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먹는 마음


 감알을 밥상에 올려놓는다. 옆에 쟁반이 보여 쟁반으로 다시 옮긴다. 감알은 열두 알이 작은 쟁반에 꼭 찬다. 세 알을 더 놓아야 해서 두 알을 위에 얹는다. 아이는 옆에서 아빠를 지켜보며 저도 한 알을 위에 얹는다. 그러고 이듬날 아침, 아이는 아직 잠들어 있다.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며 글쓰기를 하던 아빠는 감알을 두 알 먼저 먹는다. 한 알을 더 먹을까 하며 어느 알을 먹을까 헤아린다. 먼저 먹은 두 알은 생채기가 있던 감알. 이제부터 먹을 감알에는 생채기가 하나도 없다. 조금 큰 알? 살짝 작은 알? 아이가 한입에 먹을 작은 알을 남길까? 아이한테 큰 알을 먹으라고 할까? 음, 열세 알이 있으니 아빠가 큰 알을 먹고 열두 알을 남길까? 오늘은 아빠가 큰 알을 차지해 볼까? 아이는 으레 더 큰 알을 제가 차지한다. 아빠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에 아이 또한 이렇게 하는지 모른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도, 또 아이가 보지 않는 뒤에서도, 아빠가 조금 더 작은 알을 골라서 먹어야겠다. (4343.10.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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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그스름 감알


 발그스름 감을 열다섯 알 얻다. 감알은 발그스름한 빛깔인데 열다섯 알이 모두 조금씩 다르다. 똑같은 빛깔인 감알은 하나도 없다. 가을녘 감나무를 올려다보면 감잎 가운데 같은 빛깔인 잎새는 하나도 없다. 감잎이든 감알이든 저마다 다 다른 크기요 모양이요 빛깔이다. 더욱이, 이 발그스름 감알을 살짝 깨물어 먹노라면 감알마다 맛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내 삶으로 스며드는 책을 돌아볼 때에도 똑같은 줄거리 똑같은 이야기 똑같은 글넋 똑같은 흐름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다 다른 삶 다 다른 넋으로 다 다른 아름다움을 이루어 낸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알을 따서 맛을 볼 때하고, 일찌감치 따 놓고 저온창고에서 삭여 낸 예쁘장하고 거의 똑같이 생긴 감알을 저잣거리에서 사들여 맛을 볼 때에는 몹시 다르다. 저잣거리에서 파는 감알, 그러니까 저온창고에서 삭여 낸 감알은 어느 감을 맛보든 매한가지이다. 이 감알도 감나무에서 땄고, 이 감알을 딴 감나무는 땅에 뿌리박으면서 햇살과 흙과 물을 받아먹었을 텐데, 이 감알을 먹으면서 자연을 먹는다고 느끼지 못한다. 내 삶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책을 헤아릴 때에는 으레 어슷비슷하다고 느낀다. 한결같이 얕으며 돈내음이 물씬 난다. 나로서는 얕은 책 돈내음 책 어설픈 글치레 책은 읽을 수 없다. 이런 책까지 읽느라 내 고운 삶을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감나무에서 저절로 발갛게 익는 감을 그때그때 따서 먹을 때에는 감나무한테 고맙다는 말을 코앞에서 건네며 고개를 숙인다. 가지를 붙잡고 감알을 따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마디씩 꼬박꼬박 한다. 나한테 고맙게 감알 하나 베풀어 주는 감나무한테 풀약을 친다거나 비료를 준다거나 항생제를 먹인다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올해부터 만들고 있는 거름통에서 이듬해부터는 거름을 퍼서 줄 수 있겠지. 올해 감알 고맙게 얻어 먹었으니, 우리 식구 똥오줌을 잘 삭여서 감나무하고 흙한테 돌려주어야지. 내 삶으로 스며드는 책을 장만할 때에는 책값을 오롯이 치른다. 새책은 새책대로 제값을 꼬박꼬박 낸다. 헌책은 헌책대로 헌책방 일꾼이 흘린 땀방울에 값할 수 있도록 주머니를 턴다. 내 몸 살찌우는 밥이 고맙고, 내 마음 북돋우는 책이 반갑다. (4343.10.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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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ングリ山のやまんばあさん (單行本)
도미야스 요코 / 理論社 / 200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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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집으로만 나온 <눈사람의 비밀>이라서 '마이리뷰'로 못 올린다. 그러나 아직 번역이 안 된 '오오시마 다에코' 님 그림책이 제법 있어, 이분 그림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그림책에 걸쳐 놓는다. 한결 깊고 살가이 우리 삶으로 스며들 수 있다면, 그림책 맛과 멋이 좀더 그윽하지 않으랴 싶다.


