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삯 기차삯 배삯 비행기삯


 아이 엄마랑 아이랑 아이 아빠랑 이렇게 세 사람이 제주섬을 한 번쯤 밟고 싶다고 생각한 끝에 드디어 이번 토요일에 마실을 하기로 한다. 먼저 목포에 들러 아이 큰아빠를 만나려 했는데, 아이 큰아빠는 토요일에 인천으로 마실을 간단다. 하는 수 없이 제주섬을 돌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형하고 전화로 얘기를 하다가 “비행기 타고 가. 이럴 때 비행기 한번 태워 주지.” 하기에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은 뒤 청주공항을 알아본다. 비행기 뜨는 때가 아침이거나 저녁이다. 우리처럼 낮에 움직일 사람이 탈 비행기는 없을 뿐더러, 비행기 뜨는 때에 맞추어 기차표를 끊기 훨씬 어려운데, 기차를 타러 나가려고 시골버스를 잡아탈 때를 살피기는 훨씬 힘들다. 그래도 책상맡에서 머리 지끈지끈 앓아 가며 가까스로 기차표를 끊고 비행기표를 끊는다. 그런데 비행기표를 끊으며 표값을 치르려 하다 보니, 표값이 한 사람 앞에 칠만 원 남짓 떨어진다. 세 사람 묶어 이렇게 나오는구나 싶어 참 값싸네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만 한 값이라면 고속철도를 탈 때보다 훨씬훨씬 비싸잖아. 세 사람 따로따로 칠만 원이 넘어 이십이만 원이나 되는 비행기삯이라니. 비행기 안 타는 사람이 비행기 한 번 탄다고 하다가 살림이 아주 거덜나겠다. 우리 집 한 달치 살림돈이 한꺼번에 나간다고 할까. 아, 이십만 원이나 되는 비행기삯을 어떻게 어디에서 벌지? 잠값이야 그럭저럭 벌면 된다지만 비행기삯이란, 에휴. 돌아오는 길은 배와 기차와 시골버스를 갈아타며 아주 천천히 돌고 돌아야겠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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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1 22:00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마실나가시니 즐겁게 놀다 오세요^^
 
청관 - 인천 차이나타운
김보섭 지음 / 눈빛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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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사진, 잃어버린 삶
 [찾아 읽는 사진책 6] 김보섭, 《청관》(눈빛,2010)



 사진 백서른두 장이 갑작스레 날아갔습니다. 필름으로 치면 한 통에 서른여섯 장이니 서너 통쯤 사라진 셈입니다. 다섯 해쯤 앞서 사진기와 필름이 든 가방을 도둑맞았을 때에 사진기와 책과 돈뿐 아니라 이 가방에 들었던 필름 일곱 통을 함께 잃은 적 있습니다. 열 해쯤 앞서 신문배달을 하는 동안 누군가 신문사지국에 몰래 들어와 가방을 훔쳤을 때에도 필름 두 통을 함께 잃었습니다. 지난날 잃은 필름은 모두 헌책방을 찍은 사진이고, 어제 잃은 사진은 모두 골목길을 담은 사진입니다.

