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조국, 한국 범우 세계 문예 신서 6
다카노 마사오 지음, 범우사 편집부 옮김 / 범우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48 ― ‘한국’은 누구한테 고향나라인가
 : 다카노 마사오, 《마음의 조국, 한국》



- 책이름 : 마음의 조국, 한국
- 글 : 다카노 마사오
- 옮긴이 : 편집부
- 펴낸곳 : 범우사(2002.7.15.)
- 책값 : 9000원


 (1) 골목을 걸으면서


 아침에 보건소로 찾아갑니다. 보건소에서 ‘아기 밴 어머니’한테 철분제를 준다고 해서 옆지기가 보건소로 전화해서 여쭈어 본 뒤 찾아갑니다. 전화를 마친 옆지기는 ‘지난겨울에 보건소에 찾아갔을 때에는 병원에서 임신증명서를 떼어 오라’고 하더니 이번에 전화하니 보건소 직원이 예전에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뗀다며 성을 냅니다.

 성을 낼 만합니다. 그때 우리는 동네에 있는 보건소 두 군데에 찾아갔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중구 보건소에 먼저 찾아갔더니 주소지가 동구로 되어 있으니 동구 보건소로 가라고 해서, 동구 왼쪽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보건소까지 퍽 먼거리를 걸어서 갔습니다(집부터 동구 보건소까지는 중구 보건소까지 가는 거리 세 곱). 그러니 동구 보건소 직원은 ‘보건소에서 해 주는 기초검사는 병원에서 먼저 진단을 받고 임신증명서를 떼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중구 보건소 직원은, 우리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 한다고 하니, 그러십니까 하고는 검사를 해 주려다가 주소지 때문에 그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크지도 않은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진 보건소까지 가라는 대목에서는 씁쓸했지만, 공무원들 일이 이렇구나 하고 느낄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 가다가 쓰러져 죽은 시체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 구두 등속을 털어가는 사람들. 나도, 그 무리 속에서 또 남은 찌꺼기를 털며 살아왔다. 불타버린 벌판의 패전국이 되어버린 일본. 규슈 하카다의 암시장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꽁초를 피우고 필로폰을 맞고 나이프칼을 휘두르며 들개처럼 굶주림을 면해 온 슬프고 쓰라린, 그러나 죽고 싶다거나,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이름은?” “다카노 마사오.” “써 봐.” “쓸 줄 몰라.” “장난치지 마!” 느닷없이 걷어차며 마구 때린다 ..  (19쪽)


 철분제를 받은 옆지기가 보건소를 나오면서, 보건소 직원이 준 책을 넘깁니다. 무언가를 골똘히 찾습니다. 펼친 자리를 가만히 읽습니다. 뭘 그리 읽나, 집에 가서 읽지 했는데, 안에서 그 직원한테 ‘아이 밴 달수에 견주어 배가 더 나온 듯한데 왜 그러한가?’ 하고 물었을 때 아무 대답을 못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준 책(보건소에서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책)에는 이 물음에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 비자연장과 외국인등록증 수속, 재학증명서, 은행잔고 증명서, 신원보증서, 사진 2장, 수수료 합계 6만 원. 축산대학의 교환유학생인 요시노 씨의 수속은 3분 정도로 끝났는데 나에게는 “부모는? 직업은? 목적은?” 하며 집요하게 묻는다. 그것도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구 만주에서 돌아온 전쟁고아로서 재일조선인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할아버지의 모국어를 배우고 싶은 염원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그런 나이로 이제 와 공부해서 뭘 하려고? 그런데 부모는 무엇을 하고 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끝이 없으니 나는 화가 칠밀어 …… 공무원의 거만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 들어갈 때, 수강증을 보여주어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말을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일본인이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일본어로 말하니까 겨우 통과시켜 주었다. 학교 정문에서도 경비원의 제지를 받는다. 차림새로 판단하지 말라! 교수님들에게는 꼬박꼬박 인사하면서! ..  (38∼39,41쪽)


 여러 날 찌뿌둥하고 바람 또한 세게 불며 쌀쌀해졌던 날씨와는 달리 오늘 하루는 따뜻합니다. 따사로운 햇볕을 느끼며 천천히 걷습니다. 만석동을 지나 화수동을 걷습니다. 다섯 층이 안 되는 네 층짜리 화수아파트가 보입니다. 아까 보건소로 오던 길에 옆지기는 “꼭 하니가 살던 아파트 같다.”고 했습니다. 으잉? 뭔 소리여? 했더니, 만화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가 살던 옥탑방 같은 느낌이랍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봅니다. 음, 어쩌면. 어쩌면 그럴는지도. 그러고 보면, 이제 만화영화 ‘하니’가 살던 옥탑방 같은 집은 거의 다 사라지지 않았는가? 전국에 그와 비슷한 집이 얼마나 남았을까? 돈도 절도 집도 피붙이도 없이 외로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겨우 깃들일 만한 값싸고 조그마한 집은, 그러면서도 마당이 조촐하니 있는 집은 어디에 있을까? 나중에 〈달려라 하니〉를 영화로 만든다고 할 때에는 옥탑방 있는 집이 죄 없어진 다음이 될 텐데, 그때 옥탑방 집을 억지로 새로 만든다고 큰돈 들이고 법석이지 않을까? 그런데 옥탑방을 새로 지을 만한 자료는 어디에서 얻을까?


.. 대학제 준비가 여기저기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지난 세월 반권력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던 서울대학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 당시의 학생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확인하고 싶다 ..  (76쪽)





 부동산 앞을 지나갑니다. 세거리 골목길을 나누는 모서리에 자리한 부동산. 이름은 부동산인데, 가게 앞과 안쪽까지 꽃그릇이 가득합니다. 간판이 없다면 이곳은 꽃집으로 알지 부동산집으로는 안 알겠구나 싶습니다. 화평동 냉면거리 들머리에 섭니다.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손님 끌어들이기’에 바쁜 목소리에 시달리기 싫어서 고단합니다. 그렇다고 이 길을 안 지나가며 빙 돌아가기도 싫고.

 맛있으면 스스로 찾아가서 먹지 않겠나, 먹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찾아가면 그만 아닌가 싶지만, 우리 나라 어느 관광지를 가도 손님 잡아당기는 목소리 그득합니다. 지난겨울에 자전거 타고 소래와 오이도에 갔다가 아주 질려서 다시는 가기 싫어졌습니다.


.. 최근, 야간중학생이라는 것, 졸업생이라는 것을 감추는 학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따고 들었다. 배운다는 것을 왜 수치스럽게 생각하는가. 글자와 말을 빼앗긴 우리들의 서러움과 고통과 분노와 분함. 그리고 배운다는 것. 산다는 것의 진실한 의미와 감동을 필사적으로 되찾은 우리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  (82∼83쪽)





 다른 길로 가자고 생각하다가 마침 화수시장이 보여서,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장만하기로 합니다. 들머리가 조그마한 화수시장으로 들어섭니다. 안쪽이 많이 어둡습니다. 장사하지 않는 자리가 제법 많습니다. 오늘은 쉬는 날인지 모릅니다. 한 바퀴 빙 둘러보다가 ‘고무신 집’이 한 곳 보입니다. 오, 고무신 집? 참말 고무신 파는 집인가? 가게 앞에서 두리번두리번하니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 “뭐 찾아요?” “네, 고무신 까만 녀석 있어요?” “네, 몇 문이에요?” “이백칠십이요.”

