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이 말을 걸다 - 골목이 품은 서울의 풍경
김대홍 지음, 조정래 사진 / 넥서스BOOKS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78 ― 세상을 고루 느끼고자 자전거로 골목길 나들이
 : 김대홍+조정래, 《그 골목이 말을 걸다》



- 책이름 : 그 골목이 말을 걸다
- 글 : 김대홍
- 사진 : 김대홍, 조정래
- 펴낸곳 : 넥서스BOOKS (2008.9.20.)
- 책값 : 12000원



 (1) 우리 삶과 길


 아기를 안고 이웃집에 놀러갑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손주를 보았으니 할머님이고, 아주머니네 어머님이 계시니 그분은 증조할머님입니다. 강원도 고장말을 쓰는 증조할머님은 우리가 천기저귀를 쓰는 모습을 보더니, “요새도 천기저귀를 쓰는 사람이 있나?” 하면서 “목욕시키고 빨래만 해도 하루가 가는데.” 하면서 걱정을 해 줍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모두들 천기저귀를 썼을 뿐 아니라, 집에서 손수 물을 덥혀서 아기를 씻겼고, 아기 빨래뿐 아니라 집식구 빨래를 죄다 손으로 했을 뿐 아니라, 밥 해 먹이고 그릇 씻고 집 치우고 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손으로 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더욱이 시골집에서라면 먹을거리까지 몸소 씨뿌리고 가꾸고 거두고 갈무리하고 손질했으니 일손은 훨씬 많이 들었습니다.


.. 40년 이상 된 이발관을 두 곳이나 갖고 있다는 것은 마을사람들에겐 참 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곳을 찾는 마을사람들을 둔 이발관 또한 복일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문을 닫은 서울 소격동 〈화개이발관〉을 모두 소장하기로 결정하고 내부 시설을 옮긴 바 있다. 1952년 문을 연 이 오래된 이발관을 근대문화재로 인정한 것이다 ..  (23쪽)


 옆지기는 성당 성가대로 안쪽에 앉고, 저는 아기를 안고 성당 유아방에서 지켜보던 지난 일요일. 아기가 잠에 깨어 쉬를 보았기에 기저귀를 갈아 주니, 옆에서 바라보던 젊은 애 어머니들이 모두 놀랍니다. “어쩜 천기저귀를 써요?” “아기가 좋아하니까요.” “익숙하게 잘 가는 걸 보니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시나 봐요?” “집안일은 누가 누굴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같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아저씨들이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시나요? 하긴, 어떤 아저씨들은 아기가 똥 누면 냄새 난다고 싫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낳은 아기인데.” “호호, 우리 아저씨도 그래요. 똥 누었을 때 한 번도 안 도와줬어요.” “아기가 눈 똥도 냄새 난다고 하면, 나중에 자기 부모님 앓아누웠을 때 어떻게 수발을 들려고. 다 마누라만 시켜 먹을려고 그러실까.”


.. 송월동 골목길로 들어서니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 나온다. 어떤 길은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만한 곳도 있다. 이런 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서로의 숨소리까지 느꼈을 것 같다 ..  (68쪽)


 시금치와 능금을 갈고 효소를 조금 섞은 풀물을 아기한테 떠먹입니다. 아기는 날름날름 잘 먹습니다. 그냥 효소를 물에 타서 줄 때와 견줄 수 없이 맛있게 먹습니다. 날푸성귀와 능금을 때마다 갈아서 주기가 번거롭고 품과 시간이 들어서 그렇지, 이렇게 잘 먹어 준다면 지어미나 지아비가 바쁘고 힘들다 해도, 바지런을 떨어 주어야겠구나 싶습니다. 아기 때 이만큼 못하겠습니까.

 아기는 풀물을 먹고 엄마젖까지 물고 나서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애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서 씻는방에서 기저귀 빨래를 합니다. 애 아버지는 방에 남아서 아기를 보면서 글쓰기를 합니다. 애 어머니한테 빨래를 맡기고 싶지는 않으나, 집에서 빨래라도 하지 않으면 ‘아기와 하루 내내 붙어 있어서 바깥에도 나가기 힘든 판’에 몸뿐 아니라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웬만한 빨래는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아기를 봅니다.


.. 어떤 사람들은 이곳 100평 주택 팔아 봐야 강남 주택 40평도 못 산다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강남 40평으로 100평 역할을 하니, 오히려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105쪽)


 옆지기가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있으면, 아침이나 새벽에 불려 놓은 콩과 누런쌀로 밥을 짓고 찌개나 반찬거리 한 가지를 마련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엊저녁에 먹다가 남긴 닭볶음찌개에 시금치와 고구마와 감자와 마늘과 국수를 새로 넣어서 끓입니다. 가톨릭농 생협에서 토막닭을 1킬로그램어치 샀는데, 둘이서 엊저녁에 1/3은 튀기고 2/3는 닭볶음찌개로 해서 먹으면서 배가 너무 불러서 다 못 먹고 남기고 오늘 아침이자 낮밥으로 마저 먹습니다.

 유기농 생협 닭 한 마리는 7600원입니다. 닭집에서 튀김닭을 사먹으면 1킬로그램이 못 되는데 12000원을 냅니다. ㅇ마트에서 파는 토막닭은 800그램에 6400원 하더군요. 생협 매장에서는 물건이 없어서 못 살 때가 잦지만, 집에서 튀기고 끓이는 번거로움을 조금 치를 수 있다면, 외려 더 적은 돈으로 몸에 훨씬 나으며, 우리네 시골살림에 보탬이 되는 데에 돈을 쓸 수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 식구는 하루에 한 끼니만 먹으니 7600원으로(해바라기씨 기름을 썼으니 기름값이 닭값보다 더 들긴 했지만) 이틀치 끼니를 배불리 이을 수 있습니다.


.. 쉼터라고 하면 꼭 돈을 들여야만 하고, 또 목책을 두르고 그 안에 팔각정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중림동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평상 하나로도 좋은 쉼터를 만날 수 있다 ..  (256쪽)


 우리 아기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곧 보행기 태워도 되겠네.” 하고, 또 “애 엄마와 아빠가 힘들어서 어떡해요. 유모차 끌고 다녀야지.” 하고 말씀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세탁기도 냉장고도 안 쓰는데 유모차나 보행기 쓰겠느냐고, 그리고 유모차가 아기한테 얼마나 나쁜데 거기에 아기를 태우느냐고 말씀 드립니다. 아기가 걸을 나이가 되면 걸릴 생각이며, 아기가 걷지 못하는 지금은 안거나 업고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기 데리고 책방 다니며 사진 찍으러 다니고 하자면 힘들어서 작은 차 한 대 있어야 한다고 근심해 주는 분들한테도, 우리는 여태까지 먼길을 마다 않고 가방 가득 책을 담아 자전거를 달렸다고, 여러 시간 걸어서 다녔다고, 이렇게 다니면서 한결 보람이 있을 뿐더러 더 많은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더 널리 세상을 부대껴서 즐겁다고 덧붙입니다.


