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책 만들기


 시골에서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일이란 참 많다. 이 가운데 하나는 날이 갈수록 농사꾼다운 농사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대목. 농사꾼이 잘못이기 때문이 아니요, 농사를 잘못 지어서가 아니다. 농사짓기란 땅과 하늘과 물과 바람과 목숨을 사랑하는 가운데 내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을 잊거나 잃을밖에 없는 이 나라 얼거리에서 몹시 짓눌리거나 아파하다가 그만 참사랑하고 멀어지고 만다. 이 걱정스러운 일은 앞으로 더욱 불거지리라 본다. 농사꾼이라 하여 모두들 참으로 농사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이니까. 따질 값어치조차 없다. 생각해 보자. 책을 내는 책마을 일꾼한테 대고 “당신은 책을 사랑하고 아낍니까?” 하고 물어 볼 일이란 없다. 아니, 물어 보아서는 안 된다. 묻고 자시고 할 까닭 없이 책마을 일꾼이라면 마땅히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매무새를 밑바탕으로 다스려야 하니까. 이러한 밑바탕을 살뜰히 다스리면서 책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아끼는가를 북돋아야 하니까. 그런데 농사꾼이고 책꾼이고 밑바탕으로 다스릴 매무새를 잃은 지 오래가 아닌가 싶다. 자꾸자꾸 잃거나 잊는구나 싶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먹고살아야 하기에 얄궂은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만, 우리 사회와 틀거리가 워낙 사람을 팔푼돌이로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금세 돈에 지고 만다. 아니, 금세 돈에 젖어들고 만다. 이리하여, 농사꾼치고 돈 되는 곡식을 안 심는 사람이 없다. 책마을 일꾼치고 돈 되는 책을 안 내려는 사람이 드물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마을 터전 땅과 물과 바람에 걸맞게 곡식을 즐겨 심는 한편,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만큼’ 심었다. 요사이는 돈이 되는 고추며 담배며 인삼이며 가리지 않고 심는다. 능금이랑 배랑 복숭아랑 참외랑 수박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더 벌도록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를 심어 가꾼다. 어느 시골이든 ‘아무개 마을 고추가 으뜸이다’라느니 ‘우리 마을 능금이 으뜸이다’ 하고 내세우는데, 정작 따지고 보면 ‘고추로 이름나지 않은 마을’이나 ‘능금으로 이름나지 않은 시골’이 있을까. 있으려나. 있을 수 있겠는가. 더 돈을 벌도록 농사를 지으려 하니까 자꾸자꾸 풀약을 치고 비료를 준다. 비닐농사를 지을밖에 없고, 비닐농사를 지은 다음, 이 비닐을 그냥 땅에 파묻거나 태우고 만다. 비닐이 땅에 묻히면 어떻게 된다고 돌아보지 못한다. 비닐을 태울 때에 어찌 되는가를 살피지 않는다.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먹은 곡식이 우리 몸에 어떻게 스며들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오늘날 출판사들 매무새를 곱씹어 본다. 요즈음 출판사들은 돈 되는 책이라면 서로 다퉈 가면서 낸다.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 대로 선인세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갖다 바치면서 수없이 많은 광고를 퍼부으면서 마구마구 팔아치운다. 그런데, 이렇게 수없이 많은 광고를 퍼붓고 어마어마한 돈을 갖다 바친 책을 오늘날 사람들은 잘도 사 읽어 준다.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이런 진흙탕 싸움을 더 거칠게 한다. 홈쇼핑에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값싸게 책을 집어넣어 동네책방이 싸그리 문을 닫게 내몰 뿐 아니라 어린이책 전문책방마저 문을 닫게끔 몰아세운다. 뜻있다는 출판사라 해서 ‘홈쇼핑 책넣기’를 안 하는가? 한때는 홈쇼핑을 손가락질하던 뜻있다던 출판사들이 하나둘 홈쇼핑으로 돌아서는 한국 책마을이다. 이 가운데에도 돈 많은 몇몇 출판사들은 나라밖에서 나온 ‘좋다고 하는 책’을 서로 웃돈 주고 사들인다. 좋다는 책을 내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 우리는 좋다고 하는 책을 내기도 해야 할 텐데, 우리 힘으로 이 나라 사람들과 살가이 나눌 새로운 좋은 책을 차근차근 함께 내놓아야 한다. 이러다 보니, 웬만한 출판사마다 어린이책 안 내는 곳이 드물며, 이제는 “우리는 인문교양서를 냅니다!” 하고 외치기까지 한다. 어린이책을 내놓는 일이 나쁘다거나 인문교양서를 낸다고 외치는 일이 글러먹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여태까지는 어린이책을 하찮게 깔보았을 뿐 아니라, 어린이책은 ‘어리숙한 책’이라고 업신여기까지 했으면서, ‘이제 어린이책이 꽤 돈이 된다’ 싶으니 너도 나도 게걸스레 달겨드는 모습이 불쌍하다. 참으로 어린이책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든지, 어린이책을 내놓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알면서 어린이책판에 뛰어드는 ‘이름나거나 손꼽히는’, 그러니까 ‘어른책만 내며 이름나거나 손꼽히던’ 출판사로 어느 곳을 들 수 있을까. 나로서는 어떠한 ‘어른책만 내던 이름난 출판사’도 참답고 착하며 곱게 어린이책을 만든다고 느낄 수 없다. 또한, 온누리 어떤 책이 ‘인문교양서’가 아닌가.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인문교양서이다. 어른책이든 어린이책이든 인문교양서이다. 요즈음 수많은 출판사들이 떠벌이는 ‘인문교양서’라는 이름은 “아무 책이든 돈이 된다고 하면 가리지 않고 내겠다”는 꿍꿍이를 허울좋게 뒤집어씌운 껍데기라고 느낀다. 큰 틀로 보았을 때 ‘교육’이면 교육, ‘환경’이면 환경, ‘어린이’면 어린이, ‘철학’이면 철학만 곧게 낼 수 있는 줏대와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이렇게 책을 내놓으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는 모든 책은 ‘어린이책이면서 어른책’이요 ‘하나같이 아름다운 인문책’으로 뿌리를 내린다. 어쩌면, 책도 물건인 만큼 책을 팔아야 먹고산다 할 만할 뿐더러, 먹고살 생각으로 책을 만들겠다 밝힐 수 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 참말 돈을 바라고 이름을 바라며 힘을 바란다면, 책 말고 다른 것을 만들면 되지. 책 만들어 얼마나 커다란 돈을 번다고 그러나. 책이 뭐 로또복권인가. 농사짓기가 무슨 로또복권인가. 책이든 농사이든 삶이다. 하루하루 소담스러우며 아름다운 삶이다. 날마다 고마우며 즐거운 삶이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 넋을 북돋우는 삶인 농사짓기요 책만들기로 거듭나야 한다. 농사다운 농사를 짓고, 책다운 책을 일구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되어야 한다. (4338.5.24.불.처음 씀/4343.11.8.달.고쳐씀.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임영균 인물사진
임영균 / 안그라픽스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사진은 ‘기록하는 문화유산’이 아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4] 임영균, 《임영균 인물사진 1980∼1993》(안그라픽스,1993)