 흰고무신과 보라고무신은 어느 저잣거리에서도 팔지만 검정고무신은 파는 곳이 몹시 드뭅니다. 도시에서 고무신 신고 다니는 사람이 없을 터이니, 고무신 장사를 안 할 테지요. 신는 사람만 있다면 무슨 신이든 안 팔겠습니까. 시골 신집이나 오일장을 찾아가야 할 텐데 하며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되었습니다. 지금 신고 있는 고무신이 거의 닳아 바닥에 구멍이 날 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곳 화수시장에 고무신 가게가 예전 간판 그대로 걸어놓고 있다 함은, 요 둘레 동네에서는 검정고무신을 찾는 사람이 쏠쏠히 있다는 소리일까요.

 문제는 값. 설마 도시라고 한 켤레에 만 원을 부르지는 않겠지? 뒷주머니에 넣고 있던 오천 원짜리를 꺼내어 내밉니다. 거스름돈을 안 주십니다. 헛. 오천 원이라고?

 “아저씨, 검정고무신은 삼천 원이잖아요, 털신하고 보라고무신이 오천 원이고요.” 하고 대꾸를 할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시골까지 검정고무신 사러 가자면 찻삯에다가 시간에다가 품에다가 만만치 않게 드니까, 그 값을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저잣거리 한켠에 고무신 집 간판을 그대로 살려놓고 있는 보람을 이천 원으로 값해 드려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 예배가 끝난 후에 두 사람과 헤어져 여성들의 희망에 따라 젊음의 거리인 이화대학 거리에서 쇼핑하는 데 동행했다. 하라주쿠를 연상시키는 골목길에 넘쳐나는 젊은이들과 거리 양쪽으로 빽빽이 들어선 패션가게들. 이상하게도 구두점이 많은 것은 왜일까? 음악이 아니라 소음으로 위협해 와 다시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저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한국의 재생은 가능할 것인가? ..  (107쪽)


 화수시장을 나옵니다. 튀김닭집이 세 군데 잇닿아 있는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차가 들어오지 않는 호젓한 골목길입니다.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집을 허물고 난 빈자리에 남은 흙을 일구어서 마련한 텃밭이 있습니다. 빼곡하게 심어 놓은 푸성귀 텃밭이 있는 골목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춥니다. 배추흰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닙니다. 골목집 아저씨 한 분이 당신 집 앞 길가에 한 줄로 이어놓은 푸성귀 그릇을 손질합니다. 이 건너편으로도 옛 집터에 가꾼 텃밭이 있습니다. 텃밭은 아주 야무지게 손질되어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곳 화평동 골목집 할매와 할배 손길을 탔으리라 봅니다.


..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  (216쪽)


 “우리, 박정희 할머님 댁에 들렀다 가요.” 옆지기가 이야기합니다. 그러마, 하고 대꾸하며 골목길 바깥으로 나옵니다. 저쪽 골목길로 극작가 함세덕 선생 옛집이 바라다보입니다. ‘함세덕’이라는 분이 어떤 극을 썼고 어떤 일을 했는지는 뚜렷이 모릅니다. 다만, 한국전쟁 때 인민군 편에 있다가 죽었다는 마지막 이야기만 얼핏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때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안 살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남녘에서도 모르고, 북녘에서는 알까 모를 일입니다. 그저, 함세덕 선생이 살았던 옛집이 바로 이곳, 인천 동구 화평동, 이른바 ‘냉면골목’이라는 새이름이 붙은 자리 안쪽에 조용히 깃들어 있음은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분 옛집은 ‘생가 복원’ 계획도 없이 묻혀져 있는 한편,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입니다. 전국을 휩쓰는 재개발(뉴타운) 바람과 맞물려, 이 동네도 재개발로 싹 쓸어버리면, 그나마 터라도 남아 있고 옛 기와집 자취가 고스란히 있는 함세덕 선생 옛집을 비롯한 모든 근현대 유적지와 서민 살림집 원형은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게 될 뿐입니다.


 (2) 그림할머니와 만나고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 일터인 〈평안수채화의 집〉 앞에 섭니다. 수채화집 유리문에 종이 한 장 붙어 있습니다. 종이에는 박정희 할머님 연락처가 손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안 계신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문에 적힌 또다른 손글씨인 ‘미세요’대로 문을 밉니다. 열립니다. 안쪽에 있는 덧문에는 ‘돌려서 미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을 따르며 돌려서 밉니다. 열립니다. 문에 걸린 딸랑이가 딸랑딸랑 울립니다. 조금 뒤 안쪽에서 “누구 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 하고 길게 대꾸하면서 안쪽 방으로 들어갑니다.

 안쪽 방에는 그림을 배우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들 해서 모두 다섯 분이 앉아 있습니다. 네 분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박정희 할머님은 그림 그리는 분들 사이에 앉아 계십니다. 얕은 찻상을 팔걸이로 삼고 앉아 계십니다.





..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은 도태된다. 참으로 필연과의 투쟁이다. 왜 나는 서울에 와 있는가? 왜 한국어를 배우는가? 글을 안다는 것(배운다는 것),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것 등의 차원이 아니다. 유학생활에 익숙해진 젊은 여성들은 유창한 영어로 서슴없이 질문하므로 필요 이상으로 분통이 터지고 주눅이 든다. 영어를 배울 거면 뉴욕에 가야지, 영어 같은 건 쓰지 말라. 다 한국어로 하라고 외치고 싶지만 말이 안 나오는 이중의 안타까움! ..  (31쪽)


 옆지기는 ‘여기서 그림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하고 여쭙니다. 할머님은, “내가, 그림 그린다면서 여기 와서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는 사람한테 달마다 5만 원씩 받고 살아.” 하고 말씀합니다. “월요일에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그리는데, 도시락까지 싸 와서 맛있게 먹어.” 하고 덧붙입니다.

 올해로 여든여섯이 된 박정희 할머님은, 우리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줄줄줄 늘어놓으십니다. ‘서방님(옆에 앉아서 그림 그리는 분들이 ‘서방’이 아닌 ‘영감’이라며 말을 고쳐 줍니다)’하고 예순두 해를 같이 살았는데 먼저 떠나버리니 가슴이 허전한데도 당신은 아이들을 이끌고 수채화 그린다면서 돌아다니고 있더라고. 젊어서는 살림하느라고 집 바깥에를 못 나가고, 이제는 늙어서 몸이 성하지 않으니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그제는 어느 분이 강화에 같이 가자고 하면서 차로 데려다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하도 기쁘고 좋아서 밤새 잠이 안 오셨다고, 그래서 새벽 세 시부터 잠을 못 자고 기다렸다고, 그렇게 하고 차를 얻어타고 강화에 가서 하루 내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에 돌아왔는데, 집 앞에서 내리고 보니 몸이 아주 녹초가 되어서 걷지도 못하고 네 발로 기어서 엉금엉금 집에 겨우 들어와서 누웠다고. 이제는 누가 집 앞으로 자동차를 끌고 와서 태워서 나들이를 시켜 주지 않으면 다니지 못한다고. 옆지기한테 아이가 있느냐고 묻다가, 배속에 아기가 있다고 하니, “철이 다 난 다음에 애를 낳는 것도 기뻐요.” 하면서 손뼉까지 치며 기뻐해 줍니다. 할머님이 딸만 줄줄 낳은 이야기를 하니, 옆에 있던 할머니가, 딸은 가게 갈 때 같이 가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아들이나 며느리하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면서, 딸이 참 좋다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 내가 배우고 있는 한국어 교과서도 한국어와 영어의 설명만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시험에도 영어의 설명이 있다 ..  (73쪽)


 얘기를 들으면서 벽에 차곡차곡 붙여놓거나 그림틀에 담아 놓은 그림 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할머님이 낸 책 두 권에 실려 있는 그림으로 볼 때와, 이렇게 두 눈으로 볼 때하고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할머님은 벽에다가 흰테이프로 그림을 착착 붙여놓기도 합니다. 누가 보면, ‘작품에다가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아요?’ 할 성 싶기도 하지만, 더없이 할머님다운 그림걸이가 아니랴 싶습니다.

