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잎에 감싼 버찌


 빗줄기가 거세게 퍼부으면서 전기가 똑 꺼진다. 두꺼비집을 열어 단추를 올려야 하겠기에 아이를 데리고 우산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다. 집 옆 밭을 빙 돌아서 간다. 두꺼비집이 이웃 밭 가장자리에 선 전봇대에 붙었기 때문이다.

 두꺼비집 단추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에 공무원들이 심은 벚나무마다 맺힌 버찌를 올려다본다. 알이 꽤 굵다. 까맣게 잘 익었다. 풀섶에서 칡잎을 몇 닢 딴다. 아이한테 칡잎을 들리고 버찌를 한 알 두 알 따서 올려놓는다. 어느새 아이가 두 손으로 감싸 쥘 만큼 모인다. 우리는 이만큼 먹고 나머지는 멧새가 먹으라 하자. 아이 손과 아버지 손은 버찌물로 짙파란 물이 들었다. (4344.6.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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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 내 친구는 그림책
토미야스 요우고 지음 / 한림출판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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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치는’ 그림책과 ‘교훈 어린’ 어린이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0] 후리야 나나·토미야스 요우코,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


 모든 책은 가르치는 책입니다. 모든 책은 배우는 책입니다. 어떠한 책을 읽더라도 가르침을 느낍니다. 어떠한 책을 읽히더라도 배울 수 있다고 깨닫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알쏭달쏭하지만, 학교나 집안이나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읽는 책이나 옛이야기를 다루면서 ‘교훈-교훈적-교훈성’ 들을 읊곤 합니다. 어린이책에 ‘교훈이 있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어린이책에는 ‘교훈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책이든 ‘가르침’이 없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느 책이든 ‘재미’ 또한 없을 수 없습니다. 모든 책에는 다 다른 가르침이 담기고 다 다른 재미가 깃듭니다. 그저, 모든 사람이 ‘모든 다른 책이 깃든 가르침과 재미’가 어떠한가를 ‘모두 다르게 살피거나 받아들여 삭일’ 줄 모를 뿐입니다.

 더 나은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더 나은 재미 또한 없습니다. 덜 떨어진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모자라거나 아쉬운 재미 또한 없습니다.

 심심하거나 밋밋한 맛이 좋은 맛일 때가 있습니다. 달콤하거나 달달해야 좋은 맛이지 않습니다. 멧자락에서 자라는 벚나무한테서 얻은 굵거나 작은 버찌를 아이랑 따서 오물오물 씹어 먹습니다. 버찌 맛은 달면서 시다가 떫습니다. 멧버찌는 이런 맛이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보리둑을 따서 먹을 때에도 보리둑은 또 보리둑대로 달근하다가 똘또름하다가 텁텁하면서 시원합니다. 앵두는 앵두대로 앵두 맛이고, 살구는 살구대로 살구 맛이며, 오이는 오이대로 오이 맛입니다.

 오이를 달근하게 한다면 오이가 아닙니다. 수박을 달다가 시게 한다면 수박이 아닙니다. 멧딸기는 멧딸기 맛이 있습니다. 두릅은 두릅 맛이 있어요. 며느리밑씻개나 씀바귀는 며느리밑씻개나 씀바귀 맛입니다. 쑥은 쑥다운 맛이요, 보리와 밀과 수수와 벼는 보리와 밀과 수수와 벼다운 맛이에요.

 다 다른 목숨은 다 다른 맛을 혀한테 베풀며 내 몸으로 들어와서 씩씩하고 맑은 기운이 나도록 돕습니다. 똑같은 푸성귀는 없고, 똑같은 고기 또한 없으며, 똑같은 밥이란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기에 똑같은 책이 없습니다. 똑같은 책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가르침이나 재미가 있을 수 없어요. 다 다른 책에는 다 다른 가르침이 다 다른 재미라는 옷(맛)을 걸치면서 녹아듭니다. 책읽기란,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결과 삶맛과 삶멋을 곱게 받아들이는 일이에요.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동화책이든 소설책이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가르침이 없다면 거짓이거나 엉터리이고, 재미가 없다면 나 스스로 잘못 읽었거나 엉뚱하게 읽은 셈입니다.