.. 재래시장은 자전거나 도보와 무척 잘 어울린다. 부피가 큰 자동차는 어쩐지 시장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자동차가 생활 깊숙이 들어선 것과 재래시장의 퇴조가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자전거길에는 꼭 우레탄을 깔아야 한다는 것은 갑자기 생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자전거는 비포장길을 달렸다. 지금 산악자전거처럼 두꺼운 바퀴가 아니었음에도 아이도 태우고 쌀짐도 싣고 다녔다. 생태계를 지킨다는 측면에서도 논둑길과 같은 자전거길이 도시에도 많았으면 좋겠다 ..  (272, 310쪽)


 큰돈도 아닌 작은돈조차 벌지 못한다 하여도, 우리는 우리 살고픈 대로 삽니다.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을 쓸 만큼 돈을 벌지 못하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이를 맡아 기르며 함께 지냅니다. 아이를 사진이 아닌 숨소리로 느끼고, 아이를 귀염둥이가 아닌 우리 식구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동네 집값이 뛰건 말건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동네 집값은 움직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한테는 집이 없어서 집값이 오른다고 하여 도움될 일이 없을 뿐더러, 외려 달삯이 올라 걱정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돈을 벌어서 집을 얻을 수 있다 하여도, 우리는 우리 사는 집을 재산이나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돈을 벌려고 읽은 책이 아니고, 이름값을 높이려고 찍은 사진이 아니며, 지역문화운동을 하자며 고향 동네 골목길에 도서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즐겁게 살고 싶어서, 신나게 어울리고 싶어서, 깨끗하게 나누고 싶어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습니다.






 (2) 골목마을과 길


 아기를 안거나 업은 채 골목마실을 다니면,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아기 오랜만에 보네.” 하면서 당신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엊그제 볼일이 있어서 서울 나들이를 할 때에도 할머니나 할아버지 뻘 되는 분들은 “아기 참 오랜만에 본다.”는 말을 당신들끼리 주고받았습니다.


.. 날이 풀려서인지 뛰어다니며 골목을 누비는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아주 좁은 길이 아니고서는 빵빵거리며 위협하는 자동차들 때문에 날이 풀려도 길에서 마음껏 놀 수 없다. 예전엔 길이 놀이터였지만, 지금은 동그란 울타리 안에 놀이터란 곳이 따로 있다. 벽으로 둘러싸야만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세상이 돼 버렸다 ..  (29쪽)


 흔히 시골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가만히 살피면 도시마을에서도 ‘아기 울음소리 듣기’란 어렵습니다. 갓 태어나는 아기는 시골이 도시와 견주어 훨씬 적지만, 나날이 ‘자가용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길에서 아기를 만나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리면, 작은댁이 있는 서울로 때 되면 나들이를 가느라 온식구가 인천역부터 전철을 타고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에 어김없이 갓난쟁이 안거나 업은 어머님들을 보았습니다. 우리한테 아기가 태어난 뒤 더 살피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자가용 아닌 대중교통이나 두 다리로 많이 다니던 때에는 버스나 전철에서 ‘애 업은 어머님’ 보는 일은 아주 흔했습니다. 그리고, 저잣거리로 장보기를 나오는 ‘애 업은 어머님’을 비롯하여, 아기 해바라기와 바람쐬기를 해 주는 ‘애 업은 어머님’이 퍽 많았어요.


.. 서울 지역 유일한 백제시대 토기 가마터이지만, 이곳이 문화유적지라는 것을 알 만한 것은 담 한쪽에 있는 안내판이 유일하다. 관악구청장은 선거에 나올 때마다 백제요지 보존을 이야기했지만, 이곳 풍경은 몇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백제요지 바로 옆에는 공영주차장 건설이 추진 중이다 ..  (45쪽)


 우리도 다니면서 느끼지만, 아기를 데리고 전철로 움직이기란 몹시 힘듭니다. 고달프고 시끄럽고 진땀을 빼야 합니다. 가까운 길이 아닌 먼 길을 가느라 전철을 타기에, 전철에서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고 해야 하는데, 덜컹거리는 전차간은 그나마 ‘영유아 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을 함께 달고 있기는 해도, 걱정없이 느긋하게 젖도 물리고 기저귀를 갈 수 있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전거를 싣고 전철로 움직이는 일도 퍽 고단합니다. 바퀴걸상을 놓는 칸이 앞뒤로 하나씩 있기는 한데, 이 자리는 자전거를 세우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들고 전철에 올랐어도, 스스럼없이 이 자리에서 비켜나 주는 손님이 많지 않아요. 그냥 뻗대고 섭니다. 바퀴걸상이나 자전거가 없다면 누구나 설 수 있는 자리이지만, 바퀴걸상이나 자전거가 있을 때에는, 또 짐칸에 올리기 힘든 큰짐을 들고 타는 분이 있을 때에는, 누구나 이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두 다리 멀쩡한 사람은 계단을 타고 두 다리 아프거나 나이든 이들이 승강기를 타야 하듯, 힘이 없거나 여린 사람한테 마음을 써 주는 우리 삶이어야지요.

 사람보다 시설을 탓해야 하고, 사람보다 시설을 못 갖추는 우리 문화를 탓해야 하며, 사람보다 시설을 갖출 마음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교육을 탓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설도 문화도 교육도 다른 어느 누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받고 우리가 누리고 우리가 가꿉니다. 정치하는 사람을 우리 손으로 뽑듯, 공무원이 잘못을 하면 우리 손으로 꾸짖거나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 둘레에 일이 터지면 우리가 나서서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시설이 안 되어 있다면, 시설이 될 때까지 우리들이 뜻과 마음을 모아서 손질해 나가야 합니다.


.. 추위를 녹이기 위해 어묵 파는 트럭에 잠시 들렀을 때, 아저씨가 “오늘 같이 추운 날도 자전거를 타세요?” 하며 놀랐지만, 동네사람들 또한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탔다 ..  (119쪽)


 ㅇ마트 같은 큰 가게에 가면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옛 저잣거리를 나들이할 때면 뒷간조차 찾을 수 없어서 몹시 힘겹습니다. 새 도심지 큰 빌딩 사이 거리를 거닐 때에는 큰 건물 뒷간을 쓸 수 있습니다. 옛 도심지 골목길을 거닐 때에는 동사무소나 파출소를 찾지 않고서는 뒷간 쓸 곳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ㅇ마트나 빌딩숲에서는 서로가 서로한테 마음을 쏟아 주지 않고,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곳입니다. 옛 도심지 골목이나 저잣거리는 편의시설이 마땅하게 없어도 서로가 서로한테 마음을 쏟아 주는 곳입니다. 비록 뒷간이 없을지라도 골목집 이웃이 당신 집에서 볼일을 보도록 마음을 써 주곤 하며, 아기를 돌볼 방이 없을지라도 고즈넉한 안쪽 골목에 꼭 마련되어 있는 평상에 앉아서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물릴 수 있습니다.


