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를 이어가는 삶


 많이 알고 있어도 고개숙이고, 거의 모두 알아챘다 해도 허리숙이며, 아마 모조리 안다 할지라도 눈을 감고 귀를 열어 내 모자람을 더 깊이 살피는 가운데 살아갈 수 있으면, 책마다 조곤조곤 살가이 말문을 열며 다가오는구나 싶어요. (4343.10.27.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치고다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8



따뜻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0.25.



  이웃을 믿을 수 있는 삶이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동무를 사랑할 수 있는 삶 또한 몹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풀과 나무를 아낄 수 있는 삶도 그지없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누군가를 믿는 삶도 아름답고, 누군가한테서 믿음을 받는 삶도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삶이나 누군가한테서 사랑받는 삶도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아끼는 삶이든 누군가한테서 아낌받는 삶이든 더없이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아낌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믿거나 사랑하거나 아끼자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넋은 참다워야 하고 내 말은 고와야지 싶습니다. 착한 마음과 참다운 넋과 고운 말로 즐겁게 살아갈 때에 비로소 누군가를 믿거나 사랑하거나 아낄 수 있다고 느낍니다.


  만화책을 고를 때면 언제나 꿈과 사랑을 떠올립니다. 나 스스로 꿈을 그릴 만하고 사랑할 만한 작품을 즐겁게 사들여서 읽자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기꺼이 사랑하는 작품을 기쁘게 읽어 곁님하고 나란히 읽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뒷날 고이 물려주자고 생각합니다.



- “너, 설마 전엔 고양이였니?” “아, 응. 어떻게 알았어?” “바로 오늘 아침에 들었거든.” “뭐, 말하자면 길긴 한데. 내 고향은 지구와는 다른 공간이야. 사람들은 더 이상 육체라는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다툼도 기아도 없느 평화로운 세계.” “천국?” “아니. 아마 우주 어딘가의 진화한 혹성일걸.” (19∼20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첫째 권을 봅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보면서 내 삶을 스스로 얼마나 착하게 꾸리는가를 돌아봅니다. 참다운 사람길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차분히 실린 만화를 읽으면서 내 삶은 내가 얼마나 나다우며 참다웁게 일구는가를 곱씹습니다. 고운 넋을 고이 건사하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펼치는 만화를 ‘둘레에서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들 하나도 못 느낀’ 채 받아들이며 내 삶을 내 손으로 곱게 어루만지는가를 헤아립니다.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오자와 마리 님이 새롭게 선보이는 새로운 꿈과 사랑과 아낌이 듬뿍 배었다고 느낍니다.


  ‘이치고다 씨’라는 이름은 만화 주인공 ‘이온’이 달삯을 내며 살아가는 자취방에 홀로 덩그러니 있던 ‘인형’이자 ‘이 인형에 넋을 담아 목숨을 잇는 다른 별 사람’ 이름입니다.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던 이치고다 씨는 평화롭지 못한 지구별에 어느 날 문득 찾아들면서 메마르거나 팍팍한 모습을 숱하게 마주합니다. 때때로 착하며 고운 사람을 마주할 때에 “고양이는 말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지만, 그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26쪽).” 몸뚱이는 고양이이면서 사람이 하는 말을 하니까, 사람들은 ‘괴물 고양이’라며 놀랍니다. 고양이가 늙어서 죽을 무렵 이치고다 씨는 새로운 몸을 찾아 어느 회사원 아가씨가 어릴 적에 애틋하게 갖고 놀다가 잊어버리고는 내팽개친 인형으로 스며듭니다. 그런데 이 회사원 아가씨는 그저 사탄이라느니 무어라느니 떠들면서 뒤도 안 돌아보며 내빼기만 할 뿐입니다. 이러다가, 텅 빈 삯집에 만화 주인공인 이온이 들어왔고, 이온이라는 젊은 사내는 ‘인형이 말을 하건 춤을 추건’ 딱히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몸이 인형인 이치고다 씨가 “나……, 안은 텅 비었을 텐데.” 하고 말할 때에, 이온이라는 젊은 사내는 “아니야, 이치고다 씨의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잖아(36쪽).” 하면서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압니다. 이리하여 인형에 몸을 맡긴 이치고다 씨는 “맞다. 이온한테도 가르쳐 줄게. 내 비장의 수화. 나는·당신을·좋아·해요. 내일 데이트에서 해 봐(54쪽).” 하면서 제 마음을 살포시 드러내기도 합니다.