.. 북쪽의 깊은 산꼭대기에 삼나무 세 그루가 있고, 그 아랫쪽에 작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꼬마 요정 비비와 엄마 요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 마침, 도깨비는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바로 눈앞에 나타난 아이가 너무 맛있게 보여서, 커다란 냄비에 넣고 끓여서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깨비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꼬마 아가씨, 잠깐 우리 집에 놀러가지 않을래?” “예, 좋아요.” ..  (1, 4쪽)


 그러나 때때로 얄궂은 책이 있어요. 가르침도 재미도 없이 만들어 내놓는 책이 있어요. 이와 같은 책은 돈바라기 책입니다. 책을 팔아 돈만 벌어들이면 된다는 매무새로 만든 책이기에 가르침이건 재미이건 없기 일쑤입니다. 또는, 가르침만 너무 도드라지도록 하거나 재미만 크게 돋보이도록 하고 맙니다.

 제대로 된 책이라면 가르침이나 재미가 눈에 뜨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맛으로 먹는 밥이 아니라, 맛을 느끼면서 먹는 밥입니다. 가르침이나 재미로 읽는 책이 아니라, 가르침이나 재미를 느끼면서 읽는 책입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앞세운다면, 이러한 책은 처음부터 책다움이 없는 셈이요, 책다움 아닌 돈바라기에 휩쓸렸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아이한테 책을 읽히려는 어버이는, 어버이로서 ‘어른이 즐기는 책’부터 옳고 바르며 아름다이 ‘가르침과 재미’를 누리거나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끼리 먼저 헤아려야 해요. 가르침이나 재미 한 가지만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되거나 재미가 있는가 느껴야 해요.

 책은 왜 읽을까요. 책은 왜 읽힐까요. 책은 왜 쓸까요. 책은 왜 만들까요.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굳이 책이 없어도 됩니다. 책을 곁에 두지 않더라도 내 삶을 어여삐 여겨 사랑하는 나날이면 즐겁습니다. 내 삶을 알뜰히 아끼면서 내 이웃 삶 또한 살뜰히 보듬을 수 있으면 기쁩니다. 숲을 사랑하고 흙을 돌보며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별을 너른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으면 예쁩니다. 책이란 곧 햇살이요, 바람이거나, 물이고, 흙인 한편, 목숨입니다.


.. ‘억, 힘이 센 아이로구나!’ 비비는 씩씩하게 소나무를 메고, 놀란 도깨비 앞으로 와서 금방 땔감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깨비는 나무에 불을 지피면서 비비를 힐끗 보았어요 … 마침내 냄비 안의 물이 펄펄 끓었습니다. “자, 이제 물이 끓었으니 목욕을 하시죠, 꼬마 아가씨.” 도깨비가 말하자, 비비는 엄마가 하신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친절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비비는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먼저 하세요.” 그리고 비비는, 도깨비를 번쩍 들어 올려 냄비 안으로 ‘풍덩’ 집어던졌습니다 ..  (10, 21∼22쪽)


 그림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읽고 아이랑 함께 읽습니다.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은 그림결이 몹시 귀여우면서 줄거리와 생각밭과 마음씨가 한결같이 아리땁습니다. 그림결만 앙증맞다든지, 줄거리만 가르침에 젖었다든지, 얼거리만 재미나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골고루 사랑스레 어우러집니다. 즐거이 읽으면서 예쁘게 바라볼 수 있고, 신나게 넘기면서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삶과 꿈과 땀을 돌아봅니다. 멧골짜기에서 어머니하고 흙을 일구면서 보듬는 나날을 누리는 꼬마요정 비비는 하루하루 얼마나 새삼스러우면서 맑고 밝을까 되새깁니다. 내 몸에 고맙게 들어와 고맙게 기운을 북돋우는 밥 한 그릇처럼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기에, 꼬마요정도 엄마요정도 착하고 참다이 이웃을 사귀면서 숲을 아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 도깨비를 메고 온 비비를 보고 엄마 요정이 말했습니다. “비비야, 누구시니?” “예, 손님이에요. 목욕물이 너무 뜨거워서 엉덩이를 데었어요.” 엄마 요정은 도깨비 엉덩이에 약을 골고루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요정은 비비와 도깨비를 위해 참깨, 버섯, 산나물을 섞어 특별한 주먹밥을 많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  (28∼31쪽)


