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12.25. 

 읍내로 아이를 데리고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올 일이 있어 케익을 하나 사 보았다. 아이는 뻥터뜨려를 들고는 아빠한테 쏠까나 한다. 이 녀석아, 사람한테 겨누지 마라.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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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27.  충청북도 음성군 읍내리. 

오래된 흙벽 창고 건물이 하나 빼고 모조리 헐렸다. 그러고 보니, 흙벽 창고를 안 보이게 쌓아 놓던 담벼락도 곧 허물겠네. 이 그림도 가뭇없이 잊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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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인형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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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맞잡고 다 같이 노는 겨울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 가브리엘 벵상, 《꼬마 인형》(열린책들,2003)



 아침에 두 손이 꽁꽁 얼어붙을 때까지 눈을 쓸다가 들어옵니다. 더 쓸어야 하지만 손가락이 아린 데다가 아침을 차려야 하기에 나중에 더 쓸기로 하고 들어옵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자동차가 없으니 굳이 길을 신나게 쓸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이 걸을 자리만 쓸어도 돼요. 우체국 일꾼하고 택배 일꾼이 오간다거나 이오덕학교 자동차가 움직일 때에 미끄럽지 않도록 눈길을 씁니다. 그러나 애써 눈길을 쓸어 놓아도 택배 일꾼은 지난 한 주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체국 일꾼은 꼭 한 번 들렀습니다.

 눈을 쓸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두 살쯤 더 먹는다면 아빠 곁에서 겨울날 눈을 함께 쓸지 않겠느냐고. 앞으로 이태는 아빠 혼자서 눈쓸기를 도맡고, 이동안은 아빠 곁에서 눈밭을 마음껏 밟으면서 놀라 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큰눈이 내리면 저랑 또래 아이들은 눈밭에서 신나게 놀았고, 어른들은 주섬주섬 모여 눈을 치웠습니다. 우리들한테 눈을 쓸라느니 무어라느니 하지 않았다고 떠오릅니다. 어린이가 밟아도 눈 발자국이 나서 눈을 쓸기에 조금 까다롭지만, 어른이 밟을 때만큼 까다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눈밭에서 뒹굴며 놀아야 합니다. 손이 시린 줄을 모르도록 놀고, 볼이 발개지도록 놀아야 해요. 눈싸움은 누가 가르쳐야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눈을 어떻게 뭉쳐야 하는가를 애써 어른들이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며 동무한테서 배우고 언니나 오빠나 형한테서 배웁니다. 눈을 굴러 눈사람 빚기 또한 구태여 어른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익히거나 형제 자매 남매끼리 눈누리에서 뒹구는 동안 시나브로 익힙니다.

 겨울이기에 겨울나라 눈밭에서 놉니다. 봄이 새롭게 찾아오면 봄누리 꽃밭에서 놉니다. 여름을 다시금 맞이하면 여름철 물가에서 놉니다. 가을을 새삼스레 맞아들이면 가을녘 들판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놀이를 하겠지요.


― “나랑 놀자 ……. 그런데 놀러 나가면 주인 할아버지한테 혼나겠지!” (25쪽)


 온통 눈누리가 된 시골집에서 바깥마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용하게 눈이 살짝 멎은 날 낮에 읍내 장마당 마실을 하면서 먹을거리는 장만해 놓았습니다. 애 아빠가 잘못하는 바람에 그만 집안 물이 얼어붙어 멧중턱 이오덕학교를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 써야 하지만, 그런대로 지낼 만합니다. 바보스러운 애 아빠 때문에 집식구가 애먹지만, 그만큼 애 아빠는 물이 얼마나 대수로우면서 고마운가를 다시금 느낍니다. 요사이는 멧골자락에서도 땅을 파서 땅속물을 뽑아올려 쓰거나 수도물을 이어서 쓰는데, 아득히 먼 옛날까지도 아닌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랑 할머니 할아버지 적 시골마을과 멧골마을에서는 겨울날 물을 어떻게 썼으려나요. 우물물은 겨울에도 녹지 않았으려나요. 겨울에 우물마저 얼어붙으면 어찌해야 하나요. 눈 덮인 길에 우물물을 길어올 때에 손은 얼마나 시렸을까요. 겨우내 빨래는 어찌 하고 설거지랑 밥하기는 어떻게 했으려나요.