.. 예전 아이들은 땅만 있으면 놀이기구가 필요없었다. 땅ㆍ나무ㆍ집이 곧 놀이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노는 것도 돈이 필요하다. 얼마나 비싼지에 따라서 정성이 결정된다 … 사회는 점점 비슷비슷해지고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게 돼 버렸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것이 제각각인 골목동네는 환영받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모두 같은 것들만 존재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재미가 없겠는가 ..  (136∼137쪽)


 어린이부터 푸름이와 젊은이와 늙은이까지 똑같은 식구요 이웃이요 동무로 어울리게 되는 골목마을입니다. 도시에서는 골목마을이고 시골에서는 고샅마을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 따로, 푸름이는 푸름이 따로, 젊은이는 젊은이 따로, 늙은이는 늙은이 따로 어울리거나 모여야만 하는 새도시요 뉴타운이요 아파트요 쇼핑센터요 빌딩숲입니다.

 관계자 아니면 드나들 수 없을 뿐더러 경찰옷과 닮은 제복을 입은 건물지킴이가 득달같이 좇아와서 왜 들어왔느냐고 캐어 묻는 새도시요 아파트요 빌딩입니다. 번쩍번쩍 차려입은 옷이라면 모르되, 후줄근하거나 홀가분한 차림새는 금세 눈총을 받습니다.

 관계자 아닌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을 뿐더러 지키는 사람 따로 없는 골목길입니다. 가볍거나 단출한 옷차림이 아닌 사람은 금세 눈에 뜨이게 되는 골목길입니다. 낯선 사람이라고, 뭔가 길을 잘못 든 사람이라고, 골목마을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느냐 싶어서 궁금하기도 하지만, 경계를 하게 되는 양복쟁이입니다.


.. 평지를 통해서 흑성동으로 가고자 한다면 상도역에서 상도터널을 지난 뒤, 차도 옆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길은 쉽겠지만 시끄럽고 공기 또한 나쁘다. 길도 쉬우면서 조용하고 공기까지 좋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 아파트는 참 슬프다. 대를 이어 오래오래 살 곳이 못 된다. 추억을 묻기엔 그 삶이 너무 짧다. 아파트의 삶은 도시의 변덕스러움을 참 많이 닮았다 ..  (160, 172쪽)


 큼직한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있으면 ‘부러 꾀죄죄해 보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이곳은 하루빨리 재개발해야 하는 곳’으로 여겨지게끔 하는 첩자가 아니냐며 따갑게 바라보는 골목마을입니다. 크고 빛나는 사진기는, 새 도심지와 빌딩숲 따위에서는 크게 돋보이면서 자랑 삼을 수 있을지 모르나, 골목마을에서는 두려움과 거리두기를 느끼게 합니다. 골목길에서는 짐자전거나 아이 태운 자전거가 어울리지만, 새 도심지 큰찻길에서는 으리으리 빛나는 값비싼 자전거라든지 자전거옷(저지)을 쪽 빼입고 싱싱 누비는 자전거가 어울립니다.

 골목길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헌 신문지와 종이상자와 빈병 들을 그러모아서 다문 몇 백 원이나마 벌이를 하면서 일손을 놀립니다. 새 도심지와 빌딩숲과 아파트에서는 용역업체에서 큰차를 불러서 ‘요일에 따른 재활용품 수거’를 한꺼번에 싹 해치웁니다. 골목길에서는 헌 신문지 따위를 잔뜩 그러모은 손수레가 언덕길을 낑낑대며 오르기에 뒤에서 영차영차 밀어 줍니다. 새 도심지에서는 큰소리로 빵빵거리면서 윽박지르는 자가용이며 짐차며 오토바이며 그득그득하기에 얼른얼른 길을 비키면서 몸을 사리게 됩니다.

 백일이 되면 백일떡을, 돌이 되면 돌떡을 해서 집집마다 찾아가면서 인사를 할 수 있는 골목마을입니다. 백일이나 돌이 되면 호텔 한 층이나 뷔페집 한 칸을 빌려서 수백만 원을 치르고 행사(이벤트)를 벌여야만 되는 아파트단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골목마을에서도 백일떡이나 돌떡을 구경하기 힘듭니다. 경제성장율에 매여 있는 나라에서는, 경제대통령이라는 허울만 보고 큰 심부름꾼을 뽑는 나라에서는, 더 많은 연봉을 받지 못하면 안달을 낼 뿐더러 제법 많은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배부를 줄 모르는 나라에서는, 온갖 물질문명을 누리면서도 마음밭 살찌우기는 조금도 못하는 나라에서는, 온갖 전기제품을 쓰며 일손을 줄였다고는 하나 남녀평등도 사람평등도 이루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백일잔치도 돌잔치도 마을잔치로 치를 수 없습니다. 혼인잔치도 예순잔치도 마을잔치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숫자, 그저 돈, 한낱 돈주머니에 매달릴 뿐입니다.





 (3) ‘자전거 골목 마실’인 《그 골목이 말을 걸다》


 인터넷신문 기자이기도 한 김대홍 님이 쓴 《그 골목이 말을 걸다》를 읽습니다. 이제까지 ‘골목길 나들이’를 글감으로 삼아서 나온 책이 제법 되고, ‘서울 문화’ 이야기를 다룬 책도 꽤 됩니다만, 한영수 님이 찍은 사진에 어린이문학가 어효선 님이 글을 쓴 《내가 자란 서울》(대원사)만큼 사람 냄새가 묻어나도록 이야기를 펼친 책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 자전거를 타는 것은 즐겁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자전거는 ‘일상’이라기보다는 ‘일상탈출’의 성격이 강하다. 자전거는 한강 공원에서 어쩌다 타는 것, 추억을 남기기 위해 먼 여행을 갈 때 쓰는 것,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타야 좋은 것, 보기에 예쁜 소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 골목여행은 달리 말하면 마을여행이기도 하다. 골목을 통해 마을 곳곳에 새겨진 흔적과 발자취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머리말)


 누구나 자기가 자라는 대로 고향마을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며, 누구나 자기가 겪은 대로 이 나라 서울을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온나라가 서울에 쏠리도록 되어 있고, 온사람이 서울로 가도록 이루어져 있기에, 서울만큼 문화며 역사며 문명이며 예술이며 교육이며 경제며 …… 이야기감이 많은 곳은 이 나라에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 사는 이야기도 서울사람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왜냐하면, 가난뱅이부터 배부른 사람들까지, 또 가난했으나 배부르게 된 사람과 배불렀으나 가난하게 된 사람까지, 서울처럼 갖가지 사람이 뒤죽박죽 얼키고 설킨 데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아무리 우리가 외곬눈으로 서울을 들여다보고 ‘서울 골목마실 + 서울 자전거마실 + 서울 문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푸지면서 맛깔스러울밖에 없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만, 이는 그저 제 생각에 지나지 않더군요.


.. 물론 이런 경사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지형이 불편해 집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돈 없는 서민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 ..  (30쪽)


 김대홍 님이 쓴 ‘작은자전거 타고 서울 골목길을 마실하면서 느낀 문화와 사람 이야기’도 다른 분들 책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가지만 보고 다른 여러 가지는 두루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빨리 더 서둘러 더 많이 더 깊이 파고들거나 이루거나 울궈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골목마을에 ‘이발소’와 ‘맛집’만 있지 않습니다만, 골목길에 깃든 수많은 가게 가운데 고작 몇 군데에서만 아련함과 싱그러움을 찾고 만 대목은 아쉽기만 한데, 이 자그마한 책 하나로 모든 서울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는 한편, 글쓴이도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려 하지 않았으니, 낮은자리에서 조금 더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서울사람들한테는, 또 서울을 맛보고 싶어하는 분들한테는 제법 괜찮은 길동무가 되리라 봅니다.