 요정이 되든 도깨비가 되든 뭐가 되든, 숲에서 살아가는 까닭이 있습니다. 나무하고 벗삼고 풀이랑 꽃이랑 동무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흙을 맨발로 밟고 흙을 맨손으로 비비면서 지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꼬마요정한테든 엄마요정한테든 자가용이나 빨래기계나 냉장고나 텔레비전이나 아파트나 주식이나 높은 연봉 일자리 따위란 부질없습니다. 은행계좌에 숫자들이 빼곡하기 때문에 꼬마요정과 엄마요정이 착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름난 대학교를 빼어난 성적으로 마쳤대서 꼬마요정과 엄마요정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깨비’를 아무렇지 않게 ‘좋은 손님으로 여겨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더 멋진 나무가 없습니다. 더 예쁜 꽃이 없습니다. 더 쓸모있는 풀이 없습니다. 나무이면 다 나무이고, 꽃이면 다 꽃이며, 풀이면 다 풀이에요. 질경이라서 숲길을 걸으며 안 밟고 망초라서 숲길을 거닐 때에 질근질근 밟아도 되지 않습니다. 강아지풀이라서 줄기를 똑 끊어서 놀고, 은방울꽃이라 그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풀꽃은 하나같이 예쁜 목숨입니다. 모든 목숨은 저마다 빛나는 삶입니다. 꼬마요정도 도깨비도 어머니가 너른 사랑과 깊은 믿음으로 오래오래 뱃속에서 돌보며 기쁘게 낳은 목숨이에요.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먹을 꼬마요정이자 도깨비입니다. 꾸지람을 들어야 할 때에는 꾸지람을 들어야 할 테지만, 살가이 손 맞잡으며 즐거이 어깨동무할 도깨비이고 꼬마요정입니다.

 꼬마요정은 도깨비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도깨비는 처음부터 꿍꿍이가 있었으나, 꼬마요정이나 엄마요정은 아무런 꿍꿍이도 눈속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보나 멍청이가 아닙니다. 도깨비이든 윷깨비이든 이웃이나 동무나 손님으로 여길 뿐입니다.

 힘이 세대서 누구를 괴롭혀도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대서 누구를 부려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이름이 높대서 누구를 깎아내려도 되지 않습니다. 얼굴이 예쁘대서 자랑하고 다녀도 되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대서 콧대를 높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사라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새로 배우면서 바지런히 땀흘리는 교사가 아니라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어버이 자리에 있기에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키울 수 없습니다. 나이나 호적에 따라 어버이가 아닌, 삶과 사랑에 따라 사람다운 어버이여야 비로소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키웁니다.

 어린이책은 누구라도 가르칩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와 어른을 가르칩니다. 어른책도 어른을 가르칩니다. 이야기책이든 문학책이든 그림책이든 시책이든 모두모두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가르침이란 내 삶을 다시 보고 이웃 삶을 새로 본다는 뜻입니다. 배움이란 내 삶을 이웃이랑 예쁘게 나누고, 이웃 삶을 내 삶으로 곱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재미란 착하거나 참다운 길을 씩씩하게 걷는다는 뜻이고, 가르침과 재미가 어우러질 때에 바야흐로 사랑이 꽃핍니다. (4344.6.25.흙.ㅎㄲㅅㄱ)


―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 (후리야 나나 그림,토미야스 요우코 글,이영준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0.4.3./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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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렁이 걱정


 엊저녁부터 빨래하는 방에 지렁이가 나타난다. 장마철 빗줄기가 그치지 않으니 이곳에까지 지렁이가 나오는가 보다. 지렁이가 살아가는 흙 속에 빗물이 너무 많이 고여 숨이 차기 때문일 테지. 퍼붓는 빗줄기라 하더라도 사이사이 한 시간쯤 쉰다면 밭에 물이 고이지 않을 테지만, 몇 시간 내리 퍼붓는 비일 때에는 제아무리 물빼기를 잘하는 밭이라 하더라도 물이 고이고 만다. 이렇게 되면 밭에서 살아가는 지렁이는 물에 잠겨 숨이 막혀 죽을 수밖에 없다.

