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2.
숨은책 1033
《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
김현희 글
고려원
1995.4.20.첫/1995.5.1.2벌
어린배움터 막바지이던 1987년, 온나라를 뒤흔든 ‘김현희’라는 이름은 앞으로도 잊기 어렵습니다. 1987년에는 아직 ‘반공웅변’을 어린배움터에서 다달이 해야 했고, 우리는 “때려잡자 김일성! 김현희!”를 외치면서 주먹을 불끈불끈 하늘로 뻗어야 했습니다. 마른하늘 날벼락처럼 115사람이 하늘애서 죽어야 했고, 김현희는 미처 못 달아나고서 붙잡혔고, 여러모로 캐묻는 말과 모습은 날마다 보임틀(텔레비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몇 해 뒤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립니다만, 도무지 쳐다보기 싫더군요. 애먼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라고 시키는 나라도, 시키는 대로 따른 허수아비도, 북녘 이야기를 얻으려고 살려놓은 나라도, 이 모두를 장삿속으로 팔아치우는 펴냄터(고려원)와 글꾼(노수민)과 안기부도, 우리한테 끝없이 반공웅변과 “저놈을 미워하기”를 시키던 배움터와 길잡이도, 다 보기싫었습니다. 그 뒤 서른 해쯤 지난 2025년 부산 헌책집에서 《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를 보았습니다. 나라를 잘못 만나서 잘못 살았다는 줄거리는 흐르되, 잘못 만난 나라에서 잘못 살았더라도 ‘아무나(민간인도)’ 멀쩡히 죽인 짓부터 제대로 눈물로 씻어야 할 텐데, 이런 빛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2024년 12월에 무안나루에서 벼락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놓고도 아직 어느 누가 잘못을 비는지 그야말로 잘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북한을 둘러싼 주변 환경만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9쪽)
북한에서는 살이 포동포동 찐 사람을 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을 빼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여긴다. 더구나 밥을 굶어 가며 살을 뺀다고 하면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게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식품이 부족해 먹고 싶어도 없어 못 먹을 형편이기 때문에, 굳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살이 찔 염려는 없다. (57쪽)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