- “기껏 수화 가르쳐 줬는데, 쓸 기회가 없었네.” “응, 하지만 뭐, 급할 거 없잖아?” “그래.” ‘이 아인 어리버리하지만, 중요한 건 파악하고 있어.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필요한지.’  (77쪽)



  한국이든 일본이든 날마다 새로운 만화가 수없이 쏟아집니다.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만화를 찬찬히 돌아보면, 으레 치고박으며 다투는 이야기라든지 끝없이 빨려들어가는 풋사랑 이야기라든지 조금 전문가 티를 내는 이야기(이를테면 ‘요리 만화’나 ‘법을 다루는 만화’ 같은)입니다. 따뜻한 품을 보여주거나 너른 사랑을 나누거나 고운 가슴을 열어젖히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우리 삶이 몹시 힘든 나머지 만화를 그리는 분들로서도 따뜻한 품보다는 피 튀기는 다툼판을 그릴밖에 없다 할 만합니다. 내 삶이든 네 삶이든 무시무시한 도시에서 살아남자면 그악스레 엉겨붙거나 모질게 잡아뜯어야 하니까, 이런 굴레에서 홀가분한 채 참사랑과 참믿음과 참아낌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할 만합니다. 돈 없이는 못 산다 하니까 고운 가슴을 섣불리 열어젖힐 수 없겠지요. 나로서는 고운 가슴을 스스럼없이 열지만, 맞은편에서는 뭐 이런 바보 멍텅구리가 다 있나 하면서 금세 등을 치거나 후리기 일쑤잖아요.



- “이치고다 씨도 고향이 그리울 텐데 나만 가는 것도 미안하고, (내가) 시골에서 돌아왔는데 (이치고다 씨가) 집에 없으면 엄청 충격받을 것 같아. 내 고향 보고 싶지 않아?” (89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첫째 권을 보면서 싱긋빙긋 웃습니다. 활짝 웃거나 까르르 웃을 일은 없습니다. 가슴이 저릿하거나 짠할 일도 없습니다. 그예 빙그레 웃으면서 한 장을 넘기고 두 장을 넘깁니다.


  만화라는 틀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한 품으로 감싸며 따뜻한 삶을 그리는 작품이 있다 한다면, 문학 가운데 시와 소설이라는 틀에서는 어떠한 작품이 따뜻할까 하고 되뇝니다. 예술이라는 사진 가운데 따뜻함을 곱다시 펼치는 작품으로 무엇이 있을까 가늠해 봅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어깨동무하며 읽는 그림책 가운데에는 누구 작품이 따뜻한 손길로 피어나는가 하고 갸우뚱갸우뚱 짚어 봅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 문화에서, 우리 터전에서, 우리 사회에서, 우리들은 얼마나 ‘따뜻함’ 한 마디를 간직하면서 사랑하는 나날인지 궁금합니다.



- “슬슬 가야지. 누나가 걱정하겠다.” “정말 그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그럼 누나 결혼도 축하해 줘.” “좋은 사람이면 축하해 줄 거야.” “진짜지?” “그럼.” ..  (113∼114쪽)



  해마다 가을녘이면 스웨덴에서 뽑는 노벨문학상 이야기로 슬며시 시끌벅적합니다. 이제 한국 문학쟁이 가운데에서 노벨문학상 받는 이가 하나쯤 태어나야 하지 않느냐고 들썩입니다.


