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꽃 . 빈손



해가 돋은 아침에

빈손에 햇볕을

한 조각씩 담는다


해가 높은 낮에

빈손에 바람을

한 줄기씩 얹는다


해가 지는 저녁에

빈손에 이야기를

한 자락씩 놓는다


우리는

우리 집에서 서로

빛나고 새로 빚으면서 논다


ㅍㄹㄴ


202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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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꽃 . 아픈 말



따갑게 쏘는 화살 같은 말을

열 살이 넘도록 듣던 어느 여름날

나를 놀리고 괴롭히는 언니한테

“이 돼지야!” 하고 뱉었다

언니는 ‘돼지’라는 말에 빙글거리기만 한다

나는 언니한테 화살을 못 쐈다

그러나

엉뚱하게 돼지한테 화살을 쐈다고

돼지를 괴롭혔다고 느껴서

스무 살 마흔 살이 넘도록 아팠다

그리고

어느 날 돼지소리를 들었다

도토리를 즐기는 멧님이 마음으로

“날 불러주어서 고마워.” 하더라


ㅍㄹㄴ


2025.6.29.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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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꽃 . 내가 낳은



오늘 하루는 늘

어제나 그제나 지난해나 더 먼 예전에

문득 마음에 담은 뜻에 따라서

태어난 모습과 일이더라


내가 그리지 않았는데

나한테 온 일이 없어서

늘 곰곰이 돌아본다


난 뭘 느끼고 보고 배우려고

이 하루를 지었을까?


난 스스로 날고 싶기에

오늘 이곳을 생각했을까?


ㅍㄹㄴ


2025.6.30.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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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창피하지만 (2025.5.26.)

― 서울 〈악어책방〉



  시골에서는 올봄이 “하늘이 내린 빛살(축복)”이라 느낄 만큼 차분하면서 더위 없이 흐릅니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내려서 시내버스와 전철을 갈아타자니 “아무런 날씨도 하루도 느낄 수 없구나” 싶어요. 올해에는 먼지바람이라든지 꽃가루바람 탓에 걱정할 일조차 없이 아름하늘입니다. 그렇지만 이 아름하늘과 아름봄을 노래하는 말(날씨안내·문학·신문기사)은 한 줄조차 볼 수 없습니다.


  ‘말씨’라는 얘기처럼 “말은 씨가 된다”고 여기고, ‘글씨’라는 이야기처럼 “글은 쓰기 된다”고 알아본다면, 우리가 저마다 마음에 담고서 서로 마음을 나눌 적에 터뜨리는 낱말 하나마다 이제부터 자라나는 새길이 있다고 느껴요. 마음을 담는 말이란, 손수 마음을 가꾸는 말이라면, 마음을 쓰는 글이란, 손빛으로 마음을 사랑하는 글이지 싶습니다.


 〈악어책방〉에 닿습니다. 어스름이 천천히 덮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소리를 느끼면서 ‘마음글’을 손수 나누는 저녁을 누립니다. 우리는 글을 더 쓰거나 덜 쓸 마음이 아닙니다. 부끄럽든 창피하든 우리 오늘을 적바림하려는 마음입니다. 자랑스럽든 수수하든 우리 발자국을 옮기려는 마음입니다.


  ‘함께읽기’란, 한 곳을 여럿이 다르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배우는 자리일 테지요. ‘함께쓰기’란, 한 곳을 여럿이 스스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같구나” 하고 느끼면서 익히는 자리로구나 싶습니다.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가난도 가멸도 늘 두 가지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돈이 많아도 가난하고, 마음이 가멸면 돈이 적어도 가멸어요. 가난이란 누구나 늘 스스로 밑바닥으로 즐겁게 내려오면서 배우는 삶입니다. 가멸이란 누구나 언제나 하늘빛으로 넉넉히 피어나면서 배우는 살림이에요. 물결이 치듯 가난과 가멸 사이를 부드러이 오갈 적에 사람으로서 사랑을 알아본다고 느낍니다.


