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
콘노 키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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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쓰는 만화
 [만화책 즐겨읽기 44] 콘노 키타,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만화책을 장만하곤 합니다. 아이가 나중에 함께 읽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아버지나 어버이라는 자리에 앞서, 오늘 나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즐길 만화책을 장만하곤 합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어도 기쁠 테지만, 어버이 스스로 오늘 재미나게 즐기지 못한다면, 어버이부터 오늘 아름다이 껴안지 못한다면, 어버이로서 바로 오늘 예쁘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만화책은 그닥 장만할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동화책이든 그림책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도움이 되라며 장만하는 책은 없습니다. 아이한테 도움이 되기 앞서 어른한테 도움이 될 책이어야 합니다. 아니, 어른한테 도움이 되기에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책을 장만하며 읽을 수 없는 어린이책을 아이한테 읽히자면, 어른 스스로 어른이책을 좋아하면서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어른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지 못하는 책을 아이한테 좋아하거나 즐기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른 스스로 맛나게 먹지 않는 밥을 아이보고 맛나게 먹으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네 몸에 좋으라고 먹이는 밥이라고 말하려면, 어른도 똑같이 먹으면 됩니다. 어른이 똑같이 먹으면 아이는 두말 않고 냠냠짭짭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함께 즐기는 밥이면서 책이요 만화입니다. 나란히 좋아하는 삶이면서 꿈이요 책입니다.


- “사호, 미안한데 들어와서 부엌에 좀 갖다 놔 줄래?” “그럼, 실례합니다.” (5쪽)
- “됐어, 괜찮아. 어린애가 치는 피아노 소린 싫지 않아. 소리가 튀거나 삐끗하는 게 듣기만 해도 미소가 나오는 게 마음이 즐거워지지 않아?” … “시오리도 저렇게 장난으로 칠 때가 있구나. 시오리는 착한 아이야. 길에서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하고, 늘 진지한 표정으로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곤 한단다.”  (27, 29쪽)



 좋다고 할 만한 책이라면 하루아침에 장만하지 못합니다. 오랜 나날에 걸쳐 차근차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추천도서목록이나 권장도서목록에 오른 수백 수천 권을 한꺼번에 장만할 수 없어요. 아니, 돈이 있다면 한몫에 살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장만’하지는 못합니다. 벽 한쪽을 좋거나 훌륭하다는 책으로 채우는 일은, 책읽기가 아니니까요.

 책읽기를 하려고 책을 장만하는 일이란, 내 마음을 살찌울 좋은 책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새롭게 마음눈을 뻗치고 마음길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하루에 그림책 백 권을 읽는다 해서 아이가 책읽기를 좋아한다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 마음밭에 고운 열매를 맺도록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책을 더 자주 읽혀야 하지 않아요. 날마다 알맞게 꾸준하게 즐기면서 아이 스스로 아이 삶을 사랑하면서 아끼도록 이끌 때에 참다이 책읽기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 또한 곁에서 어버이 삶을 북돋우면서 보살피는 어여쁜 책을 갖추어야겠지요. 책읽기란 삶읽기인 줄 가만히 헤아리면서 종이로 이루어진 책을 비롯해 사람으로 이루어진 책에다가 자연으로 이루어진 책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아이를 낳아 같이 살아가려는 어른이라면 더더욱 종이책과 사람책과 자연책을 알뜰히 엮을 줄 알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엄마가 이런 과자는 몸에 안 좋다고 먹지 말랬어.” “몸에 안 좋은 건 왜 이렇게 맛있을까 하고 우리 엄마도 자주 말해.” (52쪽)
- “쿠마 잘못이 아니야. 고양이의 본능이 그런걸. 어쩔 수 없어.” “본능이면 아기 새를 죽여도 돼?” “고양이는 육식이란 말이야. 사야도 닭고기 먹잖아. (아차.) 아, 사야, 지금 말은, 어.” “안 먹어. 사야 이제 고기 안 먹어.” (62∼63쪽)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권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2권에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는 머잖아 새롭게 나오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1권에서는 착한 사람들 사랑씨가 어떻게 맺어 시나브로 퍼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2권에서는 착한 사람들 나눔씨가 어떻게 뿌리내려 열매를 맺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얼핏 잘못 생각하기로는 착한 사람들 이야기라면 슬픈 이야기는 없으리라 여길 테지만, 착한 사람들 이야기이건 못된 사람들 이야기이건 눈물과 웃음이 뒤엉킵니다. 눈물이 있기에 웃음이 있고, 웃음이 있는 만큼 눈물이 있어요.

