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자전거 날쌘돌이
다바타 세이이치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고장나서 버린’ 자전거일까, ‘버려서 망가진’ 자전거인가
 [그림책이 좋다 70] 다바타 세이이치,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 책이름 :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 글ㆍ그림 : 다바타 세이이치
- 옮긴이 : 엄혜숙
- 펴낸곳 : 우리교육 (2009.4.1.)
- 책값 : 1만 원


 (1) ‘자전거 삶’이 되기까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골목마실을 하면서 ‘버려진 자전거’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잘 안 타는 채로 오래 묶여 있는 자전거’는 드문드문 보는데, 이런 자전거들은 어느 만큼 비눈바람을 맞고 있다가도 누군가 데려가서 헌 쇠붙이로 다시 쓰거나 헌 자전거로 손질해서 다시 쓰곤 합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안 버린다’라기보다는 ‘버릴 자전거가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제 고향 인천이라 하여도 아파트가 많이 몰린 데에는 어김없이 ‘버려진 자전거’가 곳곳에 묶여 있거나 나뒹굴고 있습니다. 전철역 앞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이제는 한국땅에서 상식처럼 되었는데, 전철역이든 기차역이든 버스역이든 학교나 관공서이든 ‘자전거 주차장’이라고 삼은 곳은 ‘자전거를 대어 두는 곳’이 아닌 ‘안 타거나 못 쓰게 된 자전거를 버리는 곳’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자전거 주차장’ 간수를 허술하게 할 뿐 아니라, 비눈바람을 맞지 않게끔 지붕을 씌워 놓지 않기 일쑤요, 지붕을 씌워 놓았어도 비눈바람이 으레 들이칩니다.

 곰곰이 살피면, ‘자전거 주차장’에만 지붕이 제대로 없는 우리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버스역에도 지붕이 없기 마련이요, 지붕이 있어도 비를 제대로 못 가리기 마련입니다. 멋스럽게 꾸며 놓는 버스역 지붕은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비눈바람을 그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도록 마련한 버스역 지붕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모자란 탓인지, 생각을 안 하는 탓인지, 정책이 없는 탓인지, 정책이 엇나간 탓인지, 건설업자가 대충 짓는 탓인지, 건설업자가 함부로 짓는 탓인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엉터리 ‘자전거 주차장’과 ‘버스역 지붕’이 판을 쳐도 우리들 스스로 아무 말이 없습니다. 만들어 주니 고마운 노릇이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이건 자전거 날쌘돌이입니다. 삐걱삐걱 괴상한 소리를 내던 날샌돌이는 결국 이런 곳에 버려졌습니다. “너무해! 난 쓰레기가 아니란 말이야. 제대로 손보면, 아직 힘차게 달릴 수 있다고!” ..  (2∼3쪽)


 지난주에 서울로 마실을 오며 대방동을 지나갈 무렵입니다. 지하도 들머리에 서 있는 자전거 한 대를 보았습니다. 몸통을 까맣게 바른 자전거인데, 얼핏 보기로도 버려진 자전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뒷바퀴에는 바람이 빠져 있고 안장은 사라졌습니다. 신문을 받아보면 신문사 지국에서 거저로 주는 자전거가 아닐까 싶은데, 예전 임자가 자전거 몸통을 까만 스프레이로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 자전거는 왜 여기에 멀뚱멀뚱 서 있을까요. 뒷바퀴에 자물쇠를 채워 놓은 모습으로 보건대, 틀림없이 자전거 임자가 있을 텐데.

 누군가 이 자전거를 몰래 훔치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이곳에 오래도록 묶여 있던 탓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장난 삼아 바퀴에 구멍을 내고 안장을 빼갔을까요.

 자전거 임자가 자전거를 사랑해 주지 않아 오래도록 내버려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 자전거한테는 어김없는 임자가 있으니, 안장이든 다른 부속이든 훔쳐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바로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임자 있는 자전거 부속’을 몰래 빼내고 훔칩니다.

 저도 예전에 길가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 조금 오래 볼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중요한 부속을 누군가 빼내는 바람에 자전거를 못 타게 된 적이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부속 빠진 자전거를 자전거가게로 끌고 가서 고쳤습니다. 그 부속은 그 자전거한테만 쓰는 부속이라 그 자전거를 다루는 대리점에서만 고칠 수 있는데, 그 부속을 빼낸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당신한테도 저와 똑같은 자전거가 있기에 그 부속을 빼냈는지, 재미 삼아서 슬쩍했는지, 아니면 자전거 타는 사람을 못마땅해 하기에 일부로 놀려 주려고 했는지 더없이 궁금했습니다.


..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 하나 도와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아아, 나는 이제 틀렸어. 이런 채로 부슬부슬 녹이 슬어 죽고 말 거야!” 날쌘돌이는 엉엉 울고 말았어요 ..  (8쪽)
 





 우리는 자전거를 참으로 쉽게 얻고 쉽게 버립니다. 자전거를 쉽게 거저로 나누어 주고,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다 버립니다.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하느라 이삼십만 원을 썼다면, 또는 이삼백만 원을 들였다면, 섣불리 길가 아무 데에나 자전거를 버리는 일이 있겠습니까. 또는, 짐자전거를 장만하여 일터에서 짐을 나르는 분들이라면 당신들 자전거를 가볍게 내다 버리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자전거를 어디에 쓰려고 생각하면서 장만한다면, 어디부터 어디까지 타고다니겠다고 생각하면서 마련한다면, 자전거를 함부로 버리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내 쓰임새에 알맞게 자전거를 장만하려 한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멋져 보이는(뽀대나는) 자전거를 큰돈 들여 장만할 까닭이 없습니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자전거를 타든, 가끔 먼 나들이 나가는 자전거를 타든 하려 한다면, 괜히 더 값나가는 자전거를 목돈 들여 마련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타는 자전거를 나중에 내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이라면, 또는 내 둘레 이웃한테 넘겨주거나 내 가까운 동무나 살붙이한테 이어주려는 마음이라면, 아무 자전거나 쉬 사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틈틈이 손질하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가운데, 언제나 ‘자전거 삶’을 즐겁게 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겐지 할아버지는 정말로 자전거를 잘 고쳤어요. 이제는 날쌘돌이도 다시 태어난 것처럼 쌩쌩해졌습니다. “자아, 날쌘돌이야. 너, 아프리카에 가지 않을래?” “아프리카요?” “그래, 아프리카는 우리 인간들의 고향이란다. 그 아프리카가 이제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고 불끈 힘내고 있어. 희망 가득한 일이지. 여러 가지로 도움이 필요해. 난 너에게 그런 도움을 부탁하고 싶구나.” “나라도 괜찮아요?” ..  (18∼19쪽)


 봄부터 여름까지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석 달에 걸쳐 ‘자전거 정비’ 수업을 함께하면서 여러모로 자전거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바라보는 눈길을 새삼스레 느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 어느 누구도 자전거를 처음 장만하던 날부터 자전거 수업을 하는 그때까지 ‘자전거 닦아 주기를 한 번조차 한 적이 없다’는 대목에서 놀랐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아이 어버이 되는 분들이 아이들한테 ‘얘야, 네 자전거는 네가 스스로 틈틈이 닦아 주고 만져 주고 기름 쳐 주고 해야지’ 하고 가르쳐 주지 못한 탓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 어버이 되는 분들한테 어버이가 되는 분들 또한 ‘자전거 손질하기’를 물려주지 못한 탓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자전거 손질을 일러 주지 못한 탓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내 옷을 빨고, 내 손으로 내 옷을 기우며, 내 손으로 우리 집 걸레를 빨아 우리 집 방바닥을 닦고 하는 버릇을 일찍부터 들여 놓았으면 ‘자전거 닦고 손질하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기 마련입니다. 자동차도 틈나는 대로 닦아 주면서, 아니 자동차는 꽤나 자주 닦아 주면서 자전거를 안 닦아 준다면 어딘가 얄궂지 않겠습니까. 무언가 뒤바뀌지 않겠습니까.


.. “날쌘돌이야, 먼 곳까지 잘 왔구나! 아산티 사아나(정말 고마워)!” 마을의 아이들과 모샤 아주머니가 크게 기뻐하며 마중을 나왔어요. 모샤 아주머니는 마을 보건소의 산파예요. 이렇게 해서 날쌘돌이는 모샤 아주머니를 태우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  (36쪽)


 자전거는 두 다리보다 빠릅니다. 자동차는 자전거보다 빠릅니다. 그런데 도심지에서는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그리 안 빠를 뿐더러 더 느리기도 합니다. 자동차는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큰짐을 자주 날라야 하지 않는다면 자전거로 나르는 짐으로도 넉넉합니다. 때로는 자동차와 자전거 없이 가방을 메거나 수레를 끌면서 짐을 날라도 됩니다.

 자전거를 알맞고 올바르게 탈 수 있는 삶이 되자면, 먼저 내 두 다리와 내 두 손과 내 몸뚱이를 알맞고 올바르게 가누거나 부릴 줄 아는 삶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두 다리로 내 삶터를 느끼고 내 이웃 삶터를 헤아리는 가운데, 내 두 손을 펼쳐 내 온몸으로 내 이웃을 껴안고 내 동무와 식구를 껴안으며 내 삶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뭇목숨붙이를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풀벌레이든 푸나무이든, 또는 풀꽃이든, 가만히 들여다보고 넌지시 손을 내밀며 따스히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가운데 비로소 ‘자전거 삶’이 열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씽씽이도 자전거요 날쌘돌이도 자전거입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까닭은 씽씽 내달리거나 날쌔가 휘몰아치는 데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즐거웁자고 타는 자전거요, 바람맛과 다리맛과 땀맛과 길맛, 여기에 사람 사는 삶터를 두루 돌아보고 부둥켜안는 사랑맛을 함께 느끼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번역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를 찬찬히 넘겨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고물자전거가 아닌 ‘날쌘돌이’였지만, 이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아무 데나 내다 버리면서 고물자전거가 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옆지기하고도 보고,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돌려읽으면서 생각을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이 자전거는 처음에는 어느 한 군데가 망가졌을 텐데, 자전거 임자인 아이는 틀림없이 ‘고장난 데를 안 고치고 그냥’ 탔을 테며, 이렇게 타는 동안 다른 곳도 하나둘 고장이 나면서 더는 탈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무 아쉬움 없이 내다 버렸으리라 봅니다.

 이웃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인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가볍게 얻은 물건을 가볍게 다루다가 버리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동무들을 따돌리고 이웃을 따돌리는 모양새도 똑같습니다.


.. “모샤 아주머니 큰일났어요! 아기를 낳으려는데 위험해요! 지금 빨리 와서 도와주세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아주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떠내려가서 자동차는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부탁할게! 날쌘돌이야, 힘내렴!” 모샤 아주머니는 날쌘돌이를 짊어지고 강을 건넜습니다 ..  (42쪽)


 그렇지만 《고물자전거 날쌘돌이》에서 날쌘돌이는 길고양이들을 만나 새 길을 찾게 됩니다. 길고양이들은 저희하고 생각을 나눌 줄 아는 동네 꼬마 유끼짱한테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네며 ‘버려진 날쌘돌이’를 살려 달라고 하고, 유끼짱은 낡고 망가진 날쌘돌이를 스스럼없이 자전거가게까지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 자전거가게 할배는 기꺼이 날쌘돌이를 손질해 주며, 그런 다음 아프리카로 ‘원조품 자전거’가 되도록 다리를 놓아 줍니다.


.. 그날 밤, 날쌘돌이는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츠이마와 모샤 아주머니, 마을 모든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머리속에 뱅글뱅글 맴돌았습니다. “대단하구나! 이렇게 기쁜 일이 있다니, 나는 생각지도 못했어!” ..  (52쪽)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함부로 타는 아이들한테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는 좋은 책동무가 되며 길동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부터 이 그림책을 펼치면서 ‘여느 때 나는 내 자전거나 이웃 자전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돌아보아 주고, 이렇게 돌아본 마음으로 당신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나누어 주어야 하는가를 곱씹을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고 느낍니다.

