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전사 - 책으로 만나는 풀꽃평화 1
쿤가 삼텐 데와창 지음, 홍성녕 옮김 / 그물코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티벳은 관광지가 아닌 삶터이자 싸움터
- <티벳전사>를 읽고



<1> 티벳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에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가 보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습니다. 제 둘레에도 돈을 모아 한두 달이나 한 해 가까이까지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 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렇게 다녀온 분들은 한결같이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좋을 만하겠죠? 티없이 맑은 하늘,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멋을 간직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그곳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 티벳의 진실은 여행사 카달로그나 여성지의 명상 소개 코너
속이 아니라 차라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오지 리포트 속에 있지
않을까 .. <옮긴이 말, 306쪽>



지금 티벳은 중국과 싸우고 있습니다. 참 오랫동안 싸우고 있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티벳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올리고 넉넉히 즐기던 티벳 문화는 하루아침에 '반동'과 '봉건'이란 이름으로 내몰리며 무너지고 부서지고 사라졌습니다. 문화유산도 부서졌으나 깨끗하던 티벳 자연도 무너졌습니다. 들짐승 목숨을 사람 목숨과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기던 문화와 사회는 중국 인민군이 부순 건물과 함께 주저앉고 맙니다.

남아 있는 사원은 옛 자취를 보여주는 유물이 될 뿐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가 된 티벳'의 삶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티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유물'일 뿐 '살아 있는 역사나 문화'가 되지 못해요.

그래도 그런 것이나마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간데없이 무너졌어요.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연이고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침략과 식민정책으로 삶터를 빼앗기고 자기 정체마저 잃어버린 사람들 현실을 돌아볼 수 없다면, 티벳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정부 병기 창고에서 무기를 가져오기 위해 남걀강에서 라사
로 돌아갔던 일행은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노르불링카에서
로상 예시를 잃고 말았다. 그들은 중국군이 어떻게 라사를 포
격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했는지 말해 주었다 .. <239쪽>


.. 1910년에 중국은 리탕의 바 지역을 침공했다. 많은 사원이
약탈당했으며 지역 책임자들은 행정권을 박탈당했다. 대사원
관을 포함한 리탕곤첸의 고위 라마 70명이 참수당했다. 중국
군은 사원을 점령했고, 승려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을 감금시켰다 .. <54쪽>



<2> 잃어버릴 수 없는 역사


<티벳전사>는 중국에게 침략을 받아 게릴라 부대로 맞선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쓴 책(회고록)입니다. 잘 조직되었으며 최신예 무기를 갖춘 중국 인민군에게 맞서기에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장비와 조직도 안 된 게릴라들이었기에 밀리고 밀렸답니다. 끝내 인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던 이들은, 지금도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자유 티벳'을 되찾을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 물새가 알을 낳기 시작할 때도 기본적 지시 사항이 발령
된다. 이 기간 동안 그 사항들이 준수되었는지 확인하기 위
해 강과 호수로 사람이 보내진다. 사람의 방해로 새들이
알을 두고 떠나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4월에는 새로 태어난 티벳 영양을 다른 동물들과 인간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슷한 지시 사항이 공포되었다. 물고
기도 산란기에는 같은 방식을 적용해 보호했다 .. <55쪽>



우리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어서 돌아볼 수 있는데, 자유로운 나라를 잃은 뒤에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과 문화와 사회를 간직하거나 지키기 참 어렵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삶과 문화를 지키기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말과 글도 잃고 얼과 넋마저 빼앗겼습니다. 식민지 찌꺼기는 지금도 많이 남았습니다. 더구나 식민지 일본에게 아첨하고 아양 떨던 사람들은 큰 권력을 얻어 아직도 떵떵거리고 있어요.

티벳은 어떨까요? 티벳도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을 중국 식민지로 살고 있습니다. 갓 태어나는 아이들과 한참 자라는 젊은이들은 티벳 문화와 삶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헤아리고 있을까요? "물새가 알을 낳는 때"를 알고 있을까요? "물고기가 알을 낳을 때"는 조심스럽게 지켜줘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일꾼)의 품을 결코 돈으로 보상하지 않았다.(57쪽)"고 합니다. 우리에게 품앗이와 울력이 있었듯 티벳사람도 돈으로 품을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일을 돕고 함께 어울려 놀았습니다.