 기쁘게 살아가며 눈물이 나고, 슬프게 살아가다가 웃음이 납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삶에 어떤 아쉬움을 맺지 않을 때에는 홀가분하기 때문입니다.


- “행복을 가져다줄 말을 찾아봐.” (105쪽)
- “음, 난 알 것 같아. 어른이 되면 타인의 마음이 없는 말이나 행동에는 내성이 생기지만, 그 반면 생각지도 못한 따뜻하고 다정한 말에는 약해지거든. 이상하지? 다정한 말에 눈물이 나다니.” (115쪽)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이란 아이를 먹여살리는 나날입니다. 아이를 먹여살리는 나날이란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아이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란 어른이 함께 읽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입니다. 어른이 먼저 읽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은 나중에 아이가 천천히 읽기 마련입니다.

 시를 쓰듯 그림 하나와 글 하나가 곱게 얽힌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권을 곰곰이 되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가만 보자, 만화라면 만화에 실리는 글월이란 한 줄 두 줄 시와 같지 않던가. 사람들이 서로 복닥거리며 주고받는 말마디란 한 줄 두 줄 똑 떼어놓고 헤아리면 시와 같다 할 만하지 않나. 이 만화책 하나만 시와 같다고 할 뿐 아니라, 내 마음속으로 살며시 스며드는 착한 만화책이라면 어느 만화책을 손에 쥐든 시를 읽는 느낌이 되지 않으려나.

 좋은 책이란 좋은 시라 할 테지요. 좋은 시란 글월 하나로 좋은 책을 이루는 셈이겠지요. 좋은 책이란 한 줄로 갈무리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좋은 시란 한 줄을 읽으며 몇 날 몇 달 몇 해를 기쁘게 살아낼 기운을 북돋우겠지요.


- “창피하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소중한 거야, 하루카. 그렇게 연약하게 흔들거리는 마음이 좋은 시로 이어질 거야.” “흔들거리는 마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엄마도 내가 한 말이지만 잘 모르겠다.” (125쪽)
- “엄마가 그 책을 갖고 계셨거든요. 나중에 빌려 드릴까요?” “정말? 고마워! 아, 근데 어머님의 소중한 책인데.” “많이 읽어 줘야 책도 기뻐할 거라고 도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는걸요.” (148쪽)



 빈틈이 없는 어머니가 아닌 빈틈이 있는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스레 돌봅니다. 돈이 넉넉한 아버지가 아닌 돈이 모자란 아버지가 아이를 따숩게 얼싸안습니다. 똑똑한 어머니가 아닌 똑똑하지 않은 어머니가 아이를 믿음직하게 보살핍니다. 힘이 센 아버지가 아닌 힘이 여린 아버지가 아이를 튼튼하게 키웁니다.

 어느 하나 모자라거나 아쉬울 구석이 없다는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참으로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게 자라지는 않습니다. 돈이 많대서 모자람 없는 살림집이 아닙니다. 이름이 높대서 아쉬움 없을 살림집이 아닙니다. 가방끈이 길어야 훌륭한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른이 되고 어버이가 될 때에 비로소 사랑이 자라고 믿음이 싹틉니다.

 밥알 하나에는 사랑이 깃듭니다. 배앓이하는 아이 배를 살살 쓰다듬는 손길 한 번에는 믿음이 서립니다. 텃밭 감자밭에 감자잎이 우거지고, 이 우거진 감자잎 사이로 멧다람쥐 한 마리 뽀로롱 숨습니다. 뭐, 멧다람쥐한테 먹이 될 만한 무언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좋은 그늘자리나 숨을 터는 되겠지요. (4344.6.18.흙.ㅎㄲㅅㄱ)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2 (콘노 키타 글·그림,김승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2.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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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 Kim : ON-AIR -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의 포토로그
김아타 지음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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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 아트’는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38] 김아타, 《ON-AIR》(예담,2007)



 김아타 님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사진기를 빌어 예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김아타 님 사진은 사진삶으로 다룰 수 없습니다. 예술삶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이들은 김아타 님을 사진쟁이 테두리에서 바라봅니다.

 옳지 않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고 예술은 예술입니다.

