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다고 느끼는 책
 ― 열 해 뒤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어야지



 아침에 ㅎ출판사로 전화를 건다. 얼마 앞서 읽은 책 하나가 퍽 좋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집어낸 잘못과 군데군데 잡아챈 오탈자를 알려주고 싶었다. 인터넷편지로 글을 갈무리해서 띄울 수 있지만, 이 책을 펴낸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한 군데 두 군데 잘잘못을 짚는 가운데 ‘잘못 쓰셨나요, 제가 잘못 보았나요?’ 하고 여쭙는 일이 좀더 반갑다. 나는, 그분이 몇 군데 잘못 찍힌 채 책이 나오도록 했다고 해서 꾸짖을 마음이 아니다. 이 좋은 책을 애써 엮어 내면서 몇 군데에서 아쉬운 대목이 드러나고 말았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말할 때와, 전화기로 목소리만 주고받으면서 말할 때, 그리고 써 놓은 글을 읽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나로서는 아무런 ‘싫은 마음’이나 ‘미운 마음’이 없이 수수하게 적어내려간 글을, 엉뚱하게도 ‘내가 아주 싫어하고 못마땅해서 그런 글을 쓰는 줄’ 생각하며 읽기도 한다. 너무 뜻밖이기도 하고 어이가 없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글을 제대로 못 써서, 읽는 사람도 제대로 못 읽은 셈이 아니겠느냐면서 속을 다스린다. 앞으로는 엉뚱하게 읽어 주는 일이 없도록. 그러나 애쓰고 또 애를 써도, 어느 한 사람을 외곬로 바라보거나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내가 아무리 좋고 반가운 느낌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화를 건다. 내 돈 들여서 읽은 책을 내 돈 들여서 전화를 걸어 내 시간을 보내면서 알려준다. 그러면서 나한테 돌아오는 값은 하나도 없다. 나중에 2쇄를 찍으면, 고친 대목을 바로잡아서 알려주겠다는 소리도 없다. 이런 뒷손질을 알려주십사 하고 전화를 하지는 않으나, 내 사는 곳을 물으며 도서목록이라도 보내주겠다고 하는 분은 거의 없다(딱 한 번 있었으나 손사래를 쳤다).

 출판사로 전화를 거는 까닭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못 헤아린 대목이나 알아채기 어려운 대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맙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머니를 기꺼이 털도록 해 준 책이며, 내 시간을 넉넉히 쓰면서 가까이하도록 해 준 책이다. 그러면서 내 생각이나 넋이 좋은 쪽으로 많이 거듭나기도 하고 새로워지기도 한다. 세상을 좀더 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도 되고, 우리 둘레를 좀더 깊이깊이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이만큼 얻은 보람과 기쁨이 있어서, 전화삯 얼마쯤 들인다고 해도, 다른 일을 잠깐 미뤄 두고 이곳저곳 잘잘못을 알려준다고 해도, 나로서는 또다른 기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오늘 아침, ㅎ출판사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잘잘못을 알려주고 나서, 문득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 읽고서 참 좋았는데, 이 책이 2쇄를 찍을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이 되어서, 2쇄를 못 찍게 되더라도 출판사에는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웬만큼 껍데기를 씌워서 내놓으면 어느 만큼 잘 팔린다고 하는 어린이책이요, 이름난 출판사 딱지를 받고 세상에 나오면 기본 부수가 나간다고 하는 어린이책이다. 그러나 이런 어린이책 가운데에서 눈길 한 번 제대로 못 받으면서 조용히 사라지는 책이 제법 많다. 우리 세상을 속깊이 들여다보는 책, 우리 삶터를 찬찬히 헤아리는 책, 우리 땅에 전쟁이 아닌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책, 우리 사회가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아니라 고르게 아름다울 수 있도록 꿈꾸는, 그러니까 평등과 인권을 바라는 책이 좀처럼 안 팔린다. 어렵게 배앓이를 하고 나온 책임에도 언론 눈길조차 못 받기도 하고, 언론 눈길은 제법 받아도 독자 사랑을 못 받기 일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을 알알이 담고 있는 책 가운데, 우리와 일본 사이 문제를 다루면 어느 만큼 팔린다. 이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이 제3세계, 중남미, 아프리카 쪽으로 가면 그냥 안 팔린다. 유럽 작가가 쓴 책은 곧잘 팔리는데, 제3세계나 중남미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쓴 책은 잘 안 팔린다. 모든 책이 이러하지는 않으나, 우리 흐름이 얼추 이러하다. 몽골과 티벳과 인도로 성지순례와 명상순례나 관광여행으로는 나다니지만, 몽골이 어떤 문화와 역사가 있는지, 티벳이 어떤 아픔과 고달픔으로 시달리면서 식민지보다도 못하게 무너지고 있는지, 인도 계급과 사회가 이 나라를 어떻게 휘어잡고 있는지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이러한 흐름과 얼거리를 보려는 사람이었으면, 나라밖 나들이를 나서기 앞서 이 나라 삶과 삶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알뜰히 챙겨서 읽었을 테며, 이런 이야기 다룬 책이 쉬 판이 끊어지거나 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지는 일이란 없었으리라 본다. 전국 곳곳에 있는 도서관 책시렁에도 차곡차곡 꽂혀 있으면서 두루 읽힐 수 있었으리라 본다.

 지난 8월 2일에 처음 손에 쥐었으나, 그달 16일에 아이를 낳으면서 손에서 멀어졌고, 아기 돌보기와 옆지기 챙기기가 조금 수월해지는 가운데 다시 손에 쥐면서 부지런히 읽던 책, 《잃어버린 소년들》을 지난 10월 9일 밤에 다 넘기고 덮었다. 엿새쯤 속으로 삭이면서 느낌글 하나를 엮어냈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책을 어루만지고 가슴에 안고 살며시 쓰다듬은 다음, 내 책꽂이 한켠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두려고 한다.