 골목동네 인천 한켠에서 살던 때에도 비가 퍼붓는 날 골목마실을 하면 지렁이를 곧잘 보곤 했다. 조용한 동네 한켠에 꽃밭이나 텃밭을 일구는 분들 살림집 언저리에서는 어김없이 지렁이를 만난다. 그러나, 도시에 살던 지난날 지렁이를 참으로 걱정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아, 지렁이가 여기에서도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느낄 뿐이었다.

 멈출 길 없이 퍼붓는 빗줄기에 개똥벌레이며 파리이며 모기이며 어떻게 견딜까. 나비와 나방과 잠자리는 어떻게 먹이를 찾거나 날개를 말릴까. 도랑에 살던 도룡뇽과 개구리는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까. 아이 손을 잡고 우산을 받은 채 도랑 옆에 서서 거세게 구비치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문득, 푸른개구리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 아닌 조그마한 개구리, 이 가운데에서도 더 작은 푸른개구리 눈으로 바라볼 때에 이 도랑물이 얼마나 무시무시할까. 푸른개구리한테 냇물은 바다요, 이 도랑만 하더라도 낙동강이나 압록강처럼 길고 커다라며 깊은 물줄기라고 느끼지 않을까. 퍼붓는 거센 비에는 굵직한 물줄기 둘레 땅도 무너지는데, 멧골짝 조그마한 도랑 둘레 흙이라 하면 금세 쓸리겠지.

 여러 날 길디길게 이어지는 빗줄기라 하더라도 부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씩 비가 쉬어, 멧새와 풀벌레와 흙벌레와 멧짐승이 먹이를 찾거나 몸을 말릴 겨를을 내준다면 하늘님과 구름님이 참말 고맙겠다. (4344.6.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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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눈물 2011-06-26 21:10   좋아요 0 | URL
아...위에 도깨비 동화책도 그렇지만 내용이 왠지 옛 생각이 나는 것들이네요. 저도 오늘 아이하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가 퍼붓다 잠시 햇볓이 보이길래 너무 답답해서 나갔죠. 그런데 주차장(아파트에 삽니다) 바닥에 달팽이 한 마리가 있던군요. 요즘 아이가 걸을때마다 바닥을 보며 나뭇잎이나 돌맹이를 주우는 버릇이 있어, 저도 덩달아 지나다닐때마다 아이랑 길바닥을 보곤하죠. 그러다 달팽이를 보았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아이랑 와이프랑 셋이서 꿈틀거리는 달팽이를 보았죠. 그러다 그 옆을 보니 그 무엇에 밝힌 달팽이들이 있더군요. 이것들에게 목숨이 이리 하찮을까요? 그 달팽이들을 보며 시골살때 비올때면 길바닥에 널려있던 지렁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지렁이가 왜 나오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파란놀 2011-06-27 02:46   좋아요 0 | URL
작은 목숨들은 장마나 큰비에 물에 빠져 죽거든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면서 이들 작은 목숨을 밟아서 죽이는데, 밟아서 죽이는 줄을 너무 쉽게 잊고 말아요......
 



 손바닥 책읽기


 저녁에 똥오줌기저귀를 빠는데 손바닥이 아프다. 손바닥이 통째로 굳은살이긴 하더라도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쉴새없이 빨래를 해야 하면 손바닥이 아프다. 빨래를 하는 사이사이에는 밥을 차리고 치우며 아이를 씻긴다. 게다가 요사이에는 책짐을 싸느라 날마다 두 시간 즈음 끈을 만지작거린다. 오늘은 모처럼 기운을 내어 저녁 잠자리에서 아이한테 그림책을 하나 읽어 주었다. 집일이 많다지만 아이하고 살가이 복닥일 겨를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아이 앞에서 어버이라 할 수 있겠느냐 뉘우친다. 투박하고 거칠며 딱딱한 손바닥으로 보드라운 아이 볼을 쓰다듬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꾹꾹 주무른다. 이 아이는 오늘 하루도 앉을 새 없이 뛰고 노느라 다리가 퍽 아팠겠지. 아이한테 팔베개를 살짝 해 주다가는 아이보고 제 베개를 베고 누우라 이야기한다. 아이는 제 베개를 베고 아버지 쪽을 바라보며 누워 키득키득 웃고 종알종알 떠들며 놀다가 어느새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하다가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자는 아이를 토닥토닥 한 다음 일어나서, 밤새 또 기저귀 빨래가 얼마나 나올는지 모르기에 똥기저귀 석 장을 빤다. 오줌기저귀 넉 장이 남는다. 석 장을 빨고 둘째를 옆지기하고 재우려고 애쓰는데 좀처럼 잠을 잘 자지 못한다. 한 시간 반쯤 울고 낑낑거리다가 비로소 잠든다. 이동안 똥기저귀가 새로 두 장, 오줌기저귀가 새로 한 장 나온다. 아이는 어머니 옷에까지 똥을 발랐기에 어머니 옷 빨래가 하나 더 나온다.