.. 골목에서 사진을 찍을 때 몇 분이 잔뜩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내게 질문을 건넸다. 그때마다 나온 첫마디는 “재개발 때문에 찍느냐”였다. 혹시나 사진을 어디 이용하지나 않을까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이런 질문을 재개발 지역을 찍으면서 종종 받았다. 내게는 그저 사라질지 모를 동네를 둘러보며 그 흔적을 남기는 것에 불과한데, 그들에겐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  (148쪽)


 골목에는 골목집이 있고 골목사람이 있습니다. 골목 구멍가게가 있고 골목 헌책방이 있습니다. 골목집은 지붕이 낮아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집도 해바라기를 즐길 수 있고, 빨래도 햇볕에 널 수 있습니다. 골목사람은 스스로를 높일 까닭이 없으나 낮출 까닭도 없어서 누구하고나 스스럼없는 이웃이 됩니다. 나이가 벌어져도 이웃이고 나이가 비슷해도 이웃입니다. 골목 구멍가게에는 모든 물건을 고루 갖추어 놓지는 못하지만, 골목살림을 하면서 있어야 할 물건은 어딘가에 한두 가지씩 갖추어 놓아서 싼값에 내어줍니다. 골목 헌책방은 그리 넓거나 크지 않음에도 온갖 책이 골고루 꽂힌 채 우리를 기다리는 한편,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 누구나 몇 천 원만 있으면 마음을 푸근히 살찌우는 책 하나 집어들 수 있습니다.

 아무나 들어가서 놀기 어려운 아파트단지 놀이터입니다만, 아파트단지 놀이터까지 가는 길은 또 얼마나 먼지요. 누구나 찾아서 쉬어도 되는 골목길 빈터요 평상이지만, 큰길에서 골목으로 살짝 들어와 조금만 걸으면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만날 수 있습니다.

 큰차든 작은차든 싱싱 내달리기만 하는 자리에서는 골목사람이고 아파트사람이고 꽃그릇을 키워서 내놓지 못합니다. 차는 들어오지 못하나 자전거는 들어설 수 있는 골목길은 어디에서나 곱고 소담스레 가꾼 꽃그릇이 담벼락 한쪽 또는 두쪽 모두 얌전히 놓인 채 꽃임자뿐 아니라 골목이웃과 모든 길손한테까지 웃음을 선사합니다.


.. 언덕이 꽤 가파르지만 올라갈수록 점점 시야가 넓어진다. 동대문 너머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야경이 눈부셨지만 군데군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아파트가 시선을 가로막는다. 세상을 볼 권리는 고층아파트 꼭대기에 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인가 ..  (222쪽)


 글쓴이 김대홍 님이 앞으로도 꾸준히 골목마실을 자전거로 다니면서 서울 구석구석을 더 돌아보고, 좀더 느긋이 골목가게와 골목사람을 더 부대낄 수 있다면, 그리고 서울 바깥으로도 나와서 ‘제 나름대로 살림을 꾸리는 터전’을 한 곳 두 곳 찾아나선다면, 두 번째 ‘그 골목이 말을 걸다’는 아직 짚어내지 못한 숱한 눈물콧물과 웃음자락을 알알이 곰삭이며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책에서는 ‘세상을 볼 권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려주었으니, 다음 책에서는 무엇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려줄지를 기다립니다. (4341.11.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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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 아들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5
노경실 글, 김중석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왜 ‘학교’에 보내야 하는가
 [잠깐 읽기 17] 노경실, 《엄마 친구 아들》



- 책이름 : 엄마 친구 아들
- 글쓴이 : 노경실
- 그림 : 김중석
- 펴낸곳 : 어린이작가정신 (2008.10.14.)
- 책값 : 8400원



 (1) 우리한테 학교는 어떤 곳인가


 저녁 아홉 시 무렵, 옆지기는 아기를 등에 업고 두 사람이 골목마실을 합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기를 돌보면서 지치고 힘든 우리 둘이는, 아기를 안거나 업고 밖으로 나오면 아기가 고이 잠들어 한숨을 놓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땅도 좀 밟고 살자면서 숨이라도 돌리고 싶어서 바깥바람을 쐬러 나옵니다.

 슬슬 거닐며 낯익은 골목도 지나고, 아직 디디지 못한 골목도 지납니다. 어둑해진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이 보이고,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입니다. 동산고등학교 옆을 지나고 박문여자고등학교 옆을 지나며 재능대학교 옆을 지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건물은 가장 높은 층 유리창에 불빛이 환합니다. 지난날을 거슬러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나, 3학년 교실은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궁금했는데, 가만히 보면, 가장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려고 1∼2학년 아이들하고 떨어뜨리려고 위층에 올려놓았는지 모릅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열 시하고도 반. 인천은 서울과 달라 시내버스도 일찍 끊기는데, 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버스라도 넉넉히 있으려나. 보아 하니 열한 시는 되어야 학교에서 풀려날 듯하고, 거의 열두 시 가까워서야 버스를 탈지 모르는데, 학교 선생들은 도무지 무슨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저렇게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닦달을 하고 있는지. 원.


.. “현호야, 엄마 친구 아들은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등해서 해외 연수 가는 장학금을 받는대.” “누구요?” 나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누군지는 알아서 뭐 하게? 엄마 친구 아들이 한둘이야?” “그럼 엄마 친구 아들들은 다 똑똑해요?” ..  (25쪽)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이들 스스로 저 굴레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도 이러한 굴레에서 아이들을 홀가분하게 풀어놓지 않습니다.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라갑니다. ‘너희들한테는 다른 볼 것 없어. 오로지 대학교뿐이야.’ 하는 윽박지름에 고분고분 따릅니다.

 늦은밤, 햇볕 한 줌도 못 쬐었을 법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 몇몇은 길바닥에 침을 찍찍 뱉습니다. 건널목이 빨간불임에도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꾹 찔러넣은 채 여 보라는 듯이 건넙니다. 이튿날 저녁, 다른 동네 다른 고등학교 앞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사내든 계집이든, 아이들은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는 이죽거리는 얼굴로 길바닥에 침을 직직 뱉습니다.