  날마다 새몸과 새마음을 입고서 늘 새로 피어나는 오늘이기를 바라기에 말 한 마디에 마음 한 자락을 놓습니다. 언제나 새눈과 새귀를 틔우고서 가만히 깨어나는 살림을 그리기에 글 한 줄에 마음 한 뙈기를 둡니다. 높거나 낮지 않은 마음소리입니다. 크거나 작지 않은 마음밭입니다. 낱말 하나도 안 높고 안 낮습니다. 글씨 하나도 안 크고 안 작아요.


  수줍기에 말을 삼가다가 천천히 말길을 엽니다. 망설이기에 글을 멈추다가 찬찬히 글꼬를 틉니다. 글을 쓰려는 마음이란, 스스로 짓고 빚고 여미는 하루를 손수 노래하려는 꿈이라고 할 만합니다. 스스럼없이 꿈을 그리니 여기에 꽃이 핍니다.


《신 이야기》(고다 요시이에/안은별 옮김, 세미콜론, 2014.11.28.)

#ごうだよしいえ #業田良家 #神樣物語

《나는 해파리입니다》(베아트리스 퐁타넬 글·알렉상드라 위아르 그림/김라헬 옮김, 이마주, 2020.7.30.)

#JeSuisLaMeduse #BeatriceFontanel #AlexandraHuard

《작으면 뭐가 어때서!》(마야 마이어스 글/염혜원 그림·옮김, 비룡소, 2023.1.5.)

#NotLittle #MayaMyers #HyewonYum

《짱구네 고추밭 소동》(권정생, 웅진닷컴, 1991.11.30.첫/2001.7.10.24벌)

《빨간 초와 인어(미니북)》(오가와 미메이/이예은 옮김, 세나북스, 2025.5.27.)

#LePetitPrince #小川未明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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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7. 영업을 못 하는 책집



  “장사(영업)를 잘하는 가게”로 〈올리브 영〉을 꼽는 만큼, “장사(영업)를 못하는 가게”로 마을책집을 꼽을 수 있다고도 여길 수 있다만, “모든 사람이 시끌벅적한 곳에서 마음을 찬찬히 기울여서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다. 이미 돛데기장사판으로 바뀐 〈서울국제도서전〉이다만, 〈서울국제도서전〉은 그곳에 자리를 내놓은 거의 모든 곳이 손님 발길을 잡으려고 끝없이 목청을 돋운다. 그곳에 발걸음을 디딜 때부터 ‘시끌벅적·왁자지껄’이 춤춘다. 그래서 〈서울국제도서전〉은 ‘돛데기장사판’일 뿐, ‘온갖 다 다른 책을 살피고 읽으면서 마음을 사로잡는 책마을 일꾼을 만나기’도 하는 데하고는 아주 동떨어진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사유화’라는 말썽거리도 있다. 이 책잔치를 꾸려온 ‘출협(대한출판문화협회)’은 “도서전 안정적 운영”을 꾀하려는 뜻이라면서 ‘주식회사 사유화’를 몰래 밀어붙였다. 그런데 출협은 ‘2023년 서울도서전 홍보대사’로 ‘박근혜 무렵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실행자’인 오정희 씨를 밀어붙였다. 이러고서 이때 불거진 말썽거리를 출협 스스로가 아닌 나라(정부) 탓이라고만 슬그머니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갔다. 또한 출협은 그동안 나라에서 ‘서울도서전 이바지돈(지원금)’을 받고서 ‘정산내역 미공개’로 어물쩍 넘어갔다. 또한 출협은 ‘2024년 서울도서전에 국가지원이 없었다’는 거짓말을 했다. 2024년에는 ‘나라에서 서울도서전 참가사한테 직접지원’을 했다. ‘출협에서 정산내역 미공개’를 하기 때문에 ‘서울도서전 참가사한테 하나하나 직접지원’을 하면서 2024년은 어느 해보다 책잔치가 잘되었는데, 이러한 대목을 숨기기에 바빴다.