 제아무리 연출을 잘하거나 ‘한때’를 잘 담았다 할지라도 ‘느낌이 살게’끔 ‘오늘까지 살아온 사람이 내 앞에 즐겁고 기껍게 서 주었’기에 사람사진을 얻습니다. 한 사람이 나한테 다가와 주기까지 기다릴 뿐 아니라 내 눈과 손과 머리와 가슴과 몸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름난 사람을 찍는다고 해서 좋은 ‘인물사진 작품’이 되지 않고, 내 동무나 식구나 이웃을 찍었다고 해서 ‘보잘것없는 흔한 공산품’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쟁이 임영균 님 사진책을 돌아보며 생각합니다. 임영균 님은 조금 더 기다리며 당신 삶을 가다듬었다면, 찍힌 사람들 삶자리와 눈물과 웃음을 한결 깊이 나누어 받으며 보여줄 수 있지 않았겠느냐 싶군요.

 찍힌 사람이 그때 그곳에서 그 모습으로 마주해 주었기에 얻는 사진인 한편, 찍는 사람 또한 그때 그곳에서 그 손길로 사진기 단추를 눌러 주었기에 빚는 사진입니다. 옳은 소리이지요. 그러면, 임영균 님이 그때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임영균 님한테서만 느낄 수 있는 삶이야기는 어느 만큼 담았다 할 만한가요. 그때 그곳에 임영균 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이이는 어떠한 사진을 어떻게 담았을는지요. 임영균 님이 바로 그곳 바로 그때 그 손길로 사진을 찍으며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임영균 님 삶과 넋과 말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으로 영근 《임영균 인물사진 1980∼1993》일는지, 다른 어느 사진쟁이라 하더라도 이와 마찬가지로 담을 만한 사진일는지 궁금합니다. 또는, 다른 사진쟁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새삼스레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렸을는지 더욱 궁금합니다.