 아이가 스물아홉 달 나이에 집안에 물이 얼어붙어 애먹는 삶을 헤아리는지 모르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예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예전에는 집에서 빨래하고 씻기고 했으나 이제는 집에서 빨래를 못하고 씻기지도 못해요. 멧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서 빨래하고 씻긴다든지, 어제처럼 읍내 마실을 가서 읍내 목욕탕에서 씻긴다든지 하면 몸으로 알아채겠지요.


― “가질래?” (63쪽)


 눈누리가 된 집이다 보니 집안에서 퍽 오랫동안 지냅니다. 이오덕학교 언니 오빠들은 겨울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눈오는 날 눈쓸기를 하면 아빠 따라 아이도 눈밭에서 뛰어다닙니다. 그렇지만 집에 있을 때라면 아빠가 밥하는 곁에 찰싹 달라붙어 불가에서도 두려움 없이 놉니다. 불가에서 놀다가 아빠나 엄마한테 꾸지람을 듣지만 달리 놀거리가 없습니다. 밥하는 아빠가 아이를 더 살피면서 자그마한 일거리라도 주어야 합니다. 밥을 먹이고 나서는 밥상을 치울 때에 밥상 닦기 같은 일거리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아이랑 함께 춤을 춘다든지, 종이를 펼쳐 놓고 아이는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아빠는 글을 쓴다든지,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아빠는 아빠대로 아빠 책을 읽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 책을 읽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아 주고 저렇게 놀아 주다가도 아이는 혼자서 종알종알 떠들면서 잘 놀기도 합니다. 망가진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 준다 하기도 하고, 요 인형 조 인형을 집어들고 놀기도 하며, 볼펜이나 크레파스를 들고 이곳저곳에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합니다.


― “또 오려무나.” “그럴게요.” (75쪽)

 

 ‘말’이 거의 안 나오는 그림책 《꼬마 인형》을 펼칩니다. 아이는 아빠나 엄마가 이 그림책을 펼쳐 이야기 살결을 붙여 읽어 주어도 좋아하고, 저 혼자 펼쳐서 읽으면서도 좋아합니다.

 그림이 따사로우면서 보드랍거든요. 그림결이 포근하면서 너그러워요. 하나도 투박하지 않은 굵직한 금으로 이루어진 그림이요, 수수하면서 살가운 손길로 이루어진 그림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작은 ‘어린이 손인형’을 꼬물거리면 어린이 손인형은 살아숨쉬는 놀이동무가 되고, 할아버지가 작은 ‘늑대 인형’을 쪼물딱거리면 늑대 인형은 무시무시한 이빨로 어린이 손인형을 잡아먹을 듯 무섭습니다. 그림책을 넘기는 아빠랑 아이는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손을 잡습니다.


― “드디어 꼬마 손님이 하나 왔군.” (9쪽)


 《꼬마 인형》에 나오는 ‘사람 어린이’는 혼자서 ‘할아버지 손인형 연극’을 보러 찾아오고, 할아버지는 딱 한 사람인 관객인 어린이 앞에서 즐겁게 손인형 연극을 선보입니다. 사람 어린이는 할아버지 연극에 빠져들면서 어린이 손인형하고 놀고파 하고, 늑대 손인형한테서 어린이 손인형을 살려내려고 하는데, 그림책 《꼬마 인형》 마지막 쪽을 덮을 무렵, 어린이도 할아버지도 서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골목길에서 마음껏 뛰놉니다.

 두 사람한테는 손인형 연극도 재미나겠지만, 무엇보다 서로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웃고 떠들고 달리며 춤추는 놀이가 가장 재미납니다. 우리 집 딸아이가 온갖 놀잇감을 보여줄 때보다 엄마나 아빠가 함께 손을 맞잡고 놀 때에 가장 즐거워하듯, 《꼬마 인형》 어린이 또한 살가운 눈빛과 따뜻한 손길로 함께 놀 벗이 가장 고마워요.

 집식구들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밥상을 치우니 어느새 열두 시를 넘고 한 시 가깝습니다. 오늘도 하늘에는 흰구름 가득하지만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쬡니다. 한 시를 넘고 두 시쯤 되면 우리 집 마당에도 햇볕이 넓게 드리우겠지요. 아침나절 쓸어 놓은 길은 눈이 말끔히 녹을 테고요. 이 즈음 해서 아이랑 손 잡고 밖으로 나와 아빠는 눈길을 마저 쓸고, 아이는 눈밭을 더 뛰어놀라 해야겠다 싶습니다.

