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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7.2.
까칠읽기 79
《어떤 어른》
김소영
사계절
2024.11.13.
사랑을 놓고서 “이런 사랑 저런 사랑”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사랑 그대로이다. 사람을 놓고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말하곤 한다. 겉모습이나 키나 몸무게나 몸매나 살빛이 다르기에 “여러 사람”을 말하는데, 막상 ‘사람’이란 무엇인지 밝히려고 하면, “어떤 사람”이 아닌 그저 ‘사람’이라는 빛만 바라볼 노릇이다.
아이를 보건 어른을 보건 매한가지이다. “어떤 어른”이란 아예 없고, “어떤 아이”도 있을 턱이 없다. 그저 ‘어른’이 있고, 그냥 ‘아이’가 있다. 어른곁에서 느긋이 놀고 노래하며 소꿉을 하기에 아이요, 아이곁에서 넉넉히 일하고 살림하면서 사랑을 하기에 어른이다.
《어떤 어른》은 앞서 나온 책보다 어쩐지 ‘자랑’이 더 많고 길다. ‘덜익은’이나 ‘설익은’이나 ‘안익은’ 모습이라고 느낀다. 어른이라는 사람은 그냥 ‘익은’ 사람이다.
얼음새꽃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동박꽃을 반기는 사람이 있고, 벚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느 꽃도 안 기다린다. 나는 모든 꽃을 지켜본다. 꽃이 피기 앞서 땅바닥에 조물조물 싹이 트는 앉은꽃을 지켜보고, 망울이 터지기 앞서 나무줄기나 나뭇가지에서 조금씩 부푸는 숨빛을 지켜본다. 첫여름에서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이맘때에는 대추꽃을 살펴본다. 우리집에는 대추나무가 없지만, 대추나무를 돌보는 이웃집 옆으로 지나갈 적에는 으레 “올해에도 대추꽃을 볼 수 있어 고맙습니다” 하고 절을 한다.
대추꽃은 나무꽃 가운데 대단히 늦다. 이른바 ‘늦꽃·늦잠꽃’이다. 그런데 늦잠꽃이건 이른꽃이건 모두 꽃이다. 크가 크건 작건 누구나 아이요 어른이다. 《어떤 어른》을 읽는 내내 ‘다름(다양성)’이라든지 ‘섬김(존중)’이라는 글감을 내세우려고 하는 듯하면서도, 정작 ‘사람·사랑·아이·어른’이라는 ‘숨·숨결·빛·씨앗’이라는 길은 아예 못 건드리거나 안 다가선다고 느꼈다. 겉에서 빙그르르 맴돌다가 그친다. 아무래도 글님이 수다꽃(강연·수업)으로 너무 바쁜 나머지, 차분히 삶과 사람과 살림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듯싶다. 또한 여름에 땀흘리면서 더위를 누릴 겨를이 없어 보이고, 겨울에 오들오들 떨면서 추위를 맛볼 짬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누가 철이 들면서 어른으로 설까?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는 여름에 땀흘려 뛰논다. 아이는 겨울에 추위에 떨면서 뛰논다. 이러는 동안 더위와 추위로 온몸을 가꾸면서 천천히 철이 든다. 2025년 봄과 여름이 지나가는데, 봄을 봄답게 누리는 ‘어른아이’는 거의 못 본다. 여름을 여름답게 즐기는 ‘아이어른’도 거의 못 본다. 땀을 안 흘리고, 추위에 손이 곱지 않는다면, 무슨 ‘어진’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어떤 어른”이 아닌 “그저 어른”으로, 누구나 저마다 제자리(제 살림자리)에서 즐겁게 이 삶을 짓는 눈망울을 들려주고 들을 때라고 본다. 껍데기는 치우자.
ㅍㄹㄴ
《어떤 어른》(김소영, 사계절, 2024)
나도 좋은 것을 꽤 누리며 살아왔다
→ 나도 꽤 잘 누렸다
→ 나는 꽤 넉넉히 살아왔다
→ 나는 걱정없이 누려왔다
→ 나는 배부르게 누려왔다
23쪽
내 확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지는 한 친구가 집 앞에 찾아온 어느 날 알게 되었다
→ 내 마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는 동무가 집 앞에 찾아온 어느 날 알았다
→ 믿은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는 동무가 집으로 찾아온 어느 날 알았다
47쪽
면담 비슷한 시간을 가졌다
→ 가볍게 만났다
→ 가볍게 이야기했다
63쪽
언어와 비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말과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 말씨와 몸짓을 생각해 보았다
82쪽
그게 또 어려우니까 어지간하면 참게 될 것입니다
→ 그런데 어려우니까 어지간하면 참습니다
→ 또한 어려우니까 어지간하면 참게 마련입니다
130쪽
지방 도시의 문화행사에 강연을 하러 갔다
→ 어느 곳 한마당에 이야기를 하러 갔다
→ 어느 고을 한잔치에 말꽃을 펴러 갔다
158쪽
지금 가는 ‘평등 토크’는
→ 오늘 가는 ‘나란수다’는
→ 이제 가는 ‘나너마당’은
→ 오늘 가는 ‘다솜놀이’는
→ 이제 가는 ‘들꽃얘기’는
206쪽
나이가 드는 건 좋은데 노인이 되는 건 두렵다
→ 나이가 들면 기쁜데 늙으면 두렵다
→ 나이가 드니 즐거운데 늙자니 두렵다
30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