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어디에서 올까?
나카무라 유미코 외 지음, 이시바시 후지코 그림, 김규태 옮김 / 초록개구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책읽기로 가르칠 수 없는 ‘전쟁과 평화’
 : 오노 카즈오·나카무라 유미코+이시바시 후지코,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


- 책이름 :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
- 글 : 오노 카즈오·나카무라 유미코
- 그림 : 이시바시 후지코
- 옮긴이 : 김규태
- 펴낸곳 : 초록개구리 (2009.3.25.)
- 책값 : 8500원



 (1) 청소년책이 있기는 있을까


 푸름이한테 읽히려는 책이 푸른책입니다. 푸름이가 푸른날을 말 그대로 푸르게 보내며 몸과 마음을 아름다이 일구도록 손길을 내미는 책이 푸른책입니다.

 나라안 어른이 일구는 좋은 푸른책이 있을 테고, 나라밖 어른이 마련한 좋은 푸른책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나라안 어른은 이 나라 푸름이한테 어떤 책을 읽히려 할까 궁금합니다. 나라밖 어른은 당신이 살아가는 나라 푸름이한테 어떤 책을 읽히려 하나 궁금합니다.

 시골 살림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복닥이며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한테 가장 사랑스러우며 기쁜 책은 무엇일까 하고.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하나가 우리 아이한테 가장 사랑스러운 책이 될까요. 우리 아이가 쏙 빠져드는 이야기책 하나가 우리 아이한테 가장 좋은 책이 되려나요.

 아이는 책을 읽으며 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나 아빠가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포옥 안으면 으레 웃습니다. 가슴과 가슴을 맞대며 포옥 안을 때에 웃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낑낑대더라도 제아무리 졸립더라도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포옥 안을 때처럼 따사롭거나 넉넉한 때는 없다고 느낍니다.


.. 유타는 도모미가 까닭 없이 때리거나 발길질만 하지 않으면 정말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유타의 마음도 모른 채 갑자기 도모미가 다가와 또 유타가 메고 있는 가방에 발길질을 하고는 도망가 버렸어요. 유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도모미를 쫓아가 때려 주려 했지요. 그때 짝이 유타를 말리며 말했어요. “그러지 말고 그냥 말로 해. 아니면 너도 똑같아지잖아.” ..  (25쪽)


 지지난달에 일 때문에 아이 아빠 혼자 자전거를 끌고 서울로 마실을 나왔습니다. 이때에 좋은 벗님을 만나 신나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고는 잠자리를 찾아 비틀비틀거리면서 자전거를 끌었습니다. 자전거를 어딘가에 묶어 두고 택시를 타면 좋았으련만, 또는 가까운 잠집으로 찾아들었다면 좋았으련만, 술이 들어간 아이 아빠는 제 마음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습니다.

 언덕길을 힘겨이 오르며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자전거를 타야 할까 하고. 그러다가 어두운 밤거리에서 길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데 미처 살피지 못했고, 미처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무언가에 걸려 확 고꾸라집니다.

 어깨가 긁히고 무릎이 깨집니다. 안경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는 크게 다칩니다.

 이 망가진 자전거를 겨우 손질해서 이듬날 인천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망가진 자전거를 낑낑거리며 시골집까지 끌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놓고 돌아옵니다.

 바야흐로 날이 쌀쌀해지며 겨울이 코앞입니다. 임자 잃은 자전거가 안쓰럽게 홀로 우는 소리를 날마다 듣습니다. 도무지 이 자전거를 그대로 인천 골목동네 한켠에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비를 맞지 않게 지붕 밑에 놓았으나 걱정스럽습니다. 더 추워지기 앞서 얼른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했기에 바보스러운 짓을 씻고자 아이 아빠는 몸이 더 고단합니다. 이러는 동안 시골 살림집에는 몸이 무거워 고단한 아이 엄마가 홀로 아이하고 부대껴야 합니다. 아이 아빠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저지른 잘못 하나로 여러 사람이 고달픈 셈입니다. 아이 아빠가 먼저 깊이 생각하며 차근차근 알뜰살뜰 살아내야 비로소 아이 아빠부터 즐겁고, 아이 아빠랑 함께 살아가는 아이 엄마랑 아이 모두 즐겁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바보스러운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나 스스로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새삼스레 깨닫는달 수 있습니다. 넘어져 무릎이 깨져 보아야 아픔이란 얼마나 고단한가를 깨우치니까요. 뜨거운 물에 데어 보기도 하고,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어 보기도 하며, 조그마한 텃밭을 쟁기로 갈며 이 조그마한 텃밭을 갈 때조차 힘이 얼마나 드는가를 느껴 보기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온몸으로 살아내야 내가 살아숨쉬는 한 사람임을 느껴요.

