다. 몸통과 렌즈를 하나만 갖춘대서 사진을 못 찍거나 잘못 찍거나 엉터리로 찍지 않습니다. 몸통과 렌즈를 숱하게 갖추었기에 사진을 잘 찍거나 훌륭히 찍거나 사랑스레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너그러운 사랑입니다. 사진은 내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한테는 시가 너그러운 사랑이고,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 노릇을 합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한테는 수필 한 꼭지가 사랑이 되고,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 구실을 합니다.

 시를 백 꼭지 쓰자고 다짐하면서 백 꼭지를 써내지 못합니다. 사진을 백 장 찍자고 다짐하면서 백 장을 찍지 못합니다. 부피로 시 백 꼭지를 채우거나 사진 백 장을 채우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다만, 내 마음을 드러낼 사랑스러운 시나 사진은 하루아침에 만들지 못해요. 내가 살아가는 결에 따라 차근차근 풀어내기만 합니다.


.. 내게는 사진 실력의 향상을 위해 바쳐야 하는 노력보다 카메라와 렌즈의 무게가 더 견뎌 내기 힘들었다 … 열다섯 살 즈음이었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에 어떤 소리들이 있을까 하는 문제로 단짝 친구 복희와 서로의 의견을 논한 적이 있었다. 노랫소리, 새소리, 물소리, 아가의 옹알이 소리에 이어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엄마가 용돈 주시려고 돈 꺼내는 소리’라고 말하자 복희는 ‘엄마가 밥상 차리는 소리’라고 응수했다. 복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나의 저속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물리고만 싶었다. 복희 못지않게 나도 밥상 차리는 소리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를 쳤던 것이다. ..  (29, 66쪽)


 시를 쓰는 솜씨는 키우지 못합니다.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재주 또한 북돋우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는 솜씨라든지 그림을 그리는 재주 또한 살찌울 수 없어요.

 때로는 손재주를 부려 멋들어져 보이는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나 사진이나 그림을 얻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빼어난 손놀림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을 빚기도 합니다.

 그런데, 멋들어져 보이는 작품을 시라고 일컬어도 될까 궁금합니다. 멋스레 보이는 작품이라 하면 사진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사진과 수필을 엮은 이야기책 《꽃멀미》(눈빛,2009)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차은량 님은 당신 삶결에 따라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더 잘난 사진이 아니고 더 못난 글이 아닙니다. 돋보이려 하는 사진이 되지 않고, 내보이려 하는 글이 되지 않습니다.


.. 고춧가루도 있고, 파·마늘도 있고, 마침 지난 조치원 장날 도가에서 사다 놓은 새우젓도 있으니 부추만 있으면 되겠다. 텃밭의 부추는 웃자란 순을 얼마 전 베어 낸 뒤로 아직 먹을 만큼 자라지를 못했다. 휑하니 차를 몰고 면소재지로 나가 부추 한 단을 사면서 김장을 담근다는 소문을 내고 왔다 ..  (114쪽)


 차은량 님은 당신이 살아온 결을 찬찬히 풀어놓기 때문에, 차은량 님이 사랑스레 살아온 나날을 사랑스러운 글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좁쌀뱅이나 꽁생원처럼 보낸 나날은 좁쌀뱅이나 꽁생원다운 글과 사진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차은량 님이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녹아들겠지요. 차은량 님이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다니기를 좋아하면 걷기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스며들겠지요. 차은량 님이 자가용을 씽 몰아 휭 오고간다면 자가용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배어들겠지요.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텃밭을 일구고 김치를 담그며 살림도 돌보는 차은량 님인데, 조치원 장날에 시골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오간다면 《꽃멀미》라는 사진수필은 어떤 모양새였을까 궁금합니다. “휑하니 차를 몰고 부추 한 단을 사”는 삶이 아니라 부추가 없으면 텃밭 둘레에서 다른 풀을 뜯거나 멧자락에 들어서 멧나물을 뜯어서 나물김치를 담그는 삶이라면, 《꽃멀미》라는 책이 아니라 ‘꽃소리’나 ‘꽃·새·메’ 같은 책을 내놓았을 수 있겠구나 느낍니다.

 스스럼없을 만큼 수수한 사진과 글이지만, 자가용을 휑하니 타고다니는 사람으로서 수수할 뿐입니다. 시골사람다운 수수함이나 살림하는 일꾼다운 수수함이 짙게 드리우지 못한 사진과 글입니다. (4344.6.4.흙.ㅎㄲㅅㄱ)


― 꽃멀미 (차은량 글·사진,눈빛 펴냄,2009.5.2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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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당개 책읽기


 서당개 세 해면 글을 왼다 했습니다. 서당 곁에서 글 외는 소리를 가만히 듣기를 세 해째 지내면 개조차 저도 모르게 서당글을 줄줄 왼다는 소리입니다. 이런 서당개 책읽기를 들며 곧잘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배운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서당개 책읽기는 책읽기가 아닙니다. 서당개 글외기는 배움 또한 되지 않아요. 뜻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없는 채 기계처럼 줄줄 욀 뿐입니다. 사랑이나 마음이나 꿈이 없는 채 똑같이 따라할 뿐입니다.