 붓을 들어 글을 썼대서 모두 글이라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붓과 종이를 써서 ‘서예’를 합니다. 말 그대로 예술입니다. 붓과 종이를 빌어 글로 나타내는 예술이 한자말 이름으로 ‘서예’입니다. 김아타 님이 내놓은 숱한 작품은 사진기와 인화지를 빌어 보여주지만,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현전하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원초적인 성과 폭력과 전쟁과 이데올로기를 끌어내어 내 사적인 박물관 유리 박스에 정착시킴으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기존의 박물관이 ‘죽어 있는 것을 영원히 살게 하는 곳’이라면, 나의 박물관은 ‘살아 있는 것을 영원히 살게 하는 곳’이다(195쪽).”라 하는 말마따나, 김아타 님은 ‘김아타 박물관’을 만드는 예술쟁이입니다.

 예술쟁이가 사진기를 든대서 나무랄 까닭이 없습니다. 그림쟁이가 사진 기법을 시늉한대서 탓할 일이 없습니다. 만화쟁이가 사진을 신나게 찍어 뒷그림으로 옮긴다 해서 잘못이라 말할 일이 없습니다. 그림쟁이는 그림에 사진을 쓰고, 만화쟁이는 만화에 사진을 쓰며, 예술쟁이는 예술에 사진을 씁니다.

 다만, 그림쟁이는 사진 아닌 그림을 합니다. 만화쟁이는 사진 아닌 만화를 합니다. 예술쟁이는 사진 아닌 예술을 해요.

 《ON-AIR》(예담,2007)라고 하는 책 겉에도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의 포토로그’라 적습니다. 김아타 님은 영어로 ‘아티스트’입니다. 영어로 ‘포토그래퍼’가 아니에요. 아티스트예요. 한국말로 하자면 ‘예술쟁이’입니다. ‘사진쟁이’도 ‘사진작가’도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한국땅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서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도 예술을 가르치거나 배우면서 사진을 가르치거나 배운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사진을 배우는 대학생 가운데에는 사진이 아닌 예술을 펼치려 하면서 사진을 배우는 듯 잘못 아는 이가 꽤 많습니다.

 김아타 님은 “1980년대 말, 나는 이름 모를 잡초들과 작은 돌들, 흐르는 시냇물과 바람 소리 그리고 태양의 자양분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아 ‘사물과의 대화’를 하면서 나의 실존을 확인해 가는 트레이닝을 하였다. 많은 시간을 하잘것없는 사물들과 대화하면서 사물을 관조하는 방법과, 사물과 하나가 되어 사물이나 혹은 타자에 몰입하는 방법을 익혔다(1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굳이 사물을 말없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누구나 생각을 얻거나 생각날개를 펴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터전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아 제 생각길을 걷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김아타 님 ‘생각찾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몇 대목이 보입니다.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사물’인지 궁금합니다. 참말로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이 하잘것없다고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없어도 지구별은 한결같을 뿐 아니라, 사람이 없으면 지구별은 걱정없습니다. 풀이 없거나 돌이 없거나 물이 없거나 바람이 없거나 햇볕이 없으면 지구별은 몹시 끔찍해집니다. 김아타 님이 사물을 말없이 바라보는 솜씨를 익혔다고 한다면,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을 하잘것없이 바라보는 매무새나 눈길’이 아니라 ‘내 몸뚱이란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하고 견주어 얼마나 하잘것없는가 하고 깨닫는 매무새나 눈길’이어야 알맞지 않았으랴 궁금합니다.

 풀은 풀 그대로 예술입니다. 김수영 님이 〈풀〉이라는 시를 쓰지 않았어도 풀은 풀삶 그대로 예술이자 자연이며 역사입니다. 사람은 풀포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으며 ‘참 멋지구나!’ 하고 말할 테지만, 풀은 풀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스스로 참 멋집니다.

 사진이 사진인 까닭이 있습니다. 사진이 사진이기에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진이 눈부신 삶이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김아타 님은 “소호에는 작은 돌들만큼이나 숱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슬픈 사랑 이야기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길이라 부르는 것은 연결되어 있음이기도 하다(149쪽).”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네, 맞습니다. 작은 돌만큼 작은 사람들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이고 다 다른 사람이며 다 다른 삶이에요. 예술을 이루는 숱한 갈래는 저마다 다 달리 아름답습니다. 꼭 예술이라는 이름표가 붙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예술이 되어야 아름답지 않으며, 예술로 나아가야 아름답지 않을 뿐더러, 예술을 이루지 않더라도 아름답습니다.

