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대는 까닭은 아빠랑 엄마가 잘 놀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니? 밥을 먹을 때에는 즐겁게 함께 먹자꾸나.

 - 2010.12.13.

 

얘야, 밥 좀 같이 먹자... -_-;;;  제발 자리에 앉아 주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과 글쓰기


 헌책방에서 책을 살핍니다. 손님이 거의 없는 헌책방 골마루를 바지런히 오가면서 책을 돌아봅니다. 이 책도 반갑고 저 책도 고맙습니다. 눈이 맑게 트이고 넋이 밝게 열립니다. 왜 이 나라 많은 사람들은 이 애틋한 헌책방 헌책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 따위는 할 겨를이 없습니다. 내 눈앞에 놓인 이 살가운 헌책을 하나하나 쓰다듬지 못하니 서운하고 아쉬우며 안타깝습니다. 누리려 하지 못하는 사람한테 억지로 누리라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나부터 즐거이 누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대로 책방마실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대로 책방으로 나들이를 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그때그때 제 삶에 걸맞는 책을 바라거나 찾습니다. 어릴 적부터 익히 가까이하던 책을 나이든 뒤에도 익히 가까이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읽기를 즐기며 컸으면 어른이 되어도 도서관을 사랑합니다. 여느 새책방에서 책읽기를 맛보며 자랐으면 어른이 된 뒤에도 여느 새책방을 찾아다닙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새삼스레 마주하며 살았으면 어린이일 때뿐 아니라 어른일 때에도 헌책방 헌책을 알아보거나 꿰뚫 수 있습니다.

 태어나기를 도시에서 태어날 뿐더러, 자라기를 도시에서 자라는 데다가, 어른이 되어 큰학교나 회사를 다닐 때에도 도시에서 잠자고 먹고 마시며 다니니까, 도시 삶에 익숙합니다. 웬만한 도시사람들은 시골살이를 모를 뿐더러 잘못 알거나 엉터리로 알거나 엉뚱하게 여기곤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헌책방 헌책을 제대로 톺아보지 못하는 대목을 섣불리 나무라거나 괜히 안쓰러이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헌책방마실을 했기 때문에, 헌책방에서 고른 헌책들을 가방에 꾸리거나 끈으로 묶어 시골집으로 가져가지 못합니다. 택배로 맡겨야 합니다. 큼직한 상자 하나에 자그마한 상자 하나가 나옵니다. 책값을 치르고 택배값을 냅니다. 괜시리 뿌듯합니다. 어쩐지 홀가분합니다. 배부르고 든든합니다.

 누군가는 값싸게 사들여서 좋다고 합니다. 아마 값싸게 사들여 좋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값싸게 사들여 좋다면 고물상이나 폐지상에서 짐차로 잔뜩 들여놓을 노릇입니다. 값싸게 사들여 좋은 책이라면, 언제나 잔뜩 사들일 텐데, 언제나 잔뜩 사들인 책을 집에 어떻게 건사하려나요. 책은 값싸게 사들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추억을 먹는다고 합니다. 아마 추억, 그러니까 옛생각을 떠올릴 만합니다. 그렇지만 옛생각이란 무엇이려나요. 지난날 무슨 일을 하며 무슨 책을 읽었는가요.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오늘 읽을 책을 살 뿐입니다. 나는 오늘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오늘 손에 쥘 책을 장만할 뿐입니다. 판이 끊어진 책이건 거의 안 팔리거나 사랑받지 못한 책이건 무슨 대수랍니까. 내 가슴을 후벼파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면 다 좋습니다.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사랑스러운 넋을 실은 책이면 모두 반갑습니다. 내 가슴을 건드리지 못하는 책일 때에는 베스트셀러이건 스테디셀러이건 부질없습니다. 신문기자들이 신문 한 쪽에 대문짝만하게 소개글을 적어 주었다 해서 이런 책을 굳이 나까지 읽을 까닭이 없어요.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아끼며 북돋우고자 책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즐기고 돌보며 살찌우고자 책을 가까이합니다. 나는 내 삶을 믿고 살피며 좋아하니까 책을 마주합니다.

 헌책방은 사랑이고 헌책은 삶이며 헌책방 일꾼은 사람입니다. 사랑과 삶과 사람을 한 자리에서 곱게 맞아들이는 마실이 헌책방마실입니다. 고마우면서 반가운 책을 언제나 만나니까 나부터 고마우면서 반가운 넋을 담아 글 한 줄 끄적입니다.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을 늘 얻으니까 나 스스로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얼을 실어 글조각 매만진답시고 바둥거립니다.