 서당개가 논밭개로 바뀐다면, 논밭개는 세 해 뒤에 호미질을 할 줄 알는지 궁금합니다. 논밭개가 바다개로 바뀌면, 바다개는 세 해 뒤에 낚시질이나 그물질을 할 줄 알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서당개 책읽기란 아주 무섭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서당 곁에서 지내는 개조차 세 해가 지나면 ‘좋은지 옳은지 바른지 착한지 참다운지 고운지’를 가리지 않고 글을 외기 때문입니다. 서당개가 외는 글이란 얼마나 좋거나 옳거나 바르거나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울까요.

 서당에서 제아무리 좋거나 옳거나 바르거나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다 하는 글을 읽힌다 하더라도 서당개는 좋은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옳은 넋이나 바른 매무새나 착한 얼이나 참다운 길이나 고운 몸가짐을 익히지 못해요. 서당 곁에서 세 해 지난 뒤에 글을 외는 개는 다른 곳에 가면 이내 다른 곳에서 흐르는 글에 익숙해집니다. 다른 곳에서 흐르는 글이 궂은지 뒤틀린지 모자란지 그릇된지 어긋난지 따지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서당개처럼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서당개가 아닌 집개가 아닌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옳은 길을 걸으면서 옳은 길을 아이가 느끼며 함께 웃고 울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부터 좋은 일을 흐뭇하게 하면서 아이 또한 곁에서 좋은 일을 흐뭇하게 고 조막손으로 조물락조물락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살아갈 뿐입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나날에 앞으로 맞아들일 일이나 놀이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버이 되는 사람이나 어른 되는 사람이나, 또는 교사나 교수나 강사 같은 자리에 서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서당개 책읽기를 시키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곁에서 지켜보거나 구경한대서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 몸에 걸맞게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희 몸뚱이에 알맞게 일손을 나누어 맡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몸을 움직여 스스로 겪거나 치러야 배웁니다. 눈으로 지켜보거나 귀로 듣는대서 배울 턱이 없습니다.

 서당개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서당개는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서당개는 서당글에 길들여졌을 뿐입니다.

 서당개와 같이 길들여지는 오늘날 아이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무서울 뿐 아니라 슬픕니다. 학원에 길들고 영어에 길들며 한자에 길들고 수많은 지식교육 그림책과 동화책에 길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더없이 무서우면서 슬픕니다. 왜 아이들하고 함께 삶을 나누지 못하는 어른이 되려고 하는가요. 왜 어버이와 교사 되는 이들은 당신 어버이와 교사 삶부터 참다이 사랑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느끼지 못하는가요. (4344.6.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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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9] 오줌그릇

 오줌그릇을 씻는다. 옆지기가 쓰는 오줌그릇을 씻고, 첫째 아이가 쓰는 똥오줌그릇을 씻는다. 옆지기가 쓰는 오줌그릇은 오줌을 여럿 눈 다음에 비우고 나서 씻는다. 첫째 아이가 쓰는 똥오줌그릇은 오줌을 두 번쯤 눈 다음에 비우고 나서 씻는다. 똥을 누면 곧바로 비운다. 오줌그릇을 비우고 나서 물로 헹구고 수세미로 오줌 기운이나 똥 기운을 닦곤 한다. 비가 내리고 나서 냇물이 불었으면 냇가에 흐르는 물에 오줌그릇을 대고는 맨손으로 훌훌 휘저으며 닦는다. 집안 씻는방에서도 수세미를 안 쓰고 그냥 맨손으로 닦곤 한다. 오줌그릇 닦은 손으로 빨래를 하고, 빨래를 한 손으로 쌀을 씻으며, 쌀을 씻은 손으로 밥을 하고, 밥을 한 손으로 둘째 기저귀를 갈며, 둘째 기저귀를 간 손으로 걸레질을 하고, 걸레질을 한 손으로 젓가락을 쥐며, 젓가락을 쥐던 손으로 책을 겨우 집어든다. 모처럼 낱말책을 펼쳐 ‘요강’이라는 낱말을 살핀다. ‘요강’은 한자를 빌어 이래저래 적기도 한다지만 토박이말이란다. 토박이말이면 토박이말이지 왜 굳이 한자를 빌어서 적어야 할까. 밥을 밥으로 적으면 되지 애써 ‘食事’로 적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오줌이 마려운 사람한테 “요의(尿意)가 있다”고 일컫는 병·의학 전문가들이 무섭다. (4344.6.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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