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6.3.
 : 아이와 자전거로 다니는 아버지



- 오늘날 거의 모든 집에서는 아이하고 걸어서 다니지 않을 뿐더러, 자전거로 다니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집에서는 아이를 자가용에 태워서 다닙니다. 갓난쟁이일 때부터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 자랄 때부터 자가용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입니다. 아니, 어머니 뱃속에 목숨이 예쁘게 깃들기 앞서 늘 자가용으로 움직였다고 해야 맞겠지요.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뿐 아니라 서너 살 아이들까지 자가용에 타는 일을 아주 마땅하고 스스럼없이 여깁니다. 여덟아홉 살이라든지 열 살 넘은 아이들은 집에 자가용 없는 삶을 생각조차 못합니다. 자가용은 필수품과 같다 할 수 있고, 자가용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는 줄 압니다.

- 연예인이나 노래꾼이나 정치꾼이나 높은자리 공무원은 대중교통인 버스나 전철을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름과 얼굴이 널리 팔려서 대중교통을 타면 힘들다고 합니다. 열 해쯤 앞서였나 핑클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던 옥주현 님이 지하철을 한 번 타고 나서 느낌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늘 버스나 전철이나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라면 지하철을 타고 나서 느낌글을 쓸 일이 없겠지요. 언제나 자가용만 탔다가 지하철을 거의 처음으로 탄 사람으로서는 느낌글이 샘솟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탔다 해서 앞으로도 내내 타지는 않는 만큼, 여느 때에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걷는 사람 마음이라든지 자전거 타는 사람 마음 또한 알 길이 없겠지요.

- 지난 1999년에 서원희라는 분이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내일을여는책)를 낸 적 있습니다. 서원희 님은 아이를 키우면서 자가용을 두지 않았고(둘 수 없는 살림이었고), 아이들은 다른 집 어른한테서 자가용을 얻어 탈 때에 무척 어려워 하면서 고마워 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내 집 자가용을 탈 때에도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마땅히 여기거나 스스럼없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가용을 태워 줄 때에도 고맙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 어린 날부터 자가용 타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버스를 탈 줄 모릅니다. 늘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라든지, 버스가 흔들릴 때 느낌이라든지, 버스삯이라든지, 버스에서 부대끼는 다른 사람들 모습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한여름에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느낌이라든지, 한겨울에 짐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을 알 수 없어요.

- 둘째가 태어난 뒤로 집에서 오랫동안 지내야 하는 첫째는 퍽 심심해 합니다. 그러나 첫째하고 자주 오래 놀아 주지 못합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고 옆지기 미역국을 끓이면서 여느 때처럼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모든 일을 도맡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끔가끔 숲을 함께 바라보면서 숲바람을 맞는다든지 자전거를 태우는 일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싶어도, 이동안 애 어머니와 아기가 힘들 때가 찾아올는지 모르니, 장보기 하러 읍내에 갈 때가 아니고는 좀처럼 밖으로 멀리 가지 못합니다.

- 저녁나절 아이를 불러 자전거마실을 하기로 합니다. 멀리는 못 가고, 마을 어귀 보리밥집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달걀 열 알을 사고 보리술 두 병을 사는 마실입니다. “자전거 타자!” 하고 부르면 “네!” 하고 뾰르릉 달려옵니다. 저녁이니 바람이 차갑기에 겉옷을 입힙니다. 어머니가 입는 옷을 입히고 수레에 앉힙니다. 아이는 좋아서 입이 벌어집니다. 논둑길을 달릴 때 아이는 수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릅니다. 고작 저녁 한때 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아이를 놀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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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난 책읽기


 재미나다고 느끼는 책을 읽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누구나 재미난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다. 누구라도 재미나다 싶은 이야기에 눈이나 귀나 마음이 쏠리기 마련이다.

 나는 재미난 책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재미나다 싶은 책 또한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책이다. 내가 기쁘게 장만하는 책은 참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끼는 책이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면 아주 고맙다고 여긴다. 이러한 책을 쓴 사람과 이러한 책을 엮은 사람 모두 더없이 고맙다고 절을 하면서 장만해서 읽는다. 이러한 책을 갖춘 책방 일꾼 또한 참말 고맙다고 절을 한다.

 곰곰이 돌아보면, 재미난 책은 아주 많다. 아름다운 책도 퍽 많다. 재미나면서 아름다운 책도 꽤 많다. 그러나,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은 아주 드물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은, 아름다움이 재미로 녹아들고 사랑스러움이 재미로 스며든다.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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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6-12 08:45   좋아요 0 | URL
어머...벼리 넘어졌었나봐요.
많이, 오랫동안, '호오~'해 주셔야 겠어요.

