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영리 怜悧/伶?


 영리한 소년 → 똑똑한 아이 / 똑돌이 / 밝은 아이

 영리하게 생기다 → 똑똑하게 생기다 / 환하게 생기다

 영리하게 대답하다 → 잘 대꾸하다 / 똑부러지게 말하다

 머리가 영리하다 → 머리가 좋다 / 머리가 남다르다

 아이는 매우 영리했다 → 아이는 매우 똑똑했다


  ‘영리(怜悧/伶?)하다’는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낱말책을 살피면 “≒ 성발(性發)하다”가 덧붙는데, ‘성발하다 = 영리하다’로 풀이해요. 그렇지만 ‘성발하다’ 같은 한자말을 쓰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말 ‘똑똑하다’를 살피면 “1. 또렷하고 분명하다 2. 사리에 밝고 총명하다 3. 셈 따위가 정확하다”로 풀이합니다. 이 풀이에서 나오는 ‘총명(聰明)’은 “1.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음 2. 썩 영리하고 재주가 있음”으로 풀이해요. 그러니 ‘영리하다 → 똑똑하다 → 총명하다 → 영리하다’로 빙글빙글 돌아요. ‘영리하다’와 ‘총명하다’ 모두 ‘똑똑하다’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라는 셈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똑돌이·똑순이·똑똑쟁이·똑똑이’나 ‘똑똑하다·똑똑빛·똑똑눈·똑똑길’이나 ‘똑부러지다·똘똘하다·똘망하다’로 고쳐쓸 만합니다. ‘밝다·바로느끼다·바로알다’나 ‘빛·빛나다·빛눈·빛님·빛사람·빛아이’로 고쳐쓰면 되어요. ‘빼어나다·치어나다·잘하다·잘 알다·훌륭하다’나 ‘깊넓다·깊크다·남다르다·유난’으로 고쳐씁니다. ‘눈치·눈치코치·대단하다·좋다·한가닥’이나 ‘슬기·슬기롭다·얼찬이·환하다·훤하다’로 고쳐쓸 수 있어요. ㅍㄹㄴ



영리하기도 해라

→ 똑똑하기도 해라

→ 슬기롭기도 해라

→ 야무지기도 해라

《사냥꾼을 만난 꼬마곰》(앤서니 브라운/공경희 옮김, 웅진주니어, 2002) 18쪽


영리한 아이로 만들어 주겠지

→ 밝은 아이로 가르쳐 주겠지

→ 똑똑하게 가르쳐 주겠지

《멍텅구리, 세상을 바꾸다》(조르주 상드/이인숙 옮김, 계수나무, 2005) 45쪽


얼마나 영리한 녀석인데요

→ 얼마나 똑똑한 녀석인데요

→ 얼마나 빼어난 녀석인데요

《나는 사랑 수집가》(마리 데플레솅/김민정 옮김, 비룡소, 2007) 48쪽


내가 정말 영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많았던 건 분명해요. 나는 뭐든지 궁금해서 별걸 다 물어봤어요

→ 내가 참말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궁금했어요. 나는 뭐든지 다 물어봤어요

→ 내가 참말 똑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궁금했어요. 나는 뭐든지 물어봤어요

《열다섯 살의 용기》(필립 후즈/김민석 옮김, 돌베개, 2011) 36쪽


두더지는 아주 영리한 동물 같았어요

→ 두더지는 아주 똑똑한 짐승 같아요

→ 두더지는 아주 밝은 짐승 같아요

→ 두더지는 아주 슬기로운 짐승 같아요

《마법 같은 하루》(필리파 피어스/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2) 61쪽


영리한 라니는 꾀를 냈습니다

→ 똑똑한 라니는 꾀를 냅니다

→ 똘똘한 라니는 꾀를 냅니다

→ 남다른 라니는 꾀를 냅니다

《쌀 한 톨》(데미/이향순 옮김, 북뱅크, 2015) 13쪽


모두가 자신을 영리하다고 인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 모두가 저를 똑똑하다고 여겨 주기를 바랐습니다

→ 모두가 저를 빛난다고 여겨 주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곰처럼 살기로 했다》(로타르 J. 자이베르트/배정희 옮김, 이숲, 2016) 19쪽


비둘기는 특별히 영리한 것 같지도 않다

→ 비둘기는 딱히 똑똑해 보이지도 않는다

→ 비둘기는 그리 훤한 듯하지도 않다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데이브 굴슨/이준균 옮김, 자연과생태, 2016) 96쪽


네가 이렇게 영리한지 몰랐어

→ 네가 이렇게 똑똑한지 몰랐어

→ 네가 이렇게 슬기로운지 몰랐어

→ 네가 이렇게 대단한지 몰랐어

→ 네가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어

《둘리틀 박사 이야기》(휴 로프팅/장석봉 옮김, 궁리, 2017)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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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와 만도 씨 창비아동문고 290
안미란 지음, 정인하 그림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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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5.16.



