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오월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구판절판


"옴마, 우리 집 밥상!" 누나는 밥상 앞에 달려들어 밥을 퍼먹어댔다. 배가 고파서만은 아닌 듯했다. 집에서 먹어 보는 밥상이 그처럼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우리 집 김치가 참말로 꿀맛이다, 꿀맛!" 엄마는 달걀 부친 것도 슬며시 누나 밥그릇 옆으로 디밀었으나, 누나는 김치와 청국장만 허겁지겁 먹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엄마와 아버지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굶었으면 저럴까 싶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묵어라잉." 그렇게 말해 놓고 엄마는 누른 밥을 긁어 왔다. 누나가 그 누른 밥까지 달게 먹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인제 다시는 안 나갈 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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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신포시장에서 감자 한 봉다리를 천 원에 샀습니다. 알이 작은 녀석이고 떨이입니다. 저잣거리에서 감자를 팔 때면 으레 굵직한 녀석을 파는데, 이런 알 작은 녀석은 사가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돈 천 원으로 여러 날 넉넉히 먹을 만한 감자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4340.7.3.불.ㅎㄲㅅㄱ)-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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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일터인 도서관을 찾아오는 책손 가운데 “책 많이 모으셨네요?” 하고 여쭙는 분이 있고, “모은 책 다 읽으셨어요?” 하고 여쭙는 분이 있습니다. 이럴 때면 으레 “읽으려고 산 책이에요.” 하고 대꾸를 하고 “사 놓고 바로 읽어야만 하지는 않아요. 한두 해쯤 지나서, 또는 열 해쯤 지나서 읽어도 좋아요. 사서 바로 읽는다고 해서 그 책에 담긴 뜻과 줄거리를 오롯이 헤아린다고 볼 수 없거든요. 사 놓은 그 책을 열 해쯤 뒤에 읽고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고, 몇 차례 거듭 읽은 끝에 서른 해 뒤에 깨달을 수 있는 한편, 열 번 스무 번을 읽었어도 죽는 날까지 그 책에 담긴 고갱이 가까이 못 다가가기도 해요.” 하고 덧붙입니다. “교보문고에 가서 ‘이야 책 많네!’ 하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헌책방에서든 도서관에서든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그곳에 책이 많으냐 적으냐에 눈길을 두기보다는, 이곳에서 내 마음을 적셔 줄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내 마음을 움직일 책 하나를 찾아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두면 좋겠어요.” 하는 말도 덧붙여요. “그러면 어떤 책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인가요?” 하고 묻는 분이 계십니다. 이때는, “지금 제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도, 또 제 딸아들 될 사람이나 제가 죽은 뒤 제 책을 거두어서 읽을 사람한테도 우리 세상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겠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표를 모으듯 책을 모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인형을 모으듯 책을 모으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면, 책은 ‘모아서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모은 책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 이렇게 좋은 책 많소!’ 하고 자랑을 할 때? 인터넷으로 책방을 열어 장사를 할 때?

 “책을 몇 권쯤 모으셨어요?” 하고 여쭙는 분들한테는 “한 권 두 권 사서 읽다 보니까, 이렇게 모이더라구요. 사서 읽은 뒤 파는 책이 있고 동무들한테 선물하기도 해서, 몇 권이 있는지 몰라요. 저한테 책이 몇 권 있는지 세어 보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어느 갈래 지식을 얼마만큼 머리속에 가두어 두고 있는 일이 그 갈래를 제대로 아는 일이 아닌 만큼, 제가 책을 몇 권 갖추고 있다는 일이 제가 그 책들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일이 아니라고 느껴요. 또한 늘 새로운 책을 꾸준하게 사서 읽고 책꽂이에 꽂아 두고 있으니까, 지금은 몇 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바로 하루만 지나도 숫자가 바뀌어요. 한 해가 지나면 크게 바뀌겠지요. 그러면 그 숫자들은 우리가 책을 잘 읽거나 새기고 있음을, 또는 책을 읽어서 얻은 깜냥을 잘 곰삭이고 있음을 얼마나 제대로 보여줄까요?” 하고 되묻곤 합니다.