  오늘날 마을책집은 큰길가 아닌 골목에 고즈넉이 깃들곤 한다. 시끌벅적한 데가 아닌 차분하고 조용한 데에 마을책집을 둔다. “책을 안 팔려는 뜻”이 아니라 “책을 팔려고 일부러 걸어가서 조용히 깃드는 골목”에 자리를 잡는다. 여러 가지 책을 차근차근 짚고 헤아리려면 ‘시끌벅적·왁자지껄’은 아주 걸리적거리니까. 그래서 마을 한켠에 고즈넉이 깃든 숱한 마을책집은 아예 ‘책알림(pop)’조차 없기 일쑤이다. 책손 스스로 천천히 손에 쥐고서 넘겨 보라는 뜻이다. 나중에 사서 읽을 적에도 고즈넉한 곳에서 읽을 테지만, 책을 고르고 장만하는 자리에서도 고즈넉할 적에 “이 책이 나한테 맞거나, 이 책으로 내 눈길을 틔울 만한가” 하고 헤아릴 수 있다.


  이른바 〈올리브 영〉처럼 장사를 잘하는 ‘작지 않은 큰 독립서점’이 여러 곳 있다. ‘장사를 잘하는 큰 독립서점’은 떠들썩하다. 이름난 글바치를 꽤 자주 불러서 책수다를 열기도 한다. 〈교보문고〉 같은 데에서 누가 책수다를 열까? 시청·군청·도청·시립도서관·군립도서관·도립도서관에서는 누구를 목돈을 들여 부르고서 책수다를 펼까? 공공기관 벼슬아치는 “한 해에 한두 판씩 삯(강사비)을 500∼1000만 원쯤 들여 ‘서울에서 이름난 분’을 모시고는, 1000∼2000사람쯤 한꺼번에 끌어모아서 왁자지껄하게 보람(성과)을 거두는 자리”를 좋아한다. 공공기관 가운데 “한 해 동안 20사람한테 50만 원씩 삯(강사비)을 나누어 쓰면서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이야기를 누리는 작은자리”를 꾀하려는 일꾼은 매우 적다.


  마을책집마다 빛깔이 다르다. 다 다른 마을책집은 저마다 “그저 돛데기장사판 우리나라 민낯”이 창피하고 부끄러울 뿐 아니라, 이대로는 오히려 책마당이 모조리 망가지겠구나 하고 느껴서, 다 다른 결로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갈래를 헤아리는 다 다른 마을책집을 꾸린다고 느낀다. 그래서 마을책집이라는 곳은 “책을 고즈넉이 살피면서 책을 반갑게 새로 만나서 장만하는 곳”이다. 책집지기가 책손한테 굳이 절(인사)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거꾸로 책손이 책집지기한테 “오늘 이 책을 알아보고 장만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하면서 절을 해야지. 작은책집이자 마을책집은 이미 그곳 책시렁으로 우리한테 “자, 이렇게 끝없이 넘치는 책 가운데 읽으실 만한 책을 추려 놓았어요!” 하고 밝혀 주었다. 우리는 “이미 잘 추려내어 꽂아놓은 책시렁”을 고맙게 살피면서 손길이 닿는 대로 한두 자락이나 서너 자락을 기쁘게 장만할 수 있다.


  마을책집은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아닌 “적정생산 적정소비”를 바라는 뜻과 마음을 펴는 마을가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마을책집을 〈일본 츠타야〉나 〈한국 올리브 영〉하고 섣불리 댈 적에는 “왜 굳이 마을책집을 열지?”라고 하는 수수께끼를 아예 모를 수밖에 없다. 〈교보문고〉나 〈알라딘〉이 되려고 마을책집을 연 분은 몇몇 사람 빼고는 없다. 다들 “이 마을을 사랑하기에, 이 마을에 쉼터를 일구고 싶어서 작고 천천히 느긋이” 일구어 가는 길이다.


  책집은 다 다르기에 빛난다. 책집이 다 비슷비슷하거나 다 장사를 잘하려고 한다면, 이미 책집이 아니다. 책집은 서서읽기로 책을 살피고서 즐겁게 책을 사읽는 즐거우며 조용하고 나긋한 쉼터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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