 김아타 님은 인간문화재를 사진으로 담는 일을 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목포에서 옥 작업을 하던 장주원의 작품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은 적이 있었다 …… 나는 그 작품을 보며 사람의 집념이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그는 커 보였다(167쪽).”고 적습니다. 김아타 님 다른 책 《상像》(학고재,2008)은 사진책이라 할 만하겠지요. 그저 사진으로만 보여주니까요. 그러나 이 책 또한 사진책이라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으로 찍었대서 모두 사진이 되지 않고, 사진을 그러모았기에 다 사진책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야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이니 사진책입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어떠하대서 ‘그래, 눈으로 보기에 이렇게 보이니 이렇다고 해야지’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달걀부침도 틀림없이 달걀부침이겠지요. 그런데, 먹을 수 없는 달걀부침도 달걀부침이라 할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만든 꽃도 꽃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만, 참말 플라스틱 꽃이나 종이 꽃도 꽃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아타 님 책 《상像》에는 《ON-AIR》에서 밝힌 그대로 ‘참으로 무섭다’고 느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러면서 ‘커 보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김아타 님 스스로 ‘참으로 무섭다’고 보인 사람들을 김아타 예술로 담아냈거든요. 그러니까, 《상像》이라는 책은 ‘인간문화재를 보여주는 사진책’이 아니요, ‘인간문화재를 다루는 사진책’ 또한 아닙니다. ‘예술로 보여주는 밑감’으로 인간문화재라는 사람을 골랐습니다. 인간문화재라는 사람들 모습 가운데 ‘참으로 무섭다’라는 대목을 스스로 끄집어내어 아주 또렷하게 붙박은 예술품입니다. ‘김아타 유리 박스에 넣은 예술품’입니다.

 예술을 하든 그림을 하든 만화를 하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글을 쓰든 흙을 일구든 기계를 만지든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탈을 쓰지 않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제 길을 사랑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동네에서 조그맣게 장사를 하는 구멍가게는 구멍가게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구멍가게라서 아름답거나 작은 가게라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구멍가게는 말 그대로 구멍가게로 제 몫을 알뜰히 하니까 아름답습니다.

 사진은 사진길을 씩씩하게 걷는 매무새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사진길을 깊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눈길과 손길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예술이 예술대로 아름답다면, 사람과 삶과 사랑을 저마다 다른 이야기마당으로 엮어 저마다 다른 꿈을 싣는 눈물과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사진으로 보여주기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건 동영상으로 보여주건 예술은 예술입니다. 예술을 두 시간짜리 동영상으로 찍는대서 ‘영화’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백남준 님은 ‘비디오 아트’라는 이름을 떳떳하고 올바르게 썼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예술’은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4344.6.18.흙.ㅎㄲㅅㄱ)


― ON-AIR (김아타 글·사진,예담 펴냄,2007.5.25./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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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알라딘 편집기에 붙여넣기가 안 된다. 

 이러면 글을 어떻게 올리라고? (나는 다른 편집기에 글을 써서 붙여넣기를 한다)

 사진 넣기가 말썽을 부린 지 얼마 안 되었을 뿐더러 

 참 자주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글 붙이기가 안 된다. 

 글을 편집기에서 타자로 하나하나 눌러서 쓰라고? 

 참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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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1-06-18 12:41   좋아요 0 | URL
언제까지 안 될까. 낮 열두 시가 되어도 먹통이네...
 
나 혼자 자라겠어요
임길택 지음, 정승희 그림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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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버리고 동시책 하나 사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82] 임길택, 《나 혼자 자라겠어요》(창비,2007)



- 책이름 : 나 혼자 자라겠어요
- 글 : 임길택
- 그림 : 정승희
- 펴낸곳 : 창비 (2007.8.10.)
- 책값 : 8000원


 (1) 어린이책과 그림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동화책이나 동시책에는 그림을 꽤 많이 곁들이곤 합니다. 그림이 없으면 읽기가 힘들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더 어린 아이가 읽는 책은 글이 더 크고 그림이 더 많습니다. 더 나이든 아이가 읽는 책은 글이 더 작고 그림이 더 적습니다. 어른이 읽는 책에는 그림이 아예 없기 일쑤입니다.