  어쩌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국 글쟁이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지요. 나라밖으로 한국 문학이 이쯤 된다며 떵떵거리거나 자랑하고 싶을는지 모르지요.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분이 태어난다면 이분 문학뿐 아니라 여러모로 한국 문학밭이 한껏 부풀어오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2010년 노벨문학상이건 2000년 노벨문학상이건 1990년 노벨문학상이건 무슨 대수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2020년 노벨문학상이든 2030년 노벨문학상이든 무엇이 대단할까 알 노릇이 없습니다.


  노벨문학상이 아닌 다른 숱한 문학상 가운데 하나라도 꼭 받아야 할는지요. 문학상이 아닌 이런저런 상장을 하나쯤은 걸쳐야 문학다운 문학이라 손꼽을 수 있나요.


  만화책을 놓고도 무슨무슨 상을 주곤 합니다. 그런데 무슨무슨 상을 받은 만화 작품이야말로 온누리에 가장 빛난다든지 가장 아름답다든지 가장 사랑스럽다든지 가장 거룩하다든지 가장 훌륭하다든지 하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겠습니까.


  만화이든 문학이든, 시이든 소설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춤이든 노래이든 모두 똑같습니다. 내 가슴에 사랑과 꿈을 심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삶을 따뜻하게 즐기면서 나 스스로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나면 아름답습니다. 동무와 이웃하고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하루로 이끄는 책이라면 반갑습니다.



-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야.” “뭐어? 충분히 수상하잖아. 역시 반대야.” “그냥 질투 아니고?” “당연하지! 아냐. 그런 녀석한테는 누나가 아까워. 누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못 돼.” ..  (133쪽)



  날마다 내 몸을 따뜻하며 넉넉하게 채워 주는 고마운 밥 한 그릇과 같은 고마운 만화책을 헤아립니다. 날마다 아침에 새로 쌀을 씻어서 냄비에 불을 넣어 밥을 하는 마음으로 책 한 권을 돌아봅니다. 나부터 이 삶터에서 우리 살붙이하고 먼저 따뜻하게 얼싸안으며 사랑스럽게 잘 살아가자고 생각합니다.



- “음. 행복해.” “맛있어?” “응. 먹어 볼래?” “마음만 받을게.” ..  (156쪽)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하고 나눌 수 있는 한 가지라면, 아마 한 가지뿐일 테고, 바로 사랑입니다. 돈이나 이름값이나 권력을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눌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사랑을 담은 만화책을 읽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랑 이야기를 만화로 누린 뒤, 모레에 찾아올 먼 앞날에는 이 사랑 이야기를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언제나 기쁩니다. 4343.10.30.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금쟁이가 들려주는 물속 생물 이야기 - 여름철 둠벙에서 만난 곤충과 물풀 들의 한살이와 생태 철수와영희 그림책 2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바람하늘지기, 김성수 감수 / 철수와영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골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즐거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 바람하늘지기·노정임·안경자, 《소금쟁이가 들려주는 물속 생물 이야기》(철수와영희,2010)