 문득 내 고등학교 적을 되돌아보니, 그무렵에도 이와 같은 얼굴로 이와 같은 몸짓으로 이와 같이 침을 내뱉는 동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나도 멋있지 않고, 하나도 ‘불량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딱할 뿐입니다. 그저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햇볕이 아닌 형광등 불빛에 하루 열 몇 시간씩 시달리는 아이들이 되다 보니까, 닭우리에 갇혀서 잠도 못 자면서 알만 낳다가 고기닭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암탉들처럼, 이 아이들도 햇볕 아닌 형광등 불빛에 시들고 길들고 찌들면서, 마음밭이 자꾸자꾸 거칠어지고 메말라 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렇게 신기한 점이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데, 왜 엄마는 나를 보면 활짝 웃는 때보다 툴툴거릴 때가 더 많을까? 내가 알아낸 답을 말해 줄게. 첫 번째 이유, 내가 일등을 못 해서다. 두 번째 이유, 누나와 자꾸 싸워서다. 딱 두 가지 이유로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그러나 ‘일등’이라는 이유는 조금 억울해. 내가 위인전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학교 공부 일등해서 훌륭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거든. 오히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고 걱정시킨 위인들이 많아. 그러고 보면 나는 착하고 훌륭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야. 너도 위인전을 꺼내 놓고 하나하나 조사해 봐 ..  (16쪽)


 올해에는 아직 옛날 고등학교 적 선생님들 뵈러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옛날 동무들이 모여서 예전 선생님을 뵈러 찾아가곤 합니다. 꼭 스승날에 맞추지는 않고, 예전 선생님 시간에 맞추어 찾아뵌 뒤 소주 한잔을 걸칩니다. 학교에서 뵙기도 하고, 선생님 사는 집 둘레 소주집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학교에 갈 때면 으레 예전 교실도 둘러보지만, 예전 교사나 요즘 교사나 똑같이 한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도 살펴봅니다. 남자교사 책상 한쪽에 올려져 있거나 옆에 서 있는 ‘몽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세상은 틀림없이 ‘민주화’가 뿌리내렸다고 말하고, 우리 나라는 어김없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아직도 제 고향땅 인천에 있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매타작 소리가 학교를 쩌렁쩌렁 울립니다. 더욱이, 매타작 소리를 듣는 어린 후배들은 이러한 매타작을 ‘잘못을 했으면 마땅히 받아야 할 벌’로 여기고 있어서 아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되묻습니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하지? 그때에는 너희들이 몽둥이를 들고 선생님을 두들겨패면 되니?’


.. 대신 지섭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말을 했지요. “그게 어때서? 우리 엄마는 공부만 일등하면 다른 건 하나도 못해도 나를 왕자처럼 모실 거야.” ..  (44∼45쪽)


 되물음에 대답을 해 준 후배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회 후배들(지금 고2)은, 아니면 30회 후배들은, 아니면 40회 후배쯤 되어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저는 4회 졸업생입니다).

 옆지기와 아기와 함께 밤마실을 하다가 밤늦도록 불이 켜진 고등학교 옆을 지나가면서, 밤나절 술 한 병 사러 동네 구멍가게를 다녀오는 길에 이웃한 고등학교 아이들 몸짓을 보면서, 마음이 늘 어둡습니다. 우리가 어버이 된 몸으로서, 이러한 일을 모두 치러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진 대목이 없음을 알고 있는 마음으로서, 우리 아이가 제도권 학교에 다니도록 해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아이가 제도권 학교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입을 때 어찌해야 할는지 근심입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아이가 학교에 다닌들 무엇을 배울는지 끌탕압니다.


 (2) 좋은 이야기감이나 섣부른 끝맺음


 어린이책 《엄마 친구 아들》을 읽습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를 써도 늘 아이들 눈높이에서 헤아리고 살피면서 아이들 마음결을 보듬어 주는 노경실 님 새 작품입니다. 아들(남자)만 높이 섬기는 한국땅에서, 이웃집 아들과 자기 집 아들을 견주느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지 못하는 온갖 문제를 맛깔스러우면서도 앙증맞게 잘 여미어 놓은 작품입니다. 진작에 이러한 글감으로 우리 교육 문제와 집살림 문제를 짚어냄직도 했건만 여태껏 이러한 ‘우리 삶 자잘한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은 어린이책이 드물었습니다(어른책도 드뭅니다). 《상계동 아이들》과 《복실이네 가족 사진》부터 《어린이 동장 만세》와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와 《네가 있어 엄마는 행복해》에 이르는 수많은 창작을 일구어 낸 노경실 님을 생각한다면, 이쯤 해서 이분이 이만한 작품을 선보일 만하구나 싶습니다.


.. 나는 그냥 보통 어린이야. 바둑은 아마 5급이고, 태권도는 까만 띠야.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정도는 피아노로 대충 연주할 수 있어 ..  (10쪽)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서, 또 마무리를 보면서, 어쩐지 팥소가 빠진 찐빵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군대 계급장 같아(12쪽)” 하고 생각하는 《엄마 친구 아들》 주인공인데, ‘엄마 친구 아들’로서 겪는 아픔이나 생채기가 잠깐 스치듯 보여질 뿐인데다가, 아이가 엄마한테 뿔이 나서 ‘집을 나가는(가출)’ 마지막 대목에서 참으로 싱겁게 ‘해피 앤딩’이 됩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누나하고는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는 주인공(현호)이 딱 하나 잘하는 일이라면,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 꼬박꼬박 하기라고 하는데, 주인공이 어느 날 불현듯 ‘나한테도 자랑할 만한 일이 있다’고 느끼며 어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는 아이 마음을 조금도 읽지 못하는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잔뜩 뿔이 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 안 해요!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엄마 아들 안 할래요. 그러니까 다른 아줌마네 아들을 엄마 아들로 삼아요! 나는 다른 아줌마네 아들 할게요.(57쪽)” 하고 외치고는 집을 박차고 나옵니다. 그런데 13층 집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이, 주인공네 어머니는 그사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이한테 미안해 하며 툇마루 창문을 열고 “아들! 아들! 빨리 들어와!” 하고 두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도 있지만,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책을 죽 읽는 동안, 주인공네 어머니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아니 갑작스럽게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자기 아이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마음그릇이 아닌 분입니다. 더구나 주인공네 어머니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왜 내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대면서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우리 아이(아들)한테 사랑스러운 구석은 무엇일까?’ 들을 찬찬히 짚거나 살피는 이야기나 실마리는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모든 문제가 풀려 버리고 말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 엄마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하면서 시큰둥해 하리라 봅니다.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틀림없이 마땅하고 알맞으며 좋은 이야기감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감이라고 하여 늘 쓸 만한 책으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좀더 곰삭여야 하고, 좀더 둘레를 살펴야 합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읽으라 할 책이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도 읽으라 할 책일 텐데, 뼈가 없는 말만 가득하다면, 아니 뼈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재미나마 담지 못한 말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톡톡 튀는 사잇그림이 듬뿍 담긴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어린이책은 될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이나 또 아버지들이나 가슴에는 한 가지 고이 남아서 자기 삶을 돌아보며, 왜 ‘엄마 친구 아들’ 따위 허튼 말을 함부로 쓰면서 서로한테 생채기나 입히는 삶으로 서로서로 고달프게 하는가를 한 가지도 건드리지 못하고 맙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섣불리 마무리를 짓지 말고, 2부를 새로 써서, 집을 박차고 나온 아이 마음을 좀더 차근차근 살피는 이야기를 더 쓰거나, 아이가 집을 박차고 나간 까닭을 헤아리거나 짚어나가는 어머니 이야기를 더 쓰거나 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4341.1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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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박남정 글, 이형진 그림 / 소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6 ― 자전거 못 타게 하는 나라에서 우리 권리란
 : 박남정,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책이름 :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글 : 박남정
- 그림 : 이형진
- 펴낸곳 : 소나무 (2008.10.27.)
- 책값 : 8500원