.. 이렇게 소똥과 나무를 태우다가 몇 년이 지나면 부엌의 벽
과 천정은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변했다. 우리는 이 그을음으로
잉크를 만들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횃불이 켜졌다 .. <59쪽>


.. 티벳에서 여관은 '멀리 있는 집'과 같다. 손님들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접받는다. 손님은 부엌에 들어가도 되며 하고 싶
은 일은 무엇이든지 알아서 할 수 있다. 음식과 음료는 항상
바로 곁에 있다. 혼자 쓰는 방은 없지만 소지품 걱정은 할 필
요가 없었다. 모든 일에 관해 대접받는 것이다 .. <113쪽>



쓰레기가 없는 삶, 쓰레기라는 것을 모르는 삶, 도둑이 없는 삶, 도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삶이 티벳사람들이 누려온 오랜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웃나라가 마구잡이로 쳐들어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폭압 위정자가 독재로 온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짓밟으며 등처먹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티벳에서 강과 시내에 놓은 다리는 희귀한 사치품이었다. 겨울에는 물이 단단히 얼어붙어서 두껍게 언 얼음은 짐을 가득 진 야크의 무게도 견뎌 낼 정도였다. 문제가 발생하기로 유명한 계절은 역시 얼음이 녹는 따뜻한 철이다.(132쪽)"라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따로 다리를 놓지 않아도 늘 건널 수 있는 곳에서는 다리를 놓는 일은 그야말로 '사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나라에서는 이와 다르겠죠? 이런 것이 나라나 겨레마다 '다른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처럼 다른 문화와 전통을 '반동'이라느니 '봉건'이라느니 무어라는 이름으로 짓밟거나 부수어도 좋을까요? 실제로는 석유를 노리고 전후 재건 사업을 노리는 한편 새무기를 시험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겉으로는 '이라크 민주와 평화'를 지키겠다며 쳐들어간 미국입니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미개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티벳으로 쳐들어온 중국입니다.


<3> 우리가 다 함께 찾아야 할 것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말리아로, 이라크로 군사를 보내라고 하면 보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힘없는 이를 괴롭히는 침략전쟁을 치르는 돈마저 보내야 합니다. 이 나라 농민들이 죄다 죽어갈 판인데도 쌀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있는 사람 재산은 더욱 늘어나고 없는 사람은 팔 재산도 없으나, 빈부 차이는 자꾸만 더욱 벌어집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일은 문제가 안 되지만, 영어를 못하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일자리 얻기도 어렵습니다. 온통 서양 문물과 문화가 우리 얼과 넋을 다스립니다. 이런 형편을 생각했을 때, 우리가 누린다는 '자유'란 도대체 어떤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처음에 중국 측은 이제까지 사원이 담당해 왔던 기능을
계속 수행하도록 허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은 지켜지
지 않았다. 사원들은 남김없이 모두 파괴당했고, 그 안에
보관되어 왔던 성스러운 경전, 불상들은 약탈되고 망가져
버렸다. 승려들은 치욕을 당했고 고문에 시달렸다. 종교적
수행은 금지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법의를 걸친 자는 인
민의 적이며, 인민의 형제와 같은 중국 해방군의 적이라고
선포했다 .. <211쪽>


밥 굶는 사람이 요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처럼 굶는 사람이 넘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사람이 굶어죽는 굶주림은 아닙니다. 1950~6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고, 아기를 부잣집 문간에 버리는 일이 아주 흔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데, '먹고살기 힘들다'기보다 '더 많은 돈을 못 번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알맞게 쓰고 누리고 즐기면서 버리는 것이 거의 없던 소중한 문화와 얼과 것을 잃었기에 경제 형편이 참으로 많이 나아졌음에도 이런 것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지내는 때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민주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거나 갈팡질팡하고 있지 싶습니다.