 디지털사진을 필름사진과 함께 찍던 처음, 그동안 겪은 일을 바탕으로 메모리카드를 제값 치르며 제대로 사자고 생각했습니다. 필름을 장만할 때에 한결 값싼 녀석을 쓸 수 있었으나, 값싼 필름을 쓰다 보면 으레 어딘가에서 말썽이 나곤 했습니다. 값은 곱절이요, 내 눈결하고 들어맞는 필름은 더 비싼값이지만, 내 사진을 내가 좋아하는 대로 이루자면 그만한 값을 들여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애써 찾아간 헌책방에서 찍은 사진들은 다시는 찍을 수 없는 모습이며 삶이기 때문에, 제 살림돈을 아무리 거덜내거나 차지한다 하더라도 필름에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디지털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도 나중에 갑작스레 무슨 말썽이 생기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사진을 고스란히 잘 살릴 수 있어야 하며, 힘써 찍은 사진은 내장하드이든 외장하드이든 알뜰히 건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메모리카드 되살리기를 해 보지만 메모리카드에 틀림없이 담긴 이 사진파일은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지끈 뚝딱 하면서 가뭇없이 사라질 듯합니다. 모처럼 인천으로 마실을 가서 한창 신나게 사진을 찍었는데, 두 시간 남짓 다리품을 팔며 걸어다닌 골목동네에서 골목빛 담은 사진이 어느 한때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셈입니다. 사진기를 떨어뜨린다든지 메모리카드를 꺼내어 분지른다든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창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뿅 하고 날아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잘 쓰던 사진기가 갑자기 멈춘 적이 이제까지 세 차례 있습니다. 떨어뜨리거나 부딪히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골목마실을 하거나 헌책방마실을 하며 땀 뻘뻘 흘리는 가운데 사진을 찍는데 사진기가 갑자기 멈췄어요. 나중에 수리점에 맡긴 다음 알았는데, 아무리 알뜰히 건사하며 사진기를 쓰더라도 ‘많이 찍’으면 사진기도 기계인 만큼 낡고 닳아 스스로 멈출 수 있더군요. 사진을 많이 오래 찍으려는 사람은 사진기를 한 대만 갖고 다닐 수 없습니다. 곁으로 하나를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진쟁이로서는 사진기 한 대 렌즈 하나 마련하여 쓰기조차 벅찬데 곁사진기 하나를 둔다는 일은 몹시 어렵습니다. 저는 아직 곁사진기를 두지 못합니다. 곁렌즈 하나 없는걸요. 렌즈도 사진기와 매한가지로 언젠가 낡고 닳아 못 쓰고 맙니다. 그래, 사진기와 렌즈는 하나씩 더 챙겨 놓아야 해요.

 씁쓸하고 슬프지만, 아이 엄마는 아이 아빠한테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그 사진은 이제 없는 사진이라고 생각하셔요.” 하고.

 아쉬워 한다고 짠 하고 나타날 사진이 아닙니다. 애태운다고 살아날 사진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읍내마실을 다녀오는데 못난 자동차꾼이 저를 들이받아 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다 하면 ‘부러진 팔다리’이지, ‘예전처럼 멀쩡히 살아날 팔다리’가 아닙니다. 제 사진기랑 가방을 훔쳐갔던 이들은 제 사진기랑 가방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열 차례 도둑맞았습니다. 없는 살림에 잃는 사진기랑 가방을 떠올리면 목매달아 죽고플 만큼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잃은 사진기는 잃은 사진기이고, 잃은 가방은 잃은 가방입니다. 잃은 사진파일 또한 잃은 사진파일이라 해야 할 테지요.

 되새기기 싫으나, 사진파일 백서른두 장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몇 시 무렵 어느 골목을 어떻게 거닐며 어떤 골목빛을 어떠한 사진으로 옮겨 담았는가 헤아립니다. 사진파일이 살아 있다면 말이 아닌 사진으로 보여주었을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사진쟁이란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지 말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잃은 사진을 앞에 두고는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내 말마디로 ‘사진으로 보여주듯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맨 먼저, 동인천역 뒤쪽 송현1동입니다. 송현1동에서는 ‘동인천 북광장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이 세운 천막을 담았고, 추운 날 천막에서 농성하는 분들이 헐린 건물 자리 돌과 쓰레기를 치운 다음 일군 텃밭을 찍었습니다. 이분들은 일흔 해 안팎 건물이 서 있던 자리에 씨앗을 심어 배추며 무며 상추며 갖은 푸성귀를 길러냈습니다. 다음으로 이 텃밭 옆에 바지랑대를 세우고 널어 놓은 빨래. 가을햇살은 텃밭에도 빨래에도 곱게 내려앉습니다.