 그예 수수하게 펼쳐지는 그림책이요, 딱히 도드라지는 사건사고가 없는 그림책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밋밋하다 할 수 있고, 그림책 겉장에 나오는 ‘유끼짱’이라는 아이가 끝에 다시 나오는 대목을 잇는 얼거리는 퍽 허술하다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책임을 헤아린다면, 책끝이나 책머리에 ‘자전거가 버려지는 일’과 ‘자전거를 되살리는 일’과 ‘낡은 자전거를 손질해서 제3세계나 가난한 나라’로 보내는 이야기 들을 짤막하게나마 붙여 준다면,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한테 한결 도움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늘 일어나거나 부대끼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림책이 아주 드문 모습을 돌아본다면,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는 퍽 싱그럽고 괜찮은 이야기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이 그림책에 담긴 줄거리는 우리 둘레에 대단히 자주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웬만한 사람들은 으레 겪음직하거나 보았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어디에나 널려 있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우리네 그림책 작가나 글책 작가는 거의 못 그려내고 못 써냅니다. 보아도 못 느끼고, 겪어도 못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렇게나마 번역 그림책을 낼밖에 없을 텐데, 나라밖 ‘좋은 생활그림책’을 옮겨내는 마음씀과 눈썰미를 조금 더 가다듬거나 모두면서 우리 땅 우리 사람 이야기로 꾸미는 새로운 생활그림책을 빚어낼 수 있으면 한결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342.8.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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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04 11:56   좋아요 0 | URL
글쎄요.자물쇠가 채워진것으로 봐서는 그냥 거기 나둔 자전거가 아닐까요?
 
혁명을 표절하라 - 세상을 바꾸는 18가지 즐거운 상상
트래피즈 컬렉티브 지음, 황성원 옮김 / 이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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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은 ‘구호’가 아닌 ‘삶’이다
 [잠깐 읽기 49] 트래피즈 컬렉티브, 《혁명을 표절하라》



- 책이름 : 혁명을 표절하라
- 글 : 트래피즈 컬렉티브
- 옮긴이 : 황성원
- 펴낸곳 : 이후 (2009.4.9.)
- 책값 : 2만 원


 영어로 나온 책에는 “Do it yourself”라는 이름이 붙은 《혁명을 표절하라》를 읽습니다. 이 책은 모두 열여덟 갈래로 나누어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 삶과 내 삶터와 내 나라를 뜯어고칠(혁명) 수 있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따지고 있습니다.

 한글판 책이름이 “혁명을 표절하라”처럼 세게(?) 나와서 그렇지, 이 책은 반체제 불순분자(?)들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반체제’가 될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 흐름을 그대로 둔다면 왼날개이든 오른날개이든 가리지 않고 쫄딱 무너지면서 죽음바다에 빠질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은 잘 빠진 자가용을 싱싱 몰면서 거리낌없이 즐긴다 하여도, 이처럼 즐길 수 있는 나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습니까. 태평양 섬나라 별 다섯짜리 호텔에서 멋진(?) 나날을 보내며 신나게 노닥거릴 수 있다 하여도, 이렇게 태평양 섬나라에 호텔을 짓고 비행기가 날게 하고 자가용이 달리게 하는 만큼 우리네 삶터와 자연이 얼마나 허물어지거나 망가지고 있는가요.


.. 우리가 일생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하는 것은 투표용지에 있는 후보자나 정당에 도장을 찍는 일뿐이다 … 불쌍하게도 우리는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는 대신 일생 동안 15차례 정도 국회의원 투표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것을 민주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적 원칙들이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지역들이 많이 있다 … 대부분의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과 지위, 돈이다 ..  (21, 94쪽)


 지난주에 어느 책읽기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그때 마침 이 책 《혁명을 표절하라》를 다루었습니다. 예닐곱 사람이 모여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좋은가를 나누는데, 다들 갈팡질팡입니다. 좀처럼 이 책 줄거리를 새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한테 정부는 꼭 있어야 하는가?’와 ‘우리한테 군대는 꼭 있어야 하느냐?’ 두 가지 이야기로 제법 오래도록 말이 오갔습니다.


..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날” 혹은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그날 이후에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무거운 기대의 짐을 지고 산다. 하지만 현실은 더 느리고 예측불가능하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향하는 길은 곧은 직선이 아니다 … 언론의 미래는 훨씬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요청들이 그 내용을 장악하는 훨씬 더 큰 복합체의 모습을 띠게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변두리에서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발행 부수를 적게 하고 주류에 대항하겠다는 자세를 버리면, 대안적인 관점을 가진 집단들이 신문과 전단지, 팸플릿, 자립형 잡지를 발행할 수 있다 … 사람들에게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설득한다면, 이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돈독이 오른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당신 마을 주변에 있는 녹지 공간에 건설허가를 어떻게 받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독자들은 왜 당신이 탐욕과 돈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  (25, 383, 399쪽)


 인도가 평화로운 나라이면서 홀로 우뚝 서는 나라가 되기를 꿈꾼 간디 님은 ‘주먹힘 안 쓰고 굳이 맞서지 않기’를 외치면서 몸소 이와 같이 살았습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문학뿐 아니라 《국가는 폭력이다》와 같은 책을 써낸 톨스토이 님은 ‘군대 때문에 우리 삶이 더 팍팍해진다’고 외치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쪽은 이웃한 나쁜 나라 정부가 아닌, 바로 군대힘을 거머쥔 우리 나라 정부’임을 밝혀냈습니다.

 군수산업이니 군산복합체이니 하는 말도 있습니다만, 군대라는 곳은 총칼이라는 무기만 들고 있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매한가지이지만, 군대를 거느리면서 가장 많이 들이는 돈은 바로 ‘인건비’입니다. 군인한테 주는 일삯과 군인을 먹여살리는 밥값과 군인을 입히고 재우는 옷값과 집값 따위입니다. 총칼을 장만하는 데에도 적잖이 큰 돈을 쓰지만, ‘수십만 군인을 부리는 데’에 더 많은 돈이 쓰입니다. 그리고, 군인이 쓸 물건을 만들고 군인이 잠잘 집을 만들고 군인이 휘두를 총칼을 만들며 군인이 먹을 밥을 빚는 따위 일을 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 품과 땀과 세월이 들어야 합니다.

 이런 데까지 통계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만, 군대를 두는 우리들은 ‘나라를 지키는 일’보다 ‘군대를 지키는 일’에 어마어마한 돈과 품과 땀을 바치면서(어쩌면 나라살림 절반 넘게 바쳐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정작 우리네 교육과 문화와 복지와 사회와 기술과 의료와 기초생활을 다스리는 데에는 거의 아무런 돈이든 품이든 땀이든 안 바치고 있는 셈입니다.


.. 값싼 석유는 갈수록 희소해지고, 이주가 증가하며, 기후 혼란은 악화되고, 오염이 폭증하고 있다. 생존은 점점 더 격한 투쟁이 될 것이다 … 의약품을 좀더 높은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북반구에서는 시장화할 수 있는 약물들에 대한 연구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 빈곤한 국가에 있는 사람들의 약 50퍼센트는 형편없는 수질과 위생 수준 대문에 발생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지만, 현금이 넉넉한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  (64, 147, 151쪽)


 《혁명을 표절하라》라고 하는 책은 이러한 대목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권력자가 권력자 그대로 세상을 거머쥐면서 뒤흔드는 틀거리는 다치지 않게 하면서, 이 틀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어야 함’은 틀림없이 옳습니다. 세상 어느 혁명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지’ 않는 가운데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혁명이 아닌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이 아닌 보수라 하여도 매한가지입니다. 늘 그대로 고인 물로 머무는 보수는 ‘썩어문드러’집니다. 보수가 참다운 보수가 되려면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뼈를 깎듯 애써야 참다운 보수입니다. 진보도 똑같고 혁명도 똑같습니다. 세상만 뜯어고친다고 해서 혁명이 아닙니다.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외치는 목소리라 하여 진보가 아닙니다. 진보이든 혁명이든 개혁이든 보수이든, 또한 수구이든, 언제나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는’ 일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소수의 앞서 나간 사람들이 거대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 우리의 감추어진 투쟁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런 투쟁의 역사는 도처에 있기 대문에 쉽게 발굴할 수 있다. 이런 역사들은 냉담함(그건 해 봤자야)과 무기력(그건 너무 막강해)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교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자유와 진보의 대부분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행동하고 집단적으로 투쟁을 통해 성취한 것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  (23, 190쪽)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이웃 삶을 사랑하고, 내 몸을 아끼면서 내 이웃 몸을 아끼며, 내 터전을 돌보면서 내 이웃 터전을 돌봅니다.

 삶을 사랑하는 길은 여러 갈래이고, 몸을 아끼는 매무새는 여러 가지이며, 터전을 돌보는 슬기는 숱하게 많습니다. 《혁명을 표절하라》라고 하는 책은, 우리가 우리 깜냥껏 우리 삶터를 좀더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돌볼 수 있는 길을 ‘미국(이나 유럽) 문화와 사회 틀거리에 알맞게’ 갈무리해서 보여줍니다. 집회를 하든 시위를 하든, 대안언론을 꾸리든 빈집점거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우리 스스로 즐겁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길찾기를 보여줍니다.

 이리하여, 《혁명을 표절하라》라고 하는 책은, 아직 세상흐름을 잘 읽지 못하는 분들이라든지 세상흐름을 어설피 짚고 있는 분들한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 길잡이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찌감치 길찾기를 해 오고 있는 가운데 제 깜냥껏 제 길을 걷는 분들한테는 ‘미처 모르거나 자칫 놓치기’도 했던 몇 가지를 고맙게 얻을 수 있는 책이 되리라 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나 스스로 즐거웁자고 하는 이야기를 열여덟 가지로 알맞게 나누면서 한눈에 알아보기 좋도록 꾸려 놓았기에,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실용서’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다만, 실용서입니다. “Do it yourself”이든 “혁명을 표절하라”이든, 이와 같이 내 삶을 꾸려 나가는 밑생각이나 밑슬기를 깨닫거나 얻는 생각깊은 책은 아닙니다. 《즐거운 불편》처럼 온몸 부딪힌 실천을 보여주는 책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처럼 삶에서 우러나온 슬기를 손쉽게 보여주는 책은 아닙니다. 《국가는 폭력이다》처럼 사회 권력자가 감추거나 숨기는 뒷모습을 낱낱히 밝히는 책은 아닙니다.


.. 빈 공간을 점거하고자 하든, 구입하거나 임대하고자 하든 간에 건물을 물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관심 있는 지역의 모든 도로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차를 몰고 다녀 보는 것이다 ..  (355쪽)


 ‘혁명’이 무엇이기에 ‘표절’까지 하면서 배우거나 몸소 해 보아야 하는가를 다루는 책으로 《혁명을 표절하라》를 집어들려고 했다면 479쪽에 이르는 책을 넘기는 내내 거북하거나 짜증스러울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Do it yourself”라는 영어책 이름대로 ‘나 스스로 어떻게 바꾸면서 이 삶터를 바꾸고 내 삶도 한결 나아지도록 할까?’라는 갈림길에서 헤매는 분한테는 새롭게 생각을 틔워 주면서 마음문을 열어 주리라 봅니다.


.. 자원이 지금보다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자원 경쟁도 줄어들 것이다 ..  (472쪽)


 책읽기 모임에서 발제를 맡은 분이 쪽글을 하나 써 와서 읽었습니다. 이분이 쓴 쪽글 끄트머리에 “나부터 바꾸지 않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가 아니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이제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적혀 있습니다.

 이 글줄마따나, 곰곰이 따지면 혁명은 나부터 즐겨야 합니다. 혁명은 표절할 수 없습니다. 혁명은 따라할 수 없습니다. 혁명은 배울 수도 없습니다. 그저, 헉명은 내가 ‘살아내’면서 시나브로 이룰 뿐입니다.

 지루했던 책읽기를 마치면서 새삼스레 ‘혁명하는 이야기를 바보처럼 책에서 찾으려 했단 말이야?’ 하고 생각하며 뒷통수를 벅벅 긁습니다. (4342.8.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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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점의 문화사
이중연 지음 / 혜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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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 없애면 책이 책다울 수 있을까
 [잠깐 읽기 48] 이중연, 《고서점의 문화사》


- 책이름 : 고서점의 문화사
- 글 : 이중연
- 펴낸곳 : 혜안 (2007.3.15.)
- 책값 : 14000원


 (1) 우리 나라에서 ‘책’과 ‘헌책방’이란?