 어린이는 글만 읽고서는 생각을 할 수 없기에 그림을 넣는지 모릅니다. 어린이가 읽는 책에 그림이 없으면 따분해 한다고 여겨 그림을 넣는지 모릅니다. 어린이한테 생각힘을 북돋우려고 그림을 넣는지 모르고, 어린이책을 예쁘장하게 빚고 싶어서 그림을 넣는지 모릅니다.


.. 해마다 봄이 오면 / 환하게 꽃 한번 피우려고 / 산모롱이 돌아 / 돌아 나오는 / 산골짜기 저 먼 곳에 / 산다네 ..  (산벚나무/10쪽)


 임길택 님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창비,2007)를 읽으며 그림을 살짝살짝 바라봅니다. 이 동시책에 그림이 걸맞다 할 만한지 생각하고, 이 동시책에 꼭 그림이 있어야 했을까 헤아립니다.

 임길택 님 첫 동시책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1990)에는 그림이 하나도 없는 줄 압니다. 나중에 고침판을 내놓을 때에는 그림을 넣었을는지 모르겠으나, 1990년에 처음 나온 동시책에는 아무런 그림이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아무런 그림이 없었지만, 이 동시책을 읽으며 ‘생각힘을 북돋우지 못한다’든지 ‘따분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어떤 그림을 곁들이면서 쓰면 좋을’ 동시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 마당가 한쪽을 참새에게 내주고 / 나비를 쫓아가다 뒤돌아오고 / 개울 건너 앞산을 훔쳐보다가 / 눈을 감고 머나먼 데 소리를 듣고 ..  (송아지/22쪽)


 동시책이든 동화책이든, 그림을 곁들이는 이들은 동시나 동화를 한결 깊이 사랑하거나 즐긴 다음에야 그림을 곁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며 교과서 시나 학급문고 동시책을 읽을 때에도 똑같이 느꼈는데, 어설피 붙이는 그림은 안 붙이느니만 못합니다. 사랑스레 붙여야 하고, 알맞게 붙여야 하며, 아름답게 붙여야 합니다.

 귀엽게 붙이는 그림은 시를 읽는 맛을 다치게 합니다. 앙증맞거나 예쁘장하게 붙이는 그림은 시를 즐기는 기쁨을 망가뜨립니다.

 시를 읽든 수필을 읽든 소설을 읽든 동화를 읽든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피어오르는 생각과 꿈이 있습니다. 글에 붙이는 그림이 되려면, 글꽃송이가 어떤 빛깔이고 글열매가 어떤 맛이며 글씨앗이 어떤 모양인가를 읽어야 한다고 느껴요.

 착한 사람 착한 글에는 착한 그림을 붙이고, 고운 사람 고운 글에는 고운 그림을 붙이며, 참다운 사람 참다운 글에는 참다운 그림을 붙여야겠지요.


.. 누누꼬? / 사람들 한마디씩 해 댈 때 / 일흔한 살 성조 할머니 / 만날 하는 일 막걸리나 한잔 먹자며 / 철벙철벙 논가로 나가신다 ..  (모 심던 날/36쪽)


 그림은 하나도 붙이지 않고 동시책이나 동화책을 내놓으면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왜냐하면,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교과서를 펼치고 동시를 가르치던 교사는 으레 ‘눈을 감기’고 동시를 읊었습니다. 옆 동무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를 들고 동시를 읽든, 교사가 몽둥이를 흔들며 우리를 한 사람씩 일으켜세워 교과서 동시를 토씨 하나까지 틀리지 않게 똑똑히 외우는가를 살펴 제대로 못 외우면 어김없이 몽둥이질을 하던 때이든, ‘눈을 감’고 시를 들으며 ‘눈을 감’고 시를 읊으라 시켰어요(어쩌면, 눈을 뜨면 몰래 곁눈질을 할 테니까, 눈을 감기고 시를 외우도록 했겠지요).

