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창피하지만 (2025.5.26.)
― 서울 〈악어책방〉
시골에서는 올봄이 “하늘이 내린 빛살(축복)”이라 느낄 만큼 차분하면서 더위 없이 흐릅니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내려서 시내버스와 전철을 갈아타자니 “아무런 날씨도 하루도 느낄 수 없구나” 싶어요. 올해에는 먼지바람이라든지 꽃가루바람 탓에 걱정할 일조차 없이 아름하늘입니다. 그렇지만 이 아름하늘과 아름봄을 노래하는 말(날씨안내·문학·신문기사)은 한 줄조차 볼 수 없습니다.
‘말씨’라는 얘기처럼 “말은 씨가 된다”고 여기고, ‘글씨’라는 이야기처럼 “글은 쓰기 된다”고 알아본다면, 우리가 저마다 마음에 담고서 서로 마음을 나눌 적에 터뜨리는 낱말 하나마다 이제부터 자라나는 새길이 있다고 느껴요. 마음을 담는 말이란, 손수 마음을 가꾸는 말이라면, 마음을 쓰는 글이란, 손빛으로 마음을 사랑하는 글이지 싶습니다.
〈악어책방〉에 닿습니다. 어스름이 천천히 덮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소리를 느끼면서 ‘마음글’을 손수 나누는 저녁을 누립니다. 우리는 글을 더 쓰거나 덜 쓸 마음이 아닙니다. 부끄럽든 창피하든 우리 오늘을 적바림하려는 마음입니다. 자랑스럽든 수수하든 우리 발자국을 옮기려는 마음입니다.
‘함께읽기’란, 한 곳을 여럿이 다르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배우는 자리일 테지요. ‘함께쓰기’란, 한 곳을 여럿이 스스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같구나” 하고 느끼면서 익히는 자리로구나 싶습니다.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가난도 가멸도 늘 두 가지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돈이 많아도 가난하고, 마음이 가멸면 돈이 적어도 가멸어요. 가난이란 누구나 늘 스스로 밑바닥으로 즐겁게 내려오면서 배우는 삶입니다. 가멸이란 누구나 언제나 하늘빛으로 넉넉히 피어나면서 배우는 살림이에요. 물결이 치듯 가난과 가멸 사이를 부드러이 오갈 적에 사람으로서 사랑을 알아본다고 느낍니다.
날마다 새몸과 새마음을 입고서 늘 새로 피어나는 오늘이기를 바라기에 말 한 마디에 마음 한 자락을 놓습니다. 언제나 새눈과 새귀를 틔우고서 가만히 깨어나는 살림을 그리기에 글 한 줄에 마음 한 뙈기를 둡니다. 높거나 낮지 않은 마음소리입니다. 크거나 작지 않은 마음밭입니다. 낱말 하나도 안 높고 안 낮습니다. 글씨 하나도 안 크고 안 작아요.
수줍기에 말을 삼가다가 천천히 말길을 엽니다. 망설이기에 글을 멈추다가 찬찬히 글꼬를 틉니다. 글을 쓰려는 마음이란, 스스로 짓고 빚고 여미는 하루를 손수 노래하려는 꿈이라고 할 만합니다. 스스럼없이 꿈을 그리니 여기에 꽃이 핍니다.
《신 이야기》(고다 요시이에/안은별 옮김, 세미콜론, 2014.11.28.)
#ごうだよしいえ #業田良家 #神樣物語
《나는 해파리입니다》(베아트리스 퐁타넬 글·알렉상드라 위아르 그림/김라헬 옮김, 이마주, 2020.7.30.)
#JeSuisLaMeduse #BeatriceFontanel #AlexandraHuard
《작으면 뭐가 어때서!》(마야 마이어스 글/염혜원 그림·옮김, 비룡소, 2023.1.5.)
#NotLittle #MayaMyers #HyewonYum
《짱구네 고추밭 소동》(권정생, 웅진닷컴, 1991.11.30.첫/2001.7.10.24벌)
《빨간 초와 인어(미니북)》(오가와 미메이/이예은 옮김, 세나북스, 2025.5.27.)
#LePetitPrince #小川未明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