 출판사 ㅌ 일꾼 두 분하고 헌책방 마실을 합니다. ㅌ이라고 하는 출판사에서 책을 하나 내기로 하고 용산 어느 밥집에서 만난 다음 이야기를 조금 하고 나서 헌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늘날 서울 용산은 아이파크몰이니 무어니 하면서 아주 복닥복닥 시끄럽습니다. 제가 모르던 지난날에 용산 앞터에 커다란 저잣거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무렵에는 용산에도 헌책방이 많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곳 용산에서 1975년부터 터를 내린 헌책방 〈뿌리서점〉 아저씨 말씀을 들으면, 원효로 쪽에 헌책방이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당신도 원효로에서 한 해쯤 있다가 지금 자리 둘레로 왔고, 그곳에서 스무 해 남짓 책방살림을 꾸렸으나, 건물임자가 더 높은 임대삯을 받으려고 내쫓는 바람에 지금 자리로 옮겼습니다.


.. 지하철공사가 진행되자 동대문 고서점들은 문을 닫거나 활동무대를 옮겼다. 40∼50곳에 이르던 책방은 1974년에 불과 세 곳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지하철이 개통되자 모두 없어졌다. 보문사ㆍ교문사ㆍ희문사ㆍ경안서점 등은 청계천으로 옮겼다. 1970년대에 그렇게 고서점의 동대문 시대는 저물어 갔다 … 《샛강》의 설명은 자세하다. 시장에 건물이 새로 세워지자 연고권을 가지고 다시 샀지만 빚이 불어난다. 그런데 앞뒤의 가게가 모두 책과는 거리가 먼 가게들이었다. 당연히 책방은 장사가 안 된다. 결국 시내로 들어갔지만 6개월도 안 돼 주인의 횡포로 쫓겨나고 급기야 어느 집 처마 밑에 차양을 달고 책방을 꾸민다. 하지만 근처에 빌딩이 들어서면서 책방이 도로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3대 헌책방의 전주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다 ..  (246, 324쪽)


 헌책방에 함께 찾아온 두 분은 바쁜 틈을 쪼개어 책 구경을 즐깁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셔야 하기 때문에 살짝 맛보기만 합니다. 저와 옆지기는 번갈아 아기를 안고 어르고 재우면서 책을 살핍니다. 아기도 힘들고 옆지기도 힘들어 하기에 책 구경은 얼마 못합니다. 살짝 책 구경을 하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은 열 권 남짓 골랐습니다.

 책값을 셈하고 나오려는데, 〈뿌리서점〉 오랜 단골 아저씨가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단골 아저씨는 이곳 〈뿌리서점〉을 서른 해 가까이 다니신 분입니다. 모르지만 서른 해가 넘었을는지 모릅니다. 열일곱 해 앞서 제가 이 헌책방에 처음 찾아왔을 때에도 아저씨는 열 몇 해째 이곳을 드나들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세 해 뒤면 헌책방 〈뿌리서점〉 스무 해째가 되어, 드디어 이 헌책방에서 “저도 이곳 단골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게 되는데, 단골 아저씨는 몇 해 뒤에 ‘마흔 해 단골’이 될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이곳 〈뿌리서점〉에 처음 드나들 무렵에 열 몇 해째 드나들던 할아버지가 꽤 있었는데 요즈음은 거의 만나뵙지 못합니다. 제가 스물을 갓 넘기던 때에 나이 일흔이나 여든쯤 되면서 당신이 제 나이였을 때부터 책방을 드나들었다고 하셨는데, 살아 계시다면 아흔이나 백일 테고,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그 긴 세월을 걸쳐 읽고 갈무리한 책을 집안에 고스란히 남기고 흙으로 돌아가셨겠지요.


.. (1700년대 조선) 정부가 처벌한 대상은 세 갈래였다. 첫째 책을 소지한 사람, 둘째 책을 전파한 책쾌, 셋째 중국에서 책을 들여온 역관. 이들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측은 책쾌였다. 책을 보거나 지녔던 모든 사람과 역관 일반이 처벌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책쾌는 모두 체포되어 벌을 받도록 조처되었다 … 책쾌에 대한 조처는 극단적이었다. 곧 도성 안에 책쾌가 보이지 않도록 지시하고, 만일 책을 가지고 왕래하는 자가 있으면 포도청에서 수사하도록 명했다. 책쾌는 범죄집단처럼 다루어졌다 … 책쾌 9명이 모두 문제서적을 거래하지는 않았는데, 앞서 보았듯이 모두 효시되거나 노비가 되었다. 책 소지자보다 유통인을 더 문제 삼은 것이다 … 박인환의 선택은 서점의 활로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사상의 정치적 대립이 출판ㆍ문화계에도 영향을 주면서 금서조처, 압수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 1947년 말에 서울에서 대대적인 금서 압수 수색이 진행되었다. 종로에 있던 갑문당 서점에서는 75종이 압수되었다 ..  (60∼64, 196∼197쪽)


 헌책방을 처음 알아차리며 다니던 고등학생 때에는 돈이 넉넉하지 않았으나 아예 없지 않았습니다. 제 둘레에 돈을 펑펑 쓰던 동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으레 돈이 얼마 없기 마련’이라고 느꼈으며, 책은 한 권이나 두 권씩 사서 읽으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오히려 저는 고등학생 때에도 신문배달이나 과외 같은 알바를 학교 몰래 조금씩 하며 푼푼이 돈을 모으곤 했기 때문에, 책을 여러 권씩 사읽는 주머니는 그리 빠듯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등학생이던 1990년대에 제가 즐겨 사읽던 책은 ‘헌책방에서 500원 하던 손바닥책’입니다. 때때로 700원짜리 시모음을 사서 읽고, 더러더러 1500원이나 2000원짜리 인문책과 소설책을 장만했습니다.

 2009년에 접어든 오늘에는 손바닥책 한 권 값을 1500원쯤 칩니다. 푼수로 치면 세 곱일는지 모르나, 부피로 치면 거의 안 오른 셈입니다. 더구나 우리 세상은 온통 ‘더 값싼 물건을 더 많이 사서 쓰기’에 물들어 있는 만큼, 새책이라 할지라도 인터넷책방에서는 40퍼센트까지 깎아서 팔기도 하고, 마일리지까지 치면 60%나 깎아서 파는 책이 있기도 합니다. 하기는, 텔레비전 홈쇼핑에서는 60∼70% 깎아팔기가 으레 이루어지고 있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땅에서 책은 책이라는 구실을 잃어버리고 소비재가 되었다고 할까요. 더 값싸게 많이 장만해서 책꽂이 그득그득 꽂아 놓은 다음 곶감 빼어먹듯 읽는 지식덩어리가 되었다고 할까요.

 새책이란, 겉에 찍힌 책값에 따라 사고팔려야 올바를 텐데, 1만 원이 찍힌 책을 1만 원을 온돈으로 치르고 사면 “난 꼭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야!” 하고 말하는 판입니다. 이런 가운데 헌책방 헌책 또한 제자리를 찾기 어렵습니다. 뭐가 새책이고 뭐가 헌책인지 가누기 어렵습니다.

 깊이 파고들면, 아무리 새책이라 할지라도 ‘지난날 쓴 글이 오늘날 새 종이에 새 잉크로 찍혀 나왔을’ 뿐이긴 합니다만, 이리하여 새로 나오는 책에 담기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때로는 100 해 앞선 때 이야기이거나 500 해 앞선 때 이야기이기도 해요.


.. 일제강점은 위생담론과 함께 조선의 상점 모습을 해체시키는 형태로 다가왔고, 고서점의 서적유통 모습도 일본인에 의해 부정적으로 그려지게 된다. 쿠랑도 서울ㆍ시골의 골목길이 좁고 지저분하다거나 장터가 먼지투성이라고 했지만, 적어도 책 유통과 관련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특히 고서점의 경우 가게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면서도 불결하다거나 하는 따위의 위생담론을 펼치지 않았다 … 일반적 상점 이야기지만, 고서점의 경우에도 일본인의 위생담론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를테면 노점 헌책방과 잡화점식 고서점을 주로 다녔던 어떤 일본인은 사본ㆍ활자본이 가끔 나오는 한 가게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곧, 주인이 “여름 더울 때에는 파리가 입에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낮잠”을 잔다거나 주인 옆의 ‘변기항아리’를 열면 ‘이상한 훈풍’이 와서 도망을 가야 한다는 따위다. 그는 이 가게를 ‘조선답다’고 했고 ‘사랑할 만한 가게’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싸게 사기 때문이지, 조선답다는 수식은 비상시와 떨어진 가게를 남겨둘 필요가 없다는 말에 의해 무색해진다 … 쿠랑은 그 모습보다 가게에서 다루는 책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일제가 청결ㆍ불결, 입구의 높낮이, 하수덮개 따위를 잣대로 삼을 때, 다루는 책의 질과 관계없이 작은 초가집의 고서점은 점차 자본과 개발에 밀려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  (106∼108쪽)


 저 스스로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이름으로 책 하나를 쓰기도 했지만, 모든 책은 틀림없이 헌책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책은 새책입니다. 그저 모든 책은 책일 뿐입니다.

 한 사람을 놓고 헌 사람과 새 사람으로 가를 수 없고, 할매 할배라고 헌 사람이 아닌 만큼, 책은 그저 책일 뿐입니다. 겉보기로 늙어서 늙은이일 뿐이요, 겉보기로 낡아서 헌책일 뿐입니다. 한자말로 ‘고서’라 적는 ‘옛책’도 매한가지입니다.

 우리한테는 얼마나 읽을 값이 있느냐를 살펴서 ‘나한테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느끼면 됩니다. 우리한테는 얼마나 갈무리해 놓을 뜻이 있느냐를 헤아려서 ‘나한테 알맞는 책’인가 아닌가를 돌아보면 넉넉합니다.

 대통령이든 청소부이든 똑같은 사람이고, 경찰이든 시위대이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교사이든 학생이든 똑같은 사람이며,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높은 사람이 없고 낮은 사람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 없고 못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빚어내어 즐기거나 나누는 책도 매한가지라, 나한테 걸맞는 책이냐 아니냐가 갈릴 뿐입니다.

 다만, 돈을 밝히는 사람이 있듯이 돈을 밝히는 책이 있습니다. 이름값 높이려는 사람이 있든 이름값 앞세우는 책이 있습니다.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듯이 권력을 움켜쥐려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옳게 살아가려 한다면 옳은 목소리 담은 책에 눈길이 갑니다. 우리 스스로 착하게 살아가려 한다면 착한 삶 담은 책에 손길이 갑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려 한다면 아름다운 꿈 깃든 책에 마음길이 갑니다.

 요즈음 잘 팔리는 책을 돌아본다면, 우리들은 아무래도 돈을 밝히고 이름값을 높이고 싶으며 권력을 얻어서 내 밥그릇을 꾹꾹 눌러 채우면 될 뿐이라고 여기지 않느냐 싶습니다.