 이 사진책 《임영균 인물사진 1980∼1993》을 들여다보는 내내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기 힘들었니다. ‘임영균이라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는구나. 그러면 임영균이라는 사람은 사진을 어떻게 찍는가?’ 하고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저절로 묻어나는 삶이야기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진에 찍혀 준 ‘미국에서 살며 일하는 예술쟁이’들 매무새와 몸짓과 이야기만 살며시 보이는데, 이 또한 이 사진에 담긴 사람들을 일컬어 예술쟁이라 하니까 예술쟁이로구나 하고 여기지, 이런 말을 붙이지 않는다면 이들이 예술쟁이인지 아닌지조차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학습, 교훈, 느낌, 추상, 이미지, 표현, 기교, 구도, ……도 틀림없이 잘 헤아리며 가누어 사진을 일굴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목소리도 내고, 내 꿈도 밝히며, 내 세상읽기를 드러내는 사진예술을 즐길 노릇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어 문화를 빚는다 할 때에는, 사진 한 장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인 내 삶이 고이 녹아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진찍기로 새로운 삶을 살피거나 헤아린다 할 적에는, 사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넋을 조곤조곤 곰삭이는 살림꾼 땀방울이 깃들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내 삶을 고이 녹이지 않으며 단추만 누를 때에는 사진이 아니요 작품 또한 아니며 삶이나 이야기조차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사진이란 삶이야기를 담아 보여주는 수많은 갈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 한 장 얻는 일이란 내 아이이든 이웃집 아이이든 살가이 손 마주잡으며 신나게 놀며 얻는 웃음 한 조각과 같습니다. 사진 한 장 만드는(만들 수 없다고 느낍니다만) 일이란 내 살붙이하고 날마다 먹는 밥을 차리려고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쌀을 씻어 불린 뒤 안치는 한편 갖은 밥거리를 마련하려고 바삐 손을 놀리며 늘어나는 주름살이나 날마다 살붙이들이 입는 옷을 빨고 널고 개고 하면서 새삼스레 돋는 굳은살과 같습니다. 사진 한 장 거저로 얻지 않습니다. 사진 하나 그냥 얻을 수 없습니다.

 사진찍기가 되든 그림그리기가 되든 글쓰기하고 한동아리입니다. 글쓰기를 할 때에 ‘글을 쓴 사람이 잘나’서 좋다는 글 하나 태어나는 일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글이든 ‘글로 쓴 사람 또한 틀림없이 대단하다’ 할 만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 쓸 만한 이야기거리와 삶자락을 나 스스로 살아내며 얻든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마주하며 받아들이든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이 대목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에도 이 대목을 안 헤아리는 사람이 꽤 많고요. 혼자 잘나서 얻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은 없고, 홀로 대단히 많이 배우고 무척 오래 배워서 놀라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태어나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듯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 글을 여미고 그림을 다듬으며 사진을 어루만집니다. 어머니가 내리사랑 아이를 다 키워 놓고 씩씩하게 제금나도록 떠나보내듯,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이들 문화나 예술을 키운 사람은 내 손에서 홀가분하게 떠나보냅니다.

 임영균 님은 《임영균 인물사진 1980∼1993》을 내놓으며 말합니다. “흔히들 사진은 기계 예술이라고 말하지만, 사진이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겠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시선이 우선 있어야 그 다음에 그것을 매개로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후기).”고.

 이 말씀은 아주 틀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갱이를 ‘바라보’지 못할 뿐더러, 알맹이를 ‘느끼지’ 못하는데다가, 빛과 그림자를 ‘깨달’아 ‘삭여’ 내지 못합니다.

 누구나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보지 않는 목숨은 없습니다. 장님이라 해서 무엇인가를 안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어떠한 목숨이든 다른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늘 무엇이든 바라보지만, 이렇게 늘 바라보는 무엇 가운데 ‘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춤이나 노래나 연극으로 담아낼 만한’ 어느 한 가지를 어떻게 추리거나 고르거나 가리려나요. 바라보는 무엇 가운데 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다시 보여주거나 새롭게 곰삭이고자 한다면, ‘바라보는 무언가를 느껴야’ 하고, 바라보는 무언가를 느끼려면, 내가 바라보는 무언가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어떻게 이어져 왔고 어찌어찌 살아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를 안다는 일은 지식이 아닌 ‘삶’입니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살든, 서로 이웃으로 지내든,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면서 살가운 나날을 보내든 하면서 ‘삶 한 올 두 올 풀어내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아로새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바라보는 삶을 사진으로 담는 손길’을 마무리합니다.