 눈겨울 기다리는 마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 가도노 에이코(글)+오오시마 다에코(그림), 《눈사람의 비밀》


 지난 10월 26일 아침, 우리 산골마을에도 얼음이 얼었습니다. 꽝꽝얼음은 아니고 살얼음입니다. 오늘도 살얼음이 얼었고, 들판과 멧자락에는 서리가 곱고 넓게 내렸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는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집 꽃그릇이나 텃밭에 앙증맞게 내려앉은 서리를 보았습니다. 서리가 아스팔트 길바닥에 내린다든지, 거님길 돌바닥에 내려앉는 모습은 거의 못 봅니다. 그러나 도시 어디에나 잔뜩 서 있는 자동차 지붕에 하얗게 깔린 서리는 자주 봅니다.

 자동차 지붕에 내려앉는 하얀 얼음조각을 서리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똑같은 자연 움직임이니 서리가 아니라 할 수는 없을 텐데, 자연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뿐더러, 아예 자연을 잊거나 잃으며 살아가는 도시라는 터전이거든요. 자동차 지붕에 앉는 얼음조각을 볼 때면 이 얼음조각은 서리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으랴 싶곤 합니다.

 이제 울긋불긋한 가을잎으로 저무는 철이 지나고 나무마다 빈 가지가 될 무렵에는 차츰 눈바람이 불 테지요. 때때로 눈보라가 치기도 할까요. 눈은 없이 매서운 추위인 강추위가 몰아닥치려나요. 해가 갈수록 날씨는 자꾸 미쳐 가니까요. 미쳐 가는 사람한테 걸맞게 사람들이 느껴야 할 날씨는 나날이 뒤죽박죽이 되어 가니까요.

 그림책 《눈사람의 비밀》을 봅니다. 이 그림책은 낱권으로는 나오지 않고 전집으로만 나온 터라 여느 새책방에서는 따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더는 찾아보기 힘들기까지 합니다. 헌책방에서 겨우 찾아보는데, 헌책방에서도 낱권으로는 장만하기 힘듭니다. 전집으로 묶어 서른 권인가 마흔 권을 한꺼번에 장만해야, 이 가운데 1번으로 나온 《눈사람의 비밀》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용케 낱권으로 하나 흩어진 이 책을 만났습니다.

 《눈사람의 비밀》이라는 이름이지만, 눈사람한테 비밀이 있다기보다, “비밀 눈사람”이라 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눈사람들이 깊은 밤이 되면 조용히 일어나 저희끼리 공차기를 비롯해 온갖 놀이를 즐기거든요. 어쩌면 “눈사람한테 있는 비밀”이라든지 “눈사람한테 비밀이 있어요”라 해 볼 수 있겠지요. “비밀스러운 눈사람”이라든지요.