.. 한글책을 다루는 고서점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때문에 일경의 주목을 더 받게 되었다. 금서목록을 고서점에 통보하는 이면에서 일제는 고서 거래가격까지 정해 유통을 통제하려 했다 … 일제는 고서점에서 불온서적이 거래되는 것을 통제했지만, 고서점은 그에 상관없이 그들 책을 매매했다. 단지 수요를 따르려는 뜻 말고도 고서점 주인이 한 권의 책에 담긴 저항의 전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전시파쇼체제 하의 조선에서 판금서적은 급증했지만 고서점은 금서의 유통경로로 자리를 잡았다. 구하기 힘든 금서는 고서점에서 찾는 게 독서인의 상식이었다 … 한글책만 다루는 서점에 대한 일경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일본책을 다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노선변경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한글책을 계속 유통시키기 위함이었다 … 역사책을 읽으며 민족의식을 고양해쓴데, 그 구입 경로는 고서점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역사라는 표현을 볼 때 그 책은 금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읽기는, 일제에 대한 독서의 저항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  (84, 87, 89, 90, 98쪽)


 더위를 식히려고 부채질을 하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이야기책 《고서점의 문화사》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경찰이 벌인 ‘불온도서 빼앗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일 ‘불온도서 빼앗기’는 해방 뒤에도 있었고, 이승만 때와 박정희 때와 전두환 때와 노태우 때와 김영삼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 때에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이명박 때에도 되풀이됩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압니다. 우리 나라에 ‘국가보안법’이 일본제국주의자 총칼로 들어선 다음부터 어느 한 해이고 보안경찰들이 ‘헌책방마실을 하며 불온도서 찾기’를 안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판이 끊어져 버린 책이라 할지라도 이삿짐에서든 도서관에서 내다버린 책에서든 ‘혁명과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좀더 거세게 외치는 줄거리’ 담긴 책은 헌책방에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이든 독재정권 때이든, 인문사회과학책방 일꾼뿐 아니라 헌책방 일꾼들은 이러한 책들한테 ‘제 임자 찾아 주기’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헌책방 일꾼들은 이런 책에 어떤 줄거리가 담겼는지 모른다 할지라도, ‘책을 불사르’거나 ‘책을 찢어버리’는 끔찍한 우격다짐만큼 잘못된 생각과 몸짓은 없다고 느낍니다. 왼쪽이라고 더 낫지 않으나 오른쪽이라고 덜 낫지 않으며, 왼쪽이라고 나쁜놈이 아닌 가운데 오른쪽이라고 좋은놈이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이고, 책은 모두 같은 책입니다.

 언제나 ‘책을 받아먹는 사람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자 한다면, 아무리 엇나가는 줄거리 담긴 책을 읽더라도 바르게 꾸리는 삶을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뚤어지게 살고자 한다면, 아무리 올바른 줄거리 담긴 책을 읽더라도 비뚤어지고야 맙니다. 우리 나라에서 책이 책답게 뿌리내리며 이어오기 힘들고 헌책방이 헌책방답게 자리잡으며 대물림하기 힘든 탓은,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옳은 삶을 붙잡거나 즐거운 삶을 함께 나누려 하는 뜻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 몹시 아쉬운 책 《고서점의 문화사》


 2007년에 이중연 님이 펴낸 《고서점의 문화사》는 책이름 그대로 ‘고서점’이라는 곳이 한국땅에서 어떤 문화 노릇을 하면서 어떠한 발자취를 남겼는가를 톺아보려고 하는 책입니다. 이중연 님은 《책, 사슬에서 풀리다(해방기 책의 문화사)》(2005)라든지, 《책의 운명(조선∼일제강점기 금서의 사회사상사)》(2001) 같은 책을 꾸준히 펴내면서, 우리네 ‘책 문화 역사’를 밝히고자 하는 분입니다. 이참에 낸, 아니 이태 앞서 낸 《고서점의 문화사》는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책방’ 발자취를 다룬 책입니다. 더욱이, 책방 가운데에서도 여느 새책방이 아닌 ‘헌책방’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무렵, 온갖 매체에서 이 책을 여러모로 칭찬하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 또한 책이 갓 나왔을 때에 장만해 놓았습니다. 다만,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지루하다고 느껴 덮어 놓기 일쑤였고, 덮어 놓았다가도 ‘고서점’을 다루는 책이라서 섣불리 집어치우거나 책꽂이에 쑤셔박지 못한 채 이태를 보냈습니다.


.. 신간 서적이 많이 간행되지 않았던 해방 직후에는 헌책방에 조선에 대한 문화 수요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경로가 되었다 ..  (290쪽)


 인천에서 개인 도서관을 열어 놓고 이럭저럭 자리를 잡는 가운데 우리네 도서관 문화와 흐름을 함께 돌아보는 동안, 이 책 《고서점의 문화사》도 새롭게 생각해 보려고, 지루함을 무릅쓰고 새삼스레 집어들어 끝까지 읽어 봅니다. 제가 개인 도서관을 연 2007년부터 ‘도서관진흥법’이 바뀌어, 저처럼 책만 많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개인도서관을 열지 못하도록’ 바뀐 한편, ‘도서관’이라는 이름조차 못 쓰도록 되었습니다. 또한, 대학교에서 도서관학과를 나와 사서자격증을 손수 따거나 사서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쓰지 않으면 도서관을 열 수 없다는 조항까지 생겼습니다. 도서관위원회라든지 무슨무슨 시설과 설비라든지 하는 숱한 조항을 들여다보면, 개인힘으로 도서관을 열자면 수억을 들여 새 건물을 짓지 않고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데, 이 나라에 ‘돈과 책을 함께 넉넉히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푸념을 좀 늘어놓았습니다만, 이런 푸념을 늘어놓을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는 그만큼 책 문화가 없고, 책을 보는 문화가 없으며, 책을 생각하는 문화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헌책방과 인문학책방과 만화책방을 즐겨찾는데, 우리 나라는 도시이든 시골이든 동네에서 가깝게 찾아가서 즐길 만한 ‘새책방’이 몇 군데 안 남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도서관은 더욱 꿈도 못 꿉니다. 기적의 도서관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큰돈 들여 전국 몇 군데에 새로 지어 주기는 하는데, 우리한테 ‘건물이 없’어 도서관을 못 갖추겠습니까. 전국 곳곳에 빈 건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도시에는 번듯번듯한 새 건물도 많으며, 시골에는 문닫은 학교도 많습니다. 고갱이는 무엇인가 하면, ‘널린 건물을 가득 채울 만한 책이 모자라다’입니다. ‘널린 건물에 한 번쯤 책을 채운다’ 할지라도 새롭게 나오는 책들을 꾸준하게 장만해서 갖출 ‘책 사들이는 돈이 모자라다’입니다. 그리고, 새책이라 하여도 쉽게 판이 끊어지기 때문에 헌책방에서 판 끊어진 책을 찾아야 할 텐데, 도서관 사서 가운데 헌책방마실을 힘껏 하면서 ‘사람들한테 빛과 소금과 웃음과 눈물이 될 책’을 찾아 주려고 팔벗고 나설 분이 드물다는 아쉬움입니다.


.. 그(민병산)는 마음 놓고 책을 살 정도로 돈이 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만일 주머니가 무거웠다면 동대문에서 헌책을 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했기 때문에 전기 수집에 나서게 되었다. 희귀한 고서, 국학 관련서는 보고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고, 한 권 값이면 다섯 권 여섯 권을 구할 수 있는 싼 전기 책을 수집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  (230쪽)


 이와 같은 세상 흐름을 돌아볼 때, 우리한테는 “고서점 문화사”뿐 아니라 “새책방 문화사”와 “동네책방 문화사”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책이 갈래마다 하나씩 있으면서, 우리네 ‘문화관광위 소속 국회의원’ 나으리께서 읽어 주셔야 할 터이며, 전국 공무원과 교사들이 이러한 책을 읽으며, 마을과 학교마다 ‘작은 도서관과 책방’ 마련하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애쓰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헌책방 문화사”를 하나 다룰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우랴 싶습니다. 가난한 책벌레한테든, 이냥저냥 싼 잡지 찾는 뜨내기한테든,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든, 세월과 세계를 넘나드는 온갖 책을 골고루 갖추면서 우리 앞에 펼쳐지는 헌책방이라는 문화쉼터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줄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랴 생각합니다.


.. 조선학 연구ㆍ확산은 고서의 발견ㆍ수집ㆍ확산과 함께했다. 한 권 책의 보존ㆍ발전에서 조선학이 전망되었다 … 최남선, 양주동, 방종현, 이희승, 이병기, 조윤제, 김태준, 이병도, 황의돈, 이인영, 김양선 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 국문학자ㆍ국어학자ㆍ국사학자ㆍ기독교사가를 아우른 공동 기반은 고서 수집이다 … 경성제대에서 가장 먼저 조선어문학을 전공했고 조선어문학회의 좌장이라 할 조윤제는 언론에 〈고서왕래〉를 연재할 정도로 전문적인 고서 수집가였다 ..  (204, 207, 216쪽)


 인문학 연구책인 《고서점의 문화사》는 ‘읽는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우리네 ‘옛책(고서) 다루는 가게’ 가운데 몇 군데를 살포시 짚어 보는 가운데, 소설책 한 권에 나타나는 ‘3대 헌책방 발자취’를 아주 살짝 ‘독후감 쓰듯’ 짚으면서 끝맺습니다. 처음부터 “헌책방 문화사”까지 아닌 “고서점 문화사”로만 못을 박은 탓인지 모르나, 우리 둘레에는 짧으면 서너 해, 길면 예순 해 가까이 헌책방 살림을 꾸린 분들이 아직 많이 살아 있고, 현장에서 땀흘리고 있습니다.

 대구에는 1951년부터 헌책방을 꾸린 할아버지가 오늘도 부지런히 땀을 흘리고 있고, 인천에도 1951∼52년에 ‘길바닥 헌책방’부터 해서 이제는 번듯한 가게를 꾸린 할아버지가 여러 분 살아 있으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부산 보수동 1세대로서 오래도록 그 골목을 지켜 오던 할아버지 한 분은 지난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 《고서점의 문화사》는 얼마든지 이러저러한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더 살피고 더 헤아렸다면, 테두리를 ‘고서점’으로만 맞추어 놓았다고 해도, 딱딱한 논문을 넘어설 책으로 꽃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딱딱한 논문이라 할지라도 줄거리가 한결 넉넉한 열매를 맺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듭니다. 그리고, ‘책 수집가 이야기’에서도 몇몇 이름난 분들에서 머물기보다, 또 일제강점기 무렵 지식인한테만 머물기보다, 우리 둘레 가까운 곳을 좀더 차근차근 바라보거나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이 책 《고서점의 문화사》는 한결 넉넉하고 아름다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고서점’이든 ‘헌책방’이든 ‘사라진 옛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서점이 되든 헌책방이 되든 오늘날에도 어엿하게 있는 곳이며, 어제도 오늘도 앞날도 바삐 땀흘려 일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날에도 뻘뻘 땀을 흘리며 애쓰는 사람들 발자취와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는 역사라 한다면, 이 무더운 여름날까지 기나긴 세월을 땀흘려 온 사람들 숨결과 손길을 담아낼 수 없는 문화라 한다면, 우리는 책을 왜 읽고 쓰고 나누어야 할까요. (4342.7.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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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와 언어 - 대만.인도.한국에서의 동화와 저항
손준식.이옥순.김권정 지음 / 아름나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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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14 ― ‘식민지 한국’에서 못 벗어나는 우리들 말글
 : 손준식ㆍ이옥순ㆍ김권정, 《식민주의와 언어》


- 책이름 : 식민주의와 언어
- 글 : 손준식, 이옥순, 김권정
- 펴낸곳 : 아름나무 (2007.8.20.)
- 책값 : 12000원



 (1) 말글과 우리 삶


 날마다 ‘우리 말 이야기’를 꾸준하게 쓰고 있습니다. 날마다 살림을 꾸리고 아기를 함께 보고 책도 읽고 도서관도 추스르고 다른 여러 일을 보느라 눈썹이 휘날릴 판인데, 그렇다 해도 언제나 몇 꼭지나마 우리 말 이야기를 쓰면서 살아갑니다.

 저한테 밥벌이일 수 있으나, 밥벌이라기보다 일거리이고, 또 일거리라기보다는 제 삶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말과 글을 생각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부터 우리 말 이야기 쓰는 삶에 제 모두를 맞추지 않았습니다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운데 좀더 단단하고 튼튼하게 이 한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 일을 하면서, 다른 누구보다 저 스스로 늘 쓰는 말과 글을 얼마나 제대로 안 살피고 있었는가를 깊이 느꼈습니다. 둘레에서 말글과 얽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당신들 말글을 하나도 안 돌보거나 내팽개치는지를 뚜렷이 느꼈습니다.

 국어학자만이 아니라, 국어교사만이 아니라, 기자만이 아니라, 작가만이 아니라, 책쟁이만이 아니라, 또 지식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매한가지입니다. 연예인이나 노래꾼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꾼이나 공무원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한결같이 말글로 우리 뜻을 펼치고 나누고 일을 벌입니다. 막일을 하는 공사판 일꾼이라 하여 말글 하나 없이 일을 하겠습니까. 막일판에는 막일판 말이 있습니다. 학자님들이 좋아하는 ‘어려운 말’로 하자면 ‘건축 전문 용어’라 하는.


