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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무엇인가 - 자유롭고 평등한 사귐의 길을 찾아서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5년 4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14.
인문책시렁 422
《우정이란 무엇인가》
박홍규
들녘
2025.4.10.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읽자니, 첫머리부터 “‘우정’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어서 그대로 사용합니다(15쪽)”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설마 말이 될까요? ‘사이좋다’나 ‘어깨동무’나 ‘손잡다’나 ‘발맞추다’나 ‘어울리다·아우르다’는 모두 한자말 ‘우정’을 가리키는 우리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살갑다’나 ‘도란도란·두런두런·오순도순’도 매한가지입니다. 따로 ‘띠앗’이라는 낱말이 있기도 하며, ‘띠·끈·줄’로도 어우르는 마음결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우리말도 잊을 뿐 아니라 생각조차 못 하는 터라, 몸을 둘러싼 수수께끼도 쉽게 잊습니다. 이를테면 한자로 적는 ‘암(癌)’은 우리말로 하자면 ‘좀’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 몸에 자리잡으려고 하는 좀스러운 것이 뭉쳐서 ‘암’이라 하는데, 좀이 늘어나는 까닭이라면, 우리가 스스로 좀을 몸밖으로 못 내보내는 탓입니다. 좀이 생기면서 뭉쳐서 밖으로 나가야, 우리 몸은 낱(세포)을 튼튼하게 새로 낳게 마련이니, ‘좀(암)’이란 ‘나쁜것’이 아닌 ‘낫는길’이기도 합니다.
‘늙다(노화)’란, 나이만 늘리면서 안 배우는 결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든이나 아흔 나이여도 새롭게 배우려는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서는 ‘죽음냄새’가 안 나요. 나이가 젊더라도 안 배우려는 사람한테서는 으레 ‘죽음냄새’가 나더군요.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줄거리를 펴자면, ‘늙음길’이 아닌 ‘배움길’을 짚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서로 들려주고 듣는 사이로 지내기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쪽만 말을 한다면 어울림이나 동무하고 멀어요. 우리말 ‘동무’도 한자말 ‘우정’을 가리키는데, ‘동글다·둥글다·두레·돌보다·돕다’를 밑동으로 삼는 낱말입니다. 이 낱말이 모두 ‘우정’을 가리켜요.
애써 먼나라 옛자취를 들추면서 띠앗길을 알아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스스로 옛날 옛적부터 갖가지로 곳곳에 쓰던 수수한 낱말을 짚기만 해도 넉넉합니다. 두레란 무엇이고 품앗이란 무엇일까요? ‘돕다’하고 ‘돌보다(돌아보다)’하고 ‘보살피다’하고 ‘보다’는 얼마나 닮으면서 다른 삶결일까요? 배우기에 삶이고, 익히기에 살림입니다. 배워서 익히고서 나눌 줄 알기에 사랑입니다.