 저는 제가 찍은 사진을 빨래집게로 집어서 빨랫줄에 착착 걸어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누런테이프로 해서 벽이나 문에 붙여놓곤 했습니다. 떠올려보니, 예전 우리 집에 놀러오시는 분들이 ‘작품에다가 테이프를 그렇게 붙여놓으면 어떡해요?’ 하고 물었구나 싶습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작품으로 여기면 작품이지만, 작품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나 스스로 즐기고 싶고, 내 이웃하고 더욱 가까이 즐기고 싶어서 이렇게 붙여놓습니다.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즐기고, 언제라도 떼어낼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이나 사진이 나오면 다음 그림이나 사진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이나 사진은 누구한테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습니다. 어디 돈을 바라는 사회단체가 있다면 잘 여미어서 그림틀이나 사진틀에 담아서 알맞는 값을 받고 팔아서, 그림이나 사진 판 값을 모두 바치기도 합니다.


.. 암기할 수밖에 없다, 라고 선생님과 동급생들이 입을 모아 말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써 오지 않았었다. 암기는 하지 말라, 아무리 하더라도 사전에는 이기지 못한다. 만물박사는 되지 말라, 너희들이 만물박사가 된다 하더라도 백과사전에는 이기지 못한다. 너희는 왜 야간중학에 왔는가? 왜라는 의문에 매달릴 때 그것이 너희들에게는 진짜 공부이다 ..  (81쪽)





 박정희 할머님이 그리는 수채그림을 ‘미술사’라는 테두리로 보면 어떤 대접을 받을까 하는 데로 생각이 이어집니다. 글쎄요, 우리 나라 미술 역사에서 수채그림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는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어떤 사람들 어떤 그림이 들어가 있을는지.

 역사에 담는 그림은 무엇이며 역사로 다루는 그림은 무엇일는지. 미술평론가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보면서 글을 쓰고 논문을 쓰고 책을 쓰는지. 신문이나 방송에서 알리는 그림잔치 소식은, 어떤 그림을 그린 사람들 소식을 알리는지.


.. 선생님께서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텔레비전, 돈, 연인, 꽃이라는 등의 대답이었지만, 나는 “꿈을 주세요”라고 큰소리로 대답하자, 선생님과 학생들은 모두 놀라 숨을 들이켰다 ..  (91쪽)


 할머님은 옆지기보고 “그러면, 지금 한 장 그리고 가지?” 하고 묻습니다.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다른 아주머니들도, “그래요, 지금 그리고 가요?” 하고 묻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아침밥도 안 먹은 몸. 그리고 제 몸은 몹시 안 좋습니다. 지난주부터 앓는 몸살이 아직 다 안 떨어졌습니다. 입술과 코가 부르트고 입안이 다 헐고 부어서 말하기도 힘들고 숨쉬기도 벅찹니다.

 다음주부터 와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몇 번 거듭 말씀을 드리며 자리를 물러나옵니다. 옆지기는 나보고도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그리고픈 마음도 있으나, 그러자면 십만 원인데. 요즘 우리 형편에 오만 원까지는 더 치를 수 있다지만 십만 원이라면.

 그러나 여든여섯 그림할머님한테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나날도 앞으로 얼마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칩니다. 때는 기다리지 않는 법이라고, 언제 찾아오는지 알 수 없는 법이라고, 왔는지 모르고 지나치다가는 그예 돌이킬 수 없게 되는 법이라고, 나중에 돈이 조금 넉넉해져서 그림을 그릴 틈이 주어진다고 할 때에는 그림할머니가 이 세상 분이 아닐 수 있어요. 그때 가서 아이고, 저번에 그림 배우자고 할 때 배울걸, 하고 땅을 친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 1일 1과, 소화해 가는 수업은 선생님도 허탈하겠지만 우리 쪽은 더욱 허탈하고 비참하다. 배운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원점을 확신하기 위해서 바다를 건너왔는데, 이 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  (93쪽)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송림초등학교 앞에서 이삼학년 쯤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계집아이 것으로 보이는 신발 한 짝을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가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가 발로 찼다가 하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아이 옆으로는 윤선생영어교실 사람들이 어깨띠를 두른 채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구스르는 일’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 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파란 조끼를 입은 공공근로 아저씨 두 분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도 아이가 신발 한 켤레를 패대기치고 던지고 밟고 차고 하는 짓을 말리지 않습니다. 슬쩍 한 번 보았다가 지나갑니다. 우리 둘이 아이 바로 뒤까지 걸어갑니다. “어이?” 하고 아이를 부릅니다. “네?” 하고 뒤돌아보는 아이한테, “네 신발은 아닌 듯한데 이렇게 던지고 차고 하니?”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너희 반 여자아이 것은 아니고?” “아니오, 떨어져 있던 거 주웠어요.”

 아이를 타일러서 보냅니다. 옆지기와 함께 초등학교 앞으로 돌아와서 문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습니다. 아까는 아이 하는 짓을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그제야 다가와서 이것저것 묻습니다. 웃는 낯으로 이러쿵저러쿵 대꾸해 주었지만.






.. 김혜미자 씨의 안내로 국립도서관에 갔다. 이 건물은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일본에 조사원을 보내어 그것을 참고로 건축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넓은 부지에 8층 건물의 초근대적인 도서관으로, 인터넷실, 컴퓨터실, VTR, CD, 신문열람실, 별관의 식당 등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나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의 사람일 듯 싶다. 09:00시부터 17:00까지가 개관시간이고, 오늘도 학생 중심의 젊은이들밖에 없었다. 특히 지방 사람들에게는 전혀 인연이 없는 시설이다 ..  (147쪽)


 집으로 돌아옵니다.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더미를 뒤적거립니다. 영화잡지를 오려서 겉에 붙여놓은 상자 하나를 꺼냅니다. 끈이 옥매듭으로 되어 있어 가위로 끊습니다. 안을 열어 유치원 때 받은 상패와 사진을 꺼내고, 거의 서른 해가 묵은 주판을 꺼냅니다. 어릴 적 형하고 놀던 탁구채와 탁구그물을 꺼냅니다. 탬버린을 꺼냅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쓰던 스케치북을 꺼냅니다. 형이 고등학생 때 쓰던 학교 허리띠를 꺼냅니다. 42인치짜리라 그런지 참 깁니다. 고등학교 교련옷 바지가 한 벌 나옵니다. 우표 담은 상자가 하나 있고, 수류탄 모형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1991) 동인천 대동화방에서 퍽 비싼 값을 치르고 샀던 그림물감이 하나 나오고, 국민학생 때 형한테 물려받아서 쓰던 벼루도 하나 나옵니다. 붓도 한 묶음 있으나 털이 다 빠져서 못 씁니다. 파레트도 있습니다만, 파레트를 마지막으로 쓰고 난 뒤 씻어 놓지 않아서 녹이 다 슬고 못 쓰겠군요. 그렇지만 그림물감 하나는 아직도 쓸 만합니다. 열일곱 해를 묵은 그림물감이란 말이지? 후후.