 건널목을 건너기 앞서 ‘아직 안 헐린 건물’에 깃든 나무집에 붙은 ‘애관극장 영화광고 나무판’을 찍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다시금 찍습니다. 나무판으로 만든 ‘애관극장 영화광고판’은 인천에서도 이곳에 딱 하나 남았습니다. 이 나무판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이 건물이 헐리면 이제 이 나무판도 끝장이지요. 애관극장은 대한민국에서 맨 처음 선 극장이요, 맨 처음 선 극장에서 만들어 붙인 ‘나무판으로 된 광고판’ 또한 한국땅에 더는 안 남은 줄 압니다. 시골에는 아직 남았으려나요.

 송현2동 안골에서 꽃잔치집 앞에 섭니다. 꽃잔치집은 가을날 대문 안쪽 작은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일부러 한꺼번에 안 따고 한 알 두 알 따 드시는 듯합니다.

 다시 길을 건너 화평동으로 갈까 하다가 지하상가로 건너 전동으로 접어듭니다. 옛 인천여고 자리에서 자라는 우람한 은행나무는 가을빛이 한껏 빛납니다. 아, 이 자리에는 동인천동사무소가 아닌 학교가 있어야 하는데. 학교 운동장은 주차장이 되다니. 이 우람하며 멋들어진 나무를 아이들이 날마다 보듬으면서 너른 꿈을 키워야 하는데. 아이들한테는 최신시설이 아닌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애틋한데.

 전동 안골로 들어섭니다. 지난해까지는 수세미가 나무전봇대 전깃줄을 따라서 자랐는데, 올해에는 수세미가 없군요. 그러나 나무전봇대 뿌리 께에 마련한 작은 꽃밭에 심은 꽃이 지고 잎이 지며 예쁜 노을빛을 베풉니다.

 내동하고 맞닿은 전동 쪽으로 갑니다. 할배 한 분이 해바라기를 즐기곤 하는 골목집 ‘대문 위쪽 자리’에 희고 큰 개가 앉아서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골목마실 하는 모양이 재미나 보이는 모양인지, 예전에 인천에 살면서 거의 날마다 지나다니던 저를 알아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살짝 인사를 하고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내동으로 접어듭니다. 2층 꽃밭에서 저를 내려다보던 다른 희고 큰 개가 컹컹 짖습니다. 깜짝 놀랍니다. 맞은편에 골목고양이 한 마리 있네요. 골목고양이도 놀랍니다. 이때다 싶어 깜짝 놀라 하며 우뚝 선 골목고양이 사진을 석 장 잇달아 찍습니다.

 성공회 내동성당 아래쪽 골목집 아줌마가 골목고양이한테 밥과 물을 주는 그릇을 찍습니다. 그릇 하나는 깨졌고, 그릇 둘은 잘 있습니다. 예전에 살던 내동 3층짜리 벽돌집 앞에 섭니다. 예전 살림집 임자인 할아버지가 저를 알아보고 인사합니다. 할배는 언제나처럼 당신 살뜰한 살림집을 알들히 여미어 놓습니다. 골목집 맞은편 텃밭은 사라지고 높은 울타리가 섭니다. 돈 많은 내리교회에서 새 건물을 세우려나 보군요. 신포시장을 거쳐 답동성당 가톨릭생협 매장에 들른 다음 율목동으로 올라설까 하다가 용동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다시 경동 골목으로 빠져나와 싸리재 가구집들 사이를 지나 정보산업고 뒤쪽 동네로 접어듭니다. 빨간 사루비아와 하얀 사루비아 키우는 골목집 앞에 섭니다. 이 골목집 할머니가 저를 보며 “사진 찍어 주어 고마워요.” 하고 인사합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예쁘게 돌보는 집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분 꽃밭 사루비아 밑을 보니,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자라는 사루비아 한 포기가 있습니다. 어쩜!