.. 학부모들은 ‘식민지 사회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영어를 선호했고, 그런 수요자의 요청으로 지역어로 가르치는 지방 초등학교에서조차 영어를 학과목에 포함했으며, 때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개편되기도 했다 … 1930년대 간디가 제창하여 도입된 실생활에 근거한 ‘기초교육’은 소득과 사회적 상승이동이 전제되는 성공의 언어-영어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다 ..  (88, 93쪽)


 출판사에서 일할 때, 또 출판사 바깥에서 출판사 사람들을 만날 때, 예나 이제나 까마득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모두들 당신들 일터에서 너무 많은 일에 얽매인 나머지 당신 삶이며 말글이며 옳게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어느 곳이 안 그러겠습니까만, 책마을에도 숱한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편집을 하든 디자인을 하든 제본을 하든 인쇄를 하든 무얼 하든, 하나같이 일본말로 일을 합니다. 그리고, 늘 일본말로 일을 하면서 일본말로 생각하고 일하는 당신들 모습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책 하나가 날마다 수없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제가 몸담았던 곳은 퍽 생각깊고 괜찮다는 소리를 듣는 출판사였습니다. 그러나 이곳 또한 다른 출판사와 매한가지로, 사장님부터 관리영업 하는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일본말 버릇을 떼어내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길든 탓이 있는 한편, 남 앞에서 꿀리기 싫고(일본말을 전문용어인 듯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말을 안 쓰면 꿀린다고 느낍니다), 괜히 ‘새로운 말(일본말을 털어낸 우리 말)’을 배우는 데에 품과 짬을 바치기 싫은 가운데, 처음부터 이런 데에는 아무런 마음이 없습니다.

 한낱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할까요. 그저 다달이 회사일 알맞게 해 주고 다달이 빠짐없이 일삯 받아 가면 그만이라고 여긴다고 할까요.


.. 실제 신식교육을 받은 자제들 중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투신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식민통치의 유력한 협력자가 되었다 … 식민지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타이완의 아동과 청소년들은 학교생활 적응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성인들은 취업과 생활상의 필요에 의해 일어를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일어는 사회적 신분상승과 입신양명의 필수능력이 되었으며, 일어교육을 받은 타이완인 가운데 일어로 쓴 문학작품이 출판되거나 일본 유명 잡지의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도 생겨났다 … 식민지인을 지배국의 언어로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매콜리가 영어교육을 받은 인도인이 머지않아 신심이 가득한 ‘갈색 피부의 기독교인’, ‘갈색 피부의 영국인’이 될 것을 굳게 믿은 데서 드러난다. 그의 말은 영어교육을 받은 인도인이 ‘피와 피부는 인도인이지만, 견해와 감각 그리고 도덕과 지성은 영국인’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신뢰에 근거했다. 그는 영어교육을 통한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이용의 추구가 용이할 것이라고 믿었다. 통치를 받는 ‘갈색 피부의 영국인’은 자연스럽게 영국산 상품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30, 34∼35, 80쪽)


 바쁘고 힘드니까 어쩔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쁘고 힘드니까 아무 말이든 함부로 해도 되는가 궁금합니다. 바쁘고 힘드니까 아이들을 대충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가르쳐도 되는가 궁금합니다. 바쁘고 힘드니까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충 몽둥이찜질을 하고 교칙으로 옭아매면서 성적만 잘 나오게 길들이면 되는가 궁금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느라 바쁠까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기에 그리도 힘이 드는가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뜻은 어디에 있고, 우리한테 목숨 하나 내려진 값은 어디에서 찾는가요.

 오늘 아침에는 ‘聖스럽다’와 ‘거룩하다’ 두 마디를 헤아리는 가운데, ‘屈하다’와 ‘굽히다’ 두 마디를 곰곰이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네 마디를 낱낱이 돌아보는 데에만 해도 여러 시간이 걸렸습니다. 온갖 국어사전을 뒤적이고, 사람들 말씀씀이를 살피며, 제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마디를 되짚으면서, 우리가 오늘과 앞날에 걸쳐 가장 알맞고 즐겁게 쓸 말투와 말결을 찾느라 어느새 새벽이 밝고 아침해가 뜨고 골목길이 시끄럽습니다. 이제 아기가 깨어날 때가 다가오고, 아기한테 아침을 어떻게 먹일까 걱정해야 하며, 오늘 하루는 또 무슨 일을 하면서 보낼까 하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허울좋게 ‘우리 말 다듬기’를 한다는 저부터, 말마디 한둘을 붙잡는 데에 온 하루가 꼬박 들어갑니다. 그러니, 따로 우리 말글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우리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분들로서는 쉽게 엄두를 못 낼 만하다 싶습니다. 신문기자 가운데 당신 기사를 쓰면서 국어사전을 열 번쯤 뒤적이는 사람이 있기는 있겠습니까. 책 열 권 읽어 보고 쓰는 사람이 있기는 있겠습니까. 열 사람쯤 만나 보고 쓰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요.


.. 일제 때 학교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타이완인은 대화시 많은 일어 어휘를 섞어야만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 영국은 영어교육과 영문서적을 통한 인도인의 동화에 만족하지 않고 인도의 고전어인 산스크리트를 연구하여 식민주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인도의 제도와 전통을 평가절하하는 정치작업도 병행하였다 … 영어와 서구를 가르치는 중등학교와 대학의 설립이 줄을 이었다. 기존의 교육기관은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개편되었고, 유럽과 영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서양 정치이론을 소개했다. 영어교육은 식민통치를 이해하고 충성을 바칠 인재들을 창출하기 위해 물질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 도덕적 진보를 칭송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와 대학에 들어간 인도 젊은이들은 점차 영국에 동화하였다. 영어와 서구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은 1857년 세포이항쟁에 가담하지 안고 식민정부를 편들었다. 영어를 배운 그들은 기득권이 걸린 식민체제를 지지하였다 ..  (43, 83, 84쪽)


 대여섯 살 아이들이 쓰는 말마디는 500∼700 낱말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여덟아홉 살 무렵이면 1200∼2500 낱말쯤을 쓴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면 5000 낱말을 넘어서고, 초등학교 5∼6년에 이르면 1만∼2만 낱말을 아우른다고 합니다. 중학생이라 할 열넷∼열여섯일 때에는 5만을 넘어갈 테고, 고등학생이라 할 열일곱부터는 10만쯤 될 테지요. 여느 어른은 20만 낱말쯤을 ‘알아듣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말풀이를 줄줄 읊을 만큼 ‘안다’가 아니라, 이런 낱말 저런 낱말을 들려주었을 때 ‘어렴풋이 뜻이나 느낌을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이런 흐름을 조금이나마 짚을 줄 안다면, 어른문학을 하는 이들이 섣불리 어린이문학을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20만 낱말을 아는 머리와 가슴으로 500 낱말이나 1000 낱말을 아는 아이들 눈높이에 알맞춤하게 문학을 한다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을 뿐더러, 알맞지 않습니다. 어린이 눈높이라 한다면, 500 낱말만 가지고도 우리 삶터와 사람과 세상을 두루 읽어내고 헤아리고 꿰뚫고 나눌 수 있도록 내 매무새와 눈길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지식인 가운데, 우리 문학쟁이 가운데, 우리 교사 가운데, 우리 부모 가운데, 이와 같이 아이들 눈높이에 따라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괜히 ‘쉬운 말’을 쓰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가 모두 아이큐가 아주 높거나 똑똑하지는 않으니까요. 더구나 모든 사람이 대학생입니까? 모든 사람이 대학원까지 다녀야 합니까? 초등학교만 나오고 사회살이를 하면 안 됩니까? 아예 아무 학교도 안 다니면서 우리 세상을 슬기롭고 씩씩하게 살아가면 안 됩니까?

 말이란, ‘말하는 사람 자리’가 아닌 ‘듣는 사람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글이란, ‘글쓰는 사람 자리’가 아닌 ‘읽는 사람 자리’에서 써야 합니다.

 나 혼자 아는 이야기를 용두질을 하듯 주절거리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내가 먼저 알아챈 이야기를 어깨동무를 하듯 살갑고 구수하게 나누는 말이나 글이 되어야 합니다.


.. 정신적 측면의 중요성을 간파한 일본은 일본어를 식민사회의 동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식민사회에서 언어는 식민통치 권력과 차별의 정치와 연계된 정신적 지배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민지 사회에서 언어문제와 관련된 정책은 늘 가시적인 억압인 물리력을 동원하기보다 비가시적인 장치로, 이른바 ‘문명화’라는 인도주의적 프로그램으로 위장하여 사회 통제의 틀을 조성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 (식민지 정부는) 일본어는 근대사회의 무지몽매한 야만에서 깨어나 근대적 지식을 학습하고 계몽하는 문명화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문명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고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수단임을 역설했다. 일제는 강점 말기까지 시종일관 이런 논리를 주장했다 … 일제는 3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조선민족이란 명확한 자각심을 갖고 있는 조선인을 어떻게 일본 천황에게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의 일본국민으로 동화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장기적으로 일본어야말로 그러한 세계관과 이념을 전달하고 내면화시킬 최적의 수단임을 확신하며 일본어 동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다 ..  (131, 136, 138쪽)


 머리를 식히거나 몸을 쉬려고 보리술을 사다 마십니다. 나라안에서 빚은 보리술을 마신답시고 가게에 들르는데, 가게마다 놓고 있는 어느 보리술이건, 한글 이름이란 없습니다. 모조리 알파벳을 드러내어 적습니다. 나라밖으로 내다 파는 보리술 같지는 않지만, 나라밖으로 내다 판다는 보리술이라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을 좋아하거나 섬기는 모습이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은 마땅히 알파벳으로 영어 이름을 적습니다. 독일사람은 독일글을 붙이고 프랑스사람은 프랑스글을 붙이며 벨기에사람은 벨기에글을 붙입니다. 중국사람 또한 중국글로 딱지를 붙입니다. 그런데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은 한국글과 일본글을 좀처럼 안 붙입니다. 그나마 일본사람은 일본말로라도 이름을 짓는데, 한국사람은 한국말로조차 이름 지을 생각을 안 합니다.

 이런 매무새는 자동차 앞에서도 똑같고, 가전제품 앞에서도 거의 같으며, 과자 이름 앞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옷이름이나 신발이름은 어떻습니까. 손전화에 붙이는 이름이나 아파트에 붙이는 이름은 어떠하지요? 관공서와 학교에서는 어떤 말마디로 우리 삶을 다스리려고 합니까?


 (2) 힘있는 사람 말과 힘여린 사람 말


 제가 하는 ‘우리 말 다듬기’에서는 웬만한 ‘한자말’은 다 덜어내려고 합니다. 작은따옴표를 ‘한자말’에 달았습니다만, 곰곰이 따지면 한자말이라고 덜어내야 하는 말이 아닙니다. ‘웬만한’ 한자말일 때에 덜어내야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한자말이든 일본말이든 미국말이든 서양말이든 중국말이든, 우리가 ‘꼭 써야 할’ 말이라면 어김없이 받아들일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살살이꽃’이라는 우리 이름이 있습니다만, ‘코스모스’ 같은 꽃이름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렇게까지 얄궂지는 않습니다. 저는 ‘셈틀’로 다듬어 쓰지만 ‘컴퓨터’를 영어라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냥 써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찾기’를 굳이 ‘검색(檢索)’으로 적어야 하겠습니까? ‘고침/고치기’를 구태여 ‘수정(修正)’으로 적어야 합니까? “버스에 타다”면 되지 “버스에 승차(乘車)하다”라 해야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자전거를 타다”면 넉넉하지 “자전거를 이용(利用)하다”라 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웬만한’ 한자말을 덜어내려고 합니다. 털어내려고 합니다. 씻어내려고 합니다. 벗어던지려고 합니다. 솎아내려고 합니다. 몰아내려고 합니다.