 두 시간쯤 쉬었다가 기저귀 넉 장쯤 또 빨아야지. 두 시간쯤 뒤에 물을 만지면 손바닥은 덜 아플까. 생각해 보면, 나는 이런저런 집일을 도맡기는 하지만, 바느질이나 뜨개질까지 하지는 않는다. 아이 옷을 내가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서 입히지 않을 뿐더러, 이불을 꿰지도 않는다. 밥을 할 때에 절구를 들어 쌀을 빻아 겨를 벗기지 않는다. 장작을 패어 불을 땐다든지, 삭정이를 긁어모으는 일을 하지 않는다. 밭에서 푸성귀를 거두어들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집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터라 손바닥이 아프다 할 만한지 모른다. 하루에 한 쪽이라도 책을 읽자며 다짐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쪽을 더 읽느라 내 손바닥이 더할 나위 없이 ‘일하거나 살림하는 사람 손바닥’이 못 되어, 자꾸 쓰라리거나 따끔거리는지 모른다. (4344.6.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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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고다씨 이야기 5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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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읽는 좋은 벗과 함께 살기
 [만화책 즐겨읽기 48] 오자와 마리, 《이치고다 씨 이야기 (5)》



 그치지 않는 빗줄기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자락에서 그치지 않는 빗줄기는 멧등성이를 타고 줄줄 흘러내립니다. 도랑을 내려다보면 멧등성이부터 흙이 조금씩 깎이거나 휩쓸리며 흘러내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멧자락에 풀이 없거나 나무가 없다면 비가 올 때마다 멧자락이 퍽 깎이거나 휩쓸리겠지요. 멧자락 흙이 밑으로 흐르고 아래로 쓸리기를 백 해 즈믄 해 만 해 이어지면 이 나라 터전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합니다. 내 몸이 고작 백 해를 살아내기 힘들다지만, 백 해 뒤 내 보금자리는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가 깃들는지 궁금합니다.

 마음을 읽는 벗처럼 살가이 만나거나 사귈 만한 사람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라 하더라도 늘 얼굴을 마주하거나 스친다 하더라도 반갑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엊그제부터 장마철을 맞이했습니다. 장마철이 되니 갓난쟁이 기저귀를 말리기 몹시 힘듭니다. 빨래하는 기계라든지 물을 짜는 기계를 따로 건사하지 않는 살림인 터라, 날마다 마흔 장 안팎 나오는 기저귀를 틈틈이 빨고 널어 말리기란 참으로 벅찹니다.

 1995년 11월에 들어가 1997년 12월에 나온 군부대 적 일을 떠올립니다. 스물여섯 달을 군부대에서 썩어야 하던 지난날, 제가 몸담은 군부대는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에 있었고, 이 가운데 열두 달을 지내던 두솔산이라는 곳은 한 해 가운데 해가 나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해 내내 온통 구름에 둘러싸이거나 감긴 채 축축하거나 눅눅한 군부대였습니다. 이곳 군부대는 1997년 12월에 저와 또래들이 사회로 돌아오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체되어 사라졌는데, 이무렵 남녘에 거의 남지 않던 ‘갈탄 뻬치카’를 썼어요. 소대마다 짤순이를 하나씩 주었고, 중대에 빨래기계를 둘 주었습니다. 짤순이까지 부대에 주는 일은 거의 없으나, 두솔산 군부대는 한 해 내내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안개가 끼어 빨래가 마를 겨를이 없다 보니, 짤순이가 없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옷이며 모포이며 침낭이며 늘 곰팡이 내음이 배었어요.