 여기까지 두 시간 즈음 천천히 거닐며 사진을 찍어 백서른두 장이었습니다. 싱그러운 골목 삶터 모습을 이제 겨우 몇 가지 찍었다 싶었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들어서며 헌책방에서 스무 장쯤 더 찍는데, 헌책방에서 찍은 스무 장 남짓하고 골목길 사진하고 아스라이 사라지고 맙니다. 힘이 빠져 골목마실을 더 잇지 못합니다.


.. 그는 인천사람이다. 인천사람이 인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관심이 인천에 주로 머물고 있는 것은 리얼리스트로서의 그의 사진적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  (추천글/한정식)


 사진책 《청관》을 읽습니다. 올 2010년 3월에 새로 나온 사진책 《청관》은 지난 1995년에 한 번 나온 적 있고, 이번은 고침판이라 할 책입니다. 열다섯 해를 묵어 새로 나왔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1995년판은 1995년까지 살아낸 ‘중국사람 동네’ 이야기가 묻어난 사진책이라 할 테고, 2010년판은 2010년까지 열다섯 해를 더 살아낸 중국사람 골목 이야기가 깃든 사진책이라 할 테지요.

 그런데, 2010년판 《청관》을 읽으며 1995년판 《청관》하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못 느끼겠습니다. 2010년판 《청관》에는 1995년판에는 담기지 못한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사진으로 나누는 ‘새 열다섯 해’란 어떤 뜻이나 값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김보섭 님은 《한의사 강영재》와 《바다 사진관》과 《수복호 사람들》과 《시간의 흔적들》 같은 사진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사진책은 하나같이 ‘인천에서 살아가며 인천사람으로서 마주한 삶’을 담습니다. 사진책에 한정식 교수님이 붙인 글마따나 ‘인천사람이 인천을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를 담습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한국사람이라 할 때에 모두 같은 한국사람이 아닙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서울사람이라 할 때에 모두 같은 서울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사람 가운데 강아랫마을사람을 생각해 보면, 강아랫마을사람이라 해서 모두 같은 강아랫마을사람은 아닙니다.

 다 다른 인천사람이고 다 다른 인천사람 삶입니다. 그러면서 다 다르나 다 같은 삶과 사람과 삶터입니다. 바로 이 대목, 다 다르면서 다 같은 삶이고 사람이며 삶터인데, 김보섭 님 사진은 이 알맹이를 아직 못 건드리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청관 사진’인지 ‘청관사람 사진’인지 ‘청관사람 이야기 사진’인지 ‘청관사람 주름살 사진’인지 ‘청관 마을 사진’인지 ‘청관 마을 사람들 사진’인지 어떤 사진인지를 먼저 또렷하게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중국사람 동네에서 담벼락 이룬 벽돌 한 장 찍으면서도 얼마든지 온갖 이야기를 길어올릴 뿐 아니라 기나긴 삶을 보여줄 수 있어요. 중국사람 동네 골목고양이이든 꽃그릇 하나이든 간판 하나이든 유리창 하나이든 문패 하나이든 우물자리 바가지 하나이든 전봇대 하나이든, 얼마든지 ‘청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이야기 엮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진쟁이 김보섭 님한테는 무슨 이야기를 간직했던 청관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는 청관일는지요.


.. 김보섭의 사진은 정직하고 정확하다. 진지하고 무게가 있다. 사람이 작품이요, 작품이 곧 그 사람이란 말이 있지만, 그의 인품을 보면 그의 사진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 이해된다 ..  (추천글/한정식)


 사진찍기는 나한테 찍힌 사람들을 보여주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본 사람들 삶을 옮겨 보여주는 일입니다. 내가 바라본 사람들 삶을 옮겨 보여줄 때에는 나 스스로 살아냈고 살아가며 살아가려는 결에 맞추어 이 가슴을 고즈넉히 보여줍니다.