 으스스한 교실에서 말마디 예쁘장한 교과서 동시를 외우거나 들어야 할 때면 으레 등줄기가 쭈뼛쭈뼛합니다. 도무지 무슨 그림이든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를 읽든 동화를 읽든 소설을 읽든, 글을 읽는 사람 스스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꽃그림과 삶그림과 사랑그림이 있어야 해요. 스스로 마음속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글을 읽지 못하는 노릇이고, 조용히 가슴속 그림을 엮지 못한다면 글을 사랑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 울타리도 없고 / 이웃도 없고 / 가을이면 / 억새꽃 바다를 / 이루는 곳에서 // 콩 심고 / 나락 심고 / 무를 심으며 / 엄마 아빠와 동생 / 이렇게 / 네 식구 산다 ..  (영미/56∼57쪽)


 봄날 아이와 함께 텃밭에 온갖 씨앗을 심으며 생각했습니다. 이 씨앗이 흙을 품에 안으며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줄기를 올릴까. 어떻게 잎을 틔우고 어떻게 꽃을 피우며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

 큰비가 몰아치면 큰비에 씨앗이 씻기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날이 가물면 씨앗이 말라죽지 않을까 근심합니다. 앞으로 어떤 푸성귀로 자랄는지 생각하고, 텃밭 둘레 숱한 들풀과 들꽃은 또 어떤 모양으로 날마다 새롭게 바뀔는지를 어림합니다.

 참말 하루하루 다르게 쏙쏙 돋으며 커지는 풀이요 나무입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잎을 다 떨구어 앙상하던 나무라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얼어죽거나 말라죽어 아주 맨 흙만 있던 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풀은 조그마한 땅에 서로서로 옹기종기 돋으며 푸르디푸르게 물결을 칩니다. 사월부터 유월까지 고작 석 달인데, 어느새 네 살 아이 키보다 웃자란 풀이 꽤 많습니다. 오월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뛰놀던 논둑이나 숲속을 이제는 퍽 힘들게 풀섶을 헤치며 다녀야 합니다.


.. 담 어귀 저 끝에서도 / 맡을 수 있는 짙은 꽃내 ..  (오동꽃/74쪽)


 아이는 착한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자랍니다. 어버이가 착한 사랑을 나누려 할 때에는 착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어버이가 못난 사랑이나 일그러진 사랑을 나눈다면, 아이는 못나거나 일그러진 사랑을 그예 받아먹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시를 쓰는 어른은 글줄 하나에 어떤 사랑을 실을는지 돌아봅니다. 어른은 참으로 아이들이 착한 사랑밥을 먹거나 고운 믿음밥을 먹도록 참다이 삶을 일구면서 동시 하나 내놓는지 곱씹습니다.

 “담 어귀 저 끝에서도 맡을 수 있는 짙은 꽃내”다운 시를 써서 어린이랑 흐뭇하게 웃고 떠들면서 살아가는 어른인지 되새깁니다.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다는 마음씨를 돌보면서 시를 쓰는 어른인지 가늠합니다.


.. 길러지는 것은 / 아무리 덩치가 커도 / 볼품없어요 / 나는 / 아무도 나를 /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나 혼자 자라겠어요/98쪽)


 이모저모 생각한다면, 아이하고 손 맞잡으며 살아가는 이 터전은 그닥 어여쁘지 않습니다. 동시를 읽는 어린이는 이내 중학생이 되어 미친 입시지옥 구렁텅이에 빠져야 합니다. 아니, 어른들 누구나 어린이를 미친 입시지옥 구렁텅이에 집어넣습니다. 쑤셔넣습니다. 처박습니다.

 어린이일 때만 어여쁜 동시를 읽도록 하면 되나요. 어린이한테만 예쁘장한 그림 곁들인 동시책을 읽히면 되는가요. 초등학교 육학년까지는 예쁘장한 그림에 예쁘장한 글을 먹이고, 중학교 일학년부터는 시커멓고 슬픈 그림에 시커멓고 슬픈 글을 먹이면 될는지요.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예쁘장한 그림에 길들이고, 아이들이 푸른 나날을 보낼 때에는 시커먼 그림에 길들이는 어른이란, 하나같이 밉살맞습니다.


 (2) 어린이책과 글


 어린이책을 이야기하는 어른 가운데 ‘어린이가 읽을 어린이책 비평’을 쓰는 어른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른이 읽을 어린이책 비평’만 쓸 뿐입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어린이책을 비평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살펴도 알 만합니다. 어린이책을 ‘이야기’하는 마당이지만, 언제나 어른책을 ‘비평’할 때처럼 낱말과 말투가 사뭇 다릅니다.