 임영균 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내가 그들을 사진관 스튜디오가 아닌 그들이 주거하고 있는 집이나 작업장 혹은 그들이 즐겨 거닐던 거리에서 촬영하기를 고집하는 것은, 오늘의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사진에 함께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세기 후에는 오늘날의 기록사진 혹은 풍속도가 문화유산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록사진 중에서도 특히 인물사진에 내가 매료된 것은 나 자신이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소박한 심정의 발로였다(후기).”

 사진을 찍는 분이라면 누구나 잘 알아야 합니다. 사진관에서 찍는다고 기록사진이 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돌아보면서 지난날 어느 때에는 사진관이 이렇게 생겼고, 이런 모습을 뒤로 놓고 사진을 찍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예술쟁이 일터에서 찍든 예술쟁이가 거닐던 길거리에서 찍든 똑같이 그때에는 그러했네 하고 헤아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기록이 되리라 생각하며 기록하는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처음부터 기록이 되지 않습니다. 한자를 조금 다르게 적어 ‘기억사진’은 됩니다. ‘지난날 내가 사귀던 사람을 떠올리는 사진’은 될 테지요. 그렇지만 ‘지난날 사람들 발자취가 이러했구나 하고 적바림하는 사진’은 되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는 분이라면 으레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찍은 사진 한 장은 뒷날 문화유산이 되지 않으며,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찍은 사진 한 장은 오늘 하루 사진을 함께 찍어 즐거운 삶입니다. (4343.11.8.달.ㅎㄲㅅㄱ)


― 임영균 인물사진 1980∼1993 (임영균 사진·글,안그라픽스 펴냄,1993.9.1./판 끊어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에 그림 그리지 말라 해도 꼭 책에 뭔가를 그리거나 죽죽 긋는 돼지. 아이구...

- 2010.11.6. 

 

 책에 뭔가 아주 조그맣게 동그라미를 그리는 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이 져야 할 시월 끝물에 피어난 꽃. 기차길에 꽃이 피는 줄 누가 알고 있을까. 

- 2010.10.28. 인천 중구 신흥동3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Love & Free 러브 앤 프리 : 자, 떠나버릴까? - 다카하시 아유무, 전설의 세계 방랑 노트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을 알면 사진찍기는 늘 즐겁다
 [찾아 읽는 사진책 3] 다카하시 아유무, 《LOVE&FREE》


 잘 팔리는 사진책은 몹시 드뭅니다. 제법 팔리는 사진책을 살피면 이른바 ‘정통 사진책’이라 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정통이든 아니든 똑같은 사진책이고, 한결같이 사진을 이야기합니다.

 가만히 보면, 아직 이 나라에는 ‘참 좋다 싶은 정통 사진책’이 그리 많이는 안 나왔습니다. 나라밖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무척 좋다 싶은 정통 사진책’ 가운데 한국말로 옮겨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살가도라든지 쿠델카라든지 브레송이라든지 드와노라든지 앗제라든지 스티글리츠라든지 아담스라든지 할스만이라든지 …… 한글판으로 알차게 엮은 책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해적판으로 나온 책이 더러 있고, 아주 조그맣게 나온 번역책이 있기는 하지만, ‘사진을 배우는 길에서 아름다운 스승이 된다’는 사람들 작품책은 거의 나오지 못합니다. 팔리기 힘들고, 판권을 사 오자면 돈이 많이 든다는 아우성만 들립니다.

 이 나라에도 문화부가 있고 지역마다 문화재단이 있습니다(없는 곳도 많습니다만). 문화재단이 없더라도 시나 군마다 문화 정책을 다루는 부서가 있습니다. 개인 출판사에서는 돈이 모자라 힘들다면, 시나 군이나 문화부에서 따로 출판사를 차려서 ‘나라 안팎 빼어난 정통 사진책’을 펴내면 됩니다. 사진책 하나 내는 데에 돈이 꽤 많이 든다지요? 그렇지만 해마다 거님길 돌 갈아치우는 데에 쓰는 돈 가운데 1/100만 들여도 해마다 100권이 넘는 놀라운 ‘정통 사진책’을 펴내고 남습니다. 이렇게 펴낸 사진책을 도서관과 학교마다 한 권씩 거저로 줄 만큼 이 나라 건설과 토목과 행정은 엉뚱한 데에 돈을 흘립니다.