 돈 천 원으로 아주 눅은 책 하나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선물합니다. 때로는 몇 만 원에 이르는 책 하나 헌책방에서 사들여 선물합니다. 선물받은 분들은 천 원짜리 헌책이건 십만 원짜리 헌책이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돈값이 아닌 책을 받기 때문입니다. 낡거나 헐거나 반지르르하거나 번쩍이거나 하는 물건이 아닌 책에 깃든 이야기를 받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어릴 적부터 헌책방을 함께 다닐 수 있어 기쁩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어린 날부터 헌책방을 함께 다니며 헌책방 일꾼한테서 사랑을 받고 헌책방 다른 책손한테서 귀여움을 받으니 참으로 즐겁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헌책방마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대목 하나 고맙습니다. 김치를 담글 줄 몰라 김치 잘 먹는 아이한테 김치를 제대로 못 먹이는 바람에 할머니 두 분한테서 김치를 얻어 겨우 먹이지만, 자동차 굴릴 돈도 없고 자동차 굴릴 면허증조차 없으니 노상 아이가 두 다리 아프도록 걸리면서 마실을 하지만, 은행계좌는 텅텅 비어 얼음과자이든 까까이든 무어든 마땅히 사 주지 못할 뿐더러 시골집 썰렁한 방을 조금이나마 따숩게 덥히지 못하며 옷을 여러 벌 껴입히며 보내지만, 이렇게 엉터리 어버이이지만, 다문 한 가지 헌책방마실 하나는 살짝이나마 맛보도록 해 줄 수 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한테도 고맙고 땅과 바다에 계신 아버지한테도 고맙습니다. 누구보다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 주는 옆지기한테 고맙습니다. (4343.12.2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사기사와 메구무 / 자유포럼 / 1999년 1월
평점 :
절판




 예쁜 삶, 예쁜 집, 예쁜 이야기
 : 사기사와 메구무,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자유포럼,1999)


- 책이름 :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 글 : 사기사와 메구무
- 옮긴이 : 김석희 옮김
- 펴낸곳 : 자유포럼 (1999.1.10.)


 (1) 예쁜 삶


 나날이 군대가 좋아진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나 이제나 어디에서 군대살이를 하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틀림없이 시설이나 장비는 한결 나아질 뿐더러, 뻬치카는 사라지고 최전방부대 가운데 아주 끔찍하게 춥고 오래된 막사는 헐거나 문닫으며 덜 춥고 새로 지은 막사로 옮깁니다. 그렇지만 예나 이제나 어디에서 군대살이를 하든 고달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삶터는 나날이 민주와 자유가 널리 퍼지거나 뿌리내린다고 합니다. 군대라는 곳도 지난날을 돌이킨다면 오늘날 군대는 참말 민주와 자유가 넘실거린다 할 만합니다. 아마 앞으로는 한결 민주와 자유가 춤출 테지요. 그러면 이곳 군대에 평화나 사랑이나 통일이란 얼마나 깃들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요.

 200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은 201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을 바라보며 ‘세상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199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은 200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을 마주하며 ‘좋은 세상 산다’고 말합니다. 198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은 199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과 부대낄 때에 ‘꿈 같은 곳이네’ 하고 말합니다. 197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은 198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하고 말을 섞으며 ‘놀고먹었다’고 여깁니다. 196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은 197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을 보며 ‘수월히 다녔다’고 봅니다. 1950년대에 군대를 마친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징병으로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때에 이르러 군대라는 데가 얼마나 무시무시하며 괴로웁고 슬픈 곳임을 이야기합니다.

 더 돌이켜 조선이나 고려나 고구려나 가야 때에 군대로 끌려가야 했을 여느 농사꾼들 삶을 살필 수 있다면 새삼스러우리라 봅니다. 싸움터에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어야 하던 이들은 장군이나 대장이 아닙니다. 언제나 맨 밑바닥 병사입니다. 옛날 싸움은 대장이 한 사람씩 나와서 칼을 부딪히며 싸우며 판가름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싸우나 저렇게 싸우나 맨 밑바닥 병사들은 수백 수천 수만이 죽어 나가야 했습니다. 맨 밑바닥 병사인 여느 농사꾼들은 고향마을에서 농사를 짓다가 끌려와서는 몇 해고 죽도록 돌과 흙을 날라 성을 쌓습니다. 살아서 돌아갈는지 죽어서 소식조차 못 남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 그 경찰관은 도시유키가 언뜻 상상했던 만큼 노골적으로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투가 도시유키의 면허증을 보고 나서 갑자기 딱딱하게 바뀐 것을 도시유키는 놓치지 않았다. ‘성명 : 朴俊成, 국적 : 한국’. 도시유키의 면허증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 물론 성장하면서 처음으로 지문날인을 경험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의 불편함을 알게 되자, 그 느낌은 어린 시절에 비해 조금 달라졌다. 좀더 현실적인 문제, 예를 들면 투표권이 없는 것과 취직 차별, 주거 차별 같은 불합리한 대우에 대해서는 화가 나기도 했다 ..  (26, 110쪽)