 우리 집 살붙이는 이제 모두 넷입니다. 어른 둘에 아이 둘인데, 첫째 아이 동생은 어머니 몸속에서 무럭무럭 크고 있습니다. 여느 때에도 집살림은 ­‘살림 잘 못 꾸리는 아버지’가 도맡는데 둘째 아이가 새 누리에 새롭게 발을 디디면 하루하루 얼마나 빠듯하랴 싶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늘 느끼지만 빠듯한 만큼 즐겁고, 고단한 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지치는 만큼 신나며, 벅차는 만큼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 깃든 멧자락에는 이오덕 선생님 뜻을 이어받아 살찌우고자 하는 자그마한 배움터가 있습니다. 이 배움터 이름은 이오덕자유학교입니다. 우리 살림집은 이오독자유학교랑 이웃입니다. 배움터 아이들은 밭에 씨앗을 심든 밭매기를 하든 거두기를 하든 우리 살림집 옆을 지나갑니다. 우리 살림집과 배움터 밭이랑 맞닿아 있어요. 이 때문에 부릉부릉 소리를 날마다 숱하게 듣고,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아침나절에는 이오덕자유학교 아이들이 감 따러 간다고 나서며 살림집 옆에서 조잘거립니다. 첫째 아이는 어느새 이 조잘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신을 얼른 꿰어 신습니다. “언니야?” 하고 소리치며 마당으로 뛰어나갑니다. 어느덧 날씨가 퍽 쌀쌀해 오늘 아침에도 살얼음이 얼었는데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어나가다니. 애 아빠는 부랴부랴 두툼한 겉옷을 챙겨 아이한테 입힙니다. 애 아빠는 빨래를 해서 널고 있었기에, 아이만 먼저 배움터 아이들한테 딸려 보내고 뒤따라 가기로 합니다. 아침에 새로 한 빨래는 널고, 엊저녁에 해 둔 빨래는 걷어서 잘 갭니다. 긴바지를 챙겨 입고 자전거에 아기수레를 붙인 다음 감나무 우거진 집으로 찾아갑니다. 아이는 언니 오빠 틈에서 감따기를 올려다봅니다.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을 보더니 “아빠다!” 하고 외치며 고 조그마한 발로 톡톡 구르듯 걸으면서 다가옵니다.

 배움터 아이들은 선생님이 감 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감을 따려고 장대를 들고 젓는 모습을 그리고, 감나무를 그립니다. 아이들은 저 수많은 가지를 어찌 다 그리느냐고 투덜투덜댑니다. 다른 나무를 그릴 때에도 그렇지만, 감나무를 그리자면 몹시 골이 아프다 할 만해요. 감나무 가지는 참으로 많거든요. 이리 뻗고 저리 뻗은 가지를 그리자면, 감나무와 종이 사이를 쉴새없이 오락가락 쳐다보아야 합니다. 슬며시 아이들 그림을 들여다보는데, 뭐 투덜대기는 하면서 다들 썩 잘 그립니다.

 아침을 안 먹고 집을 나온 아이는 슬슬 배고플 때입니다. 힘들다며 아빠한테 안기려 들기에 “자전거 탈까?” 하고 묻습니다. 아이는 “응, 자전거.” 하고 말합니다. 언니와 오빠와 선생님 들한테 인사를 하고 자전거에 태웁니다. 오는 길은 오르막이요 가는 길은 내리막입니다. 시원하고 신나게 달립니다. 집에 닿아 뭣 좀 먹일까 하면서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입니다. 이제 슬슬 밥이 되려고 하는데, 배움터 아이들이 감따기와 그림그리기를 마치고 우리 살림집 옆을 지나갑니다. 아이는 아이들 소리를 듣고는 또 “언니다!” 하면서 뛰어나갑니다. 아이고, 녀석아. 밥 먹어야 하는데 어딜 또 나가. 그렇지만 아이는 어느새 배움터 아이들하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빠는 하던 밥이 있으니 밥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윽고 밥이 다 됩니다. 다시금 부랴부랴 산으로 뒤따라 올라갑니다. 아이들 소리는 배움터 밥집에서 납니다. 배움터에서는 낮밥 때가 되었군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밥집으로 들어갑니다. 아, 아이는 이곳에서 언니 오빠하고 함께 밥을 먹습니다. 집에서 제 아빠하고 엄마는 함께 밥을 먹으려고 다 해 놓고 기다리는데, 아이는 아무런 말 없이(아직 스물일곱 달이니까 말을 하고파도 못한다 하겠지요) 바깥밥을 먹다니.