띠앗이란 씨앗과 같습니다. 심고 실처럼 잇는 씨앗이듯, 빛깔을 드러내면서 서로 부드럽게 잇는 띠앗입니다. 머리띠만으로는 잇지 않아요. 팔띠로는 자칫 자랑이나 윽박질로 기웁니다. 씨앗처럼 작고 수수하게 이 땅에 깃들면서 함께 푸르게 우거지려는 매무새로 나아가는 띠앗이기에 비로소 함께 배우고 같이 익혀서 서로 나누는 하루를 짓습니다. 박홍규 님은 이제 ‘하늬책(서양철학서)’은 제발 다 내려놓고서, 이 땅을 맨손으로 매만지면서 흙말과 들말과 숲말과 바람말과 바다말과 멧말과 살림말과 사랑말을 익혀 보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해야 띠앗이 왜 띠앗인지 몸과 마음으로 고루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ㅍㄹㄴ
‘이런 글을 쓰면 잡혀가지 않을까’ 심지어 ‘이런 생각을 하면 잡혀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5쪽)
자유(freedom)와 친구(friend)는 사랑을 의미하는 초기 인도유럽어의 동일 어근 fn- 또는 pri-를 공유합니다. (19쪽)
우정은 평등입니다. 우월감에 사로잡힌 교만한 상태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라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21쪽)
삼강오륜은 자유도, 평등도, 사랑도, 우정도, 정의도 아닙니다. 상하는 임금을, 자식은 부모를,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삼강이고, (46쪽)
디오게네스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좋은 친구나 열렬한 적이 필요하다. 친구는 당신을 가르치고 적은 당신의 결점을 폭로한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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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무엇인가》(박홍규, 들녘, 2025)
그런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 그런 날이 오면 얼마나 기쁠까요
→ 그런 나날이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4쪽
국민의 공복이라는 공무원들은 물론 대통령도 친구이기를 바라지만
→ 우리 심부름꾼이라는 벼슬아치에 나라자기도 동무이기를 바라지만
→ 우리 일꾼이라는 구실아치에 우두머리도 동무이기를 바라지만
5쪽
그야말로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관념이 내 안에는 아직도 건재한 것입니다
→ 나는 그야말로 엎드린다는 마음에 아직도 있습니다
→ 나는 아직도 시키면 따른다는 마음이 그대로입니다
5쪽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인구밀도를 자랑합니다
→ 온누리 으뜸 사람밭을 자랑합니다
→ 푸른별에서 가장 빽빽하게 살아갑니다
→ 사람이 가장 촘촘하게 사는 나라입니다
8쪽
박지원보다 한 세기 정도 뒤의 사람인 중국의 담사동은 충결망라(衝決網羅), 즉 세상의 모든 덫을 깨뜨릴 것을 촉구하면서
→ 박지원보다 온해쯤 뒤에 태어난 중국 담사동은 모든 덫을 치우라고 외치면서
→ 박지원보다 온해쯤 뒷사람인 중국 담사동은 모든 그물을 찢으라고 외치면서
9쪽
아이들은 힘들기 마련이라고요
→ 아이들은 힘들게 마련이라고요
→ 아이들은 힘들다고요
15쪽
환경 위기가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 무너지는 들숲메가 틀림없이 가장 큰일입니다
→ 흔들리는 들숲이 무엇보다 걱정입니다
→ 막다른 숲이 더없이 근심스럽습니다
24쪽
우정은 소수를 따로 선택하는 일인 만큼,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현대는 우정을 경시하게 만듭니다
→ 띠앗을 몇 사람을 따로 고르는 일인 만큼, 나보다 나라를 앞세우는 요즘은 띠앗을 얕잡습니다
28쪽
친구는 항상 신실하지만 신실함이 친구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 동무는 노상 미덥지만 미덥대서 동무를 사귀지는 않습니다
→ 동무는 늘 믿음직하지만 믿음직하기에 사귀지는 않습니다
31쪽
평등주의에 근거한 불교공동체 승가의 운영 원리는 화합갈마(和合?磨samaggakamma), 즉 구성원들이 전원 출석한 자리에서 올바른 진행 절차에 따라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 나란길로 나아가는 절집은 한목소리, 곧 모두 있는 자리에서 올바른 노눗길로 함께갑니다
→ 어깨동무가 바탕인 절집은 한마음, 곧 다들 나온 자리에서 올바르게 꾸려서 같이갑니다
43쪽
삼강오륜은 자유도, 평등도, 사랑도, 우정도, 정의도 아닙니다
→ 세틀닷길은 날개도, 나란도, 사랑도, 띠앗도, 바름도 아닙니다
46쪽
오십의 나이에 아테네로
→ 쉰 나이에 아테네로
→ 쉰 살에 아테네로
112쪽
각각의 경우에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인간이자 신성으로 간주되는 누군가를 모방함으로써 구원을 추구했습니다
→ 마을 모두는 그때그때 사람이자 거룩한 누구를 따르면서 빛을 바랐습니다
→ 마을 누구나 그때그때 사람이자 거룩한 분을 모시면서 빛살을 바랐습니다
14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