 우리 집 첫째가 딸아이로 태어나도록 마음속으로 빌고 입으로 노래했습니다. 아이가 사내라면 앞으로 군대에 끌려가야 할 텐데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2011년 봄에 태어날 둘째 또한 딸아이로 태어나기를 빌고 바랍니다. 우리 집 아이가 군대로 끌려가서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는 짓’을 배우거나 이러한 짓에 길드는 일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제도권 학교를 그만두어 ‘학력이 안 되기에’ 군대에 안 갈 수 있던 후배가 굳이 검정고시를 치고 애써 대학 시험을 보려 하면서 군대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습니다. 꿈을 이루는 길은 대학교에 없으며, 삶을 빛내는 길은 검정고시 자격증에 있지 않은데, 이런 데에 매이는 모습이 슬펐습니다. 공익근무를 하든 현역으로 가든 전투경찰이 되든, 계급으로 나누고 신분이 도사리며 명령과 지시에 따라 갖은 욕설과 얼차려와 주먹다짐이 있는 곳이란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더욱이 착한 넋과 참다운 얼과 고운 꿈하고는 동떨어집니다.

 무기를 든 손은 평화를 지킬 수 없고,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돌볼 수 없습니다. 군대는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군대는 평화를 억누릅니다. 군대는 더 커지려 하고 더 많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려 합니다. 군대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 나라는 사회와 문화와 교육과 복지에 쓸 돈이 사라집니다. 더군다나 여느 나라살림을 북돋울 데에 쓸 돈조차 모자라고 말아 세금은 더 무거워지고 물건값은 한층 치솟습니다. 이웃나라가 갖가지 무기로 으르렁거리는데 우리들이 무기를 안 들 수 있느냐 하지만, 이웃나라 또한 우리하고 똑같은 생각으로 무기를 갖춥니다. 서로서로 서로를 바라보며 무기를 더 갖춥니다. 서로서로 평화를 생각한다는 말로 무기를 더 갖춥니다.


.. 도시유키도 중학생이 된 뒤로는 여자애와 만날 약속이 있는 날은 미리 어머니한테 말해서 마늘을 뺀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긴 적은 없었고, 어머니에게 그렇게 부탁할 때마다 도시유키가 가슴 아파한 적도 없었다 ..  (39쪽)


 평화를 지키려 한다면 참말로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평화를 사랑한다면 참으로 평화를 사랑할 만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비둘기를 하늘에 뿌린다고 평화를 꿈꾸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평화 노래를 짓거나 평화 포스터를 그린다고 평화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내 삶이 오롯이 평화여야 하고, 내 삶터가 옹글게 평화여야 합니다.

 평화는 꿈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내 삶이 평화요, 내 나라가 평화입니다. 윽박지르는 데에는 평화가 없고, 입시지옥이나 입시전쟁 사회에는 평화가 없으며, 돈 때문에 아프거나 우는 사람이 있는 터전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풀포기 하나 마음껏 자라지 못할 뿐더러, 작은 꽃송이나 나무 하나 흙땅에 튼튼하게 설 수 없는 데에는 평화가 자리하지 못합니다. 평화가 자리하지 못하는 삶터에서 아이들이 ‘평화 동화책’이나 ‘평화 그림책’을 읽는다 한들 평화를 배우지 못합니다. 자동차 걱정 없이 골목에서 뛰어놀 뿐 아니라, 까만비닐 나풀대지 않는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까불대며 뛰어놀 수 있어야 평화를 배웁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흙땅을 밟지 못하면서 흙땅을 못 밟는 삶을 깨닫지 못하니, 평화를 가르치거나 배우지 못합니다.


.. 여긴 한국이니까 한국말로 하라고, 길거리나 가게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훈계를 들은 경험은 모두 갖고 있었지만, 선진국인 일본에서 일부러 건너와 도대체 뭘 배우려 하느냐는 빈정거림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남학생들 가운데 병역에 대해 싫은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 마사미 같은 재일교포는 절대 덮어놓고 일본을 칭찬할 수가 없다. 재일외국인으로서 겪는 불편함, 불리함, 차별 ……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재일교포는 그런 것들을 갖고 있었다. 세금을 내는데도 선거권은 주어지지 않고, 그런 것을 큰소리로 외치면 일본인들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마사니는 중학교 때 동급생에게 화교로 오인받고 맥이 풀린 적이 있지만,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인들의 대응은 ‘차별’이 아니면 ‘무관심’밖에 없다 ..  (162∼163쪽)