 좋아하는 노래를 조용히 읊습니다. 노래 한 가락 조용히 읊으며 되뇝니다. 나한테 가장 사랑스러울 책일 때에 내 아이한테도 가장 사랑스러울 책이 된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나부터 나 스스로 가장 사랑스럽다고 느낄 책이란 바로 내 삶이요, 내 삶을 담은 책을 내 아이하고 가장 사랑스레 즐길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 나라에 청소년책이 있다면 아이 아빠나 아이 엄마로서 아이 아빠 삶이나 아이 엄마 삶을 담은 책이 있다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 청소년책이 없다면 아이 엄마나 아이 아빠 되는 사람이 제 아이를 알뜰히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없거나 얕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2) 청소년한테 책읽기란


 이제 곧 전철을 타고 길을 나서면 머잖아 인천에 닿을 테며, 인천에 닿으면 골목마실을 살짝 한 다음 자전거를 찾을 테지요. 전철길에는 가방에서 책 하나 꺼내어 읽습니다. 전철길은 털털탈탈 흔들한들 하는데 이 흔들거림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며 고개를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하는 가운데 책을 읽습니다.

 전철길에 책 하나 다 끝내기도 하지만, 부러 몇 쪽을 남기기도 하며, 일부러 몇 쪽만 읽고 다른 책을 꺼내기도 합니다. 책읽기란 어느 책 하나를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빠짐없이 재빨리 읽어치우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줄을 즐기며 한 줄을 다시 즐길 수 있는 책읽기입니다. 한 줄로도 즐거운 책이요, 한 줄로 넉넉히 고마운 책이에요.

 전철길에서든 버스길에서든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듭니다. 흔들리는 탈거리에서 책에 푹 빠지다 보면 고개가 아프거든요. 목을 풀고자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립니다. 이럴 때에 으레 둘레를 한 번 휘 둘러봅니다. 아, 이 전철길이나 이 버스길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나 혼자뿐이구나. 어, 오늘은 모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네, 저이는 어떤 책에 저렇게 푹 빠졌으려나.

 흔들거리는 전철이나 버스를 타며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한 사람입니다. 흔들거리는 전철이나 버스를 타며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대단하거나 훌륭하지만은 않고, 책을 안 읽는다고 안 대단하다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또 대단하다 할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책읽기란 삶읽기이거든요. 책읽기를 삶읽기로 깨우치며 살아간다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아름다운 매무새로 거듭납니다. 책읽기를 삶읽기로 받아들이는 몸가짐일 때에는 비록 책을 손에 쥐지는 못하지만 살결 그을리며 일하는 기쁨을 압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고, 머리가 아닌 몸에 새기는 일이며 놀이예요. 다른 사람이 적바림한 다른 사람 삶 담긴 책은 모르지만, 내가 적바림할 만한 내 삶 담을 책을 알아요.


.. 할아버지가 어릴 때에는 집 가까이 있는 개울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살았답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아 저녁 반찬으로 먹었다고 해요. 그때에는 물고기를 잡는 일이 아이들 몫이어서 많이 잡아 오는 날이면 식구들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울이며 시내가 사람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로 시궁창이 되고 말았어요 … 요즘처럼 아무 때나 가게에 가면 바로 살 수 있는 채소는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  (29∼30쪽)


 이 땅 푸름이가 책을 가까이한다면 이 땅 푸름이를 키우는 어버이가 책을 가까이한다는 뜻입니다. 이 땅 푸름이가 책을 가까이하지 않으나 책삶과 땀삶과 눈물삶과 웃음삶을 고이 일군다면 이 땅 푸름이를 돌보는 어버이 스스로 알뜰한 살림꾼으로 힘차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청소년범죄란 따로 없습니다. 이리하여 청소년문화란 따로 없습니다. 마땅하게 청소년책이란 따로 없습니다. 그예 범죄이고 문화이며 책이에요.