 고개를 숙인다는 ‘익은 벼’는, 누구한테나 밥이 되어 줍니다. 넉넉하게 배를 채워 줍니다. 다부지게 일하거나 놀거나 어울릴 힘을 선사합니다. 익은 벼는 제 몸을 바쳐 다른 목숨들한테 새삶을 건네주며 자기는 조용히 스며듭니다. 우리가 읽는 책은 어디로 어떻게 얼마만큼 스며들고 있을까요. (4340.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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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였다. 아내가 어릴 적부터 다닌 일산 탄현동 성당에서 구역장을 맡고 계신 분이 나를 보더니, “그런데, 성당에 오실 때는 긴바지 입으셔야 돼요.” 하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런가요? 인천에 있는 성당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없던걸요. 일산만 그런가요, 다른 성당도 그런가요?’ 하고 되물으려다가 그만둔다. 인천에 있는 답동성당이며 송림동성당이며 찾아갈 때에, “반바지 입고 오면 안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신부님한테도, 수녀님한테도. 미사를 함께하러 오는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한테도. 어젯저녁에는 구역미사에 갔다. 이 자리에서도 신부님과 수녀님을 비롯하여 동네 어르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내 옷차림을 놓고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한 마디, “젊은 친구니까 많이 먹어야지. 많이 드세요.” 하는 말은 듣다. 저녁 여덟 시부터 이루어진 미사가 한 시간 십 분쯤 걸려 끝났고, 미사가 끝난 뒤 위층으로 올라가서, 동네 신자 아주머니들이 차려 주는 저녁을 다 함께 먹었다. 저녁자리에는 신부님도 수녀님도 모두들 허물없이 어울렸고, 나이 지긋한 수녀님은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하고 손뼉치기 놀이도 하신다. 오늘 새벽, 아내는 답동성당에 새벽 미사를 드리러 나들이를 갔다 왔고, 집으로 온 뒤 곧바로 길을 나서서 일산으로 온다. 용산급행 전철이 신도림역을 지날께, 탄현동 구역장님이 아내한테 손전화 문자를 보낸다. “성당 올 때 긴바지 입어야 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아내가 몸담은 탄현동 성당에 내가 갈 수 있는 때는 한겨울뿐이겠다. (4340.6.28.나무.ㅎㄲㅅㄱ)

 


(2007년 1월, 서울발바리 잔치에 나갔을 때 찍힌 사진.

 나는 이 사진에서 보듯이, 12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긴바지를 입는다. 2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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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코
리영희 지음 / 까치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스핑크스의 코
- 글쓴이 : 리영희
- 펴낸곳 : 개마고원(1998.11.30.)



 우리 나라에는 아직 공안부서 경찰이 있습니다. 아직 있을 뿐 아니라 꽤 많이 있는 듯하며, 요즘 들어 실적 올릴 일이 없어진 탓에 부서 예산이 줄어드는 일과 정리해고 되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동네 헌책방 일꾼을 ‘좌경용공사범’으로 몰아붙이며 들볶습니다.

 동네 헌책방을 들볶는 일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을 테며, 자기들로서는 언제나 들이밀기 좋은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동네 헌책방은 아주 만만합니다. ‘동네 헌책방에서 사고팔아서 말썽이 된다’고 공안부서 경찰이 말하는 ‘불온 이념도서’는 ‘교보문고 같은 새책방에서 팔린 뒤, 이 책을 사서 본 이가 내놓아서 헌책방에 들어온 책’입니다. 공안 경찰은 헌책방 일꾼을 붙잡아서, “이 책을 어디서 사 왔느냐? 누구한테 팔았느냐?” 하고 심문합니다. 하지만 헌책방 일꾼이 누구한테 언제 샀는지 하나하나 떠올릴 수 없는 노릇. 고물상에서 뭉텅이로 주워 온 책들을 어찌 낱낱이 떠올릴 테며, 이 책들이 누구한테 팔렸는지 어찌 하나하나 되새길 수 있을까요. 공안 경찰들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책’인가 알고 싶다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알라딘과 예스24와 인터파크와 …… 이런 새책방 ‘판매명단’을 압수하면 될 일입니다. 교보나 영풍 같은 곳 ‘마일리지 카드’를 압수해도 손쉽게 쭉 뽑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말썽이 되어야 한다면, 맨 처음 새책방에서 이 책을 사서 읽은 사람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런 책을 펴내어 시중에 내놓은 출판사가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이런 책을 써낸 사람(지은이)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책이 나왔을 때 ‘좋은 책 나왔으니 사서 읽으시오’ 하고 소개글을 썼던 기자와 교수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시중 새책방에 깔려 있는 《스핑크스의 코》 같은 책은 ‘빨갱이 리영희’가 썼다고 해서 ‘불온 이념도서’라고 도장을 찍습니다. 제법 널리 읽혀서 웬만큼 ‘책 좋아하는 사람’ 집에는 다 꽂혀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안 꽂아 둔 도서관이 없고, 리영희 교수 만나보기를 안 해 본 언론매체도 없으나, 공안 경찰은 오로지 하나, ‘한 놈만 팬다’는 법칙(?)을 따라서, 가장 힘없고 이름없고 돈없는 동네 헌책방만 겨냥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아직 국가보안법이 있었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네’ 하며 혀를 차거나 ‘그깟 헌책방에서 일어난 일인데, 뭐’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빨갱이’ 리영희 교수가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 소비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의 유행 창조자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드러내보임으로써 ‘풍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여성이 배꼽을 드러내거나 반나체가 되는 새 유행의 옷을 남보다 먼저 걸치는 것을 ‘여성 해방’의 ‘실천적 행위’로 미화하는 소비주의 경제와 그 광고산업의 돈줄을 장악하고 잇는 것은, 압도적으로 남성들이다. 경제력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의 육체에 수백만 원짜리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거나, 여성들의 손에 다이아몬드를 끼웠다 빼었다 하는 유행을 ‘현대화’니 ‘풍요’로 미화할 때, 그런 유행 속에서 현대화와 풍요를 찾으려는 여성은 남성의 지배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다. 오히려 더욱 깊이 예속 상태에 빠지게 된다 ..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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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 찻길을 달리더라도, 길가에 함부로 대놓은 차와 부대낄 수밖에 없다)