.. 물은 생명이 탄생한 곳입니다. 물이 있는 곳은 생물들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지요. 실제 물속에는 아주 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어요.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물속 곤충과 물풀뿐만 아니라, 새·물고기·우렁이·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물벌레도 많지요. 벼논이 많은 우리 나라에는 큰 저수지뿐만 아니라 ‘둠벙’도 많지요 ..  (책머리에)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어디에서나 마음껏 뜁니다. 언제나 마음껏 소리지르고 노래하며 춤을 춥니다. 웃고 까불며 울기도 하다가는 졸음에 가득한 무거운 눈으로 칭얼대다가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 3층짜리 벽돌집 2층에서 지냈습니다. 아래층은 집임자인 할배와 할매가 살고, 웃층에는 대학생에 고등학생이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살았어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 못지않게 뛰고 웃고 울고 복작대며 지내던 아이입니다. 아이가 뛰거나 소리지를 때마다 아빠 가슴은 철렁철렁합니다. 아래층 할배와 할매는 ‘아이 키우는 집은 다 그렇다’며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지만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어요. 도시에서 시골로 옮긴 뒤로 무엇보다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대목이 좋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라고 마음껏 못 놀지 않았어요. 그저 엄마랑 아빠가 눈치를 보느라 힘들 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 시골집으로 오며 더없이 좋은 대목은 ‘도시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자연’을 언제나 부대끼거나 어우러지는 삶입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고 자연을 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살림집 옆 멧기슭을 따라 멧느타리가 곳곳에 자라는 줄을 안 지는 보름쯤 되었습니다. 그렇게까지 많이 나지는 않아 배불리 따 먹지는 못하지만, 가끔 산길을 타며 한 송이씩 따서 찌개를 끓일 때 넣습니다. 땅속을 흐르는 물을 마시고, 빛나는 달과 맑은 해 기운이 어린 바람을 마십니다. 도시에서라면 여기는 무슨 가게 저기는 무슨 가게 하며 말해야 하거나 이것저것 아이가 모르거나 궁금해 하는 건물과 물건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시골에서는 굳이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도시 살림살이를 안 가르쳐 주어도 됩니다. 엄마하고 아빠가 제대로 모르기에 찬찬이 일러 주지는 못하나, 들풀과 들꽃과 들새와 들짐승을 이야기합니다.

 시골에서 아이와 맞이한 올 첫 여름에는 이오덕자유학교에 있는 헤엄터(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서 마련한 어린이 헤엄터)에서 여러 가지 물벌레를 보고 나무그늘을 느끼면서 놀았습니다. 이때 게아재비를 아이와 같이 처음으로 봅니다(아빠는 어릴 적에 일찌감치 보았고, 아이하고 같이 보기는 처음입니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금쟁이를 시골에서는 어디에서나 으레 봅니다. 도시 골목집에서 살던 때에도 개미나 거미는 흔히 보았는데, 시골에서는 집이고 마당이고 산이고 논이고 밭이고 개미와 거미를 비롯한 갖가지 풀벌레가 많습니다. 집 둘레로 온통 멧새이고요. 시골에서 아이와 마주하는 올 첫 가을에는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올려다보다가는 낮은 가지에 매달린 감은 아이가 손수 따도록 합니다.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니까, 아침에 찡얼거리는 아이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와서 들판에 넓게 깔린 서리를 보여줄 수 있어요. 도시에서 아빠하고 몇 시간이고 골목마실을 늘 한 까닭에 산타기를 할 때에 아이는 제법 잘 걷습니다.


.. 물속 친구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풀이야. 물풀은 물도 깨끗하게 해 주고, 물속 곤충들의 먹이도 되어 준단다 ..  (18쪽)