 잘난 모습이 아닙니다. 못난 모습 또한 아닙니다. 꾸밈없는 모습입니다. 수수한 모습입니다. 여느 모습입니다. 흔한 모습입니다. 사진 한 장에 담는 삶이란 더없이 흔한 삶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옮기는 사람 이야기란 참으로 너른 사람 이야기입니다. 사진 한 장에 적바림하는 삶터 자국이란 대수롭다 할 만한 작은 자국입니다.

 사진 한 장을 담을 때에는 내가 살아낸 만큼 담기 때문에 내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바라보지 못한 모습을 ‘잃기’ 마련입니다. 나로서는 느끼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아예 ‘모른다’ 할 만한 모습인데, 사진쟁이한테는 이렇게 ‘모른다’ 할 만한 모습이란 ‘잃은’ 모습입니다. 처음부터 얻지 못한 모습이라고도 할 터이나, 사진쟁이 삶을 되새긴다면 사진쟁이로서 ‘얻지’ 못한 ‘잃은’ 모습이요, ‘찾지’ 못했고 ‘나누지’ 못한 셈입니다.

 추천글을 가만히 읽습니다. 한정식 교수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작품이요, 작품이 곧 그 사람”이란 말 그대로입니다. 김보섭 님은 김보섭 님대로 바라본 ‘중국사람 골목’이고, 이 모습을 사진책 하나로 말끔히 엮습니다. 이 사진을 바라보는 한정식 교수님은 한정식 교수님대로 ‘중국사람 골목’을 이러한 사진 몇 가지로 읽을밖에 없습니다. 몸으로 부대끼거나 몸소 찾아가서 바라보며 맞아들인 중국사람 골목이 아니었으니, 추천글을 적을 때에 이렇게만 적을 뿐입니다.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을 마주하며 더 긴 말마디를 들었다 해서 중국사람 골목 담은 사진이 더 깊거나 더 넓거나 더 애틋할 수 없어요. 이야기를 이루어 내자면, 얼굴 주름살이 아닌 얼굴 주름살에 밴 삶을 사진으로 담아야 합니다. 이야기를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엮어 나누려 한다면, 이 사람 저 사람 얼굴 주름살 모습이 아닌 이 사람은 이 사람 결대로 어떤 삶이며 저 사람은 저 사람 굳은살마냥 어떤 넋인지 차근차근 읽어내고 담아내어 보여야 합니다. 참다이 읽지 못하며 찍는 사진은 잃어버린 사진입니다. 착하게 삭이지 못하며 보여주는 사진은 잃어버린 삶입니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 청관 (김보섭 사진,눈빛 펴냄,2010.3.12.(고침판)/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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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적으로 보급형 DSLR의 경우 셧터수명이 보통 몇만컷이라고 하더군요(사실 필림의 경우라면 평생쓰고다 남을 숫자이지만..DSLR의 경우 필림압박이 없고 연사놀이로 금방 몇만컷이 나옵니다).따라서 좀 오래 쓰실려면 아무래도 각사에서 나오는 플래그쉽 카메라를 추천해 드립니다.최소 셧터박스 수명이 15만~30만컷이라고 하니 굉장히 튼튼하지요.게다가 좀 예전거은 이제 50만원대로 중고 구입이 가능하니 쓸만하실 겁니다.
예전에 숨책에서 된장님을 봤을적에 DSLR을 가지고 계신것을 봤는데 그리 많이 도난당하셨는줄 몰랐네요.그 당시에도 자전거를 타고 책과 무거운 DSLR을 가지고 다니시니 무척 힘들어 보이서더군요.이기회에 차라리 작고 가벼운 하이엔드 카메라가 좋으실듯 합니다.