 우리 집 아이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예쁜 아이로 자라도록 돕고 싶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부터 평화를 아끼는 어여쁜 아이로 크도록 어버이 몫을 다하고 싶습니다. 자동차 소리와 매연이 넘실대지 않는 조용한 시골에서 흙을 사랑하는 어버이로 살아가는 내 매무새를 내 아이한테 살며시 이어 주고 싶습니다. 아이한테만 시골 아이가 되기를 바랄 수 없어요. 어른부터 시골 어른이 되어야겠지요. 아이한테만 착한 아이가 되라고 말할 수 없어요. 어른부터 착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예쁜 아이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예쁜 어른으로 살아야 하고, 마음이 넓은 아이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마음이 넓은 어른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예쁜 집


 서울사진축제가 서울 시립미술관 별관에서 열립니다. 서울사진축제를 여는 분들이 저한테서 사진책 300권을 빌려 가며 행사를 꾸리기에, 제 책이 어느 자리에 어떻게 놓였는가 돌아보려고 아이를 데리고 찾아옵니다. 눈나라인 시골집에서 실컷 눈이랑 씨름하며 지내다가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오니, 서울이나 서울 둘레에는 눈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기는, 시외버스를 타는 면내만 하더라도 눈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안쪽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는 시골이거나 멧골이어야 비로소 눈 구경을 합니다.

 지난주에 집식구들이랑 인천마실을 며칠 하고 돌아왔을 때에 날이 몹시 추운 나머지 물이 꽁꽁 얼어 녹을 생각을 안 했는데, 어제 날이 꽤 풀렸을 때에 고맙게 녹아 주었습니다. 얼어붙은 물은 녹는데, 멧등성이와 논밭에 쌓인 눈은 고스란히 남고, 곳곳은 얼음투성이입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참 시골스럽고 멧골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이니까요. 겨울이니까 물이 얼다가 녹을 수 있지만, 다른 데는 겨울다운 모습을 고이 보여줍니다.


.. 가족 중에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고, 그나마도 친척들과 이야기할 때 사용할 뿐이다. 따라서 도시유키에게는 한글이 무슨 기호처럼 보인다. ‘박준성’이라는 본명조차도 한국말로 뭐라고 읽는지 몰랐다. 통명인 아라이 도시유키라는 이름이야말로 자기 이름이라고 도시유키는 20년이 넘도록 믿고 있다 … 통명을 쓰느냐 안 쓰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순자도 도시유키와 별 차이 없이 성장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분노를 느끼는 일은 있어도, 분노로 직접 이어질 만큼 명확한 차별을 몸소 경험한 적은 없지 않을까 ..  (30, 48쪽)


 시외버스가 서울로 들어서고 강변역에 닿을 무렵,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동차와 버스가 뒤섞였습니다. 15분 남짓 한 자리에서 꼼짝을 못합니다. 새삼스럽지는 않으나, 서울로 들어서거나 서울에서 나가거나 서울에서 돌아다닐 때가 가장 힘듭니다. 서울은 너무 많은 사람과 자동차와 건물과 길과 가게와 돈과 물건이 넘치는 바람에 언제나 어디서나 꽁꽁 막히거나 갇히기 일쑤입니다. 보드라운 바람처럼 보드랍게 다니기 어렵습니다. 시원한 바람처럼 시원하게 움직이기 힘듭니다.

 아마 부산도 비슷하겠지요. 인천 같은 데도 옛 도심은 썰렁하지만 새 도심은 복닥복닥 어지럽고 어수선하겠지요.

 전철로 광화문에서 내려 시립미술관 별관이 있다는 경희궁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도록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고 가게에서 뿜어대는 소리에 귀가 따가웠습니다. 아이는 이쪽저쪽 쳐다보느라 바쁩니다. 제대로 걷지를 못합니다. 볼 데가 많고 눈을 끄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좁은 골목에서도 차는 이리저리 쏜살같이 내달리고, 큰길에서는 자동차가 거님길까지 올라와 버젓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경희궁 앞에 닿으니, 차를 세우면 안 되는 자리에 까맣고 큰 차가 여럿 보입니다. 까맣고 큰 차 앞에는 경찰차가 여럿 섭니다. 둘레에는 까만 옷 차림 아저씨들이 여럿 무리지어 서성입니다. 바로 옆으로 조금만 가면 차 대는 널따란 데가 나오지만, 차 대는 데에 차를 대 놓지 않는군요. 왼편도 오른편도 차 댈 데가 널찍하게 있으나 이런 데에는 ‘무슨무슨 어르신’들 차를 세우지 않는군요. 사람이 걸어서 지나가야 할 한복판을 떡하니 가로막는군요.