 나 혼자만 좋게 느끼고, 나 혼자만 즐겁게 읽고, 나 혼자만 눈물콧물 질질 흘리면서 읽던 책이었어도, 이 책은 나 하나 살가운 읽는이를 만나서 기뻐해 줄 수 있을까. 아무렴. 내가 좀 모자라거나 어수룩하거나 어줍잖은 읽은이였다고 해도, 살포시 집어들고 즐거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을 얻었으니, 나와 책 하나는 반갑게 만난 셈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하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먼 뒷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 살쯤 되는 나이에, “얘야, 네가 엄마 배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던 때 아빠가 너를 품에 안고 이 책을 하나하나 읽어 주면서 눈물을 흘렸단다.” 하고 손때 짙게 묻은 책을 건네어 줄 수 있다. (4341.10.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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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소년들 - 수단 내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전하는 세 소년의 충격 실화
벤슨 뎅 외 지음, 주디 A. 번스타인 엮음, 조유진 옮김 / 현암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72 ― 총칼 든 전쟁과 돈다발 든 전쟁
 : 수단 난민 세 소년이 쓴 《잃어버린 소년들》



- 책이름 : 잃어버린 소년들
- 글 : 벤슨 뎅, 알폰시온 뎅, 벤자민 아작
- 엮은이 : 주디 A. 번스타인
- 옮긴이 : 조유진
- 펴낸곳 : 현암사 (2008.6.20.)
- 책값 : 13500원


 (1) 평화란 어떤 삶일까


 우리 집 아기를 보러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느즈막하게 찾아온 손님은 저녁을 미처 못 먹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찐 다음, 먹기 좋게 송송 썰어서 도시락에 담아서 내어 드립니다. 한손에는 도시락통을 들고 한손으로는 냠냠 집어먹으면서 율목동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따 집에 와서 마실 술 몇 병과 안주거리를 가게에서 산 다음, 가까운 닭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닭집 안이 무척 시끄러워서 우리는 밖에서 먹기로 합니다. 조금 선선하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이라서 우리 둘은 호젓하게 앉아서 튀김닭을 밥 삼아 맥주를 마십니다.

 집에서 가까운 골목길 닭집이기에, 두 시간쯤 옆지기가 저한테 말미를 내어주어서, 고맙게도 아기 돌보는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쉽니다. 아기를 혼자서 돌보기에는 옆지기 혼자서 힘들 텐데, 제 몸을 생각해서 이럴 때 손님하고 쉬기도 하고 술도 한잔 걸치라고 해 줍니다.

 이리하여 손님과 저는 닭집 둘레 오래된 골목가게 간판을 구경하면서 간판 이야기도 하고, 서울 골목길과 전국 골목길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울산은 아마 시내버스로 다니기가 전국에서 가장 나쁜 곳이라며, 모두들 자가용을 끌게 되니 자연히 시내버스가 줄게 되어, 낯선 이들이 울산을 찾아가면 택시 아니고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아직 울산을 못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울산만한 도시라면, 자가용보다는 자전거를 몰면 훨씬 즐거울 테고, 찻삯도 아낄 테며, 몸도 한결 나아질 텐데. 가까우면 걷고, 조금 멀면 자전거를 타고, 좀더 멀면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 될 텐데. 우리들은 지구자원이 메마르는 일에는 거의 걱정을 않으면서 살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술잔을 걸치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지난날 서울에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던 때 동무나 선후배를 만나 술집에 가던 때를 떠올립니다. 술집을 찾아가는 길은 늘 시끄러웠고 불빛이 번쩍거렸으며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웬만한 술집은 노래소리로 시끄럽거나 텔레비전 소리로 귀가 따가웠습니다. 술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시끄러운 소리보다 높은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우리도 목소리를 안 높일 수 없었습니다. 술집에서 두어 시간 술을 걸치고 나오면, 술기운보다는 귀가 홀가분해지고 머리도 가벼웠습니다. 젊을 때는 시끌벅적한 데를 곧잘 즐겨찾았는데,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면서 호젓하고 조용한 술집이 아니면 있기 어려워집니다. 같은 술이고 같은 사람이지만, 시끄러운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한테 오롯이 마음을 기울이기 힘들어 애써 마신 술도 그리 맛나지 않게 됩니다. 조용하고 호젓한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 얼굴을 더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고, 이야기도 훨씬 너르고 그윽하게 나눌 수 있어 술맛도 한결 맛나곤 합니다.


..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려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 갔다. 난민촌에서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다 … 난민촌의 삶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곳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야수에게 먹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배급날이 되어 새벽에 나가서 하루 종일 줄을 서는 일이었다. 3일을 굶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는 그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끓어오르는 뙤약볕 아래에서 경찰에게서 곤봉으로 얻어맞으며 줄을 섰다 ..  (알레포, 403, 407∼408쪽)


 옆지기가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전화를 합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나 싶어 시계를 보고는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율목동 골목 닭집에서 일어납니다.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동 골목길 안쪽을 살짝 돌아봅니다. 오래된 문패, 오래된 대문, 오래된 방범창살, 오래된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 들을 어둠 밝히는 거리등불에 기대어 살짝살짝 느끼면서 걷습니다.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길이라 밤에는 더 한갓지며 고즈넉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고요함, 이 한갓짐, 이 고즈넉함, 이 아늑함,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느낌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주는 평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 한켠에 조그맣게 마을을 이루어서 쉰 해고 백 해고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평화를 맞이할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스무 해조차 한 집에서 버틸 수 없이 서너 해에 한 번씩, 아니 전월세 계약이 끝나는 한 해나 두 해마다 새로운 살림집을 알아보고 또 짐을 꾸리며 옮겨서 다시 짐을 풀고 해야 하는 삶이란 싸움터와 마찬가지로 고달프고 힘겹고 마음아픈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재개발에 따르는 이익이 아니라 재개발에 따라 자꾸만 집터에서 내쫓기며 더 구석과 더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는 삶이란 전쟁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피터는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나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형 모습이 조금도 못 자란 어린아이 같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피터를 뒤로 하고 요셉 형과 내가 팔라타카를 떠난 뒤부터 지금까지 지내 온 고통스런 순간들에 대해 어떻게 이제 와서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팔라타카에서 피터를 버리고 떠날 때와 같은 고통과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나팅가에 남은 요셉 형, 벤슨 형, 벤자민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요셉 형은 수없이 많이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비록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안전한 곳에 도달했는데, 요셉 형은 이미 전선에 배치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더러운 감옥에 갇힌 벤자민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모두 벤슨 형 덕분이었다. 다른 소년들과 함께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아픈 나를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한 벤슨 형은 이제 나 때문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난 아팠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였다 ..  (알레포, 349∼350쪽)