 

4/26 - 서울에서 인천으로 46번 국도


- 어제 홍제동 산동네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길바닥 두 군데가 길쭉하게 꺼져서 쿵 하고 두 번 찧었다. 불빛 없는 어두운 데라서 깜짝 놀랐는데 넘어지지는 않았다. 뭘 하기에 길을 저렇게 파 놓았을까 싶었다. 낮에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서며 비로소 무엇인가 알다. 여기 비탈길 접어들기 바로 앞서 너른 자리에 홍제3동 사무소를 새로 지었는데, 동사무소 앞 아스팔트를 새로 깔면서, 헌 아스팔트를 파내려고 미리 파 놓았던 것.

 개새끼들! 욕이 절로 나온다. 동사무소 건물 짓는다며 떠들썩거리기 앞서까지는 길이 엉망이어도 아랑곳하지 않더니. 아니, 동사무소가 새로 들어선다고 해도 아스팔트를 굳이 새로 깔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은 편인데. 패인 곳 한두 군데만 때우면 되는데. 오늘은 새 아스팔트 깐다고 길을 다 막아서고 난리법석. 돌아가는 길도 없는 외통수인데 하염없이 길을 막고 있다. 허 참. 그러면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지나가라고? 지나갈 길 하나 마련하지 않고, 거기다가 알림판 하나 세워 놓지 않고, 더구나 이런 공사를 한다고 미리 알리지도 않고. 이 공무원 년놈들 나라밥 처먹고 한다는 짓거리가 이 따위인가.

- 아스팔트 까는 길을 아슬아슬 지나오는 동안 까만 찌끄러기 돌이 바퀴에 잔뜩 달라붙다. 바퀴 안 녹나 모르겠네.

- 찻길을 달리며 내 뒤나 앞을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자기 줄로 가지런히 안 달리는 자동차가 으레 있다. 이웃 줄과 자기 줄에 엉성하게 걸쳐서 두 줄을 차지하며 달린달까. 이렇게 달리는 자동차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다른 자동차한테 짜증스러운 경적 울리기를 하곤 한다. 자기들 달리는 모양새는 생각도 않고.

- 무어 그리 갈 길이 바빠서 들쑥날쑥 줄을 바꾸어 가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무어 그리 빨리 가야 해서 그렇게 경적질을 하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문득, 자동차 경적은 자전거한테만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끼리도 참 많이 한다고 느끼다.

- 네거리 신호가 바뀔 듯하면, 페달질을 더 빨리 밟지 않는다. 멀찍이 200∼300미터쯤 앞에서 신호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헤어 본다. 넉넉히 건널 만하지 않다면, 아슬아슬하므로 빠르기를 조금 늦춘다. 이렇게 하면 목적지에 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할 수 있지만, 시내에서는 어차피 신호에 자주 걸리는 터. 이렇게 해도 달리는 시간은 그다지 안 벌어지지 싶다.

- 양화다리로 가는 길. 합정동 버스정류장 앞에 버젓이 서 있는 자가용 한 대와 짐차 한 대. 여기에다가 새로 멈추어 서는 작은 자가용 한 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들한테 한 마디 할 생각은 없는가. 이런 차는 사진으로 찍어서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

 버스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들은 정류장을 턱 막고 서 있는 자동차한테 빵빵거리지 않는다. 그냥 그 옆에 대충 버스를 세우고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타고내리도록 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한테는 빵빵거린다. 괘씸한 것들. ‘동업자’ 정신인가?

- 양화다리 건너고 대림동 지날 무렵부터 자동차가 줄다. 한숨을 놓다.