파란놀 2011-06-12 13:21   좋아요 0 | URL
자전거에 태워 마실 다녀오는 길에 수레가 뒹굴어서 까졌는데 이제 다 아물었어요. 아버지 생채기는 흉으로 남았지만, 아이는 다 사라지네요 ^^;;;
 



 세이레 어린이


 드디어 세이레를 난다. 세이레를 난 아이를 궁금해 하는 사람한테 얼굴을 내보일 수 있다. 둘째 아이 큰아버지한테 보내 줄 사진을 하나하나 헤아린다. 큰아버지는 둘째 조카가 태어난 일을 어떻게 느낄까. 첫째는 집밖에 좀처럼 못 나가고 집안에서 갓난쟁이하고 함께 지내야 하는데에도 퍽 잘 지낸다. 둘째를 씻길 때에 곁에서 일손을 거들고, 방바닥 걸레질을 해 주며, 예쁜 짓과 미운 짓을 갈마들며 착하게 자란다.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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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버스 에어컨


 읍내 장마당으로 가는 시골버스에 에어컨이 빵빵하다. 시골버스에 탄 사람은 몇 없다. 도심지를 달리는 버스라면 다른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 창문을 꽁꽁 닫고 에어컨을 틀밖에 없겠지만, 푸른 들판과 멧자락이 펼쳐진 시골길을 천천히 달릴 시골버스라면 창문을 활짝 열어 푸른 바람을 맞아들이면 좋을 텐데.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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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국 책읽기


 철모르던 때에는 가위로 미역을 잘라서 불린 다음 끓였습니다. 철이 조금 들 무렵 손으로 미역을 끊어서 불린 다음 곱니다. 미역국은 ‘끓일’수록이 아니라 ‘골’수록 맛이 한결 우러납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댁으로 돌아가시고 닷새가 됩니다. 닷새를 보내며 저녁나절 기저귀 빨래를 하고 미역을 새로 끊어 불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애 엄마 몸풀이(산후조리)를 집에서 홀로 맡아서 하는구나’ 하고. 첫째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둘째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옆지기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이렇게 홀로 맡아서 한다고 새삼 느낍니다.

 집일을 잘하든, 집살림을 잘 못 꾸리든,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맡아 꾸리는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을 더 튼튼히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도와주거나 맡을는지 모르지만, 남이 돕기를 바란다거나 옆지기가 하루아침에 기운을 차려 주먹 불끈 쥐며 모든 집일과 집살림을 짊어져 주기를 꿈꿀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튼튼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맑아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착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아요.

 이듬날 아침에 새로 골 미역국을 헤아리면서 두부와 버섯을 잔뜩 지집니다. 이듬날 아침에는 호박을 잔뜩 지지자고 생각합니다. 날푸성귀랑 참외랑 토마토를 잘 썰어 무침을 하나 하자고 생각합니다.

 하루일로 고단한 몸을 드러누우면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돌리지 못하고 그저 땅바닥에 찰싹 들러붙습니다. 흙하고 아주 가깝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흙하고 더 가까이 들러붙다가는 아주 흙하고 하나가 될 테지요.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가늘게 내다가 생각 한 자락을 더 하고는 까무룩 곯아떨어집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밥을 먹고 새옷을 갈아입으며 잠자리에 드는데, 왜 사람들은 날마다 먹는 밥이랑 날마다 입는 옷이랑 날마다 지내는 살림집 이야기를 글로 안 쓸까 하고 생각을 살짝 합니다. 밥하거나 빨래하거나 살림하는 나날이란 글로 적바림할 만한 값이 없을는지요. 밥하기 빨래하기 살림하기는 책으로 엮일 만한 뜻이 없을는지요.

 바쁘거나 힘들거나 아프다면 빨래기계를 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빨래기계는 사람들 몸과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사람이라면 제 옷은 제 손으로 빨아서 입어야 합니다. 빨래를 도맡을 집일꾼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나 여자가 집일을 도맡는 집일꾼이지 않습니다. 내 밥은 내가 차리고 내 옷은 내가 빨며 내 살림집은 내가 돌보아야 합니다. 밥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남자란, 사람 구실을 못하는 아버지이거나 남자입니다. 밥할 줄 아는 어머니와 여자는, 사람 구실을 얼마나 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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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6-12 07:22   좋아요 0 | URL
갓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 빨래 기계 없이 빨래를 해대기란 참 쉽지 않더군요. 저도 한동안 아이 옷은 손빨래로 빨아 입혔는데 정말 아이고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오더라고요.

주로 새벽에 글을 쓰시지요? 아침에 서재에 들어오면 늘 된장님 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파란놀 2011-06-12 07:34   좋아요 0 | URL
새벽 아니면 글을 쓸 수 없거든요 ^^;;;;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일을 하고 아이랑 부대끼고 나서... 겨우겨우 밤에 살짝 눈을 붙였다가 밤새 둘째 똥기저귀 갈고 빨며 하다가 끼적끼적 합니다.
첫째가 태어난 날부터 하루에 두 시간 넘게 잔 날이 거의 없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