 (3) 한국말 배우는 일본 할아버지와 《마음의 조국, 한국》


 《마음의 조국, 한국》을 세 번째 읽고 덮습니다. 이제는 책꽂이에 고이 모셔 놓으려 합니다. 다카노 마사오 할아버지. 1939년에 만주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만주땅에서 아버지를 잃고(전쟁으로 죽음), 어머니하고는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헤어져서 끝내 못 만납니다. 어린 나이부터 홀몸이 되어 길거리에서 양아치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길에서 굶은 데다가 꽁꽁 얼어붙어 죽을 뻔했는데, 넝마주이로 있던 재일조선인 한 분이 마사오 씨를 거두어들여서 살려냅니다. 이때 스무 살짜리 철부지 양아치 마사오는 처음으로 ‘세상에도 빛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자기 이름은 있어도 자기 이름을 한 글자도 쓸 줄 모르던 어두움에서 깨어납니다. 스무 살에 야간중학교에 들어가 스물네 살에 마치면서, 일본땅에서도 ‘글 한 줄 모르며 살아가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할머니’가 몹시 많음을 처음 알게 됩니다.


.. 스무 살에 도쿄의 아라카와 구중 야간학급에 가입학. 일본인이 되기 위해 호적을 만들고 야간중학생이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 책상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별없는 사회를 알았다. 일본에 헌법이 있다는 것을, 아동헌장이, 교육기본법이, 학교교육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살 권리’와 ‘배울 권리’를 빼앗아 가는 놈들은 누구 하나 지탄받지 않고, 빼앗긴 우리가 왜 권리를 박탈당해야 하는가. 한 장의 종이쪼가리로 ..  (20∼21쪽)


 철부지 양아치한테 빛을 베풀어 준 넝마주이 할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싸늘한 주검이 됩니다. 공무원들은 넝마주이 할아버지 주검을 쓰레기 치우듯 갖다 버립니다. 젊은 마사오가 할 수 있던 일은 오로지 주먹을 부르르 떨고 이를 덜덜 갈기. 그렇지만 이때 일을 잊지 않습니다. 마음에 새깁니다.

 어느새 자신을 거두어 준 넝마주이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된 마사오 씨. 자기 앞으로 남은 삶을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람으로 보내야 하는가를 놓고 몹시 머리앓이를 합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가기로 합니다. 한국으로 가서 한국말을 배우기로 합니다.


.. “일본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은 어디입니까?”라고 흔히 질문을 받는다. 다른 나라 학생은 바로 자기 나라의 명소를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야간중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로 나타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도쿄의 ‘긴자’라고 말하는 자기 자신이 서글펐다 ..  (86쪽)


 1998년에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와 봉천동 어머니학교에서 한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거의 해마다 틈을 내어 한국에 찾아옵니다. 지난 2007년 5월에도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마사오 할아버지는 한국에 와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가서 할머님들을 뵙습니다. 인사동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마련해서 ‘인간선언’ 네 글자를 새긴 옷을 입고 글을 대자보 비슷하게 써붙이면서 당신이 쓴 책을 손수 팝니다. 책을 팔면서 한국사람들하고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젊은 사람한테는 젊은 넋이 무엇인가를 귀기울여 들으려고 하고, 나이든 사람한테는 나이든 사람 얼이 무엇인가를 귀담아서 들으려고 합니다.


.. 거리에서 익히는 말은 살아 있어 빛이 난다 ..  (209쪽)


 어쩌면 올해 5월에도 다시 한국을 찾아올는지 모릅니다. 벌써 4월에 한국을 찾아와서 길거리에서 한국을 느끼고 한국사람을 만나셨는지 모릅니다. 마사오 할아버지는 “거리에서 익히는 말은 살아 있어 빛이 난다”고 했는데, 올 2008년 한국사람들 말도 살아 있다고 느끼실까요. 당신한테 ‘마음 조국’인 한국은, 당신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베풀어 주고 있는가요. (4341.4.2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어떠한 낱말도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  《김우창-궁핍한 시대의 詩人》(민음사,1977) 379쪽

 ‘단어(單語)’가 아닌 ‘낱말’이라고 적으니 반갑지만, “그 자체(自體)로서”와 “고정(固定)된 의미(意味)”라고 적은 대목에서는 서글픕니다. “그 낱말로서”와 “굳어진 뜻”으로 고쳐 줍니다. “갖고 있지는 않다”는 “담고 있지는 않다”로 손보거나 앞말과 이어 “뜻이 굳어져 있지 않다”로 손봅니다.

 ┌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
 │→ 하나로 붙박힌 뜻을
 │→ 하나로 굳어버린 뜻을
 │→ 한 가지 뜻만을
 │→ 한 가지 뜻으로 굳어져
 └ …


 세상 모든 분들이 훌륭한 이론과 논리만 펼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훌륭한 이론과 논리를 펼치는 분들이 모두 자기가 펼치는 이론과 논리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말만 하지는 말아 주셔요. 훌륭해 보이는 말만 들려주지는 말아 주셔요. 말하는 분부터 손쉽게 몸으로 옮겨내지 못할 말은 섣불리 펼치지 말아 주셔요. 말하는 분께서 가슴속 깊이 곰삭여서 받아들인 이야기까지 아니라면 되도록 삼가 주셔요.

 세상 모든 말은 움직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말은 없습니다. 따로 보기를 들고 싶지 않습니다만, ‘computer’가 언제부터 우리가 익히 쓰는 ‘컴퓨터’ 뜻이었을까요. ‘car’가 언제부터 우리가 즐겨쓰는 ‘자동차’ 뜻이었을까요.

 요즈음은 ‘다리’라는 말도 거의 안 쓰입니다. 한강에 수두룩히 놓인 저 다리뿐 아니라 부산에 놓인 다리, 또 인천시에서 빚까지 뒤집어쓰면서 지으려고 하는 어마어마한 다리도 ‘다리’인데, 이 다리가 짧으면 ‘橋梁’이라고 적고, 길면 ‘大橋’라고 적더군요. 우리 말 ‘다리’가 쓰이는 자리는 ‘돌다리’나 ‘출렁다리’쯤입니다. 그나마 ‘출렁다리’조차 쓰기 싫다며 ‘懸垂橋’를 쓰는 우리 나라 공무원입니다.

 우리는 왜 ‘긴다리’와 ‘짧은다리’라는 말을 빚어내지 않을까요. 우리는 왜 ‘큰다리’와 ‘작은다리’라는 말을 지어내지 못할까요. 우리 말로 가리키면 어설픈가요. 우리 말로 나타내면 모자란가요. 우리 말로 이름을 붙이면 알맞지 않은가요. 우리 말로 이야기하면 ‘form’이 안 나는지요.