《뭉치와 만도 씨》

 안미란 글

 정인하 그림

 창비

 2017.12.8.



  서울비둘기하고 멧비둘기는 몸도 깃도 무늬도 다릅니다. 둘은 다른 터전에서 다르게 살기에 울음소리도 다릅니다. 날갯짓마저 달라요. 서울에서는 부딪힐 만한 곳이 많고 시끄럽고 어지럽고 빽빽하기에 비둘기도 크고작은 새도 제대로 날지 못 합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너른하늘을 마음껏 누비기에 날갯짓부터 확 다르면서 울음소리가 사뭇 다르지요.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들어앉아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시골이라면, 나무 열 그루를 줄지어 심어도 제대로 못 자라고 가지치기에 시달리는 서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시골도 나무를 괴롭혀요. 멀쩡한 줄기에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내는 ‘서울스런 사람’이 모질게 늘었습니다.


  《뭉치와 만도 씨》는 ‘집개’하고 얽힌 줄거리를 부산을 터전으로 들려주는 듯하지만, 여러 글감이 뒤엉켰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곁짐승(반려동물)과 함께살기’라는 글감이라기보다 ‘오직 서울사람 눈금으로 재는 틀’이라는 글감에서 맴도는구나 싶어요.


  서울비둘기가 “그야말로 뻔뻔(24쪽)”할 수 있을까요? 벌레가 살아갈 틈이며 나무 한 그루가 설 짬마저 모두 잡아먹는 서울사람이야말로 뻔뻔하지 않나요? ‘새대가리’란 말은 누가 했고, 누가 그냥그냥 받아쓰기를 할까요? 스스로 사람다움을 잊고 잃은 사람이기에 ‘새대가리·소대가리·돼지대가리’ 같은 말을 함부로 씁니다.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94쪽)”하다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아리송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35쪽)”이란, 집에 가두어 똥을 치우고 먹이만 바치는 굴레하고 멉니다. ‘가두리’는 돌봄길이 아니에요. 잡아먹으려는 죽임길일 뿐입니다.


  새를 우리에 가두는 몸짓은 곁짐승을 돌보는 길하고 맞닿을 수 없지 않을까요? 하늘빛을 머금고 바람빛을 노래로 베푸는 새가 우리 곁에 깃들 수 있는 마당과 뜰과 밭과 숲정이를 건사하는 길이 비로소 ‘곁’에 두는 이웃일 테지요.


  《뭉치와 만도 씨》를 써낸 뜻은 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딸바보라는 얼거리를 일부러 억지스레 맞춰야 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뱉는 아버지로 구태여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쪽까지 종잡기 어렵게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어영부영 맺는다면, 이런 줄거리에서 어떤 마음을 읽거나 느낄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동물권’을 외치기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굴레에 갇히면서 뭇숨결도 나란히 굴레에 가두려 하는지 짚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아이들이 마냥 “해 줘! 사 줘!” 하고 외치는 모습을 그냥그냥 담는다고 해서 ‘어린이 마음’에 다가설 수 있지 않기도 합니다.


ㅍㄹㄴ


비둘기는 도망가는가 싶더니 다시 내려앉아 기어이 콩 한 알을 더 쪼아먹고 갑니다. 그야말로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24쪽)


“오호, 이런 좋은 방법이 있군. 역시 새들은 머리가 나빠. 괜히 새대가리 같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거든.” (25쪽)


“꼬마 숙녀님들, 여기 새 모이 대령이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이 아버지가 다 구해 줄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영이가 말했습니다. “나도 앵무새 사 줘요!” (28쪽)


아영이랑 함께 똥도 치우고 모이도 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을 키울 수 있겠군.’ (35쪽)


“우리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꼭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한데요.” (94쪽)


“아니, 무슨 멧돼지가 산에 있지 않고 이제는 바다까지 넘나들어?” “쟤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멧돼지 맞기는 맞아요?” (108쪽)