 집으로 돌아와 옆지기까지 마주앉아서 술잔을 부딪힙니다. 옆지기도 모처럼 가볍게 술 한잔을 하면서 마음을 쉽니다. 아기는 우리 두 사람과 손님을 너그러이 헤아려 주는지, 잠에서 깨지 않고 시간마다 오줌만 눌 뿐,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새벽 네 시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고,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엊저녁에 불려 놓은 콩과 쌀을 냄비에 담고 밥을 끓입니다. 손님은 열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고, 말끔히 씻은 다음 둘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 마실을 합니다. 서울에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지만, 약속은 뒤로 미룬 채 자전거를 타다가 그냥 끌다가 하면서, 골목집 텃밭을 구경하면서 사진으로 담고, 텃밭에 우뚝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며 인사를 하다가 사진으로 남기고, 바람에 나부끼며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를 흐뭇하게 올려다보다가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받이 골목길 끝까지 올라가면서 곳곳에 알뜰히 가꾸어 놓은 꽃그릇에 웃음꽃을 돌려줍니다.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고 하면서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사진찍기에 빠집니다. 아름다이 여미어 놓은 골목길은, 이곳에 깃들어 사는 사진쟁이한테도, 또 이곳을 처음 밟는 낯선 손님한테도 즐거운 사진 놀이터가 됩니다.

 숭의3동 109번지와 송림동이 갈리는 세 갈래 골목길에서 나이든 할아버지가 우리를 불러세우면서 몇 가지 다짐 말씀을 해 줍니다. 당신도 젊을 적에는 자전거 참 많이 탔다고, 타다가 넘어져서 다치고 이가 나가고 여기가 나가고 깨어나니 병원이고 했는데, 이런 비탈길 같은 데에서는 조심조심 타라고, 사람보다 차가 더 빠르니까, 차보다 더 빨리 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몸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몇 번씩 힘주어 말씀하시다가는, 즐겁게 자전거를 타라며 한손을 내밀며 뜨겁게 붙잡아 줍니다. 이발소집에서 사는 할아버지를 앞으로 또 뵐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쟁 앞에 우리는 바람에 흩어지는 나방과 같이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혼자 떠돌아다니는 나 같은 아이는 발길로 걷어차고 나뭇가지로 때려도 되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벤슨, 235, 275쪽)


 (2) 전쟁은 어떤 삶일까


 옆지기 옛동무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기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집 가까이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은 다음, 저는 집에서 아기를 돌보기로 하고, 세 사람은 바깥마실을 나갑니다. 아기는 잠들 듯 말 듯하다가는 잠들지 않고 칭얼댑니다. 안으면 칭얼거림을 멎고 자리에 눕히면 칭얼거립니다. 히유, 아빠도 좀 다리 뻗고 누워 보자, 응, 하고 아기한테 말을 걸지만, 아기는 아빠 말을 알아듣지 못할 테지요. 외려 아기는, 여봐 아빠, 아기는 아빠 품에 안기고 싶어한단 말이에요, 잘 좀 안아 보시라구요, 하고 말을 걸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허리는 아프고 눈은 감기는데, 아기를 품에 안고 둘리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노래를 잇달아 부르면서 아기를 달래고 놀아 주고 어릅니다. 한참을 이렇게 있어도 도무지 잠들 낌새가 없어서, 아기가 꿉꿉해서 이러나 싶어, 물을 끓여 씻기기로 합니다. 뜨거운 물이 튈까 아기를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아기는 싫다며 앙앙 웁니다. 주전자를 한 번 붓고 나서 아무래도 한 팔로 안으면서 해야겠다 싶어, 한 팔로 안고 주전자에 물을 받고 끓이고 하니 아기는 조용합니다. 원, 녀석두, 이렇게 아빠를 힘들게 하고 싶니, 하고 말을 하지만 눈만 말똥말똥.

 발부터 살며시 넣으면서 천천히 씻깁니다. 머리를 감길 때까지 보채던 아이가 몸에 조금씩 물을 끼얹어 주니 조금씩 조용해집니다.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 아기, 하면서 구석구석 꼼꼼하게 물을 끼얹고 문질러 줍니다. 아기를 거의 다 씻을 무렵 옆지기가 돌아옵니다.


.. 그 무렵, 나팅가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소년들은 모두 모여 지휘관의 연설을 들었다. 그건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너희는 이제 군사 교육을 받을 거다. 학교에 갈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나 총을 가지고 다니게 될 거다.” 소년들 대부분은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좋아했지만, 내가 듣기에 그것은 슬픈 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 생각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우리 소년들을 나팅가에 데리고 와서 잡아 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반군 병사로 만들기 위해 잡혀 온 것이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전선으로 보내져 죽든 말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게 되겠지? 나팅가의 병사들은 말했다. “하루에 천 명이 죽으면 백 명이 태어나는데, 누가 너희 또래 아이들이 죽든 말든 싱경이나 쓴다던?” ..  (벤슨, 336쪽)


 아기를 안으며 지낸 지 어느덧 두 달. 말이 두 달이지, 이 두 달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거의 종잡지 못하겠습니다. 하루 같은 두 달인지 이태 같은 두 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기를 안고 어르는데 무슨 광고 전화가 오면 몹시 짜증스럽지만, 건너편에서 광고 전화 해대는 사람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아주 큰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아기가 깜짝 놀랄까 걱정이지만, 기차를 모는 분들은 당신들이 오가는 이 기차길 옆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삶은 거의 헤아리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기차 승무원들은 기차길 옆 동네 사람들 삶터를 두 다리로 거닐면서 기차소리가 사람들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몸으로 좀 느껴 보아야지 싶어요.