 책을 이야기하는 신문자리에 ‘북’도 아닌 ‘book’을 쓰는 일, 나라살림이나 집살림을 이야기하는 신문자리에 ‘경제’나 ‘이코노미’도 아닌 ‘money’를 쓰는 일은 워낙 오래된 일입니다. 아예 이대로 굳어버린 듯합니다. 운동경기 핸드볼에서는 퍽 옛날부터 ‘도움주기’라고 써 왔으나, 농구나 축구에서 ‘도움주기’라고 쓰면 마치 ‘북녘사람들처럼 말하는 셈’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핸드볼 경기를 하는 사람은 뭐지요.

 배구 경기가 ‘프로’가 아닌 ‘아마’였을 때는, 경기를 알려주는 방송 사회자나 경기 소식을 담는 신문기자 모두 ‘가로막기’만을 말했으나, 이제는 ‘블로킹(blocking)’이라고만 말합니다. 또한, ‘아마’배구였을 때에는 없던 기록이 새로 생기면서, 지난날에는 ‘건져올렸습니다’ 하던 말을 ‘디그(dig)’라는 말로만 가리키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가로막기’를 살려놓지 못하고 ‘블로킹’만 북돋우는가요. 왜 우리는 ‘건져올림’은 내팽개치고 ‘디그’만 끌어당길까요.

 ┌ 어떠한 낱말도 한 가지 말뜻으로만 붙박히지 않는다
 ├ 어떠한 낱말도 한 가지 뜻에만 매여 있지 않는다
 └ 어떠한 낱말도 한 가지 뜻으로만 쓰일 수 없다


 거짓말 같아요. 아니, 우리 말만 울타리 밖인 듯해요. 우리 말만 쏙 빼야 하는가 봐요. (지식인들이 입이 닳도록 외치고 있는 말로 하자면) ‘한글처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글’ 한 가지만큼은 “한 가지 낱말이 한 가지 뜻으로만 매인 채 다른 뜻으로는 쓰일 수 없다”는 ‘이론’이나 ‘논리’로는 살피면 안 되는가 봐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잣대’라는 말을 키우지 않고 ‘무게’라는 말을 북돋우지 않고 ‘생각’이라는 말을 살찌우지 않으며 ‘믿음’이라는 말을 돌보지 않는 가운데 ‘사랑’이라는 말조차 다독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라는 말쓰임새를 넓히지 않습니다. 그저 ‘담론(談論)’뿐이에요. ‘대화’요 ‘토론’이요 ‘토의’요 ‘논의’뿐이에요. ‘담론’ 한 가지로도 모자란지 ‘거대 담론’이라는 말까지 꺼내요. 우리 동네, 그러니까 인천시 공무원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분께서는 우리한테 ‘디스커션’을 하자고 말씀을 하더군요. 잠깐 벙쪘으나,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문화잔치를 한다고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 혼자만 ‘잔치’를 이야기하고, 다른 모두는 ‘축제(祝祭)’와 ‘축전(祝典)’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나마, ‘비엔날레(이biennale)’라고 하지 않으니 나은 편인가요. ‘생일파티’를 한다는 자리에서 “‘생일잔치’를 하는가 보지요?” 하고 넌지시 한 마디 건네니 조용해집니다. 저 같은 사람은 그예 주둥아리 꾹 다물고 살아야 하는가요.

 저는 동네에서 도서관을 조그맣게 열어서 꾸리고 있습니다. 그냥 ‘도서관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거나 ‘도서관지기’라고 말하는데, ‘관’에서 나오신 분들은 한결같이 ‘도서관장’이라고 말해서 듣기에 거북합니다. 기자 분들도 ‘도서관장’이라는 말을 꺼내니 떨떠름합니다. 왜 ‘지기’는 안 쓰고 ‘長’이라는 말만 써야 할까요.

 해마다 달력을 보내주는 분한테, ‘새해 달력을 만드실 때에는 부디 요일을 한글로라도 적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여쭙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일월화수……’는 한 글자도 안 들어가고 ‘s m t w ……’만 들어간 달력을 받습니다. 게다가 ‘1월 2월 3월 ……’도 없어요. 알파벳으로 쏼라쏼라 새겨져 있습니다. 나라밖 사람한테 선물할 달력이 아니라 나라안 사람, 그러니까 우리들 한국말을 하며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이 볼 달력인데, 정작 ‘한국’ 달력에는 명절 이름조차 한자로 적기 일쑤입니다. 한글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달력입니다. 달력을 보면서 영어 공부를 하고 한자 공부를 하라는 소리인가요.

 ┌ 어떠한 낱말도 새로운 뜻이 담기는 법이다
 ├ 어떠한 낱말도 새롭게 쓰이기 마련이다
 └ 어떠한 낱말도 새로운 뜻으로 쓰이게 된다


 모르겠습니다. 아니 믿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국어사전을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 지식인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신문과 잡지를 모르겠고, 책과 논문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어디로 걸어가려고 하는 걸음인지, 어디로 나아가려고 하는 움직임인지, 무엇을 하려는 매무새인지, 누구와 함께 살고픈 어깨동무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가난한 이와 살고 싶다고요? 가난한 이를 돕고 싶다고요? 어려운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겠다고요? 어려운 겨레한테 사랑을 나누겠다고요?

 참말 가난이 무엇이고 어려움이 무엇인지 머리로만 아는 테두리를 넘어서 몸으로 부대껴 보고서야 하시는 말씀인지요. 참말 가난한 삶이 무엇이고 가난이라는 굴레가 왜 되풀이되고 가난이라는 틀거리가 어떻게 짜여지는가를 뿌리깊이 파헤쳐서 알아내면서 거드는 손길인지요. 모르기에 여쭙습니다. 믿지 못하겠기에 믿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4341.4.26.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동차 절망공장
가마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우리일터기획 / 1995년 10월
평점 :
품절


먼저 짤막하게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 본다. <시민사회신문>과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띄우려고 적었다. 나는 조촐한 이름이 좋아서, "돈만 밝히는 세상에서"쯤으로 기사이름을 붙였는데, <오마이뉴스>에서는 "이건희 회장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고 이름을 고쳐 버렸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나는 이건희 씨를 '회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이한테는 그게 자기 직책일지라도. 이건희든 이명박이든 그냥 '씨'나 '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자연인일 뿐이다.




《자동차 절망공장》

 살림 몇 해 만에 재산을 몇 곱절 불렸다는 이야기가 신문 큰 자리를 채웁니다. 많은 이들이 이이를 취재하고 더 많은 이들이 이이 이야기를 읽습니다. 1억을 얼마 만에 버느냐 이야기를 하던 때는 아스라한 옛날입니다. 이제는 10억이나 100억을 이야기합니다. ‘서민’이든 ‘부자’이든 ‘권력자’이든 ‘더 많이 거두어들이는 돈’에 눈길이 촘촘히 박힙니다. 우리 주머니에 넣고 자랑하는 돈이 어디를 거쳐서 왔는지, 누구 주머니에서 옮겨 왔는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 아무개 씨 재산은 말썽거리가 됩니다. 새 정부 사람들 재산도 말밥에 오릅니다. 그러면 지나간 정부 사람들 주머니는 어떠했을까요.