 일본사람 다카하시 아유무 님 글과 사진으로 엮은 《LOVE&FREE》를 읽습니다. 2010년 9월에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2002년 판은 책값이 8400원인데 2010년 판은 외려 400원 내린 8000원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예전 책을 펼칩니다. 아유무 님은 처음부터 “돈은 조금 부족하지만 시간만은 무한대로 있는 여행(15쪽)”을 즐기겠다고 밝힙니다. 그래요. 여행이든 동네마실이든 삶이든 ‘돈이 넉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마음껏 즐기면 됩니다. 다달이 오백만 원쯤 벌어야 살 만하겠습니까. 달마다 이백만 원을 벌거나 백오십만 원을 벌면 어떠하지요? 한 달에 오육십 만 원 벌이로는 너무 빠듯한가요? 그러나, ‘돈이 없어’도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모자란 대로 오순도순 지낼 만합니다. 내 아이한테 십만 원짜리 옷을 사 주어야 사랑이겠습니까. 내 옆지기한테 이십만 원짜리 치마를 사 주어야 믿음이 되나요. 텃밭에서 가꾼 무를 뽑아 무채를 만들고 무국을 끓여도 사랑입니다. 돈은 한푼 없으나 아이를 품에 안으며 실컷 놀아도 믿음이에요.

 책 첫머리에서 아유무 님은 당신 넋을 거듭 밝힙니다. 이러한 다짐과 넋이 아름답기에, 《LOVE&FREE》라고 하는 ‘정통 아닌 사진책’이 널리 사랑받을 만하며, 참으로 두루 사랑받는구나 싶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어루만지기보다 한 사람의 가슴을 도려내듯 절절한 표현을 하고 싶다(25쪽).”는 마음가짐으로 “사야카의 웃는 얼굴이 좋다. 무엇인가 끄적거리기 전에 우선 이 여자를 즐겁게 해야지(27쪽).” 하고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믿는 두 사람은 길을 떠날 즈음 “사는 것이 예술이다(26쪽).” 하고 느낀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첫머리에 이렇게 말을 할 줄 안다면 굳이 끝까지 읽지 않아도 이 책 《LOVE&FREE》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알 만합니다. 삶이 곧 예술이라면 사진이 바로 예술이며, 글이 곧바로 예술입니다.


.. 미처 몰랐기에 신선하다 ..  (53쪽)


 아직까지 한국사람은 “아는 만큼 본다”는 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사람은 “아는 만큼 보려”고 발버둥입니다. 입문책을 보고 기술책을 보며 참고서를 뒤집니다. 여행 길잡이책이라든지 사진 새내기책은 하나같이 자잘한 손재주와 지식덩어리를 다룹니다. 여행을 하는 마음이나 사진을 찍는 가슴을 다루지 못해요. 나들이를 즐기는 넋이랑 사진을 사랑하는 얼을 보여주지 못해요.

 아유무 님과 짝꿍이 일군 《LOVE&FREE》는 ‘알면 아는 대로 좋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새삼스러우며 싱그러운’ 삶을 즐깁니다. 따지고 보면, 안다고 해 보아야 무엇을 어느 만큼 어떻게 안다 할 수 있나요. 신라를 알고 신라 불상을 안다 하면 신라랑 신라 불상을 얼마나 잘 안다 할 만한가요. 경주를, 안동을, 제주를, 춘천을, 평양을, 백두산을, 하늘못을, 한라산을, 속리산을, 태안을, 부석사를, 해남을, 광주를 …… 사람들은 어느 만큼 어떻게 무엇으로 안다고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피사체가 무엇이든 혹은 누구이든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찍혀 주셔서 고마운’ 것이 아닐까(75쪽).” 하고 비로소 느끼는 아유무 님입니다.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틈틈이 나오는 수많은 ‘정통 사진책’을 비롯하여 ‘만듦사진(메이킹포토)’을 보여주는 숱한 몸짓은 아직까지 ‘찍히는 사람과 사물과 자연한테 고맙다고 느끼는 마음밭’이 지나치게 얕지 않나 싶어요. 찍혀서 대단한 사진이란 없거든요. 찍혀 주어 대단한 사진이랍니다. 찍어서 놀라운 사진이란 없습니다. 찍혀 주었기에 놀라운 사진입니다.