 (1) 학교와 자전거


 숱한 뺑소니 사고(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다가 차가 자전거를 친 뺑소니 사고)를 겪고 난 뒤탈로 마음껏 자전거 나들이를 즐기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둘레에서는 으레 ‘작은 차라도 하나 사서 타고 다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가볍지 않은 사진장비에다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들이는 책도 많은데, 아기까지 있는 몸으로 어찌 다 짊어지고 다니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운전면허조차 일부러 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차를 사라고 한들 소 귀에 읽는 불경일 뿐입니다. 저한테는 운전면허도 없지만 운전면허를 딸 생각도 없고, 앞으로 환경파괴가 하나도 없는 자동차가 나온다면 모르지만, 그때를 맞이하더라도 운전면허를 따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비록 사고 난 자리(어깨, 팔꿈치, 손목, 무릎)가 결리고 쑤시고 아프지만, 틈틈이 짧은 거리나마 자전거로 움직입니다. 장보기를 하면서, 볼일을 보면서, 골목마실을 하면서 자전거를 탑니다.


.. 그때였다. 교실 앞쪽 벽에 달린 스피커가 칙칙거리더니 교감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알립니다. 당산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특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잘 들으세요. 학교 주변 빌라와 아파트 주민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세워 두는 바람에 불편하다며 항의를 하셨습니다. 에…… 또……, 학교 주변 도로도 사정이 좋지 않아 사고가 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자전거 통학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절대로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뭐야, 무슨 소리야?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  (16쪽)


 1987년 2월,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앞으로 우리가 갈 중학교를 알려주는 담임선생은 저를 따로 불러서 “종규 넌 좋겠다. 앞으로 학교에 자전거 타고 다니겠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갈 중학교는 우리 국민학교를 통틀어 꼭 열여섯만 가게 되었는데, 집에서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야 했습니다(사십 분 남짓). 다른 동무들이 많이 가는 ‘집하고 가까운 중학교’에는 뽑히지 않고(뺑뺑이였으니), 몇몇 아이들하고 멀디먼 데까지 가야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동무들하고는 죄다 떨어질 뿐 아니라, ‘자전거 통학은 무슨 얼어죽을 자전거 통학. 누가 자전거를 공짜로 사 주기나 하나?’ 하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제가 갈 고등학교는 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학교로 떨어집니다. 뺑뺑이질은 어김없이 괴로운 가시밭길만 선사합니다. 중학교 다니던 그 길은 왼편으로는 목재처리장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폐수처리장이 있으며, 학교 뒤로는 화학공장이 있고, 그 옆으로는 돌산이 있었습니다(건물에 쓰는 돌을 캐는 산). 중학교 세 해 동안 이 모진 터전을 겨우 견디었다 싶더니, 고등학교 세 해도 이 모진 터전에서 숨막혀야 하는가 싶으니, 울고 싶더군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긴 해, 대학교 앞 신문사 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자전거를 몹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동무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린 다음 학교에 오곤 했는데, 그무렵 그렇게 집안살림을 거들며 공부하는 녀석이 몹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새벽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어머님이 해 주신 아침을 먹고는 새벽 여섯 시 반 즈음 해서 학교에 닿아 아침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앞서까지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면서 마음닦이를 한다고 깝죽을 떨었지만, 정작 책삶에만 기울고 이렇게 새벽나절을 땀흘리 일하는 데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을 느꼈어요. 이리하여 ‘나도 언제쯤 동무녀석처럼 새벽에 신문 돌려서 살림을 보태고 낮에는 공부하고’ 하는 삶을 붙잡을 수 있을까를 헤아렸고, 이 헤아림은 네 해 만에 이룬 셈입니다.


.. 솔직히 혜진이는 자전거 통학이 금지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집이 학교와 가까워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올 일도 없거니와 평소에도 자전거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19쪽)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괜히 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했다가 들키면’ 각목이나 당구채로 몽둥이찜질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국민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만, 제아무리 선생님들이 뺨따귀를 올려붙이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도 ‘옳지 않다’고 느낀 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일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들은 체벌과 주먹질로만 다스리려고 할 뿐, 사람과 사람으로, 또 말과 말로 문제를 푸는 민주주의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지난 아홉 해와 다름없이 ‘하지 말라’는 당신들 말씀을 하느님 말씀처럼 섬기라고 우리들한테 한 주에 두 차례씩 아침모임을 하면서 우리 머리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옳지 않다고 느껴지는 일을 옳다며 따를 수 없는 노릇. 이때에도 중학교 때와 다름없이 선생님들은 발길질과 체벌과 얼차려와 점수깎이로 우리 머리를 깔아뭉개려고 했습니다. 초중고 열두 해라는 세월은 민주주의와 조금도 가까이 사귈 수 없는 나날이었으며, 우리 나라는 조금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가 아님을 깨닫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이 열두 해를 더듬어 보면,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무는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교사도 없었습니다. 걸어서 오는 동무나 교사도 아주 드물었습니다. 적어도 시내버스를 탑니다. 다음으로 자가용을 탑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버스를 탑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럴밖에 없구나 싶은데, 처음부터 ‘자전거 타고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전거로는 위험하니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지 말도록!’ 하고 다그치는 교장 교감 교무주임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2) 사회와 자전거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는 동안, 신문배달 자전거를 타고 ‘그리 넓지 않은 강의실 건물’을 오갔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학교임에도 걸어서 움직이면 ‘쉬는 시간 10분은 금세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잠깐 오줌 누러 뒷간에 가기도 벅차고요. 초중고등학교 때처럼 한 교실에서 배우고 교사가 왔다갔다 하는 틀이 아니니, 강의 하나가 조금이라도 늦게 끝나기라도 하면, 다음 강의를 맡는 강사는 ‘지각생은 안 받겠다며 문을 잠그는’ 일이 생기기도 해서, 자전거로 달리면서 오가는 일은 퍽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에도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 강의를 들으러 오는 선후배나 동무는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제가 타는 짐자전거 바구니에 담배꽁초를 휙휙 버리는 사람은 늘 있었고, 신문배달 자전거 바구니 바닥에 책이 긁히지 않게 깔아 놓은 신문지 한 장을 몰래 훔쳐가는 사람 또한 언제나 있었습니다. 신문배달 자전거이고 신문사 지국 이름이 굵게 적혀 있던 만큼 자물쇠를 안 채우고 살았는데, 세 해 동안 이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를 오가는 사이 딱 한 번 도둑을 맞았습니다.