.. “거봐. 저도 모르게 우리 말이 나오잖아.” “아니, ‘우리 말’은 또 뭐야?” 도시유키가 어리둥절해 하자, 순자와 수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들의 말.” “우리들의 말 …….” … 재미교포 친구들은 대부분, 적어도 마사미가 보기에는 완전히 미국인이 되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수업 시간을 빼면 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서로를 통명-리처드나 스테파니 같은 영어 이름-으로 부르지만, 거기에는 재일교포 대부분 갖고 있는 감정적인 응어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  (90, 153쪽)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아파트숲인 연수동으로 옮긴 삶터가 달갑지 않아,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고향마을인 인천을 등졌습니다. 아파트만 빼곡하게 들어찬 연수동이라는 데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 느껴 인천을 떠났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마친 저로서는 뾰족한 재주가 없으니 인천땅 다른 어디에 삯을 얻어 지낼 수 없습니다. 다만, 서울에 있는 대학교 한 곳에 붙어 다니는 무렵이니까, 대학교 앞에 있는 신문사지국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신문사지국에서는 먹여 주고 재워 주기까지 한다기에 더없이 홀가분하게 고향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부자 신문 돌리는 지국이 아닌 가난뱅이 신문 돌리는 지국인 터라, 우리 지국은 골목동네 안쪽에서도 지하방이었습니다. 신문사지국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지하방을 압니다. 인천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살림집이라 하더라도 지하방은 없거든요. 달동네이든 철거촌이든 모두 햇볕 드는 땅에 집을 짓고 해바라기를 하도록 빨래를 내다 널고 햇볕 쬐는 자리에 꽃밭과 텃밭을 일굽니다. 그렇지만 서울이라는 데는 지하방이나 반지하방이 숱하게 많을 뿐 아니라, 햇볕 한 조각 들지 않는 집과 골목이 대단히 많습니다. 가난뱅이 신문을 돌리면서 가난뱅이 골목길을 골골샅샅 누비며 가난뱅이 살림집에 신문을 갖다 주고, 가난뱅이 살림집 사람들한테서 신문값 걷으러 다니며 새롭게 느끼고 배웁니다.

 서울이란 이렇구나.

 서울에는 갖가지 계급이 있고 온갖 신분이 있는데, 다들 용하게 뒤섞인 채 사는구나, 아니 뒤섞인다기보다 계급에 따라 동네와 골목이 갈리어 이렇게들 쪼그라들며 밟히는구나.


.. 마포구청 근처에 차를 세웠다. 길바닥이 갈라진 가파른 비탈길에는 자동차 몇 대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불법주차라는 개념은 이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를 몰고 가다가 이미 주차된 차량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한 길을 만나면 요란하게 경적을 계속 울려대고, 이윽고 나타난 주차 차량의 운전자와 한바탕 싸움을 하면 된다 … 접객업소라면 당연히 손님에게 상냥해야 할 텐데, 그런 개념도 이 나라(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하고 마사미는 떨떠름했다 … 길거리에서 남과 부딪혀도 “미안합니다” 하는 한 마디를 들을 수 없었다. 거기에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 마사미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은 ‘나는 곤혹스럽다’는 거였다. 이 나라 사람들의 수선스럽고 거친 태도, 시끄러움, 뻔뻔스러움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아무리 자신을 타일러도 역시 익숙해질 수가 없다고.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내가 아직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왜 이렇게까지 주눅이 들어야 하느냐고. 일본에 있을 때는 한국인임을 부그럽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는 내가 내 나라에 와서 이렇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어찌된 일이냐고 ..  (117∼118, 132, 136쪽)


 서울은 사람도 자동차도 건물도 회사도 공공기관도 많습니다. 어떻든 서울에서 비비며 버티면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제법 돈을 만질 만합니다.

 서울로 오는 버스길에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무르팍에 누인 채 톨스토이 님 책을 하나 읽었습니다. 톨스토이 님은 당신 문학을 빌어 ‘우리가 아름답거나 즐거이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가를 넌지시 밝히거나 살며시 묻습니다. 당신 입으로 아름답거나 즐거이 살아가는 길을 밝히기도 하지만, 짐짓 모른 척하면서 우리한테 묻곤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때에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그지없이 즐거운 나날일까 헤아려 봅니다. 나부터 내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꾸릴 때에 한껏 신나면서 한결 어여쁠까 곱씹어 봅니다.