 겨울이라고 날마다 눈이 오지 않으며, 어쩌면 한 해 두 해 뒤틀리는 날씨 때문에 앞으로는 눈 구경 하기 몹시 힘들는지 몰라요. 큰도시에서는 큰눈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시끄러운데, 멧골자락에서는 큰눈이든 작은눈이든 눈쓸기를 할 때에는 손가락 아리며 고달프지만, 아이하고 신나게 뒹굴며 놀 수 있어 호젓합니다. 아이랑 아빠 숨소리와 목소리만 멧골에 울려퍼집니다. 때때로 눈산에서 먹이를 찾는 작은 새들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살랑 불면 바람결에 나뭇가지에서 호도독 떨어지며 날리는 눈소리를 들어요. 집안 물은 얼었으나 골짜기 냇물은 졸졸 흐릅니다. 가느다란 냇물 소리를 듣는 가운데, 아이가 눈 밟으며 내는 뽀도독 소리를 듣습니다. 화학방정식 소금이든 흙이든 연탄재이든 뿌리지 않는 길에서 놀 수 있어 좋은 시골마을 겨울 하루입니다. (4343.12.30.나무.ㅎㄲㅅㄱ)


― 꼬마 인형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열린책들 펴냄,2003.4.20.(2009.10.30. 다시 나옴)/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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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 침을 뱉어라
이효인 / 예건사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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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삶으로 껴안으면 한결 따스하겠지
― 이효인, 《영화여 침을 뱉어라》



- 책이름 : 영화여 침을 뱉어라
- 글 : 이효인
- 펴낸곳 : 영화언어 (1995.1.15.)


 생각을 열어젖히는 글을 읽을 때면 반가우며 고맙고 기쁩니다.

 한창 생각을 열어젖히다가 생뚱맞다 싶은 이야기가 나오면 슬프면서 안쓰럽고 기운이 빠집니다.

 영화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이효인 님이 쓴 《영화여 침을 뱉어라》를 두 권째 장만하여 다시 읽다가 〈객담 1. 아이를 재우며〉라는 꼭지가 있어 곰곰이 살핍니다. 아이 없이, 또 옆지기 없이, 그예 혼자서 자전거 하나에 기대어 살던 2006년에 이 책을 처음 마주하며 읽을 때에는 그닥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친 꼭지를 새삼스럽다고 느끼며 차근차근 읽습니다.

 2010년 12월 한겨울을 보내는 오늘은, 저 또한 아이 하나를 재우면서 밤잠이 달아나 깊은 밤에 멀뚱멀뚱 깬 몸입니다. 머잖아 둘째가 태어나 두 아이를 먹이고 입히며 씻기고 재우는 나날을 보내야 할 어버이인 내 삶입니다. 그런데 글이름은 “아이를 재우며”이지만, 막상 아이하고 보내거나 부대끼는 삶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외려 뜬금없는 빗댐말을 읽으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한숨 한 번 길게 내쉽니다. 이내 눈살을 풀며 헤아립니다. 나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빗댐말을 쓰지는 않지만, 내가 쓰는 빗댐말을 못마땅해 한다든지, 나는 웬만해서는 빗댐말은 안 쓰지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적바림하는 글조차 싫어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 요즘 젊은 평자들의 글들이 젊은 여자들의 똥꼬치마처럼 짧게 파닥거리는 것이라면 최 선생의 글은 방귀를 슬쩍 흘러내리고도 겉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깡다구와 품격을 동시에 갖춘 것이다 ..  (189쪽)


 거친 말투를 쓴다고 해서 거친 사람이지 않습니다. 거친 말투로 여린 몸과 마음을 가린다거나 덮는다거나 지키기 일쑤입니다. 말투가 거친 사람일수록 몸이나 마음은 더없이 조그마하며, 말투가 보드라운 사람일수록 몸이나 마음은 몹시 크기 마련입니다.