.. 신호가 바뀌자 민우가 먼저 출발했다. 새 자전거를 탔으니 사이클 선수처럼 폼 나게 쌩쌩 달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 사랑마트 앞길에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불록불록 솟은 보도블록 때문에 바퀴가 튕겨 오른 것이다. 롯데상가 앞에서는 숫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다.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차들이며 가게에서 내놓은 짐이 아침부터 길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로 차도로 오르락내리락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달려 학교 앞에 도착한 민우와 성태는 늘 하듯이 교문 앞 아세아 빌라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웠다. 민우는 이미 세워져 있는 서너 대의 자전거를 밀쳐가며 기둥 옆에 자전거를 바짝 세웠다. 그리고는 앞바퀴에 하나, 뒷바퀴에 하나, 열쇠를 두 개나 채웠다. “이 정도 해 두면 아무도 안 가져가겠지?” 열쇠가 잘 채워졌는지 끈을 흔들어 보기까지 하고도 민우는 자전거 옆을 떠날 줄을 모른다. “그렇게 걱정되는데 새 자전거는 왜 타고 왔냐?” “학교 올 때 아니면 탈 시간이 없잖냐. 학원 마치고 집에 가면 캄캄한 밤이고. 학교 안에 자전거 보관소가 있으면 좋을 텐데…….” ..  (10쪽)


 신문사 지국을 나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동안, 책 나르는 일을 하자면 자동차 없이는 안 됨을 느낍니다. 그러나, 늘 길이 꽉꽉 막히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전철로 움직이거나 자전거로 움직이면 한결 빠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한 대 굴리자면 달마다 일꾼 한 사람 쓰는 돈이 들기 마련일 뿐더러 차값이나 보험값 들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로 움직인다고 더 빠르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면허가 없으니 늘 얻어타고 움직이는데, 큰짐을 나를 때에는 짐차를 불러서 나르고, 여느 때에는 자전거로 움직이는 일이, 나무한테 고맙게 종이를 얻어서 책을 만들어 먹고사는 우리들로서는 마땅히 할 노릇이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업을 하면서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모두들 코웃음을 칩니다. 서울 시내만 해도 자전거로 다니면 훨씬 빠를 듯하다고 이야기하면 술이나 마시라며 말허리를 뚝 끊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있는 일을 하는 어느 누구라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기 두 다리를 써서 자전거를 굴리면서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자기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가르친 사람이 없으니 배울 사람이 없습니다. 가르치는 책이 없으니 스스로 익힌다 하여도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더 많은 책은 읽고 더 많은 스승한테 훌륭히 가르침을 물려받았다고는 하지만, 삶으로 곰삭여서 엮어내는 마음밭을 가꾸는 ‘깨우친이’는 드물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환경운동가가 몇 안 되고, 자전거를 타는 진보운동가가 얼마 안 됩니다. 자전거를 타는 생협운동과 여성운동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는 교육운동이나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박정희 독재경제가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로 이루어졌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를 어떻게 씻어내면 좋을지를 헤아리거나 아는 사람은 씨가 말랐다고 할까요.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엿들을 지식인은 둘레에 많이 보였지만,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몸으로 옮기는 지식인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만나는 자리에서도, 만나고 돌아선 뒤에도, 그분이 쓴 책을 읽으면서도.


.. “솔직히 처음에는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학교 다니기 편하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한 건데, 하면서 보니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배들,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창하게 말하면 지구 환경도 지킬 수 있는 일이고요. 그래서 어제 제가 집에 가서 시장님께 편지를 써 봤습니다.” ..  (73∼74쪽)


 어쩌면,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우리 형편에서는, 자전거란 한낱 ‘추억’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을 ‘추억’을 넘어 ‘우리 삶(현실)’으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을 줄 아는 지식인이 드물듯, 자전거를 추억이 아닌 우리 삶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땀흘리며 부대끼려고 하는 지식인이 드물더군요. 자기 몸을 써서 땀을 내는 일은 한결같이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면, 우리 몫으로 다른 이들이 땀을 흘려 주어야만 할까요. 우리가 먹는 밥과 입는 옷과 자는 집은, 내 손이 아닌 다른 이들 값싼 품삯으로 얻어야만 하나요.

 밥하기, 빨래하기, 치우기, 아기보기를 비롯한 온갖 집안일을 제 두 손으로 치러내는 지식인이, 아니 ‘배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자기 짐을 자기 가방에 넣어서 자기 어깨힘으로 나르는 사람, 또 자기 움직일 곳을 자기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가는 사람, 밖에서 밥을 사먹지 않고 손수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 무엇보다도 이웃사람 목숨을 아끼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일거리를 찾아서 즐기는 사람은, 아니 ‘배운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늘 궁금합니다.





 (3)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하는 나라


 베네수엘라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은 자기한테 내려진 권리를 짓밟는 어른(공무원)한테 맞서서 다부지게 자기들 권리를 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림책에 담겨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한테 기쁨과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서울 당산초등학교 아이들은 자기한테 주어진 권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려는 어른(교장 교감과 빌라촌 주민)한테 맞서서 당차게 자기들 권리를 찾아냈고, 이 이야기는 이야기책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에 소록소록 담깁니다.


.. “사실 학교에서 자전거 통학 금지를 했지만, 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편하고 재미도 있어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선생님한테 들킬까 봐, 친구들이 보고 학교에다 이야기할까 봐 걱정하면서 몰래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참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자전거 타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그래.” 환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전, 자전거를 안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벌어진 것도 같지만, 죄 지은 사람처럼 눈치 보며 자전거를 타고 싶지는 않았어요. ……” ..  (37∼38쪽)


 그런데 우리 나라 당산초등학교 아이들 앞길은 무척 거칠었습니다. 어른들(교장 교감을 비롯한 다른 교사들)은 ‘말 한 마디로 손쉽게 자전거 금지령’을 내렸고, 아이들은 ‘말 한 마디 대꾸도 못하는 채 그저 따르기만 해야’ 했습니다. 따르지 않고 몰래 자전거를 탔어도 마음 한켠이 켕기면서 답답했다고 합니다. ‘자전거 금지령’을 내려야 했다고 해도, 학교 다른 교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든지, 아이들 생각을 들었다든지 하지 않고, 그저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만들어서 내려보내기만 할 뿐입니다. 더욱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일터를 오갈 권리가 있음에도, 이러한 권리를 지키지 않고, 외려 권리를 막거나 밟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학교 둘레 길 형편이 자전거 타기에 알맞지 않아서 자전거를 못 타게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학교 둘레가 자전거 타기에 알맞는 길 형편이 되도록 마음을 쏟고 정책을 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로 오가기에 알맞지 않은 길은 걸어서 오가기에도 알맞지 않을 뿐 아니라, 차로 오가기에도 나쁩니다. 우리들은 차를 교실 안까지 타고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더욱이 모든 학생과 교사가 자가용으로 다니게 된다면, 이리하여 서울이든 다른 도시이든 모든 사람이 자기 차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우리 나라 길은 어떻게 될까요. 모든 사람이 걸어서만 움직일 때, 또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아무런 말썽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타면 말썽이 크게 생기고, 나라는 아주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 1886년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뜨겁던 자전거의 인기는 한순간 차갑게 식어 버렸어요. 그러다 20세기 후반부터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다시 치솟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많이 탈수록 선진국이라 불릴 정도지요. 이번에도 이유는 자동차.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동차가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대도시 사람들이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더 자전거를 이용해도 공기오염이 줄고, 기름 사용이 줄고, 도로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이 줄고, 병원비나 약값이 줄어들어 3조 원 정도는 절약될 것이라고 합니다 ..  (97, 101쪽)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2.4%라고 하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둘레를 돌아볼 때 ‘2%라는 숫자도 믿기 어렵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우리 나라는 1%도 아닌 영점 몇 퍼센트밖에 안 되지 않을까 모를 일입니다.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어서 2.4%라고 해도, 두 곱이 늘어 5%가 조금 못 되어 나라살림이 3조가 줄어든다면, 네 곱이 늘어 10%가 되면 나라살림은 십 조원 넘게 아낄 수 있을 테지요. 이렇게 되면 미국 무역에 기대어 달러값이 솟느니 주식값이 떨어지느니 하며 걱정할 일도 많이 걷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할 일을 안 하면서 투정만 부리는, 아니,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으면서 우리 삶터가 지저분하거나 엉망이거나 좋지 않다며 투덜거리고만 있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자전거길은 새로 만들지 않고, 찻길 50센티미터쯤만 페인트를 그어서 자전거한테 내주어도 넉넉합니다. 자전거 세울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면 건물 한쪽 빈자리에 마련하면 되기도 하지만, 자기 책걸상 옆에 접어서 놓아도 됩니다. 바퀴 큰 26인치짜리만 자전거가 아니라, 10인치와 16인치와 20인치짜리도 자전거입니다. (4341.1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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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아찔한 세계사 박물관 1
리처드 플랫 지음, 김은령 옮김, 노희성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본 아이들은 햄버거를 먹고 싶을까?