아내는 모릅니다. 아침에 만들어 놓은 나물 반찬을 만도 씨가 점심에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를. 고춧가루와 설탕, 햄을 듬뿍 섞어서 만도 씨표 볶음밥이나 만도 씨표 섞어찌개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요. (134쪽)


응원석에 있던 만도 씨는 화가 나서 콧김을 쉭쉭 내뿜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놈이 대체! 왜 남의 귀한 딸 주위를 알짱거려? 당장 운동장 밖으로 끌어내야지.” (149쪽)


+


《뭉치와 만도 씨》(안미란, 창비, 2017)


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 개라는 자리에서 보면

→ 개로서 보면

→ 개가 보면

7쪽


만도 씨의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 만도 씨 외동딸입니다

8쪽


만도 씨의 약을 살살 올려놓습니다

→ 만도 씨를 살살 약올립니다

14쪽


물기가 남김없이 흩뿌려집니다

→ 물을 남김없이 흩뿌립니다

18쪽


새가 집에서 키워지면 스트레스에 약한 건 당연해

→ 새를 집에 가두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힘들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골을 부릴 테지

36쪽


덥석 사 주는 건 결사반대

→ 덥석 사주지 마

→ 덥석 사주기 안 돼

38쪽


이 거친 삶의 전선에 나서는 거니까

→ 이 거친 삶에 나서니까

→ 이 거친 싸움터에 나서니까

51쪽


내 집에 들어와도 괜찮은 짐승이 있고

→ 이 집에 들어와도 되는 짐승이 있고

→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짐승이 있고

52쪽


시장 골목을 시찰하듯이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59쪽


마당이 널찍한 촌집을

→ 마당 널찍한 시골집을

102쪽


희망퇴직 한 거 맞죠?

→ 그만두셨죠?

→ 옷벗으셨죠?

→ 물러나셨죠?

105쪽


사실은 만도 씨의 절대미각에 질투가 났습니다

→ 그런데 만도 씨 입맛이 부러웠습니다

→ 막상 만도 씨 혀끝을 시샘했습니다

123쪽


내가 마신 게 몇 포더라

→ 내가 몇 자루 마셨더라

→ 내가 몇이나 마셨더라

133쪽


나의 아이들이

→ 우리 아이들이

→ 우리집 아이가

16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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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용기 - 클로뎃 콜빈, 정의 없는 세상에 맞서다 생각하는 돌 1
필립 후즈 지음, 김민석 옮김, 엄기호 해제 / 돌베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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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5.16.

푸른책시렁 185


《열다섯 살의 용기》

 필립 후즈

 김민석 옮김

 돌베개

 2011.11.21.



  ‘클로뎃 콜빈’이 어떤 어린날을 보내다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서 할머니로 살았는가 하고 짚는 《열다섯 살의 용기》입니다. ‘클로뎃 콜빈’은 모든 사람을 섭섭하다고 여기면서 ‘왜 내 이름은 안 끼우느냐?’ 하는 마음으로 내내 살아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책만 읽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이라면, 자칫 ‘담허물기’가 왜 일어나고 어떻게 벌였으며 오늘날 어떻게 자리잡는지 지켜보고 살펴보는 길보다는, 한숨 섞인 푸념에 그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오늘날에는 검은살빛이든 흰살빛이든 흙살빛이든 어느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만, ‘어린 클로뎃 콜빈’이 배움터를 다닐 즈음에는 검은살빛인 사람이 흰살빛인 사람이 맡는 일을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검은살빛인 어린이 클로뎃 콜빈은 배움터를 다녔어요. 어떻게 이 아이는 배움터를 다녔을까요?


  바로 ‘로자 파크스’ 같은 앞선 어른이 목숨을 걸고 굶주리면서 싸우고 힘쓴 뿌리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로자 파크스는 어떻게 일찌감치 눈을 뜨거나 깨어났을까요? 로자 파크스를 낳고 돌본 어버이와 여러 이웃이 있었어요. 그리고 ‘모든 흰살빛’이 ‘모든 검은살빛’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모든 흰살빛이 모든 검은살빛을 괴롭혔다면 굴레를 내내 이었을 테지요.


  숱한 흰살빛은 ‘둘레 흰살빛’한테 따돌림을 받고 목숨까지 빼앗기면서 검은살빛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열다섯 살의 용기》에도 여러모로 나옵니다만, 오히려 검은살빛끼리 스스로 깎아내리고 서로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돈과 일자리와 집을 거머쥐려는 마음이 앞서면 어느 살빛이든 매한가지입니다.