.. 나의 바람과 소망은 자유를 누리는 행운을 가진 사람 모두
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보다 적은 자유만을 누리는 사
람들-그 중에서도 티벳사람들도 포함될 것이다-을 돕는 데 자
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 <304쪽>



'자유 티벳'이 아닌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인 티벳'으로 바뀐 역사는 그대로 이어져 세월이 자꾸자꾸 흘러갑니다. 우리가 참답게 알아야 할 티벳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명상이니 불교 유적지니 깨끗한 자연이니 뭐니 하는 겉모습만으로 티벳을 생각하거나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잃고 놓치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거나 찾거나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티벳이든 중국이든 북녘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런 다른 나라 삶과 모습과 문화도 엉뚱하거나 잘못된 모습으로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비틀고 일본이 한국 옛 역사를 비틀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고구려 역사가 어떠한지, 우리 옛 역사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안 배우는 한편, 배우거나 알려고 애쓰지도 않거든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우리를 둘러싼 뭇사람과 자연과 목숨붙이를 헤아리지 않거든요.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겪어야 한 슬픈 역사를 말하는 한편, '자유 티벳'일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덤덤하게 들려줍니다. 게릴라 전사가 되어 중국 인민군과 싸운 이야기도 들려주지만, "티벳사람은 이렇게 살아왔다" 하는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은 '도르지 왕디 데와창'은 "티벳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 세대(침공당한 뒤 태어나서 자란 세대)에게 그렇게 생생하게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다.(25쪽)"고 말합니다.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자기 역사와 삶과 문화와 사회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자 남긴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티벳 젊은이에게 참으로 소중하겠다 싶어요.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우리 나라로 온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에게 압력을 넣어 들어오지 못하게 한 중국이고, 티벳 역사와 사회를 감춘 중국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기록을 읽으며 참된 티벳 모습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한편, 우리 삶과 사회와 역사에서 잃어버린 모습, 놓치거나 지나쳐 버린 소중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4338.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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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외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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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 지은이 : 엘리자베스 키스, 엘스펫 K.로버트슨 스콧
- 옮긴이 : 송영달
- 펴낸곳 : 책과함께(2006.2.2.)
- 책값 : 20000원


.. 경부선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산하와 사람들의 모습은 키스가 지닌 미술가로서의 본능적 욕구를 강렬하게 자극했다. 다른 한편, 기차역마다 오르내리는 일본 군인들은 한국이 압박받는 식민지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여전히 전국 여기저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와 제시는 무자비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의 칼과 몽둥이 아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문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  〈13∼14쪽 : 옮긴이 송영달 씀〉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참 끔찍하고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담아내어 보여주고 함께 나누거나 적바림하는 이들을 만나기가 ‘뜻밖에도 어렵’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장애인 문제만 하더라도, 그 흔하디흔한(?) 남녀차별 문제만 하더라도 얼마나 말이 많고 시끄럽고 큰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어린이문학-어른문학’ 글감이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어떤가요? 사진 작품에 이런 이야기가 담기나요? 그림은 어떤가요? 그림 작품에 이런 줄거리가 보이나요? 텔레비전 연속극에, 영화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보이는지요?


.. 만약 어떤 사람이 1919년에 서울을 방문하여 큰길로만 다녔거나 전차만 타고 다녔으면, 아마 서울도 극동의 여느 도시들처럼 부분적으로 서구화된 지저분하고 재미없는 도시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대로를 벗어나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알라딘 단지 같은 장독들이 늘어서 있는 신비스러운 집안 마당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흰색의 돌담길을 돌아 들어가면 까만 머리를 헝클어트린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밝은 햇빛 아래서 즐겁게 춤추며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 뒤로 열려 있는 마당 저편에는 암갈색의 장독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고 그 곁에 반들거리는 노란 바가지들이 걸려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골목은 일종의 미로와 같아서 한구석을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관광객에게 보여준다 ..  〈48∼49쪽〉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에는 삶이 담겼습니다. 사람 냄새가 짙게 묻어나옵니다. ‘우리들’ 발자취라기보다는 어느 한때를 살아간 사람들 모습과 이야기가 진득하게 배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엘리자베스 키스 자매는 ‘마침 한국땅을 밟게 되어’ 이곳 삶터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이들이 네팔이나 수단이나 코트디브와르에 갔다면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겠지요. 그러니까 이 책에 담긴 그림과 글은, 지난날 우리 자취이자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만날 수 있던 ‘낮은 자리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멋과 맛을 잘 알고 있는 수수한 사람들’이라 하겠어요.