.. 타이완총독부의 교육정책은 타이완인 자체를 진심으로 교육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타이완인들이 일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게 하여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는 데 최종 목적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한문 교육은 단지 타이완인 학부모가 자녀를 공학교에 보내도록 유혹하는 일종의 미끼에 불과했다 … 식민당국은 타이완인을 ‘충량(忠良)’한 일본신민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일어 보급을 시정의 최대 목표로 삼고, 한문화의 생장 기회를 제거하고자 … 타이완 각지에서 올라와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모인 도시 학교에서 일어는 수업시간만이 아니라, 아이들 간의 놀이와 교제에 필요한 공동 언어였다 ..  (19, 21, 26∼27쪽)


 우리는 ‘어느 만큼 쓸 만해서’ 쓰는 바깥말을 들여와서는 안 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참으로 쓸 만할’ 때 비로소 들여와야 한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쓸 만하’고 ‘더없이 쓸 만하’지 않고서야 들여와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시니컬’이니 ‘아우라’니 ‘태스크 포스’니 하는 말을 왜 써야 할까요? ‘에너지’야 이제는 영어로 느끼기 어려운 들온말이 되었습니다만, ‘태양에너지(太陽energy)’ 같은 말마디는 얼마든지 ‘햇볕힘’으로 걸러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사진쟁이들은 사진을 놓고 ‘사진’이 아닌 ‘포토’라 하고, 스스로를 가리켜 ‘사진가’나 ‘사진작가’가 아닌 ‘포토그래퍼’라 할 뿐더러, 아예 알파벳으로 끄적이기까지 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한테는 ‘사진기-필름사진기-디지털사진기’입니다. ‘카메라-필름카메라-디지털카메라’가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 삶으로 받아들여야 할 낱말이 아니라면 한자로 된 말이든 알파벳으로 된 말이든 물리칠 노릇입니다. ‘사진기’라는 낱말 하나 들여왔으면 이 낱말로 넉넉하지, 다시금 ‘카메라’로 고쳐서 두 가지를 뒤섞어 쓸 까닭이란 없습니다. 이럴 바에는 우리 깜냥껏 우리 말로 ‘사진기’를 풀어내는 데에 힘을 쏟고 땀을 바쳐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식민지배자의 언어를 가르침으로써 식민지인을 그들의 사회와 전통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식민지배의 문화구조로 흡수하고 동화하려면 목표는 “일단 전함과 외교관을 보낸 뒤에 영어교사를 보낸다.”라는 익명의 영국인 국제기관 책임자의 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 고조된 배일감정과 달리 상당수의 조선인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이에 편승하고 있었다. 일본인이 성립한 강습소ㆍ야학에 대한 호응이 당시 이러한 상황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 1910년 이전의 일본어 보급은 친일세력의 육성을 통한 침략의 일환에서 추진이 이뤄지고 있었다 ..  (73, 140쪽)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슬기를 빛내어 우리 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에는 모래 한 줌만큼이나마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사회가 그렇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그렇습니다. 문화와 예술이 그러하고, 교육이 그렇습니다. 서울 강남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골마을이나 도시골목이나 마찬가지인데, 집집마다 아이들한테 영어를 얼마나 일찍 더 많이 가르치느냐에 마음쏟지, 아이들한테 얼마나 싱그럽고 아름다운 자연을 선사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착하고 바르고 훌륭하고 튼튼하고 씩씩하게 크느냐에는 마음쓰지 않습니다.

 그나마 저는 어릴 때 ‘밥을 가려먹어’ 몸이 안 좋은 탓에 공부보다는 ‘씩씩하고 튼튼하게 커 다오’ 같은 말을 더 자주 들었고, 틈만 나면 골목길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뛰놀았습니다. 이제는 허물리고 없는 인천공설운동장 안쪽 빈터에서 동무들하고 야구놀이를 했고, 대나무 낚시대를 500원에 사서 바닷가 갯벌로 망둥이 낚시를 다니곤 했습니다.

 집에 전집책이 몇 가지 있기는 했으나, 이 책을 읽기보다는 바깥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했고, 해질 무렵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동무들하고 놀다가 선생들한테 쫓겨나기 일쑤였습니다.

 이리하여 제가 쓰는 말은, 또 제가 ‘우리 말 다듬기’를 하는 바탕으로 삼는 말은, 이렇게 신나게 뛰놀던 어릴 적 제 삶에 따라서 살피고 헤아리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동무들하고 나누던 말마디와,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들려주던 말마디 가운데 가장 싱그럽고 살갑다고 느끼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가장 어린 사람들 말마디를 아끼려 하고, 가장 적게 배운 사람들 말마디를 돌보려 하며, 가장 힘이 여린 사람들 말마디를 보듬으려 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한자말이든 미국말이든 또 무슨 다른 바깥말이든, 한결같이 힘이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가방끈으로 힘이 있든 돈으로 힘이 있든 권력자리에서 힘이 있든 하는 사람들은, 여느 사람들 말마디를 쓰지 않습니다. 어린이들 말마디를 쓰지 않고, 늙은이들 말마디나 달동네 사람들 말마디를 쓰지 않아요. 이를테면 반지하나 옥탑방을 모르면서 ‘서민 집 정책’ 읊는 정치꾼들은 ‘서민’이라 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살림집을 돌보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제대로 모르면서 정책을 꾸리는 셈인데, 많이 배워서 안다는 분들(지식인이나 공무원) 또한 여느 사람 삶자리를 거의 모르는 가운데 당신들 눈높이에서만 말마디를 내놓습니다.


.. 우선 조선총독부는 일본어의 명칭을 ‘국어’로 변경하고, 조선인의 언어를 ‘조선어’로 낮추는 동시에, 이를 하나의 ‘지방어’ 내지 ‘주변어’로 규정했다 … 당시 일본어 습득에 필요한 교재 확보가 쉽지 않았던 반면, 신문 구독은 지방관에 의해 마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널리 이루어졌다. 신문 보급은 식민정책을 선전ㆍ홍보할 뿐만 아니라 일본어 보급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  (140, 142쪽)


 우리는 지난날 오래도록 중국한테 식민지처럼 눌려 왔습니다. 이른바 ‘사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삶과 문화와 살림살이 죄다. 그 기나긴 사대주의를 거친 다음 일본제국제의한테 짓눌리며 식민지로 지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미국한테 정치권력을 내어주면서 경제며 사회며 정치며 문화며 교육이며 예술이며 과학이며 기술이며 송두리째 얽매인 삶을 꾸립니다.

 이 세 가지 식민지 가운데 일제강점기만 ‘대놓고 식민지’였고, 대놓고 식민지였던 그무렵 쓰던 말을 놓고만 ‘일본말 찌꺼기 털어내기’를 말할 뿐입니다. 오래도록 사대주의였던 중국에서 들여온 말과 글을 털어내어 우리 말과 글을 찾는 데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또한, 모든 곳에서 미국말이 스며들고 미국 문화가 배어드는 모습을 느끼지 않거나 좋게만 느끼며 조금도 씻어낼 마음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 찾는 데에는 눈을 두지 않고 생각을 쏟지 않으며 뜻을 새기지 못합니다.


 (3) 《식민주의와 언어》라고 하는 책은


 군대힘으로 다른 나라를 억누르면서 돈-땅-사람-자연을 어질러 놓고 울궈간 힘센 나라들이 어떻게 ‘식민지로 삼은 나라를 옭죄려 했는가’를 말글 테두리에서 살핀 책 《식민주의와 언어》를 읽습니다. 이 책은 세 갈래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먼저, 대만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 다음은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 그리고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

 대만과 인도와 한국은 퍽 긴 나날에 걸쳐 식민지로 눌려 있었고, 식민지로 눌려 있는 동안, 지식인이건 여느 사람이건 ‘식민지 나라에 마주하는 매무새’가 꼭 닮았다고 합니다. 군대힘이 없어 식민지가 되었으니 하루아침에 다시 홀로설 날을 맞이하기 힘들다고 여기며 ‘권력자(식민주의자)’한테 빌붙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힘과 돈과 이름을 누리는 사람들은 굳이 ‘해방-독립’을 꿈꾸지 않을 뿐 아니라, 힘과 돈과 이름이 없는 사람들조차 해방이나 독립을 꿈꾸지 못하는 가운데, 낮은자리에서 솟구쳐오르는 저항이 있기는 해도 높은자리 사람들은 이 흐름에 어깨동무하지 못하곤 했답니다.

 그나저나 이 책 《식민주의와 언어》를 읽는 마음이 썩 가볍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쓰인 온갖 말글은 다름아닌 우리가 지난날 일본제국의자한테 억눌려 있을 때 그네들이 쓰던 낱말이요 말투이거든요.


.. 당초 일어 학습에 부정적이었던 타이완인들이 유창한 표준 일어 사용을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채 50년도 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영어를 배운 인도인은 지배자의 문화와 가치를 우수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미래와 실용성ㆍ우월성과 연계되지 않는 자신들의 과거와 언어를 가치없는 것으로 폄하하였다 … 영어로 서구의 근대를 배운 그들은 모국어에서 소외되고 식민지배자가 소지한 개화와 진보, 근대성을 선망했다 ..  (35, 98∼99쪽)


 이 책을 쓰신 분들만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에 길들여 있지 않습니다. ‘식민주의와 말’을 다루는 분들이라고 해서 말마디를 남달리 추스르거나 다스릴 수 있지 않습니다. 여느 학자와 마찬가지이고 여느 교수와 마찬가지이며 여느 지식인하고 똑같습니다. 우리 삶터는 이와 같은 말마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생각은 이와 같은 말마디로 주고받습니다. 우리 넋과 얼은 이와 같은 말마디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이들이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엘리트 지식인으로 자리잡아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였고, 그들에게 내면화된 식민지 의식들이 각종 문화적 담론 및 매체들을 통해 재생산 및 복제되고 있는 점을 보면, 일제의 언어 동화 정책은 장기적으로 성공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174쪽)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어느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책 끄트머리에서 말하듯 “식민지 일본 언어 동화 정책은 멀리 내다보았을 때 성공”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흐름을 헤아리는 사람이 몹시 드물고, 이런 흐름을 헤아렸다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과 삶과 말을 고치려 하는 사람은 더욱 드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학문으로 다루는 책’은 나올지온정, 하나하나 낱낱이 삭이고 가다듬고 갈고닦으면서 우리 스스로 달라지거나 새로워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예 책으로 그칩니다. 그저 지식이나 교양으로 머뭅니다. 한낱 학문에서 맴돕니다. 책도 좋고 지식과 교양도 좋으며 학문도 좋습니다만, 삶이라는 테두리에서 우리 온몸과 온마음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흐른 다음에는, 《식민주의와 언어》에서 다룬 ‘인도와 영국’ 이야기가 ‘한국과 일본’ 또는 ‘한국과 미국’ 이야기하고 한동아리처럼 다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겉으로는 독립된 나라 한국이지만, 속으로는 홀로서기까지 한참 먼 한겨레입니다. (4342.7.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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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윤준호 외 지음 / 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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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사람은 왜 자전거를 안 탈까?
 [잠깐 읽기 47]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 책이름 :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 글 : 윤준호, 반이정, 지음, 차우진, 임익종, 박지훈, 서도은, 조약골, 김하림
- 펴낸곳 : 지성사 (2009.7.30.)
- 책값 : 13800원



 (1) 서울에서 자전거 타는 일이란


 두어 달쯤 앞서, 서울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 일꾼 자가용을 얻어타고 마실을 한 적 있습니다. 늘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던 길을 자가용으로 움직이니 몹시 새삼스러웠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아홉 해를 지내는 동안 자전거 다음으로 지하철을 가장 많이 탔고, 버스는 아주 드물게 탔으며, 택시는 훨씬 드물게 탔는데, 자가용은 더더욱 드물게 탔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몸에 땀을 줄줄 흘리지 않고 자가용을 타니까,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 무게를 느끼지 않고 언덕길을 사뿐히 올라가니까,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는 데에도 시원하게 앉아서 다리쉼을 할 수 있으니까,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좋았습니다. 힘이 안 든 대목에서는.