  말콤 엑스를 비롯한 검은살빛인 사람들은 한동안 부커 워싱턴이나 조지 워싱턴 카바를 손가락질하거나 비아냥댔습니다. ‘고작 학교와 직업 따위’로는 검은살빛이 일어설 수 없다고, 주먹(폭력)으로 흰살빛을 때려눕혀야 한다고 여긴 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어느 쪽이 옳거나 맞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할 뿐입니다. 게다가 검은살빛이건 흰살빛이건 ‘웃사내질(남성가부장권력)’이 버젓했는데, ‘검은흰’을 넘어서서 어깨동무를 바란 적잖은 사람들은 ‘어깨동무하는 검은흰’뿐 아니라 ‘어깨동무하는 순이돌이’를 바라보았어요. 로자라는 아주머니가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을 쓰는 뜻도, 아주머니 곁님인 아저씨가 ‘어깨동무하는 순이돌이’라는 길에 눈을 뜨고서 함께 걸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모저모 짚어 본다면, ‘클로뎃 콜빈’ 씨하고 《열다섯 살의 용기》를 쓴 ‘필립 후즈’ 씨는 ‘검은뿌리’를 그다지 안 짚고 안 살핀 듯합니다. 1955년 그날 그 버스에서만 물결이 일지 않았습니다. 모든 곳에 걸쳐서 물결이 일었습니다. ‘검은빛’ 아이들이 배움터를 다니는 몫을 누릴 수 있도록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고, 배움터에서 ‘검은흰’이 나란히 배우도록 하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어요. 이에 앞서 검은빛 아이들도 배움터를 다닐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하면서 굶주리면서 배움터를 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굴레끝(노예해방)’이 있은 뒤로 살아남아야 하는 갈림길에서 헤매고 힘겹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검은빛은 일찌감치 쇠(자동차)를 얻어서 몰고 다녔으며, 적잖은 검은빛은 쇠를 몰면서 다른 검은빛하고 등졌습니다. 그리고 쇠를 얻을 수 없는 가난한 살림에 집안을 돌보아야 하는 숱한 사람들은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탔습니다. 이른바 ‘흑인 변호사’라든지 ‘흑인 민권운동가’라든지 ‘흑인 목사’는 으레 쇠를 몰고 다녔기에 버스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로자 파크스 아줌마를 눈여겨본 바탕은 클로뎃 콜빈 푸름이하고 사뭇 다릅니다. 로자 파크스는 ‘웃사내질’이 판치는 한복판부터 ‘검은빛’뿐 아니라 ‘검은흰’을 넘어서는 새길과 새살림을 바라보는 작은걸음을 내딛었고, ‘버스 권리’를 얻어내는 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도 꾸준하게 땀흘린 삶이었습니다.


  말콤 엑스도 목숨을 잃었고, 마틴 루터 킹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1950∼60년대에는 웬만하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검은빛을 헤아리는 물결에 나서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일자리를 쉽게 잃으며 굶었습니다. 클로뎃 콜빈만 일자리를 못 찾으면서 고단하지 않았습니다.


  로자 파크스는 ‘말보다 몸’으로 일했고,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도 늘그막에 이르러 겨우 남겼습니다. 《열다섯 살의 용기》라는 이름으로 옮긴 “Twice Towards Justice”는 뜻깊은 책일 테지만, 필립 후즈는 지나치게 ‘클로뎃 콜빈 영웅 만들기’를 하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말콤도 킹도 로자도 클로뎃도 다 다르게 꽃입니다. 글이나 책에 이름이 안 남은 숱한 검은흰 사람들도 꽃입니다. 무엇이 서로 가로막는지, 무엇 탓에 자꾸 스스로 눈을 감고서 갉아먹거나 할퀴는지 돌아볼 때라고 느낍니다.


  1955년에 버스에서 목소리를 낸 일은 뜻깊고 아름답습니다. 이 하나만 다룰 수 있어도 뜻깊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1955년에 앞서 1935년에도 1945년에도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고, 1925년에도 1915년에도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으며, 1965년에도 1975년에도 지치지 않으면서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1985년에도 1995년에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며 땀흘린 사람들이 있고요.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가로지르는 길에서 고루 들여다보고 살피려는 눈과 손과 마음일 때라야, 비로소 검은·흰·흙빛이라는 겉살이 아닌, 모두 나란히 넋이라는 숨빛이라는 대목을 읽고서, 이제부터 새롭게 일굴 살림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바라볼 수 있을 테지요.