파란놀 2010-11-11 14:06   좋아요 0 | URL
작고 가벼운 사진기도 나쁘지는 않지만, '반사경'이 너무 작아서 제가 바라는 '각도'가 나오지 않는답니다 ^^;;; 그래서 헌책방 사진은 필름 사진으로 찍곤 하는데, 요사이는 슬라이드필름 값을 댈 수 없어, 칼라사진은 디지털로 찍어요. 디지털 작은 기종 가운데에도 1미터쯤 되는 크기로 뽑아도 깨지지 않으면서 '각도'가 비틀리지 않으면서 넓게 나오는 기종이 있다면 쓸 만하겠지요 ^^;;;

돈도 돈이지만, 사진기 만드는 회사에서 '전문가 기종'은 너무 좁게만 만들어서 몇 가지 기종 아니면 쓸 수 없도록 한답니다. '여느 즐김이 기종'은 거의 껍데기 모양만 바꾸어 수만 가지를 내놓는데, 다들 고만고만한 장단점이 있어 섣불리 쓰기 어려워요. 장점만 있는 사진기를 만든다고 돈이 더 들지는 않습니다만... 장사이기 때문에 어려워요...

카스피 2010-11-12 10:45   좋아요 0 | URL
음 각도라 하면 화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좁은 헌책방 사진을 찍으시려면 필히 광각 렌즈가 필요하시겠지요.요즘 하이엔드로 24mm까지 지원하는데 그보다 더한 것은 DSLR도 왜곡 현상이 심하지 않을가요.

파란놀 2010-11-12 22:57   좋아요 0 | URL
광각을 쓸 때에 24미리 밑으로 내려가면 왜곡이 커서 거의 못 쓴답니다. 24미리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왜곡이 잘 생기고요. 더구나, '값이 싼' 렌즈는 왜곡도 왜곡이지만 화각이 너무 좁답니다. 디지털사진기로 화각과 왜곡을 줄이려면, 기본 천만 원에 이르는 장비를 써야 하니까, 저로서는 꿈조차 못 꾸고, 값싼 사진기하고 옛날 필름사진기로 아쉬운 대로 화각과 왜곡을 겨우 줄이며 사진을 찍어요 ^^;;;
 


 아이가 엄마 배속에 설 때


 저녁나절 세 식구 일찍 잠자리에 든다. 여덟 시가 채 안 되었으나 잠자리에 든다. 서울과 인천으로 볼일 보러 다녀온 애 아빠는 애 아빠대로 허리와 다리가 쑤신다. 시골집에서 아이랑 복닥이던 애 엄마는 애 엄마대로 온몸이 쑤신다. 아이는 아이대로 혼자 놀다 힘들었을 테니 일찌감치 잠들었다.

 막 자리에 누워 잠들 무렵 전화기가 울린다. 일산 옆지기네 어머님이 전화를 거셨다. 둘째를 밴 딸아이를 걱정하신다. 이야기결에 한 마디가 마음에 녹아든다. 당신이 젊을 적 아이를 밸 무렵, ‘배속에 아이가 설 때’ 몸이 참 힘들고 무거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고 말씀한다. 그때에는 왜 몸이 힘들거나 무거웠는지 모르셨단다.

 할머니가 곁에 있으면 애 엄마나 애 아빠는 얼마나 많으며 깊고 너른 삶을 받아들이거나 바라보며 배울 수 있을까. 할머니하고 함께 살아가지 못하거나 같이 안 사는 사람들이 딱하다. 그렇지만 막상 할머니랑 함께 살아가면서 할머니한테서 고운 삶을 웃음과 눈물로 맞아들이거나 껴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이키우기랑 살림하기만 배우거나 익히지 않는다. 아이키우기랑 살림하기란 곁다리이다. 할머니한테서 삶을 배우고 삶을 나누며 삶을 함께하니 즐겁다. 할머니 한 분 걸어온 길은 고스란히 ‘사람책’이다. 애 엄마 외할머님이 배속에서 자라는 둘째 아이를 생각하며 비손해 주신단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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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11-12 08:30   좋아요 0 | URL
아, 작은아이가 생겼다는 걸 제가 이제 처음 아는 걸까요? 요새 제 속의 시끌거림으로 님의 글을 찬찬히 못 읽었던 듯. 정말 어설프게 축하 드립니다. ^^