 그렇지만 힘이 안 들기 때문에 ‘힘을 덜 쓴 대목에서 좋다’뿐이지, 이렇게 힘 안 빼고 다니는 일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한 권 사서 읽어도 그 책에 걸맞게 값을 치르면서 장만하여 읽어야 제맛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으려고, 아기 돌보고 빨래하고 집살림 꾸리는 틈틈이 졸린 눈 비벼 가며 읽어야 참맛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 보리술 한 잔을 거저로 얻어마셔도 짜릿하겠으나, 저 스스로 땀흘려 일해 번 돈을 치르며 사마시는 보리술 한 잔 맛에는 견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자가용 마실은 자가용 마실대로 맛과 멋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자가용 마실도 재미있습니다. 부산 광안다리는 자전거로 건널 수 없는 한편, 걸어서도 건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길은 차를 얻어타고 지나면 새삼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만, 저는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길에서 보는 모습이라든지,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닐 수 없는 데에서만 보는 모습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 결국 나 혼자 조심하고 나 혼자 열심히 자전거를 탄다고 이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을 듯 보였다. 인터넷의 자전거 동호회는 그렇게 인기가 높건만 한 발짝만 바깥으로 나가면 일반인들은 자전거에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자전거를 안전하고 즐겁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동호인이 아닌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28쪽/윤준호)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던 지난날, 처음 몇 해는 지하철을 곧잘 탔지만, 지하철을 타면서 흐뭇하거나 기뻤던 일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제법 먼길을 천 원 안팎이면 실어다 주니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처음 서울에서 살림을 꾸리던 1995년에는, 이때 제 일터이자 살림집이었던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1998년과 1999년에도 웬만하면 신문배달 자전거로 움직였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독립문이나 종로까지는 으레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이문동에서 미아리로 가든 상계동에 가든 언제나 자전거와 함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립문이며 종로며 신촌이며 미아리며 상계동이며 하는 헌책방을 다녀올 때에는, 신문배달 자전거 짐받이에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친친 묶어서 신나게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8월 8일부터 신문배달 일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가던 때부터는 자전거하고 멀어졌습니다. 주머니가 가난하여 자전거를 살 돈이 없기도 했고, 일터에 ‘출판사에서 쓰는 자전거’가 있지도 않았으니 타고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출판사에 자전거 한 대 있었다면, 이문동에서 서교동으로 자전거로 오갔으리라 생각합니다. 2000년에는 일터하고 가까운 종로구 평동으로 살림집을 옮겼는데, 얄궂게도 이때부터 다닌 출판사는 김포공항 쪽에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걸어서 일터를 다니려던 꿈(종로구 평동에서 서교동으로)을 접고 지하철을 탔는데,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신촌이나 외대 앞이나 청구동이나 용산 쪽 헌책방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으레 걸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길을 가방에 책을 잔뜩 채우고 두 손에는 끈으로 질끈 동여맨 책꾸러미를 영차영차 땀 뻘뻘 흘리면서 신나게 걸었습니다. 가방에 채우고 두 손에 든 책짐은 사십 킬로그램 남짓이 되기 일쑤였지만, 한 시간 남짓 걷는 밤길이 고단해 쉬엄쉬엄 쉬면서 돌아오곤 했지만, 왠지 지하철을 타기보다는 팔힘이 쪽 빠지더라도 걷는 길이 좋았습니다.

 때로는 노량진부터 한강다리를 넘는 길을 걷기도 했는데, 이렇게 길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낮에도 그렇고 밤에도 그렇습니다. 길을 거닐며 늘 느꼈지만, 이 길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거님길은 언제나 들쑥날쑥이거나 전봇대나 거리나무가 걸리적거리도록 놓여 있거나, 으레 공사중 간판이 붙으면서 어지럽혀져 있거나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보도블럭 까뒤집기’는 숱하게 보았어도, ‘울퉁불퉁하고 깨진 거님길 손질하기’는 거의 못 보았습니다.


.. 자동차 운전자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서 유리창 너머로 텔레비전 화면 같은 세상만을 보며 계절과 날씨와 공기의 변화를 에어컨과 히터와 공기청정기로 막아 보려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행위 때문에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은 더욱더 가속화되고, 운전자 스스로는 둔감하고 허약하고 재미없어져 버릴 뿐이다 … (자동차로) 시속 60킬로미터로 시내를 관통하며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서울은 언제나 최고로 빠른 도시였다. 거리의 옷차림들, 건물에 도배된 최신 광고들,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유행들, 지하철 창밖으로 휙휙 달려가는 건물들, 그리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확 시야를 막아서는 빌딩들, 주상복합 건물들, 아파트 단지들, 서울은 필요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도시다 ..  (109쪽/지음), (153쪽/차우진)


 일터를 쉬는 주말에는 으레 처음부터 ‘전철도 버스도 안 탄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아침 열 시쯤 길을 나선 다음 일고여덟 시간쯤은 넉넉히 거닐며 서울 시내를 두루 쏘다녔습니다. 어느 골목 안쪽에 ‘아직 내가 모르는 헌책방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온몸이 땀범벅이 되곤 했는데, 점과 점으로 집하고 책방만 오가는 움직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부터 책방 사이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써 찾아간 책방이 쉬는 날이었든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든 마음이 허전하거나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고 지고 하는 흐름은 자연스러운 삶과 죽음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두 다리로만 걸어다니다가 2002년에 비로소 푼푼이 모아 놓은 돈으로 제 자전거를 한 대 마련했고, 이때부터는 두 다리로도 다니고, 때로는 자전거로도 다니면서 더 멀리 서울 시내 골목을 쏘다닙니다. 다리쉼을 할 때면, ‘사진쟁이 김기찬 님도 이 골목을 거닐며 이쯤에서 다리쉼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리에 날개를 달고 보니, 저로서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 서울이기는 해도 골골샅샅 살갑고 애틋한 곳이 참으로 많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재개발되어 사라진 숱한 골목길 아름다운 모습을 두 눈으로 담았고 두 다리로 느꼈으며 두 팔로 껴안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이태 뒤에는 서울을 떠나 충주 산골마을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울 시내를 타고다니던 자전거는 선배한테 물려주고, 저는 반으로 접는 자전거를 장만해서 고속버스에 싣고 다닙니다. 첫 한 해는 고속버스 짐칸 신세인 자전거였으나, 그 이듬해부터는 ‘고속버스로만 다닐 노릇이 아니라 국도를 자전거로 다녀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태째 되는 해부터 자전거로 한 번 길을 뚫었고, 이제부터는 충주와 서울을 자전거로 오가는 삶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퍽 먼길을 한 주에 한 차례씩 자전거 나들이를 하고 보니, 서울 시내를 자전거로 달리는 일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뭐, 하루에 너덧 시간을 달려 충주에서 서울을 오가는데, 서울 시내 한두 시간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곰곰이 헤아려 보면, 먼길을 달리고 나서 서울 시내 달리기는 쉬운 달리기임을 느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러 해에 걸쳐 신문배달을 자전거로 했기 때문에 다리에 힘이 많이 붙어서 한결 손쉽고 즐겁게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바탕이 있으니,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릴 생각을 품을 수 있었겠지요.


.. 나도 자전거를 좋아하긴 하지만, 자전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까이하기 좀 꺼림칙하다. 깃발 꽂은 비싼 새 자전거를 타고 떼로 몰려다니며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아저씨들과 그들이 여기저기 뱉어 놓은 이야기들이 불편하다. 물론 좋은 자전거는 좋은 자전거다. 동어반복이니 틀릴 수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오래 듣는 것은 좀 피곤하다. 결국 비싸니까 좋더라는 이야기에 불과하잖은가. 그건 당연한 건데 왜 따로 말이 필요한지 난 모르겠다. 단지 돈을 좀 썼다는 말에 불과하다 ..  (212쪽/박지훈)


 그러나, ‘한국에서 서울처럼 자전거를 달리기 좋은 곳은 더 없음’을 느낀 때는, 충주부터 서울까지 먼길을 달리던 때부터입니다. 자전거마을 상주도 있고, 땅이 제법 판판한 영동 같은 곳도 있으며, ‘발바리 떼잔치질’ 역사가 깊은 수원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한국땅에서 자전거를 타기 가장 좋은 곳은 서울입니다. 그리고, 한국땅에서 자전거를 가장 안 타는 곳 또한 서울입니다.

 웬만한 여느 도시나 시골에서는, 웬만한 볼일을 보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도 됩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걷는 일은 ‘시간 버리기’가 아니라 ‘길 즐기기’이며 삶입니다. 흔히들 ‘그 길을 뭐 하러 두 시간이나 걸어가며 시간을 버리느냐’고 합니다만, ‘두 시간 거닐 길을 자가용으로 십 분 만에 씽 달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자가용을 장만하느라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할 뿐더러, 자동차를 굴릴 기름값을 버느라 더욱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매한가지가 됩니다. 애써 더 많은 돈을 벌고자 ‘내가 하고프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돈벌이에 시간을 바치느’냐, 아니면, 나 스스로 내가 하고픈 일을 골라서 하면서 즐겁게 길나섬을 하느냐로 갈립니다.

 서울이라는 곳은 길이 곳곳으로 잘 뚫려 있고, 어디로든 손쉽게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시골과 서울이 다른 대목은, 시골길은 걷기에 알맞고, 서울길은 자동차한테 알맞습니다. 그런데 길이 곳곳으로 잘 뚫린 서울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자동차가 제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자동차 계기판에 20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고 새겨져 있어도 시내에서 100킬로미터 넘게 달릴 일이란 없습니다. 시내에서 30킬로미터로만 달릴 수 있어도 잘 달리는 셈입니다. 이제 서울은 버스길을 따로 뚫어서 버스는 좀더 빨라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느 자전거로 설렁설렁 달릴 때하고 견주어도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치솟는 찻삯을 헤아리면, 버스도 지하철도 하나도 안 빠르고 하나도 안 값싼 차편인 셈입니다.

 더구나 맛집이니 멋집이니 찻집이니 술집이니 책집이니 극장이니 공연장이니 옷집이니 뭐니뭐니 하는 곳은 모두 길가에 있거나 골목에 있습니다. 차 댈 곳이 넉넉한 데가 드문드문 있을 터이나 차를 대느라 보내야 하는 시간과 품이 얼마나 많으며, 차 대며 치르는 삯은 얼마나 많습니까. 자전거로 움직이며 마땅한 곳에 착 잠가 놓으면, 또는 자그마한 접는 자전거를 착착 접어서 날라 놓으면, 서울에서는 문화며 예술이며 장보기이며 모든 일을 훨씬 빠르고 가볍고 신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서울에는 한강 자전거길이 있어서 자전거 즐기기에 좋다고들 하지만, 저한테는 한강 자전거길은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저한테 한강 자전거길은 ‘지루한 고속도로’와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오로지 앞으로 달리도록만 하는 길이 한강 자전거길입니다. 가끔가끔 널따란 쉼터가 나오지만, 훨씬 긴 길은 자전거 두 대가 겹쳐서 달리면 아슬아슬한 좁은 자리입니다. 이 좁은 자리에 ‘걷는 사람-강아지 데리고 나온 사람-인라인 타는 사람-달리기 하는 사람-자전거 타는 사람’이 뒤죽박죽 섞여야 합니다. 빠르기를 짜릿하게 즐기고픈 사람이든 설렁설렁 타고 싶은 사람이든, 자전거를 자전거답게 즐기기 어려운 데가 한강 자전거길입니다.