 어른만 몰래 즐기는 놀이란 없고, 청소년만 몰래 노닥거리는 놀이란 없습니다. 어른만 살짝 맛보는 삶이란 없고, 청소년만 살짝 맛보는 삶 또한 없어요. 누구나 한 사람 고운 목숨으로 살아내는 하루요, 어디에서나 다 함께 어깨동무할 나날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터는 참 바쁘고 퍽 메마릅니다. 애써 ‘청소년한테 청소년책을 읽히려고 힘을 쏟는 모임이나 출판사’가 있어야 하고, 교사들은 아이들한테 아이들 눈높이에 걸맞는 책을 찾아 주려고 용을 써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따로 이러저러한 책을 읽도록 해 주어도 나쁘지 않지만, 아이들과 더 오래오래 어울리면서 삶을 누리지 못하니까, 그나마 책이라도 쥐어 주려 합니다.

 어린이책이라 할 수 있고 청소년책이라 할 수 있으며 어른책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 《달걀 한 개》라는 이야기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훌륭하다 여길 수 있고 썰렁하다 볼 수 있으며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찌 되든 이야기책 하나인 《달걀 한 개》인데, 이 책에는 ‘몸 여린 시골 교사 한 사람이 아이들하고 살아 있는 공부’를 했던 이야기 한 자락 실립니다. 이 시골 교사가 얼른 몸이 나으라며 시골 어머님들은 아이 손에 달걀을 하나둘 쥐어 주며 선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시골 교사는 시골 어머님들한테서 달걀을 잔뜩 받습니다. 왜냐하면 한 집에서 한두 알씩 주었지만, 열 집이면 열이나 스무 알이요, 스무 집이면 서른이나 마흔 알이 되거든요.

 시골 교사는 달걀을 홀로 먹지 않습니다. 홀로 먹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습니다. 어찌 할까 헤아리다가 이 달걀로 ‘산 배움’을 나누기로 마음먹고, 아이들을 불러 아이들 스스로 달걀을 삶아 먹도록 이끕니다.

 이 달걀 삶기는 교과서에 안 나옵니다. 요리책에 딱히 안 실립니다. 왜냐하면 시골 아이들이랑 시골 교사가 즐긴 ‘달걀 삶기’는 아이들이 산에서 삭정이를 주워 와 손수 불을 지핀 다음 가마솥에 불을 붓고 달걀을 넣어 삶는 일이거든요. 이렇게 달걀을 삶으라고 이야기하는 요리책이란 없어요. 그렇지만 시골 교사는 이렇게 달걀 삶기를 함께 즐겨요. 그러니까, ‘시골 교사 달걀 삶기’란 바로 ‘책 하나’인 셈이요, 아이들 모두하고 ‘책읽기’를 즐긴 셈입니다.


 (3)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를 읽으려면


 청소년책이라 해도 되고 어린이책이나 어른책이라 해도 되는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나라 오늘날 도시 교사 가운데, 또 시골 교사 가운데 《달걀 한 개》에 나오듯 아이들하고 어울리면서 달걀 삶기를 할 만한 분이 한 사람쯤 있을까 궁금하거든요.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 같은 이야기책을 아이들한테 들려주어도 좋으나, 어른과 아이가 함께, 교사와 학생이 함께, 어버이와 아이가 함께, 달걀 삶기를 하듯이 삶읽기를 즐기면 더욱 좋거든요.


.. 지금 대인지뢰를 없애기 위해 국제연합과 전 세계 여러 나라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1997년 12월에는 세계 여러 나라 대표들이 캐나다 오타와에 모여, 대인지뢰를 모두 없애고 더는 만들지 말자는 뜻으로 ‘대인지뢰 금지 협약’을 채택해 서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뢰를 만들고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나라가 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고 있답니다 ..  (57쪽)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에 담은 이야기는 남다르지 않습니다. 대단한 지식을 다루지 않습니다. 놀랍거나 새롭거나 어마어마하거나 훌륭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누구나 어디에서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쟁이란 늘 우리 곁에 있고, 평화 또한 노상 우리 둘레에 있어요. 우리 스스로 못 느낄 뿐인 전쟁이고 평화예요. 그래서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를 읽으며 전쟁과 평화를 가르칠 수 있으나, 이 책을 함께 읽는달지라도 전쟁이든 평화이든 가르칠 수 없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빼어나거나 좋은 책이더라도 추천목록이나 권장목록에서 박제처럼 굳을 수 있습니다. 그냥 아이 스스로 깨달으라 하면서 던져 줄 수 없는 책입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자면 아이 삶으로 스며들도록 해 주어야 하고, 아이 삶으로 책 하나 스며들자면, 아이한테 책을 건네는 어버이나 교사가 먼저 당신 몸으로 책을 녹여 놓아야 합니다.