ㅍㄹㄴ


특히 괴로웠던 건 친구들이 스스로를 깎아내린다는 사실이었어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멍청한 검둥이’라고 불렀어요. 멍청한 검둥이! 흑인 애들끼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을 쓰는 거죠 … 어떤 이유에선가 우리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은 늘 자기 머릿결과 피부색을 깎아내렸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머리카락은 정말 역겨워”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요? 아니면 “나는 흑인이어서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건요? (53쪽)


백인 남자가 흑은 여자애를 성폭행하는 사건은 늘 일어났어요. 하지만 남자가 잡아떼면 아무도 여자애 말을 믿지 않았어요. 백인 남자들은 늘 처벌을 받지 않았죠. (57쪽)


경찰관이 소리를 버럭 질렀어요. “일어나!” 왈칵 울음이 터졌지만, 반항심은 점점 커졌어요. 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저 백인 아줌마처럼 나도 이 자리에 앉을 헌법상의 권리가 있어요. 나도 차비를 냈다고요. 이건 헌법상의 권리라고요!” (72쪽)


“네스빗 선생님과 몇몇 선생님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줬어요. ‘너는 정말 용감한 아이야’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죠.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달갑잖은 것 같았어요. 몇몇 부모들도 그렇게 보였고요. 나보다 훨씬 이전에 자신들이 나섰어야 했다는 걸 아는 거죠. 어른들은 십대인 내가 그 일을 했다는 사실에 당황했어요.” (84쪽)


학교로 돌아왔을 때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나한테 등을 돌렸어요. 어디를 가도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댔어요. 복도를 걸어가는 나를 보고 킬킬거리며 흉내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죠. “이건 헌법상의 권리예요! 이건 헌법으로 보장된 내 권리라고요!” 나는 흑인들을 위해 맞서 싸웠어요. 우리 권리를 위해 일어섰어요. 영웅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런 반응은 생각도 못했어요. (95쪽)


몽고메리 흑인 지도자들은 클로뎃 사건을 상급 법원으로 가져가서 인종을 분리하는 버스 좌석 제도의 위헌성을 따지려고 했다. 하지만 카터 판사가 약삭빠르게 해당 죄목을 무혐의 처리하는 바람에, 인종 분리법과 관련해서는 명확하게 상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01쪽)


#ClaudetteColvin #TwiceTowardsJustice #클로뎃콜빈


+


《열다섯 살의 용기》(필립 후즈/김민석 옮김, 돌베개, 2011)


내가 정말 영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많았던 건 분명해요. 나는 뭐든지 궁금해서 별걸 다 물어봤어요

→ 내가 참말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궁금했어요. 나는 뭐든지 다 물어봤어요

→ 내가 참말 똑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궁금했어요. 나는 뭐든지 물어봤어요

36쪽


보이콧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격려했다

→ 널리 거스르도록 북돋았다

→ 거침없이 등지도록 일으켰다

132쪽


마지막으로 동네에서도 내침을 당했어요

→ 마지막으로 마을에서도 내쳤어요

→ 마지막으로 마을도 나를 내쳤어요

179쪽


우리는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어요

→ 우리는 이야기도 했어요

→ 우리는 묻고 알려줬어요

19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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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연식 年食


 연식에 비해 너무 늙어 보이네 → 나이보다 너무 늙어 보이네

 연식 자체가 10년이 경과해 → 몸뚱이가 열 해를 지나


  ‘연식(年食)’은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 = 나이”를 가리킨다지요. ‘나이’나 ‘해·해나이’로 손질합니다. ‘몸·몸나이·몸뚱이’로 손질할 만하고, ‘고개·고갯마루’나 ‘마루·재’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연식’을 일곱 가지 더 싣는데 모두 털어냅니다. ㅍㄹㄴ



연식(年式) : 기계류, 특히 자동차를 만든 해에 따라 구분하는 방식

연식(?埴) : [공예] 도자기의 원료로 쓰는 흙을 개는 일

연식(連式) : [체육] 경마, 경륜, 조정 따위에서, 일 등과 이 등 또는 일 등과 이 등과 삼 등 가운데 하나를 알아맞히는 방식 = 연승식

연식(軟式) : 1. 부드러운 재료나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 2. 야구나 정구 따위에서, 연구(軟球)를 사용하여 경기하는 방식

연식(軟食) : 죽, 빵, 국수 따위의 주식에다 소화가 잘되는 반찬을 곁들인 부드러운 음식물 ≒ 반고형식

연식(緣飾) : 겉만 보기 좋게 꾸미어 드러냄 = 겉치레

연식(燕息) : 1. 한가로이 집에서 쉼 2. [역사] 관원(官員)이 출근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쉬던 일



