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44] 먹는빵

 먹지 않는 빵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식빵은 ‘먹는빵’이라 이름이 붙습니다. 어릴 때부터 식빵이라는 이름이 참 얄궂다고 느꼈습니다. 한자로 ‘먹을 食’을 붙여 ‘食빵’이라니, 밥을 가리켜 ‘食밥’이라 하지 않는데, 빵 가운데에서 ‘식빵’은 아주 다른 빵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고 맙니다. 밥처럼 먹는 빵이래서 식빵이라 이름을 붙였는지 모릅니다. 여느 빵과는 다르게 밥처럼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빵이기에 식빵이라는 이름이 걸맞는지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마시는 물을 놓고도 굳이 ‘먹는물’이라 따로 가리키기도 하고, 이를 한자말로 옮겨 ‘食水’나 ‘食用水’라고도 합니다. 물이라면 으레 마시기 마련이지만 ‘마실물’이라 하는 한편, 한자말로 거듭 옮겨 ‘飮料水’나 ‘飮用水’라고까지 하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음료수’는 여느 마실거리가 아닌 탄산음료 같은 마실거리를 가리키는군요. 어떻게 바라본다면 딱히 얄궂다 하기 어려운 낱말인 ‘식빵’일는지 모릅니다. 우리 말삶에서는 이런 말마디 아니고는 좀처럼 알맞다 싶은 낱말을 빚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밥처럼 먹는다면 ‘밥빵’일 텐데, 우리 말로 이름을 붙이면 우습거나 안 어울린다고 여겼을까요. 예쁘면서 잘 어울릴 이름은 ‘식빵’뿐일까요. (4344.3.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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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개잡지, 헌책방잡지, 어린이잡지


 한국에서 나오는 뜨개잡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 손으로 만들고 한국사람이 마련한 뜨개법을 다루는 뜨개잡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우리 말 잡지’는 없습니다. 한국사람이 일구는 ‘헌책방 잡지’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 참 어설프며 어리숙한 깜냥인 줄 알지만, 제때에 짠짠짠 내놓지 못할 뿐 아니라 여느 새책방에 내놓지조차 못하지만 ‘우리 말 잡지이자 헌책방 잡지’를 혼자서 만든답시고 바둥거립니다.

 우리 나라에도 자전거잡지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즐기는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자전거잡지는 없습니다. 도시에서 골목동네 가난한 사람이 호젓하게 자전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든지, 신문을 돌리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삶을 담는 자전거잡지 또한 없습니다. 쌀집자전거로 흔히 아는 짐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눈물과 웃음을 다루는 자전거잡지조차 없어요. 돈으로 사들여서 돈으로 타는 ‘놀러다니는’ 이야기로만 어우러진 자전거잡지만 있습니다.

 한국에도 생태와 환경을 다루는 잡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태사랑 환경사랑으로 거듭난다든지, 여느 시골자락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 눈높이에서 쉬우며 맑은 말마디로 수수하게 빚는 환경잡지는 없습니다.

 교육잡지는 여럿입니다만, 막상 어린이 손으로 일구는 교육잡지라든지 어린이가 즐거이 읽을 교육잡지란 없습니다. 제도권 울타리에 깃든 교육잡지나 제도권 울타리 바깥에서 싸우는 교육잡지만 있습니다.

 책을 말하는 잡지란 있을까요. 그토록 수많은 출판사가 수많은 책을 낼 뿐 아니라, 책 만들어 돈 톡톡히 버는 출판사 또한 꽤 많은데, 막상 ‘책을 말하는 책잡지’는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합니다.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책을 쓰신 분이 있습니다만, 당신들끼리 당신 울타리에서 복닥거리는 책마을에서 맴도는 책잡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푸름이 어린이가 제 삶을 예쁘게 사랑하거나 아끼는 어여쁜 책잡지가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어린이교육잡지라든지 어린이학습잡지라든지 어린이교양잡지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삶과 어린이놀이와 어린이꿈을 꾸밈없이 들려주는 잡지는 없습니다. 왜 아이들한테 무엇이든 애써 가르치려고만 하나요. 왜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 스스로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지 못하나요. 아이들 몸과 나이에 걸맞게 심부름과 일을 즐기도록 어깨동무하는 이야기를 잡지로 묶기란 그토록 어려운가요.

 가만히 보면, 한국에는 팔림새에만 눈길을 두는 만화잡지가 몇몇 있으나, 만화를 만화다이 돌보는 만화잡지는 없다 할 만합니다. 사진을 사진 그대로 껴안는 사진잡지는 힘겹게 태어났어도 이내 숨을 거둡니다. 삶으로 스미는 사진을 북돋우는 사진잡지는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겉멋든 예술과 껍데기를 벗지 못하는 다큐멘터리 허울에 슬프게 얽매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 엉터리라서 참다운 잡지가 발붙이지 못하는 우리 나라라 할 수 없습니다. 잡지를 사서 읽을 사람부터 슬기롭지 못하니까, 잡지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슬기를 그러모으지 못합니다. 잡지를 사서 읽을 사람부터 제 삶을 옳게 사랑하면서 예쁘게 일구지 못하니까, 잡지다운 잡지가 태어나더라도 금세 기운이 꺾이며 사라지고야 맙니다.