 돈굴리기를 자랑하고 돈모으기를 소리 높이 외치는 가운데, 정작 이 사람들이 지난 세월에 누구와 무슨 일을 했는가는 도마에 오르지 않습니다. 책을 몇 권쯤 읽었고, 영화와 연극을 몇 편 보았고,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해서 어떤 보람을 얻었는가는 밝히지 않습니다. 아마, 밝힐 만한 이야기가 없을지 모릅니다. 금리ㆍ주식ㆍ투자ㆍ자동차ㆍ외국여행ㆍ아파트 값 들에는 빠삭하지만, 우리 사는 동네에 어떤 이웃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는 젬병입니다. 책 많이 읽을 사람도 책 지식에 묻혀서 세상 훌륭한 책을 펼쳐낸 사람들 속뜻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거나 곰삭이거나 나누는 데에는 어줍잖습니다.

 “이 노동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부착’하는 것이다. 만약에 이 일을 15살 소년이 내 대신 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와 나의 인생 경험, 지식의 차이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76쪽)” ‘계절노동자’로 도요타자동차 일꾼으로 들어간 사람이 남긴 일기가 《자동차 절망공장》(우리일터기획,1995)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때는 1973년. 일찍이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를 보여주었고, 2000년대 우리들은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높이는 톱니바퀴마냥 살아가면서도, 스스로 톱니로 구르고 있는 줄 모릅니다. 1억을 벌거나 10억을 벌었다고 ‘만세!’ 하고 외칩니다.번 돈을 어디에 쓸 생각인지, 벌어들인 돈은 누구와 나눌 마음인지, 돈을 버는 동안 이웃과 동무하고는 어떤 사이로 지냈는지에는 눈길 한 번 기울이지 않습니다.

 “나는 내 노동으로 자동차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트랜스미션을 만들고 있는 것인데도, 이것에 의해 차가 움직이고 그 차 안에 인간이 타며 그 차가 달리는 앞뒤를 인간이 걷고 있는 등의 상상을 한 적이 없다. 오로지 이 한 대를 때맞춰 작업하여 다음에 오는 한 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만, 오로지 늦지 않기 위해서만 손을 움직이고 있다 …… 기계적인 움직임을 강요당한 인간이며, 기계보다 싸고 대치하기가 쉬운 부품이며, 더 간단히 말하자면 한 번 쓰고 버리는 전지인 셈이다.(101쪽)” 연봉 5천을 받거나 연봉 1억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재산을 100억으로 불린 다음에는 남은 자기 삶을 어떻게 보낼 생각일까요. 삼성그룹 이건희 님한테 《자동차 절망공장》을 헌책방에서 2천 원에 사서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4341.4.24.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 세계 명작 속에 숨은 보물찾기 1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정회성 옮김, 원유성 그림 / 서강books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아이한테 자기 삶을 사랑하는 길 일러주기
 ― 러드야드 키플링,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



 (이달에 추천하는 어린이책)


 책이야기를 하는 잡지 《북새통》에서 다달이 ‘이달에 추천하는 책’을 뽑고 있습니다. 추천책 후보는 모두 다섯 가지이고, 저는 후보에 오른 다섯 가지 책을 하나하나 살피며 이 가운데 한 작품만 뽑아서 알리는 심사위원 노릇을 맡고 있습니다. 지지난해부터 했지 싶습니다. 후보에 오른 다섯 권을 하나씩 살피면서, 제 나름대로 책마다 어떤 대목에서 반갑고 얄궂었는지, 또 좋았고 아쉬웠는가를 밝혀 보는 가운데, 마지막 한 작품을 추려 봅니다.


후보 1 : 치킨 마스크 (우쓰기 미호/장지현 옮김/책읽는곰/2008.3.3.)
후보 2 : 변기엔 누가 앉을까? (안드레아 웨인 폰 쾨닉스뢰브/고우리 옮김/키득키득/2008.2.29.)
후보 3 : 꼴찌가 받은 상 (김용인/영림카디널/2008.3.31.)
후보 4 : 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 (윤구병 글,김미혜 글,이형진 그림/보리/2008.3.5.)
후보 5 :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원유성 그림,정회성 옮김/서강출판사/2008.2.28.)



 - 1 -

 다섯 가지 책만 보면서 추천할 만한 작품을 고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아이한테 선물해 준다고, 또는 읽어 준다고 했을 때, 또는 함께 본다고 할 때 어느 책이 제 마음에 가장 와닿는가 하고 헤아려 보니, 후보 1∼3은 덜어내게 됩니다. 후보 1∼3이 줄거리가 모자라거나 형편없는 책이기 때문에 덜어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세 가지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수많은 책에서 너무 뻔하게 되풀이되고 있어서, 굳이 어슷비슷한 이야기책을 또 하나 만들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후보 3인 《꼴찌가 받은 상》을 살피면서, 우리 나라에서 동화를 쓰는 분들 글감은 어이하여 하나같이 똑같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나라 교육 문제는 1950년대와 2008년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1950년대에는 국민학교 들어가는 일부터 시험을 치러야 할 만큼 빡빡했습니다. 이제는 초등학교 시험은 없어요. 그런데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인 대목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자유로이 뛰어놀기도 하고 부모나 이웃사람 일을 거들면서 사회를 배우고 자기를 알아가는 흐름이 조금도 없습니다. 아니, 아예 막혔습니다. 어른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아이들한테 마음길을 터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막혀 있는 길을 뚫어 달라고 바라기는 하지만 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어른들 귀에는 들리지 않을 뿐더러, 어른들 손찌검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무서워서 말을 못하기도 합니다. 꼴찌한테 좀더 따스한 눈길 보내는 일은 틀림없이 값어치가 있습니다만, 꼴찌만이 아닌 19등도 29등도 39등도 따스한 눈길을 받아야 하는 한편, 한 걸음 나아가 아무런 등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적 하나만을 놓고 매기는 등수란 사라져야 합니다.

 후보 2 《변기엔 누가 앉을까?》는 남다른 생각힘으로 잘 엮어낸 그림책으로 여겨지고 책꾸밈도 남다릅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시고 시골이고 죄다 아파트 판이며,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부엌이나 집안에 갖추는 살림은 서양 문명대로 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과 반찬은 ‘유기농 곡식’이기를 바라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사료와 항생제가 아닌 풀과 좋은 먹이를 먹던 고기이기를 바라는 우리들이면서도, 정작 우리가 누는 똥과 오줌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콧털만큼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똥누기 연습’을 시키는 일도 중요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러면, 똥누기와 함께 이어져야 할 다른 삶은, 다름 앎은, 다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책 하나에서 한 가지를 넘어서는 수만 가지 이야기를 속속들이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놓치는 대목은 없는 가운데, 책 하나에 담으려는 한 가지 이야기를 잘 잡아채야 한다고 느낍니다. 서양 물질문명 그대로 살아가는 우리 형편으로는 《변기엔 누가 앉을까?》는 재미있게 볼 만한 그림책이라고 느껴지지만, 재미있게 보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하는 생각을 이어 본다면, 글쎄요. 이만한 이야기는 책으로 안 만들어도 되지 싶은데. 그냥 말로 이야기해도 넉넉하지 싶은데. 또한, 똥닦이 휴지 씀씀이도 생각할 문제입니다.