 이리하여, 이런저런 사진쟁이와 여행쟁이가 인도라는 나라를 다녀오며 찍은 사진이 왜 한결같이 볼품없거나 볼썽사나운가를 일깨우는 한 마디가 톡 튀어나옵니다. 한국땅 사진쟁이와 여행쟁이가 이 대목을 잘 깨우치며 삭일 수 있을 때에, 한국땅 사진쟁이 작품과 여행쟁이 이야기를 나라 안팎에서 살뜰히 즐기며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유무 님은 “나는 지금까지 편파와 왜곡으로 일그러진 필터를 통해 인도를 보아 왔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길에서 자는 것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 길에서 호젓한 낮잠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냈다 … 인도에는 슬픔과 아픔 대신 수천 년의 역사가 만들어 낸 ‘현실’과 ‘미래’가 있을 뿐이다(70∼71쪽).” 하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말하고 느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아름답고,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대로 멋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모자라고,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대로 꾀죄죄해요. 무엇이 있고 없고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됩니다. 삶을 바라보면 돼요. 사람을 사람다이 마주하면서 내 사랑을 고이 나누면 넉넉해요. “많이 읽을 필요는 없어. 한 권의 책이라도 책장이 뚫어질 때까지 읽어 보렴. 그 편이 진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145쪽).”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면 됩니다.

 사람을 많이 사귀면 더 좋을까요? 사람을 더 많이 사귀면, 더 많은 사람을 사귀면, 아는 사람이 많아 내 손전화 기계에 천 사람 넘는 전화번호가 담겼으면 ‘좋은 벗이 많다’ 말할 수 있나요. 인간문화재를 백 사람 취재해서 사진책 하나 내놓으면 그럴싸할는지요? 인간문화재라는 분 가운데 다문 한 사람만 마주하면서 이이 한 사람 삶을 가까이 사귀어 살붙이가 되면서 내놓는 사진은 어떠한가요. 인간문화재가 아니면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동네 이웃 한 사람을 서른 해나 마흔 해 사귄 이야기를 사진하고 글로 엮어서 내놓으면 어떠할까요. 제주 올레길은 멋들어지고, 우리 동네 골목길은 하찮은지요. 서울 북촌은 멋스럽고 우리 동네 골목집은 지저분하나요. 영화배우 아무개는 잘생겼고, 우리 할아버지는 못생겼을까요. 여행쟁이 한비야 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내 어머니와 내 언니와 내 동생과 내 동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얼마나 되는가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다 함께 연속극을 본 적 말고, 텔레비전이 없는 조용한 방에서 커피 한 잔이든 찬물 한 잔이든 앞에 놓고 한두 시간 신나게 수다를 떨어 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요.


..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 아래였다 ..  (202쪽)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멋스럽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을 담은 듯 사진을 찍는들, 싯말처럼 보이는 글을 펼친들 뭔가 남다르다 할 수 없어요. 그예 살아가는 내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내면서 따사롭고 부드러이 꼭 감싸안을 수 있으면 됩니다. 멋스럽지 않아도 좋은 사진이요, 남다르지 않아도 기쁜 글입니다. 훌륭해 보여야 하는 사진이 아니고, 재미있어야만 하는 글이 아닙니다. 파란하늘을 어깨동무하며 즐길 줄 아는 몸가짐이면 됩니다. 푸른 들판에서 호미와 낫을 들고 땀흘려 일할 줄 아는 발바닥이면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어 밥을 안친 다음 국 한 그릇 구수히 끓여 살붙이랑 배불리 먹을 줄 아는 살림꾼 꾸덕살이면 됩니다. 날마다 아기 기저귀를 빨아 빨랫대에 널어 놓고 나서, 이 빨래들이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는 느낌을 사진으로 한 장씩 담거나 글로 한 줄씩 적바림해 놓아도 좋아요. 이렇게 즐기는 사진 한 장과 글 한 줄이 차곡차곡 모이면 빛깔 고우며 냄새 그윽한 삶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4343.11.7.해.ㅎㄲㅅㄱ)


― LOVE&FREE (다카하시 아유무 글·그림,차수연 옮김,동아시아 펴냄,2002.8.1./8000원·2010년 9월에 ‘에이지21’에서 고침판으로 나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