 차츰 눈 구경이 힘든 만큼 이 그림책에 눈이 갑니다. 눈 구경이란 아득한 옛날 일처럼 가물가물해지기에, 아빠(또는 엄마)랑 눈사람을 함께 굴리며 손이 얼얼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그림책에 손이 갑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때, 눈을 뭉치자면 장갑을 끼고는 잘 안 되었습니다. 으레 장갑을 벗은 맨손으로 눈을 뭉치거나 굴렸고, 한동안은 맨손으로 눈을 뭉칠 때에 참 잘 뭉쳐진다고 느낍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손가락 끝부터 쨍 하고 뜨끔합니다. 이러면서 손가락 온 마디와 손바닥까지 후끈후끈 달고, 사타구니까지 조입니다. 다시 장갑을 끼어도 아픔은 가시지 않습니다.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고 아야 윽윽 하며 두 팔을 오므려 가슴에 대고 두 손을 살살 어루만지고 비빕니다. 장갑을 낀다고 따스하지 않으니 다시 장갑을 벗습니다. 얼어붙은 맨손을 서로 덜덜 떨면서 쓰다듬습니다. 손가락에 따시 따순 피가 돌 때까지 옴쭉달싹 못합니다. 조금 손이 풀렸다 싶으면 허벅지 사이에 두 손을 넣고 콩콩 뛰거나 새우처럼 등을 구부립니다. 이렇게 몇 분을 앓으면 드디어 손이 풀려 히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그런 다음 또 눈을 뭉치는데, 장갑 낀 손으로는 도무지 눈 뭉치기가 안 되어 또다시 장갑을 벗으며, 얼마 뒤에 똑같은 뜨끔함과 아픔을 거듭 겪습니다.

 어릴 때에는 잘 몰랐습니다. 왜 장갑 낀 손으로는 눈을 뭉치기 어려웠는지, 왜 맨손으로는 눈을 잘 뭉칠 수 있는지. 장갑 낀 손으로는 눈을 모으기까지는 좋으나, 맨손일 때에는 따스한 손이 눈을 살짝 녹이면서 눈이 한결 단단히 뭉쳐집니다.


.. “자, 눈을 모아서 조그만 눈덩이를 만들자.” 아빠가 말했어. 나는 두 손으로 눈을 뭉쳤어. 아, 손 시려. 손가락이 얼얼했어 ..  (6쪽)


 여름은 덥습니다. 겨울은 춥습니다. 봄은 따뜻합니다. 가을은 시원합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은 서로 다른 철이요, 서로 다른 네 철이 골고루 흐르며 찾아오는 동안 우리 몸과 마음은 찬찬히 튼튼해지고 씩씩해지며 무르익습니다.

 따뜻하기만 한 나라에서 살아가도 좋을 테고, 시원하기만 한 나라에서 살아가도 좋다 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따뜻하기만 한 나라는 파리와 모기가 많습니다. 시원하기만 한 나라는 곡식이 잘 여물지 못합니다. 더우면 싫고 싫으면 괴롭다지만,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하면서 땅과 해와 바람과 물이 어우러질 때에 뭇목숨과 뭇사람이 즐거우며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에는 따뜻한 날씨에 걸맞게 따뜻한 이야기가 있고, 더운 여름에는 더운 날씨에 알맞게 더운 이야기가 있으며, 시원한 가을에는 시원한 날씨에 알맞춤하게 시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추운 나날에 들어맞는 추운 이야기가 있어요. 추운 겨울에만 느낄 수 있고, 추운 나날에만 겪을 수 있으며, 추운 나날에만 즐길 수 있는 일과 놀이가 있습니다. 추운 나날에는 멧자락 작은 집에 꽁꽁 틀어박혀서 살붙이하고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더 가까이 보듬으면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겨울이 닥쳐 오면 빨래하기가 한결 힘듭니다. 빨래를 하자면 손이 시리고 얼어붙으니까요. 기름을 때어 보일러를 돌리면 따순 물을 얻어 쓰니 손이 얼어붙지는 않는데, 한낮 살짝 따뜻할 때를 잘 맞추어 빨래를 신나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말리기 어렵습니다. 겨울날 겨울빨래를 하며 봄을 기다립니다. 겨울에는 이불 빨래를 하기 힘드니까, 봄이 되어 신나게 이불 빨래를 꾹꾹 밟으면서 마당에 척척 널어 놓을 일을 꿈꿉니다. 올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면 우리 아이도 한 살을 더 먹을 테니, 이제는 이불 빨래를 할 때에 발로 눌러 주는 힘이 더욱 세겠지요. 또 새 겨울을 맞이하고 나서 다시금 새 봄을 맞이한다면, 그때에는 우리 아이가 이불 빨래에서 제법 한몫 할 수 있으려나요.