.. 이 가을에 별들은 / 하늘과 땅을 / 몰래몰래 오가는 것일까요 ..  (별/16쪽)


 “이 가을에 하늘과 땅을 오가는 별들”처럼 고우면서 맑은 빛으로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서 착하게 오갈 ‘어린이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란 왜 이토록 드물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어린이문학 이야기를 나눌 때뿐 아니라,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자리에 서는 어른부터 옳게 제자리를 못 찾는다고 해야 할 테지요.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꾼을 키운다는 교육대학교나 사범대학교에서 어떤 말글로 일꾼을 키우던가요. 대학교재는 어떤 말글로 이루어졌나요.

 교육이론이든 교육비평이든 어떤 말글로 이루어졌는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어린이한테 문화나 예술이나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운동경기나 환경이나 철학을 들려준다 할 때에도 어떤 말글로 들려주려 하는지 더할 나위 없이 뻔합니다.

 어린이하고 어린이 말마디를 나누는 어른이란 드뭅니다. 그저 어른 말마디를 어린이한테 심습니다. 어린이가 어린이 말마디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어린이 마음밭을 돌보고 어린이 생각밭을 일구도록 돕지 못합니다. 어린이일 때부터 어른 말마디에 익숙하도록 길들이기만 합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어린이 말마디를 즐기면서 앞으로도 이 어린이 말마디로 어린이 삶을 사랑하도록 어깨동무하지 못합니다.


.. 내리는 햇볕 / 온몸에 받고 있었다 ..  (고들빼기/23쪽)


 둘째를 낳은 옆지기 몸풀이를 도맡고 두 아이를 보듬으면서 하루 내내 등허리 펼 겨를이 없기에,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자리맡에 놓고도 하루에 한두 쪽 넘기기 벅찹니다. 졸려서 무겁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날마다 한두 쪽씩 읽습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두 아이가 즐길 말과 넋과 삶을 곱게 헤아리고 싶기에, 눈꺼풀에 쇳덩이가 얹혔지만 시 한 줄을 읽고, 시 두 줄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새우처럼 몸을 말고 엎드려 책을 펼치는 아버지 허리에 첫째 아이가 올라타며 놉니다.


.. 아무도 오지 않은 학교에서 / 신나게 그네를 탔다. / 언니들보다 멀리 / 날아가진 않지만 / 운동장도 움직이고 / 학교도 움직였다 ..  (1학년 정희/44쪽)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일군 임길택 님은 집과 학교에서 어떻게 이 책에 담긴 시를 썼을까 생각해 봅니다. 임길택 님은 집식구가 모두 잠들고 나서 시를 썼을까요.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시를 썼을까요. 몸이 아파 자리에 드러누웠을 때에 시를 썼을까요. 밥을 먹다가 시를 썼을까요. 뒷간에서 똥을 누면서 시를 썼을까요. 아이를 등에 업고 시를 썼을까요. 새벽에 홀로 조용히 일어나 시를 썼을까요. 아이를 들판이나 숲속으로 데리고 나가 마실을 하면서 아이와 나란히 시를 썼을까요.


.. 오동꽃 세 송이 / 머리에 꽂고 / 마실 나와 방긋 웃는다 ..  (민정이/62쪽)


 오동꽃을 머리에 꽂으며 놀 때에 오동꽃 시를 씁니다. 오동나무 튼튼하게 자라나는 터전에서 아이들이 오동꽃을 머리에 꽂습니다. 그렇지만 오동나무 오동꽃이 흐드러진 둘레에서 비바람에 오동꽃이 떨어지더라도 그저 밟는 아이가 꽤 많아요. 왜냐하면, 오동꽃이 길바닥에 후두둑 숱하게 떨어진 자리를 자동차는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거든요.

 아이들은 자동차가 오동꽃을 밟고 지나가듯, 저희도 오동꽃을 밟기만 할 뿐 머리에 꽂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밟는 꽃’을 머리에 꽂으면 서로서로 미친 짓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겠지요. 아이들은 ‘꽃을 밟는 자동차’를 모는 어른하고 ‘자동차에 탄 채 오동꽃이 밟히는 줄 모르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숲에서 자라는 오동나무 오동꽃은 알아도, 골목동네 한켠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오동나무 오동꽃은 모르기 일쑤예요.