 이런 마음씀은 때때로 아기를 안고 어디를 다녀와야 할 때에도 느낍니다. 아기 포대기를 안고 살금살금 걷고 있는 저나 옆지기를 툭툭 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아기 포대기인 줄 모르기 때문에 저러느냐 싶기도 하고, 아기 포대기이거나 말거나 자기 갈 길이 더 중요하니까 저르느냐 싶기도 합니다. 아기가 찬바람이라도 맞을까 걱정되어 살살 포대기를 안으나 그 옆에서 대놓고 뻑뻑 담배 태우며 걷는 아저씨들이 꼭 있습니다. 당신한테 아이가 없어서 못 느끼는지, 당신도 이 아이와 똑같은 어린 날이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지 못해서 그러시는지.

 아기와 옆지기만 두고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전철을 타는데, 전철간에서 아기를 업고 타는 아주머니나 아기를 안고 타는 아주머니를 으레 봅니다만, 이이들한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분들을 만나기 퍽 어렵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날이 갈수록 애 어머니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는 눈길이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 나는 리니 형과 티크 형이 하는 얘기를 귀기울여 들었지만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일 나는 다시 가족을 다시 만나겠지만, 전쟁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이상 파제리에서의 평화로운 시간도 다 되어 가는 듯했다. 같은 나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늘에서는 정부군이 폭탄을 떨어뜨리고, 땅에서는 반군이 무기를 굴리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소리를 지르는 곳. 반군 병사가 피투성이가 되고, 총알구멍이 뚫린 군복을 입고 정부군 병사의 시체를 치우는 곳. 아, 과연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이기에! ..  (벤슨, 290∼291쪽)


 왜 이렇게 우리들 삶이 팍팍할까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바쁘기에, 얼마나 고되기에, 얼마나 전쟁통 같은 삶이기에, 얼마나 내 이웃을 적처럼 여기며 밟고 올라서서 우뚝 서는 ‘나홀로 1등’과 ‘나홀로 부자되기’를 이루어야 하기에 이렇게 착한 마음을 잃는지 모르겠습니다.

 착한 마음을 잃고 돈버는 마음만 키워도 되나요.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 뒷사람들한테, 착한 마음이 아닌 돈버는 마음만 물려주어도 되나요.

 어려운 이웃한테 베푼다는 ‘불우이웃돕기’는 성금모금함 부피나 크기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나누고, 돈이 없으면 돈이 아닌 품으로 나누면 됩니다. 품을 들여서 일손을 거들고, 마음을 쏟아서 따뜻하게 감싸 줍니다. 돈 몇 닢을 나눈다고 해도 사랑과 믿음을 담는 돈닢이어야지, 주기 싫으나 눈치 보여서 억지로 내어놓는 돈닢은, 이 돈닢을 받는 사람한테도 고마움을 느끼게 하기 어렵습니다.


.. 나는 멀리서, 정부군이 사로잡은 마을 주민들의 손과 발을 묶고 목에 긴 밧줄을 걸어 엮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부군은 줄줄이 엮인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도록 눈을 가리고는 끌고 갔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강물에다가 버려. 총알도 사실 낭비야.” 그날 밤, 나는 야자나무가 무성한 우리의 사랑스러운 마을 주올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  (알레포, 177쪽)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울과 부산을 더 빠르게 잇는 고속철도를 놓는 데에 돈을 쓰기보다, 우리 이웃이 서로서로 고르게 권리를 누리고 집없이 살아가는 설움과 고달픔을 맛보지 않도록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을 뚫는다며 공사를 벌이기보다, 또 이런 공사를 하느니 마느니 알아보느라 적잖은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남녘과 북녘 모두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밥나눔을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새 고속도로를 뚫어서 어느 한 곳과 다른 한 곳을 빠르게 잇는 길을 닦는 데에 수십 조라는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이 나라 모든 어린이들이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거저로 배우고 넉넉히 자기 배움을 사회로 되돌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 보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스무 해만 되면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비싼 돈 들여 지은 아파트 때려부수지 말고, 적어도 이백 해는 너끈히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지어서, ‘재건축에 들어가는 돈’을 어려운 살림살이 꾸리는 가난한 이웃나라 돕는 데에 쓴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 “벤슨, 넌 아직 옳고 그른 걸 판단할 줄 모르는 나이야. 그래서 엄마는 너를 두고 걱정이 많구나. 네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과 의지가 되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다. 그러니 아들아, 엄마가 살아 있는 한, 엄마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너도 꼭 살아남아야 해. 앞으로는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전보다 총소리가 가깝거나 크게 들리면 집에서 도망쳐야 해. 죽어라 뛰어서 덤불 속에 숨어. 절대 잡히거나 노예로 붙들려 가면 안 돼. 다쳐서도 안 된다.” 내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동물의 울부짖음 같았다. “총을 든 병사 흉내도 내지 마라. 딩카 족의 아이답게 너는 소나 다른 동물들의 인형을 만들면서 놀아야 해. 딩카 족은 총을 가지지 않아. 총은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사악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반군 병사 흉내를 내며 총놀이를 하는 건 불운을 가지고 올 뿐이다.” ..  (벤슨, 90쪽)


 이룰 수 있다면 그지없이 반갑고 고맙습니다만, 이루지 못하게 되더라도 꿈이나마 꾸고 싶습니다. 꿈을 꾸면서 앞으로 언젠가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 눈앞에서 즐겁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3) 수난 내전과 끔찍한 죽음, 《잃어버린 소년들》


 종교를 놓고 다툼이 생겨서 서로를 끔찍하게 죽이고, 끔찍하게 죽은 뒤 앙갚음을 하려고 똑같은 죽임을 되풀이하게 되는 수단 내전 이야기가 담긴 책 《잃어버린 소년들》을 읽습니다. 《잃어버린 소년들》에 나오는 ‘잃어버린 소년들’은 처음부터 어떤 종교를 믿고 살던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며, 이 아이들 아버지와 어머니도 처음부터 어떤 종교에 몸이나 마음을 맡기지 않으면서 살았습니다. 수단사람 어느 누구도 종교뿐 아니라 전쟁무기 만드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나라를 쳐들어간다든지, 이웃에 뿌리내린 겨레를 짓밟는다든지 하는 일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갈린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만 하지 않고 죽여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도 잃고 고향도 잃고 삶터조차 잃으며 일자리조차 꿈을 꾸지 못하는 데다가 아무런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 연필이 주어지는 일은 드물고, 나이가 차면 자연스레 소총 한 자루 쥐어주어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몹니다. 열서너 살에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몰린 아이들은 소총 한 자루를 믿고 손쉽게 남 목숨을 고꾸라뜨릴 뿐더러, 가볍게 강간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약탈과 도둑질을 일삼습니다.