 그림책 《소금쟁이가 들려주는 물속 생물 이야기》를 펼칩니다. 여느 시골마을 물웅덩이(둠벙)라면 어렵잖이 마주할 만한 물벌레와 물풀 이야기가 수수한 그림으로 실려 있습니다. 시골사람한테는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흔한 물벌레 이야기요 너른 물풀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여느 시골에서 자취를 감추는 흔하던 물벌레요 너르던 물풀입니다. 오늘날 한국땅 여느 시골이라면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많이 쓰거든요. 1920년대에 최순애 님이 쓴 〈오빠 생각〉이라는 시에는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하고 첫머리를 열지만, 논에서 뜸북새를 찾아보기 힘들고 숲에서 뻐꾹새를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최순애 님이 시를 지을 때에는 뜸북새는 참새와 마찬가지로 흔한 새였으나 이제는 천연기념물이에요. 뻐꾸기는 아직 천연기념물까지 되지 않았으나 머잖아 천연기념물이 되리라 생각해요. 맹꽁이는 어느새 멸종위기에 닥쳤다고 하는데, 맹꽁이나 두꺼비가 사라지리라 생각하던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풀무치라든지 물방개 또한 어느 날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질는지 모른답니다.

 가만히 보면, 일본에서는 퍽 일찍부터 ‘일본 자연 삶터를 넓게 살피며 두루 담는 어린이책’이 그림책으로나 사진책으로나 글책으로나 무척 많이 나왔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견주어 꽤 예전부터 공장이 늘었고 산업주의가 온 나라를 덮었습니다. 맑고 밝던 시골 삶자락이 진작부터 많이 무너졌어요. 자연스러운 시골 삶터를 버리고 도시로 나온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이리하여 어떠한 어린이책보다 자연을 느끼어 가슴으로 껴안도록 돕는 자연 이야기책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으리라 보는데, 우리는 이제서야 드문드문 자연 이야기책이 나옵니다. 그런데 일본은 산업주의가 진작에 뻗었어도 유기농업을 하는 시골이 참 많아요. 흔하기에 수수한 시골 논밭이 잘 자리잡습니다. 일본이라고 농사짓기를 물려받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많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처럼 뜸북새가 자취를 감춘다든지 맹꽁이가 삶터를 빼앗긴다든지 여우가 씨를 퍼뜨리지 못한다든지 하지 않아요.

 그림책 《소금쟁이가 들려주는 물속 생물 이야기》를 다시 펼칩니다. 소금쟁이는 시골 뭉웅덩이에서만 즐거이 노닐 목숨이 아닙니다. 소금쟁이는 골목동네 물웅덩이에서도 어렵잖이 마주하던 벗이었습니다. 어릴 적 땅거미가 내려앉던 해거름이면 골목 한켠에서 으레 땅강아지를 잡으며 놀았습니다. 우리는 뭇사람과 뭇짐승과 뭇벌레가 서로서로 어우러져 살아갈 터전을 헤아려야지 싶어요. 뭇목숨이 골고루 어깨동무하며 지낼 보금자리를 살펴야지 싶어요. 메뚜기도 살고 사마귀도 살며 개구리도 살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어요. 검정말도 살고 물질경이도 살며 물옥잠도 살 수 있게 마음을 써야지 싶어요. 뱃살 나오고 허리 굵어지는 도시사람이 살빼는 운동을 하는 공원이 아니라, 작은 들짐승이 나란히 숨쉬며 지낼 만한 참다운 숲을 도시 한복판에도 마련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숲에는 새도 살고 쥐도 살지만, 숲이 있을 때에 사람 또한 사람다이 살아갑니다. 얕은 물웅덩이이든 작은 늪이든 앙증맞은 논이든 조촐한 못이든, 시골뿐 아니라 도시 한켠에도 흙이 있고 샘물이 있을 때에 사람으로서 사람다움을 건사합니다.

 그림책 《소금쟁이가 들려주는 물속 생물 이야기》를 또 한 번 들춥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그림책 하나를 놓고 백 번은 우습게 되넘기고 즈믄 번은 가벼이 되읽습니다. 아이랑 이 그림책 하나를 즈믄 번쯤 즐길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즈믄 번이 어렵다면 백 번쯤은 신나게 맛볼 수 있으려나 곱씹어 봅니다.

 수수한 목숨붙이를 수수하게 담은 그림결은 무척 좋습니다. 자연보다 지식을 보여주려 하는 그림책 모습이 아니어 괜찮습니다. 천연기념물이라든지 꽤 예쁘장한 그림에 매이지 않아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천연기념물’이란 이름이란 도무지 뭔 소리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천연을 기념하는 생물’?