파란놀 2010-11-12 22: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 이듬해 오월 무렵에 곱게 태어나리라 생각해요~
 


 도시와 글쓰기


 시골 사는 사람은 시골 삶에 맞추어 살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도시 사는 사람은 도시 삶에 걸맞게 일자리를 찾거나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을 누빕니다. 도시를 알고 느끼며 껴안는 대로 책방마실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봅니다. 시골집에서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면 날마다 늘 다른 하늘과 멧자락과 바람과 새소리를 마주하는 가운데, 우리 집 벽에 기어든 멧쥐가 끽끽대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느 하루도 같은 하루가 아니며, 같은 하루일 수 없는 가운데, 하루하루 흘러가는 소리를 노상 다르게 듣습니다. 언제나 다른 하루이지만 언제나처럼 새벽같이 쌀을 씻어 불려 놓고 아이가 언제쯤 일어날까 헤아립니다. 아이가 일어나서 배고플 때에 맞추어 밥을 안치고 찌개나 국을 끓입니다. 아이는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날마다 새로운 말을 새삼스레 쏟아내는 한편, 엄마나 아빠 말을 깍쟁이처럼 안 듣습니다. 나날이 한숨을 깊이깊이 쉬지만, 처음에는 엄마젖을 빨다가 죽을 먹다가 이제 밥과 김치를 꼭꼭 씹어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놀랍니다. 머잖아 아빠 밥그릇만큼 밥을 눌러 담아 배 띵띵 불도록 먹는 날을 맞이하겠지요. 볼일 때문에 아이 엄마하고 아이를 시골집에 두고 홀로 시골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타는 데로 나와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버스를 타고 책을 읽지만,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더 어질어질하며 속에 메스꺼워 그만 책을 덮습니다. 서울 강변역에서 버스를 내리며 겨우 숨을 돌리려 하지만, 길거리 사람들(거의 모두 남자)은 담배를 꼬나뭅니다. 담배 내음에서 겨우 비껴나 전철을 타니, 전철에서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전철을 갈아타고 그예 내릴 곳에 이르러 비로소 눈을 비비고 배를 쓰다듬습니다. 서울에는 사람이 참 많고, 젊은 아가씨 또한 많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서울에는 몹시 많습니다. 예쁘장하게 차려입은 아가씨하고 멋들어지게 꾸민 사내들을 바라봅니다. 저 차림새는 어떤 일을 하는 차림새일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일하며 살아간다면 으레 수수한 차림새로 바뀔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낮 동안 낮이로구나 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시계를 보며 몇 시인가를 살핍니다. 어둑살이 내릴 무렵이 되어도 저녁이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길거리에 등불이 환히 켜지니 시간을 잊습니다. 손전화를 꺼내어 몇 시쯤인가 어림합니다. 시골에서라면 시골버스는 저녁 일곱 시만 지나면 하나둘 끊기며 시골마을 작은 가게 또한 여덟 시가 채 되지 않아 거의 다 문을 닫습니다. 도시에서는 저녁 예닐곱 시쯤이라면 한창 장사를 할 때이고 사람이 더 북적거립니다. 한낮에는 해를 등에 지지 않던 사람들이 저녁에는 등불을 등에 지며 넘실거립니다. 낮이라 해서 햇살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녁이라 해서 달빛이나 별빛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새로 맞이하는 아침에 새로운 빛살을 얼싸안지 않아요. 하루치 새 일과 일삯을 곱씹는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재미난 이야기를 찾을밖에 없는 도시 삶터요, 살가운 이야기보다 신나는 이야기를 바랄밖에 없는 도시 물결이며, 사랑스런 이야기보다 살섞는 이야기를 좇을밖에 없는 도시 흐름입니다. (4343.11.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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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자루를 들고 와서 비질을 하는 흉내를 낸다. 이제 꽤 비질을 하는 척한다. 

 - 20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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