 후보 1 《치킨 마스크》는 아이 스스로 자기 모습을 찾아나가는 마음앓이를 잘 담아내는 이야기책으로 보입니다. 우리 나라 못지않게 일본은 돌림뱅이와 괴롭힘이 끊이지 않습니다. 절름발이라고 해서 좀 어리숙하다고 해서 좀 굼뜬다고 해서 좀 못생겼다고 해서 푸대접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머리숱이 좀 적다 한들, 우리 아이가 좀 키가 작은 편이라 한들, 우리 아이가 좀 토실토실하다 한들, 아무 거리낌이란 없습니다. 저마다 소중한 마음씨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네 아이들이 의무로 다녀야 하는 학교교육 틀거리에서는 아이마다 간직하고 있는 마음씨를 살리거나 북돋우기 어렵습니다. 학교교육은 ‘어찌 되었든 한 해 동안 여러 과목 교과서 진도를 마쳐야’ 하거든요. 교과서 진도는 못 마칠 수도 있고, 조금 일찍 마칠 수도 있고 늦게 마칠 수도 있는데, 꼭 그만큼만 마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교과서 아닌 책은 못 보게 합니다. 한 가지 책만 모두한테 똑같은 시간에 걸쳐서 가르치고, 똑같은 책걸상에 앉아서 하염없이 교사 입만 바라보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학교에 보내는 우리 어버이들은 아이가 받을 고단함을 깊이 헤아리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동무들을 만나서 사귄다고 할 때에도, 어떤 동무를 사귀느냐를 찬찬히 헤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아이와 이웃 아이가 ‘오로지 대학교에 붙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서로서로 동무가 되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재미있을 만한 놀거리, 공부거리, 일거리를 스스로 찾기 어려운 학교 틀거리인데, 집에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야기책 《치킨 마스크》는 이런 여러 가지 사회 짜임새와 교육 틀거리 때문에 시달리는 아이를 그려냅니다. 그렇지만 좀더 안쪽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이 또한 너무 겉핥기로 그쳐 버린다고 할까요. 자기 모습을 찾아나가는 길찾기는 틀림없이 소중한 일입니다만, 자기 혼자서만 바뀐다고 해서 나와 이웃 모두가 함께 나아질 수는 없는 터. 곁가지이지만, ‘치킨’ 탈(마스크)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튀김닭이 ‘치킨’입니다.

 후보 4 《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은 우리네 아이들한테 ‘놀이’만이 아닌 ‘일’도 보여주고, 서양 문화만이 아닌 우리 문화도 일러 주는 이야기그림책입니다. 책이름에 사전이라고 했듯이, 《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은 ‘일 사전’과 ‘놀이 사전’, 그리고 ‘사물 이름 사전’ 노릇을 합니다. 모듬으로 그려진 큰 그림은 달에 따라서 한 장씩 들어가는데, 싱싱함과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싱싱함이 ‘사물 이름 보여주기’에서 제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모듬그림 다음에는 ‘죽어 있는 박제’ 그림이 뒤따르고 맙니다. 나무 그림을 죽 늘어놓는다고, 물고기 그림을 죽 늘어놓는다고, 아이들이 이 나무와 물고리를 얼마나 잘 헤아릴 수 있을는지요. 놀이와 명절과 문화 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 입말을 살렸다고 하지만, ‘-요’만 붙인다고 하여 입말이 될 수 없고, 아이한테 살짝 반말 느낌이 나는 말투가 입말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고 봅니다. 가락에 맞추어서 넣은 글은 어느 한편으로는 ‘말놀이’인 셈이, 또는 ‘말장난’인 셈이 아니냐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이와 같은 모듬그림을 보여주거나 나눈다고 할 때에는 ‘교육 효과(EQ)’를 노리는 대목도 어김없이 있을 터이나, 이보다는 이와 같은 모듬그림이 우리 ‘삶’이요,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느끼던 ‘발자취(역사)’이며,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자기 꿈(앞날)을 키워 나가는 길잡이가 되면 한결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냐 생각합니다. ‘사전’이라는 말을 붙이자면 속살을 좀더 알뜰히 채워 넣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만한 책은 그냥 ‘이야기그림’일 뿐입니다. 이야기그림 얼거리도 퍽 엉성궂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넣으려고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모으기보다는 알맞춤한 정보를 엮어내고, 책끝에 실은 풀이말은 좀더 꼼꼼히, 좀더 넉넉히 실어서 ‘사전 노릇’을 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후보 5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을 펼치는 동안, 그림을 그린 분이 무척 땀흘려서 그렸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사람 몸 어울림’이 깨진 대목이 있고, 우리 나라 역사연속극에서 보듯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옷차림과 몸차림’으로만 나와 낯설게 느껴지는 ‘옛사람(원시인)’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키플링 님이 엮어낸 상상동화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은 당신이 당신 딸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 엮었구나 싶어서 흐뭇합니다. 다만, 이만한 이야기라면 우리 나라 수많은 부모 가운데 한두 사람쯤은 자기 딸아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로 지어낼 수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가 4000해를 넘는다고 말들은 많으나, 이 긴 역사에 걸맞는 ‘옛사람 슬기를 이어받아 펼쳐 나가는 이야기책’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 글자인 한글은 세계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훌륭하다고 입에 침이 바르도록 칭찬들 하지만, 정작 ‘한글을 빚어낸 바탕을 아이들도 재미나게 익히도록 새롭게 엮어낸’ 이야기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먼 옛날 낙동강가에서 생긴 일”이나 “먼 옛날 두만강가에서 생긴 일”은 살가운 그림책 하나로 태어날 수 없을까 궁금합니다.


 - 2 -

 다섯 가지 책을 펼치고 살피고 덮으면서, 이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책을 뽑으면 좋을까 하는 망설임은 풀어내지 못합니다. 적잖이 답답합니다. 흔히 평점을 매기곤 하는데, 평점을 매긴다고 해도 어떻게 점수를 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점수를 주는 일은 달갑지 않기도 하지만, 구태여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 권을 뽑아야 하는 판. 다시금 책을 하나씩 넘겨 봅니다. 후보 1와 후보 2과 후보 3은 집 앞에 있는 헌책방에 들고 가서 선물로 드립니다. 후보 4과 후보 5이 남습니다. 후보 4은 책꽂이 아래쪽 안쪽에 집어넣습니다. 후보 5은 다시 한 번 읽습니다. 후보 4과 후보 5 모두 그림을 그리신 분 땀방울이 고이 배어 있음을 또렷이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땀방울을 많이 흘렸다고 하여도, 살 속 깊이 파고들도록 흘려야 한다고 느끼고, 이야기 얼거리와 책 짜임새에서,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와 어떤 삶을 들려줄 수 있는가 하는 대목에서는 후보 5이 조금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라도 후보 4인 《꼬물꼬물 일과 그림 사전》이 고침판을 펴내어, 첫판에 깃든 아쉬움을 털어내고 새롭게 태어나 준다면, 후보 4 손을 들어 주겠습니다.