 뜨개질은 취미일 수 없는 삶이고, 사진찍기이든 글쓰기이든 만화나 영화나 교육이나 환경이나 자전거나 모두 아름다운 우리 삶입니다. 삶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을 깨닫지 않을 때에는, 이 나라에 잡지다운 잡지가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4344.3.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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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86] special gift 주는 open 2주년 festival

 “2011년 봄 신상품 구매시 special gift 증정”이라는 글월 가운데 우리 말은 ‘봄’ 한 가지이다. 한글로 적는대서 우리 말이 되지 않으나, 적어도 한글로나마 적을 줄은 알아야 할 텐데, ‘special gift’라 하면 ‘특별 선물’이나 ‘남다른 선물’보다 무언가 더 좋을까. 동네 작은 가게에서 벌인다는 ‘open 2주년 festival’이란 얼마나 대단할까. (4344.3.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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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읽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1.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한 뒤부터 그림책에 눈을 떴습니다. 그림책을 처음 알아본 때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신문돌리기로만 먹고살던 1999년 봄이었고, 이무렵 나온 그림책 하나를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받아보고 넘기면서 ‘우리한테도 이만 한 그림책이 있구나.’ 하며 놀랐고, 내 어릴 적에는 왜 이만 한 그림책을 이 나라 어른들이 안 그렸는가 싶어 슬펐습니다.

 어쩌면 고작 몇 해 사이라 할 만하지만, 몇 해 사이를 두고 누군가는 퍽 괜찮은 그림책을 전집으로라도 만날 수 있었으나, 누군가는 낱권으로든 전집으로든 그림책다운 그림책을 만날 길이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좋은 그림책을 읽는다 해서 좋은 마음이나 좋은 사랑이 싹트지는 않아요. 그러나 좋은 마음과 사랑을 담은 좋은 그림책을 어린 나날 가까이하면서 ‘그림으로 담는 우리 삶자락 이야기’에 찬찬히 눈길을 둘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으로 움직이거나 부대끼며 배우지만, 몸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왜 부대끼면 즐거울까를 헤아리는 길에 좋은 그림책은 아름다운 길동무 노릇을 합니다.

 스물대여섯 살 나이부터 혼자서 그림책을 읽으니, 둘레에서는 아이라도 낳았느냐고 묻지만, 혼인을 하지 않고 홀로 지내던 이무렵부터 그림책을 즐거이 찾아 읽었습니다. 혼인을 한 뒤로는 더 자주 찾아 읽으며,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는 때부터는 퍽 많이 찾아 읽습니다.

 잘 빚은 그림책은 그림책답습니다. 잘 빚지 못한 그림책은 ‘사진을 찍어 옮긴 티’가 물씬 드러납니다. 사진을 볼 때에도 잘 찍은 사진은 사진다운 사진이지만, 엉성하게 찍은 사진은 ‘그림 느낌을 흉내낸다’든지 ‘글이 붙지 않고서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좋은 그림책을 좋은 사진책과 함께 꾸준하게 만나야 참 즐거웁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림을 보는 눈이란 그림으로 어느 한 가지 모습이나 어느 한 사람 삶을 담을 때에 아주 오래도록 살가이 바라볼 뿐 아니라 구석구석 그림쟁이 손길이 닿아야 하는 만큼 아주 따사로우며 넉넉해야 합니다. 사진은 기계 단추만 누른대서 나오는 사진이 아니에요. 구석자리 자잘한 모습까지도 사진기를 손에 쥐어 단추를 누르기 앞서까지 모두 살피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찍을 때에는 눈썹떨림이나 손끝떨림이라든지, 손톱에 햇볕이 튕기는지, 눈알에 어떤 그림자가 어리는지,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들을 샅샅이 느껴야 합니다.