 해를 볼 수 없이 눅눅한 데에서 눅눅하게 살아야 하니, 군대라는 곳은 더 눅눅하다지만, 사람이 죄 눅눅해지고, 마음씨나 생각밭이나 눅눅한 틀에서 허우적거립니다. 보송보송 마른 옷을 입을 수 없고, 곰팡내를 씻길 수 없이 잠자리에 들거나 막사에서 지내야 하니, 따사로이 마음을 쓰거나 너그러이 생각을 기울이기 힘듭니다. 가뜩이나 거친 말과 주먹다짐이 오가는 군부대에서 늘 찌푸린 날씨가 겹치니, 이런 데에서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안 미칠 수 없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아빠께. 이 부적은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건강 조심하면서 일 열심히 하세요. 유미는 하트 모양을 제일 좋아해요.’ (28쪽)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봅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이기 때문에 방바닥에 틈틈이 불을 넣습니다. 집안이 눅눅해지지 않게끔 불을 넣으면서 따순 물을 쓸 수 있겠다 싶은 때에는 물을 받아서 두 아이를 씻깁니다. 두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빨래한 다음, 아버지는 찬물로 몸을 씻습니다.

 아이들을 다 씻기고 혼자서 빨래 마무리를 짓고 몸을 씻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내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어머니는 두 아들을 어떻게 씻기거나 먹이거나 재우거나 놀리거나 심부름을 시켰을까 하고. 어머니 살림집에 빨래기계가 아직 들어오지 않던 때에는 집식구 빨래를 당신 손으로 어떻게 치르셨을까 하고.

 둘레 사람들은 우리한테 빨래기계를 들이라 이야기합니다. 이것저것 집일이 많고 할 일이 많다면서 왜 빨래를 애써 손으로 하면서 겨를을 버리느냐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손으로 빨래를 하고, 발로 자전거 발판을 밟습니다. 손으로 빨래를 하기에 품이며 겨를이며 더 많이 들인다 할 만하고, 발로 자전거 발판을 밟으며 읍내 장마당을 다니니까 몸이 더 고단하며 품이나 겨를 또한 한결 많이 들인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손을 쓰거나 발을 쓰면서 기름을 안 써도 되거나 적게 쓰면 되니까 마음이 좋습니다. 손을 쓰면서 내 살붙이들 몸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한편, 내 어린 날 내 어머니 삶을 돌아보고, 내 어머니가 어렸을 적에 내 어머니를 보살핀 어머니(나한테는 외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발을 쓰면서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다가 내가 뿌리내려 살아가는 보금자리와 마을을 곰곰이 둘러보며,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를 낳아 돌본 아버지가 ‘자동차 없이 살던’ 지난날 어떤 삶과 꿈과 넋이었을까를 짚거나 살필 수 있습니다.


- “그건 그냥 본래의 나로 돌아간 것뿐이니까.” “그 전에 병원에 가 봐! 때때로 기억이 사라지면 그건 병이잖아!” “됐어.” “되긴 뭐가 돼! 난 요스케가 날 잊어 버리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처럼 되어 버리는 것도 싫어. 신 귤을 줬던 것도, 며칠이나 밤을 새면서 바자회 소품 만들었던 것도, 우울할 때 전골 재료를 사들고 놀러왔던 것도, 학원제에서 집사 코스프레로 우승해서 받은 컵라면 반 년치를 전부 나한테 준 것도, 감기 걸렸을 때 죽 끓여 준 것도, 잊어버리는 건 참을 수 없어!” “이온, 너, 목소리가 너무 커. 게다가 그건 거의 다, 내가 너한테 해 줬던 일뿐이잖아.” (58∼60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1) 5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6권에서 마무리를 짓는다는 《이치고다 씨 이야기》 5권은 ‘마음을 읽는 좋은 벗’하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을 찬찬히 다루는데, 이 ‘마음을 읽는 좋은 벗’이란 하늘에서 똑 떨어진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별나라나 달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고, 잘나거나 못난 사람 또한 아니에요. 돈이 많거나 없는 사람이 아니고, 이름이 있거나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좋은 사람이고, 그예 착한 사람이며, 그대로 어여쁜 사람입니다.