 그나저나, ‘부들은 키가 몹시 크며 곧고 길게 자란다’는 풀이를 달면서(33쪽) 크며 곧고 긴 모습 그림을 담지 못하니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더 낱낱이 들여다보도록 그림을 그리지도 않습니다. 한결 도드라지게 들여다보는 그림을 담으면서 뿌리께부터 맨 꼭대기 줄기까지 두루 바라보는 그림을 넣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또한, 물가 둘레를 한눈에 살피도록 엮은 그림이 제대로 없습니다. 맨 안쪽에 이 그림을 넣는다고 넣었으나 물가 둘레에 돋는 풀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림이 너무 밋밋해요. 갖가지 들풀을 고루 그리면서 물벌레뿐 아니라 물 바깥 여느 벌레가 곳곳에 숨어 있는 모습으로 담았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뜸북새를 그려 넣을 수는 없지만(뜸북새를 넣을 수 있으면 훨씬 좋겠지요) 논이나 물가를 오가는 들새나 멧새는 제법 많아요. 물 안팎 모습을 한눈에 보도록 낱낱이 담은 그림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도 ‘더 많은 목숨들이 더 살갑고 싱그럽게 살아숨쉬는’ 그림으로 담았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덩그러니 한 마리만 그려 넣는 ‘표본실 그림’이 아닌, ‘적어도 암수 두 마리가 짝을 짓는 그림’쯤으로 엮는다면 한결 낫고, ‘너덧이나 대여섯이나 예닐곱 마리쯤 얼크러지는 그림’으로 선보일 수 있습니다. 책 끝에 ‘물속 생물 사전’을 따로 담았으니 모둠그림에는 따로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외려 이름표 없이 그림으로 재미나며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욱 짜임새가 단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금쟁이이든 물벌레이든 물풀이든 하나같이 ‘시골에서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목숨’입니다. 시골 논이고 둠벙이기 때문에 언제나 즐거이 어우러지는 목숨이에요. 그러면, 이와 같은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으려 할 때에는 참말 말 그대로 ‘시골살이 삶자락’이 어떻게 아름답고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살갗 깊이 파고들도록 마음을 쏟고 땀을 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는 생태도감이나 자연도감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아요. 도시 아이라 해서 따로 생태도감이나 자연도감을 마련해 줄 까닭은 없어요.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도감’보다 ‘사랑’을 말할 수 있으면 좋고, 모두들 ‘지식’보다 ‘삶’을 어루만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빛깔 그윽히 곱습니다. (4343.10.29.쇠.ㅎㄲㅅㄱ)


― 소금쟁이가 들려주는 물속 생물 이야기 (바람하늘지기 기획,노정임 글,안경자 그림,철수와영희 펴냄,2010.5.15./12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과 인천으로 마실을 다녀온 어제. 무릎이 하도 시큰거려 얼른 잠자리에 들고 싶으나 아이는 더 놀고 싶다면서 방방 뛴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손을 드린다. 똑바로 다시 하라고 하니 두 번 다시 한다. 아이고. 귀여운 녀석. 그러나 아빠는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뻗다...가 다시 일어나서 아이 이를 닦아 주고 아빠 이를 닦았고, 칭얼거리는 돼지 한 마리 잡느라 한참 애먹었다...

- 2010.10.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보름 만에 인천마실을 했다. 앞으로는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 가까스로 마실을 하지 않으랴 싶다. 깊어 가는 가을녘인 10월 끝물 어느 골목을 거닐며 어떠한 삶을 느끼면 좋을까 헤아릴 때에, 인천여상 둘레 답동처럼 좋은 데는 드물겠다고 여겼는데, 참말 이 느낌 그대로 가지 말리기 고운 사진을 한 장 얻는다. 

- 2010.10.28. 인천 중구 답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