 후보 5인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을 한 번 읽는 동안, 번역글에 꽤 말썽거리가 많음을 봅니다. ‘것’을 지나치게 많이 붙이는 대목, 주인공 타피네 어머니를 가리켜 ‘그녀’라고 쓰는 대목, ‘가끔씩’으로 잘못 적은 대목, ‘본격적-미소-수선-너의-광경-공손-현명-표정-실수’ 같은 낱말은 살포시 걸러낼 수 있었다는 대목, 이를테면 ‘잘못’과 ‘실수’라는 낱말을 겹치기로 쓰고, ‘웃음’과 ‘미소’가 어떻게 다른가 헤아리지 못하고, ‘수선’과 ‘고치기’도 겹으로 쓰이는 대목들은, 옮긴이와 출판사 편집부가 ‘어린이책에 담아낼 낱말 씀씀이’를 차근차근 돌아보지 못했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 말은 ‘네’이지 ‘너의’가 아니나, 이런 대목은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어린이책 편집지와 번역자 눈썰미가 얕았습니다. 또한, 타피네 부족 아주머니와 언니 들을 가리켜 ‘숙녀’라고 적은 대목도 아쉽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머니고, 언니는 언니입니다.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은, 출판사에서 책겉에 적은 대로 “탁월한 언어 감각을 지닌 천재적인 이야기꾼, 영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정글북》의 작가 ‘러드야드 키플링’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어린아이한테 자기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땅에서 누리거나 느낄 문화와 삶이란 무엇일까, 어린아이 스스로 부대끼는 삶 하나하나가 작은 듯해도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속깊은가를 스스로 살피거나 찾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런 이야기책은 상상힘이 조금 떨어져도 나쁘지 않습니다. 작품에 담는 애틋한 마음과 사랑스러운 믿음이 얼마나 야무지고 아름다우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4341.4.2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짜장면을 맨 처음 만든 집은 ‘썩어’ 간다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 23] 중국사람 거리 ‘공화춘’



 그대로 두면 퍽 멋들어진 옛 ‘중국사람 거리 중국집’으로 남을 텐데, 이러한 집들이 얄딱구리한 페인트 떡발림에 시달리면서 ‘차이나타운 관광지 짜장면집’으로 바뀌고 있다. 엊그제 모처럼 ‘중국사람 거리’로 나들이를 갔다. 옆지기가 해바라기씨를 먹고 싶다고 해서 부러 나들이를 갔다. 중국사람들은 해바라기씨를 참 좋아해서 이곳에는 중국에서 바로 들여온 해바라기씨를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서 판다. 우리는 이 가운데 가장 큰 놈으로 샀다. 그래 보아야 3000원. 껍질째 먹어도 되지만 너무 짜다. 껍질을 벗겨 먹으면 알맹이는 아주 작다.

 중국사람 거리에 들른 김에 중국 보리술도 두 병 산다. 한 병에 1500원이 안팎인데, 630들이 보리술을 이만한 값으로 사마시는 값은 무척 싼 편. 그러면 이 보리술을 중국에서 들여올 때는 얼마라는 소리일까.

 새 고무신을 신은 탓에 뒷꿈치가 다 까지고 발등도 빨갛게 부어오른다. 신던 고무신이 아주 닳아서 새 고무신으로 옮겨신는데, 이때마다 늘 발앓이를 한다.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아까 지나온 길을 다시 걷고 싶지 않아 안쪽 골목으로 걷는다. 이 골목까지는 관광지 개발을 하지 않아서 조용하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왁자지껄 시끄럽고 한쪽은 아주 한갓지다. 지금 우리 동네 재개발로 다 쓸려나가면 차라리 이리로라도 옮겨올까? 그런데 여기는 재개발 안 하나? 에휴.

 수풀이 우거진 어느 중국집 앞을 지난다. 이곳은 그예 조용히 있네, 하는 생각으로 지나가다가 이 집에 붙어 있는 빛바랜 간판에 눈길이 쏠린다. 앗, 아니, 여기는 ‘공화춘(共和春)’ 아닌가? 1905년에 세워진,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짜장면을 빚어서 팔던 그 가게!

 그런데 어이하여 이렇게 수풀이 우거진 빈집, 썩어가는 집, 쓰러져가는 집이 되었지? 이곳 공화춘을 인천시에서는 2006년 4월 14일에 등록문화재 246호로 지정해 놓기도 했다는데, 등록문화재로 지정은 해 놓고 이렇게 내버려 두어도 되는가? 이게 무슨 문화재라고? 중국사람 거리에서 1번지라고 할 공화춘을 이렇게 엉망으로 다 쓰러져 가게 해 놓고 무슨 ‘차이나타운 관광특구’ 따위를 만든다고?

 이곳 공화춘은 1984년에 문을 닫고, 지금은 인천역에서 올라오는 가운데길 세거리 한복판에 새 건물을 지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들어서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옛자리 공화춘은 틀림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옛자리 공화춘은 중국사람 거리를 대표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이렇게 버려두고서 무슨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말하고 관광을 말할 수 있겠는가. 문화재임을 알리는 빗돌 하나 없고, 이 앞을 또는 이 옆을 지나다니는 어느 누구도 이곳이 ‘공화춘’ 옛자리임을 알지를 못한다.

 돈으로 처바를 수 없는 역사요 문화재이다. 돈으로 다시 세울 수 없는 문화요 살림집이다. 돈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없는 관광지이고, 돈으로 사람들 눈길을 받을 수 없는 관광상품이다.

 엊그제 지역신문(인천일보 2008.4.16.)을 보고 인천연대(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보도자료(2008.4.15.)를 보니, 인천시는 ‘2009인천세계도시엑스포’를 하려다가, 중국에서 세계공인을 받아 하는 행사와 겹치게 되어서, 이름도 ‘2009인천세계축전’으로 바꾸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행사를 한다면서 그동안 128억이라는 예산을 썼는데 이 가운데 65억을 조직위 147명한테 인건비를 주느라고 썼다고 나온다. 2009년 9월에 한다는 ‘인천세계축전’에서 무엇을 할는지 아직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며칠 동안 할는지도 잡히지 않은 가운데, 또 어디에서 어떻게 한다는지 틀거리도 없다고 한다. 오로지 돈만 썼다. 돈을 쓸 곳이 없어서 이곳에 퍼붓는가? 인천이라는 곳을 세계에 알리고, 아니 세계에 알리기 앞서 나라안에 알리고, 아니 나라안에 알리기 앞서 인천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무언가 알리거나 나누려고 하는 데에는 돈을 얼마나 쓰고 있을까. 품은 얼마나 들이고 있을까. 마음은 얼마나 쏟고 있을까.

 어쩌면, 문화며 삶이며 역사며 집이며 예술이며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공화춘에 어줍잖게 손을 대지 않고 수풀만 우거져 있도록 내버려 둔 편이 나은지 모른다. 괜히 돈쟁이들이 돈으로 처바른답시고 잘못 건드렸다가 첫모습마저 잃어버리거나 망가지면 더욱 큰일이다.

 쓸쓸해 보이지만, 쓸쓸하지 않은 옛 공화춘인지 모른다. 조용히 해바라기를 하면서 가게 앞 푸나무하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그 자리에서 흙이 되어 가는 옛 공화춘인지 모른다. 이제는 주차장처럼 쓰이고 있어, 이 앞을 지나가면서도 옛 공화춘임을 알아보기 어렵게 된 형편.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꿉벅 숙여 인사를 한다. (4341.4.1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