 

 1920년에서 여든여섯 해를 훌쩍 뛰어넘은 2006년 오늘날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서울에 가서 버스와 전철이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면 ‘대단히 많은 곳이 서양나라처럼 되어 버린 지저분하고 재미없는 미친 도시’라는 느낌을 받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다녀 본다든지, 자전거조차 갈 수 없는 산비탈 골목길을 두 다리로 다녀 본다면, ‘참사람이 살고 있었네’ 하는 느낌과 함께, 우리가 누구나 간직하고 있으나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한 수수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는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곳에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한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림과 글로 보여줍니다. (4339.6.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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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서 온 편지
서원희 지음 / 내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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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아기에게서 온 편지
- 글쓴이 : 서원희
- 펴낸곳 : 내 출판사(2006.1.17.)
- 책값 : 8500원


 - 불편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
 : … 엄마는 거짓말쟁이예요. 제가 힘들어도 잘 참고 태어나면 모두 기뻐하고 좋아할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지금 너무 힘든데 저만 모르는 또 무슨 큰일이 일어난 느낌이어서 정말 외롭고 무서워요.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싶어요. 뱃속에서처럼 엄마가 저를 한없이 사랑해 주면 정말 좋겠어요. 〈68쪽〉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라는 책을 썼던 서원희 님이 《아기에게서 온 편지》라는 책을 새로 냈습니다.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살림’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가난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돈은 적지만 삶을 즐길 방법은 훨씬 많을 수도 있음’을 몸소 펼치면서 살아가는 어머니로서 아이들한테 다가서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참 수수하면서 멋있게 살아가는구나 싶어서, 이 책을 좋아했는데 안타깝게도 판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해 뒤인 2006년 1월, 아마도 서원희 님 스스로 셋째 아이를 낳은 뒤이지 싶은데, 그러면서 돈벌이로 산모조리원과 놀이방 들을 하면서 겪고 느낀 여러 가지를 바탕으로 ‘막 태어난 아기가 어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아기 눈높이에서 들려주는 책을 펴냈습니다.


.. 아이 낳는다고 애썼다며 푹 쉬라고 하고 병원에서는 친절하게 저를 갓난아기방(신생아실)으로 데려가고 이상한 젖꼭지 주고 하루에 엄마 한두 번 보게 하고 또 엄마 건강 되찾는 곳(산후조리원)도 만들어서 엄마를 쉬게 하고…….
 그저 제가 엄마 옆에 없어야 엄마가 잘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며 “태어난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태어난다고 정말 애 많이 썼다. 또 태어나서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 좀 하면 좋겠어요.
 저 태어나면서 너무 힘들었고 무서웠는데, 그래서 위로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데……. 엄마 아빠라도 애썼다고, 장하다고 칭찬해 주세요 ..  〈43쪽〉


 가만히 돌아보면, 저는 여태껏 성교육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성교육뿐 아니라, 제가 혼인해서 살아갈 때 낳을 아기 이야기와 얽혀서 무엇 하나 배워 본 적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찌 지내는지, 또 어떻게 혼인해서 지내는지 따위도 배워 본 적 없습니다. 세상엔 책도 많고 ‘선생님’이란 이름 내거는 사람도 많건만, 왜 이런 이야기는 배우기 어려울까요? 아니, 가르쳐 주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귀고 지내는 일은, ‘누구한테나 똑같이 하는 일이지만, 좀더 마음을 쓰는 일’이지 않겠느냐고,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둘레 사람 모두한테 따뜻하고 살갑게 다가서면서 살아야 알맞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남녀가 얼우는 일을 배우는 것보다도 ‘남녀가 사랑놀이를 해서 태어날 아기’를 어떻게 키울는지를 배워야 알맞겠다 싶어요. 나아가, 막 태어난 아기는 어떤 마음이며 몸은 어떠한지도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고요. 이런 일은 혼인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벌써 예전에 혼인을 해서 아이가 다 커서 제금난 자식을 둔 사람들도, 처녀 총각들도 알아야겠다 싶어요.

