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이것저것 준비만 하고 있는 도서관 ^^;;;;)
지난 4월에 충주에서 인천 배다리 골목길로 살림집을 옮겼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도서관을 열 생각이거든요. 인천 배다리 둘레에는 ‘2014년 아시아 경기대회 유치’ 된바람이 차츰 모질게 불어서, 2013년까지 전철역과 찻길과 학교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아파트’만 빼놓고 모두 재개발, 시청과 개발업자 말을 빌면 ‘도시정비-도시정화’ 사업을 벌인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네를 ‘아파트 + 쇼핑센터 재개발’을 해 버리면, 이곳 사람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까마득할 뿐인데, 10조를 투자해서 100조를 벌면 나라살림이 좋아진다고 믿는 공무원과 개발업자 목소리에 밀려날 뿐입니다. 새만금과 천성산은 자연 삶터였기에 지역사람들 문제였어도 널리 이야기가 되지만,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100년 역사가 넘는 골목길 문화를 이루어 온 배다리 같은 곳은 ‘낡고 오래되고 지붕 낮은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외국 관광객이 들이닥치기 앞서’ 죄 갈아엎을 곳으로 여기는 흐름도 있습니다. 그래, 오래 버틴다고 해도 2013년까지 고작 대여섯 해뿐이지만, 그 대여섯 해라도 지역사람들하고 책 문화를 나누고픈 마음에 이 자리에서 도서관을 열려고 해요.
도서관이라 하면, 으레 돈을 들여서 새 건물을 지어야 하는 곳,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입시공부를 하거나 대학생들이 고시공부 하는 곳쯤으로 알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진짜 도서관은 한 사람(개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 가지 주제로 모아 온 책을 차곡차곡 모아서 나누는 곳이기도 하며, 돈이 없더라도 자기 살림집을 고쳐서 책꽂이를 알뜰히 짜 놓은 뒤, 느긋하게 책 하나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 대한민국 법률에서는, 도서관사서 자격증을 갖추고 도서관위원회를 꾸리고 무슨 시설검사에 합격을 해야만 도서관을 열 수 있다고 못박는데, 돈이 없는 사람도 책을 즐길 수 있는 곳, 동네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찾아들 수 있는 곳, 멀리서도 찾아와 지역 책 문화와 지역 사람들 삶터를 함께 부대낄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요, 이런 지역 도서관이 전국 곳곳에 하나둘 문을 열 수 있으면 좋으리라 꿈꿉니다.
저는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주제를 내겁니다. 지난 1992년부터 하나둘 모아 온 책이 얼추 3만 권 남짓 되고, 이 책 가운데 1/8쯤이 사진책입니다. 아직 얼마 안 되는 숫자이지만, 도서관이란 ‘처음부터 모든 책을 다 갖추고 여는 곳’이 아니라 ‘새로 나오는 책과 새로 알게 된 책을 꾸준히 갖추면서 조금씩 만들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 5월 끝무렵에 모자란 대로 도서관 문을 연 다음,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한테 좋은 생각을 얻고 도움도 받으면서, 좀더 푸근하고 넉넉한 도서관으로 가꾸고 싶습니다. 한편, “사진책 도서관”이라고 해서 사진책만 갖추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그림책과 만화책, 소설책과 어린이책, 우리 문화와 말을 다룬 책, 사상과 철학과 언론과 역사와 교육 같은 인문사회과학을 다룬 책, 책을 말하는 책, 여성과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책, 환경과 생태를 다룬 책도 함께 갖출 생각입니다. 밥 한 그릇을 먹어도 골고루 먹어야 몸에 알맞듯이, 책 하나를 즐길 때에도 여러 갈래 책을 골고루 살피고 돌아볼 수 있어야 알맞다고 느끼거든요. 사진을 찍거나 공부하는 분들한테 나라 안팎 온갖 책을 구경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사진을 이루는 밑바탕이 될 인문학과 우리 문화 소양을 일깨우는 책도 함께 보도록 하고,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 생태계와 환경이 어떠한지 느끼는 가운데 사진감을 찾도록 도우며, 어린이책과 문학책 들을 같이 살피면서 자기 뜻과 마음을 서로서로 더 즐겁게 나누는 길을 찾아나서도록 거들고 싶어요.
다만, 지금은 돈과 힘과 이름 모두 없는 형편입니다. 저한테 있는 것은 여태껏 모아 온 책, 그동안 만나고 어울리던 사람들, 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과 뜻, 꿈과 뜻을 펼쳐 나가려는 몸뚱이입니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면, 무엇보다도 집임자한테 달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도서관을 연다고 해서 알아줄 사람이 있을는지, 널리 알려줄 사람이 있을는지, 도서관이 열린 줄 알고 찾아올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세 걱정, 2013년까지 이루어질 재개발 걱정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이룬다고, 아무 뜻도 펼치지 못한다고 느껴요. 이 도서관에 딱 한 사람이 찾아오더라도, 그 한 분한테 소중한 책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고맙다고 느낍니다. 조그마한 꿈이든, 자그마한 실천이든,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된다고 느껴요. 백 가지를 꿈꾸었으나 한 가지만 가까스로 할 수 있겠지요. 때로는 한 가지조차 못할 수 있을 테고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꿈꾸고 생각한 대로 제 길을 걸어갈 생각입니다. 이루어지는 것만 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루려고 애쓰는 세월과 제 몸짓과 땀방울이 바로 꿈이라고 느낍니다. 책을 믿고 살아온 대로 사람을 믿으며 살려 하며, 사람을 믿고 살아온 대로 제가 디디고 있는 이 땅을 믿으며 살 생각입니다. (4340.5.15.불.ㅎㄲㅅㄱ)
글쓴이 : 최종규 /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를 인터넷방(http://hbooks.cyworld.com)에 꾸준히 올리는 한편, 《모든 책은 헌책이다》와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잡지 <우리교육> 청탁을 받고 오늘 아침 막 보낸 글입니다. 오늘이 마감이었는데, 마감에 늦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 그대로 적어 놓으니, 막힘없이 술술 나오더군요. 제가 쓴 글이라서가 아니라, 글을 쓸 때에는 언제나, 자기 모습을 그대로 담으면 어려움이 없고, 자기 모습을 숨기거나 덧바르려고 하면 어려움이 가득하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