.. 벤자민이 밑에 깔려 죽어 갈 때 다른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병사만은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이제 더는 세상은 우리 같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곳이 아니었다. 엉덩이에 총을 들이민 어린 병사처럼, 나도 총을 가지고 낄낄거리는 얼굴에 들이대고 싶었다 ..  (벤슨, 310쪽)


 책을 덮고 한숨을 내쉽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하나라도 더 무너뜨리며 밟고 올라설 적’으로 삼아서,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 바쁩니다. 비록 총칼을 들지 않았으나, 어쩌면 총칼보다 훨씬 무서운 돈다발을 들고서 누가 이기나, 누가 지나, 누가 죽나, 누가 죽이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러느라 너무도 바쁜 나머지, 총칼을 들고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는 수단 같은 나라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펼치지 못합니다. 돕지는 못할망정 우리 삶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독이거나 다스리면서 평화로움을 찾도록 애쓰지 못합니다.


.. 하지만 열 살 정도 된 소년들 가운데 많은 아이가, 어른들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 한다.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그 아이들 마음속에는 복수심만 자라난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자비나 용서를 몰랐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돌처럼 굳어 버린 것 같았다 ..  (알레포, 203∼204쪽)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아름답다고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좋다고 가슴에 돋을새김하면서 일하고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서 발자국을 남기면 좋다고 몸뚱이에 남기고 있는지 곱씹어 봅니다.

 수단은 총칼을 든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돈다발을 든 전쟁 때문에 이 나라 아이들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내동댕이치고 있는 모습을 날마다 수없이 보고 또 보고야 맙니다. (4341.10.14.불.ㅎㄲㅅㄱ)

 

***

엉성한 번역이 퍽 많고, 잘못된 번역도 틀림없이 있는 듯하지만, 그런 잘잘못은 건너뛰기로 한다. 다만, 104쪽과 133쪽과 136쪽에는 "빨간 팬티"로 나오지만, 151쪽과 338쪽에는 "빨간 반바지"로 나온다. 책 겉그림에도 빨간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나온다. 그 겉그림을 보아도 알겠지만, "빨간 팬티"가 아닌 "빨간 반바지"이다. 이 잘못된 대목은 2쇄에서는 고쳐지기 바란다.

이밖에 너무 눈에 도드라지는 잘못된 곳은 '묵다'를 '묶다'로 자꾸 잘못 적은 대목. 아무래도 번역자나 편집자가 놓쳤다기보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보여진다. 한 번만 틀렸으면 모르되, 서너 차례 되풀이된다. 또, '처지다-뒤처지다'처럼 적어야 올바르지만, 한 번은 '처지다'로 잘 썼으나, 그 뒤로 여러 차례 '뒤쳐지다'로 잘못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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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로 아이 키우는 일이란 너무 쉽고 미안하다
 [애 아빠는 어떻게 사나 2] 쉰닷새와 쉰엿새째 육아일기



 (쉰엿새) 물장난

- 날짜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산다. 오늘 새벽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발 느긋하게 뻗고 쉬는 때란 잠깐도 없다. 조금 곁을 낼 수 있을 때라면, 밀려 있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집안일을 한다. 쌓여 있는 기저귀가 있으면 기저귀 빨래를 한다. 기저귀 빨래를 하는 사이, 아기가 깨기라도 하면 저와 함께 놀아 달라면서 운다. 처음에는 한두 마디 짤막하게 끊어지는 낮은 소리로. 차츰차츰 길며 높아지는 목소리로.

 쉰 날을 맞이하기 앞서까지만 해도 옆지기 몸이 몹시 안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배앓이를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모진 의사 손을 거쳐서 아기가 태어나느라 아기와 옆지기 모두 몸과 마음이 다치기도 했지만, 옆지기가 제 몸을 되찾는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이를 지켜본 장모님이나 이웃 할머니나 ‘백일이 괜히 백일이 아니라, 아기와 엄마가 몸을 되찾는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진작부터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처음 겪어 보는 우리들로서는 이런 대목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아니 헤아릴 수 없었다. 첫 세이레 동안 아기를 지키고 옆지기 어긋난 뼈가 제자리를 찾는 데까지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쯤은 알았으나, 그토록 몸풀이가 오래 끌게 될 줄은 알 수 없었다. 어떠한 책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고, 어느 자료에서도 이렇게 백일에 걸쳐서 아기와 애 엄마 몸풀이를 돕고 이끌어야 한다는 소리는 없었다.

 왜 육아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왜 초중고등학교 성교육 때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가르쳐 주는 교사들부터 겪어 보지 못해서 못 들려주었을까.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하며 대충 넘겼을까. 푸름이들 눈길과 생각은 ‘사랑놀이’에 맞춰질 뿐, 아기를 몸에 안고 열 달이라는 삶을 배로 품어낸 다음 세상으로 받아들여서 천천히 세상과 한몸이 되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랐을까.

 생각해 보면, 지난날에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따로 책을 살피지 않아도 집안이 큰식구였기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들어 주고 이끌어 주고 도움을 베풀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었고, 아이를 낳는 동안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기 몸과 어머니 몸을 시나브로 다시 배우게 된다. 무엇을 해 먹이고, 어떻게 해 먹이며, 집은 어떻게 꾸미고, 집식구들은 어떻게 매무새를 다스려야 하는가를, 집안 어르신이 차근차근 가르치고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골도 도시도 큰식구로 살아가기 어려운 한편, 자식뿐 아니라 부모 스스로도 딴살림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따로따로 산다. 모두들 제 삶을 저희끼리 홀로 이끌려고 한다. 아기를 낳는 한동안, 아기를 낳고서 얼마쯤 일손을 거들는지 모르나, 일손 거들기를 넘어서 아이 삶과 애 어머니 삶을 깊이 들여다보도록 마음을 틔워 주기까지는 못한다. 그러니 책을 찾아볼밖에 없고, 인터넷이라도 뒤져야 하는데, 이와 같은 이야기를 찾기란 너무도 고달픈 일.