- 송내까지 다른 탈 없이 차분하게 달리다. 몇몇 버스하고는 사이좋게 달리다. 네거리 신호가 바뀔 때 자전거를 옆으로 빼서 버스가 먼저 지나가도록 하니,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 자전거 지나갈 틈을 조금 넓게 마련해 준다. 서로서로 이렇게 해 주면 더 홀가분하고 즐겁게 자전거나 자동차를 몰 수 있겠지.

 그런데, 송내에서 거침없이 막 달리는 아저씨 한 분 보다. 네거리 신호가 막 바뀌어 건너가는데 불쑥 내 왼쪽으로 튀어나와 앞지르려는 아저씨. 아마 뒤에서 줄곧 달려오신 듯. 내 자전거가 슬슬 탄력을 받아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즈음, 뒤에서 버스가 큰소리로 울리는 빠앙 빵. 깜짝 놀라다. 저 버스는 몇 초만 기다려 주면 될 터인데, 또는 옆으로 살짝 비껴 가면 될 텐데.

 거침없는 아저씨 자전거는 네거리 신호가 빨간불이건 푸른불이건 따지지 않고 그냥 건넌다. 너비 이십 미터가 넘어 보이는 넓은 네거리도 그냥 달린다. 아저씨는 목숨을 내놓고 달리시는가. 그래, 아저씨 한 분이 그렇게 목숨 내놓으시는 건 당신 뜻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아저씨 덕분(?)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거나 먼길을 오가는 사람이 똑같이 욕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 오류동부터였을까. 거의 부평에 다다를 때까지 88번 버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다. 나는 버스한테, 버스는 나한테 마음을 쓰면서 달리다. 내가 버스정류장 앞을 지날 때면 외려 버스가 빠르기를 늦추며 나보고 얼른 지나가라고 해 준다. 그 다음에는 내가 길섶에 바싹 붙어 자전거를 세우며 버스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따로 손을 흔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또 저 버스기사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마음좋은 사람을 만났다. 혼자 달리는 이 길이 88번 버스 한 대로 외롭지 않았다.

- 달리다가 페달질이 좀 이상하다 싶어 자전거를 요리조리 살피니, 체인에 무언가 끼었다. 길가에 자전거를 세운다. 체인을 살살 돌려 본다. 누군가 길에 버린 휴지가 체인에 감겼군.

- 간석오거리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빠졌는데, 엉뚱한 데로 길이 이어진다. 그대로 가야 했군. 백운역을 고가도로 위로 지나갔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골똘히 생각하다. 인천 시내 달려 본 일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길이 아직 잘 안 잡힌다. 자칫 엉뚱한 데로 빠질 수 있다. 표지판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자. 음. 아무래도 동암역을 가리키는 길로 가야 할 듯.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니 낯익은 길. 석바위 쪽 알림판과 동암역 알림판으로 나뉘어지다. 석바위 쪽으로 가다. 주안역 알리는 알림판 나오다. 조금 달리다 보니 고가도로 하나. 아차차. 이걸 타야 했나? 알쏭달쏭. 길을 거슬러 고가도로를 넘다. 넘으면서 보니 고가도로 밑 오른쪽 길은 ‘인천대학교’ 가는 길이란다. 어, 저쪽으로 그냥 갔어도 되었나?

 고가도로 내려오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으면 주안역. 아, 내가 가려던 길은 이 길이다. 제대로 왔네. 하지만 다음에는 고가도로 밑으로 이어지는 주안역 뒷길로 가도 되겠구나. 그 길이 한결 낫지.

- 어린이집 노란 봉고차, 내 옆을 바싹 스치며 달리면서 빵빵거린다. 어린이집 봉고차가 저렇게 거칠게 달려도 좋은가. 저 봉고차를 탄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 주안역 앞. 빨간 자동차 한 대가 깜빡이 안 켜고 갑자기 내 앞으로 확 끼어들며 주안역 안쪽으로 들어섬. 살짝 급브레이크 밟으며 차와 안 부딪힘. 심장이 벌렁벌렁. 그 차를 좇아가 따끔하게 쏘아 줄까……. 아니다, 말자, 저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자, 그냥 가자.

- 제물포를 지나고 도원역에 이를 즈음. 기찻길 오른쪽 골목으로 갈까 하다가 그만둠. 기찻길 오른쪽 동네길은 다음에 지나가기로.

-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이고. 이제 다 왔군. 계단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가방을 3층에 올려놓고 디지털사진기 들고 내려와 자전거 사진 한 장.

 자전거님, 애 많이 쓰셨어요. 이제부터 인천과 서울을 오갈 짐바리가 될 터이니, 살뜰히 아끼고 사랑하고 고이 보듬어 드릴게요. 오늘 하루는 푹 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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