 살내음을 느끼고, 사랑스러움을 받아들이며,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는 흐름을 좋은 그림책 하나에서는 짙고 구수하게 담습니다. 좋은 그림은 좋은 사진을 도와주고, 좋은 사진은 좋은 그림을 이끕니다. 좋은 글은 좋은 그림이 태어나는 밑거름이 되며, 좋은 사진 때문에 좋은 글 하나 태어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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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요술쟁이 2부 1
문계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문계주 님 단편집 <아프리카의 꿈>은 아예 목록으로도 안 뜬다. 하는 수 없이, 절판된 만화책인 <엄마는 요술쟁이>에 걸친다. 나중에 <엄마는 요술쟁이>라는 만화책은 따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만화로 살가이
 [만화책 즐겨읽기 29] 문계주, 《아프리카의 꿈》



 환경사랑을 한다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면서 ‘o.k.’나 ‘땡큐’ 같은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섞는 일은, 환경사랑을 하자면서 과자봉지를 들판이나 멧길에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아무것 아니라 여길 수 있는 자그마한 말마디 하나를 곱게 돌볼 수 있을 때에 환경사랑이든 나라사랑이든 삶사랑이든 사람사랑이든 만화사랑이든 이룰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살아숨쉬는 만화란 살아숨쉬는 생각으로 그립니다. 살아숨쉬는 생각이란 내 마음과 몸이 튼튼하며 씩씩하게 살아숨쉴 때에 생깁니다. 내 마음이며 몸이 싱그러이 살아숨쉬도록 다스리지 못할 때에 내 생각이 살아숨쉴 수 없습니다. 내 마음과 몸이 사랑으로 가득할 때에 비로소 사랑이 태어나고, 이렇게 태어난 사랑을 바탕으로 사랑스러울 만화를 그립니다.

 새롭게 만화쟁이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고, 일찌감치 만화쟁이가 된 사람이 많으며, 오래도록 만화쟁이 한길을 걷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화쟁이가 되는 길이라든지 만화쟁이로 살아가는 길이란 남다르지 않습니다. 글쟁이로 살아가는 길이나 노래쟁이로 살아가는 길이나 흙쟁이로 살아가는 길하고 마찬가지입니다. 살림꾼으로 살아가거나 여느 일꾼으로 살아가는 길하고도 매한가지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내 살림살이를 내 손으로 일구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오롯이 깨달아서 아낌없이 껴안을 때에 비로소 만화에 어떠한 이야기를 담으면 좋으면서 즐거울까를 느낍니다. 내 살림살이를 내 손으로 일구는 나날을 이을 때에 시나브로 내 만화로 담아 이웃이랑 동무하고 어여쁘며 신나게 나눌 만화를 그리는 길을 알아챕니다.


- “아니, 저, 다른 기자들이 하도 많아서, 난 없어도.” “그게, 우리 신문사 기자던가?” “아니오. 하지만 똑같은 기사를 여러 신문사에서 싣는 건 지면 낭비라고 생각돼서…….” (15쪽)
- “미야는 우리와 틀려요. 어머니. 억지로 우리의 방식에 맞출 순 없어요. 그 아인 그 나름대로 삶과 생활이 있으니까. 저 애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보내야 해요. 옛날, 우리가 오빠를 보냈던 것처럼 그렇게…….” (87쪽)



 문계주 님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이 만화책이 처음 나오던 1993년에도 읽었고, 이 뒤로도 한두 번 더 장만해서 읽기도 한 작품인데, 얼마 앞서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다시금 눈에 뜨여서 또 장만해서 새삼스레 읽습니다.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은 1967년에 태어난 문계주 님이 스물여섯 나이에 내놓은 작품모음입니다. 모두 네 꼭지 이야기로 이루어진 〈아프리카의 꿈〉과 한 꼭지로 마무리하는 짧은만화 〈하늘이 보이는 창〉하고 〈비오는 크리스마스〉에다가 두 꼭지로 끝맺는 짧은만화 〈이 겨울이 가기 전에〉를 담습니다.

 만화쟁이 문계주 님으로서는 스물여섯에 내놓은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이고, 만화즐김이 저로서는 열여덟에 처음 만난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입니다. 열여덟에 처음 읽은 《아프리카의 꿈》은 스물여섯 즈음에도 새로 읽었고 서른일곱 나이에 다시금 새로 읽습니다.

 책장을 넘기니 그림결이며 이야기이며 줄거리이며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러나 오늘 처음 넘기는 만화책이라 여기며 조마조마 두근두근 콩닥콩닥 마음으로 기쁘게 읽습니다.

 한 시간 만에 다 읽기에는 너무 아쉬워 여러 날에 걸쳐 천천히 읽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쪽을 덮으면서, 아, 이제 이 책을 또 다 읽었구나 느끼며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이렇게 깨끗한 판으로 장만했으니까 잘 건사해서 마흔여섯이나 마흔여덟쯤 될 나이에 거듭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첫째 딸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열 몇 살쯤 될 무렵 스스로 이 만화책을 읽을 수 있겠지요.