 나라에서는, 아기를 집에서 낳으면 돈 얼마를 준다고 하고, 셋째를 낳을 때부터 몇 십만 원을 준다고 하지만, 이런 돈보다도 ‘제대로 된 아이 키우기 정보와 지식’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틀거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이를 막 낳을 때를 비롯해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고이고이 기르는 동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가 자라는 달수와 날수에 맞추어 아이 몸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찬찬히 보여주고 알려주는 ‘진짜 산모수첩’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 아기 몸씻이를 하다. 옆지기가 조금 힘들어 해서 혼자 씻기다. 내가 아기 한쪽 손을 놓쳐서 떨어뜨리지 않았으나, 아기가 한손으로 물을 튀긴다. 처음에는 그저 아기 한쪽 손이 떨어진 줄 알았으나, 아기 스스로 살짝 웃음기 띤 얼굴로 한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철푸덕철푸덕 한다. 세 번 하고 그만둔다. 목을 가누려면 한참 멀었을 테지만, 지난주 무렵부터는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한다. 몸씻이를 할 때에도 지난주까지만 해도 목 뒤틀리지 않게 붙잡느라 힘겨웠는데, 쉰 날 무렵부터는 걱정이 한결 덜다. 그래도 다치지 않게 잘 붙잡고 지켜보아야지.

 이제는 목이 조금씩 보이는 듯해서 접힌 목 안쪽에 때 많이 끼고 벌겋게 붓는 일도 줄어든다. 처음 씻길 때에는 목살 접힌 안쪽까지 씻을 생각을 못했다. 접힌 다리살과 팔살도 마찬가지. 장모님이 아기 씻기는 모습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몸씻이를 하면 무척 좋아한다는 느낌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두 번이나 세 번도 씻겨 주면서 지가 좋아하는 물놀이를 시켜 주고 싶지만, 엄마나 아빠나 너무 고단해서 한 번도 겨우 씻긴다.

 날마다 안 씻겨도 된다고 하는 말이 들려오지만, 아기 목이 벌겋게 되기도 하는 한편, 아빠를 닮아서인지 더위를 퍽 타는 듯하다. 더욱이 예방주사 부작용 황달이생겼기 때문에 냉온욕을 꼬박꼬박 해 주어야 하는 터. 씻길 때 보면, 거의 누워만 있던 아기임에도 배냇저고리가 살짝 꼬질꼬질하다는 느낌. 아마 아기가 흘린 땀 때문일 테지. 다른 집 아기 키우는 모습과 견주면 우리 아기는 거의 풀어놓고 키우는 셈이지만, 그래도 더위를 타는 듯. 그렇다고 저녁 온도가 19도쯤까지 내려가는데 마냥 풀어놓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나나 우리 옆지기도 어릴 적에 우리들 어머니 손으로 몸씻이를 하지 않았겠는가. 옆지기 어머님은 막내아이가 하도 더워 해서 하루에 아홉 번을 씻기기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하루에 한두 번 겨우 씻기는 일도 아기한테는 모자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쉰이레) 젖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하면

- 밤 앙탈이 갈수록 커진다. 쉰 날을 접어들면서 몸이 많이 나아진 옆지기가 부엌일을 거들며 나를 쉬게 하고 밥을 하거나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동안, 또 내가 너무 지쳐 있으니 내가 쓰러져 잠든 동안 빨래를 하는 사이, 아기가 앙탈 부리듯 운다. 처음 세이레까지, 우리 아이는 거의 울지도 않았을 뿐더러, 쉬를 보고도 또 뭐가 있어도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지금도 쉬를 하건 똥을 누건 가만히 있는다. 오히려 한창 찡얼거리다가 뚝 끊은 다음 뭔가 멋쩍다는 얼굴로 ‘끄응’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똥을 누었다는 뜻.

 밤에 앙탈을 부리니 서둘러 잠자리에 들고 새벽녘에 깨어나 기저귀 갈고 젖을 먹여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몹시 괴롭다. 나만 먼저 자기도 그렇고, 옆지기는 더더구나 잘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들한테 아직 듣지 못했는데, 우리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어머니들을 괴롭혔을까. 궁금하다. 듣고 싶다.

 깊어가는 밤, 힘들어서 자리에 누운 옆지기가 “젖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하면 어쩌니, 사름아.” 하면서 아기를 달랜다. 왜 그럴까. 우리 두 사람은 아기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안고 어르고 달래고 젖을 물리고 효소물을 먹이고 하면서 가까스로 재우며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이렇게 재우고 나면 이 녀석은 슬그머니 또 눈을 뜬다. 꼭 우리를 갖고 노는 듯하다. 자기를 재우고 밀린 일을 하고, 느긋하게 두 사람이 밥상을 마주하고 싶어도 안 된다. 녀석은 꼭 자기가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단다. 옆에 눕히면 울지 않고 가만히 있지만, 모기장 안에 뉘여 놓으면 울어댄다.


- 8월 14일 밤, 첫 배앓이가 있고, 그 이튿날 8월 15일부터 도서관 문을 닫고 있었다. 열 수 없었지. 그리고 10월 11일, 거의 두 달 만에 도서관 문을 다시 열다. 도서관 나들문에 “아기 돌보기와 옆지기 몸풀이 때문에 9월 끝무렵까지 쉬어야겠습니다” 하고 적어 놓기는 했으나, 막상 닥치고 치러 보니까 9월 끝무렵은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시월도 거의 가운데무렵이 다 되어서야 잠깐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문만 열고 청소만 신나게 했지,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손님이 들어와서 책을 보고 있으면, 그 손님한테 마음속으로 ‘도서관 지켜 주셔요’ 하고는 사진기며 노트북이며 그대로 도서관에 있는 채로 살림집으로 후다닥 뛰어올라간다. 아기 달래고 기저귀 빨고 널고 걷어서 개고. 한숨을 돌리며 아기를 안고 내려와서 옆지기를 좀 쉬게 하면서 도서관에 내려와 있자니(이동안 옆지기는 쉬지 않고, 아기 목에 발라 줄 녹즙을 만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녀석은 ‘뿌지직’. 헉. 똥이냐?