.. 눈사람들이 다시 걸어가고 있어. 하늘을 보고 노래를 부르면서 말야 ..  (28쪽)


 올해 겨울에는 얼마나 눈바람이 불고 눈누리가 이루어질까 기다립니다. 우리 산골마을에는 얼마나 눈이 찾아들어 버스며 짐차며 다니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안 생길까 궁금합니다. 온통 눈밭이 되면 어린 딸아이는 마음껏 소리지르고 노래부르며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고, 어쩌면 우리 집 마당이나 문간이나 한길에 눈사람 둘 세워 놓을 만큼 눈이 펄펄 찾아들는지 모릅니다. 겨울다운 겨울이 찾아와 달라고 비손합니다.

 그림책 《눈사람의 비밀》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내아이가 제 아빠랑 공차기를 하며 노는 꿈을 꾸는데, 사내아이랑 아빠가 아닌 계집아이랑 엄마가 솔솔 내리는 눈을 가만히 그러모아 눈사람을 만들며 꿈을 하나 빌었다면 이야기가 얼마나 달랐을까 헤아려 봅니다. 계집아이랑 아빠, 사내아이랑 엄마일 때에는 또 얼마나 다른 꿈을 빌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사내아이이든 계집아이이든 꿈이란 매한가지가 되려나요. 아니면, 눈사람 굴리기는 사내아이만 즐길 놀이가 되려나요.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이 쓴 《초원의 집》을 보면, 어린 계집아이인 ‘로라’는 제 언니 ‘메리’하고 신나게 눈사람을 굴리며 놀았습니다. (4343.10.28.나무.ㅎㄲㅅㄱ)


― 눈사람의 비밀 (가도노 에이코 글, 오오시마 다에코 그림, 고향옥 옮김,웅진닷컴,2000.12.20./판끊어짐,전집으로만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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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담요와 이불을 깔아 놓는다. 겨울이니까. 아이는 이불을 밟으며 뛴다. 좋으시겠구려. 

- 2010.10.27.

   

 덤 하나. 이제 사진 아주 제대로 들여다보며 찍는 모습이 나오는 아이. 아빠 매무새가 꽤 괜찮나 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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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0-10-29 01:06   좋아요 0 | URL
참 귀엽네요,
우리딸도 저럴때가 있었는데 ..
처음인사드려요 반갑습니다,

파란놀 2010-10-29 06:43   좋아요 0 | URL
씩씩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면 좋겠어요.
참말 다른 욕심을 낼 겨를이 없어요.
울보 님 딸은 많이 컸나 보네요.
아아...
 

 골목 한켠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 온 작은 가게. 인성상회. 

- 2010.8.14. 인천 동구 송림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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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9 08:47   좋아요 0 | URL
인천은 송도처럼 개발이 잘된곳도 있고 송림동처럼 아직 개발이 안된곳도 있군요.오래전 인천 만수동을 가봤는데 그와 비슷한 분위기네요.

파란놀 2010-10-29 08:57   좋아요 0 | URL
송도는 개발이 '막' 된 곳이지요... 돈을 처발랐는데, 버스도 택시도 거의 없어 다닐 수조차 없답니다... 빌딩만 선 메마른 곳이에요...

송림동 같은 데는 '가난한 사람이 재미나게 살' 수 있는 곳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