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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슬에서 풀리다 - 해방기 책의 문화사
이중연 지음 / 혜안 / 2005년 6월
평점 :
권투, 농구, 배구, 씨름, 야구, 축구, K-1,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온갖 게임, … 사람들 눈길을 끄는 운동경기(인터넷게임도 운동으로 친다면)가 넘칩니다. 운동경기는 가짓수가 하나둘 늘어나는데, 나라안에서만 하던 운동경기가 나라밖으로도 퍼지며 미국 프로농구, 프로야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프로레슬링 들이 들어왔고, 월드컵축구라든지 올림픽이라든지 갖가지 새로운 운동경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고되게 일하는 사람들은 몸이 고단하여 책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운동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땀을 뻘뻘 흘린 뒤에는 시원한 술 한 잔을 마시지, 무슨 책을 볼까요.
.. 책은 먼지에 쌓여 고통스러웠겠으나 해방의 준비였기에 가슴 벅찼으리라. 고서점 주인 황종수의 마음이 그랬으리라. 유길서점이나 일성당서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대개의 한글책 고서점 경영인은 ‘지식인’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책을 통해 역시 ‘실의의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학생이 찾아오면 ‘문화 사정 일반을 이야기해 주고 은근히 민족주의를 고취’했다. 한글 책이 하루에 한 권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그 ‘한 권’을 찾는 이들을 통해 민족의식의 보존을 전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 〈29쪽〉
지난날에는 지배계급만 누리던 책 문화였고, 지배계급 봉건통치 얼개가 무너진 뒤로는 일제식민지살이에 눌려서 숨막히던 책 문화입니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며 책 문화도 비로소 숨통을 트려고 했는데, 곧바로 들이닥친 것은 끔찍한 전쟁과 또다른 독재정권. 전쟁은 그나마 싹트려던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과 독립을 밑바탕으로 우리 삶터 이야기를 다룰 만한 사람을 죽여 넘어뜨렸고 자연 삶터를 무너뜨렸으며, 독재정권은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을 짓누릅니다. 운동경기 퍼뜨리기는 이때 독재정권이 휘두른 ‘사람들 바보 만들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입시위주 주입식교육은 또다른 ‘바보 만들기’였고요. 더구나 입시로 짓눌린 젊은이들이 운동경기처럼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흠뻑 빠져들 만한 것에 마음을 쏙 빼앗기게 한다면, 제아무리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뻗어나가려 하던 책 문화도 그만 고꾸라질밖에 없지 싶습니다.
- 하지만 해방 직후 좌익서적이 많이 출판된 것을 좌익의 ‘선전활동’ 때문만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당대의 중심적 출판분야는 사회적 수요의 반영이다. 〈57쪽〉
- 좌익서가 독서인에게 ‘충격’을 주었다면, 이들 계몽 서적은 ‘감격’과 ‘감동’을 주었다. 〈60∼61쪽〉
요즘은 충격을 주는 책도, 감격과 감동을 주는 책도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독도 문제로 들끓으면 ‘일본놈 욕하기’나 잠깐 반짝하듯이 할 뿐, 일본이 우리 역사를 어떻게 비틀고 있는지, 독도 문제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사람들 스스로 책이라도 한 권 뒤져 보면서 알아보지 않습니다. 벌써 바보처럼 길들어 버렸는걸요.
이제 책이란, 가벼운 재미를 담은 것, 또는 시간 때우는 읽을거리뿐일까요? 책으로 얻는 지식은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되고, 우리가 온몸 부대끼며 얻던 경험과 슬기는 괜히 땀 빼는 짓일는지요. 앎(지식-책)과 함(경험,슬기-실천)이 함께 움직이면서 세상을 올바르게 느끼고 자기가 걸어갈 길을 다부지게 이어 나가는 흐름은 사라져야 할 것일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때 한성도서가 출판권을 갖고 있던 이광수의 《흙》(1933)을 다시 찍으면 공장을 새로 지을 수 있다고 주위에서 권고했지만, 사장 이창익은 ‘친일파’ 이광수의 책을 해방된 조국에서 간행할 수는 없다며 찍지 않았다 .. 〈25쪽〉
젊은 힘, 다부진 부딪힘, 세상을 스스로 헤아려 보려는 움직임이 사라져 가는 이 마당이니, 옳고 바른 생각으로 자기 개성을 마음껏 뽐내면서 살아가려는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슬에서 풀려났으나 자유로이 뻗어나가지 못하는 우리 책 문화, 우리 삶터가 참 딱하고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 모습을 딱하거나 안쓰럽다고 느낄 사람은 아주 드물게 되었지 싶습니다.
《책, 사슬에서 풀리다》를 읽으며 우리네 역사가, 문화가, 사회가, 사람 삶이 참 억눌리고 짓눌린 얼개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음을 느낍니다. ‘책이 모든 것이라거나 책을 꼭 읽어야 한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 하나로 열어젖힐 수 있는 모든 실마리와 아름다움’이 죄 사라지는 우리 모습이지 싶습니다. (4339.6.4.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