 땡볕에 김매기를 할 때에 곁에서 십 분쯤 호미질을 거든다든지, 퍼붓는 비에 물골을 내느라 허우적거릴 때에 옆에서 몇 분쯤 삽질을 돕는다든지, 밥하는 때에 양파와 마늘 껍질을 벗겨 준다든지, 설거지하는 때에 그릇 물기를 훔쳐 준다든지, 집안을 쓸고 닦을 때에 걸레를 빨아 준다든지, 날마다 조금씩 손을 거들며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가 사랑스럽습니다.

 마음을 읽지 않고서는 곁에서 일을 거들 수 없어요. 마음을 느끼지 않을 때에는 옆에서 삶을 함께 나눌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이온과 만나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어. 고마워.” (85쪽)
- ‘바로 지난달까지만 해도 함께였는데, 이제는 만날 수 없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상실감으로 가득하다. 이런 식으로 상처받고 우울해 할 때면 어느 틈엔가 옆에 와서, 같이 흘러가는 구름을 지치지도 않고 바라봤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같은 그 친구를, 난 얼마나 알아줬던 걸까 하고.’ (132∼133쪽)


 지구별 바깥에서 지구로 찾아온 이치고다 씨를 둘러싼 사람들은 조금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가방회사 사장이라 하더라도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저한테 있는 줄조차 모르던 딸아이’한테 편지를 처음으로 받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지구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 가던 지구사람 몸에 깃들어 목숨을 잇던 또다른 ‘지구별 바깥사람’이 차츰차츰 기운을 잃어 멀리멀리 사라지고 마는 자리에서, 이이 또한 홀로 말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웃음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서 함부로 짓는 웃음이 아닙니다. 웃음을 짓는 사람 앞에서 부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한테는 눈물과 웃음이 갈마듭니다. 다른 한 사람한테도 웃음과 눈물이 잇달아 찾아듭니다. 눈물이 있기에 웃음이 있는 삶이요, 웃음이 있으면서 눈물이 있는 사랑이에요.


- ‘한 달 빨리 태어난 그 아기는 조그맣지만 매우 건강한 남자아이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름은 부모 이름에서 한 자씩 딴 세나. 무라타니 세나. 성별과 상관없이 붙이려던 이름. 우리 아이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185∼186쪽)
- ‘인간이 왜 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립다든가 가슴 아프다든가 괴롭다든가 기쁘다는 감정, 모두가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 (61∼62쪽)



 온누리에 널리 이름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큰회사에서 간부가 된다거나 높은자리를 차지해야 잘나지 않습니다. 내 이름이 박힌 책이 나와야 대단하지 않으며, 내 은행계좌에 숫자가 빼곡히 찍혀야 즐겁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에서 140킬로미터나 150킬로미터로 달린대서 겨를을 아껴 집에 일찍 돌아오거나 볼일을 수월히 마치지 않아요. 밥을 남보다 곱배기로 먹어야 할 까닭은 없고, 더 값지거나 비싼 옷을 마련해서 입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먹어서 좋으면서 즐거운 밥을 스스로 차려 먹을 때에 아름답고, 입어서 홀가분하면서 기쁜 옷을 손수 기워 입을 때에 어여쁩니다.

 밥 한 그릇을 차리는 손길에 사랑이 깃듭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한때에 사랑이 머뭅니다. 기저귀를 빨고 이불을 빠는 팔뚝에 사랑이 스밉니다. 아이를 안거나 업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보내는 나날에 사랑이 찾아옵니다.

 마음을 읽는 벗이 반갑고, 마음을 나누는 살붙이가 고마우며, 마음을 보듬는 이웃이 즐겁습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만화책 하나가 기쁘고, 마음을 얼싸안는 만화책 하나가 예쁘며, 마음을 아낄 줄 아는 만화책 하나가 보배롭습니다. (4344.6.24.쇠.ㅎㄲㅅㄱ)


― 이치고다 씨 이야기 5 (오자와 마리 글·그림,황경태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4.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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