 서울이 자전거 타기에 좋다면, 다름 아닌 찻길이 잘 뚫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든 다 이어진 찻길들, 고가도로이든 지하도로이든 이 찻길들 한쪽 50센티미터만 자전거한테 내어준다면, 서울이라는 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자전거 문화를 높이 이루며 널리 나눌 수 있는 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급한 일이 있지 않은 한 파리를 자전거로 달릴 때는 속도를 내지 말자. 왼편으로 센강이 흐르고 오른편으로 기차역 형태를 간직한 오르세 박물관이 아름다운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무에가 급할쏜가! 파리의 땅 아래에는 갈 길이 급한 사람들이 가득 찬 메트로가 달리고 땅 위에서도 갈 길이 급한 사람들의 자동차가 달리지만, 나 같은 한량의 자전거는 유유히 길 위를 날아간다 …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하려는 파리에서 오염물질 생산기계인 자동차 타기는 점점 힘든 일이 되어 가고 있다 ..  (256, 264쪽/서도은)


 그런데 서울사람은 서울길이 얼마나 잘 뚫려 있는가를 살갗으로 잘 깨닫지 못합니다. 오로지 자가용을 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가용이 없는 이는 버스나 지하철만 타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길흐름을 따라서 내가 가려는 곳으로 가 보면, 서울이 자전거로 오가기 얼마나 좋은 데인지를 곧바로 알아챌 수 있건만, 기꺼이 자전거로 돌아서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은 자전거를 타도 생활자전거로 타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도 ‘동무들 앞에서 뽀대 세우는’ 자전거를 사 줍니다. 이른바, 유사산악자전거를 사 줍니다. 어른들 스스로도 당신 삶을 살찌우는 자전거를 알아보지 못하고 즐겨타지 못합니다. 뱃살이 너무 나왔다 싶은 아저씨들이 아내 몰래 지름신에 따라 ‘뽀대 나는’ 자전거를 인터넷으로 지르곤 합니다. 자전거를 왜 타려 하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자전거를 어떻게 타려 하는지 살피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며 무엇이 나아지는가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너무 많이 몰려 있고, 너무 많이 누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기름값이 그렇게 치솟아도 자동차는 줄어들지 않을 뿐더러, 더 많은 자동차가 새로 나올 뿐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소리는 끊이지 않아도 하나같이 ‘재개발 비싼 아파트’를 꿈꾸는데다가, 이웃끼리 오순도순 어울리는 낮은 자리 골목마을을 어깨동무하지 않습니다. 몸을 써야 하는 자전거요, 나 스스로 땀을 내야 하는 자전거입니다. 땀을 안 내고 탈 수 없는 자전거이고, 몸을 안 써도 되는 자전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서울은 모든 좋은 조건이 다 갖추어진 곳이지만, 이 모든 좋은 조건을 머리로만 깨닫고 몸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비계덩어리 뚱뚱이가 되어 버린 도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시도 비계덩어리 뚱뚱이이지만, 도시사람도 비계덩어리 뚱뚱이입니다.


 (2) ‘우리를 사로잡는’ 자전거를 말하는 책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이라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아홉 사람이 아홉 가지 ‘자전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노래하는 사람, 그림을 말하는 사람, 자전거로 짐 나르는 사람, 노래를 말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회사원, 파리 유학생, 라디오방송 맡은 사람, 인터넷 자전거모임 꾸리는 사람, 이렇게 아홉 사람이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만나고 느끼고 사랑하는 자전거 이야기를 아홉 꼭지 들려줍니다.

 틀림없이 다 다른 아홉 꼭지입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즐겨타고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홉 꼭지를 읽어 보았을 때에는, 꼭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는 ‘자전거를 삶으로 받아들여서 지내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전거를 취미로 삼으며 지내는 사람’입니다.


.. 어느 날 사무실 마당 구석에 낡고 녹슨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바퀴는 휘었고 브레이크는 헐거웠다. 무심코 그 자전거에 올라 골목길을 달려 봤다. 바람이 시원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지하철역 세 정거장 거리의 집까지 타고 와 봤다. 한 시간이 걸렸다. 자전거는 도로를 달려야 하는 차라는 것을 배웠다 … 나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다 … 우리 나라에서도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쌀, 우편, 신문, 우유, 채소 등등은 자전거가 도맡아서 배달했다. 넓은 지역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재래시장에는 이른바 ‘쌀집 자전거’를 이용해 화물을 나르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하기 때문에 타지 말아야 할 것은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다. 위험을 만든 것이 바로 자동차기 때문이다. 길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어린아이, 걷는 사람, 자전거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동차다 … 인도로 올라가면 자전거는 교통 약자에서 강자로 뒤바뀌고 만다. 인도에서 난폭하게 달리며 벨을 눌러대는 것은 도로에서 과혹하며 빵빵대는 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다 ..  (78, 82, 83, 110, 112쪽/지음)


 오늘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 타기란 거의 ‘취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전거 동아리 또한 ‘취미’ 테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기쁘고 홀가분하게 나누는 모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날마다 자전거 타는 고단함과 짜릿함과 힘겨움과 싱그러움을 주고받는 모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 모임은 ‘중고 물품 사고파는 장터’ 구실 하나, ‘더 뽀내 나는 자전거 자랑하는’ 노릇 하나, ‘장비병과 지름신에 놀아나는 자위행위’를 달래는 쉼터 하나, ‘자전거를 차에 태워 주말에 어디 놀러다닐 만한 데 찾는’ 정보검색소 하나, ‘가까이에서 술동무할 사람 찾는’ 사귐터 하나, 이런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취미로 즐기는 자전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술동무 사귀려고 자전거 모임에 들어와서 어울리는 일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띠 모임’, ‘지역 모임’, ‘나이 모임’, ‘학교 모임’처럼, ‘취미로서 자전거 모임’은 얼마든지 할 만합니다.

 그런데,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만 그친다면, 어딘가 허전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자전거 나들이를 취미와 사람 사귀기에서 멈춘다면, 무엇인가 쓸쓸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돈이 있어 더 크고 비싼 자가용을 끌듯, 돈이 있어 더 비싸고 넓은 아파트를 사듯, 돈이 있어 더 이름 높고 잘 빠진 자전거를 몰듯 할 수 있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음을 뽐낼 수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자유만 누린다면, 이런 자유 말고는 다른 자유를 찾지 못한다면, 이런 자유가 ‘모든 자유’인 줄 아는 가운데 자전거 손잡이를 붙잡는다면, 왠지 슬프고 딱합니다.


.. 평균 속도는 가장 느렸을 경우가 시속 8.3킬로미터, 가장 빨랐을 경우가 시속 25.3킬로미터, 전체 평균은 시속 17.0킬로미터였다. 내가 빠른 게 아니다.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리하지 않아도 이 정도 속도는 나온다 … 사람들은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자전거는 생각보다 빠르다. 자전거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능력은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 … 결국 우리 나라에서 90퍼센트의 (배달) 오토바이는 자전거보다 속도나 효율성 면에서 그다지 월등한 것도 아니면서 기름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 도시에는 가난하면서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종종 있는데, 자전거는 그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준다 … 나는 식당도 술집도 극장도 콘서트도 학교나 학원도 거의 가지 않지만, 부족함을 느껴 본 적이 없다 ..  (96, 100쪽/지음)


 중국 나들이를 몇 번 하던 지난날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으레, 우리가 말하는 ‘짐자전거’를 타고다니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자동차가 부쩍 늘고 자전거 또한 짐자전거에서 ‘뽀대 나는’ 자전거로 차츰 바뀌고 있습니다만, 집과 일터를 오가는 사람한테는 짐자전거만큼 좋은 자전거가 따로 없습니다. 또한, 가게일을 보는 사람한테도 짐자전거처럼 훌륭한 자전거가 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안장에 앉고 한 사람이 짐받이에 앉기도 하는 짐자전거입니다. 아가씨가 안장에 앉아 사랑하는 님을 짐받이에 태우든, 젊은 사내가 안장에 앉아 사랑하는 님을 짐받이에 태우든, 짐자전거는 두 사람을 사랑스레 잇는 끈입니다. 더욱이,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는 한두 아이까지 함께 태울 수 있는 짐자전거입니다.

 산을 타는 자전거이든, 길을 싱싱 달리는 자전거이든, 반으로 뚝딱 접는 자전거이든, 짐받이 없는 자전거가 무척 많고, 이런 자전거는 처음부터 짐받이를 달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바구니를 안 달기 일쑤입니다. 이리하여, 이와 같은 ‘취미’ 자전거는 ‘삶’ 자전거가 되지 못합니다.


.. 대도시에는 차가 너무 많기 때문에 차가 빠르게 이동하지 못한다. 아무리 도로를 넓혀도 그에 비례하듯 차가 늘어나기 때문에 평균 시속에서 자전거는 차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택시와 견주어 봐도 자전거는 목적지에 당도하는 데 택시와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자주 하는 이유가 어찌 보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있으면 당연히 자전거보다 빨라야 하고 도로에서는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자전거보다 빠르지도 않고 도로는 항상 차들로 북적인다. 개념과 현실의 괴리인 것이다. 빨리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는데, 지하철을 타고 온 사람보다 더 늦게 도착했을 경우 느끼는 허탈감 같은 것이 대도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게 아닐까? … 교통체증은 본질적으로 집회가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자동차가 유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체증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 대안은 비장애인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  (279, 303쪽/조약골)


 다만, 취미 자전거를 삶 자전거로 거듭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만 달리다가 혼인을 하면서, 때로는 사랑을 하면서, 짝꿍하고 함께 타려고 하면서 자전거가 달라집니다. 새 식구가 태어나면서 자전거 뒤에 수레를 달아 아이를 태우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가운데 아이가 혼자서 탈 자전거를 새롭게 장만해 주기도 합니다. 아직 아이가 없을 때에는 ‘자전거 빠르기를 늦추’면서 서로 페달질을 맞춥니다. 페달질을 늦추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운데, 함께 달리는 길을 더 느긋하게 즐깁니다. 천천히, 아니 서로한테 알맞게 달리면서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아예 자전거를 세운 다음 어깨동무를 하며 길가에 나란히 앉습니다.


.. 자동차를 운전하는 어떤 한 개인이 폭력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속도와 석유에 중독된 문명에서 폭력이 자연스럽게 자라난다는 것이다 … 전에 지하철을 탔다가 지하철 한 대가 자동차 2247대를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자동차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법이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은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면서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겨울에 내복 입기 캠페인이나 여름철 냉방온도 높이기, 승용차 요일제 등이다. 솔직히 우습다. 초고층 빌딩 건축을 속속 허가하고, 전국에 골프장을 건설하고, 4대강 정비한다는 핑계로 운하나 파면서 무슨 에너지 절약이고 녹색 운운하는가 ..  (280, 292쪽/조약골)


 자전거책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에는 프랑스 박물관 이야기가 살짝 나오는데, 우리가 프랑스에 있는 어느 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가려고 한다면, 그곳에 있는 그림 한 점이나 유물 한 점 보려고 갈 수 있으나, 우리가 사는 집부터 프랑스 그곳 그 박물관까지 가는 길에서 만나고 스치고 어울리고 부대끼는 모든 삶자락을 내 가슴으로 느끼려고 하는 데에, 그리고 이렇게 느끼는 가운데 그 그림과 유물 한 점을 받아들이는 데에 깊고 너른 뜻이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여행은 내 삶일 때 비로소 여행입니다. 취미 또한 내 삶일 때 바야흐로 취미입니다. 자전거도 똑같아, 내 삶으로 자전거와 한몸이 될 때에 드디어 자전거입니다.

 자전거가 우리를 사로잡는다면, 자전거가 우리를 잡아끈다면, 자전거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면, 자전거로 우리 삶이 아름다워진다면, 바로 ‘자전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자전거는 바로 ‘내 삶이기 때문’이며, ‘자전거가 내 삶으로 녹아들었기 때문’입니다. (4342.7.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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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23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를 안타는 것이 아나리 못타는 거죠.
요즘 웬만한 골목은 차들이 쌩쌩 다녀서 애들이 맘놓고 자전거 탈수가 없읍니다.도로역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는 넘 위험하지요.
마땅한 자전거 도로가 없는데 위험을 무릎쓰고 자전걸 탈순 없지요 ㅠ.ㅠ

숲노래 2009-07-27 12:16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못' 탄다고 생각했으나, 곰곰이 돌아보면 '안' 탄다고 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마음 놓고' 탈 길이 없다는 말은 늘 핑계예요. 아무개 대통령 허튼짓거리를 그대로 손놓고 바라볼 노릇이 아니라, 촛불을 들든 집회를 하든 부딪히듯, 우리는 자전거를 들고 길이든 어디이든 나와야 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9-08-0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에 관련된 시민운동중에 critical mass라는게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떼를지어 주행하는 행사인데요. 원래뜻은 임계질량이란 물리용어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질량의 뜻인데, 자전거씬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로부터 위협받지않고 안전하게 도로를 주행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인원수정도로 쓰이고 있네요. 안전하게 자전거를 어디서든 탈수있는 우리의 권리는 기다린다고 얻을수있는게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오세요. 그게 시작입니다.

숲노래 2009-08-04 22:32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에는 발바리가 있고, 저도 퍽 예전부터 함께 달렸습니다.

크리티컬 매스이든 뭐든, 살아가면서 자전거를 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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