- ‘어느덧 변두리를 빠져나오자, 대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21쪽)
- “애비한테 얘기해 봐. 외국 생활이 힘들지?” “아, 아니요. 그냥, 밤하늘이 보고 싶어서. 오늘 따라 유난히 맑은 밤이라서. 그래서 그냥 잠들기 아쉬워서 그래요.” “그래. 그렇구나.” (67쪽)



 만화쟁이 문계주 님은 나이 스물여섯에 한창 맑고 밝은 빛과 기운을 뽐내며 《아프리카의 꿈》을 내놓았기 때문에, 이 뒤로도 얼마든지 여러 만화책을 내놓을 법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요술쟁이》 뒤로는 좀처럼 다른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어린이책에 사잇그림을 그려 넣은 책이 몇 가지 나옵니다.

 요사이는 새 작품모음을 거의 만나지 못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데, 제가 낱권책으로만 만화를 읽고 잡지만화로는 읽지 않기 때문에 소식을 모른다 할 수 있습니다. 잡지에 만화를 그리더라도 낱권책이 안 나올 수 있으니까요.

 꼭 나이로 쳐서가 아니라, 스물여섯 즈음부터 서른여섯을 거쳐 마흔여섯에 이르기까지 만화를 그리든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스스로 튼튼하며 빛나는 작품세계를 이룩하기 마련입니다. 문계주 님은 당신 삶에서 가장 빛나는 때에 만화창작을 한결 튼튼하거나 씩씩하게 잇지 못하고 말았다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퍽 많은 한국 만화쟁이들이 한창 빛나야 할 서른이나 마흔이나 쉰 나이에 만화꽃을 잘 못 피웁니다. 예순이나 일흔쯤 되는 나이라면 만화열매를 맺어 젊은 만화쟁이한테 좋은 길잡이나 밑거름이 될 만하지만, 이렇게 만화꽃이나 만화열매로까지 나아가는 어르신은 퍽 드뭅니다.

 언제나 새로운 삶을 부대끼면서 이러한 새로운 삶을 만화로 담는 만화쟁이인데, 새로운 삶을 일구기에는 새 만화를 실을 매체가 너무 적거나 새 만화를 책으로 빚어 내놓을 출판사가 너무 모자란 탓일까요. 만화쟁이 스스로 한결 새롭게 거듭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글이든 사진이든 만화이든, 글이나 사진이나 만화로 담는 이야기는 머나먼 남쪽나라나 멀디먼 북쪽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머나먼 남쪽나라나 멀디먼 북쪽나라에도 글이건 사진이건 만화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우리 곁에도 좋은 이야기가 있으며,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 또한 좋은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는 삶이 곧바로 글이나 사진이나 만화로 담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혼자서 살든 여럿이서 살든 혼인해서 살든 헤어져서 따로 살든, 저마다 다 다르게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좋은 글감이고 사진감이다가는 만화감입니다.


- ‘나, 떠날 수 있을까. 이곳에 네가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보고 싶어.’ (73쪽)
- ‘나와 같이 가자. 이제 다시는 널 슬프게 하지 않을 거야.’ (85쪽)
- “또 내 얘기만. 나도 모르게 빠져들면 꼭 이래요. 지루하지요?” “아니오. 참 좋아요. 따스하구요. 고마워요.” (154쪽)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여기에 만화를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영화를 찍거나, 누구나 내 삶을 예쁘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쁘게 사랑하는 내 삶을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만화로든 살포시 담으면 기쁘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그리고, 내 어머니 이야기를 그리며, 내 할머니 이야기를 그리면 됩니다. 내 이야기를 돌아보고, 내 동무 이야기를 살피며, 내 이웃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돼요.

 “아니오. 참 좋아요. 따스하구요. 고마워요.” 하고 대꾸할 말마디는 남쪽나라나 북쪽나라 이야기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여느 이야기, 수수한 이야기, 투박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에서 바로 “아니오, 참 좋아요. 따스하구요. 고마워요.” 하고 대꾸할 만한 사랑스러운 꿈이 태어납니다.


- “엄만, 누구 좋아한 적 있었어? 저기, 첫사랑 말이야.” “어머, 얘는! 10번도 더 해 봤는걸.” (107쪽)
- ‘누군가의 말처럼 만나면서 우리는 이별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때엔 다시 누굴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마도 나에겐 너무 아픈 기억이었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상처를 받을 땐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만큼은 성숙해진다는 걸 알았어.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만큼 사랑했고 아파했느냐는 거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일이니까.’ (109쪽)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만화로 살가이 담으면 넉넉합니다.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살가이 담은 만화는 오래도록 물리지 않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살가이 보듬은 만화이기에 아이 아버지인 저부터 두고두고 즐겼으며, 우리 딸아이한테 물려줄 만하며, 우리 딸아이도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된 다음 제 딸아이를 낳는다면 언제까지나 예쁘게 사랑을 나누는 해맑은 이야기꽃이 흐드러지리라 믿습니다. (4344.3.16.물.ㅎㄲㅅㄱ)


― 아프리카의 꿈 (문계주 그림·글,서화 펴냄,1993.6.25./판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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