 이마에 맺힌 땀이 채 식지 않았으나 부랴부랴 살림집으로 달려 올라간다. 방수천을 깔고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기저귀를 벗겨서 뒷똥 나올 때까지 2분쯤 기다린다. 오줌을 눈다. 똥 누고 나서 오줌 누면 더 똥을 안 누겠다는 뜻. 물 온도를 알맞게 맞춘다. 흔히들 비싼 온도계(삼만 얼마짜리) 사서 재곤 하는데, 나는 그냥 손을 담그면서 내 몸으로 느낀다. 이만한 온도가 아이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를 느낀다. 온도계로 온도를 꼼꼼히 맞추어도 좋을 테지만, 아빠나 엄마 스스로 팔꿈치를 대어 본다든지 얼굴을 대어 본다든지 하면서 온도를 느껴도 되고, 처음부터 자기 손으로 아기 씻기기에 알맞는 온도를 손으로 알아채도록 훈련을 하면 더 좋으리라 본다. 몇 번 훈련하면 어렵지 않게 물 온도 맞출 수 있다.

 엉덩이와 발에 묻은 노란 똥은 손에 물을 묻혀서 닦는다. 밑은 손수건을 물에 담가서 닦는다. 엉덩이와 잠지를 물에 폭신 담그고 슬슬 닦기도 한다. 똥을 왕창 누어 주었기에 비누도 발라 준다. 다 씻고 기저귀 천으로 닦아 준다.

 빨래하고 씻기고 뭐 하고 한참 만에 도서관에 내려온다. 손님은 말없이 책을 읽어 준다. 고맙다.





- 오늘 저녁은 옆지기가 몸에서 밥을 잘 받는다고 해서 여러 가지를 차린다. 어제 가톨릭우리농매장에 가서 장만한 오얏과 푸성귀 몇 가지를 씻어서 날것으로 올리고, 말린묵과 버섯과 마른오징어와 양파와 감자 하나 썰어 넣고 밀싹국수를 끓인다. 나는 감자를 갈고 옆지기는 감자지짐이를 한다. 오붓하게 먹으려고 하는 때, 아기님은 어김없이 울어 주신다. 옆지기는 밥 먹으랴 아기 젖 물리랴 바쁘다. 이럴 때면, 남자로 아이 키우는 일이란 너무 쉽고 미안하다는 느낌뿐.

 배앓이도 안 하지, 몸도 안 무겁지, 입덧도 없지, 온몸이 부서지라 아기를 낳지도 않지, 아기 낳고 후들거림도 없지, 아기 낳고 나서 한 달 남짓 피내림도 없지, 물건 하나 들 수 없을 만큼 온몸에 힘빠질 일도 없지, 젖몸살도 없지, 젖 물 때 아플 일도 없지, 젖이 불어서 아프지도 않는 데다가, 젖을 짤 일도 없고, 아기가 마냥 젖을 물고 있어서 지쳐 늘어질 까닭도 없다.

 아기 아빠 된 사람으로서, 이 모든 고마움을 느끼고, 이 모든 고마움을 자기 옆지기를 돌보고 아기를 좀더 돌보는 데에 바쳐야 하지 않느냐 싶다. 그동안 집안일을 많이 했던 아기 아빠라면, 좀 힘들지 모르나 지난날보다 조금 더 힘을 쏟아 주고, 여태껏 집안일에는 담을 쌓고 있던 아기 아빠라면, 이제부터라도 집안일에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야지 싶다.

 으레, 회사 나가서 돈벌어야 하니 고단하고 힘들어서 집안일을 어찌하느냐고, 아기를 어찌 어르느냐고 하지만, 아기 어머니들이 산전휴가와 산후휴가를 내듯, 아기 아버지들도 마땅히 산전산후 휴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기업 일꾼이나 공무원이 아닌 바에야 산전산후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하는데, 산전산후 휴가를 꿈도 꿀 수 없이 만드는 일터라 하면, 마땅히 노동조합을 꾸려서 아기 아버지와 아기 어머니가 누려야 할 권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고 힘을 보태지 않는가. 그리하여 사회운동이 있다. 그래서 정치운동을 하고 교육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면서 우리 삶터와 사회를 바꾸자고 한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백일도 되지 않은 아기를 집에 놓고서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도록 하는 나라라면 이 나라에 무슨 복지가 있고 교육이 있다고 하겠는가. 백일이 안 된 아기를 돌보기보다 분유값이든 기저귀값이든 벌어야 한다며 어머니도 돈 벌러 가고 아버지도 돈 벌러 나가게만 하는 나라요 회사라면, 노동자 복지와 권리는 무슨 꿈나라 이야기며, 세계 일류 국가라든지 국민소득 이만 달러라고 하는 이야기는 웬 귀신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아기가 아기답게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골고루 듬뿍 받으면서 자랄 수 없다면, 이 나라 앞날이 어찌 되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 나라 앞날까지는 걱정하고 싶지 않다. 아니, 이 나라 앞날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기 기저귀를 빨고 널고 개고 갈고 하는 데에만도 하루해가 짧다. 밥하고 반찬 해서 옆지기를 먹이고 나도 먹는 데에만 해도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내 코가 석 자라서, 나라 걱정은 나라일 맡은 정치꾼 님들께서 하시라고 믿고,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이 동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는 옛 도심지 골목집에서, 우리 식구 깜냥껏 이 보금자리를 지키고 싶다.





- 옆지기가 말한다. 우리 집은 다른 건 다 나빠도, 옥상 넓게 쓰면서 빨래를 햇볕에 보송보송 말릴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다른 어느 집에 가더라도 이렇게 해바라기 잘할 수 있는 집은 없다고. 참말 나도 빨래를 마치고 왼 팔뚝에 걸친 다음 하나하나 옥상 빨래줄에 걸 때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한지. 집 건너편으로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전철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도 싶다. 막힌 울타리 때문에 전철에서는 우리 집에서 손 흔드는 모습은 못 볼 테지만.