 

 이웃 소중한 줄 알아야 사랑스러운 님이 소중한 줄 알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목숨)가 소중한 줄 알아야 사랑놀이를 함부로 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39.6.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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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 - 임응식 회고록
임응식 지음 / 눈빛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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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
- 글쓴이 : 임응식
- 펴낸곳 : 눈빛(1999.7.20.)
- 책값 : 20000원


 대여섯 해 앞서, 서울 서교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이라는 책을 한 권 본 적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책 겉싸개가 없기도 했지만, 1999년에 나온 책이 무슨 2만 원이나 하나 싶어서 마음에 안 들었고, 그다지 읽을거리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 1930∼40년대 당시 부산은 일본군의 주요 요새였다. 군사기밀보호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 데나 카메라 들이대다가는 영락없이 잡혀갔다. 사진을 찍으려면 요새 사령관이 발부하는 허가증이 있어야 했으며, 촬영이 끝나면 밀착인화와 함께 원판을 헌병대에 제출해서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촬영 금지구역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좋은 피사체가 있어도 카메라를 댈 수 없었다. 찍고 싶은 유혹을 못 견뎌서 망원렌즈로 한 컷 어떻게 슬쩍 했다가는 검열 때 걸려서 치도곤을 맞기도 했다. 또 1941년부터는 감광재료가 배급제로 되었고, 1944년부터는 군기보호법에 의한 촬영금지 지역 밖이라 할지라도 20미터 이상의 높은 곳에서는 찍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제가 한국인에게는 더 엄격했다. 식민지의 국민들은 오나 가나 구박이고 천대고 비하였다 .. 〈39쪽〉


 온삶을 사진 하나에 바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사진을 찍는 마음’,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 ‘사진과 우리 삶’을 견주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얼마 없다고 느껴서 아쉽다고 생각했고, 그냥 헌책방에 서서 대충 조금 읽다가 말았습니다. 그리고 대여섯 해가 지난 얼마 앞서. 이 책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을 사서 읽기로 합니다.


.. 일황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을 들은 것은 당시 거주하던 도쿄 시내의 어느 아파트에서였다. 라디오 앞에 있는 일본인들과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의 의미와 나의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일제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됐구나 하는 기쁨의 그것이었다 ..  〈46쪽〉


 문득,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사진을 찍는 마음이나 사진을 찍어온 몸가짐이나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을 다룬 글을 ‘어떤 틀에 박힌 글’로만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응식 님이 쓴 회고록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은 말 그대로 ‘임응식이란 사람 하나가 걸어온 사진밭, 사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고, 어떤 큰 이야기,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데, 이 책에서 다른 것을 느끼거나 찾으려 했구나 싶습니다. 한편, 바로 이처럼 있는 그대로 수수하게 펼치는 이야기에서 사진을 찍는 마음과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엉뚱한 자리에서 어긋난 생각으로 책을 느끼려 했구나 싶어요.


.. 그림은 돈이 되어도 사진은 돈을 까먹을 뿐인데도 나는 아직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운명론이랄까, 소명의식이라 할까, 내게 주어진 일을 자부심을 가지고 이루어 왔고, 그것이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진 재산이며 보물인 것이다 ..  〈24쪽〉


 아하,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처음 보았을 2000년 즈음만 해도 ‘사진찍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이 눈에 제대로 안 들어왔겠다 싶어요. 이제 저도 어느덧 사진을 찍은 지 아홉 해가 되었고, 조금만 있으면 열 해째가 됩니다. 그동안 찍은 수만 장에 이르는 사진, 잃어버려서 새로 갖춘 사진장비 들을 헤아려 보면, 사진을 찍어서 돈이 되어 본 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고, 그동안 사진에 바친 돈만 어마어마합니다. 웬만한 중형차 한 대를 살 만한 돈을 사진에 쏟아부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태껏 어느 한 번도 ‘돈 안 되는 사진을, 그것도 헌책방 한 가지만 찍어 온 사진을 아쉽거나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마음은 임응식 님도 마찬가지였고, 이렇게 돈이 되건 말건 자기가 즐기는 일이며 보람 또한 듬뿍 느끼는 일이기에 꿋꿋하게 이어온 길이라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꾸려온 사진 삶이라면, 이 회고록을 읽어내는 동안 제 자신이 사진을 바라보고 느끼는 마음을 다소곳하게 추스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참말로,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을 집어서 읽는 내내 이야기가 하나하나 마음에 콕콕 새겨져서 금세 읽게 되더군요. 겪어 보니까, 이제 저도 사진 삶을 꾸린다고 할 수 있다 보니까 비로소 책이 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4339.6.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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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 서해역사문고 7
김태웅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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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 글쓴이 : 김태웅
- 펴낸곳 : 서해문집(2006.6.20.)
- 책값 : 5900원