 제가 쓰는 책이 잘 팔리거나 제가 찍은 사진이 이름을 얻거나 제가 하는 일이 눈길을 널리 받을 때에 제 삶과 일과 놀이가 보람을 거둔다 할 만할까요. 제 살붙이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겨를을 누리는 보금자리에서 돈도 이름도 힘도 없이 책과 사진과 시골살이를 얼싸안을 때에 보람을 느낀다 할 만한가요.

 4만 원짜리 잠집에서 새벽녘에 일어나 고즈넉히 생각에 잠깁니다. 지난번까지는 3만 원짜리 잠집을 찾으러 서울 시내 골목을 다리 아프게 다녔는데, 3만 원짜리 잠집은 불을 잘 안 넣어 주고 침대방만 있어 아이하고 하룻밤 묵으며 고달팠습니다. 1만 원을 더 치르니 조금 낫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하루 얻어 자는 데에도 참 버겁습니다. 온돌방이라지만 씻는 데가 아주 좁습니다. 땅값이 비싼 서울이니 이만 한 데도 고맙게 여겨야 할 텐데, 잠집을 찾으러 아이를 안고 골목을 거닐다가 밤 열한 시가 가까운 데에도 손수레에 과일을 잔뜩 싣고 찬바람을 이기며 앉은 길장수 아지매를 보며 쓸쓸했습니다. 길장수 아지매는 이렇게 힘겨이 일하면서 얼마나 기쁘며 벅찬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시려나요. 가방이 무겁고 아이를 안은 몸이라 능금 한 알 사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3) 예쁜 이야기


 번역이 썩 고르지 못해 아쉬운 문학책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를 읽습니다. 재일조선인 문학을 한국말로 옮길 때이든 일본사람 문학을 한국말로 옮길 때이든 ‘알맞고 바르며 착한 한국말’을 찬찬히 살피는 번역쟁이는 너무 드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본말로 된 책을 읽을 수 없는 형편이니 그저 고맙게 읽어야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투덜투덜투덜 또 투덜댑니다.


.. “뭐랄까, 그 사람은 재일한국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야.” ..  (44쪽)


 문학책에서만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딱한 노릇이지만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이 남녘에만 있는 줄 알기 일쑤입니다. 북녘에도 한국사람이 있고 중국땅과 러시아땅에도 한국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마 ‘한겨레’라는 낱말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하리라 봅니다. ‘재일조선인이 있는 줄은 아예 모르는’ 삶이고, ‘중국조선족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는’ 삶이며 ‘러시아한인이 있다고는 꿈조차 꾸지 않는’ 삶입니다.

 흔히들, 이 나라 정부가 나라밖 한겨레를 모른다고들 하지만, 이 나라 정부에 앞서 우리 스스로 모릅니다. 더욱이, 이 나라 정부를 비롯해 이 나라 사람 스스로 이 나라에서 외롭고 아프며 고단한 이웃을 모르거나 모른 척합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웃이나 동무가 어떠한 삶인지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아요. 누구보다 이 땅 남녘나라에서 우리 스스로 물을 노릇입니다.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나요?”


..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아이 엠 코리언’이라고 했더니, 그 애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웃으면서 느닷없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 왔어.” “아아 …….” 재일한국인이 외국에 갔을 때 체험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도시유키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을 못한다고, 서투른 영어로 아무리 설명해도, 그 애는 ‘왜 못해요?’ 하고 자꾸만 묻는 거야.” “으응 …….” “왜 못하냐고 물어도 대답하기 곤란하잖아?” ..  (72쪽)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를 쓴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재일조선인이 아닙니다. 그냥 일본사람입니다. 이름부터 알 수 있듯, 사기사와 메구무 님을 낳은 어버이는 일본사람이었습니다.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소설쓰기를 하며 당신 집식구 뿌리를 하나둘 살펴 올라가다 보니 당신 할머니가 북녘에서 태어났던 사람이었음을 알았답니다. 당신 아버지는 한국사람 피와 일본사람 피가 반이 섞인 몸이고,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한국사람 피가 1/4 섞인 몸인 셈이에요.

 당신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국사람 티를 낸 적이 없었고, 한국사람이라 말한 적이 없을 뿐더러, 어느 구석에서도 한국사람다운 모습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신 할머니가 당신 아버지한테 ‘네 뿌리는 어디이다’ 하고 안 가르쳐 주었는지, 가르쳐 주었으나 모르는 척하며 지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당신 집안 뿌리를 알고 난 뒤부터 소설쓰기와 삶읽기가 달라집니다. 그동안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살피지도 않던 재일조선인 삶자락을 생각하거나 살핍니다. 애써 한국말을 배우려고 연세대 한국어학당까지 찾아와서 배웁니다. 재일조선인 삶을 들여다보고 부대끼면서 소설을 씁니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으로 찾아와 한국말을 배우던 나날을 돌이키며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자유포럼,1998)이라는 수필책을 하나 내놓기도 합니다. 재일조선인 소설쟁이로서 ‘남녘나라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한국사람답고, 일본땅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은 어떠한 한겨레이며 일본땅에서 살아가는 일본사람은 또 얼마나 일본사람다운가’라는 대목을 소설로 깊이있게 파헤칩니다.