 그러니까, 어린이는 오동꽃을 볼 수 없고, 어른은 오동꽃놀이를 하는 어린이를 볼 수 없으며, 어른은 어린이가 오동꽃을 못 보도록 가로막는데다가, 어린이는 어른이 오동꽃을 짓밟기 때문에 이 버릇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귀여운 가락에 귀여운 목소리로 오동꽃 노래를 부르더라도, 막상 머리에 오동꽃을 꽂지는 않습니다.


.. 골목 모퉁이를 돌아 / 시장 가시던 때처럼 / 할머니가 오늘 아침 돌아가셨다. // 아무 말도 없으셨다고 한다. 그냥 두 눈 꼭 감고 있다가 / 아버지 손 꼭 잡고 있다가 / 아무렇지도 않은 듯 / 그냥 돌아가셨다 ..  (할머니/94쪽)


 임길택 님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덮습니다. 지난밤 드디어 마지막 시까지 다 읽습니다. 새벽 세 시에 첫째 아이 똥기저귀를 갈며 잠에서 깨어 다시금 찬찬히 읽습니다. 유월 시골자락은 새벽 네 시만 되어도 동이 트고 네 시 반이면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환합니다. 환한 새벽 빛살에 기대어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차근차근 되씹습니다.

 이 동시책은 뜨거운 햇살을 버드나무 그늘에서 그으며 읽거나, 달 지고 해 뜨는 새벽나절 보오얀 멧골에서 읽거나, 산들바람에 한들거리다가 똑 떨어지는 오동꽃을 살며시 올려다보는 골목동네에서 읽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차가운 교실바닥에서라든지, 자동차가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마을이라든지, 덜컹거리고 복닥거리는 버스간에서는 읽을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니, 어디에서라도 따스한 가슴으로 따스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 할 때에는 읽을 만합니다. 어떠한 곳에서라도 넉넉한 손길로 넉넉한 꿈을 이루고 싶다 할 때에는 되새길 만합니다. 다만, 수수한 수수꽃다리 같은 동시인 줄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수수꽃다리는 그야말로 수수합니다. 수수꽃다리는 눈부시지 않고, 수수꽃다리는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고운 빛이 수수한 수수꽃다리요, 착한 꽃망울이 작디작게 어우러져 빛나는 수수꽃다리입니다.


.. 아버지는 그곳에 차를 세우기 좋다고 / 차도 제 집이 있어야 한다고 / 과꽃 핀 땅을 집으로 삼았다. // 이제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 차가 서 있는 그곳에 / 과꽃이 자랐다는 걸 모른다. / 그 과꽃 위에 이따금 / 나비가 찾아왔다는 건 / 더더욱 모른다 ..  (과꽃 네 포기/115쪽)


 동시를 읽을 아이들이 수수하게 살아가며 수수한 사랑을 수수한 동무랑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를 읽힐 어른들부터 수수하게 일하고 수수하게 놀며 수수하게 살림을 일구면 좋겠습니다.

 동시를 읽을 아이들한테 자가용을 태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동시를 읽힐 어른들부터 자가용을 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가용에 아이를 태우고 ‘멋지거나 좋거나 재미난’ 데에 데려가지 않아도 됩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숲길이나 논둑길이나 골목길을 거닐면서 바람과 풀과 햇살과 물과 나무와 새와 벌레가 들려주는 가느다란 노랫자락을 가슴으로 삭이며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동시이고, 바람에 사각이는 풀잎 소리가 동시입니다. 어린이가 읽을 동시가 있어 어른이 읽는 시가 있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동화가 있어 어른이 읽는 문학이 있습니다. 동시가 없이는 어른들 시란 없고, 동화가 없이는 어른들 문학이란 없습니다.

 자동차를 떠나보내고 과꽃을 다시 심는 자리에 아리따운 시 하나 돋습니다. 자동차를 떠나보내며 남는 돈으로 동시책 하나 장만하여 읽는 손길에 사랑씨 하나 맺습니다.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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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저귀


 두 아이 기저귀를 갈다 보면, 큰 아이가 되든 작은 아이가 되든, 참 작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기저귀를 대는 아이는 모두 작다. 기저귀를 떼는 아이도 아직 작다. 요 작은 몸뚱이로 함께 살아가고, 고 작은 손발로 이 땅에 서며, 이 작은 가슴으로 사랑과 믿음을 물려받는다. 밤새 옆지기랑 갈마들면서 둘째 갓난쟁이 똥오줌기저귀를 열 장쯤 갈았나 싶다.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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