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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김영갑 1957∼2005
- 사진ㆍ글 : 김영갑
- 펴낸곳 : 다빈치(2006.5.15.)
- 책값 : 45000원
비싸지 않은 사진책이 있으랴만, 사진책 《김영갑 1957∼2005》도 만만치 않은 값입니다. 성남훈 씨가 낸 사진책 《유민의 땅》(눈빛,2006)은 5만 원이고, 강운구 님이 낸 사진책 《우연 또는 필연》(학고재,1994)은 9만 원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을 모은 《은자의 나라 한국》(YBM Si-Sa,2002)는 98000원이에요. 이렇게 따지고 보면, 《김영갑 1957∼2005》에 붙은 45000원은 그럭저럭 붙은 값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5’보다는 ‘0’을 붙여 준다든지, ‘4’보다는 ‘3’만 붙여 주어도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 중간산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빛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간산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 〈83쪽〉
스무 해 남짓, 아무도 돌보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제주섬 오름을 사진으로 담은 김영갑 님입니다. 더욱이 그냥 사진도 아닌 파노라마사진으로만 담았습니다. 김영갑 님이 꾸준하게 제주섬 오름을 파노라마로 찍으니, 하루하루 알아주는 사람도 생기고, ‘그거 하나만 찍는 사람’쯤으로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 내가 한라산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 대신 웃는다.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기에 한라산 자락에서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다 .. 〈59쪽〉
김영갑 님뿐일까요. 다른 사진작가를 볼 때에도, 글쟁이를 볼 때에도, 그림쟁이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나 예술에 몸바친다고 하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들 보통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너, 그거 왜 하니? 밥이 되니, 돈이 되니? 뭐가 되니?’ 하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꾸만 돈-힘-이름이 있는 쪽으로 우리 눈길을 돌리라 합니다. 자, 그래서 그런 쪽으로 눈을 돌린다 칩시다. 돈한테 눈을 돌려 돈을 얻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일는지요. 힘한테 눈을 돌려 어마어마한 권력을 움켜쥐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참뜻일는지요. 이름한테 눈을 돌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이름값을 세상에 남기는 일이 우리가 꾸려 가는 삶일는지요.
말이 아닌 사진으로, 몸짓 발짓 손짓에다가 마음짓까지 모두 담아낸 사진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김영갑 님입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붓을 놀려 글을 몇 글자 끄적이기도 합니다. 사진만 보아서는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이 드물고, 사진을 보면서 우리 삶터를, 자기 자신을 느끼거나 헤아리는 사람이 참 없기 때문입니다.
..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 〈23쪽〉
김영갑 님은, “들판의 야생화들을 한 다발 꺾어 병에 꽂아 두면 벌과 나비가 찾아들었다. 그 녀석들도 꽃 속에서 한참을 놀다 가곤 했다. 꽃을 찾아드는 벌과 나비들을 볼 때마다, 내 사진도 그래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요란스럽게 떠벌리지 않더라도 말없이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면, 한 사람 두 사람 사진을 보러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해 온몸을 던져 몰입해야 하는 것이다.(103쪽)” 하고 말하면서 자기가 사진 찍는 뜻을 밝힙니다. 이렇게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다른 무엇이든, 바쳐야 이룹니다. 하나되어야 만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스스로 곰삭여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좋아서 찍은 사진입니다. 뒷사람한테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북돋우고 알뜰하게 끌어올리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찍어 온 사진입니다. 김영갑 님이 찍지 않아도 제주섬 오름은 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김영갑 님이 남기지 않았다면 제주섬 오름 모습이 나날이 바뀌고 무너지고 개발과 돈벌이 땅놀음에 사라져 버렸다고도 하겠지만, 이렇게 바뀌고 무너지는 우리 삶터도 우리 모습이요 역사일 테지요. 이런 우리 모습과 역사 가운데 한 자락을 붙잡은 김영갑 님 사진책 《김영갑 1957∼2005》입니다. 스물 몇 해에 걸쳐 모아낸 사진들인데, 이 사진책 하나 집어들고 스물 몇 해에 걸쳐서 잘 간수하면서 즐길 수 있다면, 책값은 그다지 안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뭐, 저도 스무 해쯤 꾸준하게 즐길 마음으로 이 사진책을 선뜻 샀습니다. (4339.7.25.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