.. “너무 심해요.” 겨우 말했다. 말해 버리자 더욱 우스워져서, 더욱 요란하게 웃으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역시 이 나라는 심해요.” 처음으로 입밖에 내어 말하고 있었다 ..  (196쪽)


 소설책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는 끝무렵 “아미는 이 나라를 사랑해(217쪽)?”라는 물음과 이 물음에 대꾸하는 주인공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인공은 무어라 이야기했을까요?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2004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서른여섯 나이에 흙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살아 마흔둘 나이였다면 이동안 새로 부대끼거나 복닥이는 삶자락 이야기를 더욱 깊고 넓게 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재일조선인과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얼크러지는 아프고 슬프며 고단한 삶을 아리따운 붓끝으로 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미움과 따돌림을 싫어하고 사랑과 평화를 좋아하는 당신 넋을 실은 살가운 문학이 꽃을 활짝 피웠으리라 봅니다.

 책장을 다시 넘기고, 책을 쓰다듬습니다. 히유 한숨을 쉽니다. 예쁜 이야기를 빚어내는 예쁜 넋은 왜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채 스스로 흙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빨리 몸부림쳐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예쁜 넋을 한결 예쁘게 보듬으면서 예쁜 사랑과 예쁜 평화를 둘레 예쁜 벗하고 나누기 힘들었을까 궁금합니다. 밉살스럽거나 짓궂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만 예쁘고 해맑게 살아가는 사람 또한 많고, 밉살스럽거나 짓궂게 살아가는 사람조차 마음녘 한자리에는 어김없이 예쁜 꽃이 옹송그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소설책 주인공보다 소설쟁이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이 나라를 몹시 사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기에 아플밖에 없고 사랑하기에 슬플밖에 없습니다. 예쁜 나라 예쁜 겨레 예쁜 삶터로 거듭나지 못하고 미운 나라 미운 겨레 미운 삶터로 굴러떨어지며 전쟁사랑 돈사랑 학벌사랑 계급사랑 따위로 나아가기만 하니, 예쁜 넋잎 하나는 아파하고 또 아파하다가 그만 찬바람에 바들바들 떨며 숨을 거둡니다. (4343.12.2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책 도서관 열기
 ― 내 고향마을에 작은 책쉼터 하나



 저는 2007년 4월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2006년에 도서관법이 바뀌는 바람에 개인이 도서관을 열 때에는 법에 따라서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지만, 저로서는 나쁜 법은 지키고 싶지 않아서, 제가 그러모아 사랑해 온 책으로 동네에 조그맣게 도서관을 열었을 때에, 일부러 법을 어기며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서관이란 나라나 지자체나 학교에서도 열 수 있으나 개인도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정부나 시나 군이나 구나 동에서 도움돈을 받든 안 받든, 얼마든지 스스로 좋아하면서 열 만합니다.

 어떤 분들은 찻집을 열면서 찻집 한켠에 책꽂이를 마련해 놓습니다. 차 한 잔 마시며 책 한 권 즐기도록 하는 셈인데, 이렇게 조그맣게 마련한 ‘책쉼터’ 자리 또한 도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책이 열 권이든 백 권이든 얼마든지 ‘사진책 도서관’을 꾸렸다고 여깁니다. 몇 천 권이나 몇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추었대서 도서관이 아닙니다. 수십만 권이나 수백만 권을 갖출 자리가 있는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앉아서 책을 즐기도록 책걸상 알뜰히 갖추어야 도서관이 아니에요.

 책을 나눌 수 있고, 책을 사랑할 수 있으며, 책을 아낄 수 있을 때에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은 바로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책을 건사합니다. 여러 사람이 책을 나누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여러 사람이 골고루 책을 사랑하도록 소담스러운 책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끔 하며, 여러 사람이 책을 아끼는 마음을 북돋우도록 이야기를 건넵니다.

 지난 2007년부터 꾸리는 제 사진책 도서관에 찾아오는 분들 가운데 4/5가 넘는 사람들은 으레 “이 책들 파나요?” 하고 묻습니다. 이분들은 제 도서관에 찾아오면서 이곳이 ‘도서관’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묻고, 모르면서도 묻습니다.

 도서관은 책을 팔지 않습니다. 도서관은 소담스러운 책을 건사해 놓으며 조용히 책에 빠져들도록 문을 열어 놓는 자리입니다.