연식이 좀 되는 분인가 보네

→ 나이가 좀 되는 분인가 보네

→ 좀 늙은 분인가 보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민음사, 2015) 47쪽


아름다운 숲길은 고사하고 연식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앙상한 나무들이 휑하니 서 있었다

→ 아름다운 숲길은커녕 심은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앙상한 나무들이 휑하니 있었다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김건숙, 바이북스, 2017) 57쪽


우리가 사용할 집은 꽤 연식이 돼 보이는 공동주택 중 하나였다

→ 우리가 쓸 집은 꽤 오래돼 보이는 모둠집 가운데 하나였다

→ 우리가 지낼 집은 꽤 되어 보이는 어울집 가운데 하나였다

→ 우리가 머물 집은 꽤 낡아 보이는 함집 가운데 하나였다

《신들이 노는 정원》(미야시타 나츠/권남희 옮김, 책세상, 2018) 34쪽


연식이 오래되긴 했지

→ 몸이 오래되긴 했지

→ 오래되긴 했지

《고물 로봇 퐁코 2》(야테라 케이타/나민형 옮김, 소미미디어, 2021) 81쪽


연식이 느껴진다

→ 나이를 느껴

→ 해를 느껴

《태양보다 눈부신 별 1》(카와하라 카즈네/정효진 옮김, 대원씨아이, 2022)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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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최애 最愛


 최애의 아이 → 꽃아이 / 사랑아이 / 빛아이

 나의 최애를 위하여 → 내 사랑을 헤아려

 최애 순위를 매기려면 → 아름자리를 매기려면


  ‘최애(最愛)’는 “가장 사랑함”을 가리킨다지요. ‘가장·가장 아끼다·가장 사랑하다·가장 좋아하다·가장 즐기다’나 ‘꼭두머리·꼭두님·머드러기·엄지·우두머리·웃머리’로 손봅니다. ‘꽃·꽃님·꽃아이·꽃잡이·꽃바치’나 ‘꽃등·꽃찌·꽃사랑·꽃자리·꽃터·꽃칸’으로 손볼 만하고, ‘눈부시다·빛나다·빛접다’나 ‘빛·빛꽃·빛다발·빛나리·빛눈’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빛님·빛둥이·빛사람·빛지기·빛순이·빛돌이’나 ‘빛아이·빛살·빛발’로 손보지요. ‘사랑·사랑하다·사랑스럽다·사랑멋·사랑맛’이나 ‘사랑놀이·사랑짓·사랑질·사랑짓기’로 손보고요. ‘아름꽃·아름별·아름빛·아름꽃빛·아름빛꽃’으로 손보고, ‘아름답다·아름님·윤슬’로 손보며, ‘어르신·어른·으뜸·크다’나 ‘하나·하나꽃·첫째·첫째가다’로 손봅니다. ㅍㄹㄴ



오빠는 제가 최애 맞죠

→ 오빠는 제가 꽃 맞죠

→ 오빠는 제가 첫째 맞죠

→ 오빠는 제가 으뜸 맞죠

→ 오빠는 제가 빛살 맞죠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 1》(히라오 아우리/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7) 12쪽


“최애가 오늘도 살아숨쉬어”라며 매일 행복해해서 참 좋습니다

→ “꽃님이 오늘도 살아숨쉬어” 하며 날마다 즐거워 참 기쁩니다

→ “꽃사랑이 오늘도 살아숨쉬어” 하며 늘 기뻐서 참 반갑습니다

《초지일관! 벌거숭이 츠즈이 씨 1》(츠즈이/김진희 옮김, 문학동네, 2020) 5쪽


마늘 순은 요즘 유하 엄마의 최애 작물입니다

→ 요즘 유하 엄마는 마늘싹을 즐깁니다

→ 요즘 유하 엄마는 마늘종을 사랑합니다

《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이꽃맘, 삶창, 2022) 36쪽


나만의 최애가 갑자기 인기가 생기거나

→ 내 꽃이 갑자기 눈길을 받거나

→ 내 빛둥이가 갑자기 사랑받거나

《태양보다 눈부신 별 1》(카와하라 카즈네/정효진 옮김, 대원씨아이, 2022) 23쪽


요즘 제 최애 책입니다

→ 요즘 제 꽃책입니다

→ 요즘 제 사랑책입니다

《출판햇》(공은혜, 마음모자, 2023)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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