 거친 말투를 받아들여야 했던 내 지난날을 곱씹습니다. 갖은 욕지꺼리와 주먹다짐이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던 군대살이를 떠올립니다. 참말 군대에서는 갖은 욕지꺼리와 주먹다짐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는지 새삼 되씹습니다. 어쩌면 욕 한 마디 않고 주먹다짐 한 번 없으면서 잘 살아남을 뿐 아니라 둘레 사람들한테 따스한 사랑을 나눌 만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해 보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이루지 못할 뿐인 꿈일는지 모릅니다만, 나부터, 군대살이를 하던 지난날 착하면서 참다이 지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문화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사회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상품 자본의 논리라는 것이다. 상품 자본의 논리는 끊임없이 무차별 대중들에게 적합한 형태의 ‘물건’을 요구한다. 이 물건은 상품으로서의 가치와 수명을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변신은 상품성의 기준을 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이국적인 것을 선호하는 기호, 자기 문화에 대한 열등감, 상품성을 갖추기 위한 사회적 압박 그리고 이런 풍토에서 파생된 정신분열증 등이 ‘탈권위 쿠테타’와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일본의 영화 문화를 쫓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  (181쪽)


 《영화여 침을 뱉어라》라는 책은 영화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고픈 이라면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찾아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만 한 책 하나 찾고자 다리품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이쯤 되는 책 하나 차근차근 새겨읽으며 마음닦이를 한다면 더욱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징검돌이거나 디딤돌입니다. 길동무이거나 옆지기가 될 만한 책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길동무는 사랑스러운 벗이요, 옆지기는 믿음직한 너나들이입니다. 《영화여 침을 뱉어라》는 틀림없이 깊고 너른 생각과 마음씀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영화라는 문화에 이론이라는 지식을 엮는 데에 그칩니다. 영화라는 삶에 사람이라는 사랑을 여미지는 못합니다.

 영화를 읽으면서 영화를 파헤치는 눈썰미를 갈고닦는 좋은 동무인 《영화여 침을 뱉어라》라 할 만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면서 영화와 함께 살아가려는 길에는 걸맞지 않는 무거운 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둘레에는 영화를 말하는 책이 몇 가지나 있으려나요. 한국 영화를 말하는 책이란, 한국이나 나라밖이라는 틀을 넘어 영화 문화를 다루는 책이란 얼마나 있는가요. 아직 ‘영화 삶’을 바라기는 힘듭니다. 섣불리 ‘영화 누리’를 꿈꿀 수 없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씩씩하게 이룰 꿈입니다. 낮은 자리가 아니라 여느 수수한 자리에서 서로서로 포근하며 너그러이 감싸안으면서 북돋울 꿈이에요. (4343.12.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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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맞는 마음


 새눈이 내립니다. 문을 열고 내다 봅니다. 마당에 어느새 새눈이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밤 한 시입니다. 아이는 곱게 잠들지 않습니다. 그예 울기만 합니다. 힘들어서 그러는지, 고단해서 그러는지, 심심해서 그러는지, 더 놀고파 그러는지 좀처럼 예쁘게 잠들지 못합니다. 새근새근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어찌해야 좋을까요. 스물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랑 꽤 자주 부대끼는 일이지만, 부대낄 때마다 슬프고 안쓰럽습니다. 악을 쓰지 말고 억지를 부리지 말며 어여삐 잠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 지나치려나요.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안습니다. 낮나절 아이를 안고 읍내를 다녀오느라, 저녁나절 빨래를 하느라, 더구나 아빠는 낮잠을 못 잔 몸이라, 아이를 안으면서 끄응 소리가 납니다.

 아이한테 밤눈 내리는 바깥 모습을 보여줍니다. 달도 자고 별도 자는 이 깊은 밤에 온누리 온통 하얀 빛깔인데 홀로 이렇게 깨어 울면 어떡하니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빠도 속으로는 얘가 참 울음을 못 그치는구나 싶어 밉살맞네 하고 여겼습니다만,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을 고칩니다. 나 또한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어떠했고, 또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아이라 할 때에 어떠할까 돌아보면, 아이를 다그칠 수 없습니다.

 품에 안긴 아이는 울먹울먹하다가 찬찬히 머리를 파묻습니다. 머리를 파묻은 아이를 서서 안다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서서 안고 싶으나, 팔과 허리가 받쳐 주지 않습니다. 배에 올려놓다가 팔베개를 하고, 한참 소근소근 달래니 비로소 눈을 깜빡깜빡 하다가는 고이 잠듭니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놀리고 가르치고 보듬으며 살아오셨을까요.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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