 이른바 북카페라는 이름을 붙이는 작은 찻집에서도 책은 좀처럼 팔지 않습니다. 때때로 파는 책을 놓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즐길 만한 책은 팔 까닭이 없고, 팔아서는 안 됩니다. 책을 사 갈 수 있는 사람은 혼자서 ‘좋은 책 건졌다!’는 기쁨이 북받쳐오르겠으나, 한 사람은 기쁨에 북받쳐오를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좋은 책을 구경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 저부터 조그맣게 사진책 도서관을 열 때에 꿈을 꾸었습니다. 대단히 많은 돈을 들여 아주 멋들어진 건물을 새로 짓는 도서관은 굳이 없어도 된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내 살림집 방 하나를 도서관으로 삼든, 내 가게 벽 하나를 책꽂이로 꾸미든, 내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조촐히 가꾸는 도서관이면 넉넉하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굳이 서울이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서울이어도 좋고 서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고향마을에서 즐겁게 살림을 꾸리는 가운데 ‘한 주 가운데 하루만 겨우 문을 열어도 괜찮’으니까, 길손이든 동네사람이든 좋은 책을 좋은 넋으로 즐기도록 마을쉼터를 예쁘게 열어 놓는다면 기쁘리라 생각하고 꿈을 꿉니다. 더 많은 책이 있어도 나쁘지 않으나, 더 깊으며 고운 사랑으로 책을 돌볼 수 있으면 한결 좋습니다.

 골목마실을 하다가 다리쉼을 하며 책 하나 들여다보면 넉넉합니다. 마을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책 하나 살며시 들추면 포근합니다. 동무랑 만나기로 하는 자리로 삼아, 동무를 기다리면서 책 하나 가만히 넘기면 알뜰합니다.

 책은 삶이고, 사진 또한 삶이며, 사람은 고스란히 삶입니다. 사진책 도서관은 책과 사진과 사람이 어여삐 얼크러지는 쉼터이자 만남터입니다. (4343.12.20.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눈을 쓰는 마음


 군대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눈을 쓸었습니다. 아니, 눈을 삽으로 퍼서 옮겼습니다. 말 그대로 펑펑 쏟아지며 그득그득 쌓이는 눈은 빗자루로 쓸어낸다고 치울 수 없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뒤에는 눈쓸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눈을 쓸고프지 않았습니다. 여느 삶자리에서 맞이하는 눈은 ‘눈답다’고 느끼지 않기도 했고, 가뜩이나 여느 삶자리에는 눈도 거의 안 오는데 이 눈을 왜 치우는가 싶었습니다. 눈을 안 치우고 하루나 이틀만 있어도 저절로 녹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겨울은 겨울이면서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아니라, 며칠쯤 있으면 날이 풀려 눈이 다 녹습니다. 때로는 눈이 쌓인 그날 바로 다 녹아서 사라지곤 해요. 호들갑을 떨면서 화학방정식 소금을 뿌려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다녀야 한다고들 하니까 눈을 치우려 합니다. 사람이 아닌 자동차 때문에 눈을 치웁니다. 왜냐하면 사람 발자국이 난 자리는 비질을 몇 번 하면 다 벗겨지지만, 자동차가 밟은 자리는 비질로는 벗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삽으로 긁어도 잘 안 벗겨져요.

 시골집에 보슬보슬 내리다가 소복소복 내린 눈을 바라봅니다. 눈이 다 멎은 다음 빗자루를 들고 씁니다. 멧자락 집으로 들어설 택배 짐차들이 눈 때문에 못 온다고 핑계를 댈까 싶어 눈을 씁니다. 이토록 눈이 왔어도 우체국 택배는 제때 잘 왔으나 다른 택배는 전화도 없고 오지도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눈이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거리인가 봅니다.

 맨손으로 눈을 쓰니까 손이 얼어붙습니다. 아니, 손가락이 얼어붙습니다. 장갑을 낀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장갑을 끼어도 손가락 얼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한참 쓸고 나서 손가락을 녹여야 합니다. 군대에서도 그랬으니까요.

 아이는 눈을 쓸어 말끔한 자리를 밟지 않습니다. 아빠가 일부러 안 쓸어 놓은 자리만 밟습니다. 아빠는 우리 집 마당자리는 사람 걷는 길만 조금 쓸고 다른 데는 고스란히 남겼는데, 아이는 딱 요 자리만 밟습니다. 그래, 너를 생각해서라도 아빠는 눈을 쓸기 싫어. 눈이 오면 우리 집은 눈집이 되어 언제라도 눈을 즐기면서 살아간다면 좋겠지. (4343.12.20.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