 아이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볼에 뽀뽀 한 번 하고 영차 하고 안아올려 까르르 웃음짓게 하는 여느 삶에 평화가 듬뿍 배어 있습니다. (4343.11.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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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0] 가을잎

 가을이 되어 붉거나 노랗게 물드는 잎이 나무마다 그득합니다. 어제까지는 퍽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더니, 지난밤 살짝 비가 흩뿌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을잎이 제법 졌습니다. 나무에 달리면 나뭇잎이라 하고, 나무에서 떨어져 땅에 살포시 누우면 가랑잎이라 합니다. 비가 흩뿌린 뒤 바람이 제법 세게 붑니다. 나무에 대롱대롱 달려 있던 잎들이 하나둘 톡톡 떨어져 나부낍니다. 이리 날다가 저리 구릅니다. 시골집 둘레는 온통 가랑잎입니다. 붉거나 노랗게 물든 가을잎투성이입니다. 가을이기에 이토록 붉거나 노란 잎사귀를 마주합니다. 겨울에도 푸른빛 건사하는 겨울잎을 만날 수 있을 테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푸석푸석 삭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겨울잎을 만날 수 있겠지요. 봄에는 새로 움터 싱그럽고 물기 가득한 봄잎을 만날 테며, 여름에는 한껏 물이 올라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잎을 만나겠지요. 철 따라 거듭나는 잎사귀처럼 사람도 철 따라 새삼스레 거듭날까 궁금합니다. 어머니 배에서 무럭무럭 자라다가 바깥마실을 하는 갓난쟁이가 한 돌 두 돌 크며 어린이가 되고 푸름이가 되며 젊은이가 되어 갈 텐데, 이동안 어떠한 마음잎 하나 가슴에 조촐히 담을는지 궁금합니다. (4343.1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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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1] 밤하늘

 시골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이 하늘이 언제까지 파랄 수 있을까 하고. 볼일을 보러 도시로 나오며 낮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들 물결에 나 또한 바쁜 사람 하나로 휩쓸립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시골 살림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을 내는데, 애써 하늘을 올려다보려 하지만 하늘은 꽁꽁 막힙니다. 건물에 막히고 건물 지붕에 막히며 찌뿌둥한 잿빛 먼지구름에 막힙니다. 낮에는 낮대로 낮하늘을 껴안기 어려운 도시이구나 싶은데, 처음에는 이렇게 느끼지만, 이내 도시사람 삶이란 참 슬프겠다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먼지구름 가득한 가을하늘일지라도 틀림없이 가을하늘이거든요. 밤에는 갖은 등불로 너무 밝아 별빛 하나 찾을 수 없지만, 이런 밤하늘이라 하더라도 꼭 밤하늘이에요. 밤낮이 없거나 밤낮이 바뀐다는 도시인 터라, 아침에는 어마어마하게 몰려다니는 사람이 낮이 되면 거의 안 보이다가 어둑어둑할 때에 다시금 어마어마하게 몰려다닙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다음 도시에서도 살짝 먼지구름이 걷혀 낮하늘은 파란하늘이고 밤하늘은 초롱초롱 별하늘이거나 까만하늘이곤 합니다. 나는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온 때에도 밤하늘을 헤아리며 아주 조그마한 별을 찾습니다. (4343.11.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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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과 글쓰기


 도시에서는 가을을 맞이하더라도 가을임을 느끼기 힘들구나. 이 좋은 가을에, 이 고운 가을에, 이 맑은 가을에, 이 멋진 가을에, 이 기쁘며 슬픈 가을에, 도시에서 살아가며 무슨 빛과 그늘을 느낄 수 있는가. 가을이 없으니 도시를 떠나 멀리 자연 품은 시골을 찾고, 봄도 여름도 겨울도 없으니까 철 따라 방학이나 휴가 때 겨우 한 번 새숨을 마시려고 시골을 찾는구나. 새숨을 쉬지 않으면 답답할 뿐 아니라 메말라 버리는 줄 몸으로 느끼면서 왜 철을 잊는 데에서 이처럼 복닥복닥 해야 하나. (4343.1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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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과 글쓰기


 바람 부는 만큼 하늘빛은 다릅니다. 빨래대 휘청거리고 나뭇가지 흔들리며 바람소리로 잠을 깨우는 날에는 하늘빛이 눈부시도록 파랗습니다. 이 차가우며 거센 바람이 하늘가에 티끌과 먼지가 함부로 서리지 않도록 내모는 듯해요. 낮에는 꽤나 빨리 흐르는 흰구름 올려다보고, 밤에는 초롱초롱 빛나는 별무리를 올려다봅니다. (4343.1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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