 옆지기가 또 말한다. “당신, 앞으로 또 무슨 책 쓸 거 있어요?”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쓰고.” “그건 나중에 가서 해도 되고.” “왜?” “아니, 그림책이나 요새 나오는 책들을 보면 다 자료 가지고서 다시 만드는 책이라서 너무 재미가 없어. 그냥 장난 같아.”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새 들어서 이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찬찬히 다루어 주는 책이 없다고 느껴서이다. 나라안 사람들이 쓴 책도, 나라밖 사람이 쓴 책을 옮겨 놓은 책도 너무 없다. 아기를 낳기 앞서 얼마나 어떻게 몸과 마음을 갖추어 놓고, 아기를 낳을 때 어떻게 하며, 아기를 낳고 나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아이 엄마와 아기 아빠 눈높이와 눈길에 따라서 엮어 내려간 책을 찾아보기란 참 힘들다. 생생한 목소리가 없다. 눈물콧물 나는 힘겨움과 고단함을 그려낸 발자국이 없다. 무엇보다도, 아이 키우기를 거의 애 엄마 몫으로만 돌리는 사회 흐름을 거스를 만한 책, 아이 키우는 아빠가 되어 가는 삶을 담는 책이 없다. 육아책은 넘치지만 육아책이라 알뜰히 이름붙여 줄 육아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까.

 지난 쉰 날까지는 생각만 했지, 수첩에 이런저런 생각과 이야기를 적을 조각 틈마저 없었다. 옆지기가 조금씩 몸이 나아지고 아기 칭얼거림에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비로소 몸으로 느낀 이즈음, 조금 숨을 돌리면서 책상 앞에 앉아서 몇 글자 끄적이게 된다. 돌이켜보면 쉰 날까지는 거의 똑같은 하루하루였다. 거의 똑같이 정신없고 바빠맞은 하루하루였다. 날마다 조금씩 바뀌기는 하는데, 이 쉰 날을 고비로 제법 크게 달라지는 모습이 있다고 느낀다. 오늘부터 하루하루 이야기를 적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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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67 : 한글날에 읽는 책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몇 가지 글을 써 두었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두 꼭지 또 썼고, 한글날을 마친 뒤에도 한두 가지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한글날이니 우리가 늘 쓰고 있는 글이며 말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풀어 보는데, 한글날 아닌 때에는 우리 글과 말을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먹히지, 들리지, 건네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한글이나 우리 말이 아닌 ‘논술’ 이야기는 잘 먹힙니다. 잘 들린다고 합니다. 잘 건네집니다.

 제가 좋아하고 또 저를 좋아하는 어느 만화쟁이 아저씨가 제가 쓴 글을 그림으로 옮겨서 ‘어린이들이 우리 말을 잘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만화책’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여러 해 앞서부터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해 동안 어떤 글을 묶으면 좋을까를 살피면서 글뭉치를 모아 보았습니다. 만화쟁이 아저씨는 몸소 출판사까지 알아보셨다고 하는데, 당신이 알아보는 출판사마다, ‘왜 그 사람하고 일을 하려고 합니까?’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를 아는 학습지 출판사로서는 제가 하는 일이 ‘글쓰기’이지 ‘논술’이 아니며, ‘삶을 담는 말을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아름다워지기’를 말하지 ‘시험성적 높이며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하는 논술 이야기’ 또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잘 맞추도록 공부 시키기’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올 한글날을 앞두고 세상에 쏟아지는 책을 보노라면, 올해도 지난해하고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다룬다고 하면 ‘깨끗한 토박이말’만 다뤄야 하는 줄, ‘잘못 쓰는 말을 바로잡기’만 해야 하는 줄, ‘틀린 맞춤법 추스르기’를 해야 하는 줄 아는 책만 보입니다. 글쓰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으나,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수험생들한테 팔아먹는 ‘논술 장사’에서 홀가분한 책은 열 손가락 꼽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에 꼭 돈이 되어야만 값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이 되어야 한다면 왜 꼭 논술 장사로만 돈을 얻으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참 살 길을 찾아나서는 말과 글 이야기로도 넉넉히 돈벌이를 할 구멍을 살필 수 없는 노릇인지 궁금합니다.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도와주는 논술책이 아니라, 삼류대학교에 들어가건 아예 대학교는 꿈도 못 꾼다고 하건 사람이 사람다운 됨됨이를 추스르고 다독이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글쓰기책을 엮어내어 온 세상 두루두루 사랑을 펼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이야기책으로 엮을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찬물로 머리 감고 낯 씻고 손발을 씻고 자리에 앉아서 고요히 생각에 잠긴 뒤 하루를 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한 해 가운데 고작 하루뿐인 한글날에조차 우리가 물과 밥처럼 쓰고 있는 말을 엉터리로 내팽개치고 있지만, 이 말과 글에 우리 얼과 넋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고, 한결 넉넉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 믿음을 펼쳐 보이고자. (4341.10.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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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여는 말 689] 지못미

 진보신당 심상정 님이 책을 하나 냈습니다. 책이름 《당당한 아름다움》만큼이나 활짝 웃는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심상정 님 얼굴이 곱거나 예쁘다고 느껴질 얼굴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만,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든, 스스로 자기 길을 옳다고 여기며 꿋꿋하게 걸어가면 그이 스스로 제 깜냥껏 아름다움을 찾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무지개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어떤 이는 시궁창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어떤 이는 싱그러운 들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한편, 어떤 이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심지에서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이 저마다 뜻과 값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저러나 심상정 님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습니다. 퍽 아쉽다고 여길 수 있고, 그래도 홀로 꿋꿋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말하며, 누군가는 ‘아직 덜 무르익었으니 더 무르익어야 해’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가시밭길은 고단하고 거칠며 팍팍합니다. 외롭고 슬프고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가시밭길이 있기에 탁 트인 길이 시원합니다. 가시밭길이 있기에 더욱 단단해지고 좀더 야무지게 됩니다. 가시밭길을 거치면서 우리 스스로 꿋꿋해지고,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우리 나름대로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심상정 님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가 아닌 ‘앞으로 더 무르익도록 애쓰고 첫마음을 더 다부지고 튼튼하게 가꾸소서’ 하고 말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1.10.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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