 우리가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서해문집’ 출판사에서는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여러 권 펴냈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뜸해서 더 안 내는구나 싶었는데, 모처럼 다시 몇 권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책, 우리 삶과 삶터와 사람들이 지내온 이야기를 담은 책은 우리 형편에서는 팔리기 힘들어서 더 못 내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펴낸 책을 보면,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 《농민이 난을 생각하다》,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우리는 조센진이 아니다》가 있습니다. 그 뒤로 뜸하다가, 이번에 《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우리 헌법의 탄생》, 《장례의 역사》를 한꺼번에 펴냅니다. 손바닥책으로 내는 만큼, 한 권씩 내기보다는 여러 권을 한꺼번에 내야 눈길을 받기 때문일 테지요.

 저는 이번에 새로 나온 책 가운데에서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를 먼저 골랐습니다. 다른 책들도 눈길이 가지만, 아직 손길까지는 안 갑니다.


.. 이 시기에는 회초리를 교육상 필요하다고 여겼으므로-오늘날과 달리- 아무 논란이 되지 않았다. 학습목표 역시 개인별로 능력에 맞는 수준으로 설정되었고, 먼저 주어진 학습목표가 완전히 성취되어야 다음 목표가 주어졌다 ..  〈39쪽〉


 ‘서해역사문고’를 처음 읽을 때, 퍽 눈길이 쏠리는 이야깃감을 다루는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이야기를 참 어렵게 풀어나가는구나, 좀더 깊숙하게 파고들 수는 없을까, 그냥 사실만 죽 늘어놓으면 무슨 재미로 책을 읽나, 지난날 역사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하고 딱히 이어지는 생각거리를 건네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를 읽으면서도 이런 느낌을 또렷이 받습니다.

 171쪽밖에 안 되는 작은 책을 49쪽까지 읽었으나 책겉에 적힌 “소학교 풍경, 조선 후기에서 3ㆍ1운동까지”에 걸맞는 이야기를 못 찾았습니다. 어쩌면 제 책읽기가 모자라기 때문에 그러는지 모릅니다. 한편으로, 아직 1/4 조금 더 읽었을 뿐이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마음과 생각을 잡아채는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글쓴이는 머리말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자그맣게 줄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자그맣게 꾸민 책에서는 줄거리라든지 ‘글쓴이가 읽는이한테 들려주려는 생각’이 좀더 뚜렷하고도 환히 드러날 수 있어야지 싶으며, 사실 풀어놓기보다는 사실을 풀어내고 헤아려 내는 이야기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쪽수를 넉넉하게 둔 두꺼운 학술책으로 낸다면야 이런저런 사실관계를 줄줄줄 늘어놓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자그맣게 엮어내는 책이라면 더 꽉 짜서 이야기를 들려줄 때 훨씬 읽는이들 마음에도 와닿고 ‘지난날 우리네 교육마을과 지금 우리네 교육마을을 견주면서 우리가 느낄 것은 무엇이고, 받아들이며 거듭나야 할 대목은 무엇일까’ 하는 대목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39.6.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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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w7707 2006-06-2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적입니다. 좀더 서술자의 목소리가 확실히 들려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사를 계몽의 수단이 아니라 같이 나누며 되돌아보는 자료로서 보는 것은 어떨지. 옛 것과 오늘 것을 대비함으로써 지나친 계몽으로 흐르기 보다는 그 시대의 일상과 역사적 조건을 같이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