- 지은이 : 리처드 플랫
- 옮긴이 : 김은령
- 그림 : 노희성
- 펴낸곳 : 푸른숲 (2008.8.15.)
- 책값 : 9500원



 함께 책장을 넘기던 옆지기가, 책을 덮은 뒤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본 아이들은 햄버거를 먹고 싶어 할까요?”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참 그렇겠구나 싶습니다. 햄버거라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온갖 공정을 꼼꼼히’ 말해 주지는 않으나,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몸속에 집어넣는 먹을거리로 무엇이 있고, 또 햄버거 같은 화학약품에 찌든 조합물하고 지난날부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몸속에 알뜰히 넣었던 먹을거리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어요. 우리한테 익숙한 먹을거리가 꼭 몸에 좋은 먹을거리인지 아닌지, 우리한테 낯선 먹을거리라면 우리 몸에 나쁜 먹을거리일지 아닐지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딱 잘라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이끕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큰 문제를 아주 짤막하고 손쉽게 풀어내면서, 아이 스스로 자기가 날마다 먹는 밥이 어떠한가를 알아보도록 돕습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영국 옥스포드대학 출판부에서는 애써서 책 하나로 묶어내어 아이들한테 선물을 해 주는데, 우리 나라 서울대학 출판부나 연세대 출판부, 또 고려대 출판부를 비롯해서, 이화여대 출판부, 숙명여대 출판부, 그리고 나라에서 스스로 내로라하는 대학교 출판부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궁금해집니다. 또 대학교수님들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한편,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출판사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책을 선물해 주려고’ 땀을 흘리는지 궁금합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우리 음식 발자취”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일지요. (4341.9.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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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국제앰네스티 지음, 김태희 옮김, 니키 달리 외 그림 / 사파리 / 200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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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한테 틀림없이 없는 책이기는 한데


- 글 : 국제엠네스티
- 그림 : 존 버닝햄을 비롯해 스물일곱 사람
- 옮긴이 : 김태희
- 펴낸곳 : 사파리 (2008.9.30.)
- 책값 : 12000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자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야 합니다. 밥과 옷과 집, 이 세 가지는 누구한테서도 빼앗을 수 없을 뿐더러 빼앗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돈으로 움직이는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며 크고작은 사고로 살림살이가 힘겨운 사람들을 죽음 구덩이로 내몰고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남보다 앞서야 하는 경쟁, 남을 밟고 올라서도록 하는 경쟁만 나돕니다. 이러다 보니, 어른이 읽는 책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에서도 경쟁을 넘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줄거리를 제대로 못 담아내곤 합니다. 억지스런 가르침이나 우격다짐 같은 충효가 아니라, 살갑게 받아들일 아름다움과 고맙게 받아먹는 깨우침이어야 할 텐데, 자꾸만 ‘골든벨’이나 ‘우리 말 달인’과 같은 지식잔치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서른 가지 조항에 따라 그림 하나씩 넣어 엮은 책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는, 선언은 있으나 실천이 뒤따르지 않고, 실천도 뒤따르지 않지만 한국땅에서는 거의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인권 문제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스물여덟에 이르는 그림책 작가들이 보여주는 재미나고 톡톡 튀는 그림결은 우리가 미처 못 보거나 못 느낄 ‘우리 둘레 이웃과 동무가 나와 함께 누릴 권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그려낸 작가들이요, 아이들이 즐겁게 받아쥐는 그림책을 엮어낸 작가들이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들도 함께 즐겨보는 그림책을 펴낸 작가들입니다. 다 다른 나라에서 다 다른 삶을 꾸리는 동안 저마다 달리 부대끼거나 부딪힌 삶 한 자락들이, 그림책 한 권에서 골고루 섞이면서 무지개 빛깔로 새삼스레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고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서는, 한숨이 푸우우욱 하고 나옵니다. 서른 가지 세계인권은 우리 삶하고 그다지 이어져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도시로 쏠리며 무너지거나 고달프게 되는 시골 농사꾼 삶,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학력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사회 얼거리, 돈-힘-이름 세 가지를 움켜쥔 권력자와 기득권이 제 밥그릇을 튼튼히 지키려고 공직과 언론을 쥐고 흔드는 모습, 인권을 짓밟는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살아숨쉬는 정치 흐름, 교육이 아닌 입시밖에 없어서 아이들이 벼랑에 내몰린 교육 터전, 돈 없으면 못난쟁이로 여겨지는 경제판, 아이 밥상뿐 아니라 어른 밥상에 유전자조작을 하고 비료와 항생제로 찌든 먹을거리만 올리게 되는 형편, 남북이 아직까지 끝없이 군대를 크게 키우며 무기산업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보건복지는 뒷전인 나라, 그런데 우리 스스로 이 모든 문제를 바로보거나 고치도록 마음먹지 못하게 되고 만 얼거리, 값비싼 아파트만 새로 짓고 서민 살 골목집은 때려부수는 토건 왕국, 차 없으면 길거리에 나다닐 수 없게끔 짜여진 도시계획 …… 2000년대 세계인권선언이라면, 아니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권리’를 말하자면 이렇게 간지러운 곳을 긁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 땅 우리 아이들한테 두루뭉술한 ‘명제’만 읽도록 할 일이 아니라, 지금 내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고 그이는 어떤 일로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는지를 꼼꼼이 짚어내고 밝혀내면서 아이 스스로 세상을 알아보면서 세상을 밝힐 작은 촛불 하나 켤 수 있게끔 이끌어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만, 허울뿐인 외침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인권선언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라도 달랑 하나쯤은 우리 나라 책방과 도서관에 꽂히면서, ‘여보시오, 인권이란 게 있읍디다’ 하고 말건넴이라도 해야 하는 우리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한테 틀림없이 없는 소중한 그림책이지만 알맹이가 빠져 있어 아쉬운데, 그래도 이만한 책이라도 한 권 펴내 주니 고맙습니다. (4341.10.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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